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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도 내용도 비교적 쉽고 가볍게 진행되는듯 했다. . 등장인물들이 거창한 어드벤처를 경험하는 것도 아니다.다만 너무도 부조리한 상황에 처해 감금당하고, 정신적,육체적 학대속에 자살을 방조당하는 모습들이 그저 경악스러울뿐...... 대부분은 쉽게 자살을 선택했고, 몇몇 남은 소수는 지극한 상식적이고도 단순한 삶의 목표를 성취하고자하는 열망에 근근히 삶을 이어간다. 첫사랑과의 재회, 아버지와의 미술관 관람, 가족과의 만남 그리고 그저 함께 있을수 있다는 것이 좋아서 힘든 삶을 선택했지만, 하나하나 결국엔 자신의 손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아이들. 말도 안되는 상황속에 사육당하듯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실험체로서 규정되어 삶을 누리기보다는 어떤 경우에 죽음을 선택하는지에 대한 연구대상으로 관찰당하는 아이들이 너무가 가엷고 불쌍했다.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상이 아닐수 없었다. 자살을 방지한다는 대의명분으로 아이들의 자살을 방조하는 어른들의 혹은 체제의 아이러니가 이가 갈릴만큼 공포스럽고도 혐오스러웠다. 그로인해 고통받는 가족과 당사자들의 아픔이 잔잔하지만, 절절하게 표현된 문장때문에 불시에 왈칵왈칵 눈물이 치솟아서 곤란한 작품이었다. 출퇴근길 버스 안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야단스럽게 코까지 풀어가며 열심히 문장을 따라가다 보니 너무도 비극적인 결말이 다가와서 또 한번 더 절망하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아이들을 연민하고 동정하는 듯 했던 주인공의 숨겨진 비밀이 종국에서야 밝혀지면서 비극이 극대화 되는 부분이 충격적이면서도 인상적이었다. 타인들의 의지로 삶을 빼앗기고 죽음만을 선택하도록 묘하게 조종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분할 따름이다. 너무도 가엷은 아이들과 주인공의 소박하지만, 따뜻했던 며칠간의 탈주생활들이 참 가슴 절절하게하고, 마음을 아프게 했다. 소설은 허구일 뿐인데, 한참 몰입하게 되면 결국 이렇게 눈물 바람이 되어 버린다. 이런 미래상은 절대 없기를 바라며, 이런 비극은 꼭 문장속에서만 존재 했으면 좋겠다. 생소한 작가분의 작품이었는데, 차분한 전개와 쉬운 문장 그리고 묘한 감정의 격정을 자극하는 문체에 상당한 호감을 갖게 되었다. 차기작도 속속 소재 되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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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서른 즈음에 들어선 '야마다 유스케'가 이십대 중반에 발표한 작품으로 라이트노벨 분위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작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어느 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문학상을 수상하기 위한 창작보다는 젊은 독자들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데 더 관심이 있는 작가입니다. 그래서, 그의 소설들은 영화, 연극, 드라마로도 각색되는 등 독자들의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배경은 2030년입니다. 시간적 배경이 미래이기 때문에 SF적인 요소가 들어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SF장르에 대한 지식이 많이 없는 제가 보기에도 전혀 SF같지는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라던지 공간적인 묘사같은 것들이 그냥 배경이 2010년이라 하더라도 전혀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작가가 소설의 배경을 근 미래로 잡은 것은 소설의 기본 설정이 현실에서는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부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자살을 감소시키기 위해 '자살억제 프로젝트'라는 국가적 사업에 착수합니다. 그런데, 그 사업의 내용이라는 것이 정형적으로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킨다는 것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하면 도저히 용납이 될 수가 없습니다. 매년 무작위로 다섯 살이 된 아이들을 뽑아서 치료라는 명목으로 심장에 고통없이 즉시 사망에 이를 수 있도록 모종의 전자장치를 이식합니다. 그 아이들이 열 살이 되면 전국 각지에 산재한 '센터'에 강제로 입소시킵니다. 마치 감옥과 같은 특수 시설에 격리된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누르는 즉시 심장이 정지하는 빨간 스위치입니다. 