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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출발점으로 삼을 부끄러움의 자기성찰 거의 대부분을 책을 통해 세상과 만나온 사람에게 책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저자에 대한 정보는 매우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된다. 하지만 때론 저자에 대한 정보 없이 책 제목에 이끌려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이 책 ‘부끄러움의 깊이’가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 저자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제목이 이끌어 가는 주제에 저절로 관심 갖게 만들었다. 이 책을 선택한 첫 번째 이유다.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은 자신을 중심에 두고 안과 밖으로 행하는 소심하면서도 때론 적극적인 감정과 의지의 발현이다. 밖으로 향하는 마음과 안으로 파고드는 마음 사이의 간극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방점은 내면으로의 ‘성찰’에 둔다. 이 책은 바로 그 부끄러움에 대한 깊이를 이야기 한다. 타인이나 스스로를 만나는 자신의 감정과 의지에 대해 어떤 성찰의 과정을 가졌기에 부끄러움에 대한 '깊이'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제목에 이어 책을 내 저자 김명인에 대한 궁금증이 책을 선택한 두 번째 이유다. 저자 김명인은 어떤 사람일까? 문학평론가이자 인하대학교 교수라고 명함 속 직함보다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하는 대한 궁금증이 앞선다. “혁명가의 삶을 살고자 했으나 얼마 못 가 한갓 문필가의 삶이 왔고, 또 가난한 문필가의 삶조차 그대로 지키지 못하고 어정어정 대학교수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이야기에서 그 행보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글을 읽어가는 동안 글 속에 투영된 사회와 자신을 바라보는 감정과 의지에서 짐작한 바가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기에 책을 마칠 때 쯤 그의 다른 저작들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문학평론가, 대학교수이면서도 적극적으로 대중과 소통하고자 하는 모습은 1990년대부터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쓴 글을 통해 짐작된다. 이 책은 그 수백 편의 산문 가운데 70여 편을 엄선해 '부끄러움의 깊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엮은 것이라고 한다. “다들 저마다 제 몫의 삶을 사는 것이라 누군가에게는 후안무치의 뻔뻔스러움이 삶의 방법이 되어버리듯, 나는 어쩌다 보니 부끄러움을 내 삶의 방편으로 삼게 되었다 할까? 둘 다 원래의 삶이 소외된 결과라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 그러니 좀 뻔뻔스럽지만, 나는 부끄러움을 내 등록상표로 써먹기로 한다.” 서문에 실린 저자의 이와 같은 자기고백은 '부끄러움의 깊이'에 실린 한편 한편의 글 속에 녹아 있는 김명인의 자기성찰을 바탕으로 한 글이 가지는 설득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설득력의 핵심은 ‘부끄러움'과 '성찰'에 있다. ‘나이듦, 자기정체성, 문학, 혁명, 페미니즘’ 등에 관한 저자의 글이나 신영복 선생을 추모하는 글, 신경숙 표절 사건을 비판하는 글, 메갈리아 논쟁에 관한 글 등에서 보이는 저자의 시각이 공감을 얻고 힘을 가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한 번 글의 힘에 대해 생각한다. 글이 힘을 얻으려면 그 글이 독자들의 감정과 의지에 공감을 불러와 글을 읽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기성찰과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 그리고 글을 쓴 저자의 일상의 행보가 얼마나 설득력을 가지는가에 달렸다고 봐도 그리 큰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런 시각으로 김명인의 '부끄러움의 깊이'를 읽는다면 큰 설득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한 사회구성원이 집단적 트라우마를 겪을 정도로 부끄러움이 많은 시대를 살지만 그 이면에는 부끄러움을 잊은 사람 또한 너무나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시대에 ‘부끄러움’을 키워드로 함께 살아갈 공동체 사회의 현주소를 깊이 있게 성찰한 기회를 제공해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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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명상을 가능하게 해주는 좋은 책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바로 <<부끄러움의 깊이>>!!!
