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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선하다'라는 스테레오 타입에 사로 잡히면 본질을 놓칠‥
"'자연은 선하다'라는 스테레오 타입에 사로 잡히면 본질을 놓칠‥" 내용보기
첫째, 해피엔딩 작품들이 기억에 안 남는 까닭은 무엇일까 ? 다소 어려운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둘째, 자연을 사랑하고 아껴야한다는 전언 하에 인간은 악, 자연은 선이라는 대칭 구조는 많은 영화와 애니에서 차용한 구조였는데 어째서 사람들은 자연을 보호하지 않는 걸까 ? 가령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면 항상 인간의 탐욕이 악으로 등장하고, 소박하고 무욕한 자연 - 즉 동물 캐릭터
"'자연은 선하다'라는 스테레오 타입에 사로 잡히면 본질을 놓칠‥" 내용보기
첫째, 해피엔딩 작품들이 기억에 안 남는 까닭은 무엇일까 ? 다소 어려운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둘째, 자연을 사랑하고 아껴야한다는 전언 하에 인간은 악, 자연은 선이라는 대칭 구조는 많은 영화와 애니에서 차용한 구조였는데 어째서 사람들은 자연을 보호하지 않는 걸까 ? 가령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면 항상 인간의 탐욕이 악으로 등장하고, 소박하고 무욕한 자연 - 즉 동물 캐릭터들은 대부분 선한 인물로서 "착한 주인공"을 도와주는 걸로만 나오는데 이런 인식이 옳은 걸까 ? 모노노케 히메 감상법은 다양하겠지만(* 명작은 수많은 해석을 허용한다) 정말 흥미로웠던 것은 감독이 구현하고자 하였던 "자연과 신(神)"이 지니는 의미였다. 기존의 식상한 애니들이 자연과 신을 성스럽고 인간이 돌아가야할 낙원, 천당, 에덴동산으로만 지루하게 묘사한 것과 달리(*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한 자연과 신의 '타자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첫장부터 "평화로운 인간세계"에 '재앙신'이 되어버린 광포한 멧돼지를 풀어줘 고루한 스테레오 타입을 단번에 부숴버렸다. 자연과 신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살고싶어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타다라 마을 사람들이 숲을 파괴하는 것은 생존책 때문이지만, 그건 숲에게 있어선 죽음이므로 숲에 사는 짐승들은 인간들과 싸울 수 밖에 없다. "자연도 죽는다"라는 메시지는 특히 중요하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우두머리 멧돼지들은 결국 분노와 복수심에 못 이겨 재앙신으로 거듭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시 신"은 새싹을 틔우는 신으로써 밤낮에 따라 죽음과 생명으로 바뀐다. 밟는 자리마다 새싹이 텄다가 곧바로 시들거니와 만물을 죽음으로 이끄는 동시에 황무지에 싹을 틔우는 '기적'은 즉, 자연과 생명조차 "삶과 죽음"의 윤회를 돈다는 진리를 일깨운다. 시시 신은 나중에 숲이 몰락해도, 자신이 총에 맞아도 별로 개의치않으니‥. 그리고 머리를 빼앗겨 죽음 신으로 변신하여도 그의 의중을 우리는 알기 어려우니‥. 자연의 본질이란 이런 묵언에서 읽을 수 있는게 아닐까 ?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유치찬란하게 신이 인간을 벌하고 홍수를 내리는 장면 따위는 눈에 차지 않을 정도로 심오하여 답을 차마 내기 어렵다. 인간에 대한 묘사도 색다르다. 타다라 마을의 지도자 에보시는 냉철한 인물로 자연에 대해선 잔인하다. 하지만 그녀는 질병환자, 여성들을 먼저 거두고 보살피는 등 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며 번영시키려는 자비롭고 현명한 여성이기도 하다. 타다라 마을의 철광업은 자연을 파괴하고 숲을 없애는 첩경이지만, 그로 인해 소외받은 많은 자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다. 결국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여 필요한 자원과 에너지를 얻지 못하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니까. 이런 인간들을 구하기도 하였지만 재앙신의 저주로서 "상처받는 자연의 분노"까지 지닌 아시타가가 지향하는 방향은 '공생'이다. 인간이면서도 결코 인간만을 위하지 않는 그의 공생 계획은 첫째로 야생소녀 산(모노노케 히메)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둘째로 총탄에 맞아 죽음을 두려워하며 재앙신이 되어버린 멧돼지의 분노를 알기 때문이다. 