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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중국 베이징에서 능지처사의 형벌이 있었다. 유럽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이 형벌을 프랑스 군인들이 사진기로 찍었고 이 사진은 감각적 향락과 충격을 원하던 19세기 말 유럽의 세기말적 성향과 맞물려 '수플리스 시누아(supplice Chionis)'-중국의 형벌로 불리며 중국인이 '세련된 잔혹성'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유럽인들의 인습적인 사고의 원형이 되었다.
능지처참의 형벌은 중국내에서도 끊임없이 폐지론이 논의되어왔던 형벌이었으며 프랑스군인들이 사진을 찍었던 왕 웨이친의 처형은 중국(청왕조)의 마지막 능지처사였다. '능지에 의해 처형한다'는 뜻을 서양인들은 '천 번을 절개해서 죽임(death by a shousand cut)', '살을 저며서 죽임(death by slicing)' 또는 '서서히 죽임(the lingering death)'등으로 다양하게 번역했지만 이 중에 능지처사를 정확하게 묘사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살을 저미는 동안 죄수를 내내 살려두지도 않았지만 그 이전에 상당한 양의 아편을 복용시켰다. 또한 능지처사라는 형벌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경우였다.
유럽의 형벌체계에서 육체를 잔인하게 처벌하는 관행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계몽주의로의 변화가 바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조건에 조금씩 적응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인데도 이 이미지는 19세기의 유럽이 바라보는 중국은 잔인한 이미지로 굳어져버렸다. 유럽은 이후에도 이런 자극적인 이미지를 엽서 형태로 계속 찾았고 소비되었다. 능지처참의 형벌의 끝을 보고 오히려 유럽은 중국의 잔혹한 면을 두드러지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문화적 우월성이기도 하지만 사고관의 다른 점을 고려하지 않은 상대적인 문화성을 무시한 결과이기도 했다.
p57. 시각적 이미지의 유사성은 상징적 차이를 은폐한다. 십자가에 못박히는 형벌은 유럽의 철학적 미학적 원리를 가지고 있었고, 유럽인들은 19세기에 중국에서 본 것에도 동일한 원리를 적용하였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한편으로는 그런 종류의 몸서리쳐지는 형벌들을 서양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도 그러한 형벌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지적했던 것처럼, 형벌은 육체가 아닌 정신에 작용해야 한다는 세자르 베카리아(Cesare Beccaria)의 명령을 따라서 서양의 형벌체계는 공개적으로 육체를 처벌하는 데서 감옥에서의 비인격적 감시라는 처방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일단 유럽 방문객들이 능지형의 사진을 찍어 일종의 진기한 구경거리(특히, 우편엽서의 형태)로 유럽에 유포시키자, 가학적 처형은 단지 법률 분야뿐 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중국의 비인간성과 야만성을 상징하는 독특한 문화적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p59.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화가 강요하는 렌즈를 통해 그러한 장면들을 본다. 이 렌즈는 우리가 보는 것을 틀에 맞추어 이해하고 비교하도록 만든다.
p59. 비교의 도전은 단 순히 다른 쪽에 대한 한쪽의 타고난 우월성을 재확인하는 작업이 아니라 다른 쪽을 새로운 견지에서 조명할 수 있도록 각각의 측변을 모두 이용하는 기회로서 간주할 수 있는 베이스라인을 설정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탈랄 아사드(Talal Asad)가 주장한 것처럼, 가학적 처형의 비교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항상 유럽에 비해 불리하게 비교되는 유럽 이외의 지역 문화들과 관련하여 고통과 잔인성에 대한 자세한 민족학(eghnography)적 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토대가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제대로 비교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이런 불합리한 시각에서 우리도 예외일수는 없다. 이는 이해받기 위한 입장에서도 그렇고 이해하는 입장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마루야마 마사오의 <civilization을 완성된 일정한 형태가 아니라 civilize해가는 것이라는 식으로 동사의 명사화로 파악하고 있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점이 떠올려지는 부분이다. 이때문에 우리는 서양의 중국의 혹형에 대한 오해를 살펴보고 중국의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시선을 이해해봐야 한다.
서구와 중국의 이해의 차이 서구 학자들은 능지형이 왜 가장 무시무시한 형벌인지 설명하지 못하고 신체훼손적인면이 내세에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라는 후퇴적인 설명을 이유로 들었다. 이는 기독교의 부활의 의미로 중국인의 내세관을 이해, 육체가 죽어서도 고통을 느낀다고 이해한 잘못된 기독교적인 해석이었다.