제목만큼 '깊은' 사색을 하게 해주는 시간을 가능하게 해주는 선물 같은 책이라서 더욱 이 책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인생에 대해서 마주할 수 있는 사색거리들이 많고 그 사색을 위한 시간에 대해서도 어떻게 마련하고 시작할 수 있을까를 고민을 하게 되는데요~ 이 책으로 인해서 그러한 생각들이 전환되는 기분이 들어서 더욱 특별하다는 생각으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생각들에 대해서, 그 깊이감이라는 의미들에 대해서도 즐겁게 마주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주어져서 더욱 좋았다는 말을 하게 되네요~ 그래서 이 책은 깊은 숨, 긴 호흡으로 읽어나가면서 생각들을 전환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움의 깊이>>라는 책이 던져 주는 시대에 대한 고민들~ 특히, 민주열사로 익히 알고 있지만 자세히 제대로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고 필요할~ '전태일'에 대한 이야기를 '전태일 단상'이라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고 역사적인 이야기와 그로 인한 고민에 대해서 '억압적 희망, 습관적 절망'이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해주는 부분이 정말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다른 분들도 아마 그 즈음에 손길이 머물면서 더 오래오래 곱씹으며 독서하시지 않을까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또 <<부끄러움의 깊이>>에서 '궁극의 희생'이라는 제목으러 번져나오는 특별한 역사적 속내들에 대한 조우~ 또한 힘겨울지라도 '이 불편함에서 다시 시작하지'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들려주며 마무리하는 내용 또한 마음을 새롭게 다잡게 해주니 <<부끄러움의 깊이>>라는 이야기 자체를 끝마무리하는 기분에서 더욱 감동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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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부끄러움의 깊이]는 제목에서부터 깊은 호감을 느끼게 되어서 더욱 큰 끌림을 마주하면서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빨간소금' 출판사에서 펴낸 이 책 [부끄러움의 깊이]가 던져주는 많은 메시지, 그리고 깊은 메시지들에 그대로 빠져드는 기분으로 독서할 수 있어서 어떤 책보다 몰입도가 높았던 책으로 오래오래 기억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부끄러움의 깊이]의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작가 '김명인'님의 긴긴 시대를 아우르며 그의 삶과 그에 대한 사색을 두루두루 살펴볼 수 있는 불굴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을 건데요~ 저자의 인생에서 글쓰기 40여 년의 내용들이 담겨진 '산문집'으로 이전부터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에 올렸던 여러 산문들 가운데 엄선해서 엮었다고 할 수 있다고 소개됩니다.
'산문집' [부끄러움의 깊이]에서 단연 곱씹어보게 되는 '부끄러움', 그리고 '성찰'!!! 진정 이 책은 제목에 시선도 마음도 그렇게 머물게 되는 것은 아마도 매력적인 제목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몇 번을 입으로도 마음 속으로도 되뇌이게 되는 [부끄러움의 깊이]!!!
나는 과연 [부끄러움의 깊이]에 어떻게 다가설 수 있을까? 라면서 나의 이야기로까지 끌어안아서 적용해보는 시간~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열고서 이야기를 음미하게 되는 책이 많지는 않은데요, 이 책은 나의 이야기로 오래오래 머물면서 생각해 보게 되니 더욱 좋았습니다.
특히 '부끄러운 이야기'라고 밝히면서 자신의 '산문집'을 전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이 책의 서두가 마음을 오래오래 잡아둡니다. 틈틈이 설레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해주는 이 책의 묘미에 빠져들게 되어서 더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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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과 뻔뻔함은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둘은 서로를 향해 어떤 얼굴을 보일까. 어느 쪽에 서게 되든, 나는 화가 날 것 같다. 부끄러울 때 만나는 뻔뻔함에도 화가 나고, 뻔뻔해질 때 만나는 부끄러움에도 화가 나고.
