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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의 신예작가의 출현. 기억될만한 작가의 첫 장편 2010-20
"벨기에의 신예작가의 출현. 기억될만한 작가의 첫 장편 2010-20" 내용보기
벨기에의 신성  토마 귄지그. 이 책을 읽게 된것은 아무래도 소개글의 노통브를 잇는 벨기에의 작가라는 글 때문이다.또한 책의 서두에 있는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글에서 그가 글을쓰기 시작한이유가 어렸을때 좋아했던 한국인 소녀 때문이라고 되어있기도 하고..,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소개글에서 나타나는 그의 위트넘치는 문장은 내가 좋아하는 문장의 전계 중 하나여서 많은 기대
"벨기에의 신예작가의 출현. 기억될만한 작가의 첫 장편 2010-20" 내용보기

벨기에의 신성  토마 귄지그. 이 책을 읽게 된것은 아무래도 소개글의 노통브를 잇는 벨기에의 작가라는 글 때문이다.또한 책의 서두에 있는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글에서 그가 글을쓰기 시작한이유가 어렸을때 좋아했던 한국인 소녀 때문이라고 되어있기도 하고..,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소개글에서 나타나는 그의 위트넘치는 문장은 내가 좋아하는 문장의 전계 중 하나여서 많은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이전에 읽었던 책에서의 챍읽기의 답답함이 여운으로 남아있었지만 첫장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매우 빠르게 책을 읽어 나가고 있었다. 귄지그의 문장은 매우 읽기 좋은 운률을 가지고 전계되며 음습하지 않고 책 속의 주변사항을 눈에 떠올리며 여유롭게 읽어 나갈 수가 있다. 책읽기의 즐거움을 시종일관 이어나갈수 있는 이야기의 전계와 문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철천지 원수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을 맡겨라."  p39

 

인기가수의 여자친구의 얼굴을 때려 상처를 입힌 주인공인 '나'는 인기가수로 부터 그의 인기 회복을 위해서 전장을 누비며 위문공연을 통해 인기를 늘려가고 있는 여가수를 암살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철천지 원수에게 가장 어려운일을 맡겨라는 격언을 인기가수는 '나'에게 적용한 것이다.

 

'나'는 인기 여가수를 암살하기 위하여 군대에 들어가게 된다. 시대적 상황은 반군의 테러에 맞서는 정부와 이를 이용하여 돈을 벌려는 미디어 그리고 대기업의 전쟁을 이용한 홍보를 그리고 이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이 있다. 이 시대적 상황은 과거 이라크 전쟁과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전쟁의 상황을 정당화 하기 위해서는 영웅이 필요하며 이 책에도 전쟁의 영웅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영웅의 내면은 독일인 여행자 서른명을 납치하여 살해한 '올리브 숲의 살인마'일 뿐이다.하지만 이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며 주위의 미디어나 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있으나 그것은 그들과는 상관이 없다. 단지 그들은 전쟁의 정당성이 필요할 뿐이며 영웅에의해 생산되는 콘텐츠에 의한 부의 축척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전쟁의 정당성을 위해 연출되는 화면이 필요하며 시청자들은 이러한 연출된 화면에 열광을 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미군의 테러와의 전쟁 역시 많은 매스컴에서 노출되었었지만 최근 미군의 극악한 동영상들로 인해 전쟁의 뒷면을 우리는 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은 더욱 더 사실감 있게 느껴지게 된다.  미디어는 점점 전쟁이 진행될 수록 노골적으로 변하지만 화자인 '나'는 그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것을 보고 많은 부조리를 겪게 되지만 그것을 바로 잡을 힘은 그에게는 전혀 없다. 부조리 그것은 이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늘상 자행되는 것이며 또한 묵인되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어느 완벽한 2개 국어 사용자의 죽음' 이지만 이 책에는 그 어디에도 2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2개 국어 사용자의 죽음도 없다. 그렇다면 왜 2개국어 사용자의 죽음일까. 이 책에는 대칭되는 여러 단면을 보여진다. 정부와 반정부. 화려한 도시와 폐허가된 도시. 권력층과 피 권력층.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의 추악함과 그 추악함에 희생되는 사람들. 등등등..,  2개 국어 사용자는 이러한 사회의 대립을 이야기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끝끝내 섞일 수없는 것이어서 인간사회가 지속되는한 권력을 가진자는 꾸준히 생겨날 것이고 유지 할려는 사람 또한 있을 것이며 부조리함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죽음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의 무거운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언급했지만  책읽기는 막힘없이 읽어 나갈 수가있다. 작가가 가진 문장력인 탓인데 전체 내용과 관계없이 문장은 매우 위트넘치게 쓰여지고 있다. 블랙코메디와 같은 역활을 하고있는 것이다. 우리는 매우 재미있는 작가를 만나게 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 해본다. 토마 귄지그 분명히 기억해야될 작가가 될 듯한 기분이 든다.



s******3 2010.04.26. 신고 공감 6 댓글 19
리뷰 총점 종이책
[어느 완벽한 2개 국어 사용자의 죽음]마냥 웃어 넘기기 어려운 블랙 코미디의 진수
"[어느 완벽한 2개 국어 사용자의 죽음]마냥 웃어 넘기기 어려운 블랙 코미디의 진수" 내용보기
글을 쓰게 된 이유가 한국인 소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는 벨기에 작가 토마 귄지그. 그 소녀는 다른 이와 결혼했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자신은 여전히 글을 쓴다는 서두를 뒤로 하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느 완벽한 2개 국어 사용자의 죽음』은 모순으로 점철된 사회와 그 속의 인간 군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즐겁지 않은, 불유쾌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하지만
"[어느 완벽한 2개 국어 사용자의 죽음]마냥 웃어 넘기기 어려운 블랙 코미디의 진수" 내용보기

