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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곳은 어디서나-일본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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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 가면서 일본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기에, 이 책도 제목만 보고 마음이 무척이나 끌린 경우이다. 그래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고, 그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역사의 대강은 알고 있는 것이기에 쉽게 다가가지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책장을 펼쳤다. 물론 통시적으로 역사의 흐름을 기술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기득권 중심의 역사였다.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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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 가면서

 

일본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기에, 이 책도 제목만 보고 마음이 무척이나 끌린 경우이다. 그래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고, 그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역사의 대강은 알고 있는 것이기에 쉽게 다가가지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책장을 펼쳤다. 물론 통시적으로 역사의 흐름을 기술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기득권 중심의 역사였다. 이 책은 정반대의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기득권이 아니라 지배를 받는 세력들의 집단, 그것이 모델이 되어 그려져 나가고 있었다. 하여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용어들이 새로웠기에 하나하나 이해를 해나가면서 읽어나가려니까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일본어를 잘 하면 읽기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가 있을 듯했다. 용어들이 모두 일본어로 되어 있으니까. 허나 그렇지 못한 나는 힘 드는 읽음이 되니까 흥미도 많이 반감되었다.

 

흔히 하층민으로 분류되는 집단은 일반인들이 잘 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부류이다. 어느 시대이든지 어느 나라이든지 그것은 비슷하다. 일본의 경우도 다를 바가 없다. 일본에서 이들은 히닝으로 통칭되어 나타난다. 히닝(非人)은 다양한 업종으로 생활하면서 부정한, 천한 사람들로 인식되던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일컫는다. 예를 들면 도축을 하는 사람, 장례를 담당하는 사람, 예능인 등이다. 이들은 타인들과 어울려 살지 못하고 기득권의 세력을 가진 자들의 부리는 사람이 되어 따로 무리가 되어 특정한 거주지에 살고 했다. 그들은 생활하기 편한 공간에 모여 주거하면서 부락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가운데

 

고대 부락 차별의 문제는 귀화인, 노비 등의 개념으로 이루어졌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저자는 귀화인의 문제에 있어선 반대로 생각하고 있다. 귀화인(주로 삼국에서 도래한 조선인들)들에 의해서 그들의 문화가 이루어지고, 오히려 상층이 귀화인들로 구성된 것이 아닌가 얘기하고 있다. 고대 왕조가 형성되면서 그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신성시하기 위해서 다른 자들과는 거리를 두고, 험하고 부정적인 일은 힘이 없는 자들에게 시키면서 신분의 분화가 일어나게 되고 그것이 고착화되면서 신분 차별은 이루어지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 졌다. 그리고 기득권에 대항하여 자신들이 힘을 가졌을 때 또 신분의 상승이 이루어지는 일도 생겨나게 되었고, 다툼에서 패했을 때는 천인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생겨났다. 고대에도 예능인, 죽음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혐오적인 사람들로 기피의 대상이 되었고, 히닝으로 분류가 되면서, 차별을 받았다. “쇼묘지(예능인) 중에 센즈만자이(귀족의 집을 돌면서 장구와 피리 등으로 장단을 맞추고 노래를 부르는 일단의 사람들)들이 있었다. 걸식 패거리로 불려지기도 했다.” 이들은 히닝의 한 모습을 보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중세가 되면 히닝들에 대한 많은 기록도 남아 있다. “카와라모노(거주지 때문에 붙여진 천민-강변에서 살면서 도축을 했던 무리들)와 사이쿠 (집단의 성격에 의해 붙여진 친민-세공의 이을 맡아서 함)들이 존재했었고 차별을 받았다. 그런데 이들도 그들의 권익을 위해서 좌(모임)을 만들고 기존의 세력에 대항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세력은 미비하였다.” 가죽을 다루는 사람들과 도축을 하는 사람들이 그 계통으로 분류가 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그들은 천대의 대상이 되었는데, 사람답게 살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세 후기가 되면 히닝(非人), 슈쿠모노(노숙자), 키요메, 쇼모지, 하카히지리(장례식, 화장 등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가와라모노 등의 피차별민이 등장하게 된다. 이것은 슈쿠히닝(宿非人) 이외의 차별민들이 많이 등장했음을 보여 준다.” 이것은 중세 이후의 비차별민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내용이다. 다양하게 피차별민의 모습들이 제시되었고, 그들이 직능적으로 다양화되었음을 보여 준다. 특히 케카레(인간에게 미치는 일체의 악)의 문제가 히닝들의 주요 삶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염과 죽음의 케카레가 명확하게 케카레를 대표하게 된 것은 나라시대 말기라 한다. 케카레의 구조적 변혁이 일어나 고대에서는 사회의 가장 저변에 위치한 노비에게 키카레를 전가시키던 것이 중세에는 노비가 아니라 히닝에게 전가시켰다. 더구나 중세 이후에의 키카레는 죽음에 집약되어 간다. 그렇게 함으로 죽음과 관련된 모든 일들이 이들의 직종이 되어감을 볼 수가 있다. 카와타(피혁업자- 가공이 수월한 강변에 위치 정착함.) 에타(짐승의 가죽을 벗겨 파는 사람-가장 천하게 여김) 등이 그것을 잘 대변한다.

