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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이 그림쟁이라는 사실은 마치, 장콕도나 헤르만 헤세가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 만큼 반가웠다.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중에서도 가장 반가웠다. 장콕도나 헤세의 시를 음미하고 있으면 그림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아큐정전>과 그림이 동시에 떠오른 적은 없었기에 더 의외였고, 그래서 더 반가웠다. 삽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던, 실제로 자기가 삽화를 직접 그려보려고도 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루이스 캐롤처럼, 작가 중에는 글과 그림의 어울림이나, 시각적 상상에 민감한 사람들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작가들의 글이 주는 특유의 풍자적 분위기가 좋다. 그런데 막상 책을 보니, 우리가 흔히 '그림'이라고 말하는 그런 종류의 이미지보다는 전체적으로 현대의 '디자인' 영역에 더 근접하는 그림들을 루쉰은 그렸다. 이 책에서도 그의 그림을 국화, 전각, 평면 디자인, 선묘, 책과 잡지의 디자인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우리가 흔히 동양화로 인식할 만한 국화와 도장처럼 찍을 수 있게 조각한 전각은 단 한 점씩만 소개되고 있고 대다수 작품은 디자인이다. 이 책으로 느껴지는 루쉰은 소위 멀티플레이어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 옛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랬던 것처럼! 의학을 공부했던 그가 작가가 된 것이 뭐 그리 별난 일은 아닐 수 있지만, 번역이나 역사, 급기야 디자인에까지 관심을 두고 활동 영역을 넓힌 것이 예삿 경우는 아니지 않을까? 게다가 그 모든 분야에서 비범성을 드러냈다면? 루쉰의 디자인 감각은 매우 전위적이고 현대적이었다. 노신이 1911년 자신이 직접 엮은 실물 표본책 안에 그려 넣었다는 불새와 부엉이는 지금 바로 상품화해도 아무런 거리감을 못 느낄 정도로 현대적이었다. 특징적이되, 매우 단순화되었고 군더더기 없는 캐릭터 내지 마스코트로 손색 없었다. 물론 상대적으로 휘장과 해부도는, 적어도 내게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고, 우리가 다이어리를 다채롭게 채우거나 시화를 그리는 것처럼 그에게는 그림을 곁들이는 취미가 있었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정도에 그치는 것들도 꽤 있었다. 사실 루쉰의 그림 작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잡지와 책 디자인이다. 로고나 삽화, 데코레이션 등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작업한 것들을 살펴보면서, 루쉰의 정신의 현대성에 새삼스럽게 놀랐다. 특히 그의 진보성에. 잡지를 만드는 사람의 특징은 대중과의 소통에 많은 의미를 두고, 그것을 통해 자신이나 사회의 변화를 꾀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루쉰은 대중 선도적 인물이었고, 가능한 한 최첨단의 커뮤니테이션 채널을 이용하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그건 상대적으로 간접적인 방법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다른 작가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이었다. 아마 이분이 지금 태어나 활동했더라면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의 총아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루쉰 그림을 테마로 한 '이야기가 있는 사전' 같은 느낌으로 구성돼 있다. 그야말로 루쉰의 그림에 관한 백과사전으로 기능하며, 온갖 시각적, 텍스트적 정보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루쉰이라는 인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 의외성을 제공한다. 참 역동적인 인물이었구나, 하는. 말하자면 그는 요즘으로 치면 감각적인 그래픽 디자이너이기도 했던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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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때문에 루쉰의 미술적 재능과 예술론에 대한 책인줄 알았다. 그래서 초반부를 읽는 내내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이 책은 그의 대단한 그림 실력이나 대단한 예술론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늦잠을 자느라 학교에 지각하고 선생님의 꾸중을 들으면서 책상에 이를 조早를 칼로 새겨넣는 학생의 머리통이 있었다.