18세기 후반부터는 점점 더 많은 서구 저자들이 중국을 동양적 전제주의의 본보기로 간주하였고 고문과 혹형을 아시아의 전형적 관습으로 여기는 철학적 관념이 나타났다. 정치문화의 측변에서 자연적 정의(natural justice)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관념에도 아시아와 유럽이 차이를 드러내는데, 이는 19세기 전환기에 즈음하여 아시아의 정치문화에 대한 유럽인이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p311. 관료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하인들이 대신 매를 맞는 광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 관료는 상한 음식을 사절단에게 공급하도록 내버려둔 직무 태만으로 인하여 강등당했다. 영국인이 느끼기에 하인들이 대신 처벌받는 것은 '영국인의 감성에 크게 반하는' 것이었으며, '전제 권력'의 잔혹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편, 매카트니 일행의 일행의 하급 수행원이었던 이니어스 앤더슨은 매카트니의 장교들이 제임스 쿠티 상병의 등에 50대의 채찍질을 가하는 것을 보고 중국인들은 크게 충격받았다고 썼다. ...매질을 지켜본 한 중국인 관료는 서툰 영어로 "영국인 너무 잔인해, 너무 나빠"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조르주 바타유의 해석-오인된 정체성(mistaken identity) 고문당하는 개인의 정체-'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이다' 시각예술과 문화에 대한 연구의 선각자로 유명한 조르주 바타유의 <에로스의 눈물>은 커다란 충격이 되었고 이후 여러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유명한 철학자 장-투생 드상티가 조르주 뒤마의 <심리학 개론>을 인용한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조르주 바타유의 <에로스의 눈물>를 인용하며 혼동한 예를 들어 <에로스의 눈물>의 영향력을 볼 수 있다. p412. 그 책을 실제로 읽은 사람들과 별개로, 그 책에 관해 들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그 책의 제목이나 저자를 정확하게 모른 채 '그 책을 아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우리가 여기에서 그 이야기를 떠올리는 이유는 그 이야기가 아무리 '잘 알려진' 이야기이고 많은 살마들이 믿었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된 이야기일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에로스의 눈물>에 연달아 실린 푸주리(능지처사)의 인물들은 각기 다른 사람들이었고 조르주 바타유의 본래 글들과 순서가 맞지 않는 뒤죽박죽 편집이었다.
<에로스의 눈물>의 저자는 누구인가? 능지처참의 저자들은 <에로스의 눈물>이 나쁜 취향에서 비롯된 추악한 작품이라는 견해를 밝힌다. '저자'와 '편집자'를 구분하는 것은 모호한 듯 보이지만 바타유가 선택한 사진이나 차례가 아니었다는 점과 바타유가 아닌 다른 이가 쓴 글을 바타유의 글과 뒤죽박죽 이어 붙였다는 의혹에 대한 증거들을 볼수 있다.
페르소나적 정체성 p432. '황홀한 고통(ecstatic suffering)'이라는 관념은 분명히 가면 뒤의 자아를 함정에 빠뜨리는 해석이다. 이런 해석이 바타유의 것이라는 생각이 미심쩍었는데, 우리가 예상한 대로 이제느 명백해졌다. p434. <에로스의 눈물>에서 고통을 수반하는 '관능적인 황홀경'에 대한 주장도 똑같은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p435. 신빙성을 가지기위해서 많은 관찰이 필요함에도 두 장의 사진으로만 그것도 이미지에 대한 주관적이고 의심스러운 해독에 근거한 오류를 범한 이 사례다. 뒤마와 바타유,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가 저지른 기본적 오류는 그 사진들을 있는 그대로-현실의 객관적 재현으로-받아들였다는 것이며, 비판의 초점을 그들이 보고 있는 사진에 맞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진을 통해서 증명하고자 하는 것에 맞추었다. 적어도 이 경우에는 그들은 사진을 찍고자 하는 사진사의 결심과 찍는 방법, 그리고 다양한 매체를 통한 사진의 소비에 이르기까지 연장되는 일련의 사진술의 과정이 재현의 사이클을 생성해 내고 있다는 것을 상상살 수 없었다. 보편적인 문화적. 도적적.종교적 배경이 이 재현의 사이클을 결정하며 사진에 찍힌 장면의 실질적 의미를 재정립한다.