하루 아침에 가족들과 친구들과 떨어져 낯선 곳에서 지내게 된 아이들은 일체의 외부 접촉이 허용되지 않고 날마다 동일한 일상만 반복되는 생활을 시작합니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 하에서 오랜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아이들은 하나 둘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놓아 버립니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설정은 이 소설이 처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키가미'라는 영화 역시 생명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성실하게 살기 위해 초등학생에게 무작위로 수년 후 죽음에 이르는 예방접종을 실시한다는 설정이고, '배틀로얄'은 학생 폭력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전국에 있는 중학교 3학년 학급 중 하나를 무작위로 선정하여 무인도에 가두어 놓고 친구들끼리 실제로 서로를 죽이는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일본에는 이러한 극단적인 전체주의적인 발상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드물지 않습니다. 자국 사회의 집단주의적 경향에 대한 풍자에서 연유하는 것인지 아니면 더 큰 자극을 원하는 대중들에게 야합하는 상업주의의 산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에는 비인간적인 '자살억제 프로젝트'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명 스위치를 10년째 누르지 않고 꿋꿋하게 견디고 있는 네 명의 십대와 이들의 일상을 감시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이들의 처지를 동정하는 '감시원'이 등장합니다. 소설 초반부 극단적인 설정이 주는 충격이 가시면, 소설의 재미는 주로 십대 네 명의 사연과 스위치를 누르지 않는 이유가 궁금해지고 마지막으로는 '감시원'이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는 배경과 석연치 않는 '센터'의 속셈에 의문점을 느낍니다. 이 소설의 미스터리적인 장치는 이 부분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다지 새롭고 기발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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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심코 집어든 책. 내용이나 분위기가 약간은 배틀 로얄같기는 한데 마지막 사소한 반전이 있다. 하지만 읽는 동안에도 마치는 순간에도 별 감흥이 없이 책장만 넘겨버렸다는 생각이다. 나중에 다시 한 번 읽는 다면 뭔가 새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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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를 누를 때
야마다 유스케 지음
루비박스
모든 것이 자유롭지 못한 통제된 조건
속에서도 하고 싶은 일을 성취해내려는 네 명의 아이들과 그들을 돕는 미나미 요헤이의 위축되지 않는 행동 자체에 중점을 둔 소설이다. 소설 속
사건의 발단은 청소년의 자살을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청소년자살억제프로젝트'에서 시작된다. 2006년 연극으로 제작되었고, 같은 해 일본
MBS 방송을 통해서도 인기리에 방영된 바 있다고 한다. 자살억제프로젝트라고 하면서, 왜 보통의 소년들을 감금하고 그들이 자살하게끔 유도하는
것인지 도무지 납득이 되지를 않는다. 도대체 어떤 연유로 자살을 억제하는 프로젝트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청소년자살억제프로젝트센터에서 감시원으로 근무하는 27세의 미나미 요헤이이다. 이곳에서는 네 명의 소년, 소녀에게 스스로의 목숨을
끊을 수 있는 빨간 스위치를 건네주어 실험을 하고 있다. 독방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다카미야 마사미, 신조 료타, 코구레 기미아키, 이케다 료,
이 네 명의 아이들은 하루 한번 서로를 만날 수 있는 시간 이외에는 그 누구와도 교류할 수 없다. 가족이나 친구와의 면회도 금지되어 있다.
편지조차 쓸 수 없다. 완전한 고독의 나날을 견디지 못한 채 스위치를 누르는 아이들… 젊은 연령층의 자살을 억제하기 위해 고안된 이 실험은
인간이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지를 밝혀내려는 연구이다. 이런 연구를 위해서 멀쩡한 소년소녀들의 목숨을 담보로 국가가
실험을 한다는 자체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전시에 자행된 마루타 실험과 무엇이 다를까? 국민의 목숨을 이렇게 등한시하는 국가의 존재를 우리는
인정할 수 있을까? 싶다.