1920-30년대에는 중국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해 내는 작업의 조언을 위해 중국의 옛 문 모양, 손오공의 몽둥이, 무인들의 화창을 원고지나 편지글 한켠에 빠른 펜으로 그려 넣어 설명하는 중국 소설의 애호가가 있었다. 그리고 저잣거리에서 연인에게 멍청한 간식이나 건네는 숫기없는 청년이 서 있다.
유럽의 목판화나 삽화 도안들을 섬세하게 베껴내어 수채화로 색을 입혀 수집하던 그는, 아름다운 책을 '중국인들을 위해서' 만들고자 했다. 새로운 시대에서 군중들을 이끈다는 자의식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그의 자의식이 별나거나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좋은 러시아나 독일의 소설을 꼼꼼히 번역하여 중국의 독자들과 나누길 원했고, 좌익 문인들의 단체에서 활동했지만 '진정한 프롤레타리아는 없는 죄를 만들어 무고한 이를 법의 테두리에 가둘 리 없다. (234)'고 하면서 자신의 '한가함에 대한 글'을 설명했다. 우리 역사 못지 않게 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그는 책을 만들 때면, 값을 낮추더라도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자 했고, 강렬하면서 간단한 표지를 선호했고, 목판화의 소개를 위해 체홉의 소설을 이용할만큼 융통성도 있었다. 그림이나 글 어느 하나가 우월한 위치에 있기 보다는 책으로 묶여 독자를 만날 때면 하나로 녹아 조화를 이루게 했다.
그의 책들이 금서가 되고 탄압을 받기도 했지만, 금지된 제목인 '위자유서'는 라틴어로 표기하고 그 아래 '불삼불사서'(不三不四書 - 얼토당토않는 글이라는 비판)라고 써서 책을 묶어내기도한, 그는 대인배라 칭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답답한 외침' 과 '한담'들을 미리 알지 못해 겉표지 도안으로만으로 만나면서도 그의 짧은 인생(56세에 병사했다)동안 남은 숱한 글에대해 존경이 샘솟게 된다. 이래서, 책은 표지로도 판단하게 되는가보다. 그의 순한듯, 하지만 뼈있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달이 밝고 바람이 맑으니 이렇게 좋은 밤이 또 어디 있을까?" 좋다. 우아한 풍류의 극치이니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하지만 역시 풍월에 대해 언급하면서 "달은 어두워 사람들의 밤을 죽이고, 바람은 높아 하늘에 불을 지르네"라고 노래한다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다? 역시 한 수의 고시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풍월을 논하는 것도 결국은 혼란을 얘기하려는 것이지만, 결코 '살인과 방화'를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풍월을 많이 얘기한다'는 것을 '국사를 논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건 분명한 오해다." (2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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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큐정전을 읽으면서 루쉰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내가 아는 그는 그렇게 글을 쓰는 작가였다. 헌데 그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고 한다. 뜻밖의 사실에 다소 놀라움이 생기지만, 그만큼 궁금해져 버리기도 한다. 그림쟁이 루쉰이라니....
예술가들에게서 부러운 점은 그들의 뛰어난 재능이지만 질투나게도 그들은 언제나 하나의 재능만이 아니라 서너가지는 더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 있다. 화가이면서 글을 쓰기도 했던 살바도르 달리도 그렇고, 문인이면서 구름이 있는 그림을 즐겨 그렸던 헤세도 그러하다. 그리고 여기 문인인 루쉰도 그림을 그렸다지 않은가.
글을 쓰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 관찰력이 좋아서 그런 것일까 그림에도 유난히 많은 관심들을 가지는 것 같다. 아니면 글을 쓰는 그 감성으로 자연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그들이기 때문일까. 글자로 남겨지든 그림으로 남겨지든 그들은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보다.
루쉰, 어릴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미술 훈련도 받은 경력이 있다고 책에 나와 있다. 중국 판화운동의 선구자이기도 했다니 미술에 관심이 지극히 깊기는 했나 보다. 쓸적 해본 것이 아니라 배우기까지 했다니 문인 루쉰의 유명도에 가려져서 그러지 그림쟁이 루쉰의 실력도 이만저만이 아닌 듯 하다.