이 능지형에 대한 최초의 해석은 처형이 발생한 6개월 후에 청소년을 위한 백과사전에 실렸다. 대중적인 젊은 독자층을 겨냥했기에 사진이 아니라 처혀의 가장 기억할 만한 부분을 묘사하기 위해 그림을 집어 넣었는데 이 그림은 사형수의 황홀한 기쁨이 표현된 얼굴 이라는 해설이 달려 있었다. 삽화가는 사진의 윤곽선을 따르고 있어 원래 사진과 상당히 유사한듯 보이나 사진과 그림의 얼굴 표정을 비교해 보면 그 유사성이 완전히 형식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사실상 고통에 관한 표준적인 기독교 미학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에 재현된 것은 실제 사람의 얼굴을 모호하게 만드는 가면-페르소나-인 것이다. '황홀한 기쁨'은 가면의 표정이지, 실제로 고문당한 중국인 사형수의 표정은 아니다. 즉 보고자한 자가 보고싶어한 꾸며진 표정이었을 뿐이다.
p17. 동양적 혹형의 묘사를 통해 동양의 야만성과 잔혹성을 주장하는 서구 기록을 강력하게 반박할 만한 우리-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도-의 기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형벌, 특히 범법자의 육체를 가혹하게 처벌하고 훼손하는 육형-곤장 매질로부터 능지처참에 이르는-이 보편적이었던 사실을 상기할 때, 그리고 우리에게 아직도 그 아득한 형벌의 기억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시인할 때, 이 같은 침묵은 뜻밖일 뿐 아니라 충격적이다.
이런 침묵은 조심스러운 문화적 금기에 가까운 것이지 고의적인 제도적 은폐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침묵이 앞으로도 지속되고 문화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며 결국 제도적으로 이용된다면, 저자들이 지적한 '동아시아의 사법 전통'의 그늘 아래 인권 침해의 엄연한 현실이 은폐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이런 침묵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능지형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말이다. 사극에서 능지처참에 처하라! 라는 대사 한번쯤은 들어봤슴직하지 않은가. 이 책에서 바다에서 표류하다 명나라를 방문하게 된 조선인이 법정에 진열된 형벌도구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는 기록을 언급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사극에서 형벌의 수단으로 주리를 튼다거나 곤장을 때리는 광경은 매우 익숙하다. 또한 가부장적 환경에서의 체벌과 학교에서의 체벌역시 여전히 남아있다. 비단 사형문제에까지가 아니더라도 능지형의 형태는 우리의 생활적인면 구석구석 잠재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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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국대 문창과가 사라진다고 한다. 국문과와 통합한다고 한다. 통합 근거 중 하나가 취업률, 재학률이라고 하니 나는 반댈세. 평소 문창과가 한국 문단에 긍정적인 영향 못지않게 부정적인 면을 많이 끼쳤다고 생각하고 - 창작을 해야 할 작가가 강단에서 수업 때문에 글을 못 쓸 뿐더러, 작가 지망생인 학생은 등단을 위해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데 급급하다 - 대학의 학문으로써 문예창작학이 성립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나는 부정적이기에 원칙적으로는 문창과가 없어지는 게 맞다고 본다. 하지만 그 원인이 취업률, 재학률이라면 일방적인 통폐합에 찬성하면 안 된다. 마치, 노무현을 탄핵해야 맞지만 그 주체가 한나라당이 아니어야 했듯.
# 2. 대학생으로 이루어진 토론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 때 - 라고 한다면 노친네 냄새가 풀풀 풍기지만 - 는 최소한 네그리, 하트의 『제국』을 읽고 토론했다. 우리 과의 특수성 때문은 아니다. 많은 학교 학생이 그랬다. 하지만 이 모임에서는 커리도, 오가는 담론도 하나 같이 시시하기 그지 없었다. 논술 학원에 다니는 학생이 차라리 좀 더 괜찮은 모임을 꾸렸을 법하다. 인문학이 망한 건가, 대학생 교양 수준이 후퇴한 건가, 그 모임 자체가 문제였나.
'기업도 인문학적 소양을 신입사원의 중요한 스펙으로 본다' '고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책을 읽어야 한다'
뭐냐, 이게.
