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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이 수필 중 25편을 골라 나온 책으로 다섯 가지 주제에 대해 묶여 있다. 그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여러 수필을 썼으며, 때로는 체험을 위해 어려운 생활도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구치소에 대한 에세이를 쓰기 위해 구치소에 갇히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경찰관들이 그를 잘 봐주어(?) 반쪽짜리의 구류로 끝난 적도 있을 정도다. 동물농장과 1984를 쓴 작가로 그의 대표작들은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지만, 그의 에세이는 소설에 비해 훨씬 순수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표제이기도 한 코끼리를 쏘다는 그가 영국의 식민지 인도에서 보낸 날들에 대해 쓰고 있다. 그가 코끼리를 죽인 이유가, 코끼리가 위험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뒤에 있는 수많은 군중 때문이라는 그의 수필은 군중심리에 대해 잘 묘사하고 있다. 그는 인도의 생활에서, 낯선 식민지인들을 그와 동일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연민을 가지지만, 다를 수밖에 없는 점들을 묘사하며 무의식 중에 비하하고 있다. 그의 글은 솔직하게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여과없이 엿볼 수 있다. 물론 그와 같은 정치적, 종교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사상 말이다.
그는 하층민들의 삶을 직접 체험하면서, 체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있는데 처음엔 여유있던 그의 글이 여정이 계속 될수록 하층민의 입장에서 세상의 거지같음(..)을 논하는 모습으로 바뀌어나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체험에 대해서는 '파리와 런던에서의 밑바닥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출간되어 있으므로 그 책을 읽으면 더 자세한 그의 주관적 체험과 함께 할 수 있다. 참고로 이 책은 그의 처녀작이기도 하다.
매우 예전에 나온 책 임에도, 국가간 스포츠가 '친선'이 아닌 '국가간 대리전'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나, '맛없는 영국요리'에 대한 변호, '홍차를 맛있게 끓이는 법' 등을 읽고 있으면 그의 시대와 우리 시대가 그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또한 그는 올리버 트위스트를 쓴 작가, 찰스 디킨스의 작가를 그 시대의 인기작가로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찰스 디킨스의 인기가 이어질 것을 그는 예측했을까 모르겠다. |
| 솔직히 말해서 제목을 보고 읽게 되었다. 학교 독서시간에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읽고 발표자로 토론을 했는데, 그때부터 약간 조지 오웰에 빠지기 시작했다. 참고로 나는 간디학교 학생이고, 이쪽 문화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내가 조지 오웰을 좋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제국주의, 자본주의, 전체주의, 세상의 부조리, 절대 권력 등 우리가 비판하고 고치려 하는 것들을 조지 오웰은 벌써 백년 전에 다 비판했다. 참 멋있는 사람이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그의 에세이들은 짧으면서도 명쾌하고, 핵심을 잘 찌른다. 어쩌면 난 조지 오웰에 푹 빠질 것이다. 조지 오웰 그 자신도 매력적이지만, '코끼리를 쏘다' 이 책도 매력적이다. 디자인도 그렇고, 삽화 역시. 방금 '서평의 타락' 부분을 읽고 난 뒤라 내가 괜한 아부를 하는 것이 아닌가 지레 겁나기도 하지만, 난 이 책이 정말 좋다! |
| 조지오엘의 단편집입니다. '코끼리를 쏘다' 외에 여러편의 단편과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습니다. '코끼리를 쏘다'는, 제국주의가 한창이던 시절 영국경찰로 버마에 근무했던 오엘의 경험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육되던 코끼리 한마리가 우리를 뛰쳐나와 난동을 부립니다.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고 집이 부서집니다. 원주민들은 영국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고 오엘이 장총을 들고 현장에 출동합니다. 원주민들은 난폭한 코끼리가 백인경찰의 총에 맞아 죽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구경삼아 따라 나섭니다. 구경꾼은 자꾸 불어납니다. "2천명이 넘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코끼리는 이미 발정기로 난폭했던 성질을 버리고 평온하게 풀을 뜯고 있는 중입니다. 코끼리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선 백인경찰과 총을 쏘기를 기다리는 원주민들. 경찰은 이미 난폭한 성질을 가라앉힌 코끼리에게 총을 쏘고 싶지 않습니다. 곧 사육사가 나타날 것이고 그가 코끼리를 우리로 안전하게 끌고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2천명의 '관객'은 오엘과 코끼리로 하여금 어서 연극을 시작할 것을 강요합니다. 이렇게 모였는데, 그 대단하고 잘난 백인경찰이 코끼리 한 마리를 못잡는단 말인가. 우리가 이렇게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데... 존경하는 지배신민께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단 말인가... 물론 원주민들은 침묵했습니다. 하지만 그 표정과 무리의 힘은 말하지 않더라도 엄청난 강요로 와 닿습니다. 경찰은 엎드려 총을 쏩니다. 