거대한 공단 건설로 서민들이 잘 살고 그들을 사랑하는 한 인간일지라도, 어느 날 접한 환경오염의 고통으로 '자연'을 '생명있는 주체'로 느끼기 시작한 각성의 시작. 이런 파격적인 구조도 대단하지만‥ 주인공을 슈퍼맨으로 설정하지 않은 일본 노감독의 안목은 옷깃을 여밀 수 밖에 없다. 공생과 화합을 꾀하는 주인공은 실제로는 모노노케 히메를 구한 걸 빼고는 무기력했다. 결국 인간은 숲으로 진격하였고, 복수하려는 멧돼지 무리들은 몰살당했으며, 마지막에 시시 신은 죽고(?) 만다. 인간들은 불로불사라는 말만 믿고 곰 쓸개즙이 정력에 좋다고 믿는 한국남자들처럼 시시 신의 머리를 베어가고, 아시타가는 그 머리를 되찾아 '인간의 손으로 신에게 돌려줘야한다'고 역설하고 실천한다. 머리를 되찾은 신은 스스로 파괴했던 숲에 새싹을 틔우고 소멸(?)해버리고, 모노노케 히메는 인간을 계속 증오하면서도 아시타가와 또다시 만나자고 하는데‥. 가장 인상적인 화두는 "머리를 죽음의 신에게 돌려주는" 바로 그 장면이다. 환경오염을 가속화시키며 경제적 번영을 꾀하려는 현 시대 인류는 니체의 말을 엉뚱하게 빌리면 "신은 죽었다"라는 시대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른 신의 머리는 무엇이며, 어디에 있을까 ? 더 나아가서 신에게 '머리'를 돌려주는 행위란 ? 머리가 없는 몸통은 고깃덩어리일 뿐이다. 인간들이 시시 신의 머리를 자른 것은 불로불사의 영력을 얻기 위해서였지만, 머리없는 신이란 분별력을 잃은 괴물이나 다름 없다. 생명이 삶과 죽음의 양면을 지니고 있을 때에 '머리없는 신', 즉 '머리 없는 자연'이란 다시 말해 죽음의 에너지가 넘치는 혼돈일 수밖에 없다. 지구 바깥의 무기질 우주가 '머리 없는 신'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 '머리'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생(生)과 사(死)가 균형을 이루는 '이성' 같은 것이 아닐까. 자연을 칭송하는 이들은 질서(law)와 혼돈(chaos)을 구별하지 못한다. 타다라 마을 사람들과 에보시는 질서만 알았지 혼돈을 몰랐고, 아시타가와 모노노케 히메 덕분에 혼돈에서 벗어나서야 어리석었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인간의 이성을 맹신하지말고, 자연의 이성이란 것도 깨달아야한다는 얘기이겠다. 따라서 이 작품을 보면서 '자연'을 보호하자고만 외치는 이들은 중요한 본질을 놓치는 셈이다. 결론은 '이성의 끊임없는 진보 촉구'다. 인간의 이성으로만 만든 총이 아니라, 시시 신의 머리 - 즉 자연과 전우주적 이성으로 나아가 '공생'을 꿈꿔야한다는 것일지니. 인간의 악마적 측면이 스스로를 해치듯, 자연의 악마적인 특성 또한 자연 스스로를 죽음으로 질주시키니. 보고 난 뒤에는 달콤한 음악과 상투적 세계관이 뒤범벅된 디즈니 애니는 눈에 차지 않을 게다. 화질과 연출효과, 음질과 효과음은 비평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오히려 실감나고 멋있다보니까 사람들이 이 작품의 내적 의미보다는 외적 효과에만 신경쓰지 않을까 걱정된다. 특히 주인공들이 초원과 산기슭을 달리는 장면은 너무 실감나서(?) 엉뚱하게도 언젠가 가보고 싶은 몽골초원에 빨리 날아가 말을 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으니까. 이러한 놀라운 작품을 낳은 ”인큐베이터“ 일본이란 국가가 단순한 경제대국을 넘어 문화대국으로 발돋움했다는 생각에 식은 땀까지 흐를 정도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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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노케 히메
"모노노케 히메 " 내용보기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영화였는데, 이 영화 보고나서, 많이 무서워했었다. 스토리나 우리가 자연에게 하는 몹쓸 짓이 아니라 분위기, 이 영화 분위기가 밝은 편은 아니니까.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극장에서 처음 봤던 건 14살 때, '센과 치히로,' 였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커다란 스크린 속에서 하늘을 날았던 하쿠와 치히로의 모습은 잊을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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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영화였는데,