어디까지나 소설 속에 이야기이고
현실가능성이 없는 일이라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이런 발상을 가진 일본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감사해야 할 듯 싶다.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인간의 목숨을 희생해야 하는 이 실험이 과연 대의를 위한 소의의 희생이라는 경구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소설
속 사건의 발단은 청소년의 자살을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청소년자살억제프로젝트'에서 시작된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높은 국가로
알려져 있다. 근대 이전의 일본 사회는 계층이 고정되어 있어서 신분의 이동이 어려운 반면, 사람들은 혈연공동체와 지역공동체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반면 근대사회에서는 계층 간의 이동이 자유로워졌고 따라서 능력 있는 사람들은 공동체의 틀을 벗어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현대의 일본사회에서는 다시 사회적 계층이 고정되면서 경제력이 취약한 하위 집단의 경우 일을 해도 먹고 살기 어려운 악순환의 구조
속으로 빠져든다. 학교를 졸업해도 변변한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젊은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망을 버리거나, 아예 처음부터 희망을 품지 않게
된다. 결국 이들은 프리타로서의 삶에 만족하고 자신의 방으로 은둔하는 히키코모리가 되어 간다. 그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사회의 언저리를
부유하면서 때로는 자살을 생각하게 된다.
최후의 반전이 이들이 선택된 이유가
뚜렷하게 드러나기를 기대했는데, 미나미 요헤이와 다카미야 마사미의 혈연 관계가 반전일 뿐이어서 실망스러웠다.
2016.12.22.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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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살기 참 팍팍한 곳이라는 사실은, 일단 이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그리고 갖가지 유쾌하지 못한 통계자료들이 이를 더욱 설명해 주기도 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자살률일 것이다. 특히 젊은 층에 경우 교통사고보다 높은 사망원인이 된지 오래다. 자살을 온전히 개인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국가의 오만함 역시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 역시 젊은 층의 자살률이 매우 높은 편이다. 언뜻 보면 우리보다 잘 살고, 치안이나 질서 등등 겉보기엔 훨씬 살만한 곳이라 생각하기 쉬운 일본. 그런데 왜 그리 많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릴까. 소설은 황당무계한 설정으로 전개되지만, 결코 황당 그 자체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바로 자살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연구다. 이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생명에 대한 권리까지 국가가 통제하겠다는 발상. 젊은 층에 자살이 늘어나자, 일본 정부는 세금이 줄어들 것(!)을 심각히 우려해 결국 청소년자살억제프로젝트를 실행하게 된다. 이는 전국에서 무작위로 추출된 아이들을 고강도의 스트레스 환경에 두어 청소년의 심층 심리를 해명한다는 목적이다. 잔인한 국가의 무지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모습이다. 정부에서 무차별적으로 선택한 아이들은 다섯 살이 되면 심장 수술을 받게 된다. 물론 본인은 모른다. 그리고 수술 뒤 5년이 지나면 정부는 그 아이를 부모로부터 빼앗는다. 국가의 명령에 의해 강제 수용된 아이들은 하나의 스위치 장치를 받게 된다. 이는 스스로 언제든지 목숨을 끊을 수 있도록 만든 장치이다. 바로 5년 전 아이들이 받은 심장 수술, 그 때 심장에 삽입된 장치이다. 아이들을 각자 독방에 갇혀 정기적인 진찰과 검사 등을 받으며 마치 죄수처럼 생활하게 된다. 하루 중 몇 시간만 아이들이 함께 모일 수 있으며, 바깥으로의 운동이나 산책도 센터 안에서만 허용된다. 차츰 아이들은 고독과 절망감을 이기지 못해 하나 둘 스위치를 누르게 된다. 바로 자신의 심장을 멈출 수 있는 버튼을 말이다. 주인공 미나미 요헤이는 바로 이 수용센터의 감시원으로 근무한다. 정부의 말도 안 되는 짓거리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업무를 맡아야 하는 미나미. 그는 요코하마의 수용센터로 발령을 받고, 곧 그곳에서 4명의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이곳에 아이들은 무려 7년 동안 스위치를 누르지 않고 버텨온 것이다. 조금씩 아이들과 친하게 된 미나미는 왜 4명의 아이들이 스스로 생명을 끊지 않는지 알게 되고, 자신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는 결심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바로 아이들을 이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탈출시키는 것이다. 소설은 시종일관 긴박감과 함께 우울감이 깔려있다. 