글을 쓰게 된 이유가 한국인 소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는 벨기에 작가 토마 귄지그. 그 소녀는 다른 이와 결혼했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자신은 여전히 글을 쓴다는 서두를 뒤로 하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느 완벽한 2개 국어 사용자의 죽음』은 모순으로 점철된 사회와 그 속의 인간 군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즐겁지 않은, 불유쾌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하지만 나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블랙 코미디 한편을 본 것 같아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물론 해맑은 미소가 아닌 썩은 미소(썩소)와 그 원천을 알 수 없는 미묘한 씁쓸함이 함께 수반되었다. 작품의 세계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이전의 단편을 먼저 만난 토마 귄지그는 이번에는 장편인 『어느 완벽한 2개 국어 사용자의 죽음』을 들고 나타났다. 나는 일단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이번 작품이 전작보다 못해 혹시나 실망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뒤따라왔다. 하지만 '난 원래 잘났어!', 라며 작가는 내 걱정이 쓸데없는 기우였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무기력한 '나'는 배고픔 때문에 슬로베니아 군인 출신 '모크타르'의 부탁으로 사람을 죽이게 된다. 그리고 유명가수 '짐짐'의 여자 '미니트립'의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살인보다 여자를 폭행한 일 때문에 '나'의 삶은 꼬여버린다. '짐짐'은 자신의 여자와 놀아나고 그 여자의 얼굴을 못 쓰게 만든 원수인 '나'에게 라이벌 가수 '카롤린'을 없애라고 명령한다. '나'와 '모크타르'와 마담 '스카폰'이 '카롤린 제거 계획'에 착수․실행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작품의 뼈대를 이루게 된다.

'나'와 '모크타르'가 있는 전장은 거짓이다. 시청률에만 목을 매는 케이블방송사와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광고주가 만들어 놓은 거짓 전쟁터인 것이다. 촬영준비가 되어 있기 전에는 군인은 물론이거니와 포로도 올-스톱으로 기다려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조작된 리얼 다큐멘터리의 배경에서 그들은 리얼 인간을 안방의 시청자들을 위해서, 시청률을 위해서, 돈을 위해서, 인간 마네킹처럼 다룬다. 현실에서도 신무기를 실험해야 할 즈음에 군수회사는 강대국과 결탁해 전쟁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악했던 적이 있다. 『어느 완벽한 2개 국어 사용자의 죽음』의 세계와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그리 다르지 않았다. 두 세계 모두 모순의 세계였다. 또한 '나'는 모순된 세계의 희생자이다. 그리고 희생자인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희생자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것마저 현실세계와 닮아 있어 소설 속의 '나'는 현실에서도 눈만 크게 뜨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완벽한 2개 국어 사용자의 죽음』은 희망 따윈 없다. 그래서 완벽한 블랙코미디가 될 수 있었다. 토마 귄지그는 매우 영악한 작가이다. 등장하는 인물마다 읽는 이가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다르게 탄생할 수 있도록 설정해 두었다. '모크타르'와 '더크'의 사이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나'와 '카롤린'은 도대체 어떤 관계인가? '나'가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은 무엇일까? 그리고 작가는 마지막의 결론마저도 독자의 상상에 맡겨 버렸다. 과연 피해자에서 가해자의 배로 갈아타게 된 '나'의 운명이 어떻게 될 지 궁금하다. '나'의 미래가 그리 밝지만은 않다고 예측되기에 그저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g****g 2010.04.2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유쾌하지만 씁쓸한, 가볍지만 진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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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궁금했다.벨기에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었다. 네이버 검색창에 "벨기에"를 쳐넣어 보았다. 서유럽의 북해에 면해 있는 입헌군주제 국가. 언어는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 얼마전, 세계 각 대륙의 지도를 펼쳐놓고 나라 이름을 골라넣는 게임을 한 적이 있었더랬다. 아프리카는 그렇다치고 그나마 쉽지 않을까 생각했던 유럽도 그리 녹록치는 않더라. 라트비아, 리히텐슈타인, 보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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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궁금했다.
벨기에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었다. 네이버 검색창에 "벨기에"를 쳐넣어 보았다. 서유럽의 북해에 면해 있는 입헌군주제 국가. 언어는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 얼마전, 세계 각 대륙의 지도를 펼쳐놓고 나라 이름을 골라넣는 게임을 한 적이 있었더랬다. 아프리카는 그렇다치고 그나마 쉽지 않을까 생각했던 유럽도 그리 녹록치는 않더라. 라트비아, 리히텐슈타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그러고보니 난,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위치도 잘 몰랐던 것 같다, "G20 의장국 국격"에 안 맞게. 늘 지구본을 들고 다니며 수도 없이 'Korea'를 설명했다던 CF속 그 소년은, 벨기에가 지구본 어디에 붙어있는지는 알고 있었을까. 넓디 넓은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에 살고 있는 파란 눈의 사람들이 아시아 맨 끝에 붙어있는 코딱지만한 나라 'Korea'를 모른다고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야 되고, 그 나라는 중국어를 쓰냐고 묻는다고 왜 그렇게 모멸감을 느껴야 하는지, 난 잘 모르겠다. 벨기에 사람들이 벨기에어를 쓰는지 영어를 쓰는지도 잘 모르면서. 그런데 이 작가, 어린 시절 한국 소녀와 사랑에 빠졌었고, 그 소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찜찜하게 미뤄뒀던 숙제를 끝낸 것 같은 마음으로 작가는 한국 독자들과 만나고, 난 낯선 나라의 낯선 문학에 대한 호기심으로 벨기에 작가와 만났다. 처음이다.