이 책에는 루쉰의 작품들이라고 밝혀진 것들로만 채워져 있는데, 국화 작품과 전각, 평면 디자인과 선묘, 책과 잡지의 표지 디자인이 실려 있다. 작품과 관련된 기록들과 해설까지 쓰여져 있어, 루쉰의 작품들을 이해하는 일에 한 몫 단단히 해주고 있다. 루쉰이 식물표본책 안에 그려 넣은 불새 그림은 불새가 아닌 꿀벌이라는 주장이 분분한데, 불새인지 꿀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림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해부학 강의를 듣고 노트에 그린 해부도도 실려 있으며, 구입한 골동품을 그린 그림도 있다.
루쉰이 책과 잡지의 겉과 속 표지를 디자인했다는 사실도 놀라웠는데, 그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진다. 산문과 시를 모은 문집인 [마음의 탐험]표지는 육조시대 사람들의 분묘 문에 새겨진 그림을 취하여 표지에 담았다고 한다. 용과 구름, 요괴까지 그려져 있는 이 표지는 다른 심플한 것들에 비해 더 기억에 남는다.
문인 루쉰으로만 알고 있었던 그를, 그의 그림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던 이 시간은 몰랐던 부분에 대한 새로운 루쉰을 만날 수 있게 해주어서 든든한 포만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루쉰, 이제는 문인으로만이 아닌 그림쟁이 루쉰도 기억 속에 자리잡게되는 순간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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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루쉰 ‘왜 신은 나를 낳았고, 모차르트를 낳았을까?’ 살리에르의 탄식이다. 와전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천재를 바라보는 둔재들의 마음을 극적으로 묘사한 표현이다. 시대가 다르다면 비교대상이 되지 않으니 안심할 만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한 분야에 뛰어난 천재로 알려진 사람이 다른 분야에서도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놀람, 질투, 존경심, 부러움 등의 다양한 관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피아노를 잘 연주했다는 이야기가 그의 천재성을 더 높게 평가하게 하거나, 독재자 히틀러가 그림을 전공하려고 했을 정도로 잘 그렸다는 이야기는 ‘어 정말?’이라는 생각이 들 게 하는 경우처럼. 뛰어난 문학가인 루쉰이 그림에서도 큰 진전을 이루었다는 것도 다르지 않다. 그의 미술은 조국애와 관련되어 있다. 그렇다고 루쉰이 미술을 전업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 그가 살던 1900년을 전후한 중국은 봉건을 벗어나 근대화가 절실한 시대였다. 개인의 재능을 위해서 살수도 있지만 루쉰은 애국심과 민중에 대한 사랑을 위해 자기의 재능을 불살랐다. <아Q정전>에서 보듯이 민중이 봉건성과 잘못된 관습을 깨어나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인문 책자를 만들기 위한 열정을 보냈다. 글을 쓰고, 편집하고, 제작하고, 배포하고 힘겨운 일정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표지 디자인이었다. “우리는 미수을 배우는 만큼 이 분야에서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훈련하여, 앞으로 새로운 문학예술 서적의 디자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에게 는 디자인은 새로운 문학예술을 중국에 도입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루쉰이 그린 ‘명화’들
루쉰의 여러 그림 중의 초상화가 있다. 루쉰의 고향 마을에 있던 청렴함으로 알려진 관리들이다. 어려서 인물을 주로 그렸던 루쉰은 자신의 애국․애향의 정서를 담아 모범이 되는 선현들을 가느다란 선으로 묘사하는 ‘선묘’로 인물의 생동감 넘치는 표정과 온화한 인상을 전해준다. 그는 또 코끼리를 그리기를 즐겨했다. 단순한 선으로 활력이 넘치는 코끼리의 웅비를 보여주는 듯 한 그 그림은 마치 공룡 같은 중국이 역동적인 움직임에 대한 열망을 담은 듯 하다. 북경대학 교위는 北(북)과 大(대)를 형상화 한 것인데, 대가 마치 사람의 모양을 담아 그의 인본주의가 새겨들은 느낌을 준다. 움직이는 저승사자를 그린 활무상은 ‘귀신이면서도 사람 같고, 이치에 맞으면서도 감정이 풍부하며, 귀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형상으로 빚어내고 있다. 