자신의 유년시절을 박탈해버린 국가에 대한 증오와 가족, 친구들을 향한 그리움이 아련한 아픔을 전해준다. 그리고 그들의 목숨을 건 탈출과 이어지는 가슴 먹먹한 사건들은 도대체 정부, 국가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회의를 낳게 한다. 어떻게 보면 자살은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생사여탈을 결정지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최소한의 자기 권리일 수 있다. 인류가 진보하면 할수록, 정작 개인은 자유를 빼앗겨야 하는 모순 속에서, 자살은 인간의 마지막 저항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살마저, 국가의 발전과 영속을 위한 통제 대상이 되어버린다면, 그 세계는 과연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그리고 그러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과연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자살 그 자체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순 없다. 이것은 온전히 스스로의 결정이자, 책임이다. 하지만 인간을 인간답지 못한 굴레 속으로 밀어 넣고 오직 집단, 국가, 정부를 위한 부속품으로 전락시켜 버린 현대에서, 우리는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첫 페이지를 넘긴 뒤, 끝내 마지막 페이지를 확인케 만든 소설의 힘은 글쓴이의 뛰어난 흡입력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자살이란 행위, 국가의 역할과 책임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든 힘도 적지 않은 작용을 했다. 개인적으로 자살을 반대한다. 그 어떤 도덕적 명분과 이상을 들이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자살은 결코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끝내 자살을 선택한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함께 그러한 자살을 막지 못한 국가, 사회에 대한 냉정한 비판 역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순 있다. 하지만 결국 스위치를 누르게 되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선택과 책임만은 아니라는 사실.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일본이나 우리나 늘어나는 자살을 궁극적으로 막지 못할 것이다.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자살예방본부 따위를 두어 허무한 캠페인을 벌이는 것보다 백배는 나으리란 생각을 해본다. 단순히 재미로 읽기엔 조금 무거운 소설이었다. 일독을 조심스레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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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언제 어느 시대나 문제거리였다 특히 젊은이들의 자살이 현대에 더욱 많아지는 경향은 개인주의 만연으로 생긴일중 하나이다. 스타나 어느 특정인의 자살을 모방해 집단적으로 자살을 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도 얼마전 유명 연예인의 자살이후 자살률이 급격히 늘었다는 통계를 보면 그런 유명인의 자살은 우울증이나 잠재적인 자살충동을 갖는 사람들에게는 기폭제가 되곤하는것 같다.
이책은 그런 젊은이의 자살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소설이다. 특히 일본의 자살률이 높다는건 익히 들어 알고있는데 이글에서 다루는 곳이 바라 일본이라는 나라이다. 일본은 젊은이의 자살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으로 자살방지프로제트를 시작한다. 일정한 시설에 국가가 무작위로 선정한 아이들을 부모에게 통보후 실험체로 부모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이 프로젝트에대한 설명을 자세하게한다. 아이들은 선택할수있다. 실험체로 있는동안 몸속에 심어놓은 장치에 연결된 스위치를 받고 그걸 누르면 모든것이 끝난다는걸 이 실험이 잔인한 이유는 부모나 아이들에게 실험동안 일어나는 사건들마저 그대로 공개가 된다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국가에 빼아기고 힘든생활을 포기하게되면 그마저도 아이에게 전달된다. 자살방지 프로젝트에세 몇년이상 살아남는 아니는 없다.그런데 7년동안 자살을 하지않고 살아남은 아이들이 있다. 실험체를 감시하는 감시원인 미나미 요헤이는 자신이 있던곳에 아이들이 모두 사라진후 그곳으로 발령을 받게된다. 그곳에 요헤이는 그 아이들을 감시해야 하는 것이다. 스위치를 누를 때의 모든 이야기는 요헤이가 요코하마 센터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을 감시하면서부터 시작이다. 요헤이는 죽지 않고 살아남은 아이들과 무슨일이 있었을까. 희망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무얼까 요헤이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자살의 이유는 여러가지일 것이다. 그것을 국가가 프로젝트로 막을수 있다는 설정부터가 상상을 초월한다. 이글속의 국가는 무한한 권력을 국민들에게 휘두른다. 자식을 국가에 빼앗기기전에 탈출을 감행하면 되지 라는 그런 상상을 할수조차 없게 모든 시스템이 가동된다. 