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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 난 이것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 아니 나뿐만 아닐 것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돈황>은 겨우겨우 신라의 혜초가 남긴 <왕오천축국전>이 남겨져 있던 곳이라는 사실과 이것마저 서양인의 손에 의해 밝혀졌다는 것 뿐이다. 정말이지 이 책을 받아들고 나서야 <돈황>을 겨우 알게 되었다. 이것이 이 책의 첫인상이었다. 무덤덤함이랄까.
그런데 곧바로 화가 났다. 다른 나라의 <보물>을 훔쳐다 제 것마냥 연구하고 나불대는 꼴이 참 어이가 없어 화가 나다 못해 우습다. 훔치듯 헐값을 치르고도 임자없는 물건을 얻은 것마냥 한껏 자랑하는 그네들의 행태는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용서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더 열받는 것은 제 것이 <보물>인지도 모르고 남의 감탄을 듣고서야 제 것이 보물인 줄 아는 바보들을 보면서이다. 자신의 모습을 타자의 눈을 통해서 겨우 <객관화>할 수 있는 행태는 바보 가운데서도 자존심 없는 바보일 것이다. 너무 익숙하고 흔하니 헐게 냅두고 소중히 여기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제 것인줄 안다면 설령 <보물>이 아닐지라도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먹고사는 일에 급급한 시절이었다하나...오랜 문화와 전통을 자랑삼는 나라의 백성이 할 짓이 아니다 싶어서다. 우리도 같은 처지였기에, 같은 짓거리를 일삼았기에 '같은 병 같은 슬픔(동병상련)'이라서 화가 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도 잠시. 책은 점점 <돈황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한다. 궁금증이 일었다. 과연 우리는 <돈황>을 통해 무엇을 엿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없다. 아니 다시 말해, 이 책을 통해서는 우리가 엿볼 수 있는 <돈황>은 없단 말이다. 일본인 글쓴이(저자)에 의해 쓰여져서일까? 온통 일본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풀어 낸 <돈황>의 이미지를 잘 그려낼 수가 없었다. 우리가 <돈황>에 대해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었다면 이러저러 온갖 상상을 해서라도 그려내 보련만, 사진도판마저 겨우겨우 실은 내용만으로는 <돈황의 크기(규모)>조차 쉽게 그려낼 수 없었다.
그렇지만 친절한 뒤친이(역자, 옮긴이)가 쓴 <해제>를 보고서 우리가 <돈황>에 대해 관심을 가질 까닭에 대해서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일제시대 때 수집가(!) 오타니가 우리 나라에 남기고(?) 간 <돈황>의 유물<일명 '오타니 콜렉션'>을 통해 우리도 얼마든지 <돈황학>을 연구할 수 있고, 교통편이 발달한 지금은 아침에 출발해 저녁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란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우선 <돈황>에 대한 대중의 관심사를 끌어내야 연구성과가 빛을 발할 것이다. 우리가 사극을 통해 온국민이 <우리의 역사>에 큰 관심을 끌어낸 것처럼 대중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토대 위에 연구도 활발해질 수 있단 얘기다. 그래서 대중이 쉽게 읽고 즐길 수 있는 <대중입문서>가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책은 아니다. 먼저 우리의 눈으로 바라본 서술이 아니기에 읽기가 쉽지 않고, 입문서라기에는 설명이 너무 어렵다. 아니 자세하다고나 할까?
<돈황의 역사>는 마치 서양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같다고 느꼈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발달한 고대 문명은 수메르 민족이 터전을 잡았다가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히타이트 등 수많은 민족이 거쳐가면서 <풍성한 유적과 유물>을 남긴 지역이 되었는데, <돈황의 역사>도 수당제국을 거쳐 송원시대까지 <풍성한 유적과 유물>을 남겼다.
여기에 <돈황>은 그동안 잘 몰랐던 <중앙아시아>의 역사를 풀어낼 <비밀의 열쇠> 같기도 하다. 장건이 개척했다는 실크로드. 서역과 중국을 잇는 사막의 교통로. 오아시스를 바탕으로 발달한 지역. 그리고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까지...