한발, 두발, 세발...코끼리는 쓰러졌지만 죽지 않고 거친 숨을 몰아쉽니다. 탄환이 바닥날 때까지 쏩니다. 그러나 코끼리는 죽지 않고 고통스러워 합니다. 오웰은 새로운 총을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총을 쏘아댑니다. 그러나 코끼리는 죽지 않습니다. 무겁고 긴 침을 흘리며 쓰러져 있을 뿐입니다. 마지막 실탄이 떨어지자 경찰은 자리를 뜨고 맙니다. 코끼리를 처음 쏘는 순간부터 끝내 자리를 떠나는 순간까지 묘사는 매우 섬세하고 극적입니다. 백인경찰의 바람과 달리 쉽게 죽지 않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코끼리의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오웰은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총을 쏘아버린 자신의 고통을 대체합니다. 오웰은 이 단편 소설을 통해 원주민이든 점령자든 누구나 제국주의의 피해자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피지배자들이 입는 물적 정신적 피해와 지배국 시민에게 지워진 부당한 의무(코끼리 살해)를 통해 제국주의는 결국 누구에게나 고통을 야기할 뿐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실 점령자와 피점령자의 피해를 같은 크기로 묶을 수는 없겠지요. 오웰은 다만 제국주의란 점령자와 피점령자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사냥하는 괴물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코끼리가 죽어가는 부분의 묘사는 뛰어나지만 나머지 부분에선 설명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상황을 길고 자세히 묘사하는 대신 "이렇고 저렇고 이렇다." 라고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이야기를 단도직입적으로 전개하려는 오웰의 습성이 한몫을 한듯 합니다. 행여라도 그가 묘사력이 부족한 사람이 아닐까 의심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꼭 필요한 순간엔 눈앞에서 벌어지듯 생생하게 묘사해내고 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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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코끼리를 쏘고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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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동물농장>으로 오웰에 감탄했고, <1984년>으로 그의 진가를 알았으며, <카탈로니아 찬가>로 지루하고 재미없음을 느꼈고, <코끼리를 쏘다>로 그가 이제 서서히 질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제 그의 남은 책들 <제국은 없다> 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읽어낼 자신이 없다. 오웰이 좋아져서 그의 책들을 다 섭렵하고 싶었지만 이자가 이제 지루하게 느껴지니 어쩌랴. 난 같은 값이면 그의 남은 재미없어 보이는 저서들에 돈을 들이느니 차라리 다른 작가를 물색하련다. 대체적으로 <코끼리를 쏘다>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는 높은 편이다. 나의 그것에 비하면. 별 네 개 혹은 별 다섯 개 정도를 부여하고 있는데, 난 그만한 가치를 느끼지는 못했다. 건성건성 읽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세개반을 줄 수 있다면 난 그리 했을 것이나 네 개를 주고 싶진 않았기에 세 개를 줄 수 밖에 없었다. 순전히 나라는 독자의 개인적인 느낌이다. '코끼리를 쏘다'라는 이 책의 제목은 안에 담긴 조지 오웰의 여러 단편들 중의 하나에서 따온 것이다. 오웰이 지은 제목이 아닌 우리네 편집자들이 오웰의 단편을 엮어내면서 만들어낸 우리만의 제목인 것이다. 엄밀히 오웰의 책은 아니다. 너저분하게 여기저기 널려있는 그의 잡글들을 모아 책으로 펴낸 것일 뿐. 이 책에는 오웰이 살아온 삶과 밀착된 세심한 관찰과 사색에서 비롯된 글들이 담겨있다. 크게 제 1부 식민지에서 보낸 날들, 제2부 문학과 정치, 제 3부 파리와 런던의 뒷골목, 제 4부 일상에 스민 정치성, 제 5부 유럽 문학에 대한 단상들의 5가지로 구성되어있으며, 각각 5개에서 7개 가량의 단문들이 실려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코끼리를 쏘다'는 그가 버마에서 경찰생활을 할 당시에 도망쳐 난장판을 만들었던 코끼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비단 코끼리에 대한 묘사 뿐 아니라 그가 관찰한 버마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생각과 태도, 그리고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 등을 풀어놓고 있다. 한 사물에 대한 그의 관찰과 사색은 꽤나 깊이있게 전개된다. 다음은 첫번째 단문 '교수형'의 일부분이다. "곧 사형될 사형수의 이런 행동은 이상했지만,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한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 사형수가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딴 데로 옮기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신비감, 다시 말해 생명이 한창 절정에 달했을 때 그 생명을 앗아가는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보았다. 이 사람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육체의 모든 기관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 창자는 음식물을 소화해내고, 피부는 스스로를 재생시키고, 발톱은 자라고, 세포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모든 것이 이 냉혹한 어리석음 속에서도 악착같이 작용하고 있다. 