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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중단편선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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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톨스토이의 7편의 중단편들 – 「네흘류도프 공작의 수기: 루체른」, 「알베르트」, 「세 죽음」, 「가정의 행복」, 「카자크인들: 카프카스 이야기 1852년」, 「폴리쿠슈카」, 「데카브리스트들(장편∙미완성)」 – 이 실려있다.   「네흘류도프 공작의 수기: 루체른」은 톨스토이가 1857년 스위스 여행을 하는 동안 실제로 경험했던 일을 바탕으로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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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는 톨스토이의 7편의 중단편들 「네흘류도프 공작의 수기: 루체른」, 「알베르트」, 「세 죽음」, 「가정의 행복」, 「카자크인들: 카프카스 이야기 1852년」, 「폴리쿠슈카」, 「데카브리스트들(장편∙미완성)이 실려있다.

 

「네흘류도프 공작의 수기: 루체른」은 톨스토이가 1857년 스위스 여행을 하는 동안 실제로 경험했던 일을 바탕으로 썼다고 한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인 네흘류도프 공작은 스위스 루체른에서 가장 좋은 호텔인 슈바이처호프에 투숙한다. 주변의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의 취하고 공작은 호텔에서 좋은 대우를 받기에 충분하다. 어느 저녁 부랑자같이 초라하기는 하지만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호텔 앞에서 노래한다. 호텔에 투숙하는 부유한 사람들은 모두 그 노래를 경청하지만, 정작 노래가 끝났을 때 아무도 그에게 돈 한 푼 적선하지 않는다. 초라한 자를 멸시라도 하듯이 말이다. 공작은 그런 사람들의 태도에 깊은 환멸을 느끼고 호텔 안 식당에 보란 듯이 그를 초대한다. 그 가수와 함께 들어가니 호텔 급사는 평민들이 술을 마시는 곳으로 안내하고 무시한다. 철저히 돈이나 권위에 의해 계급이 나뉘고 그에 알맞은 대우를 받는다. 공작은 급사를 불러서 정당치 못한 대우에 대해 화를 낸다.

 

법 앞의 평등? 과연 인간의 모든 생활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지? 인생의 겨우 천분의 일만이 법에 속하고 나머지는 법 밖에서, 풍습과 사회적 견해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네흘류도프 공작의 수기: 루체른」, 49)

 

아무것에도 좌우되지 않고 삶을 위에서 내려다보기 위해 단 한순간일지라도 삶에서 지성으로 완전히 분리된 상태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우리에게는 유일하게 단 하나의 온전히 옳은 지도자가 있으니 바로 세계혼이다. 이 세계혼은 우리 모두를 각각 따로 또 같이, 하나의 단위로서 꿰뚫고 있으며 각각에게 마땅한 지향을 부여해준다. 이것은 나무 속에서 나무에게 태양을 향해 자라라고 명령하는 혼이며, 꽃 속에서 가을이 되면 꽃을 지게 하라고 명령하는 혼이며, 우리의 내면에서는 무의식적으로 서로서로 다가서라고 명령하는 혼인 것이다. (「네흘류도프 공작의 수기: 루체른」, 51)

 

이 사람들 각각의 영혼 속에 담긴 내면의 행복을 누가 재어 보았느냐? (「네흘류도프 공작의 수기: 루체른」, 52)

 

자신이 급사에게 화를 낸 것이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가수가 가난하고 행색이 초라하다는 이유로 무시했던 것과 같은 행동이 아닌지, 더불어 자신의 모순과 교만을 생각하게 된다. 돈을 중시하는 요즘 우리 시대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에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든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것처럼 남을 대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아름다운 사회를 그려본다.

 

내가 제일 재미있게 읽은 작품은 「가정의 행복」이다. 하지만 톨스토이 자신은 이 소설을 출간한 후 자신의 작품에 대한 부끄러움과 수치심으로 한동안 창작활동을 거부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너무 겸손했던 것일까. 내용은 한 젊은 아가씨가 사랑하고 결혼하고 진정한 여성으로 성숙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톨스토이는 가정이 자신이 속한 사회나 국가로 연장되는 열린 세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 작품 속에는 단지 한 개인에 속한 작고 닫힌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에 그쳤기 때문에 만족할 수 없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 속에만 행복이 존재하는 법 (가정의 행복, 181)

 