# 3. 그래서 네가 생각하는 인문학이 뭔데? 라고 물으신다면 '절망하고 체념하는 법을 성의 없게 가르치는 학문'이라고 답하겠다.
엄청난 편견과 오해로 가득찬 내 나름의 이해는 이렇다. 기독교 신앙과 그리스 철학 그리고 로마의 실정법으로 뭉친 유럽이 있다. 신분제였고 봉건제로 굴러가던 유럽. 그러다, 어? 어떻게 된 거지 하고 생산양식은 자본주의, 정치체제는 자유민주주의, 이지만 실은 제국주의였던 유럽이 나머지 세계를 점령한다.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 분절할 수 없는 연장이지만, 중세와 근대 사이에는 여전히 학자가 채워야 할 많은 공백이 존재한다. 당연히 흥미로운 요소도 많다. 예컨대, 유럽이 중국을 스윕했다 생각했지만 실은 중국의 이신론적 전통이 유럽의 계몽주의를 자극했다. 비록 근대의 하부 토대가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에서 발생했다 할지라도 상부 구조는 청나라가 무매몽매한 유럽을 일정 부분 가르쳤다. 그리고 그 이신론적 전통 - 특히 성리학 - 은 유교가 불교라는 외래 종교에 맞서는 과정에서 형이상학적으로 세련화된 형태, 고로 어쩌면 말이다. 인도 우파니샤드 - 불교 - 중국불교 - 성리학 - 계몽주의 - 독일 관념론, 영국 경험론 - 실존주의, 해체,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등으로 볼 수도 있지 않느냔 말이지. 연대기 순으로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 애들은 정립이든 반정립이든 종합이든간, 마지막에 섰다는 점에서 극복하거나 저항하거나 폐기해야 할 텐데 쉽지 않도다. 고로, 인문학은 '절망하고 체념하는 법을 성의 없게 가르치는 학문'이다
# 4. 오래 오래 돌아, 이제 티모시 브룩, 그레고리 블루, 제롬 부르곤이 함께 쓴 『능지처참』 이야기를 하자. 왜 말도 안 되는 잡설을 꽤나 길게 늘어 놓았을까.
이 책은 계보로 따지자면, 탈식민주의의 언저리에 놓아 둘 만한 책이다. 이상하다. 탈식민주의라 함은 타랄 아사드, 호미 바마, 에드워드 사이드, 가야트리 스피박 등 비유럽인이 대부분인데. 이 책의 저자. 적어도 이름에서는 그런 흔적이 안 나온다. 예스24 작가파일을 보니 티모시 브룩은 완전 서구인이다. 오, 이런 자기 반성적인 지식인이군. 마음에 들어.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능지처참을 하는 중국인은 야만인이고, 야만과 계몽이라는 이분법은 백인제국이 식민지를 지배하는 데 정당성을 부여해 준다.
정도다. 물론. 책이 담는 내용은 훨씬 풍부하다. 아니, 위의 문장에서 시작해 보자.
우선 능지처참. 법률이 개인의 신체를 통제하는 형벌이다. 중국은 표면적이라고 할지라도 지도부가 법가를 표방한 적이 없다. 형벌 사용을 가능한 한 피하려 했고, 법률이 정하는 사형에 해당하는 사건이 아닌 한 사형을 집행할 수 없었다. 사형의 형식 또한 마찬가지다. 서구인이 중국인의 잔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광범위하게 유포한 보편화된 사형 형태로써의 능지형은 과장이었다.
유럽은 '지난 시대의 범죄'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유럽의 믿음으로부터 나온 도덕적 겸양은 유럽인들이 식민지에서 원주민을 정복하고 고문했다는 사실에 의해 단번에 퇴색되어 버린다. (67쪽)
중국인의 관점에서 볼 때, 처벌은 범죄가 사회에 끼칠 윤리적 파장에 대한 예상 뿐만 아니라 범죄의 심각성에 따라 신중하게 등급을 매긴 것이었다. 따라서 명청시기 중국의 사법제도는 제멋대로 형벅을 부과하지도, 일상적으로 처형하지도 않았다. (91쪽)
그렇다면 서구인은 왜 능지형에 그렇게 집착했을까. 에드워드 사이드의 『문화와 제국주의』 논의를 참고하면 답은 명백하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았든 중국을 타자화함으로써 백인 제국이 유색인 식민지를 지배하는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담론은 효과적이었다. 푸코의 지식 - 권력 담론과 궤를 같이 한다.
청왕조의 마지막까지 능지형은 존속되었고, 19세기에 상당수의 유럽인들이 중국을 방문해서 능지형 처형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고통을 가하는 가학적 처형이 더이상 행해지지 않고 용인되지도 않았던 나라에서 온 유럽인들은 당연히 충격을 받았다. 그때 능지형은 중국이 야만적이고 서구보다 열등하다는 최악의 문화적 편견을 재확인하는 역할을 하였다. (중략) 그러니 19세기의 유럽인들이 명태조가 백성들의 태평성대를 실현하기 위하여 관료들의 비리를 뽑기 위한 방편으로 능지형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230쪽)
# 4. 『능지처참』은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 이 책에 달린 리뷰 중 어떤 글은 정말 지루하고, 쓸모 없었다고 지적했지만. 뭐 그럴 수 있지. 저자의 논의를 따라 가며, 스스로 물었다. 왜 저자들은 이 책을 썼을까. 대답은 군데 군데 나온다. 편견과 오해 없이 중국을 바로 보겠다고.
