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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군주 영조를 만든 시간들 - 영조, 임금이 되기까지 _ 스토리매니악 우리 조선사에 '영조' 라는 인물은 확고한 위치를 갖고 있다. 그의 업적에 대해서도, 그의 임금 등극에 대해서도, 그의 아들과 관련한 이야기로서도, 그의 긴 재위 기간 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영조라는 인물을 둘러싸고 있다. '탕평군주' 라는 정치적 수사와 더불어 '사도' 라는 비운의 단어가 꼬리표처럼 따라 붙고, 미천한 어미의 신분으로 자신을 둘러싼 격랑을 견뎌야 했던 조선의 제21대 왕. 그를 수식하는 단어로 영조라는 임금을 판단하고 있는 우리들은 영조라는 임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집중적으로 찾아보는 책이 이 책 <영조, 임금이 되기까지>다. 제목에도 나와있듯, 이 책은 영조가 임금에 오른 이후에 일어난 다양한 일들에 대해서는 크게 언급하지 않는다. 영조가 임금이 되기 전, 미천한 신분의 어미에게서 태어나 '연잉군' 이 되어 생활했던 시절, 또 왕세제가 되어 생활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다. 즉 임금이 되기 전, 영조라는 인물이 어떤 성장과정을 거쳐왔는지 살펴봄으로써, 그가 임금이 되어 보여주었던 모습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보통 영조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나뉜다. 탕평정치를 바탕으로 정국의 안정을 도모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혁을 추진하여 성취한 명군으로 평가 받기도 하고, 좋고 싫음의 극단적인 표명으로 주위 사람을 힘들게 하고 종국엔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냉혹한 인물로 평가 받기도 한다. 이처럼 극단적인 그에 대한 평가는 후대에 이르러 많은 이야기를 낳는게 사실이다. 영조라는 인물을 중심에든 다양한 창작물이 존재하고, 이는 영조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부각시키기도 한다. 어떻게 한 사람의 인물이 이런 극단적인 평가를 지니게 되었을까? 무엇이 그를 이렇게 극단적인 평가를 받도록 만들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그 해답을 영조의 군주 이전의 시절에서 찾는 것이다. 연잉군과 왕세제 시절의 그의 모습들을 들여다 봄으로써 우리가 알고 있는 영조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 내용을 보면 영조라는 인물이 얼마나 특이한 이력을 지녔고, 아슬아슬한 삶을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요즘말로 하면 드라마틱한 인생이랄까? 조선의 다른 임금들과는 다른 그의 성장 배경이 52년간 이어진 그의 국정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어려운 시기에 자신만의 철학을 꼿꼿이 지켜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영조라는 인물에 대한 단면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들이 입체적으로 바뀌어 이해되는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조라는 인물이 임금이 된 이후의 인물뿐이다보니 그런면이 더 있지 않나 싶다. 때문에 그의 새로운 시절을 알게 되는 과정을 통해 영조라는 인물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다. 역사란 보통 결과에 치중해 보게 된다. 결과적으로 나타는 무엇을 놓고 그 인물을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결과 이전의 과정을 보면, 결과가 더욱 깊게 이해되곤 한다. 어쩌면 우리의 역사 교육이 우리의 교육관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책이 주는 깨달음이 적지 않다. 52년 영조의 인생에 가려진 27년이라는 영조의 또 다른 인생은, 영조라는 인물에 대한 새로운 감흥을 갖게 한다. 극단에 놓인 영조라는 인물의 평가 그 가운데에, 또 다른 영조라는 인물을 발견한 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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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에 '전례가 없다' 라는 표현이 있다. 정부에 대한민국 국민이 민원을 제기할 때 그들이 거부할 때 흔히 쓰는 말로, 공무원들의
융통성 없는 모습을 빗대어 표현할 때 이렇게 쓰여진다. 과거 조선 시대에도 이렇게 전례가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건 조선 제
19대 왕 숙종 때이며, 그의 후계자는 바로 숙종과 희대의 악녀 장희빈 사이에 태어난 경종과 그의 이복 동생 연잉군이다. 숙종의
왕비 인현왕후에게 후사가 없었고, 후궁 장희빈의 총애 속에서 경종은 태어났으며, 경종이 왕이 되는 것에 대해 노론의 반발이
있었다.그건 남인 계열 장희빈 측근의 권력 독점으로 인해 폐단이 생겨났으며, 장희빈의 폐위 이후 노론과 소론 사이에 권력 다툼이
일어나게 된다. 경종은 숙종의 왕위 후계자였지만 병약하였으며, 그럼으로서 다음 후사를 결정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바로
