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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보면 수많은 흑인들을 만나게 된다. 대학 입학 불허가처분을 취소하라는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연방군의 호위를 받고서야 겨우 대학구내에 들어설 수 있었던 1960년대의 엘리트 흑인 학생, 링컨기념관 앞에서 마틴루터킹 목사의 설교를 듣고 워싱턴 행진을 벌이는 흑인민권운동가들, 1972년에서야 앨라배마 주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경찰관이 탄생하지만, 1987년까지 상급직에 단 한 명도 승진을 못하고 있던 위대한 미국의 흑인 경찰들..... 그리고, 2009년 7월 자신의 저택(!) 문을 열다가 옆집 백인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되기까지한 하버드대학의 저명한 흑인 교수까지.......
그렇다. 분명 이 책은 흑인민권운동사에 관한 책이다. 또한 얕은 지식과 짜집기로 만들어진 여느 책처럼 어설프게 가치중립적인 태도를 가장하지도 않고, 현학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흑인의 울분과 분노의 관점에서만 이 책이 쓰여졌다면 이 책의 마지막 장까지 읽은 후 곧바로 맨 앞머리의 서문을 다시 펼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선, 민족자결주의로 유명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흑백통합되어있던 연방기관들을 굳이 다시 흑백분리시켰던 사실, 흑인학생의 대학 출입을 주지사가 막아서자 연방법원이 주지사를 연방검찰의 보호하에 두도록 하였음에도 케네디(!) 대통령이 법원의 명령을 거부하도록 지시하였던 사실, 그 외 각 이슈별로 진행과정에서 소개되는 미국형사사법시스템에 관한 다양한 지식은 역사 공부 속에 덤으로 얻는 보너스라 할 것이다
또한, 각 분야별로 리딩케이스적인 판례를 잘 소개하면서, 그런 이슈가 제기되었다가 좌절되고 성공하게된 정치적 역학관계, 경제환경, 사회분위기까지 술술 읽히는 문장력으로 알차게 분석해낸 높은 완성도는 읽는 이로 하여금 흑인민권운동사를 넘어 진정한 미국의 역사, 미국사회의 분위기 속에 푹 빠져들게 한다. 그 속에서 여러 흑인들 뿐만 아니라
천부인권과 계몽주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죄의식을 가지면서도 신대륙 국가를 위한 필요악으로 노예제를 유지하려했던 정치인들, 노예신분을 벗어났답시고 내가 다니던 학교와 식당에 들어오려는 이 더럽고 열등한 검둥이들이 역겨운 백인들, 흑인들의 투쟁으로 소송이 제기될때마다 법이론과 건국의 아버지들이 만든 헌법, 백인 주류사회의 가치관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백인법관들, 그리고, 선조의 원죄 때문에 이제와서는 소수자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으로 대학입학과 승진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백인 개개인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그 당시 느꼈을 '정서'들을 저자의 폭넓은 독서와 깊은 통찰력으로 빚은 연구물의 행간에서 흠뻑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을 돋보이게 하는 매력이다.
나아가 19세기말 노예제와 차별대우를 금지하고 투표권을 부여한 수정헌법조항들이 만들어졌음에도 '짐 크로우 법률'로 통칭되는 악법이 횡행하고, 린치가 가해지는 현실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한 분석은 검사로서의 법률지식과 함께 법률가들이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었기에 가능한 부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저자와 함께 1750년 '뿌리'의 모델 '킨타쿤테'의 출생으로부터 최신 연방대법원 판례를 거쳐 2010년 1월 건강보험개혁법안에 이르기까지 260여년의 세월을 여행하고 맨 앞머리의 서문으로 돌아오면
유구한 역사 속에 전해지는 비서의 한 구절이 순간 해독되는 것처럼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운동 당시 흑인사회에서 주문처럼 유행했던 구절의 의미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전해짐을 느끼게 된다.
"로사가 앉았기 때문에(몽고메리 버스보이콧 운동), 마틴이 걸었고(마틴루터킹의 워싱턴 행진), 마틴이 걸었기 때문에, 버락이 달릴 수 있었으며(대통령 후보 출마), 버락이 달렸기 때문에, 우리의 아이들은 날 것이다"
* 나의 아이들이 성장하면 꼭 읽히고 싶은 좋은 교양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