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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안부를 묻는 일곱 가지 방법”이라는 부제에 끌려 구입한 책이다.
“감각기관들이 느끼는 다섯 가지 욕망과 일곱 가지 정이야말로 모든 인간 존재의 근원이자 빛깔이고 도덕률”이며 “인생관이라는 것도 사람이 오욕칠정의 감정을 어떻게 조절해 가느냐는 기준“이라고 말하는 작가가, 과연 인간의 칠정에 대해 얼마나 속깊은 글들을 썼을까... 읽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 내가 요즘 느끼는 삶에 대한 생각들 이가 빠진 듯 듬성듬성한 칠정의 빈구석이며 삐죽삐죽 드러난 모서리들을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다듬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기대했던 인간의 존재에 대한 깊이있는 사유들로 이루어진 내용은 아니었다. 그저. 작가의 신변잡기를 쓴 내용이었다.
단지 책의 구성을 기쁨(喜), 노여움(怒), 슬픔(哀), 즐거움(樂), 사랑(愛), 미움(惡), 욕망(慾)이라는 단락으로 나누었을 뿐. 그 단락에 비스름하게 맞는 내용을 억지로 끼워놓은 듯한 내용이 있는가 하면 그 단락과는 상관되어 보이지 않는 내용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냥 책의 구성이 희,노,애,락,애,오,욕.이었던 게다. 이 책의 제목 “산다는 것은”, 작가가 살아온, 그리고 살아가는 모습들의 나열이었다. 글을 통해 읽힌 작가의 모습은 굳이 희노애락애오욕을 팽팽하게 조절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고. 다만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칠정의 다스림은 끊임없이 요구되어지는 인생의 숙제라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 방법들. 그건 조금씩 색깔과 모양새만 다를 뿐 인간의 칠정, 그 본질이야 별반 다르지 않을 테고.
작가가 나를 유인했던 부제처럼 결국 산다는 것은, 내 마음속 칠정의 안부는 내가 묻고 내가 답하고 내가 추스려 가는 인생 공부의 긴 여정이겠다..
내 스스로 보기에 흡족한 모양새로 끊임없이 돌보고 다듬어가는 과정 그것이 인생인 듯 싶다. 내가 생각하는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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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산다는 것은>은 박범신의 오욕칠정을 담은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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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문맹률이 제로에 가까운 지금의 시점에서 글을 쓸 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제 목소리를 글에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은 지극히 적다. 타인의 글을 읽고 정해진 루트를 따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기에 그런지 모르겠으나, 많은 이들은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곤 한다. 흔히 글을 잘 쓴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제 이야기를 할 줄 안다. 뛰어난 상상력, 맛깔스러운 표현력 등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무엇을 어떻게 써야겠다는 투철함(?)을 그들은 백지에 옮길 줄 안다. 그 능력이 우리와 같은 범인(凡人)과 그들의 차이일 것이다. 작가 박범신의 글을 평할 정도로 많이 접하진 않았다. 그러나 이 책 한 권만으로도 나는 그가 제 이야기를 털어놓는 데에 익숙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여기 모은 글들은 우리가 시간을 통해 만나는 ‘오랜 병’에 관한 나의 내밀한 ‘혼잣말’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말을 통해 저자는 이 책이 제 내면을 고스란히 적어낸 것임을 고백하고 있었다. 혼잣말이야 나도 수시로 하곤 하지. 가끔씩은 내 생각들을 남들의 것과 비교해보며 혹 병적이진 않을까 고민하기도 하고. 하지만 머릿속에만 머물던 그 생각들을 글로 적어 한 권의 책으로 엮다니, 직업적인 작가와 나의 차이는 바로 이런 데에 있는 건가 싶어 나는 그저 웃었다. 온갖 자극에 민감해야만 하는 게 바로 작가라는 직업이다. 세상사에 좀체 흔들리지 않는다면 세상으로부터 그는 어떠한 소재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단순히 모티브를 얻는 차원에서만 세상을 바라본다면 이후의 글 전개에서 촉촉한 문장이 불가능해 끊임없이 좌절할 것이다. 오십을 훌쩍 넘긴, 나이 많은 남성에겐 다소 어울리지 않는 듯한 기복 어린 감정을 그에서 발견했다. 어느 날 문득 다가온 봄에 그는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타인의 글을 읽으며 그 안에 푹 빠지기도 하고,... 나이는 들어도 소년의 감성을 간직한, 그는 천상 작가였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난 물었다. 어찌해야 이처럼 철들지 않으며 나이들 수 있는 것일까를... 외면하고픈 정치적 사건들, 아무런 힘도 발휘치 못해 소외된 듯한 내 작디작은 존재를 자각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어찌 늘상 즐거울 수 있겠는가? 다행이도 작가를 통해 나는 내 안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들이 정상임을 깨닫는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그도 동일하게 느낀다는 사실로부터 난 마치 든든한 우군을 얻은 듯해 마음이 놓였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타인으로부터 비록 상처를 입더라도, 타인이 나와 적지 않은 부분에서 비슷함을 발견하며 위안을 얻는 과정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 아, 이제 여름이 온다. 글쓰기의 치열함에 빠진다 하여 더위를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와 나는 같은 더위를 느끼며 이번 여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글을 통해 존재의 안부를 묻는 그를 보며, 나 역시 비루한 책 한 권 내보고픈 욕망에 사로잡혔다. 산다는 것이 이처럼 헛된 욕망의 연속인 것일까? 정상과 비정상의 미묘한 경계 위에 서서 나는 희미하게 웃어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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