이 영화 보고나서, 많이 무서워했었다.

스토리나 우리가 자연에게 하는 몹쓸 짓이 아니라

분위기, 이 영화 분위기가 밝은 편은 아니니까.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극장에서 처음 봤던 건

14살 때, '센과 치히로,' 였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커다란 스크린 속에서 하늘을 날았던

하쿠와 치히로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그 이후로 미야자키의 작품은

수없이 많이, 그리고 자주 봤지만,

모노노케 히메는 제외였다.

줄거리는 기억이 안났지만,

기억하고 있는 그 무서운 분위기가 싫었다.

 

이젠 무서울 것도 없고,

아니 내가 무서워했던 게 뭐였나 싶어

큰맘먹고, 미야자키를 신뢰하는 마음으로

모노노케 히메를 구입했다.

 

자연에 대한 이야기는,

하자면 길어지고,

또 그에 대해 내가 알고있는 것이

적어서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영화의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화면, 캐릭터, 색감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가, 정말 아름다웠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많은 장면들과 말이 떠오르는데

앞으로도 기억에 남을 것을 말해보자면,

맨 마지막에 시시신이 죽었다고 말하는 산에게

아시타카가 시시신은 삶도 죽음도 갖고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미야자키가 우리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건,

희망, 아니었을까 ?

 