천축에서 신라까지 불교가 전래된 과정을 풀어낼 수도 있고, 잘 몰라서 관심조차 없던 중앙아시아의 역사를 풀어줄 <돈황학>. 아직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서나 입문서조차 변변치 못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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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투르키스탄의 동쪽 끝임과 동시에 하서지방의 동쪽 끝에 위치한 돈황... 장의조 출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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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 어딘가에 오아시스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영원한 스테디셀러의 주인공 <어린왕자>에 나오는 말로 흔히 은유적인 표현으로 쓰이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살을 할퀴는 모래 바람과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강열한 태양, 살인적인 일교차... 하지만 사막을 횡단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물부족에서 오는 고통과 공포일 것이다. 사막의 한 가운데 오아시스가 있다는 믿음이 없었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실크로드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아시스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대에 생사를 걸고 비단길을 횡단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일단 횡단을 완수하기만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 단지 그 이유가 다였을까?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탐험가이자 모험가, 문화전파자들은 상인이어야 옳다. 물론 초기의 비단길은 대상들의 이동경로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나 결과적으로는 그 이상의 결과를 가져왔다. 비단길을 통해 교류되었 것은 물건과 물건, 사람과 사람이 아니라 바로 언어와 문화, 마음과 마음이었다.
<돈황의 역사와 문화> 이 책은 중국과 서역을 잇는 중간 지점에 위치한 '돈황'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중국에서 서역으로 출발하여 1/3지점, 서역에서 중국으로 치자면 2/3지점쯤 되는 곳에 위치한 돈황은 말그대로 사막의 오아시스다. 돈황은 동서양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십자로였으며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해 다양한 민족, 다양한 나라의 문화가 조화를 이루며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다. 돈황이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청조 시대 열강에 의해 반출된 문화재가 여러 경로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돈황의 막고굴을 관리하던 왕원록(왕도사)는 우연한 기회에 고문서들을 발견하고 청의 관리들에게 보고를 한다. 하지만 고문서의 가치를 알지 못했던 관리들은 엄청난 분량의 문화재를 옮길 경비나 보관할 방법이 없었기에 굴 입구를 막아 그대로 두라고만 지시 한다. 하지만 소문은 꼬리를 물고 퍼져나가 영국의 스타인, 프랑스의 펠리오, 일본의 오타니 등 열강의 탐험가이자 약탈자들을 불러모으게 되고 재물에 눈이 먼 왕도사는 귀중한 문화재를 고스란히 빼돌리는데 앞장서게 된다.
중국 정부가 뒤늦게 수습을 시작했을 때는 '안타깝다'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많은 문화재가 약탈된 후였고, 그나마 남아있던 고문서와 벽화도 심각한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당시 열강이 가져갔던 문화재는 오늘날에도 반환 협상이 진행중이라고 한다. 돈황의 문화재가 약탈되고 파괴된 것이 어찌 왕도사와 지방의 관리들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만은 수많은 문화재들이 해외로 밀반출되는데는 외국의 탐욕스런 손길 만큼이나 자국민의 무관심이 원인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마치 한 편의 팩션을 읽는 듯, 잘 만들어진 사극을 보는 것처럼 깊이 몰입해서 읽었다. 2년전 쯤에 마쓰오카 유즈루의 <돈황 이야기>를 읽을 때도 소설처럼 전개되는 내용에 흠뻑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왕도사와 약탈자들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일본의 입장을 변명하려는 듯한 느낌을 받아 기분이 좀 그랬었는데 <돈황의 역사와 문화>는 돈황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어 돈황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덧붙임... 병인양요 때 빼앗긴 외규장각 도서에 대한 반환을 놓고 프랑스와의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중이라고 들었다. 1993년 고속철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프랑스 대통령이 외규장각 도서 한 권을 들고 국내를 방문했을 때만 해도 드디어 반환되는구나, 기대가 컸었다. 하지만 필요한 것을 얻고나서 하는 소리는 국가 공유 재산에 대한 해외양도 불가 방침과 '등가등량(같은 가치와 분량의 문화재를 담보로 맡긴 후에 영구대여 형식을 취한다는 것)'의 원칙에 대한 반복 뿐이었다. 문화재 뿐만 아니라 세상 일이란 게 그렇다. 이미 빼앗겨 버린 것을 되찾는 것은 빼앗기기 전에 지키는 것보다 천 배, 만 배 아니 백만 배는 더 힘든 일이다. 그것만 기억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