 

2. 유쾌했다.
잘 만든 B급 영화 정서랄까. 퀜틴 타란티노나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영화로 만든다면 제법 맞춤할 듯한. 은밀하고 불법적인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뒷골목이 등장하고, 그 뒷골목을 전전하며 한심한 인생들이 살아가고, 그 인생들은 또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른 얼띤 짓으로 인해 의도하지 않았던 어처구니 없는 일들에 휘말린다. 주인공 '나'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은 전쟁과 폭력, 거대자본과 정부권력의 횡포로 얼룩져있고, 그로 인해 '나'가 처해지는 상황들은 불행하고 비참하기 짝이 없지만. 이런 "흉악한" 이야기들을 어둡고 추적추적하게 그려내는 대신 유머와 냉소로 살짝 비틀어 가볍고 능청스럽게 끌고 간다. 유쾌하다. 그래서 더 잔인하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빠르게 몰입되고 마는 이야기의 흡인력에는 작가의 기발하고 거침없는 문체도 한몫했음이다. "Lost in translation"까지를 감안한다면, 어쩌면 번역가의 역량일지도. 원서로 읽어낼 수 있었다면 더 유쾌하지 않았을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흣. 벨기에에서 벨기에어를 쓰는지 영어를 쓰는지도 잘 몰랐으면서. 

 

3. 하지만 씁쓸했다.
이 젊은 벨기에 작가의 작품을 읽어가면서 난 한국의 젊은 작가 "박민규"를 떠올렸다. 문체가 주는 즐거움도 그러하거니와, 시종일관 능청맞게 사람을 웃기면서도 막상 푼푼한 마음으로 대놓고 웃지 못하게 만드는 씁쓸함 때문이었다. 박민규가 풀어놓는 "웃기는" 이야기들 속에 녹아있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직시와 냉소. 그 속에서 살아나가는 인간 군상들에 대한 연민과 따뜻한 위로가, 이 책을 읽어나가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전쟁은 진정 "리얼"한 "버라이어티쇼"로 둔갑하여 카메라를 통해 전국의 안방으로 생중계되고,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대형 광고주들의 상품을 적어넣은 재킷을 입고 전투에 투입되는 군인들은 좋은 화면발을 위해 "전투작전"을 여러번 반복해 연출한다. 오로지 시청률과 시청률이 가져다 주는 광고주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미디어자본과, 국민들의 안위와 행복조차 소비 욕구의 정도로 치환시켜 기업들의 이익과 경제 성장 속도를 계산해내는 정부관료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 시공간과 무에 다른가. 특히나 화려한 "전쟁 버라이어티"가 시청률이 떨어지자 새롭게 국제 학술 심포지엄에 올인하는 미디어와 정부를 볼 땐, 한창 G20 정상회의에 올인하여 초컬릿을 손에 쥔 어린 아이마냥 호들갑을 떨고 있는 내 조국 대한민국이 겹쳐졌다. 서글펐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 판타지.

 

4. 그래서 생각해본다.
뻔하디 뻔한 그 질문. 이 시대를 난, 어떻게 살아야하나. 대기업 이마트가 이젠 동네 피자집까지 다 죽인다는 비판에 정용진 신세계 대표는 "소비까지 윤리적으로 해야하나" 했더라마는. 나 아는 한 선배는 대형마트엔 가지 않고 sbs와 kbs는 보지 않는 것으로 이 세상과 불화하려하고, 또 아는 누군가는 폭력적인 육식을 하지 않고 소비를 최소화하는 것으로 "윤리적"으로 살고자 한단다. 그렇다면 나는? 자본주의가 주는 편리함에 너무나도 익숙하고 아찔할 만큼 소비적 인간으로 변해버린 이 내 몸은 어쩌나. 늘 답이 없는 그 질문. 그 엄청난 불행들을 겪어내고도 이 책의 주인공은 "괜찮아, 그래, 별 것 아니야." 하더라만. 그게 일말의 위로가 될까. 나도 참. 소설책 한 권 읽고는 별 생각을 다한다. 괜시리 열적다. 하지만 좋은 책 한 권이 사람의 인생도 바꾼다던데. 읽는 동안 즐거웠고, 읽고 나서 진중한 고민까지 던져준다면 나이스한 것 아닌가. 그래, 이건 좀 위로가 된다.

 

 

m***a 2010.11.1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다른 2개의 세계- 개인과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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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두 개의 세계에 잘 적응했는데 왜 나는 사라져야 하는가? 나는 살면서 크게 관심을 끌 만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비열하다. 지혜란 자연스럽게 타고 나는 게 아니라 수도승처럼 갈고 닦아야 얻어지는 거니까. 사람들은 지혜가 없다.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늑대이다 나는 나를 위해 행동한다. 동생을 사랑한다는 오빠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배고픈 나. 배고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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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두 개의 세계에 잘 적응했는데 왜 나는 사라져야 하는가? 나는 살면서 크게 관심을 끌 만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비열하다. 지혜란 자연스럽게 타고 나는 게 아니라 수도승처럼 갈고 닦아야 얻어지는 거니까. 사람들은 지혜가 없다.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늑대이다 나는 나를 위해 행동한다. 동생을 사랑한다는 오빠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배고픈 나. 배고픔은 모든 것을 이긴다. 배고픔은 어떤 공포보다 큰 공포이기에. 하지만 모든 것은 단순하지가 않다 업과 같이 행동은 끝없는 책임을 요구한다.

 

사랑에 대해서도 그녀와 그의 영혼이 만나는 순간 서로 아귀가 딱 들어 맞은 것 같았다. 이런 사랑부부란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퍼주기만 하다가 지쳐가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 상호교환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는 사이여야 한다고 생각해왔어로 변한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많은 일들이 만드는 결과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누구를 위한 것 인가? 나의 짝사랑은 나만의 초라함으로 끝이 나고..가족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나에게는 정이라는 게 없었다. 나는 죽은 인간이었다. 맹목적인 사랑이 만든 참극들.. 서로를 사랑하며 위한다고 하지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죽은 인간만이 남아 있는 세상.

 

우리는 어떻게 이용 당하나? 초콜릿 바의 기적 그리고 전쟁 속의 사람들.. 보이는 스타들도 계약이라는 무거운 사슬에 얽매여 있다. 그들의 모습이 아니라 광고주들이 원하는 모습 만을 보여줘야 한다. 그들은 꼭두각시. 단지 좀더 많이 누리고, 인기라는 검은 장막에 싸여 버린 철부지들. 침울한 모습만 보여도 고소를 당할 수 있어요 라는 스타, 하지만 이들도 외롭다. 날 만나려고 이렇게 찾아온 사람은 당신 뿐 이예요.  