자살을 막는게 아니라 자살을 조장하는 프로잭트다. 사람들은 꿈을꾸는한 죽지 못한다. 그런 의미로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현실과 미래가 불확실하고 꿈을 잃었거나 꿈이 없기때문이다. 우리아이들이 꿈을 잃지 않도록 하는것이 더욱 확실한 방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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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정말...? 이란 질문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스위치를 누르지 말라고 즉, 자살하지 말라고 의도하는 소설치고는 너무나 암울하니까. 이런 소설을 읽고도 과연 삶의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인지... 2030년의 한 국가에서 자살억제프로젝트를 위해 아이들을 선별해 강압적으로 가족과 떨어뜨려놓고 언제든지 자살을 할 수 있도록 심장과 연결된 스위치를 주고 가두어놓는 실험을 행했다. 무차별적으로 선별한 아이들은 다섯 살 때 심장수술을 받아 스위치와 연결시켜놓고 열 살이 되면 가족들에게서 떨어져 혼자 형무소 같은 곳으로 보내져 아무런 의미도 없이 살아야 했다. 또래 아이들과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도 있지만, 아무런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둘씩 차례차례 스위치를 누르고 죽어갔다. 이런 아이들을 관찰한 결과로 많은 자살자들을 방지했지만 이런 성과가 제 아이를 빼앗기고 하루하루를 눈물로 살아가는 많은 부모들과 하루아침에 부모와 떨어져 죽음으로 내몰리는 아이들의 희생을 대신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알겠다. 하지만... 그 의미... 평범한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가족들과 같이 하는 한 때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목숨과도 맞바꿀 수 있을 정도의 가치를 지녔다는 것...? 맞을까. 내가 찾아낸 것이? 내가 찾아낸 주제가 맞다면 평범한 진리를 찾아낸, 아주 주옥같은 소설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이 아무리 훌륭한 주제를 담고 있다고 해도 말 끝에 항상 ‘하지만’을 붙일 수 밖에 없다. 평범한 진리를 전달하기위해 끔찍한 현실을 만들어낸 것이 사실 그다지 와닿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갈구하며 죽어갔던 그 평범함이 왠지 너무나 과대포장 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혹은 프로젝트의 취지와 열 살밖에 안 된 아이들에게 부모와의 격리로 인해 자살을 강요하는 것이 언뜻 연결되지 않기 때문일까? 자살억제프로젝트라면서 왜 좀 나이든 아이들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열 살짜리 아이들이 자살을 그렇게 많이 한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자살을 많이 하는 연령대가 아닌데 실험체로 쓰이는 것도 이상하다. 또 세상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지도 못한 아이들에게 자살 방지에 대한 어떤 데이터를 뽑아낼 수 있다고 하는 것인지 전혀 납득할 수 없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일까. 이 아이들이 형무소와 같은 곳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전혀 눈 앞에 그려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놀것이나 즐길것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자살을 할 순 없지 않은가. 자살을 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거부당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 같은데, 끌려온 아이들이 어떻게 거부당했다고 볼 수 있을까. 그저 사랑하는 엄마를, 가족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 그것이 자살의 이유가 될 것인지도 잘은 모르겠다. 내가 그 나이가 아니니 아무래도 이해의 폭이 좁긴 할 테지만. 평생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없고 사랑하는 부모님을, 형제를 만날 수 없다면, 평생을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아갈 수 없고 격리되어 살아가야 한다면 과연 나는 자살을 할까. 조금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름 상상을 해보았다. 만일 나라면 저런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했을까 싶어서... 하지만 그렇게까지 암울할까. 난방도 전혀 되지 않고, 맛난 먹을거리도 없고, 재미있는 놀이나 TV시청도 금지되는 곳에서 사람은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쉽게 인생을 포기할까. 나는 인간을 그렇게 약하게 보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소설 속에 몰입을 하지 못했던 탓인지는 몰라도 조금은 납득하기 어려운 소설이었다. 마지막 반전도 안타까웠고... 어린 아이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 결국은 자살하도록 방조하는 정부를 보면서 일개 시민들의 안위는 전혀 생각지 않은 이 시대의 정부가 떠올랐다. 