그의 평면 디자인 부엉이는 지혜의 상징인 부엉이를 빈 여백으로 배움을, 활달한 머리 깃 모양으로 활발한 도전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림을 통해 아Q정전의 작가 루쉰을 만나다 루쉰이 그림을 잘 그렸다는 것은 루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들어볼 수 있는 일이지만 그의 그림을 중심으로 보는 것은 색다른 맛이다. 평전에 들어간 삽화를 스쳐갈 때의 느낌과 중심에 놓고 보는 느낌이 하늘과 땅 차이 같다. 무위사에 들러 불상만 보고 온 사람은 그 뒤의 벽화가 뛰어난 작품임을 놓치는 것처럼, 그의 문학세계의 맛을 느껴본 사람이 그림을 보지 않는다면 앞면만 보고 ‘좋군!’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글이든 그림이든 그의 조국애와 근대화의 열망이 일관되게 숨 쉬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은 그에 대해 한발 짝 더 다가가도록 돕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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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신하면 '아Q정전'을 떠올랐었는데, 그가 그림도 그렸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작가가 아닌 미술가의 입장에서의 루쉰을 바라본다는 것이 꽤 흥미로웠거든요. 종종 작가들이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때론 자신의 책의 삽화를 맡는것도 보아왔었지만, 이렇게 그것을 중점을 두어 이야기하는 것을 처음 접해서인것 같습니다. 사실 처음 그림쟁이라는 말에 약간 기대를 해서인지, 책을 펼쳤을때, 평소 제가 알고 있던 미술과는 약간의 거리감에 살짝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루쉰의 작품을 보면 옛 문인들을 떠올리면서 서화가 생각나게 하더군요. 서화 역시 다양한 미술의 또 한 분야라는 것을 인정하고 보니 좀 더 책 읽기에 수월했습니다. 때론 너무 고지식한 태도는 무언가 알아가는 길에 큰 걸림돌이 되는것 같네요. 루쉰이 중국인이어서인지, 책 속의 그림을 보면 동양적인 매력을 접하게 될것입니다. 단순하면서 여백의 미를 느끼게 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소개된 루쉰의 작품 중에 기호적인 표현인 부엉이가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암튼, 루쉰이 작가이자 화가이면서 해부학과 설계, 책 디자인등에 다양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도 놀라웠어요. 여러방면으로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네요.^^ 이 책은 루쉰의 작품 하나 하나에 대한 설명과 참고자료. 필자의 해석과 루쉰과 주변인들의 메모를 통해 루쉰의 생활상을 엿볼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습니다. 순차적인 설명으로 인해 자칫 어렵게 느껴질수 있었던 그의 작품 세계를 좀 더 쉽고 흥미를 가질수 있게 해주었던 점이 이 책의 장점이었던것 같습니다. 약간 아쉬움이 있다면 일반적으로 이런류의 책은 하드커버로 접했던거에 비해 하드커버가 아니었다는 점이예요. 하드커버가 아님에도 겉커버가 있는데, 커버를 한지를 연상케하는 점은 좋았지만, 하늘거려서 커버로서의 기능을 잘 수행하지 못할것 같습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책값이 좀 비싼감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 이 책을 읽는 동안 이외수님이 떠올랐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외수님이 그림에 더 소질이 있으신것 같네요.^^ 좀 더 이외수님의 그림이 더 그림 같은 느낌이랄까^^ 언젠가 이외수님도 이런 책을 누군가 펴주시겠지요. (물론, 이외수님의 글도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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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1881-1936) 중류 정도의 지주 집안에서 출생했다. 