 

개인은 자본에 매여 반항할 수 없다. 자본을 움직이는 것은 누굴까? 사람이 아니라 집단이다. 개인이 모인 집단은 더 이상의 개인이 아니다. 방송은 선전이다 모든 것을 사게 하라. 소비 이외는 남아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은 시청률이다. 시청률이 낮으면 사라지고, 흡수된다. 살아 남으려는 채널은 시청률 경쟁에서 승리하고 고정 시청자를 확보하라는 자본의 논리. 소비행위가 가능한 모든 생명체의 고혈을 짜내기 위한 작업은 겨울을 나누고 베푸는 계절로 인식시켜 흥청거리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위독한 어린이들에게 보내는 도움의 손길을 프로그램으로 자선단체로 이미지 쇄신을 꿈꾸고.. 하지만 폭발사고로 모든 것이 무너진다. 누가? ? 아이들을 희생하여 살리는 인간쓰레기들.. 하지만 사태를 수습해야 했기에 나에게는 책임이 없다.

 

국가 이익에 무관심한 신문과 반체제 단체의 나의 반수상태의 사진과 기사로 사람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우울해져 소비를 하지 못하게 하여 최악의 전염병 진원지가 된 나. 케이블 방송국 경영진의 명령으로 인한 아이들 방화사건은 수익금을 인도주의 사업에 사용하는 민영채널이 후원하는 반체제 동맹들을 선동하여 모든 책임을 나에게 돌리는 마담과 소녀가수의 폭로 또 버스사건과 어린아이들 사건과 내 얼굴과 이름을 같이 방송하여 나를 그 도시 전체에서 가장 달갑지 않은 인물로 만들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뭐지 

 

내려가는 시청률의 반전을 위한 콘서트 중 공습 등 수 많은 노력이 있지만 전쟁은 밀려났다. 과즙이 풍부한 과일이었던 전쟁은 똥 덩어리로. 전쟁중계방송 독점권은 다른 채널로. 그러나 다른 관심거리는 어디에나 있으니.. 병원 그리고 국제학술심포지움.

 

자본에 움직이는 사회, 채널의 다양화, 시청률 높이기 그리고 광고. 물건을 팔지 못하는 모든 행위를 막아야 한다. 광고는 적극적인 판매행위이다 사게끔 만들어라. 그러기 위한 모든 것을 지배해야 한다.

 

우리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중개하는 CNN이나 알자지라 등 많은 방송 채널을 경험했다. 위성방송을 통한 수많은 채널과 방송국 그리고 그들이 만든 프로그램 그들은 끝없이 생산하고 우리는 보고 믿는다. 왜라는 의문은 사치스러운 질문이다. 그냥 멍하니 보고 받아들여라. 이것을 하라면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라면 그렇게 하면 된다. 단지 우리가 제시한 몇 가지 선택 중에서 하라..

 

나는 식물인간에서 깨어나나. 78 3월의 그날 밤과 직결된 기억은 영원히 떠오르지 않을 거라고 말했지만, 그래 믿고 싶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요.

괜찮아. 심각한 건 전혀 없어. 그래. 별거 아니야

 

양쪽 세계에서의 나. 나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 나는 이 도시전체에서 가장 달갑지 않은 인물이 되었는가? 내가 왜? 내가 무엇을 했는가? 배고픔을 때문에 한 살인과 살기 위한 행동 그리고 사람들을 살린 것이 죄가 되나.

 

 추리소설 같은 전개로 읽는 도중 약간은 혼동을 주었고, 무거운 시작으로 가난, 사랑, 가족 그리고 현대의 삶 속의 개인과 자본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인 것 같다. 티브이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의 비평 없는 소비와 선택은 결국 몰락할 것이다.

p*******t 2010.04.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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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완벽한 2개 국어 사용자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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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생소한 벨기에 작가인 토마 귄지그의 2001년 작. 당시 벨기에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들을 수상하였다고 한다. 전쟁과 대중 문화, 테러 등 여러가지 사회 현상들을 풍자적으로 그려내고 있기는 한데, 개인적으로는 내용보다 제목이 더욱 멋져 보였다. 사실 내용은 아주 특별할 것이 없어 보였으니까... 그런데로 읽을만 하기는 했지만 이 책에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 것을
"어느 완벽한 2개 국어 사용자의 죽음" 내용보기
아주 생소한 벨기에 작가인 토마 귄지그의 2001년 작. 당시 벨기에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들을 수상하였다고 한다. 전쟁과 대중 문화, 테러 등 여러가지 사회 현상들을 풍자적으로 그려내고 있기는 한데, 개인적으로는 내용보다 제목이 더욱 멋져 보였다. 사실 내용은 아주 특별할 것이 없어 보였으니까... 그런데로 읽을만 하기는 했지만 이 책에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 것을 보면 역시 번역에서의 문제가 아닐까는 생각도 해본다. 프랑스어로 읽는다면 또다른 감동이 있을지도... 
c******e 2010.08.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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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풍자적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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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완벽한 2개 국어 사용자의 죽음"이라는 제목만으로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사이에서 발생한 사건을 중심으로 풍자와 해학적 비유를 사용하여 표현한 소설로 알았다. 또한 출판사 리뷰를 대하고는 전쟁에 대한 풍자를 나타낸 소설로 생각하였으나 내용을 접하면서 아무리 제목과 내용의 접점을 찾을려고 하였으나 터키 문학에 익숙하지 못한, 젊은 소설가의 사상을 이해하기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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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완벽한 2개 국어 사용자의 죽음"이라는 제목만으로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사이에서 발생한 사건을 중심으로 풍자와 해학적 비유를 사용하여 표현한 소설로 알았다. 또한 출판사 리뷰를 대하고는 전쟁에 대한 풍자를 나타낸 소설로 생각하였으나 내용을 접하면서 아무리 제목과 내용의 접점을 찾을려고 하였으나 터키 문학에 익숙하지 못한, 젊은 소설가의 사상을 이해하기 힘들었는지 접점을 찾지 못하였다.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첫소설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사실 소설의 내용을 이루는 전쟁이 발생한 지역이 어디인지? 전쟁의 참혹함을 취재하기 위한 방송사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현실을 왜곡하는 가운데 누군가의 음모에 의하여 모든 사실이 드러난다는 내용도 이해하기 힘들었으며, 주인공이 어느 특정인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았고 독자의 판단력을 방해하는 하나의 장애가 많았던 소설이었다(관점의 집중이 되지 않음). 내용은 단순하였으나 촛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줄거리가 어떻게 진행될런지 둥...나에게는 이해함에 있어 어려움이 많았던 소설로 남겨두고 싶다.