 

토요토미 정권은 농민봉기 일향봉기 등의 형태로 발전해온 민중들의 저항 운동을 해체시키는 과정에서 병농분리를 원칙으로 하는 근세 신분제도의 원형을 마련하였다. 카와타에게 피혁의 상납, 형집행역, 쵸리역(경찰역), 청소역 등을 맡게 하였다. 그러므로 근세에 피차별 부락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들을 통해서 부정적인 일들을 소화하게 했으며 그것이 막부에서도 지속되었고 막번에서도 연결되어 나타난다.

 

어떤 막번영주는 근세부락, 즉 ‘에타’ 신분 고유의 직업으로서 죽은 소나 말의 처리, 피혁업을 고정하고 강제하였으며, 고유의 역 부담으로 형집행역, 경찰역, 청소역, 가죽제공을 점차 체계적으로 강제했다. 이러한 정책을 통해 영주에 의한 근본적인 신분차별 정책이 이루어 졌다. 막번 권력의 차별적인 장치에 의해 ‘에타’ 신분의 사람들은 천민으로서 최하층의 신분으로 고정되었을 뿐 아니라 ‘부정한 사람’으로 사회에서 소외, 박해를 받았으며 더욱이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신분의 차별이 갈수록 분명해 졌으며 그것은 일반인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어 화합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들이 그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선 그들 속에서 수장의 위치를 점하고, 기득권의 고층과 연결되어 힘을 손에 쥐는 상황이 될 때 일부는 가능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세습적으로 히닝의 자리를 청산할 수 없는 굴레에 놓이게 되었고, 그런 것들이 여러 기록들을 통해서 제시되고 있다.

 

이 책은 과거 여러 서적들을 증거로 고증을 하면서 이야길 진행한다. 그렇기에 그 내용들이 설득력이 있다. 예를 들면 1735년 완성된 ‘나라방목졸해’에는 세상 사람들이 에타를 증오하는 것은 죽은 소나 말을 도살하고 혹은 단죄 형벌자의 주검을 수습하는 일을 관장하기 때문이라는 기록도 있다. 이것을 보면 히닝에 속했던 사람들이 근세에도 타인들에게 얼마나 경멸의 대상이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가 있고, 그들이 왜 분류되어 살 수 밖에 없었는가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근세에는 차별적인 법령도 만들어 졌다. 의류, 그리고 기거하는 곳, 신사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일 등 많은 차별적인 정책들이 이루어졌다. 사람이면서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그런 류의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전후 차별 부락의 이미지에는 조선인이라는 개념과 가난이라는 개념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일반인들에게 제거되어야 할 대상, 없어지면 좋을 것 같은,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인식이 팽배하였다. 그래서 곳곳에서 그들에게 노골적으로 적의를 보이는 행위들이 행해졌다. 일본인들은 아부와 과시의 특성이 강하다고 생각된다. 그것이 이와같은 상황을 연출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오늘날 히닝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이들은 이 상황에서 삶의 권리를 보장받고, 생계를 유지해 나가기 위한 외로운 투쟁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오고 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나오면서

 