돈 없고, 권력 없고, 연줄 없는 일개 서민들을 마구 우롱하는 정부가 꼭 이 소설에 나오는 정부랑 조금은 비슷해보였다. 아무리 자살을 억제한다는 대의를 위해서라지만 같은 정부 아래서 똑같이 보호받아야 하는 시민을 그렇게 실험체로 쓸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정말 너무나 똑같다. 왠지 이번 소설은 아름답고 숭고한 주제보다는 비정하고 얍삽한 정부의 모습으로 대변되는 청소년자살억제프로젝트의 총괄자인 사카이 노부히데의 냉소적인 모습이 마지막으로 잔상에 남는다. 자신이 마치 신(神)이라도 된 양 냉소하는 꼴이라니~~ 또한 한편으로 이렇게 오만한 행동을 서슴없이 동물에게 행하는 인간의 비정한 모습이 떠올라서 책을 덮고 나서도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가슴 언저리에 무언가 내려가지 않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아마 알고 있기에 더욱 불편한 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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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지금도 여전히 자살은 사회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유명연예인의 자살이 우울증과 관련이 있음에도 우리도 여전히 정신과에 가서 치료받기를 거부한다. 정신과에 가서 치료한 흔 적이 드러나면 앞으로의 사회생활에 지장을 준다는 소문도 들었다. 우울증은 단순한 병이 아니다 바로 마 음의 병이고 마음의 병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포기하게 만들고 여러사람을 힘들게 한다. 이런 무거운 주제로 한권의 책이 나왔다. 미래의 일본을 지정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될수도 잇고 다른곳 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끌려온 아이들은 집에 가고 싶다고 울부짓는다. 국가에서 청소년 자살억제 프로젝트 의 일환으로 자유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이들을 데리고 실험하는 것이다. 이곳에 오기 5년전에 이미 몸에 심장에 특수한 전자기기를 부착한다. 이것은 빨간 스위치와 관련이 있다. 이곳을 탈출하기 위 해서는 단추를 눌러야한다. 그러면 심장이 멈춘다. 사카이는 오헤이를 하치오지에서 요코하마로 이동시키기로 결정했다. 그의 날카로운 눈매는 뭔가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요헤이가 근무하고 있는 이곳에 아이들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견디지 못하고 스위치를 누르고 만 것이다. 요코하마 센터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4명의 아이들. 다카미야 마사미, 신조 료타, 코구레 기미아키, 이케다 료. 4명의 아이들중 다카미야만이 요헤이에게 고분했다. 나머지는 싸늘 한 눈빛이었다. 어느순간 요헤이를 이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요헤이의 마음을 어느정도 인 정한 순간 이케다 료가 부탁을 한다. 자신과 같이 다른곳에 수감된 친구를 찾아달라는 부탁이다. 이케다 료가 견디어 온것도 그친구에게 자전거 열쇠를 돌려주겠다는 여러가지 마음이다. 하지만 친구도 어김없 이 스위치를 눌렀고 죽음의 소식을 듣는순간 이케다도 결심을 한다. 이케다 료의 죽음으로 인해서 요헤이 는 해서는 안될 일을 저질렀다. 나머지 세 아이들을 탈출시켰다. 점점 코너로 몰리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소원을 이루고 죽음을 선택앴지만 그것보다 더 반전은 요헤이에 대한 것이다. 결말부분은 생략하는 것이 책을 읽는 분들을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추리가 주는 재미는 클라이맥스에서 쾌감을 얻는 것이다. 잔잔히 흘러가는 내용에서 탈출한 부분으로 부 터 심장 떨림이 있었다. 내 예상과는 달리 가는 결말부분에서는 이런 반전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처지의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해서 그 아이들은 감시하는 요헤이의 운명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15년이라는 긴 세월을 혼자서 살아남았고 소장과 거래를 통해 감시자가 되었다. 소장의 목적은 무엇일까. 프로젝트가 끝났음에도 남은 사람까지 죽기를 바라는 너무 무서운 실험이다.
추리라고 하기에는 현실적인 내용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니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지금도 현실적 으로 자살을 방지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긴 하지만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여러모로 부족한게 현실이고 많은 사람들의 자살의 충동에서 힘겹게 살고 있다. 무거운 주제이긴 하지만 추리로서는 적절한 내용같다. 추리가 주는 무서움보다는 좀더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같아서 단숨에 읽을수 있었다. 추리가 사실 오락성을 많이 들어있긴 하지만 이책은 다분히 오락만은 추구하는 것은 아닌것 같다. 좀더 많 은 사람들이 자살에 대한 경종을 울리지 않나 대답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