당연하다. 학자라면 의당 그렇게 해야지. 철학의 뜻이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라 하지만, 모든 학문은 진리를 사랑한다. 문제는 진리든 지혜든 얻는 게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파탄 난 주체 위에서 어떻게 학문의 객관성이 획득될 것인가. 자연과학도 그런데 인문학이야 오죽 하리.
저자들은 중국 그대로의 중국과 대면하기 위해 이 책을 썼겠지만. 항상 논의는 제자리다. 식민이라는 경험 - 물론 중국은 엄밀히 말하자면 조선과 같이, 국가 전체가 식민지로 전락한 경험은 없다 - 을 안은 사회는 전통 - 수정 - 신전통(이라곤 하지만 전통과 별반 다르지 않은 신전통) 이라는 논의를 반복한다. 한국이 식민사관 - 자맹론, 내재적 발전론 - 뉴라이트 순으로 역사 전쟁을 펼쳐 왔듯 말이다.
능지처참도 마찬가지다. 서양이 중국인을 미개화한다. 아니, 중국은 나름의 자율적인 윤리와 경제구조로 훌륭하게 운영되던 곳이다. 아니, 그럼에도 능지형을 사용했던 너네의 잔혹함이 덜해지는 것은 아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라곤 하지만. 어쨌든 유럽이 보다 일찍 문명 - 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 을 선취한 것은 사실이지 않는가.
# 5. 최근에 중국이 궁금하다. 중국이 제2의 경제대국, 미국을 초월할 초강대국, 이라는 세속적인 관심 때문은 아니다. 진나라 이후, 어떻게 2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저토록 광대한 영토를 하나의 정치 공동체 - 때론 분열하는 기간도 있었지만 - 를 이루며 살았을까, 하는 관심. 항상 동양학 개론 시간에 답은 먼저 정해져 있다. 유교, 한자, 조공. 그러나 이런 답을 알지만 각론이 궁금하다. 올해 목표는 중국의 효율적인 통치가 어떻게 가능했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아마 이산에서 나온 책이 도움을 줄 듯하다.
# 6. 그밖에.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서구의 학문적 관심은 근대 초기에 중국 형벌의 합리성과 일관성을 강조하는 것으로부터 18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잔혹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현저하개 변화해 왔다. 17세기에는 일반적으로 곤장과 칼을 관료가 국가를 대신해 사용할 수 있는 중국의 대표적 형벌로 간주했으나, 18세기 중반에 오면 곤장이나 채찍으로 매질하는 형벌을 전제 정부의 결정적 표지라고 여겼다. 19세기 초에 오면 중국의 형벌과 사법 절차는 일반적으로 '동양적' 전제주의의 결과라고 여겼으며, 잔혹성이 팽배한 사회의 '퇴보적'이고도 '반(半)야만적'인 본성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그러한 평가가 시각 자료와 논문 형식으로 표현되었을 때, 공포와 혐오감 같은 상당히 강력한 감성적·미학적 반응 - 그러한 반응은 대개 징고이즘적 식민주의(jingoistic colonialism)의 이익을 위해 이용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반식민주의적 소설가가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한 공포와 혐오를 일으키는 기술 중 가장 극적인 것이 능지형이었다 - 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적어도 실제로 중국에서 시행된 제도에 근거하고 있었다. 중국적 '정의'의 세련된 교묘함을 입증하기 위해서 미르보가 그의 소설 절정 부분에서 재현했던 것은 바로 능지형이었거나, 아니면 그것과 매우 유사한 어떤 것 - 『옥력』에서 찾을 수 있는 살가죽 벗기기와 사지 절단 - 이었다. 이런 형벌은 식민지 인도에서 행해진 천박하고 둔감한 형벌과는 대조적이었다. 인도에서는 1857년 대반란 때 체포된 반란군을 대포의 총구에 묶은 다음 대포를 쏘아 그들을 조각조각 날려버렸는데, 이 형별의 목적은 단순히 영국인 구경꾼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였다.
