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나이답지않게 온천을 참 좋아한다. 가벼운 지갑 사정 상 온천여행을 자주 하지는 못하므로 꿩 대신 닭, 주말에는 동네 사우나 열탕에 푹 잠겨서 인간수육 놀이를 즐기곤 한다. 어제도 43도에 달하는 열탕에 들어가 하얀 김이 모락모락 천정을 바라보고 있다가, 나는 왜 이리 하얀 김과 열기에 싸여 있으면 안온해지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문득, 30년전 외가집의 기억이 떠올랐다.
숨이 콱 막히는 뜨거운 열기와 거의 산업혁명 시대의 증기기관처럼 보이는 기계 사이로 솟아나는 하얀 김들, 그리고 맛있는 냄새, 그 사이사이 보이는 바알간 볼들,,,, 그 많던 한멩이 삼촌들의 기억이,,,,
30년전, 우리 외가는 서울 강남에서 방앗간을 운영하였다. 70년대 강남 개발 시절에 반포 아파트 상가에 입주한 가게들은 재래 시장의 가게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강남 아파트 상가에 세련된 마트가 아니라 촌스런 방앗간이 있었다니 지금 생각하면 상상이 가지 않겠지만, 30년전에는 그랬다. 그리고 명절이나 북적이는 다른 지역 방앗간과 달리 부자동네인 그 곳은 일년 내내 떡 주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떡은 포장된 기성품을 먹을만큼만 사 먹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쌀과 부재료들을 가지고 와서 주문해 맞춰 먹는 개념이었다. 그래서 외가의 방앗간은 늘 일거리가 많았으며, 그 일손을 돕기위해 시골에서 올라온 젊은 삼촌들이 늘 여러 명씩 북적거리는 활기찬 곳이었다.
어린 나이여도, 그 곳에서 일하는 젊은 삼촌들이 내 친삼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들은 늘 맨발에 조리를 신고 츄리닝 바람이었으며 외가집 마루에서 잤다. 그리고 엄청 밥을 많이 먹었으며 열심히 일해 고향에 월급을 꼬박꼬박 부치다가 군대에 갔다. 그럼 시골에서 더 앳된 얼굴의 새로운 삼촌이 올라와 빈 자리를 채워 일하곤 했다. 그렇게 수많은 삼촌들이 방앗간을 거쳐 갔건만, 지금 내게 기억나는 이름은 오직 한멩이 삼촌뿐이다.
열탕 안에서 이런 추억이 떠오르자 순간 가슴이 먹먹해 왔다. 그때 반포 초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학교가 끝나면 가방을 멘 채로 바로 옆 아파트 상가의 방앗간으로 놀러 가곤 했다. 친삼촌께서 주시는 500원 지폐를 받아서 방앗간 옆 중국집에서 자장면 사 먹는 재미에. 그리고 삼촌 중 가장 어린 한멩이 삼촌과 노는 재미에 갔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그 때 한멩이 삼촌의 나이는 겨우 요즘 중고생 정도였었다. 그는 부모님 돌아가시자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김천의 먼 친척 뻘인 우리 외가로 일하러 왔다고 했다. 그런 한멩이 삼촌은 책가방 메고 학교 다녀오는, 겨우 자신보다 대여섯 살 아래인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정말 내장 속까지 저릿저릿해지는 그리움에, 사우나에서 집으로 돌아와 공지영 작가의 <봉순이 언니>를 다시 읽었다. 12년 전인가, 신문에 연재될 당시 띄엄띄엄 읽었고, 책으로 나오자 다시 통독했던 <봉순이 언니>를. 한멩이 삼촌을 추억하기 위해서 말이다. 소설은, 5세의 짱아란 서술자가 자기 집의 식모였던 자신의 첫 사람, 봉순이 언니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60년대 서울 북아현동 풍경과 당시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인한 계층 발생이 시작되던 시대 묘사가 뛰어나다. 물론 5세 아이의 시선이 아니라 현재 어른이 된 짱아의 시선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은 다 알지만,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일까. 전에 읽었던 때와 다른 부분이 느껴진다. 20대 때에는, 그녀의 답답한 점이 눈에 확 들어왔다. 봉순이 언니를 보며 왜 저리 약지 못하고 남자에게 이용당하며 살까, 그렇게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와 사랑에 대한 환상을 깨지 못할까, 하는 생각을 주로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지금 다시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낙관적'으로 새 삶과 사랑을 추구하는 봉순이 언니의 삶의 자세가 눈에 들어 온다.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다 주며 상대를 대하는 봉순이 언니의 삶은 비록 남이 보기엔 상처 투성이 일지라도 자신에게는 군데군데 빛나는 사랑의 순간, 환희의 순간이 분명 있었으리라. 상처 받기가 두려워 사랑을 거부하는 나같은 약은 인간에게는, 가슴 아픈 순간도, 가슴 벅찬 순간도 없는 법. 아래의 인용 부분에 나와 있듯이 말이다.