 

현대는 세상의 일거수 일투족이 위성을 통하여 전세계에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정보의 홍수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오히려 진실의 왜곡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세상이 된것같다. 이라크전에서 CNN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주목을 받았던 사실은 빠르고 올바른 정보의 제공으로 주목을 받게 됨으로서 유명세를 타고, 날로 영향력을 넓혀 나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본 소설의 내용처럼 진실을 왜곡하는 방송사가 시청률 향상을 위해 실행한 진실의 왜곡이 얼마나 무서운지.. 생존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실행하여 수입을 확대하려는 스폰서와의 관계처럼 우리들의 세상살이가 날로 어려워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이제는 "돈" 이라는 새로운 아이템을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가 도래한것 같다. 



l*****7 2010.04.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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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행위가 가능한 모든 것들의 피를 뽑아내라!
"소비 행위가 가능한 모든 것들의 피를 뽑아내라!" 내용보기
21세기, 우리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살고 있을까요? 최근 우리 사회에서 불고 있는 ‘변화에 대한 열망’‘기득권에 대한 분노’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님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1% 지배 권력’에 대항해 ‘99%’의 권리를 외치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은 참지 않겠다는 분노의 표현입니다.   요 며칠 사이는 그야말로 긴박했습니다. 한미FTA 상정을 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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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우리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살고 있을까요? 최근 우리 사회에서 불고 있는 ‘변화에 대한 열망’‘기득권에 대한 분노’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님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1% 지배 권력’에 대항해 ‘99%’의 권리를 외치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은 참지 않겠다는 분노의 표현입니다.

 

요 며칠 사이는 그야말로 긴박했습니다. 한미FTA 상정을 막기 위한 국민들의 외침이 전국을 흔들었습니다. 이를 애써 외면하고 모른 척한 주류 방송, 언론들의 뻔뻔함과 비양심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것과는 아예 상관없이 국민들은 당당하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전승국이 식민지 국가에게나 강요할 수 있는 불평등한 한미FTA를 당장 집어치우라고요.

 

어쩌다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요. 현 정부와 한나라당은 오만하고 가증스럽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까지 거들먹거리며 한미FTA를 강행하려 합니다. 그렇게 못 죽여서 안달이던, 참여정부의 모든 정책과 성과를 뒤집으며 그들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려 애쓰던, 결국 노무현 대통령마저 죽음으로 몰아갔던 저주의 그 집단이, 이젠 참여정부, 노무현 대통령의 이름까지 팔아가며 외칩니다. 국익을 위한 결단이라고요.

 

하지만 더 이상 국민들은 멍청하지 않았습니다.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한나라당에게 몰표를 주었던 실수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역사상 국민들에게 가장 많은, 다방면의 공부를 하게 해준 이 아닙니까. 덕분에 많은 국민들이 부동산 문제, FTA, 광우병, 4대강, 국방, 금융 등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한나라당, 민주당 의원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돈에 눈이 멀어 최악의 선택을 했던 국민들이 어쩌다가 이렇게 바뀌었을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더 이상 정상적인 삶을 이어갈 수, 또 꿈꿀 수 없을 정도로 사회가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강남 3구를 제외하고 말이죠.

 

경제를 발전시키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이명박은 국민의 1%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이에 불과했습니다. 오직 돈이 된다면, 온 국토를 삽질의 천국으로 만들어도 상관없다는 태도, 미국, 일본에게 우리의 모든 것을 다 갖다 바쳐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일관해 왔습니다. 그렇게 4년을 보냈습니다.

 

어떤 국민이 여기에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떤 이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염치도 양심도 가치관도 철학도 없이, 돈을 위해 모든 것을 비상식으로 돌려놓는 이 끔찍한 현실 속에 누가 참을 수 있었을까요. 결국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스스로 만든 결과일 것입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서울 시장을 한 명 선출하는 데에도 엄청난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국민들입니다. 이제 깨달았을 것입니다. 기득권 세력, 그들의 힘이 얼마나 견고한지. 그들의 이기주의가 얼마나 확고한지.

 

서문이 길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들이, 우리 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모든 모습들이, 바로 이 책에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때문에 이 책은 저자가 말한 것처럼 결코 미래소설일 수 없습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 것입니다.

 

유럽 문단에서 무서운 신인으로 떠오르고 있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오직 돈을 위해 광기에 사로잡혀 그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인간들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고 서글프게 그려냅니다. 전쟁도 사랑도 평화도 모두 돈을 위해 복무해야 하는 현실, 이는 결코 소설 속의 이야기만이 아니었습니다. 현실의 이야기였습니다.

 

주인공 ‘나’는 마피아의 대부이자, 유명가수 ‘짐짐’의 여자 친구를 폭행했다는 이유로, 조직의 협박을 받게 됩니다. 마피아 대부는 그에게 살고 싶다면, 자신의 라이벌 여가수를 암살하라고 말합니다. 여가수 카롤린은 전장을 누비며 병사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여가수를 보호하는 민병대의 일원으로 들어간 주인공은 하지만, 이내 여가수를 사랑하게 되고, 암살 따위는 까맣게 잊게 됩니다. 그리고 거대 광고주와 매스컴이 주도하는 ‘전쟁 버라이어티 쇼’의 일원으로 전쟁을 ‘연출’하게 됩니다. 대기업의 로고가 박힌 군복을 입고 말이죠.