b*****7 2008.12.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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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세계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세계 " 내용보기
빨간 피를 얼굴에 바른 산의 모습의 포스터만큼이나 무척 인상적인 애니메이션이예요.. 사실 모노노케 히메보다는 '원령공주'로 많이 유명하지요. 이 애니메이션은 아무래도 일본을 이해하고 보면 더 재미있답니다. 어느 정도 그의 작품은 비슷비슷한 등장인물과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 조금은 실증이 날만도 한데,이 애니메이션은 무척 역동적이어서 그나마 좋았습니다.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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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피를 얼굴에 바른 산의 모습의 포스터만큼이나 무척 인상적인 애니메이션이예요.. 사실 모노노케 히메보다는 '원령공주'로 많이 유명하지요. 이 애니메이션은 아무래도 일본을 이해하고 보면 더 재미있답니다. 어느 정도 그의 작품은 비슷비슷한 등장인물과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 조금은 실증이 날만도 한데,이 애니메이션은 무척 역동적이어서 그나마 좋았습니다. 배경음악도 한몫했지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상 세계는 자연주의가 아닌 공생의 관계, 서로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그의 애니메이션은 아름다운것 같아요.
b*****e 2005.12.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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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적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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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 중 국내에 처음으로 정식 극장 상영작이 아닌가 한다. 그 전까진 음성적인 경로로만 접해왔던 원령공주가 원제 그대로 모노노케 히메로 극장에 상영되었을 때, 감격하여 극장을 찾은 기억이 선하다. 물론 그 전에 수없이 봤으나 확실히 제대로된 퀄리티로 상영되었기에. 일본색이 짙은 것이 사실이나 동양의 보편적인 자연친화의
"기념비적인 작품." 내용보기
기억하기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 중 국내에 처음으로 정식 극장 상영작이 아닌가 한다. 그 전까진 음성적인 경로로만 접해왔던 원령공주가 원제 그대로 모노노케 히메로 극장에 상영되었을 때, 감격하여 극장을 찾은 기억이 선하다. 물론 그 전에 수없이 봤으나 확실히 제대로된 퀄리티로 상영되었기에. 일본색이 짙은 것이 사실이나 동양의 보편적인 자연친화의 모습이 잘 살아있고 팔이 떨어져 나가는 등 어찌보면 잔인한 장면이 있으나 영화에 비해선 덜하면 덜했지 더하지는 않다. 교훈적은 이야기와 아름다운 자연표현 등 보고 나면 눈의 즐거움과 마음의 따뜻함을 느끼게 되는 애니메이션.
YES마니아 : 플래티넘 i*****a 2005.11.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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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는 인간의 탐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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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령공주로 극장에서 개봉되기 전부터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많이 유명한 작품이다. 하지만 난 이름만 들었지 본 것은 얼마전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통해서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다음부터는 하야오감독의 작품을 dvd로 소장하는 것이 취미가 되어 버렸지만... 지브리의 작품들 대다수가 그러하듯이 모노노케 히메도 역시 인간과 자연과의 문제를 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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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령공주로 극장에서 개봉되기 전부터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많이 유명한 작품이다. 하지만 난 이름만 들었지 본 것은 얼마전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통해서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다음부터는 하야오감독의 작품을 dvd로 소장하는 것이 취미가 되어 버렸지만... 지브리의 작품들 대다수가 그러하듯이 모노노케 히메도 역시 인간과 자연과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인간의 끝이 없는 욕심, 탐욕들로 인해서 고통받는 자연의 모습을 잘 표현해 준 것 같다. 원령공주를 통해서 악한 모습만 가지고 있는 인간이 아닌 태어나면서 자연인의 모습 그대로 순수한 인간의 모습을 대표해 준 것 같아서 조금은 다행스럽기 까지 하다.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인 것 같다
d******7 2003.09.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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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최고의 영화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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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만화 영화 '원령공주'를 처음 접했을 때가 90년대 후반 불법 VCD를 통해서였다. 그때의 충격은 엄청났었다. 바로 그 다음의 스토리가 상상이 되지않던 스토리 전개와 웅장한 스케일, 탄탄한 스토리 구성과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전개... 너무나 완벽한 작품으로 다가와서, 나도 저런 만화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는 꿈까지 꿀 정도였었다. 독창적인 세계를 너무나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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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만화 영화 '원령공주'를 처음 접했을 때가 90년대 후반 불법 VCD를 통해서였다. 그때의 충격은 엄청났었다. 바로 그 다음의 스토리가 상상이 되지않던 스토리 전개와 웅장한 스케일, 탄탄한 스토리 구성과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전개... 너무나 완벽한 작품으로 다가와서, 나도 저런 만화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는 꿈까지 꿀 정도였었다. 독창적인 세계를 너무나 잘 만들어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다른 작품들(바람계곡 나우시카,천공의 성 라퓨타,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등등)도 나중에 다 보게 되었지만,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가 나 개인적으로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개개인의 캐릭터 모두 자신이 믿는 바가 분명하고, 자신의 의지로 그 믿음을 관철시키면서도, 마지막엔 공존하는 삶을 그린 명작이 과연 얼마나 될까? 처음 '원령공주'를 봤을때부터, 그후 10번도 넘게 보게되었다. 일본문화 개방으로 우리나라에 처음 개봉된 일본만화가 모노노케 히메가 아니라, 토토로였을 때도 난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긴 내 주위의 사람들은 토토로를 더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불행히도 원령공주는 너무 늦게 개봉이 되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경로를 통해 봐버렸던 것이다. 난 정말 꼭 원령공주의 DVD를 가지고 싶었는데, 이제서야 한을 풀었다. 꼭 가지고 싶었던 명작 '원령공주'... 개봉했을 때 극장에서도 보았지만, 드디어 DVD도 나오는구나 싶어 좋아했었다. 빛이 바랬지만, 필름영화와 만화영화를 통틀어서 현재도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주제가 또한 너무 아름답다. (조수미가 부른 버전도 있다고 하던데...) 원령공주는 지금도 의연하고 의지가 분명한 모습으로 내 마음속에 살아숨쉰다. 내 아들들이 자랐을 때 꼭 내 손으로 보여주고 싶은 명작중 하나로 남기고 싶다.
s*****s 2003.07.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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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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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미야자키 하야오 그 자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애니메이션이다.  그가 그의 다른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모든 생각들이 다 녹아들어가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나에겐, 살짝 산만한 느낌이었어.  너무 많은 걸 담으려고 한 것은 아닐까.    한 번 보고는 그 모든 것을 깨닫지 못하겠다.  깊은 의미까지 알고, 산만하지 않게 다 이해할 수 있으려면 다음에 또 봐야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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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랄까.
  미야자키 하야오 그 자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애니메이션이다.


  그가 그의 다른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모든 생각들이 다 녹아들어가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나에겐, 살짝 산만한 느낌이었어.
  너무 많은 걸 담으려고 한 것은 아닐까.
  