나는 안다, 그녀가 한번 도망칠 때마다 그녀가 얼마나 목숨을 걸고 낙관적이어야 했는지를, 그녀는 친구들에게 말했을 것이다, 그 사람은 달라 뭔가 운명같은 것을 느꼈다니까, 가엾어서 그러고 있는게 가엾어서 내가 도와주고 싶었어, 밥도 따끈하게 퍼주고 셔츠깃도 깨끗하게 빨아주고 저녁에 돌아오면 대야에 물 데워서 발도 닦아주고 싶어. 게다가 엄마손 한번 못 느껴본 아이들이라니,,, - 191쪽 (예전 판이어서 2010년판의 쪽수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힘)
그리고 이 소설에는 당시 빠른 속도로 산업화되던 과정에 소외당하던 계층의 아픔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주인집 딸인 짱아의 입장에서 서술되기에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우리로 느껴지는 점이 새롭다.
하지만 내가 아무것도 모른 채, '나쁜 주인 집 딸년'이 되어서 서러움을 받았듯이 봉순이 언니가 이 나들이에 함께 갈 수 없다는 슬픔 역시 그녀의 잘못은 아니었다. 우리는 둘 다 전혀 다른 방향이긴 했지만 무언가, 불행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누가 대체 언제서부터 그런 일들을 정해놓았을까, 엄마에게 손을 잡혀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봉순이 언니는 시무룩한 표정을 거두고 입술을 앙다물더니 나와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대문을 꽝 닫고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 본문 84쪽
60,70년대를 배경으로 시골에서 상경하여 식순이, 공순이(절대 이들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당시 표현을 살려 인용했을뿐)로 가족과 국가 경제를 살리던 이들 여성들의 삶을 그린 소설은 꽤 많다. 심지어 '호스티스 소설'이라 불리는 갈래도 있다. 그러나, 나만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그런 세태고발 소설들을 읽어보면 본 의도와 다르게 수난받는 우리 자매들의 성적 수난사를 지나치게 리얼하게 묘사하여 오히려 반감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공지영 작가의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그녀의 아픔을 흥미거리가 아니라 따뜻한 연민의 시선으로 감싸 전해준다. 소설 마지막에 등장하듯, 이혼을 준비하며 봉순이 언니의 삶을 회고하는 작중 서술자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계급은 다르지만 같은 시대를 같이 헤쳐온 같은 여성의 아픔까지도 느껴진다. 비록 각각 다른 입장에 처해 각각 다른 방식으로 아파했을지라도,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
나는 안다. 그랬을 것이다. 낮잠에서 깨어나 누구나 고아처럼 느껴지는 그 푸르스름한 순간에 그녀는 우는 아이를 안아 주었으리라. 아이의 눈에 세상이 다시 노르스름하고 따뜻하게 느껴질 때까지. 누군가 왕사탕을 내밀면 그것을 반으로 잘라 다시 입에 넣어주며 웃었으리라. 나누어 먹어야 맛있는 거야. - 191쪽
위의 부분은, 자신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주위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던 봉순이 언니의 낙천성이 느껴진다. 그리고, 바쁜 친정의 일손을 돕기위해 외가의 방앗간에 거의 출근하다시피 가 계셨던 어머니때문에 혼자 방앗간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외로워하던 어린 시절의 나랑 놀아주던 착했던 한멩이 삼촌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금 솟아나게 한다.
아아, 그 많던 한멩이 삼촌들이 지금 모두다 행복하기를!