「카자크인들: 카프카스 이야기 1952년」을 읽으면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마치그리스인 조르바가 연상되었다. 주인공인 귀족 올레닌은 열여덟에 양친을 잃고 재산을 모두 물려받는다. 모스크바 사교계를 드나드는 부유하고 자유롭게 살면서 스물네 살이 되도록 어떤 경력도 쌓지 못하고 재산의 절반을 탕진한다. 그는 군대에 지원하고, 사관후보생 신분으로 변방 카프카스에 주둔하게 된다. 여기서 만난 사냥꾼 예로슈카 아저씨는 조르바같이 호탕한 노인으로 젊을 때는 군대에서 활약이 대단했지만 지금은 사냥꾼으로 소일하면서 홀로 살고 있는 카자크이다.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자넨 그놈이 짐승이니까 바보라고 생각하나? 아니야. 그놈은 사람보다 영리해. 공연히 돼지라고 부르는 거야. 그놈은 다 안다니까. … 자네는 그놈을 죽이고 싶어하지만, 돼지는 숲 속을 신나게 돌아다니고 싶어해. 자네한테는 그런 법칙이 있고 그놈한테는 또 그런 법칙이 있는 거라고. 그놈은 돼지지만 그래도 자네만 못하지 않아. 바로 그대로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아하! 사람은 어리석어. 어리석고 어리석은 게 사람이야!” (「카자크인들: 카프카스 이야기 1852년」, 379)

 

올레닌은 자신이 묵고 있는 하숙집 주인의 딸 마리야나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녀에겐 약혼자 루카슈카가 있다. 그는 그녀의 행복을 바라면서 루카슈카에게 말 한 마리를 주는데, 이런 자기희생적 사랑으로 행해진 선한 일은 도리어 의심을 사게 된다.

 

행복이란 타인을 위해 사는 데 있다. 이건 분명해. 인간의 내면에는 행복에 대한 요구가 내재되어 있다. … 외부 조건에 상관없이 항상 충족될 수 있는 욕망이 과연 있겠는가? 과연 어떤 욕망들이? 사랑은 자기 희생이야!’ (「카자크인들: 카프카스 이야기 1852년」, 415)

 

올레닌은 자신이 살던 모스크바와 달리, 카프카스에서는 농노제나 지주의 횡포가 없고 사람들이 일한 만큼 풍요롭게 먹고 사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살아왔던 곳이 거짓된 세상임을 깨닫게 된다. 톨스토이는 자신이 속한 귀족사회의 문제점을 이 소설을 통해 처음으로 비판하고, 이후 그의 작품에 강하게 반영된다.

 

하지만 내가 꼭 이야기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나는 민중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고, 또 관심을 가져왔다는 사실입니다. 러시아의 힘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민중들에게 있다는 것이 나의 견해지요.” (「데카브리스트들」, 696)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힘은 민중에 있다는 자신의 강한 신념을 작품 곳곳에서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시도가 엿보이는 중단편들을 통해 충분히 숙성되어 형성된 그의 사상과 인생관이전쟁과 평화부활>, <안나 까레리나와 같은 대작을 낳은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m*******4 2011.12.23.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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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크인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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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사교계의 유명인사였던 올레닌은 사관후보생이 되어 카프카스의 러시아군 주둔지로 떠난다. 이제껏 그가 속해 있었던 문명의 세계는 그 화려함 뒤에 거짓과 위선, 가짜로 가득 찬 세상이다. 그곳의 문명인들은 대화 중간중간 프랑스어를 섞어 말하며 교양인인 척 자신을 뽐내고, 스스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다른 이들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간다.  카프카스에 도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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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크바 사교계의 유명인사였던 올레닌은 사관후보생이 되어 카프카스의 러시아군 주둔지로 떠난다. 이제껏 그가 속해 있었던 문명의 세계는 그 화려함 뒤에 거짓과 위선, 가짜로 가득 찬 세상이다. 그곳의 문명인들은 대화 중간중간 프랑스어를 섞어 말하며 교양인인 척 자신을 뽐내고, 스스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다른 이들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간다.


 카프카스에 도착한 첫날 올레닌은 마차 밖으로 잿빛 구름에 가려진 산을 바라보고는 실망한다. 그리고, 그는 산과 바흐의 음악과 여인에 대한 사랑은 허구라고 단정짓는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맑게 개인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당당하게 서 있는 산을 본 이후로는 눈길 가는 모든 곳에서 산을 보고 느낀다.


 산은 그가 떠나온 문명과 대비되는 자연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문명은 가짜고, 위선이고, 비겁함이지만, 자연은 진짜고, 솔직함이고, 당당함이다. 올레닌은 아름다운 산과 강, 숲으로 둘러싸인 카자크인 마을에서 난생 처음으로 자연과 조우하게 된다.


 톨스토이의 문명에 대한 삐딱한 시선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은 이 책에 수록된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네흘류도프 공작의 수기」에는 루체른의 숨막힐 듯이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그 자연을 파괴하는 문명인 영국인에 대한 혐오감이 잘 대비되고 있다. 문명인 영국인들이 건설한 다리, 직선으로 곧게 뻗은 가로수길 등은 자연에 대한 무자비한 파괴행위이지만, 정작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또한, 그들은 타인과 진심으로 교류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또 다른 작품 「세 죽음」에서는 위선에 찬 귀족부인의 불행한 죽음에 대해 얘기한다.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도 위선의 옷을 벗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녀의 죽음은 불행하다. 그에 비하면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산 가난한 마부와 자연 그 자체인 나무의 죽음은 숭고함마저 느끼게 한다.


