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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뜬 몸으로 그녀와 마주하다 나무들이 무수한 혓바닥으로 얼얼하도록 핥고 핥아 저 하늘이 멍들어간다 미처 지상에 내려오지 못한 새들도 멍들어간다 유일하게 멍들지 않은, 달이 조심스레 얼굴을 내민다 그녀가 핥을 때마다 지상은 붉게 달아오른다 늙지 않는 그녀는 아무리 핥아도 환해지지 않는 늙고 병든 자들을 하늘 너머로 공동묘지로 모시고 간다 멍든 새들이 멍든 하늘을 날아가고 멍들지 않은 달은 새들의 어깨를 떠민다 길을 걷다 만난 물 웅덩이, 지상의 저 흔한 멍 그 속에 달이 노른자위처럼 둥둥 떠 있다 그 달을 밟는다고 달이 멍드는 게 아니다 멍들면 달이 아니다 멍들지 않으므로 달은 밤마다 지상을 핥을 수 있다 지상의 한구석에서 나는 몰래 옷을 벗고 멍을 드러낸다 달의 혀에 내 멍을 맡겨 멍이 더 이상 확장되지 않는다 그녀가 내 멍을 핥을 때 나는 실신한다 정신의, 아찔한 하혈을 일으킨다 - 김충규, 「그녀가 내 멍을 핥을 때」 나무들이 무수한 혓바닥으로 멍든 하늘을 핥습니다. 얼마나 핥았는지 혓바닥이 얼얼할 정도네요. 멍든 하늘은 저녁 하늘을 가리킵니다. 노을이 피고 스러지는 찰나에 저녁 하늘은 시나브로 멍든 빛깔을 드러냅니다. 나무가 혓바닥으로 아무리 하늘을 핥아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미처 지상에 내려오지 못한 새들도 멍들어간다”라는 진술에 그 맥락이 들어 있습니다. 저녁 하늘을 나는 새는 저녁 하늘에 물듭니다. 물들지 않으면 새는 저녁 하늘을 날 수 없습니다. 저녁 하늘에 뜬 달만이 유일하게 멍들지 않고 제 빛깔을 냅니다. 달빛이 어둠을 비춥니다. 흐린 빛이지만, 달빛이 빛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조심스레 얼굴을 내민 달이 하늘을 핥을 때마다 지상은 붉게 달아오릅니다. 수줍게 하늘을 핥는 달빛이 보이나요? 그 모습을 보며 얼굴을 붉히는 땅 위 생명들이 그려지나요?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모습을 나타내는 달을 시인은 “늙지 않는 그녀”로 표현합니다. 늙지 않는 달은 시간을 비켜간 존재입니다. 그녀는 “아무리 핥아도 환해지지 않는/ 늙고 병든 자들을 하늘 너머로 공동묘지로 모시고” 갑니다. 늙고 병든 자들은 흐르는 시간에 상처를 입은 존재들입니다. 시간의 칼날이 남긴 상처는 생각보다 깊습니다. 달이라고 죽어가는 존재를 살릴 묘수가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하늘 너머로, 공동묘지로 그들과 함께 갈 뿐입니다. 날마다 뜨는=사는 달이 날마다 지는=죽는 사람들을 하늘 너머로 데려갑니다. 참 아름다운 달입니다. 멍든 새들이 멍든 하늘을 날아가면 멍들지 않은 달이 새들의 어깨를 떠밀어 줍니다. 멍든 하늘에서 유일하게 제 모습을 유지하는 달입니다. 달이 없는 밤은 얼마나 쓸쓸할까요? 달로 해서 생명들은 멍든 하늘을 견디는 힘을 얻는 셈입니다.
길을 걷다가 만나는 물웅덩이에서 시인은 노른자위처럼 둥둥 떠 있는 달을 봅니다. 시인은 물웅덩이에서 “지상의 저 흔한 멍”을 발견합니다. 하늘이 멍들었는데 지상이 멍들지 않을 리 없습니다. 지상 곳곳에 파인 물웅덩이마다 달이 떠 있습니다. “그 달을 밟는다고 달이 멍드는 게 아니다”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네요. 그럴 법합니다. 물웅덩이에 비친 달은 다만 흐려질 뿐입니다. 달은 여전히 멍든 하늘에서 달빛을 내리비추고 있으니까요. “멍들면 달이 아니다”라는 시구는 바로 이 지점에 걸려 있습니다. 달이 멍들면 멍든 세상을 치유할 방법이 없습니다. 멍든 하늘을 무수한 혓바닥으로 핥는 나무들이 달빛이 없는 세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달은 멍들지 않으므로 밤마다 지상을 핥을 수 있습니다. 달이 멍든 세상에 빛을 뿌리면 지상에 있는 나무들은 멍든 하늘을 혓바닥이 얼얼하도록 핥습니다. 하늘과 달과 나무들이 맞물려서 빚어내는 새로운 생명 세상이 느껴지나요?