  한 번 보고는 그 모든 것을 깨닫지 못하겠다.
  깊은 의미까지 알고, 산만하지 않게 다 이해할 수 있으려면 다음에 또 봐야할 것 같아.



  미야자키 하야오의 사상은 간단하게 몇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환경, 여성, 상생, 자아.
  
  그의 만화를 한 번 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이 단어로 다 표현이 된다는 걸 알겠지?


  그가 만든 모든 작품이 대작이고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것 같은 작품인데 
  어떤 이들은 ’원령공주’를 최고로 친다.
  

  나도 아주 재미있게 봤다.
  그렇지만 사실 나의 마음의 베스트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이기 때문일까?
  모노노케 히메 중반의 약간 맥 없는 전개와 이것 저것 함축된 의미 때문에,
  그리고 약한 감기기운에 헤롱헤롱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집중해서 보지 못 한 것 같다.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 모든 것이 완벽히 설명되는 방식은
  나우시카가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
  (나우시카는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군더더기 없이 탄탄함)
  하지만 이것도 두 작품을 비교할 때 이야기이고.


  원령공주도 엄청난 만화임에는 틀림없다.
  
  
  이 만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노아의 방주 같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바타가 이 만화를 많이 베낀 것 같다는 생각...
   하긴 뭐 아바타의 스토리라인은 ’늑대와 함께 춤을’하고 완전 똑같음.
   하지만 이 만화에 등장하는 ’신’의 얼굴과 몸이랑 
   판도라 행성의 퍼렁이들 생긴거랑 똑같다는 건 우연인가?)


  도를 넘어 버린 인간과 동물을 신이 벌하지만
  결국 신은 인간을 용서하고 다시는 이 땅에 홍수를 내리지 않겠다고 했다는 이야기.

  
  이 만화에서도 
  자연을 파괴하며 마을을 넓히는 인간과
  숲을 지키려고 인간을 공격하려는 동물이 나오고
  그 들은 결코 서로 공생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상처를 입은 ’신’은 원한에 휩싸여 재앙신이 되어 자연을 도리어 파괴한다.


  인간은 역시나 무섭다.
  신 중의 신, 생명 그 자체인(그래서 한 없이 자애롭기도, 한 없이 무섭기도 한) ’시시’신의 목을 베려고 하다니.
  보는 도중, 대체 어떻게 인간이 신을 죽이지? 신이 죽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과오가 결국
  인류를 파멸에 이르게 할 것이고, 그렇다면 인간이 말하는 ’신’ 또한 존재할 수도 없겠지.


  목이 베여진 시시신이 폭주하여 모든 생명을 순식간에 소멸시키는 장면은
  우리가 결국 지구가 버틸 수 있는 선을 한참 넘어가 버릴때 생길 수 있는 일을 보여주는 거겠지.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흡사했다)


  원령공주와 ’아시타카(남자 주인공)’가 
  인간이 벤 신의 머리를 신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돌려주면서 신의 분노는 사그러든다.
  하지만 실체로 존재하던 신은 사라지고
  온 땅에 새 생명이 솟아오른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혼란과 세상의 끝 속에서도
  만약 인간이 자연을 지키려고 든다면 해낼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다시말해, 우리가 해야만 한다는 것.
  아직은 할 수 있다는 것.


  아직도 좀 아리송 아리송하긴 한데
  뭐 모든게 설명 안 되는 애니의 대명사는 사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아니겠어?
  
  그것에 비하면 아주 완결력(?)있는 애니이다.
  그리고 역시나
  여러 번 보고 싶다.

  

  좋은 건 원래 한 번 봐선 안 되는 거야.

YES마니아 : 로얄 g**********n 2011.04.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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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함께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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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나타난 오염된 멧돼지신으로 인하여 주인공은 저주를 받고 그 저주를 풀기 위한 긴여정에 나서는데 그 여정에서 만나게된 사람을 도와주고 그 사람의 마을로 가는데 그 마을은 마을의 부귀를 위하여서 자연을 파괴하는 제철 마을 이었다   그마을이 나타내는 모습은 기술의 발전으로 자꾸만 파괴되어 가는 우리 자연 환경을 나타내고 오염된 환경으로 인한 자연의 파괴는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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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나타난 오염된 멧돼지신으로 인하여 주인공은 저주를 받고 그 저주를 풀기 위한 긴여정에 나서는데 그 여정에서 만나게된 사람을 도와주고 그 사람의 마을로 가는데 그 마을은 마을의 부귀를 위하여서 자연을 파괴하는 제철 마을 이었다