 카자크인 마을에 주둔하고 있는 러시아 군인들은 카자크인들을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여긴다. 올레닌 역시 처음에는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카프카스로 가는 도중에 이런 상상을 한다.

 ‘아름답지만 미개한 카자크 여자가 자신을 기다린다. 그는 그녀에게 프랑스말과 교양을 가르친다. 그녀는 머리가 좋아서 빨리 배운다.’

 러시아인들은 자신들과 자신들이 아닌 사람들을 구분짓는다. 구분함으로써 자신들의 우수성을 뻐기는 것이다.


 하지만, 카자크 노인 예로슈카에게는 모든 부족과 민족이 다 똑같은 친구일 뿐이다. 그에겐 같이 술만 마실 수 있으면 누구나 친구가 된다. 심지어, 카자크인들과 적대관계에 있는 산사람들과도 친구로 지냈다고 한다. 카자크인들은 자신들과 대립하는 산사람들은 존경하지만,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멀리서 온 러시아인들은 미워한다. 산사람에게는 문명의 위선과 거짓이 없지만, 러시아인들은 온통 거짓투성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올레닌은 카자크인 마을에 살면서 차츰 자연과 하나가 되는 법을 배워 나간다. 자연과 내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느끼는 순간, 그는 무한한 행복을 느끼고, 수만 마리의 모기떼에게 물리고 뜯기는 고통속에서도 커다란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카자크인들이 자연속에서 자연법칙에 순응해서 살아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공동체가 이상적인 낙원은 아니다. 용맹하고 잘 생긴 젊은 카자크 청년 루카슈카는 적을 사살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올레닌이 하숙하고 있는 집주인은 처음엔 그를 무시하지만, 그가 부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엔 갑자기 돌변해서 친절하게 대한다.


 올레닌은 하숙집 주인의 딸이자 루카슈카의 약혼녀인 마리야나를 짝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문명인처럼 높은 교육도 받지 못했고, 지체높은 귀족도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날씬하고 아름다우며 무엇보다 당당한 솔직함이 있다. 올레닌은 그녀가 자신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름답지만 미개한 여자를 상상했던 그가 마리야나에 대해선 자신보다 훨씬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그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사랑의 고백을 한다. 그녀도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듯하지만, 루카슈카가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는 불행한 사고 때문에 둘의 사랑은 맺어지지 못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올레닌은 카자크인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떠나려는 그에게 예로슈카가 찾아온다. 예로슈카는 그에게 당신들의 사회는 전부 가짜라고 말한다. 올레닌은 예로슈카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한때 자신이 속했던 그 곳엔 위선, 허위, 쓸데없는 규칙들, 거짓만이 존재할 뿐임을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태어나 자랐고, 오랫동안 생활하다 떠나온 곳으로부터 완전히 잊혀지기를 바라고, 진정한 카자크인이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꿈은 마리야나와의 사랑이 깨어지는 순간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고, 그는 다시 떠나야 할 처지가 되었다.


 예로슈카는 또 이렇게 말한다. 러시아인 의사들은 자르는 것밖에 모른다고. 예로슈카의 등엔 총알이 박혀 있다. 젊은 시절 사고로 등에 총을 맞았던 것이다. 총격의 아픔은 이내 사라졌지만, 총알은 여전히 등에 박혀 있다. 어쩌면 문명과 자연의 차이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문명인들은 방해가 되거나 걸리적 거리는 것이 있으면 그냥 잘라 버린다. 다리가 아프면 다리를 자르고, 손이 아프면 손을 자르고, 산이 앞을 가로 막으면 구멍을 뚫고, 강이 앞을 가로 막으면 메워 버리고, 사람이 앞을 막으면 쫓아 버린다. 반면, 자연은 아픔까지도 받아들이고 포용한다. 아픔은 곧 아물지만, 상처는 그대로 남는다. 자연은 그 상처를 애써 지우려 하지 않는다. 예로슈카 노인이 등에 박힌 총알을 빼내려 하지 않듯이.


 떠나는 올레닌은 아쉬움이 남는지 뒤를 돌아본다. 예로슈카와 마리야나가 보인다. 하지만, 두 사람은 올레닌을 바라보지 않는다. 처음에 올레닌은 산과 바흐의 음악, 여인에 대한 사랑을 허구라고 생각했다. 그 중 두가지 산과 여인에 대한 사랑은 허구가 아님이 증명되었다. 그러면 마지막 한 가지, 바흐의 음악은? 떠나는 올레닌은 여전히 바흐의 음악을 허구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b******2 2012.10.12. 신고 공감 0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