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벌이의 지겨움-제목만으로 삶의 고단함을 조금 달래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김훈 선생님의 산문집을 세 권 읽었습니다. '풍경과 상처', '자전거 여행', 그리고, '밥벌이의 지겨움'이 그것입니다. 제가 아는 김훈 선생님은 참으로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계시고, 또 다재다능하신 분입니다. 소설가로서도 큰 상을 받으셨고, 전직 기자 출신이시고, 평론도 하시고...평범한 우리가 그저 우러르야 한 가지 정도 이를 것을... 그런데, 그런 김훈 선생님께서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제목의 산문집을 내셨습니다.우리 같이 아득바득 하루를 살아야 하는 사람만 해야 하는 푸념 아닌가? 저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 이 세상 인간 생활의 지겨움을 '밥벌이'하나로 요약해서 말할수도 있겠다...싶은 생각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읽으면서 저는 '밥벌이의 지겨움'보다는 저보다 능력있는 분의 사유적 삶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자전거 여행을 읽을 때와 비슷한 소재와 사유방법...책의 제목을 '밥벌이의 지겨움'이라고 했으면, 그렇게 저렇게 고단하게 사는 일반인들을 좀 시원하게 만들어 줘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게 평범한 저의 느낌이었습니다. 글 자체는 김훈 선생님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과 글솜씨로 하나같이 수려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었습니다. 어쩌면 김훈 선생님이 느끼는 '밥벌이의 지겨움'과 저의 '지겨움'의 수준이 다른 것이겠지요. |
| 나 자신이 밥벌이를 안 하고 있기 때문인지 글쓴이가 하는 말들에 쉽게 동의할 수가 없다. 감히 백수 주제에 오랜 밥벌이에 지지쳐 고뇌하는 글쓴이를 이해하려니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살아온 세월로만 따져도 내가 지금까지 산 날들을 두 번 곱해도 그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이 책을 읽고 그를 이해할 수 없다고 투덜대는 건 완전히 내 책임이다. 책을 덮고 나니 조금 소외된 느낌이 든다. 그나저나 정사각형에 가까운 이 책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영수증을 보니 빌려온 책도 아닌데... 책 뒷면 아래 8,500 이란 숫자를 보니 괜히 더 서러워진다. |
| 그의 문장은 자연스런 대화가 아니라 치밀한 독백이었다. ( 본문 252쪽, 남재일, 「사무라이, 예술가 그리고 김훈」) 이 책을 서점에서 골랐을 때 가장 염두에 둔 것은 표제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말이 주는 서글픔 때문이었다. 책을 사던 날이 좀 그런저런 우울한 일이 있어서 그랬는지 제목이 나를 끌어당긴 게다. 읽고 난 지금은 김훈의 그 짧고 깔끔한 문장이 꼬리를 길게 끄는 여운을 남긴다. 한 문장에 온갖 품사를 다 우겨 넣어야 글 썼다는 느낌이 나고, 할 말 못할 말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아야 마음이 놓이는 나 같은 사람은 흉내낼 엄두도 내기 어렵다. 단문(短文)의 대가라면 조세희와 황석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단문 위주의 글인데도 김훈의 그것은 사뭇 다르다. 조세희나 황석영의 글이 건조하고 바삭바삭한 비스킷 혹은 쿠키를 닮아 있다면 김훈의 단문은 페스츄리나 케잌 머핀마냥 촉촉함을 머금고 있는 것이다. 이런 표현이 마땅할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의 글은 시(詩)를 그리워하는 산문(散文)같아 보인다. 김훈 자신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 ...... 내 문장은 내면에서 올라오는 필연성이다. 오류를 알지만 고쳐지지 않는다. 다른 길이 보여도 발이 그쪽으로 가지지 않는다. 나는 글을 쓸 때 어떤 전압에 끌린다. 전압이 높은 문장이 좋다. 전압을 얻으려면 상당히 많은 축적이 필요하다. 또 그만큼 버려야 한다. 버리는 과정에서 전압이 발생한다. 안 버리면 전압이 생길 수 없다." (본문 259 쪽) 하하, 경지에 다다른 도인 같으신 말씀이다. 하지만 허투루 흘려 버릴 수 없는 것이 그의 빡빡한 단문은 덩어리진 무엇인가를 분절음으로 토해내는 듯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그의 산문이 시의 형태를 그리워한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할 터이다. 이 정사각형의 책은 30년 가까이 신문·잡지사 기자 생활을 하던 김훈이 틈틈이 쓴 짧은 글 50여 개를 모은 것이다. 쉰 다섯 살의 그가 어린 사람들과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우며 느낀 것, 여전히 컴퓨터대신 연필·지우개·원고지를 고집하는 이유, 월드컵 열기를 보면서 느낀 이런저런 감흥들이 기자의 눈이라기보다 시인의 눈으로 그려지고 있다. 