(참, 이 글 쓰고 나서 어머니께 한멩이 삼촌에 대해 물었더니, 이름이 '한명'이었다고 한다. 경상도 발음으로 '한멩'이었던 것이다. -_-) |
|
이 책은 어머니와 통화를 끝낸 작가의 회상으로부터 시작된다. 봉순이 언니는 어찌 보면 참 어리석은 사람이라 생각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봉순이 언니의 행동이 옳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으니까. 어쩌면 어렸을 때, 그녀가 집에서 도망쳐 나올 때부터 그녀의 등대 불빛은 꺼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는 언제까지나 방황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난 믿는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어떤 어려움에서도 돌파구를 찾아 나와 제 길을 찾아가듯이, 봉순이 언니도 언젠가는 그녀의 인생의 올바른 길을 찾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
![]()
공지영 작가를 잘 모르던 시절에 읽은 소설입니다. 책을 거의 읽지 않던 시절이라 공지영을 모른다기 보다는 그냥 아는 소설가가 없던 시절이라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전 <느낌표>라는 방송에서 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를 기억하시지요?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봉순이 언니>가 가 여기에 소개되면서 읽었지 싶습니다.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만 제외하곤 거의 다 읽은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난 지금, 표지가 바꼈습니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으니 개정판이 나올만 하지요. 제 기억으론 그 땐 빌려서 읽은 것 같은데요, 이렇게 손에 잡고 다시 천천히 읽으니 느낌이 새롭습니다. 아주 오래전 들은 얘긴데 기억이 가물가물했다가 다시 생각난 느낌?
아마도 그 시절엔 봉순이 언니 같은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가끔 책에서, 방송에서, 영화에서 이런 비슷한 사례들이 많이 나오는 걸 보면요. 말이 가족이지 뭔가 다른 사람. 수양딸인 것 같지만 식모살이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화자인 짱이의 어린 눈에는 언니였지만 가족은 아닌 언니인 것이지요. 처음엔 엄마도 봉순니 언니를 잘 아껴주고 보살펴줬지만 점점 변해갑니다. 없던 시절엔 나누고 함께했던 엄마, 점점 살림이 나아지면서 봉순이 언니는 말 그대로 식모대접만 받게 됩니다. 이런 봉순이 언니가 시집을 제대로 갔을까요? 얻어맞아 파혼당하고, 남편이 병으로 죽고 하는 등 인생이 평탄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엄마는 봉순이 언니가 다시 찾아올까 몰래 이사까지 가버립니다. 친딸이었다면 도망치듯 이사하진 않았겠지요.
이 소설은 약자에 대한 어두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의 빈곤층을 비춥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을 지나 부자와 중산층, 서민으로 갈라지고 이러한 현상은 '억울하면 출세해'라는 어처구니 없는 말이 유행어던 시절입니다. 성장을 위해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는 게 당연시되던 시절. 하지만 누가 희생이 정당하다는 걸 허락했나요. 독재정권이 서민의 삶을 밟아도 된다고 신이 허락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독재정권만 잘못일까요? 우리 모두가 가해자는 아닐런지요. 봉순이 언니를 버리고 도망간 짱아의 엄마처럼요. 생각해보니 고도성장 시절에서나 있을법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뉴스에서 봉순이 언니와 비슷한 사연들이 아직도 나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내 이웃이 봉순이 언니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내가 짱아의 엄마일 수도요. |
|
봉순이 언니 공지영 지음 오픈하우스
▶ 첫 번째 고개 -한국 현대시 읽어보기