어느 민족에게나 어느 집단에게나 상하의 계층은 생겨나게 마련이다. 기득권들이 그들의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삶에서 사람으로서 하기 싫은 일도 있다. 그런 일들이 보통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 의해서 행해지게 된다. 일본의 하층민들의 역사를 읽으면서, 하층민들의 놓인 위치 그들의 고뇌 등을 읽어볼 수가 있었다. 읽기가 조금 힘든 일이 있었으나 나의 문제고, 책이 참 가치가 있다고 여겨졌다. 모든 역사가 기득권 세력들을 중심으로 그려나가는데 비해서, 이와 같이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아픔을 제시하며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통찰적이다. 다시 한 번 정독을 하여 읽어보고 싶게 마음에 다가드는 책이다.

j****3 2018.05.04.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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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차별 부락민들의 고뇌에 찬 삶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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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문학을 공부하다가 재일교포의 사회적 위치와 차별 문제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가지를 뻗쳐 재일교포 외에도 아이누인, 오키나와인, 그리고 부락민 등 일본 내에서 차별당하는 집단들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책 <일본 부락의 역사>를 발견했을 때 이거다 싶어서 읽게 되었다. 시마자키 도손의 <파계>에서도 다룬 부락민 문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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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문학을 공부하다가 재일교포의 사회적 위치와 차별 문제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가지를 뻗쳐 재일교포 외에도 아이누인, 오키나와인, 그리고 부락민 등 일본 내에서 차별당하는 집단들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책 <일본 부락의 역사>를 발견했을 때 이거다 싶어서 읽게 되었다. 시마자키 도손의 <파계>에서도 다룬 부락민 문제를 이 책은 역사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고대 일본에는 오색의 천(五色の賎)이라 하는 다섯 가지 천민 신분이 있었다. 사노비와 관노비, 관호(官戶), 가인(家人), 능호(陵戶) 등의 신분인데, 이들은 조세를 부담하지 않았고 성씨를 가질 수 없었다. 일본 내에서 성씨를 갖지 않는 신분은 천황과 천민뿐이라고 한다. 또한 케가레(ケガレ)라 하는 관념이 있는데 이는 일체의 악이며 피해야만 하는 것이다. 일종의 '부정不淨'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죽은 사람이나 동물을 처리하거나 무덤 등과 관련된 일들은 모두 케가레로써 정화되어야 하고, 그러한 역할을 맡은 것이 천민들이었다. 이러한 개념은 중세 시대까지 이어져, 중세에는 꺼려하는 일을 하는 특정한 집단이 출현하게 된다. 이때는 피차별민을 총칭하여 히닝(非人)이라 했다. 이 히닝에는 나병 등의 환자들도 포함되었다. 신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죽은 사슴을 처리하는 것 역시 히닝이 했으며 오물 처리, 신사 경내 청소 등의 일도 하였다. 중세 말기에는 에타, 카와라모노 등의 피차별민 집단 역시 등장한다.

 

근세시대로 들어와서 일본은 격동의 시기에 휩싸이게 된다. 오다 노부나가, 그리고 토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천하통일 사업이 시작하였고 신분통제령이 발포됨에 따라 피차별부락민에게는 고유한 직업과 부역의 부담이 강제되었고 거주지에도 규제가 있었다.(부락민이라는 호칭은 이 때부터 사용된게 아닌가 싶다. 평민과 사는 곳을 달리하게 했기 때문에 일정한 곳에 모여 살았고, 그 마을을 부락이라 칭했다.) 근세의 피차별민에는 죽은 동물 처리와 피혁업, 신발 제조업에 종사하는 에타, 축사나 조사 등을 하고 금품을 받는 것과 넝마주이를 업으로 하는 히닝이 있다. 이들은 평민과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해 상투를 잘라서 머리를 묶지 못하게 하고, 모자를 착용해서는 안 되며 히닝이 사는 집은 가건물로 지어야 하는 등의 차별이 있었다. 그러한 에타와 히닝들과는 밥조차 함께 먹지 않았고 목욕을 하고 자는 장소도 따로 했다. 물건을 주고받을 때도 그릇 등을 사용하여 손이 닿지 않게 하였으며 돈 같은 것을 받으면 그 돈을 물로 씻었다. 또한 참 씁쓸했던 부분은, 종교적인 것으로도 계명이나 법명을 차별해서 지어줬다는 점이었다. 에타 신분 사람의 계명과 법명에는 축남(畜男)-짐승 남자, 예비녀(隸婢女)-천한 계집종 여자, 선축(禪畜), 예남, 찬드라남(인도 카스트제도의 천민), 찬드라니 등 평민에게 사용하지 않는, 그리고 뜻이 좋지 못한 단어들을 사용한 것이다. 현세뿐만이 아니라 저 세상에서까지도 철저히 차별하는 것이다.