숙종과 무수리로 알려진 숙빈 최씨 사이에 태어난 연잉궁, 즉 조선 21대 왕 영조이다. 여기서 전례가 없는 상황이란 경종이
왕세제로 낙점 되었고, 다음 왕으로 연잉군이 낙점되면서, 연잉군을 어떻게 부르냐이다. 그의 위호를 왕세자할 것인지, 아니면
왕세제로 부를 것인지에 대한 문제들, 논란이 분분한 가운데, 연잉군을 왕세제로 부르기로 결정 내리게 된다.이런 일련의 과정은 과거
주선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왕은 대통령으로 바뀌었지만, 그 안에 우리는 여전히 비슷한 형태로 정치를 하고, 절차를 더 중시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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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사도라는 영화가 개봉했었다. 천만관객을 넘은 왕의 남자의 감독인 이준익 감독의 영화였다. 송강호가 영조로, 유아인이 사도세자로 분해 그들의 갈등을 보여주었다. 영화는 관객의 감정과 몰입을 높이기 위해 여러가지 장치를 사용한다. 역사적인 사실을 소재로 한다해도 픽션을 섞는 것이 대표적이다. 고증을 거쳤다고 하더라도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역사에 좀 더 관심을 보일 관객이 있다면 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영조라는 조선의 임금을 상당히 깊게 파고든 책이다.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고 죽이고, 손자인 정조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은, 사실 역대 한반도의 역사에서 그리 크나큰 일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한반도를 넘어 세계사에서도 이같은 일은 숱하게 일어났으니 말이다. 비록 피를 나눈 가족이라고 해도 권력 앞에서는 무의미한 관계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영조하면 탕평책과 사도세자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있다면 정실이 아닌 미천한 출신의 무수리였던 그의 어머니에 대한 컴플렉스가 평생을 따라다녔다는 것도. 많은 임금들이 그러했든, 즉위 초반에는 선정을 하거나, 평균 정도의 정치 실력을 보여주었다. 말년에 가서는 그간 형성해왔던 여러가지 것들을 자기 손으로 무너뜨리기도 재건하기도 하는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도 보여주면서. 이 책은 정치 10단인 영조의 파란만장한 업적들을 나열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영조가 왜 그런 평생을 보냈는가에 대해 집중하는 책이다. 흔히 정신분석학에서 쓰이는 과거로의 회귀로써, 그의 왕세자 시절에 받았던 영향이 평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한 사람의 유년기가 어떠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 전체가 좌지우지되는 만큼, 이같은 시도는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했던 인물이었던 영조, 수많은 조선의 임금 중에서 꼭 영조만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만큼 오래 집권한 이는 그 전이나 후에도 없었다. 조선의 절대 권력자로써 살아가기 위해서 애쓴 그의 왕세자 시절의 흔적들이 담겨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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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과 더불어서 조선시대 최고의 군주로 꼽히는 인물이 바로 영조대왕입니다. 우리에게는 탕평의 군주로 널리 알려져 있고, 각종 영화나 매체를 통해서 자주 회자되는 인물입니다. 재위기간 동안 안정적인 국정운영으로 조선후기 새로운 중흥기를 열었고, 왕권강화와 민생안정에 주력한 왕,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항상 노력한 분입니다. 어떻게 하면 국가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어떤 제도와 정책이 필요한지, 고심한 분입니다. 각종 한국사 관련 시험에도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며, 그 중요도는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가 아는 영조, 임금 재위기간을 중점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물론 재위기간도 길었고, 업적도 많아서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다른 관점으로 영조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임금이 되기 전까지의 과정을 풀이하면서, 영조가 왜 성군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 사도세자에 대한 냉정함으로 인물평이 나뉘는 시점에서 몰랐던 부분에 대한 언급과 정보제공으로 독자들에게 다양한 관점과 해석을 내리게 할 것입니다. 