19세기 중국 전문가들이 중국의 고문과 혹형에 관해서 모두 똑같은 관점을 고수했던 것은 아니다. 중국의 고문과 혹형을 완전히 비난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제한적으로 비판은 했지만 중국 민족을 감시하고 지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옹호하는 입장을 취했다. 양자의 태도는 명백한 대조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양자 모두 서구 제국주의의 의도에 잘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직설적 비난은 '문명화 의무'라는 강력한 원칙에 잘 들어맞았고, 제한적 지지는 비서구 민족들을 지배하기 위해서 물리적 힘이 필요하다는 일반적 신념과 일치했다. 이러한 신념은 홍콩 정부와 개항장의 필요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유럽 이외의 문명과 유럽 식민지의 낮은 수준을 가정하는 식민주의적 사고방식에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중국의 고문과 형벌은 중국에 거주하는 서구인의 치외법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되었다. (중략) 동시에, 지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19세기의 저명한 저자들 - 중국 전문가를 비롯한 여러 저자들 - 은 우리(서양, 유럽 문명)와 그네들(중국인, 아시아인, 동양인) 사이에 절대적인 격차가 있다는 견해에 도전했다는 사실이다. (중략) 역사 기록은 쉽사리 공포로만 치환될 수 없는 폭넓은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 - 오만, 혐오, 호기심, 심지어 동정심까지 포함하는 - 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식민지 시기의 복합적 정신 상태와 심리 구조를 어떤 한 가지 정서로 환원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360-363쪽)
청대의 처형은 세속적인 사법적 행사였고, 종교는 그런 행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아마도 이점이 유럽의 기대수준에서 볼 때, 청대의 처형이 단순한 도살로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392쪽)
중국적 처형은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행사도, 군중과 죄인 사이의 모방적 동화를 위한 행사도 아니었다. 그것은 의례적인 법률의 집행이며, 혹형은 형법에 제시된 대로 형벌이 범죄와 부합한다는 원리에 따라 정당화되었다. (4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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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그래도 많이 낫아졌지만 중국에서 공부하고 생활했던 서방 출신 중국 전문가들을 보고 있으면 지극히 오리엔탈리즘에 빠진 경우를 볼 수 있다. 물론 중국이라는 하나의 큰 문화권을 그 어떠한 오류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이해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무리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리저리 생각하다보면 아무래도 특정 주제별로 파고들어가 비교 연구를 하는 것이 그나마 그런 오류에서 한 발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한 방편이라고 본다.
티모스 브룩의 이 책(Death by a Thousand Cuts)은 그가 서양인 중국학 전문가이기에 가능한 작품일지 모르겠다. 일단 주제로서 형벌 특히 이런 극형(능지처참)이나 사법제도는 중국학 아니 동양학에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다. 물론 그런 연구 지향성의 호오까지를 평하고자 하는 바는 아니다. 역자(박소현)는 이 책은 “동아시아의 형벌과 사법제도에 관한 서구적 관점은 그 오점투성이의 선정주의적 접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오랜 침묵을 깨는 계기가 되었다.”(p.18)고 평가하고 있다. 역자의 이런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서세동점의 정치적, 사회적 위기 상황 속에서 서양인에게 동양의 모습은 거의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면서 한편으로는 야만의 것이었다.
특히 극형과 같이 지극히 자극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뭇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하다. 책에서 다루어지는 텍스트로서의 내용과는 별도로 왕웨이친의 처형 사진 및 기타 다른 사진들에서 더욱 전해지는 그 뭔가 찌릿함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즉 이 책은 “텍스트보다도 그 이미지가 크게 부각된다.”(p.15)는 점만 봐도 다소 말초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제목과 머리말을 통해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부분을 ‘능지처참의 역사’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 책은 약간 궤를 달리한다. 1900년대초 거의 마지막 능지처참 죄수라고 할 수 있는 “왕 웨이친의 처형으로부터 중국 형벌의 역사를 (간단히) 거쳐, 지옥의 형벌을 묘사한 <<玉曆>>이라는 종교적 텍스트로 우회한 후, 유럽에 널리 퍼진 ‘중국적 잔혹성’의 신화가 만들어지는 과정, 그 혼란스러운 지식과 오류의 계보학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거쳐, 종국에는 다시 능지형 처형으로 돌아간다.”(p.14)