 

참 가슴아픈 일화도 있다. 「쵸슈번의 부락민인 슈스케는 신분을 속이고 의사가 되어 부젠의 어느 마을 의사의 데릴사위로 들어갔다. 그런데 장인과의 사이가 좋지 않아서 오래 거주하면 신분이 발각될 우려도 있었기 때문에 그는 부인과 함께 도망갔다. 칸몬 해협을 건너는 지접에서 그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부인에게 이혼을 청했다. 그러나 부인은 납득하지 못하고 둘이서 슈스케의 고향 부락으로 돌아갔다. 그 후 부젠의 백부가 부인을 데리러 왔지만 부인은 슈스케와 헤어지지 않겠다고 하면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런데 슈스케는 메아카시(目明し, 에도시대에 죄인을 체포하러 다닌 하급관리)에게 체포되었으며 부인은 고향으로 송환되었다.(p.161 중 발췌)」 의사까지 될 정도면 똑똑하고 공부도 많이 한 사람이었을텐데, 백정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강제로 부인과 헤어지게 되다니 가슴아픈 일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 사회에서는 해방령이 발표된다. 그리하여 에타와 히닝 신분의 사람들도 모두 평민 신분으로 편입되었으나 차별은 여전히 만연했다. 해방령 반대 봉기도 잦았고 예전에 에타였던 사람은 '신평민'이라는 또 다른 차별적인 호칭을 갖게되었다. 부락민 출신의 교사의 고뇌를 그린 시마자키 도손의 <파계>도 이때 쓰여졌다. 그 당시 자신이 부락민 출신이라고 밝히는 것은 지금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을 하는 것보다 더욱 임팩트가 큰 일이었다. 20세기에 접어들어 융화운동 등의 반파시즘 투쟁도 빈번히 일어났다. 전쟁 후에는 부락해방전국위원회가 결성되고, 사야마 사건 등의 부락민 차별 사건을 수많은 사람들이 규탄했다. 법적으로는 부락 출신을 차별할 수 없었지만, 은연중에는 모두 차별적 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이나 회사 입사 시에 뒷조사를 하는 등의 일이 많았다. 심지어는 예전에 부락에 속했던 행정구역들을 적은 '부락지명총람'이라는 차별적인 책을 펴내는 사건도 1975년에 있었다.

 

지금도 이러한 부락 출신에 대한 차별이 일본 내에서 만연하고 있지는 않을까. 재일교포나 아이누인, 오키나와인에 대한 차별이 지금까지도 횡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부락 출신의 사람들도 어쩌면 지금도 숨죽여 살지 모른다. 사실 그동안에 재일교포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많이 읽고 알아봤어도 부락민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를 못했는데, 시마자키 도손의 <파계>와 이 책 <일본 부락의 역사>를 읽고 일본 내의 또 다른 피차별 집단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차별을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 이러한 부조리들에 대해 하나 하나 알아 나가는 것이야말로, 그러한 차별들을 철폐해 나가는 수단이 될 것이다.  



 

j******m 2010.06.1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일본 부락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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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회에 좋은 책을 만났습니다. 제 형편부터 말씀드려야겠군요. 제가 학창시절에 가장 관심도 없고, 점수도 좋지 않았고, 그래서 담당 선생님마저 미워했던...... 그 과목이 “국사”입니다. 국사는 세계사로 이러졌고, 그 후 역사, 사극 등의 말만 들어도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관심도 없고, 어렵다보니 이런 책은 솔직하게 처음입니다. 물론 현대사에는 관심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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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회에 좋은 책을 만났습니다. 제 형편부터 말씀드려야겠군요. 제가 학창시절에 가장 관심도 없고, 점수도 좋지 않았고, 그래서 담당 선생님마저 미워했던...... 그 과목이 “국사”입니다. 국사는 세계사로 이러졌고, 그 후 역사, 사극 등의 말만 들어도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관심도 없고, 어렵다보니 이런 책은 솔직하게 처음입니다. 물론 현대사에는 관심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도 잘 모르는데 일본 역사에 대한 책을 읽으려니 부담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진도가 안 나가더군요. 이해도 안 되고, 어렵고......