또한 포항제철소의 용광로에서 쇳물이 끓여지는 광경, 경기도 서해안 염전의 소금 만드는 모습도 서정적인 명상록으로 새겨놓기도 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그의 화두는 '밥'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전경들이 점심을 먹는다. 외국 대사관 담 밑에서, 시위군중과 대치하고 있는 광장에서, 전경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밥을 먹는다. 닭장차 옆에 비닐로 포장을 치고 그 속에 들어가서 먹는다. 된장국과 깍두기와 졸인 생선 한 토막이 담긴 식판을 끼고 두 줄로 앉아서 밥을 먹는다. 다 먹으면 신병들이 식판을 챙겨서 차에 싣고 잔반통을 치운다. 시위군중도 점심을 먹는다.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준비해 온 도시락이나 배달시킨 자장면을 먹는다. 전경들이 가방을 들고 온 배달원의 길을 열어준다. 밥을 먹고 있는 군중들의 둘레를 밥을 다 먹은 전경들과 밥을 아직 못 먹은 전경들이 교대로 둘러싼다. 시위대와 전경이 대치한 거리의 식당에서 기자도 짬뽕으로 점심을 먹는다. 다 먹고나면 시위군중과 전경과 기자는 또 제가끔 일을 시작한다. 밥은 누구나 다 먹어야 하는 것이지만, 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만이 각자의 고픈 배를 채워 줄 수가 있다. 밥은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시위현장의 점심시간은 문득 고요하고 평화롭다.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시위군중의 밥과 전경의 밥과 기자의 밥은 다르지 않았다. 그 거리에서, 밥의 개별성과 밥의 보편성은 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밥이 그러할 것이다. 》 (본문 219 - 220쪽, 「'밥'에 대한 단상」전문) 그에게 있어 밥 먹고 사는 일은 우스운 동시에 엄숙하다. 그래서 밥벌이를 위해 거리로 나서야하는 모든 이들(김훈 자신을 포함한)에게 연민의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간다 ......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아달라.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본문 36 - 37쪽, 「밥벌이의 지겨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놈의 밥벌이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더러운 밥벌이 때문에 침묵해야 했을까. 나도 김훈의 문장을 따라 삶에 대해 비감해진다. 책을 사던 그 무렵이 그랬다. 오랜 동료들은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갔고, 단위면적 당 아첨꾼들의 밀도가 높아지고 있었을 때다. 제기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도대체 뭐란 말이냐...... 아마 그런 상념 때문에 이 책에 손이 갔을 것이다. 김훈은 내게 무슨 도리가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나는(그리고 우리는) 당분간, 아니면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의 충고를 접수해야 하리라. 이 땅을 살아갔던 우리 부모들과, 어쩔 수 있냐며 꿋꿋하게 버티고 있을 우리 친구들처럼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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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더럽다. 그러나 그 세상을 벗어나는 길은 죽는 것 밖에 없다. 그러나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죽지 않으려면 먹어야 하고, 먹으려면 그 더러운 세상에 어울려야 한다. 더러운 세상에서 같이 더럽혀지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삶은 더러운가. 김훈은 이렇게 말한다. "삶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는 삶의 추악함 때문에 치가 떨렸고, 삶의 추악함을 말할 때는 삶의 아름다움이 안타까웠다"라고. 김훈은 그렇다. 그는 삶을 긍정한다. 그는 세상의 더러움을 안다. 아름다움과 더러움을 모두 다 인정하고, 끌어안는다. 어느 한 쪽만을 긍정하는 것은 "아름다우나 헛된 이념"이며, 이 이념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헛 말이고, 헛 말이 세상을 휩쓸고 다닐수록 세상은 어지러워진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추악함을 모두 다 긍정한다. 그러면서 그는 '말의' 아름다움-그의 수사학과 감각적 언어는 분명 읽는 사람의 축복이다!-을 추구한다. 타협의 중요성을 얘기하면서, 그 자신은 "회사에서 더러운 꼴을 보면 그냥 그만두었다." 그의 위악과 치열한 고뇌 사이의 긴장감이란 얼마나 처연하며, 그렇다고 쉽게 동정하기에는 또 얼마나 강인하고 당당하게 아름다운가.