시인이라고 가만있을 수 없습니다. “지상의 한구석에서 나는/ 몰래 옷을 벗고 멍을 드러낸다”라고 시인은 쓰고 있습니다. 지상이 온통 멍들었느니 지상에 사는 시인의 몸 또한 멍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스스로 치료할 수 있는 멍이 아닙니다. 지상은 이미 어둠에 묻혀 있으니까요. 시인은 제 온몸을 달에 맡깁니다. 달빛이 시인의 알몸을 빛으로 물들입니다. 달빛에 물들어 환하게 빛나는 몸을 떠올려 보세요. 어둠 속에서 사람과 달빛은 구분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곧 달빛이고, 달빛이 곧 사람이 되는 풍경이라고 표현하면 어떨까요? 달의 혀에 온몸을 맡기자 “멍이 더 이상 확장되지” 않습니다. 온몸을 휘돌던 썩은 피가 달빛을 머금고 밖으로 나가는 느낌이 듭니다. “나는 실신하다”라는 시구에 달빛과 하나가 된 시인의 현재 상태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실신은 정신을 잃는 것입니다. 정신을 잃은 사람의 온몸을 달빛이 구석구석 물들입니다.
“그녀가 내 멍을 핥을 때” 시인은 “정신의, 아찔한 하혈” 상태에 빠집니다. 썩은 피가 아래로 흘러 내려갑니다. 썩은 피가 나간 자리를 달빛이 채웁니다. 달빛을 받은 몸이 새로운 몸으로 거듭납니다. 정신의 하혈을 몸의 하혈로 표현해도 좋습니다. 정신과 몸은 둘이면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썩은 피가 흐르는 몸으로 어떻게 올곧은 정신세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시인은 달빛 아래 온몸을 내놓습니다. 하혈을 해 피로 물든 몸을 달빛이 거침없이 비춥니다. 개벽입니다. 열릴 건 열리고 닫힐 건 닫히는 개벽을 시인은 온몸으로 경험합니다. 몸이 들뜨면 정신 또한 들뜨지 않을 수 없습니다. 들뜬 몸=정신으로 시인은 달빛이 어둠 속에 만드는 새로운 세계와 마주합니다. 멍들지 않는 달은 이렇게 멍든 세계를 기꺼이 끌어안습니다. “그녀가 내 멍을 핥을 때”는 이리 보면 달이 이 세상에 베푸는 뜨거운 사랑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랑이 지극할 때 우리는 정신이 하혈하는 아찔한 상황으로 빠져드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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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우체국 계단>이란 시를 좋아한다. 그 시는 이해하려고 들지 않아도 쉽게 감성에 와 닿는다. 같은 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소개된 기사를 읽자마자 곧장 그의 시집을 구해 읽었는데 마음에 와 닿는 시편들이 많아 앞으로 자주 펼쳐보게 될 것 같다. 기사에 언급된 "깊고 아픈 상처를 드러내며 고통 속으로 침잠해 오히려 새로운 에너지를 이끌어낸다"는 평가는, 아주 적절한 것 같다. 그의 시편들은 전체적으로 어둡게느껴지면서도 그것이 절망적으로 보이지 않고 새로운 모색을 위한 환한 암시로 보인다. 문학동네 시집 시리즈가 계속 표지를 바꿔 왔는데 이번 표지가 가장 맘에 든다. 살구빛 표지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 표지와 어울리는 그의 따뜻한 시편들을 읽는 내내 내 마음도 아득한 밑바닥까지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박형준 시인이 그의 시에 대해 "자욱한 신열"의 언어라고 말했듯이 그의 시는 정말 "신열"의 기록이다. 내면을 앓아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시편들이 아닌가 싶다. [인상깊은구절] 우체국 계단 우체국 앞의 계단에 나는 수신인 부재로 반송되어 온 엽서처럼 구겨진 채 앉아 있었다 빨간 우체통이 그 곁에 서 있었고 또 그 곁에는 늙은 자전거가 한 대 웅크려 있었다 여름의 끝이었고 단물이 다 빠져나간 바람이 싱겁게 귓불을 스치며 지나갔다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기 위하여 나는 편지 혹은 엽서를 안 쓰고 지낸 지 몇 해가 지났다 생각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애써 기억의 밭에 파종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길 건너편의 가구점 앞에서 낡은 가구를 부수고 있는 가구점 직원들, 그리움도 세월이 흐르면 저 가구처럼 낡아져 일순간 부숴버릴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낡은 가구처럼 고요하게 앉아 있었다 정 그리워서 미쳐버릴 지경에 이르면 내 이마에 우표를 붙이고 배달을 보내리라 우체국의 셔터가 내려가고 직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갔다 여름의 끝이었고 나는 아직 무성한 그리움의 계절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