[일본 부락의 역사]라는 책은 사회에 꼭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고 차지하면서도 천민계층으로 밀려난 일본의 부락민과 그들을 괴롭힌 사회적 차별과 저항의 역사를 담은 책입니다. 어느 나라이든 그런 계층이 있으며, 현재에도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 차별과 사회적 편견에 대한 것은 피차별 부락민, 에타, 히닝 등 일본 내 천민 계층들의 고뇌에 찬 삶의 기록이자, 일본 고대부터 전후까지의 새로운 통사입니다. 권력에 의해서 소외되었고 배제당하고 차별당하면서 사회의 최하층으로 밀려난 부락민들......

그 고뇌에 찬 삶을 만나러 이제 저는 떠납니다.

 

아예 '신분제 밖의 계층'으로 분류될 정도로 최하층에 있었던 부락민들이 저마다 고유한 부역을 부담하면서도 지배계층의 억압에 시달린 역사와 그에 대한 부락민의 저항 과정을 보여준다.

역자는 "인간의 가치를 좀 더 나은 형태로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한다면 항상 사회의 최하층에서 온갖 모순을 끌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인간 집단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의 정책적인 대표적 차별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는 타민족 차별인 재일한국인에 대한 것, 둘째는 동민족간 차별인 피차별부락민에 대한 것, 세째는 선주민 아이누족에 대한 이니종간의 차별이다. 그밖에 오끼나와에 대한 차별등이 있다. 피차별부락의 역사는 여러설이 있고 확실한것은 말할수 없지만 중세에 있어서 천업(피혁직인, 죽세공인 등)에 종사하고 있었던 사람들을 모아 부락을 만들고 법적으로 이동의 자유,직업을 바꿀자유를 금지하였다. 에도시대에는 그통제가 더욱 엄격해져 계급적으로 차별대상이 되었다. 메이지 이후 형식적,계급적으로 해방되었으나 실질적인 차별의식은 계속되어 300만명이나 취직,결혼등 모든면에서 차별대상이 되어있다.

일제시대에는 피차별부락민은 한반도에서 건너왔던 도래인의 후세라해서 피차별부락민=조선인으로서 차별구조를 형성해 왔다. 현재 부락해방동맹을 중심으로 차별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아이누족은 홋가이도일대에 살고 있는 선주민이다. 인종적으로는 현 일본인과는 이질이라고 한다. 메이지이후 일본정부는 홋가이도의 개발이란 명목으로 아이누족 생활권을 빼앗아 저항하는 사람은 학살하였다. 이때문에 아이누족은 굶어죽거나 학살당해서, 에도시대에 수십만명이었던 것이 2만명이하로 줄었다. 이것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수가 수백만명이었던것이 남북전쟁후 30만명이하로 격감한것과 흡사하다. 아이누족은 현재도 차별의 대상으로서 생활난을 겪고있다.

일본의 인종을 살펴보면 몽고족 계통의 야마토족이 99%이상, 기타 재일 한국인. 홋카이도 에 거주하는 아이누족 등은 1% 미만. 아이누족의 근원에 대해 몽고족, 즉 황인종계라는 설과 호주의 오세아니아계 인종이라는 설로 나뉘어짐. 현재 아이누족은 홋카 이도 아이누촌에 모여 살고 있으며, 정확한 수는 밝혀지지 않음. 야마토족과의 결혼으로 순수 아이누족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일본인 이외의 거주자는 1% 전후로 이들 대다수는 재일한국인과 중국, 미국인 등 이다.

