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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세한 내용은 잊었지만 좋은 영화였다고 아름답게 기억되는 작품을 다시 꺼내 보는 건 약간의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괜찮게 봤던 예전 기억이 산산조각날 수도 있다는.. '슬픔이여 안녕'은 내 기억 속에서 진 세버그의 숏 커트 머리가 오드리 헵번만큼이나 멋졌던, 괜찮았던 작품으로 남아있는 영화였다. 파란토끼13님이 DVD를 선물로 주신 덕에, 재회의 기쁨을 맛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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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여 안녕'을 보면서 세 주인공인 진 세버그, 데이빗 니븐, 데보라 카 이젠 모두 전설 속으로 사라진 것에서 벌써 반세기도 더 전인 1950년대,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만들어진 오래 된 작품이라는 체감이 확 왔다. 그럼에도 이 '슬픔이여 안녕'은 새엄마가 될 아버지의 연인과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라 동서고금 보편성을 띄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당시 신세대,사강의 분방함과 발칙함이 가미된 작품이었다.
17세 소녀 세실과 바람둥이 아버지 레이몬드, 두 부녀는 분방하고 자유롭게 살고 있다, 그러다 아버지가 디자이너 앤을 만나 결혼을 결심하게 되면서, 세실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 다른 삶을 요구하는 앤에게 반발하게 된다. 이 둘의 갈등은 당연했다. 세실과 앤의 갈등은 신세대의 분방함과 기성세대의 신중함으로 인해 충돌이 빚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 갈등이 심해지자 세실은 아버지와 앤을 헤어지게 만들기 위한 계획을 꾸미는데..
이 작품은 세실이 나레이션으로 진행된다.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란 세실의 물음이 내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을 정도로 이 작품을 지배하는 화두가 돼버렸다.그 말은 17세 사춘기 소녀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오히려 사춘기 감수성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일까? 현재는 흑백으로, 과거는 컬러로 구성한 화면도 인상적이었다. 흑백이 주는 차분함과 어두움, 그리고 컬러의 화려함..그것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세실의 심리를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했다. 작품 속에서 세실과 앤은 내내 대조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발랄하고 상큼한 진 세버그의 머리와 옷, 우아하고 보수적인 앤의 머리와 옷. 단순히 여배우를 돋보이게 하는 스타일링이 아니라 작품의 분위기와 등장인물의 성격과 성향을 표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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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은 작품 초반에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의문을 던졌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은 파티장면과 클럽 장면 등 대체적으로 밝고 자유로운 분위기로 흘러간다. 특히 클럽에서 노래 부르는 저음의 여가수의 노래는 묘하게 가슴을 적셨다. 그 노래는 이 작품과 동명 제목을 가진 주제곡이었고, 그 여가수는 바로 검은 옷을 즐겨입는다는, '파리의 하늘 밑'을 불렀던 바로 그 쥴리엣 그레코였다. 순간 '슬픔이여 안녕'이 영어로 제작된 것이 아쉬웠다. 불어로 만들어졌다면 더 '슬픔이여 안녕'다와지지 않았을까.
이 작품에서 50년의 세월이 느껴졌던 것은 중간중간 나오는 춤이나 음악, 통 좁은 바지가 있었다. 또 숱하게 나오는 흡연장면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지금 만들어졌다면 편집될 장면이 많다는 것에 가장 눈에 들어왔다. 자동차 달리는 신, 등장인물들이 걷고 움직이는 신이 길게 나온다는 것이다. 빠른 화면 전개와 군더더기 없는 전개가 대세인 요즘에는 좀처럼 이런 장면을 볼 수 없는데.. 요즘에 이렇게 스토리와 직접 관련이 없는 동작이 길게 나오면 아마도 관객들이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지루하다고 타박이나 받지. 하지만 나는 '슬픔이여 안녕'의 그 느긋함이 좋았다. 서둘지 않고 천천히 파리나 별장 해변을 어슬렁거리며 산책하는 느낌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어서.
아쉽다고 한다면 세실의 심리묘사에 좀더 공을 들였으면 작품의 완성도가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지금봐도 두 사람의 갈등이 설득력과 공감을 얻을 수 있었을텐데. 세실의 반항이 그렇게 가슴에 와닿지 않은 걸 보면..심리 묘사가 부족했던 것은 내내 마음에 걸렸다.
'슬픔이여 안녕'은 그야말로 주연 배우들 면면을 보는 것만으로 기분 좋아지는 작품이다. 숏커트 머리와 도발적인 캐릭터의 진세버그는 이 작품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데이빗 니븐에 데보라 카라는 허리우드 탑스타에 당시 프랑스에서 브리지드 바르도와 쌍벽을 이룬 배우, 밀레느 드몽조가 데이빗 니븐을 사랑하는 여인으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슬픔이여 안녕'에서 '안녕'은 이별하는 안녕 Adieu 가 아닌 만남의 안녕 Bonjour 이다. 세실이나 레이몬드는 여전히 자유롭고 분방하게 즐기며 살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진 않을 뿐이지, 그들은 지난 여름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17세 여름, 슬픔의 세례를 받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의구심을 품은 소녀 세실. 그리하여, 이 영화를 다 본 뒤,'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란 의문을 품은 세실에게 그 답으로 정호승의 시를 들려주고 싶어졌다.
이렇게 시작하는 시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되는 시,바로 '슬픔이 기쁨에게' 이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세실 그녀가 슬픔을 인생의 한 동반자로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 지난 여름의 슬픔, 그것은 세실에겐 성장통을 의미하는 것이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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