1. 위의 두 시에서 화자가 처한 상황은 2. 소설 속 봉순이 언니가 위의 두 시를 읽는다면 위의 두 시 중에서, 에 더 공감할 것 같다. 그 이유는 ▶ 두 번째 고개 - 소설을 읽고 소감 나누기 1. 소설의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사람은 미경이(식모 일을 하면서 옷 훔친 것은 나쁜 일이지만, 동생들 때문이라서 동시에 불쌍하게 생각되었다.) 언니였다. 2.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172페이지에 나오는 병원에 가기 싫은 봉순이 언니 VS 엄마가 등장하는 구절이었다. 이 구절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결국에는 낙태하게 되는 봉순 언니의 비참함 때문이다. 3. 소설 속 봉순이 언니의 삶에서 가장 아쉬웠던 장면은 세탁소 아들과 도주하고 나서 아이를 지운 후에 선을 본 남자와 결혼하게 될 때이다. 소설 가장 초반에서 어른이 된 작가가 봉순언니의 근황에 대해 들을 때, 이미 봉순언니의 인생이 힘들거라는 것을 암시해서 나쁘게 될 것이 예상되었다. ▶ 세 번째 고개 - 소설 이해하기 Ⅰ 1. 주인공 짱이의 엄마가 봉순이 언니를 대하는 방식은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하기도 하고, 냉정하게 무시하기도 한다. 2. 이렇게 짱이의 엄마가 봉순이 언니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 이유는 ▶ 네 번째 고개 - 소설 이해하기 Ⅱ 1.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이 본 여자는 봉순이 언니일 것 같다. 2. 그런데, 주인공이 봉순이 언니를 모른 척 하고 지나간 이유는 서로 잘 알고 있을 때도 좋지 못하게 살던 봉순언니인 만큼, 변한 언니를 마주칠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자기 가족도 봉순언니가 정말 힘들 때, 약간 무관심하게 대하고 방관했었고 지금의 모습에도 힘들게 살아온 것이 드러나니가 죄책감과 미안한 감정으로 마주치기가 힘들고 지금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그랬을 것 같다. 3. 주인공이 "희망이라니, 끔찍하게……. 그 눈빛에서……"라고 표현한 이유는 예전처럼 금전적인 도움을 바랬던 것 같다. ▶ 다섯 번째 고개 - 소설 바꿔 생각해보기 1. 이 소설 『봉순이 언니』는 이미 연극으로도 리메이크 되어 큰 인기를 얻었는데, 만약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주연배우에 대한 캐스팅을 해보자. ① 봉순이 언니(아역/성인 역) : 순함, 불쌍함, 순진함. ② 짱이 역(아역/성인 역) :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움 ③ 엄마 역 : 현실적이고 허영심이 많음 ④ 아버지 역 : 잘생기고 바쁘고 무관심함. ⑤ 미자 언니 역 : ⑥ 미경 언니 역 : ⑦ 병식이 ⑧ 업이 엄마 역 : ⑨ 봉순이 언니 남편 역 : 2015.2.15.(일) 이은우(중1)
|
|||||||||||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 <도가니>로 영화적 감상이 먼저 다가오는 작가이다. 그런데, 작가의 그 많은 책들 중에서 이 책만큼 부를 때마다 정겹고 다시 부르고 싶은 이름이 또 있을까? 흔해서 잊을 것만 같은데 결국엔 생각나고 그 어감에 아련한 눈물이 배어나는 이름. 봉순이 언니. 그래서 막상 이 책을 펼쳤는데, 마지막 부분에서의 반전이 충격이다.
"봉순이 언니는 그후에도 끊임없이 남자들과 도망을 치고 다시 혼자가 되어서 돌아왔고 그때마다 아이를 하나씩 더 달고 왔을 뿐, 점점 더 가난뱅이가 되어갔다(p.247)."
|
|
오래전 우리의 과거를 볼 수 있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
|
공지영 작가의 글은 일본 작가 츠지 히토나리와 함께 쓴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란 책으로 처음 만나봤다.
정신없이 읽고나서, 공지영 작가가 베스트셀러라고 라디오에서 광고하는 이유가 이거구나 했다.
이후로 지인에게서 공지영작가의 책 중에서 '봉순이 언니'라는 책이 가장 좋았다는 말을 듣고, 당장에 구입했다.
작가 본인의 이야기(경험담)인 듯 한 봉순이 언니.
잔잔한 감동과 눈물을 주는, 하지만 끝은 조금은 아쉬운 점이 있는 책.
누군가 소소한 감동을 주는 책을 원한다고 하면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
|
1960년대 흔했던 제도, 식모를 그린 책.
봉순이 언니를 내적으로 조숙한 5살 아이의 눈으로 그린 관찰자 시점.
첫페이지를 연 후, 이내 마지막까지 읽어가게 하는 소설의 힘!
공지영 작가의 책은, 문장들은 그랬다.
예민한 관찰력으로 섬세하게 풀어가는 문장들과 친절하게 전해주는 스토리.
5살에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할수 있지만, 그것을 말로 다 설명하지는 못한다. 고이 간직했던 예민한 기억력을 글로 풀어놓는다면, 40이 넘어서, 게다가 화자가 소설가라면 이렇게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구나 싶다.
이 책은 이런 느낌이다.
짱아에게 엄마였고, 언니였고, 친구였던 자신의 인생에서 첫사람 봉순이 언니에 대한 아주 어릴때부터의 관찰과 기억을 40이 넘어 글로써 재생한 느낌의 소설이다.
누구나 내 마음에 새겨놓은 기억의 주인공들을 말이나 글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우리의 마음의 기억은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첫사랑! 그래 첫사랑! 그리고 좌절로 인한 고통! 자연스레 첫사랑을 새겨놓은, 또는 반복될지라도 사랑의 기억을 따라 가게 되며, 그 길에는 으레 슬픔, 외로움, 좌절로 인한 고통의 감정들과 조우하게 된다.