 

 

 

l*****3 2010.05.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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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부락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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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일본 부락의 역사'는 일본의 부락해방연구소에서 창립 2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펴냈던『부락해방사(部落解放史)』전 3권을 축약한 형태로 발간한  책이다.  사회에 꼭 필요한 부가가치를 생산하면서도 천민계층으로 밀려난 일본의 부락민들. 그들을 괴롭힌 사회적 차별과 그에 대해 차별과 싸워온 피차별 부락민(에타,히닝 등 일본 내 천민계층)들의 저항의 역사를  일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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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일본 부락의 역사'는 일본의 부락해방연구소에서 창립 2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펴냈던『부락해방사(部落解放史)』전 3권을 축약한 형태로 발간한  책이다.  사회에 꼭 필요한 부가가치를 생산하면서도 천민계층으로 밀려난 일본의 부락민들. 그들을 괴롭힌 사회적 차별과 그에 대해

차별과 싸워온 피차별 부락민(에타,히닝 등 일본 내 천민계층)들의 저항의 역사를  일본의 고대부터 시작하여, 중세, 근세, 근대, 전후까지 사회적 차별과 끈질기게 싸워온 천민계층, 곧 부락민들의 역사를 담고 있어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역사적 변천을 살피는데 좋은 역사적  자료집이다.

일본내에서 일본인들로부터 차별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라쿠민, 재일조선인, 아이누족, 오키나와인 등이다.  부라쿠민(部落民)이란 일본에서 부라쿠(部落)란 용어는 여러 집들이 모여 이룬 마을, 촌락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으나, 현재 일본에서는 전근대 일본의 신분 제도 아래에서 최하층에 위치해 있었던 천민 및 신분제 철폐 이후의 근현대 일본내서도 여전히 천민 집단의 후예로 차별 대상이 되고 있는 일본 사회의 특정 계층을 가르키며  에타(穢多)라는 말과 함께 일본에서 매우 경멸적인 말로 통한다. 에타(穢多)라는 계층은 가축의 도살, 형장의 사형 집행인, 피혁 가공 등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일본에서 가장 비천하고 따돌림 당한 천민으로 그 직업은 죽은 짐승의 가죽을 벗겨서 이것을 가죽으로 파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다른 사람들과 교제할 수 없는 부정한 사람들처럼 언제나 부락에서 떨어져 살았다.  에타의 穢는 穢れ,즉 더러움을 뜻하며, 문자 그대로 더러움이 많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어 부라쿠민에 대한 멸시감정이 담긴 표현이었다. 그리고 다른 계층은 히닌으로 불렸는데, 주로 사형 집행 보조인 및 그 관할하의 걸인, 죄인 및 시체 매장, 도로 청소, 사찰의 종자, 예능인 등 여러 직업군의 사람들이 속하였다.  부라쿠 출신들은 사회의 그늘로 스며들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일본은 에도시대 이전에도 천민에 해당하는 신분 계층은 있었으나, 구체화된 것은 그 이후였다. 에도시대에는 그통제가 더욱 엄격해져 계급적으로 차별대상이 되었다. 메이지 이후 형식적,계급적으로 해방되었으나 실질적인 차별의식은 계속되어 300만명이나 취직,결혼등 모든면에서 차별대상이 되어있다. 또한 에도시대 때의 일본은 유교의 영향을 받아 신분 계급이 사농공상의 4단계로 구분이 되었는데, 이 신분은 세습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4계급에 들지 못하는 계급이 있었는데, 이는 조선시대의 천민과 마찬가지로 주로 천시되는 직업에 종사하는 계층이 해당되었다.

메이지 신정부 수립 이후의 일본 정부는 세금징수를 위해, 부라쿠민 해방령을 공포하여 사농공상의 신분제를 철폐하는 동시에  천민 집단에 대해서도 일반 국민(평민)의 지위를 부여하였다. 그러나 부라쿠민에 대한 일본사회의 뿌리깊은 차별 의식때문에 평민은 천민과 동등한 지위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거부하여 해방령 반대 운동이 곳곳에서 벌어졌고, 이들에게 신평민(新平民)이란 호칭을 붙여, 배척하였으며, 해방령 이후에 천민은 성난 일부 평민에게 습격을 당하기도 하였다. '신분제 밖의 계층'으로 분류될 정도로 최하층에 있었던 부락민들이 저마다 고유한 부역을 부담하면서도 지배계층의 억압에 시달린 역사와 그에 대한 부락민의 저항 과정을 역사는 지배계급에 의해 기록되지만, 그 역사는 피지배계급이 만드는 것이다라는 말을 다시 한번 되세기는계기가 되었던 책이다.