 

전쟁은 철저히 TV프로그램을 위해 조작됩니다. 무수히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죽어가지만, 그런 ‘우울한’ 장면은 화면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시청자들의 소비 욕구를 감퇴시키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오직 밝고 아름답고 말초적 스캔들이 가득한 장면만이 만들어질 뿐입니다.

 

이후 이야기는 엉뚱한 사건들의 연속과 반전으로 이어집니다. 주인공은 과연 카롤린과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요. 과연 마피아 대부 ‘짐짐’은 그를 살려줄까요. 전쟁 쇼는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책의 제목인 ‘완벽한 2개 국어 사용자’는 끝내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바로 ‘완벽한 2개 국어 사용자’입니다. 두 언어, 두 진지, 두 문화 사이에 어정쩡하게 놓인 ‘이중성’의 인간, 즉 회색인간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법도, 신념도, 가치관이나 철학도 없이 다만 생존본능만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군상들. 돈이 된다면 지옥이라도 들어갈 수 있는 이들의 처절한 쟁탈전. 그 사이에서 소모되는 이들은 다만, 말 그대로 소모품일 뿐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주인공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도, 이 세상이 왜 이따위가 되었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회색인간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얼마 전 한나라당의 어떤 의원님께서 공지영 씨의 《도가니》를 두고, 사실을 왜곡했다고, 조사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습니다. 소설의 정의를 사전에서 찾아보셔야 할 분입니다. 초등학교는 나오셨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소설은 언제나 현실의 철저한 반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자 역시 이 세상을 그대로 보여줄 따름입니다. 그리고 책을 통해 무엇을 느끼느냐 역시 독자들의 몫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대로 묵묵히 회색인간으로 살아갈 이들도 있을 것이고, 아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주인공과 같이 반수 상태로, 끝끝내 시스템에 갇힌 채 삶을 다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변화의 물줄기는 주인공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내 자신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내 스스로 의식하고, 내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면, 그 변화에 또 다시 휩쓸려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입니다. 이 소설이 우리에게 소중한 그 무언가를 일깨워주고 있다는 증거가. 능동적 인간은 피곤합니다. 손해 볼 각오도 해야 합니다. 반면 수동적 인간은 편합니다. 대충 분위기에 따라 움직이면 됩니다. 하지만 역사는, 민중은, 내 양심은 그 차이를 정확히 꼬집어 낼 것입니다.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YES마니아 : 로얄 w*******7 2011.11.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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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완벽한 2개 국어 사용자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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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처음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사회...당췌 이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잘 모르겠지만 사회의 분위기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충격적이었다. 출판사 리뷰를 보았고 그리고 한 인간의 죽음을 다루는 이야기여서 가볍게 볼 책은 아닌 무언가 흥미진진한 것이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책은 '상상 그 이상'이라는 말을 정확하게 표현한 책이 아닌가 한다.   어느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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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처음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사회...당췌 이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잘 모르겠지만 사회의 분위기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충격적이었다.

출판사 리뷰를 보았고 그리고 한 인간의 죽음을 다루는 이야기여서 가볍게 볼 책은 아닌 무언가 흥미진진한 것이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책은 '상상 그 이상'이라는 말을 정확하게 표현한 책이 아닌가 한다.

 

어느 완벽한 2개 국어 사용자..

제목으로 봐서 대충 내가 인지 상상했던 내용은 2개 국어를 아주 잘 구사하는 사람이 언어의 본질을 잃고 언어만 잘 구사하다가 결국엔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 그런 얘기일 거라 생각했는데..이 책은 처음 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2개 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고 보면 도입부에 어쩌면 모든 사건의 복선이 되는 한 사람의 죽음이 나온다.

동남아였던가? 에서 한 사람이 주인공이 사는 도시에서 잡부로 일을 하고 체스를 아주 잘 하는데 타인이 보기엔 이 사람이 아주 머리가 좋아서 실제로는 이 사람이 자신의 나라에서는 박사학위도 받았으나 돈 벌러 타국에 와서 고생하는 사람이 아닐까...하고 지례짐작만 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 체스의 왕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으리 만큼 잔인하게 살해된 한 구의 시체로 발견이 되고 그를 아끼던 사람들은 그를 영원히 알아 볼 수 없도록 손가락 첫째 마디를 가위로 잘라버리고 산 속에 파묻어 버린다.

그리고 주인공도 언젠가 그와 같이 될 거라는 공포감과 함께 '살인'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일을 꽤하면서 이야기는 긴장감과 의문점이 고조된다.

 

여기서 이야기는 생각과 눈동자만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나오면서 지난 날을 회생하고 자신이 이전에 무엇을 했는지 지금 왜 이 자리에 있는지 그리고 자신을 간호하는 사람들의 정체모를 경멸을 왜 받아야 하는지를 하나씩 풀어주고 있다.

 

과연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에 거침없는 상상력을 가졌다고 이 작가는 찬사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시대를 살아 온 인간은 정말이지 너무 '인간적이지 못한' 시대를 살아오면서 너무나도 커다란 상처를 받고 또 되물림하고 있을 테니까..

 

슬프디 스픈 얘기를 주인공의 무덤덤한 말투로 이어나가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어쩌면 이것이 사회가 만들려는 인간의 실상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공포스럽다.

 

그래서 부던히도 우리는 고뇌하며 살아야 하는 거구나.

그 어느 것도 그냥은 괜찮을 수 없는 것이구나.

결국 길거리에 버려서 식어버릴 주인공의 몸뚱이도 헛간에 버려졌던 수지의 몸뚱이도 이국에서 살해당한 외국인도..그리고 용맹스럽고 의리가 있지만 결국 싸움에서 맞아 죽은 모크타르도.. 그저 나약한 인간이 타인에 의해 버려진 현실을 보여주기엔 너무 지극히 평범하고 흔한 삶이어서 그 누구도 그들의 죽음에 애도도 없고 기억하는 이도 없기에 더욱 비참한 생.