중국 형벌 역사에서 보면 능지형은 가장 잔혹한 범죄로서 각인되어 있다. 말 그대로 대역죄를 지은 죄인만이 받는 극형 중에 극형이다. 이러한 형벌은 사실 죄에 대한 죄값이라는 의미(죽을 자에 대한 심판)보다 살아있는 자들에 대한 경계, 경고의 성격이 더 강하다. 실제로 이미 죽어 있는 사체를 훼손한다는 것은 사형수에 대한 고통의 증가와는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네 인식 속에 깊이 박혀있는 능지형의 역사가 생각보다는 그리 길지 않고 그 빈도수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비공식적인 처형을 제외하고 문헌으로 고증 가능한 부분을 거슬러 올라가면 능지형은 송나라 시기를 넘어가기 힘들다.(p.5)
전체적으로 6장과 8장에서의 유럽중심주의적 사고와 글의 전개 방향에 다소 적응이 안될 수 있지만 읽다 보면 서양인이 중국으로 대표되는 동양을 이해하는 관점을 역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단순히 오리엔탈리즘에 빠진 책이라고 간단히 한 마디로 정의해버리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책이라고 하겠다. 각 장마다 표시된 주석들을 보아도 단순히 상식이나 재미 차원에서 읽는 책은 아니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자료들을 보면 하나의 논문으로 보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개인의 실존의 위협 상황에서 죽음은 살인, 자살, 사형 등 여러 측면에서 깊이 있게 다가오고 있다. 특히 강력범죄의 증가로 인한 사형제 폐지의 이슈와 관련해서 이 책은 좋은 질문을 던져준다. 개인적으로는 형벌의 의미와 사형제 문제를 대비시켜가면서 읽었는데 생각의 포인트를 잡고 읽어나간다면 더욱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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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원제가 Death by A Thousand Cuts이다. 물론 영어 원제도 바로 그, 중국에 존재했던 그 혹형을 가리키는 뜻이 맞으며, 이 책의 주된 내용도 그를 소재로 하고 있음이 맞다. 그러나 영어 원제로만 보면 그 이상, 혹은 그 외의 다른 대상, 최소한 심상을 어느 정도 암시하고 있으며, 이 한국어본처럼 살벌한 첫인상만을 던지지는 않는다. 최소한 표준적인 미국인, 영어 사용자라면 "무슨 뜻이지?" 하는 반응이 정상일 것이며, 우리 사정처럼 책제목에서 대뜸 "헉!"하고 놀라지는 않으리라는 게 내 짐작이다. 중국의 혹형에 대해서는 (지금은 절판되었으나) 심도 있게 다룬 책이 이미 우리 나라에서도 몇 권 나왔으며, 근래 TV 드라마에서 거열형(우리 나라에서는 이를 '능지형'으로 보통 인식한다)이 몇 번 재연되는 바람에 일반인들도 필요 이상의 관심을 갖게 된 측면이 있다. 아마 다분히 그런 마이크로트렌드를 타고 이 책이 새삼스럽게 국내에 소개된 배경도 있을 테고, 호기심에서 이 책을 접하는 층도 적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책은 물론 19세기의 일부 기간 동안 타의에 의해 외부에 개방되는 운명을 겪었던, 중국의 감추고만 싶은 속살 그 대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은, 앞서 언급한 기술적 미시 제도사에 그치는 저술이 아닌, 개별 제도의 이면에 숨은 역사의 거대한 맥락과, 이를 우월적 타자의 입장에서 격리적 시각으로 분석, 관찰했던 당대의 서구인에 대한 통찰을 담은, 인문학의 담담한 미학적 술회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공저자 중 한 명인 티모시 브룩도, 흥미 위주의 미시사에 일시적 천착의 기분으로 시선과 붓끝을 경주하는 아마츄어가 아닌, 중국 근대사에 정통한 세계적으로 손 꼽는 석학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저서는 우리 나라에도 이미 여럿 번역 소개된 바 있고, 대부분 날카로우면서도 참신한 각성을 독자에게 환기하는 깊이 있는 책들이다. 이 책의 제목에 대뜸 천박한 호기심으로 끌리거나, 섣부른 거부감을 드러내는 두 태도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전혀 차분하지 못한 소재를 두고, 선불교의 명상 만큼이나 관조적 태도로 적지 않은 볼륨을 가득 채우는 보기 드문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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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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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지처참 오늘날 혼탁한 사회일수록 잔혹한 범죄가 연일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데, 바로 이놈들을 능지처참해야 할 놈들이다. 인권이니 어쩌고 하는 핑계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놈들이기 때문에 사형확정 판결을 받은 자는 하루 속히 집행해라. 