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원 시절,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던 생각은 하나였다. '도대체 이 책이 단 한 사람의 작품이란 말인가?' 책에서 다루는 내용의 방대함과 기가 질릴 정도의 어마어마한 참고문헌 직접 구한 사진과 삽화 자료에서 볼수 있는 치밀함까지. 어느 하나 고개가 절로 숙여질 뿐이다. 저자 조셉 니덤은 영국 켐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 생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중에, 켐브리지에서 공부하는 외국 유학생들 중에 많은 중국학생들이 매우 뛰어난 데 비해 정작 중국의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점을 이상히 여겨, 그 원인을 규명해보고자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한다. 중국의 과학기술을 알기 위해 중국어를, 중국인의 의식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중국의 역사와 철학을. 게다가, 니덤은 직접 중국으로 건너가 2차대전과 국공합작의 격전지 속에서, 각종 고문헌과 유물을 찾아내어 수집하여 하나하나 정리해나갔다. 그렇게 해서 모은 것이 나중에 오늘날 동아시아 과학사 박물관을 설립하게 된다. 니덤은 중국의 과학관을 서양의 기계론적 결정론과 대비하여 종합적 유기체적 비결정론의 성격으로 규정하고 있다. 기계론은 그리이스 철학의 플라톤의 이원론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이에 근거하여 아랍에서 수학이 발달하게 된다. 이것은 유기체적인 일원론에 바탕을 둔 중국에서는 수학이 발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니덤의 관점은 동양과 서양을 대표하는 양대 문명(그리이스 로마문명과 아랍문명)의 차이를 명확하게 설명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설득력있는 이론으로 보인다. 비단 중국학뿐만 아니라, 한국학 그리고 나아가 동양학을 위해, 인문계와 이공계 대학생 모두, 반드시 읽어야 할 도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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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맡아 세미나를 진행한지도 벌써 두 학기가 지나갔다. 그동안 이 책을 주 텍스트로 삼아 발췌하고 토론하고, 또 각 장마다 부교제를 선정해서 별도의 세미나를 진행하다보니, 이 책하고는 정이 많이 들었다. 아직도 2권을 끝내지 못한 상태이니, 앞으로 두 학기 정도는 더해야 할 것 같아, 아찔하다.
처음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1학년 때, 교수님의 추천에서였다. 그러나 그때는 겉 표지에서 풍겨나오는 삭막함 때문에 근접하려들지 않았는데, 2학년 가을 학기, 전공학회를 창설하면서 우연과 필연의 연속으로 이 책을 다시 접하게 되었다. 유교철학과 특성상, 박물학적인 이런 부류의 책을 자주 접할 기회도 없이, 발췌자를 선별해서 세미나를 진행해보니,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대학원 박사과정 선배께서 참관인으로 참석하시는 세미나를 첫 대면부터 엉망으로 몰고갔으니, 뒷탈이야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가능할 것이다. 두어달 동안 세권을 모두 마스터하기로 했던 계획은 뜬구름마냥 날아가 버리고, 우리들은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기초지식은 물론, 철학의 기초지식까지 의심받는 가운데 모든 세미나의 방향을 물밑작업으로 전향해야만 했다. 빌려보던 책도 모두 강제 구입하고, 부교제에 대한 세미나 또한 선배들의 감시(?)아래 진행되고 말았다.
책을 읽으며 가장 아쉬웠던 점은, 우리 나라 번역본은 고작 3권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또 그 번역 상태도 그리 믿을만한 수준이 안된다는 교수님의 지적을 들었던 터라, 아쉬움은 더 크다.하지만 이만한 책을 그리 쉽게 접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학문하는 자세라고 해야할까, 무수히 많은 자료들을 자신의 관점에 따라 정리하고 요약하고 나열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나라 인문학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 과연, 어느 누구가 이만한 책을 쓸 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어 뒷맛이 씁쓸했다.
외국에서 거의 인용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인문학 서적들, 그 내용이 그 내용인 편집력과 시각디자인의 결정체인 책 나부랭이들을 바라보며, 우린 아직도 멀었구나 라는 한탄조의 애잔한 가락이 흘러나돈다. 그러나 전공자로서 한탄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하고 있는 학회가 그 밑거름이 되어, 계속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무언가 새로운 진전과 시도가 생겨날 거라 믿고 있다. 그것이 내 바램이고, 내가 학회를 하고 있는 이유이다. [인상깊은구절] 20명의 전문가가 그들의 일생을 걸고 연구해도 겨우 어느 정도의 인상을 주는 데 불과할 광범위한 연구 대상 앞에는 이 책의 저술이라는 작업도, 대상에 대한 정찰 행동이라는 결과에 지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
| [중국의 과학과 문명]은 전통 중국사회의 과학과 기술의 모든 분야를 망라해서 그 지식을 수집 정리 분석 평가해놓고 있다. 그러나 방대한 양의 지식과 정보의 밑바탕에는 중국 전통과학과 과학 일반에 대한 니담 자신의 뚜렷한 입장이 깔려있다. 니담은 고대부터 13,14세기까지는 중국이 과학과 기술분야에서 서양에 비해 앞서 있었음을 강조한다. 그는 또한 서양의 근대과학이 철저하게 분석적, 기계론적, 결정론적, 인과율적 성격을 지닌데 반해서 중국전통과학은 종합적, 유기체적, 비결정론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보면, 이런 면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그는 중국전통과학이 근대과학이라는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고 현대과학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믿는다. 초기의 우월성과 현대과학으로의 발전가능성을 중국전통과학이 실현시키지 못한 이유에 대해 니담은 중국 전통과학 내부에서가 아니라 주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측면들에서 찾고 있다.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유교사상에 바탕을 둔 중국의 관료제도이다. 유교 자체가 자연세계에 별 관심을 지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상류 지식층이 관료가 되기만을 원함으로써 과학과 기술을 포함한 다른 분야들로 인재가 유입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도교는 자연에 관한 관심도 더 많았고 그 사상도 과학과 훨씬 잘 부합되었는데 유교관료제에 억눌려 과학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햇다고 니담은 생각한다. 니담의 견해는 물론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자신의 견해를 뒷바침하기 위한 지나친 단순화나 왜곡이 자주 발견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대저서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이 저서는 중국에 풍부한 과학과 기술의 전통이 존재했음을 뚜렷히 인식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