난징의 광로학당 재학 중엄복(嚴復) 번역에 의한 서양 근대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졸업 후 일본에 유학, 도호쿠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일본의 침략 행위에 분개하지 않는 중국의 정신을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에, 의학도의 길을 포기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발간을 계획했던 잡지는 유산되었으나 다른 잡지에 〈파악성론〉(破惡聲論), 〈문화편지론〉(文化偏至論), 〈마라시역설〉(魔羅詩力說) 등 강렬한 개성과 반항정신으로써 민중을 각성시키는 ‘정신계의 전사(戰士)’의 출현을 호소하는 문장을 썼고, 또한 동부유럽 여러 나라의 단편 번역 《역외소설집》(域外小說集)을 아우인 저우쭤런(周作人)과 공역으로 출판했다. 귀국 후 향리에서 교원생활을 하였으며 신해혁명에 커다란 기대를 걸고 국민정부의 교육부원으로서 참가하여 베이징으로 옮겼다. 그러나 혁명 후의 현실에 실망, 위안스카이정부에 대한 반동도 있어 잠시 침묵의 생활을 보냈다. 문학혁명이 개시되자 잡감(雜感)이라고 불리는 예리한 문학 사회 비판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광인일기〉,〈아큐정전〉(阿Q正傳) 등 중국사회와 민중의 현실을 그린 소설을 발표, 중국 근대문학의 출발점을 마련했다. 그의 사상·문학은 현실에 대한 투철한 인식과 민중에 대한 절실한 관심에 차 있다. 그는 반봉건·반식민지적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구미를 좇는 근대주의와는 대치되는 입장에 서지만, 동시에 그는 외국의 사상과 문화의 치밀하고 정확한 번역과 소개를 중시했다. - 위키피아 교과서에서 듣고, 때때로 읽은 책에서 한번씩 등장했던 그분. 한번 만나고 싶다. 해서 읽은 책은 기껏 ‘아큐정전’뿐이었다. 다른 책은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기억속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루쉰은 그의 필명이라고 한다. 본명은 잘 모르겠다. 현실개혁의 방법으로 ‘의학’보다는 ‘문학’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아래 의학유학에서 귀국 후 본국에서 글로 활동했다는 이야기다. 그분은 현학적이거나 유혹적인 수사에 치중하는 일부 지식인들과 달랐다고 한다. 대중과 호흡하려하고 그들과 같은 말을 하려했다. 이 책은 그의 그림들을 모아놓았다. 그가 참여했던 작업 정리한 메모들 따로 그린 그림과 디자인들. 글쟁이로 알려진 그의 다른 면모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다. 소나무그림인 국화 한점과 전각, 평면디자인, 선묘, 책과 잡지 디자인으로 크게 나뉜다. 각 시대별로 그림을 통해서 드러나는 그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결국, 방법의 차이이지 대중과 두루 소통하려했던 그의 마음이 읽혀진다. 예술적 표출이 마음의 정화와 소통의 방법으로 택할 수 있었던 작업들과 그 배경과 해설이 이어진다. 당시의 그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결국 드는 생각은 ‘루쉰 평전을 읽어야 겠다’. 궁금해진다. 격동의 시기의 한 가운데서 활동한 지식인이 당대의 민중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에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지식인인가.
이영희선생의 평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그분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나를 이끈다. 이 글은 더욱 부채질 한다. 다시, 소설과 평전을 읽는 것으로 내 머릿속을 정리해 봐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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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하면 '아Q정전'밖에 딱히 떠오르지 않는 나로서는 '그림쟁이, 루쉰'이라는 제목이 무슨 신기루라도 되는양 의외로 다가왔다. '그림쟁이'라는 수식어에 솔직히 지극히 '보편적인' 그림을 기대하며 받아든 책은 생각보다 두께며 부피감이 묵직하였다. 자연히 제법 많은 그림을 기대하며 책장을 펼쳐들었다.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다 문학의 중요성을 절감하여 문예 활동을 시작했다는 루쉰에 대한 앞표지 날개에 적힌 소개글에는 엄연히 '중국의 소설가이자 사상가'로만 적혀있음에 더욱 루쉰의 남겼을 그림에 호기심이 더욱 꿈틀거렸다.