그러나 이 산문집은 그의 첫번째 세설(世說)인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말아라'에 비하면 확실히 중량감이 떨어진다. 지금으로서는 이유는 잘 말할 수 없다. 내가 그 동안 김훈의 사고 방식이나 문체에 익숙해져서일 수도 있고-그는 쉽게 생각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다-글 자체가 좀더 짧아서일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내용이 적은 책이다. 사회부 기자로서 썼던 글은 여전히 유쾌하고 가슴을 치는데, 칼럼니스트로써 쓴 글은 너무 짧아서 집중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맨 뒤에 붙은 인터뷰는, 나같은 일반 독자(그리고 김훈의 팬)에게는 영 입에 맞지 않았다. 인터뷰어는 김훈에 비해 너무 젊고 치기어리게 느껴진다. 이유가 뭘까.
책 상태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한 마디 하고 싶다. <생각의 나무="">는 최소한 김훈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 '아들아...'를 제목 바꿔 값을 올린 것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치자. '칼의 노래'를 표지 바꾸고 하드 커버로 새로 낸 것에 대해서는 인정한다-두 권을 한 권으로 읽는 기분은 색달랐다. (그렇다, 나는 양 쪽을 다 샀다.) 그러나 이 책은 뭔가. 트레이싱지로 표지를 싸면 그 트레이싱지 보관이 얼마나 어려운지 책 만드는 사람이 몰랐을 리는 없다. 게다가 트레이싱지로 감춘, 속 표지의 허접함이란. 책을 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그리고 담을 내용이 모자랐다면, 150페이지에 8,500원 때려라! 쓸데없고 깊이 없는 인터뷰 같은 거 안 넣는 게 낫다. 그래도 김훈 팬은 즐거이 산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놀기를 좋아하고 일하기를 싫어한다. 나는 일이라면 딱 질색이다. .....그러니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라.생각의> |
| '자전거 여행'을 읽었을 때 충격이 기억난다. 문체를 보고 참 놀랐었지. 이 책도 같은 이유에서 시작했다. 보너스로 세상을 보는 깊은 시선도 얻고. 온 몸으로 밀어 쓰다는 그의 문체는 이 책에서도 변함없다. 짤막 짤막하게 이어가는 문장 사이 사이에 독자의 깊은 한 숨이 묻어난다. 그의 치열함과 독자 사이의 간격때문에. 어느 책인들 안 그러랴마는. 내용은 사실 조금 실망스럽다. 꼬리가 너무 길었다고 해야하나. 꼭 넣지 않아도 되는 내용까지 넣은 것 같고. 그렇게 안 해도 읽은 사람은 다 읽는데. 결국, 문체는 문장 연습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문체는 온 몸으로 만들어 낸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그래서, 내용 이전에 나는 기호와 기호의 관계를 보고 충분히 긴장한다. 긴장 사이에 의미는 조금씩 조금씩 스며들어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