부끄러운 속을 드러내 놓는 일은 많은 용기를 갖고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잘못을 저지른 일, 잘못 생각한 일, 잘못 대처한 일 등등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스스로에게도 가능하면 숨기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걸 말이나 글로 나타내려면-노래나 그림이나 춤도 아니고-스스로에게 어지간한 자신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떤 비난을 받아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도량을 가진 사람으로서. 책은 무겁게 읽혔다. 이렇게 풀어 놓으시다니, 숨긴 채로는 견딜 수 없으셨던 모양이라고, 차라리 밖으로 내비치는 게 더 나으리라 믿고는 부끄럽지만 고백하겠다는 글을 읽고 있으려니 작가의 마음 일부가 전해 오면서 불편해지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덩달아 반성하는 일도 얼마나 자주 겪는 일이었던가. 게다가 미처 반성하지 못했던 부분을 건드렸다 싶을 때는 씁쓸한 낭패감을 느끼게 되는 일도 있다. 내가 왜 아직 이러고 있는가, 나는 왜 좀 더 나아지지 못한 채로 머물러 있는가, 나는 괜찮아지고 있기는 한가...... 어느 시대를 건너게 되더라도 그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이 있을 것이다. 능력이 넉넉하면 넉넉한 만큼, 능력이 모자라면 가지고 있는 만큼 발휘하면서 사회에 기여하기도 하고 사는 보람도 느끼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 테다. 모르면 몰라서 못하고 사는 것이겠지만, 안다면 아는 만큼 깨달은 만큼 베풀고 참여하고 누려야 할 일이라고 머리로는 수없이 확인하는데 게으른 의지는 따르지 못할 때가 많다. 가끔 이런 책으로 마음을 깨우는 게 고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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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서문, 그 첫 단어로 작가는 ‘과공비례(過恭非禮)’라는 사자성어를 가져왔다. ‘공손이나 겸양도 지나치면 오히려 예의가 아니라는 말이다.’라고 친절히 설명한다. 오래전 젊은 시절 겸손도 지나치면 오만이 된다, 라며 나를 꾸짖던 선배가 있었던 것 같다.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말이 이 말이었구나, 이제야 알게 되었다. 작가가 제목에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이유도 이 서문을 통해 어림짐작할 수 있다.
김명인 / 부끄러움의 깊이 / 빨간소금 / 284쪽 / 2017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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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01 이제는 아름다운 길을 가면 되겠지요 ― 부끄러움의 깊이 김명인 글 빨간소금 펴냄, 2017.3.24. 12000원 인하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일하는 김명인 님은 산문책 《부끄러움의 깊이》(빨간소금,2017)를 선보입니다. 문학비평을 하는 교수로서 쓴 비평이 아닌, 이녁 삶을 돌아보면서 하루하루가 부끄러운 발자국이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책 첫머리는 눈이 자꾸 어두워져서 눈에 칼을 댄 이야기로 엽니다. 이윽고 글쓴이 스스로 겉하고 속이 다르다고 하는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글쓴이는 말로는 으레 페미니스트라고 외친다지만 정작 집안일이나 아이키우기는 곁님한테 떠넘긴 고등룸펜일 뿐이라고 밝히기도 합니다. 이러다가 1987년 어느 날 일을 적습니다. 1987년 2월 12일 새벽 5시쯤으로 기억한다. 장인, 장모, 아내, 아이와 함께 사는 집으로 또 그들이 나를 찾아왔다. 겨울 새벽, 철로 된 아파트 현관문을 나직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아름다울 리 없었다. 먼저 잠을 깬 것은 아내였다. 곧이어 나도 잠을 깼고 영문을 모르는 장인 장모님도 방문을 열고 나오셨다. (27쪽) 윤상원은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궁극의 희생이란 아마도 가장 싱싱한 몸을, 가장 살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잔인하게 떼어내 바치는 것이리라. (61쪽) 1987년은 전두환이라고 하는 군사독재가 무너지던 해이지만, 군사독재는 그냥 무너지지 않았어요. 