 

작가는 이들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들의 현실에 무게를 두려 하는 것이 아닐까..

타인의 목숨의 무게는 그 타인이 보는 나의 목숨의 무게와 같음을..

사랑도 전쟁도 친구간의 우정도 감흥없이 지켜보던 주인공의 죽음 역시 타인에게는 너무나 가벼운 존재였다. 그리하여 그를 기억하는 이 없이 '완벽하게' 죽을 수 있었나보다.

b***1 2010.04.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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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완벽한 2개 국어 사용자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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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분류되는 이야기에는 아주 크게, 대충 임의대로 나누자면 2가지로 나눌수 있다. '깊게 깊게 주인공의 내면으로, 의미로 침전하는(줄거리로 보자면 '주인공이 여행을 갔네' 로 요약될만한;;간단할 수도 있는;)' 이야기, 그리고 '탄탄한 스토리구조로 승부하는' 그런 이야기. 이 소설은 후자에 속한다.   이 소설은 '이야기의 힘'을 훌륭하게 갖추었기에 무엇보다 쉽고, 궁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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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로 분류되는 이야기에는 아주 크게, 대충 임의대로 나누자면 2가지로 나눌수 있다. '깊게 깊게 주인공의 내면으로, 의미로 침전하는(줄거리로 보자면 '주인공이 여행을 갔네' 로 요약될만한;;간단할 수도 있는;)' 이야기, 그리고 '탄탄한 스토리구조로 승부하는' 그런 이야기. 이 소설은 후자에 속한다.

 

이 소설은 '이야기의 힘'을 훌륭하게 갖추었기에 무엇보다 쉽고, 궁금하고, 읽고 싶다. 그리고 재밌다. 게다가 말미에는 무언가 쓰린 것이 올라오며 곰곰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까지도 제공한다. 

 

이 소설의 3가지 특징을 꼽아 보면 다음과 같다.

 

1. '죽었다'

소설속에는 많은 죽음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상황을 상상을 해보자면 굉장히 끔찍하고 잔인한 죽음도 많다. 하지만 빠른 리듬의 문장과 '마치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 뉘앙스의 전개,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소설 속 사람들의 무덤함이 오히려 그 어떤 세심한 묘사 보다 더 섬뜩하고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설인 아고타 크리스토퍼의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도 이러한 유사성이 아니었을까 싶다.

 

2. '평범하다'

누군가를 죽이고, 전쟁에 그닥 괴로워하지 않으며 결국 책의 말미에는 엄청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주인공, 그가 전쟁에 나가게 된 원인을 제공한 짐짐슬레이터, 그녀를 사랑했던, 결국 목숨을 구해준 사람을 비열하게 배신한 카롤린. 소설 속 등장하는 사람들은 행동으로 미루어본다면 누구보다 악인에 가깝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나면 '악인들의 작정하고 저지르는 나쁜 일들' 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평범하기에 눈 앞에 닥친 일들을 그저 처리하면서 생겨나는 끔찍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나와도, 세상의 누구와도 닿아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사실 세상의 끔찍한 일들은 '작정하고 저지르는 싸이코 패스'의 일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고민없이 저지르는' 일들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3. '실제와 닿아있다'

전쟁을 한다. 그리고 그 전쟁은 시청률과 연결되어 있다. 어쩌면 전쟁에서 용맹한 건 PD와 촬영팀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전쟁의 한복판에서 때로는 연출도 해가며 (실제로 소설에서는 재구성과 영화 같은 샷과, 연기가 들어간다) '그림'을 얻지 않는가. 군인들은 다국적기업의 옷을 입고 전쟁터를 누빈다. 때로는 전쟁 채널 시청률을 위해 가수와 전쟁영웅의 로맨스를 꾸미기도 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이러한 '비 현실적인' 상황이 판타지구나 여길지도. 하지만, 생각해보자. 걸프전의 오락같았던 중계와 오늘날 수많은 전쟁 장면들, 다소 극적이고 비참하게 보도되는 이미지들 앞에서 오히려 '남의 일'처럼 무심해 질 수 있는 나 같은 '타인들'.

 소설은 '상상도 못할' 일들을 담고 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모든 일들은 사실 현실과 닿아있다. 그래서 소설의 말미에는 속이 쓰리다.

 

토마 권지그. 개인적으로는 처음 접하는 작가 였는데. 다소 귀여운 외모(천재 같아 보이는 곱슬머리!! 까지)

 

한국 여인네와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는 (책의 '독자들에게'를 읽으면 나온다) 이 작가를 앞으로도 더 주목할 것 같다.

 

천연덕스럽게 '상상도 못할 일들'을 쉴새 없이 이어가는 그의 '이야기'의 힘과, 사실 생각해보면 '현실과 닿아있음을 그래서 씁쓸함'을 느끼게 하는 '의미'도 알고 있는 노련하고도 재기넘치는 작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d*****o 2010.04.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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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인간 실존 문제의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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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이말부터 해야겠다. 이번에도 인간의 실존 문제였단 말인가..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일본의 카프카'라 불리는 '아베 고보'의 대표작인 얼굴을 잃고 가면을 통해서 인간의 실존 문제를 다룬 <타인의 얼굴>과 모래 구덩이속에 갇히며 한정된 공간속에서 인간의 실존 문제를 다룬 <모래의 여자>까지 읽고나서.. 접하게된 벨기에 소설이자 젊은 작가 '앙팡 테리블' 토마 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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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이말부터 해야겠다. 이번에도 인간의 실존 문제였단 말인가..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일본의 카프카'라 불리는 '아베 고보'의 대표작인 얼굴을 잃고 가면을 통해서 인간의 실존 문제를 다룬 <타인의 얼굴>과 모래 구덩이속에 갇히며 한정된 공간속에서 인간의 실존 문제를 다룬 <모래의 여자>까지 읽고나서.. 접하게된 벨기에 소설이자 젊은 작가 '앙팡 테리블' 토마 귄지그의 첫 장편소설 <어느 완벽한 2개 국어 사용자의 죽음>..