하지만, 가볍게 휘리릭~ 넘겨본 책장마다 언뜻언뜻 보이는 것은 '보편적인' 그림이라하기엔 좀 무엇한(?) 작품들이 좀 작다싶은 크기로 실려있고 그에 얽힌 루쉰의 기록과 배경(해설)이 주석처럼 달려있었다.
30년 넘게 루쉰 연구에 몰두해 온 루쉰 연구자인 엮은이 왕시룽은 <이 책을 엮게 된 인연>글을 통해 루쉰이 어려서부터 그림을 매우 좋아했으며 훌륭한 미술 훈련을 받은 경력이 있음과 소년 시절에 습자지 같은 종이로 된 명공지에 수상소설을 모사하기도 하였음을 언급하고 있다. 또 남경에서 과학기술을 배울 때 그림을 접하게 되었으며 일본에서 의학을 전공하면서 해부도를 그리게 된 것이 그의 회화 실력을 향상시키는 미술훈련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더불어, 그가 루쉰을 연구하며 발견한 100여 점이 넘는 미술작품들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들을 정선하여 애호가들에게 보여주려 하고자 한다는 이 책의 집필 목적과 함께, 각각 한 점뿐인 국화(國畵)와 전각을 비롯하여 평면디자인과 선묘, 책과 잡지의 디자인 부문으로 분류하여 담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기대했던 그림과는 다소 다른 루쉰의 작품 하나하나를 생경한(미술에) 시선으로 하나하나 보면서 주석같은 루쉰의 이야기와 관련기록과 해설까지 읽으려니 새로운 재미가 느껴졌다. 이를테면, 당시 중국인들의 의식을 고취하고자 하는 루쉰의 문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엿볼 수 있다고나 할까.......
선현들에 관한 자료는 물론 골동품과 책도 구입한 후 꼼꼼하게 기록으로 남길 때도 상세한 그림을 덧붙이고, 또 중국작품을 번역하는 일본인 친구의 질문에 대한 편지에도 설명과 함께 이해를 돕는 그림이 곳곳에 있는 것만 보아도 루쉰이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는 일기장에 자신이 구입한 집의 구조를 그려놓기도 하고 또 자신의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신이 근무하게 된 대학이며 묵게 된 방의 위치까지 그려보내기도 하였다.
사적이라 할 수 있는 일기며 편지글에 담긴 소소한 그림은 사실 그저 설명이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려놓은 것에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생동감이 넘친다' '간결하고도 우아한 풍취를 자아낸다'는 등의 해설은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지도 하였다. (그림에 문외한인 솔직한 나의 느낌이다)
'책과 잡지 디자인'에 관련한 것들은 대부분 표지의 그림과 글씨로 되어 있는데 역시나 나에게는 미술 작품으로보다는 그가 출판한 번역집들과 문집 등 다양한 저술 활동을 하였다는 것이 더 눈에 들어왔다. 아쉽게도 표지의 작품들에 대한 화려한(?) 해설에는 그다지 공감을 느끼지 못하였지만, 문학 활동에 대한 루쉰의 열정만큼은 제대로 느끼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문득 '그림쟁이, 루쉰'이라는 제목은 그림을 잘 그리는다는 의미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즐겨 그렸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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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으로 너무도 유명한(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지 않은 혹은 읽지 못한-_-) 루쉰이 그림쟁이였다는 말에 혹해서 덥썩 집어들었다. 그리고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건 그의 웅장하고 거룩한 이력보다는 예술서라는 '그림'에 구미가 당겼음을 밝힌다. 그만큼 이 책을 처음 접할 때는 보여지는 그의 '그림'이 궁금했다. 대체 루쉰은 어떤 그림으로 그의 사상을 '보여'줬을까...였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펼쳐지는 그의 그림은 내 예상을 살짝 비껴가고 있었다.