k****0 2010.05.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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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부락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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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락사'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는 생소한 용어이다. 내가 우리 역사문헌을 깊이 알지 못해서인지, 일본인들의 조어감각이 우리들과 달라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부락사라는 단어엣 느껴지는 느낌. 그것은 처음 접하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그 뉘앙스가 거의 맞는 것 같다.부락을 구성하는 사람. 즉 민중의 입장에서 일본의 역사를 되짚어 보자는 취지에서 나온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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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락사'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는 생소한 용어이다. 내가 우리 역사문헌을 깊이 알지 못해서인지, 일본인들의 조어감각이 우리들과 달라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부락사라는 단어엣 느껴지는 느낌. 그것은 처음 접하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그 뉘앙스가 거의 맞는 것 같다.

부락을 구성하는 사람. 즉 민중의 입장에서 일본의 역사를 되짚어 보자는 취지에서 나온 책인 것 같다. 원래는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3권짜리 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권으로 정리된 이 책도 정독을 할려면 그리만만치 않은 에너지가 소요된다.

분명히 한글로 정리된 잘 번역된 깔끔한 번역서이지만, 일본인들의 문체는 책을 읽어나가는 속도가 느리게 하는 원인인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읽기 편하게 지나친 의역을 하면, 책의 내용이 가지는 뉘앙스가 손상될 우려가 있으니 이 책이 취한 번역의 태도가 옳다는 생각이 든다.

부락사라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일본의 역사가 우리와는 달리 봉건적인 시기를 오랫동안 겪었다는 것이다. 지방자치가 행해지고 있었지만, 강력한 정부의 권한하에서 이루어진 중앙집권적인 우리나라와 일본의 역사는 상당히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이제껏 읽은 쉽게 읽는 일본사같은 유형의 책들과는 달리 제법 제대로 된 일본사를 접하는 듯한 느낌이다. 더구나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부락민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분명한 관점을 가진 책이 아닌가. 일본사를 볼륨감있게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부락사라는 관점을 택하는 진영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가지는 일본역사관은 우리들의 일본역사관 한일교류관에 비추어 상당한 거부감이 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런 책이 한국에 소개되는 것이 반갑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입맛에 맛춘책만 번역되는 것보다는, 그네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그대로 잘 알수 있는 책을 읽는 것이 진정 일본인이 생각하는 일본사를 알아가는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때문이다.
s***g 2010.04.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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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부락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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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부락의 역사 우선 이 책은 고대, 중세, 근대, 전후로 구분되어 있다. 그래서 그 시대에 살아온 부락민들의 생활과 직업적으로 무엇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내용이 너무나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일본어가 생소한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어렵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택한 것은 조바심을 내지 말고 천천히 이해하도록 읽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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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부락의 역사

우선 이 책은 고대, 중세, 근대, 전후로 구분되어 있다. 그래서 그 시대에 살아온 부락민들의 생활과 직업적으로 무엇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내용이 너무나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일본어가 생소한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어렵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택한 것은 조바심을 내지 말고 천천히 이해하도록 읽는 것이 목표였다. 어느 나라던 마찬가지로 고대 원시시대에서는 신분이나 계급의 차별을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죠몽시대 말기 경에 일본에 도작이 전해져 야요이시대 때 전국으로 확대된 이후 부를 가진 지배계급과 부를 가지지 못한 피지배계급의 신분 서열이 정립되는 정치 사회가 성립한다. 내가 생각하는 일본은 신분차별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 사회에서도 넘을 수 없는 신분 차별이 있었고 그들은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안 에서 열심히 살아가며 자기들 목을 톡톡히 해 나가며 살아가는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권력에 의해서 소외되고 배재 되었으며 차별당하면서 사회의 최하층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당시 그들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 인간은 평등해야 하는데 어느 누가 신분과 계급을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그것 또한 인간의 욕심이 부른 헛된 욕망은 아니었는지 그리고 그 제도로 인해 많은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최하층 천민들의 고뇌와 궁핍한 삶은 어느 누구 하나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j****6 2010.06.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