 

그마을이 나타내는 모습은 기술의 발전으로 자꾸만 파괴되어 가는 우리 자연 환경을 나타내고 오염된 환경으로 인한 자연의 파괴는 모습이 변한 멧돼지로 형상화 되었다

 

마을 촌장은 마을의 영화를 위해서 자연을 나타내는 사슴신을 죽이고 사슴신의 분노로 마을은 파괴 되는데 사슴신의 분노를 풀어주는 주인공으로 인해서 분노가 사라진 사슴신은 다시 마을에 새 생명을 불어 넣어 주는데  오몀된 환경 이라도 지금부터 라도 깨끗이 관리 하면 자연은 분노를 풀고 우리에게 다시 깨끗한 자연을 선사 할것 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용이 폭력적인게 많아서 아이들이 보기에는 주의가 필요할것으로 생각 됩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3 2010.04.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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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지 않은 성인용 만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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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모노노케히메에 관해 들었을때는 막연하게 하야오 감독의 작품이니 봐야 겠다 했습니다. 그리고 본 것은 영어로 된 원령공주였지요. 그리고, 일어로 보았습니다.(이쪽에는 자막이 있어 좋았지요) 이제 한국어로 보려 합니다 ^^ 그동안 알아왔던 하야오 감독의 어린이에게 꿈을..(저 나름대로의 생각입니다만)과는 사뭇다른 주제와 사뭇다른 분위기의 영화였습니다. 인간과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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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모노노케히메에 관해 들었을때는 막연하게 하야오 감독의 작품이니 봐야 겠다 했습니다. 그리고 본 것은 영어로 된 원령공주였지요. 그리고, 일어로 보았습니다.(이쪽에는 자막이 있어 좋았지요) 이제 한국어로 보려 합니다 ^^ 그동안 알아왔던 하야오 감독의 어린이에게 꿈을..(저 나름대로의 생각입니다만)과는 사뭇다른 주제와 사뭇다른 분위기의 영화였습니다.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관해 강하게 그려나가고 있더군요. 하야오 감독의 귀엽고 사랑스러우면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작품들에 빠져있었던 터에 최초로 하야오 감독이 컴퓨터 그래픽을 쓴 작품이라기에 더더욱 기대를 했었습니다. 물론 이 작품은 그동안 보여줘왔던 사랑스럽고 꿈이 가득한 주제는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두렵고 슬픈 테마를 잡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동안 보아왔던 다른 작품에서도 깔려있던 기본 주제인 자연사랑과 일맥 상통하면서 느낌이 다른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연결되는 느낌이 들더군요. 동화적이면서도 기성세대에게 경고를 하는 것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반드시 소장해야 할 작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w****h 2003.08.2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모노노케 히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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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 중 제가 제일 먼저 본것이 바로 이 "모노노케 히메"였습니다."원령 공주"라고도 불렸었죠.그때 그 감동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군요..일단 그 굉장한 영상미에 놀랐습니다.마치 실제 사람이 연기하는 것처럼 행동 하나하나가 정교하게 그려졌습니다.특히 싸우는 장면 등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두근 거리게 할 정도로 속도감 있게 잘 만들어 졌습니다. 평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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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 중 제가 제일 먼저 본것이 바로 이 "모노노케 히메"였습니다."원령 공주"라고도 불렸었죠.그때 그 감동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군요..일단 그 굉장한 영상미에 놀랐습니다.마치 실제 사람이 연기하는 것처럼 행동 하나하나가 정교하게 그려졌습니다.특히 싸우는 장면 등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두근 거리게 할 정도로 속도감 있게 잘 만들어 졌습니다. 평소 자연친화적 경향을 많이 드러내는 것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스타일이었는데 이 작품 역시 자연을 소재로 하고 있긴 하지만 "자연"을 대표하는 신과 그리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대결을 다루었기 때문에 그 무게감이 여느 작품에 비해서 큽니다.하지만 결말은 미래 희망적으로 끝나기 때문에 그리 절망적이지는 않죠^^ "이웃집 토토로"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남녀노소 누구나 볼 수 있었던 작품과는 달리 이 작품은 내용이 약간 추상적인데다가 잔인한 장면이 있어서 성인들이 보기에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꼭 놓쳐서는 안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l******0 2003.08.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