돌아보면 한 줌조차 안 될 권력이지만, 이들은 사람들이 뜻을 모아 새 나라를 바라는 물결을 두들겨패거나 짓밟으려고 했습니다. 악다구니라고 할까요. 평화가 아닌 독재로 권력을 움켜쥔 이들은 으레 국가보안법을 내세워 민주를 짓밟았고, 군홧발은 사회가 기울어지도록 내몰았어요. 나는 그냥 좌파이기 때문이다. 좌파란 본질적으로 의심하는 자이지만, 동시에 회색 지대에 머물러 있는 자가 아니라 흑과 백 사이를 격렬하게 부딪쳐 나가는 자이다. (74쪽) 이 나라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민주나 평화를 바라거나 찾거나 이룬 힘은 지식인이나 정치인이나 운동가한테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수수한 사람들한테서 커다란 바다 같은 힘이 솟구쳤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물결도, 이승만 독재자를 밀어낸 물결도, 박정희 독재자를 거꾸러뜨리려는 물결도, 전두환·노태우·김영삼에 이르는 독재자를 몰아내려는 물결도, 모두 가장 밑바닥에서 샘솟았어요. 장갑차로 여중생을 깔아뭉갠 미군을 쫓아내자는 물결도, 숱한 막삽질과 시커먼 짓을 끌어내리자고 하는 물결도, 하나같이 수수한 사람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일어났습니다. 물결은 좌파도 우파도 아닙니다. 촛불은 왼쪽도 오른쪽도 아닙니다. 물결은 언제나 물결 그대로이고, 촛불은 늘 촛불 그대로입니다. 사람들 스스로 어느 쪽에도 서지 않으면서 제 결을 깨달아서 똑똑히 마주할 수 있던 때에 비로소 슬기로운 눈을 틔웠고, 이때에 물결이 일어날 수 있었어요. 진정 위대한 것은 이처럼 밑바닥으로부터, 주변으로부터, 경계로부터 서서히 움터 나와 비로소 어느 날 갑자기 터지듯 나타난다. (174쪽) 이제 신경숙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이 없어 보인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어쨌거나 모습을 드러내어 ‘결과적 표절’이라는 답변을 하고 사과를 했으니 미흡하게 느끼더라도 어쩌겠는가. 그것은 그의 몫이고 자기 그릇 크기만큼의 결론일 테니 말이다. (249쪽) 이명박이나 박근혜를 나무라기는 매우 쉽습니다. 눈에 아주 쉽게 뜨이는 잘잘못이거든요. 신경숙 같은 이들을 꾸짖기도 아주 쉽습니다. 너무 뻔한 잘잘못이에요. 그런데 우리 삶은 잘잘못을 따져서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잘잘못을 따지기만 해서는 늘 그 자리에서 맴돕니다. 나라를 바꾸려는 물결은 잘잘못을 따지려는 마음이 아니라고 느껴요. 엄청난 촛불 물결은 아름다움을 바라고 사랑스러움을 꿈꾸며 스스로 거듭나려는 몸짓이라고 느껴요. 이것을 때려눕히거나 저것을 쓰러드린다고 해서 우리 스스로 달라지지 않아요.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하려는가’를 차분히 생각하면서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적에 비로소 달라져요. 밥 먹을 때도 춥고 메말라 장갑을 찾는다. 키보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덕분에 더욱 게을러진다. 설거지는 물론 행주 빠는 일이 무서워 밥 먹은 식탁을 닦아내는 일도 하지 않는다. 부쩍 입맛에 맞는 사과나 감, 배 같은 과일을 먹고 싶어도 맨손으로 한 번 씻어내고 깎는 게 무서워 아내 없이는 찾아 먹지도 못한다. (93쪽) 내 몸이 추운 날, 나도 춥지만 곁님도 춥습니다. 내 몸이 추운 날, 나도 춥지만 아이들도 춥습니다. 내 몸이 춥다면 내가 사는 집이 따뜻하도록 바꾸어 내려는 몸짓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 설거지를 하고, 누가 능금을 깎는지는 대수롭지 않아요. 다만, 말로는 페미니스트라고 외치면서 정작 집안일이나 아이키우기를 하나도 안 한다면, 허울뿐인 앵무새 좌파가 되겠지요. 이런 얘기를 구태여 글로 쓸 까닭 없이 스스로 삶을 바꾸고 살림을 바꿀 노릇이에요. 촛불을 든 사람들은 그저 촛불을 들었지, 이런 토를 달거나 저런 핑계를 붙이지 않았어요. 말없이 촛불을 들면서 스스로 새로운 사람으로 서겠노라 하고 하나하나 모였어요. 이러면서 이 힘이 바로 스스로를 바꾸고 나라를 바꾸는 물결로 되었고요. 《부끄러움의 깊이》를 썼다면, 이제 이런 글쓰기는 여기에서 끝내고, 다음에는 ‘손수 살림하는 하루’하고 ‘손수 흙을 만지는 하루’로 거듭나는 삶이 되기를 빕니다. 그리고 이런 새 하루는 구태여 글로 안 남겨도 됩니다. 몸으로 살아내면 넉넉합니다. “아름다운 하루”와 “사랑하는 살림”은 몸으로 피어나는 이야기꽃으로 저절로 춤추겠지요. 2017.4.25.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