'보여'지는 그림보다는 책 귀퉁이에 또는 편지의 모서리에 상대방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려진 그림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림보다는 그 그림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지지 뭔가? 편지 모서리에 그려진 그림은 어떤 책의 일부를 설명하고 있는 그림일까? "그림쟁이, 루쉰"이 읽었던 또는 번역했던 그 책의 그 부분은 어디쯤일까?.....
이렇게 궁금증이 커질 때 쯤, 그 궁금증에 기름 퍼붓는 장이 나오는데, "책과 잡지 디자인"이다. 루쉰이 번역한 책과 번역하려고 했던 책과 표지 디자인을 한 책들과 그럼에도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책들이 수북이 쌓여가는 장이었다. 과연! 루쉰은 책을 사랑하고 아끼는 지성이었다!(당연한 거겠지만.) 책의 표지디자인은 물론 번역, 서체, 발행부수와 가격까지 꼼꼼하게 따지는 그의 섬세함을 읽으면 "저도 그래요^^"라고 미소짓게 된다. 예를 들어, "이 책은 제판과 인쇄, 장정 등이 모두 휼륭하다고 생각하네. 단지 조이가 너무 뻣뻣하다는 것이 작은 결점일세. 또한 양면으로 인쇄하다 보니, 보는 이들의 시각을 혼돈시킬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흠이네. 하지만 정가를 낮춰야 했기 때문에 달리 방법이 없었네. M씨의 목판화는 흑백이 분명하긴 하지만 배우기가 매우 어렵네. 하지만 참고할 만한 점이 아주 많아 목판화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커다란 도움이 되리라 믿어 마지않네. 그러나 일반 독자들에게는 크게 환영받기 어려울 것 같네. - 조가벽에게(1933년 10월 8일) -" 이 책이 어떤 책일까요? ㅋㅋ
특히 루쉰은 판화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지막 "케테 콜비츠 판화 선집의 표지와 속표지"를 보면 그가 자비 출판을 할 만큼 콜비츠의 판화와 널리 알리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투쟁하는 예술가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법일까?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콜비츠를 알리고 싶었던 그는 광고문구에 이렇게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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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tip 1. 작심하고 그림(!)을 상상했다면 실망하게 될 것이다.(내가 그랬다-_-)
까칠한 tip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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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내 문학지식의 한계를 절실히 느꼈으며 무턱대고 욕심을 부린 자신을 원망했다. 그랬다. 내게 루쉰은 그저 한 작가로만 인식될 뿐 그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그러니 그저 텍스트를 읽는 것일 뿐 느낌이 가미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중국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아느냐면 그것도 아니니 더욱 안개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만약 내가 루쉰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면 이 책은 훨씬 가치 있는 책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작가가 아니라 사상가이며 많은 수의 책 표지를 직접 디자인할 정도로 상당한 그림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매력적인가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난 그냥 대단한 사람이구나만 느낄 뿐이다. 만약 내가 관심있고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상당한 기쁨을 맛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기에 이 책은 루쉰을 잘 아는 사람이 읽으면 나와는 전혀 다른 감동을 받을 듯싶다. 그래서 내가 욕심이 과했다는 얘기다.
그렇더라도 이번 기회에 루쉰에 대해 조금 아는 계기가 되었다. 북경대학 교휘를 직접 만들었는데 지금도 그것을 약간 바꿔서 사용한다니 그의 디자인 솜씨도 대단하다. 단순히 디자인을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담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유효한 것일 게다. 국휘의 경우 그림만 봐서는 솔직히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설명을 보고나서야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상당부분은 책과 잡지 디자인에 대한 설명인데 이 또한 무슨 책인지, 무슨 의미인지 와 닿지 않아 그저 글자만 읽고 말았다. 그림을 아는 것도 아니요, 문학을 아는 것도 아니요, 게다가 중국역사를 아는 것도 아니어서 이번 책은 내게 참 난해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책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내 문제다. 그러기에 루쉰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상당히 보물 같은 책이겠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뜬구름 같은 책이었다. 이 기회에 루쉰 평전이라도 좀 읽어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