그가 교수대 발판에 세워지고 사형이 집행될 10분의 1초의 그 순간에도 그의 발톱은 여전히 자랄 것이다."(P26) 사형을 언도받은 한 죄수가 죽기전에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관찰하며 쓴 것이다. 곧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한낮 사형장으로 행하는 길에 있는 물웅덩이를 피해 더러운 것을 묻히지 않으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 머리는 이미 죽을 걸 알지만 몸은 그렇지 않다. 몸은 여전히 계속 살기 위해 사소한 것에까지 신경쓰며 몸부림치고 있다. 육체의 모든 기관은 과학적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생을 갈구하며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 이후 계속되는 '나는 왜 쓰는가' '소설의 옹호' '문학과 전체주의' '문학비용' 까지는 그럭저럭 좋다. 하지만 이후의 것들은 계속해서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듯 지루하다. 물론 소재는 다르지만. 복수, 공원, 두꺼비, 스포츠, 서점, 영국요리, 차, 담배 등등 그의 시선은 아주 사소한 것에 머물고 있으며, 그의 일상 속의 사소한 소재로부터 생각은 넓게 번져나간다. 어쩌면 그의 이 단문들은 <동물농장> 과 <1984년>이라는 저서의 흥행이 없었다면 영원히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두 책의 흥행으로 작가 조지오웰이라는 이름이 드높아지고, 그가 썼던 모든 글들이 책을 펴내어졌다. 그러나 이 책에서 '조지오웰'이라는 이름을 뺀다면 이 책을 읽을 사람은 그리 많아보이진 않는다. 충분히 세밀한 관찰을 바탕으로 깊이있는 사색을 펼치고 있지만 그만큼의 관찰과 사색을 하는 이들은 꽤나 널려있다. 오로지 조지오웰이 무슨 생각을 했고, 무슨 글을 썼는가 가 궁금해서 집어든 책이었다. 굳이 오웰이 아니어도 된다면 이 책은 일반독자들에겐 별 흥미를 끌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오웰이어야 한다면 이 책을 집어들어도 괜찮다. |
| 조지 오웰 이 아저씨의 유명한 책들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동물농장],[1984년] 이런 책들을 쓴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을 읽기 전에 이 책을 보게 되어서 좋은 거 같다. 그의 작가로서의 생각이나 사상들을 미리 알 수 있는 책이니까. (뭐 저 위의 책들을 읽고 읽더라도 별 상관은 없어보이지만) 이 책을 쭈욱 빠르게 보고. 한 세가지쯤 생각했다. 1. 책에서 보면 '가난한 자들은 어떻게 죽을까'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파리에 X병원에서 몇 주간 있으면서 본 것을 적은 듯하다. 가난한 자들이 집단으로 수용되어 있는 그곳에서는 환자는 실험의 도구이다. 신출내기 의사들이 이러 저리 쳐다보고 경험을 쌓는 곳. 그래서 환자의 인권이란 별로 중요시되지 못한다. 그냥 00번으로 불린다. 이름도 없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잘하는 의사란 없다. 그렇지만 나는 새파란 의사들을 못 믿겠다. 이런 우스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병원에서 수술 중에 부리나케 도망 나온다. 그것을 이상하게 여긴 사람이 묻는다. "왜 그렇게 수술 중에 나왔나요?" "아니 간호사가 긴장하지마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준비하라는 게 아닙니까?" "예?? 그게 어때서요??" "어때서라니요! 간호사가 의사에게 그러더란 말입니다!!" 첨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지만. 의사는 첨부터 잘했으면 좋겠다. 전문의에게 치료 받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으아 내년이 지나면 나는 선생님이 될꺼다. 30명 이상의 아이들을 가르친다. 처음 발령 받은 선생님 밑에서 배웠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얻는 것 없이 보낸다면. 의사 이상의 부담이다. ;;; 2. '나는 왜 쓰는가'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조지오웰의 자신의 글쓰기가 정치적인 이유들을 밝혀 놓았다. 마치 신문사에서 조지오웰을 인터뷰하는 거 같다. 재미었다. 특히 그가 열다섯살부터 스물다섯살때까지 해온 자신의 '이야기'를 지어내는 문학 연습은 흥미롭다. 3. '소설의 옹호'를 보면 조지오웰은 소설이 외면 받고 있는 원인 중에 하나로 싸구려 서평을 들었다. 서평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보내온 여러권의 소설들을 비판하거나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아무도 그에게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서평가는 화려하고 눈에 띄는 어휘로 찬사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 역시 저런 광고성 서평은 잘 살펴 보지 않지만, 독자들이 해 놓은 리뷰는 좀 보는 편이다. 아마추어이긴 하지만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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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때에 '조지 오웰'의 글이라. 이 책을 사 둔 것이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도저히 안 읽고는 치울 수가 없어 의무감으로라도 읽으려고 마음먹고 잡은 책이다. 뭐라고 말하기 참 민망한 마음 절반, 이렇 게라도 읽은 것이 다행이다 싶은 마음 절반, 내 마음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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