보통 모든 위인이나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이 있으면 과도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이를 두고 사실에 근거한 평가가 중요하며, 배울 점을 반드시 계승하고 기리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요즘과 같은 시국에 필요한 리더쉽, 국가 지도자가 왜 중요한 지에 대한 평가를 영조대왕을 통해서 우리는 배울 수 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영조를 드려다 보면, 왜 그가 자신을 낮추고 끊임없이 학문연구와 왕권강화에 집착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왕들은 장자계승과 적자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강했습니다. 서자는 눈에 보이는 차별이 존재했고, 모든 것이 왕을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래도 왕조시대였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지배적인 평가가 있지만, 매번 성군만이 등장하면 문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타락한 왕인 연산군이나 어린 왕의 등장은 왕권을 약화시켰고, 외척이나 친인척이 모든 국정을 좌우하는 국정농단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서 자질에 대한 검증이 요구되었고, 적장자가 아니라도, 뛰어난 재목이라면 왕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사실 영조는 이러한 외부변수가 크게 작용하면서 임금이 되었습니다. 스스로도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기회는 다가왔고,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기대치가 없었던 점이 어린 시절 영조를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백성들과 서스름없이 어울리면서 그들의 고통을 눈으로 보았고, 몸으로 체감했습니다. 학문적으로 알던 나라, 백성에 대해서 과소평가했던 위정자들과는 달랐고, 그는 이런 경험을 통해서 많은 부분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출신은 미비했지만, 이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자신만의 정책과 신념으로 극복했던 것입니다. 많은 제도의 허점이나 문제점, 관리의 부정과 국가가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재발견이 이뤄졌고, 이는 조선을 발전시키는 토대가 된 것입니다. 조선시대 왕들이 궁궐에 갇혀서 눈과 귀를 닫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조선후기로 갈수록 이런 모습은 강해집니다. 그래서 항상 권력쟁탈에만 여념이 없었고, 국운도 기울기 시작합니다. 특히 영조가 집권하기 전, 조선은 외척들의 득세, 당파간의 갈등으로 국가가 많이 힘든 시기였고, 이를 본 영조는 인재에 대한 탕평책, 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친위군 양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지원, 상업적인 성과와 과학, 역사, 국방 등 국가 중요사항에 대한 점검이 이뤄지게 됩니다. 이를 통해서 대를 이어온 당쟁을 줄이면서, 자신의 권위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임금이 되기 전의 경험이 없었다면, 영조도 다른 임금과 비슷한 평범한 왕이 되었을 겁니다. 지금과 비교해도 이론으로 아는 것과 실무적인 경험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낳습니다. 물론 개인사적으로 아들에 대한 냉정함으로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국정운영과 관리는 탁월했던 개혁의 군주입니다. 영조의 이런 정책은 조신이라는 나라가 재기의 기회를 얻게 되었고, 왕조의 수명이 조금더 연장되는 효과로도 이어집니다. 그만큼 얼마나 직접보고 느끼는 것이 중요한 지를 이 책에서는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동안 업적만을 강조했던 영조가 아닌, 그의 정치철학과 신념, 왕으로서 성군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점까지, 전체적으로 잘 서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영조대왕, 이 책을 통해서 접해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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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사도' 라는 영화가 흥행했던 적이 있었다. 영조하면 같이 떠오르는 것이 단연 사도세자일 것이고 그 다음이 탕평책이 아닐까 싶다. 미천한 무수리의 신분에서 태어난 것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지만 공부하기를 좋아했기에 사도세자의 왕세자답지 못한 행동이 신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영조에게는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도세자가 당쟁의 희생물이라고는 하지만 반면에 왕위를 물려주는데 있어 갈대처럼 흔들리는 영조의 모습을 보며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과 쉬이 흔들리는 인간적인 모습 두 면을 모두 영화를 통해 볼 수 있어 왕의 모습과 인간적인 모습 모두를 잘 표현한 영화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책은 영화에서 보았던 그런 영조의 성격과 행동들이 어떻게 형성되어있는가란 의문이 풀리게 만드는 책인 느낌이 들었다.