사지 비틀기, 귀 잡아떼기, 굶겨죽이기, 교수형, 산 채로 살가죽 벗기기, 끓는 기름 끼얹기, 창자 꺼내기, 몸 두 동강내기, 전체 절단형, 살 저름3천조각내기, 꼬챙이로 살가죽 꿰뚫기, 몽둥이로 두들겨 패기, 송곳을 불에 달궈 쑤시기, 인두로 지지기, 등등 여러 가지 혹형이 옛날에는 자행되었지만 오늘날에는 다 사라졌다. 그러나 딱 한 놈에게 이러한 형벌을 가해야 할 놈이 있다. 바로 김정일 괴뢰도당이다. 바로 죽일 것이 아니라 한 3일 서서히 고통을 줘가며 집행해야 한다. 봉건 왕조시대의 유일한 체제유지 수단은 곤장과 채찍이었다. 중국의 봉건 왕조는 이러한 형벌 수단을 수시로 자행했는데, 위 와 같은 공개처형이 이루어지는 날에는 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으며 집행자나 구경꾼들은 동정을 보내기 보다는 히히덕거리며 웃고 즐겼다고 한다. 살을 한 저름씩 베어 군중 속에 던지면 서로 주우려고 아수라장을 이루었다고 한다. 19세기 말 20세기 초까지도 자행되었던 능지형은 사라졌지만 이러한 형벌이 아직도 자행되고 있는 곳이 딱 한곳 있는데 바로 북괴이다. 탈북자들은 보위부에 끌려가 두 손이 뒤로 묶여지고 얼굴이 가려진채 무자비한 몽둥이질로 매질을 당하고 있다.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며 머리채를 잡아끌고, 각목으로 몸둥이를 사정없이 패는 등 잔혹한 고문이 자행되고 있다. 이러한 비인권적인 고문과 형벌이 없어져야 하지만 동토의 땅 북한에는 지금 이 시간에도 무자비하게 자행되고 있다. 이 책은 서구의 형법학자들이 고대 중국의 잔혹한 형벌 실태를 보고 몸서리를 치고 진저리를 느끼지만 형벌의 비교에서는 서구나 중국이나 엇비슷한 정도인 것으로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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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게 무척 망설여졌다. 이 책을 그 동안 나온 무수한 오리엔탈리즘 담론의 하나로 치부해 버릴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허나, 어쩌랴. 짧은 내 어휘력을 한탄해야지.
'능지처참'이란 'Death by a Thousand Cuts'이라는 제목 그대로 사형수를 묶어 놓고 살 조각을 천 조각 내서 죽이는 사형제도다. 초기에 죽여서 절단한다는 얘기도 있고, 끝까지 안 죽인다는 얘기도 있으나, 내가 보기에는 마약을 먹이고 초기에 죽여서 절단한다는 얘기가 맞지 않나 싶다. 그렇게 믿고 싶다.
요점은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중국이 실제로 그렇게 사람을 죽일 정도로 막되먹은 민족인가? 둘은 서구는 왜 중국을 어떻게 보았나?
먼저, 중국은 실제로 사람을 천 조각 내 죽였다. 특히, 명대 홍무제 때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되는 대로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 것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치열한 논의와 사법적 절차가 있었다. 서구인들이 생각하는 대로 중국인들이 생각 없는 민족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중국의 사법체계는 서구보다 더 정교하다. 추가적으로 서구도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즉 교정이 아니라 교육으로서 사형이 사라진 것은 19세기에 와서다.
둘, 서구는 왜 중국을 그렇게 막 나가는 민족으로 보았나? 여기서 오리엔탈리즘이 작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식민주의의 합리화도 작용한다. 즉, 걔들은 원래 그러니 말로 안 되고 무력으로 우리가 지배해 가르쳐야 한다는 논리다. 이외에도 이유는 많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서구의 기독교적 해석이 동양에 적용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 자체가 폭력이다. 서구의 사형은 하나의 연극이다. 사형수는 참회하는 성스러운 표정을 지어야 하고, 용서받고 회개하는 표정을 지어야 한다. 그것을 통해 구원받는다. 그런데, 능지처참형을 받는 죄수의 표정은 너무 무덤덤하고, 주위의 구경꾼들로 너무 무덤덤하다. 더구나, 약초를 죄수로부터 나오는 피에 묻혀 먹기도 한다. 서구는 그것을 이해 못 했다. 어찌 그렇게 무덤덤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서구인들이 이해 못 한 것은 중국의 사형 제도가 말 그대로 법적 제도라는 것이다.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고, 그 목적은 다른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는 것 뿐이다. 죄수가 내부적으로 회개하느냐 안 하느냐는 관심 밖이다. 생각해 본다. 서구의 사형 장면이 더 참혹한가, 동양의 처형 장면이 더 참혹한가. 어쨌든 서구는 이런 중국의 처형 장면을 보고 역시 도저히 이해 못 할 민족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추가적으로, 책은 '능지처참'이라는 사형제도가 어떻게 서구에 왜곡되어 받아들여졌는가를 정밀하게 추적한다. 재미있었다. 다만, 별 네 개를 준 것은 개인적으로 소재는 흥미로웠으나, 주제는 상대적으로 덜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참고로, 조르즈 바타유의 '에로스의 눈물'을 읽으려고 생각한 사람은 신중하게 생각하기를 바란다. 이유는 이 책을 읽어 보시라. 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