사실 다 읽고 나서 마지막 뜬금없는 결말에 허탈해하며 도대체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한참을 생각해냈다. 더군다 저 긴 제목이 주는 의미는 아직도 내 머리를 헛갈리게 하고 있는데.. 분명 여기 주인공은 분명 2개 국어 사용자도 아니고 그런 2개 국어 사용자가 나오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저런 제목을 지은 것일까.. 그리고, 도대체 누가 죽었다는 것인지.. 저 제목이 주는 의미는 무엇이고 어떤 내용일까.. 간단히 내용을 소개해 보면 이렇다.

우선, 여기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화자로써 '나'로 대신하며 전면에 나선다. 그러면서 시대는 1970년대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40년전의 상황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 세계는 어찌보면 가상의 세계로 전쟁으로 쇼를 하고 폭력과 자본이 결합돼 사람을 현혹시키는 미디어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 속에서 주인공 '나'는 그 세계에 의지와는 상관없이 즉물적으로 합세하며 삶을 영위하려 한다. 먼저, 그는 초반부터 뜻하지 않게 아니 배고픔에 살인 청탁을 받아 어느 한 사람을 죽인다.

그러면서 살인 청탁을 사주한 사람과 의기투합하게 되고 그의 주변 인물들과 관계 설정이 블랙 유머스럽게 펼쳐진다. 그런데, 주변 인물들이 좀 독특하고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되는게 어찌보면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주변이 아닌 각각의 주인공으로 나름의 삶을 영위한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꼬여만간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건에 휘말리고 사람이 죽어나가는등.. 불행의 연속이다. 바로 화자인 '나'가 그런 케이스로 또 다시 살인 청탁을 받아 전쟁쇼를 감행하는 미디어에 경호 군인으로 잠입해서 인기 상승중인 인기 여가수 '카롤린'을 죽여야 하는 상황.. 참 어이없지만 그에게는 목숨이 달린 문제였다.

처음 그를 배고픔에서 구해주며 청탁 살해를 지시한 '모크타르' 형님과 함께 말이다. 그런데, 그의 여동생 '수지'는 이미 매춘등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상태고.. 이렇게 중반이후
그 거대 미디어가 주관하는 전쟁쇼에 이들이 경호 군인으로 참관하며 티브이 쇼처럼 중계되는 전쟁과 시청률 쟁탈을 위해 벌이는 가짜 전투까지 펼져지며 우리시대 미디어의 헛된 욕망을 바로 투영시켜 그렸다.

결국, 주인공 '나'는 자신의 임무대로 인기 여가수 '카롤린'을 죽였을까.. 아니면 그녀와 함께 꿈같은 사랑을 했을까.. 또 '나'를 위시한 주변 인물들은 미디어가 주관한 세계에서 어떻게들 살아남았을까.. 궁금하지만 읽을 독자분들을 위해서 남겨둔다. 이렇게 소설은 앞 표지의 그림처럼 어느 군주가 M16 소총을 들고 있듯이 미디어가 주관하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속에 내몰린 한 인간의 생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묵직하면서 진중하게 전달하는게 아니라.. 잊을만하면 육두문자를 써가며 자조 섞인 조롱과 해학, 때로는 우수에 찬 블랙 유머를 남발하며 읽은이로 하여금 웃음의 또다른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70년생 젊은 작가 '귄지그식'의 입담이 한 몫 한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그렇게 블랙 유머만이 점철된 이야기는 아니다. 때로는 진중한 맛을 뿌리며 특히 중반 이후에는 주인공 '나'가 전쟁쇼를 수행하는 중에 폭발 사고로 의식 불명 상태에서 군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때부터 바로 '나'의 의식 세계를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키며 의식의 저편으로 그의 문제의식을 안내하고 있다.
이런 문제 의식의 이야기 속에는 화자 '나'뿐만이 아니라 그의 주변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도 펼쳐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같이 사랑에 목말라 하지만 그런 사랑은 어찌보면 자기도취적 발호의 허울일뿐 주고 베푸는 사랑이 아닌 어찌보면 상품화된 사랑에 놓인 존재들로서 바로 여기 미디어로 전쟁 쇼를 하듯이 양태는 같아 보인다.

암튼, 읽는 내내 스피드하고 블랙 유머스런 내용에 코웃음을 치며 재밌게 읽어내려간 소설이었는데 중반 이후에는 초반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급우울함이 암습해져오고.. 결국 '나'라는 인물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제목처럼 두 언어, 두 문화, 미디어 안의 세상과 밖의 세상 두 진지에 사이에 놓여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회색인간'의 자화상으로서..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소속당해져 사는 아무런 인식과 희망도 없이.. 그런 저런 인간으로서 반항하지 않고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방어만이 있을뿐.. 오직 흐릿한 기억만을 간직한채 살아가는 이방인은 아니었을까.. 그것은 마치 어찌보면 세상을 관조하듯 보이지만 그만의 삶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여기 마지막 대사처럼 말이다.
"괜찮아. 심각할 것 전혀 없어. 그래, 별거 아니야."

결국, 이 책 제목의 키포인트인 '2개 국어 사용자'는 아마도 위의 해석처럼 독특한 인간 실존 문제 특히 어디에도 속하지못한 자조적인 '회색인간'의 자화상을 그려낸 이야기라 본다. 하지만 제목 자체가 아직도 주는 그 의문스러움은 여러가지 함축성과 다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며.. 그것은 작품을 읽는 이로 하여금 또 다른 자신만의 세계로 인도하는 작가의 역량이자 교묘하게 덫을 놓은 장치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런 서평에는 답이 없듯이 나중에 읽어 보실 분들에게 이 책을 감히 권하며..

 

여기 주인공 화자인 '나'가 추구했던 삶은 어떤 것이었는지 자문해 보시길 바랍니다.

r*****2 2010.04.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