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출신성분이나 영조의 업적등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왕세자에 오르게 되고 그 시간들을 견디면서 영조로 형성되어진 그 기간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어 왕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고민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역사를 배우며 왕이 실시했던 것들을 우선적으로 배우고 넘어가며 왕으로서가 아닌 그 이면에 대한 내용까지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지나칠 때가 많은데 왕과 한 사람이 동일시여겨지며 인간적인 면모까지 보여졌기에 색다르게 다가와졌다. 더불어 왕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쉽지 않았던 길을 보여주고 있어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영조란 인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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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사상 왕의 이복형제의 자격으로 왕위에 오른 임금은 '영조'가 최초였다. 적장자가 왕위를 계승한다는 원칙이 지켜진 예는 다섯 차례에 불과했지만 대부분 후궁의 소생이더라도 왕세자의 과정을 거쳐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영조'는 특이한 케이스로 왕위에 올랐기에 다른 임금과 차별화된 부분이 많았다.
첫째, 그는 사가(궁궐 밖)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숙종 임금의 총애를 받기는 했지만 왕자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둘째, 그는 자력으로 왕위에 오를 수 없었기때문에 누군가의 힘을 얻어야 했다. 재위 기간 내내 탕평정치를 폈던 이유도 어느 누구에게만 손을 들어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셋째, 모친에 대한 강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책에는 영조의 어머기가 무수리였다고 표현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급 궁녀'였다. 무수리는 궁궐 출입이 자유로왔고 남편이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비천한 신분이었기 때문에 '무수리'로 표현했을 뿐이었지 분명히 내명부에 소속된 '하급 궁녀'였다.
'영조'의 이름은 이금(李昑)이었다. 금(昑)은 '밝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당시 임금의 본명은 일반적으로 잘 쓰지 않는 글자, 즉 벽자(僻字)를 썼다. 공식 문서를 쓸 때 임금의 이름 글자를 함부로 쓰면 안 되었다. 그 글자를 피해 음이 같거나 뜻이 통하는 글자로 바꿔 써야 했다. 이를 피휘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임금의 본명 글자를 쓰더라도 그 위에 노란 종이나 헝겊으로 가렸다.
왕자로 있을 때는 '연잉군'으로 불리웠다. 그는 특별한 소양이 있었는데 예술, 그 중에서 그림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연잉군을 왕세제로 지명하는 일은 김창집, 이건명 등 노론의 핵심 인물들이 관여했다. 그들은 한밤중에 급하게 경종 임금을 압박하듯 추진했다고 한다. 자연스럽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경종 임금이 본격적으로 왕권을 행사하기 전에 방어책을 세우기 위한 전략이었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왕위 승계자가 되고 임금이 되는 것이 아니다. 권력은 나누는 것이 아니다. 권력의 속성은 독점하려 하는 것이다." 2인자가 권력의 방해자가 된다고 생각되었을 경우 가차 없이 제거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왕자들의 목숨이 그리 길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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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에 대해서는 상당히 무지하다. 다른분야에는 관심도 많고 몇번 보면 기억도 잘 하는데 그래서 역알못의 입장에서 무엇 하나라도 좀 알아보려고 이 책을 읽었다 민심 안정을 위해 다른왕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검소한 왕이었다. 호화스런 궁이나 의복 식사등을 멀리했고 물론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게한 것으로 유명하고 안좋은 평을 가지고 있는데 왜 그런일을 하게 되었는지 조선시대라 하면 현재와는 크게 다른 신분제 사회에서 왕족은 일반 사람들과 현격히 차이가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고 이런 영조의 출생과 성장과정 그리고 왕위에 오르는 모습까지를 이책에서는 다루고 있습니다 잘 모르는 분야인 데다가 내용도 쉽지는 않아어려웠지만 한번쯤 진지하게 읽어볼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