1. 살아있는 그림들
작가의 문장들은 바닷가의 바닥에서 파닥거리며 그물에 걸린 것을 억울해 분에 못이겨하는 물고기마냥 신선하고 생생하고 파닥거리고 있다. 어려운듯 어렵지 않게 머릿속에 그녀의 표현들이 그려지고 웃음이 난다.
< 지금도 그 느낌만은 생생한데, 나는 아주 느리게, 마치 태아가 양수 속에서 천천히 헤엄치듯 부드럽고 편안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만일 그때 한동안 나를 그냥 놔두었더라면 어쩌면 팔다리에 부드러운 지느러미가 돋고 가슴팍에 참빗처럼 붉고 선연히 촘촘한 아가미가 생겼을지도 몰랐을 것이다.> p.23
<별들이 무리 지어 빛나고 있었다. 동네에 가위를 울리며 다니는 엿장수 아저씨가 집어 주는 따뜻한 강냉이처럼 하얗고 동그란 별들 멀리 둑 아래 점점이 무허가 판잣집에서 나오는 호롱불들도 보였다.> p.33
2. 짱아의 두려움
봉순이 언니는 엄마 대신이었다. 큰 집으로 이사한 후에도 봉순이 언니와 한방에서 자면서 마음의 안이를 느꼈던 시절. 그럼 가족은 짱아에게 어떤 모습이었을까? 5살 짱아의 말이 내 마음에서 공감될때마다 슬프다.
<부모가 싸우고 있는 소리를 듣는 어린 날은 인생이 얼마나 비관적이었던지, 이 세상에 믿을 사람은 왜 그렇게 하나도 없어 보였던지.> p.45
<엄마가 운다는 것은 얼마나 큰 불안이었는지, 봉순이 언니의 따뜻한 등에서 까무룩 잠이 들려던 나는 화들짝 놀란 듯 깨어났고 다시 울었다.> p.46
<그러므로 그 이후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어머니는 언제나 부재중이었다.> p.59
<이 아랫동네에 와서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알아버렸다. 돈이 있으면 사탕처럼 집도 살 수 있고, 돈이 없으면 그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으며, 그리고 심지어 사람조차도 미자 언니나 정자 언니나, 그리고 우리 봉순이 언니조차도 사실은 돈을 주고 사는 거라는 걸 말이다. 아버지는 자동차에 키를 다시 꽂을 수 있어서 이제 비참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자신이 언젠가 '있는 집 사람들이 더 무섭다'고 말한 대로 '있는 집 사람들'이 되었고, 그래서 무서워진 것 같았다. > p.110
3. 짱아의 외로움
아랫동네로 이사온 후 짱아는 혼자였다. 엄마는 일을 그만두고 외출이 잦고, 짱아는 봉순이 언니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봉순이 언니는 연애를 시작하며 자주 짱아는 혼자였다. 짱아 집에 세들어 사는 아이들과의 만남, 새로운 세계. 우리 아이는 겪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 그렇게 아이는 세상으로 튕겨져 나오게 되는거였다.
<주먹으로 맞은 뺨도 뺨이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욕 때문에 나는 얼어붙었던 것이다. 그것이 욕이라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그 뜻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다만 무언가 아주 더러운 것을 이미 삼켜버리고만 그런 느낌이었다...........
"재수 없는 주인집 딸년! 우라질!"..........
언니는 내 뺨을 열심히 닦아주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내게 던졌던 말은 마음에 걸려 닦아지지 않았다. 나는 무언가 해석할 수 없는 혼돈의 도가니 속으로 던져진 느낌이었다. 억울했고, 분했고, 그리고 모욕스러웠다.> p.63
<나는 늘 혼자였다.> p.65
하지만 그 동네 친구들은 짱아를 놀려먹기만 할 뿐 친구가 되어주지 않았다. 영원히. 훗날 노동운동을 하지만, 역시 짱아는 그들과 친구가 되기 힘들었다.
<이제 봉순이 언니 없이 이 악의에 찬 눈동자들을 향해 이 세상의 첫 걸음마를 혼자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어슴푸레 깨달았다........
노르스름한 방범등에 전신주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고 짱구네 가게 앞에 선 수양버들의 이파리가 산발한 머리카락처럼 섬뜩했다.> p.73
<이렇게 글을 쓰며 돌이켜보니 내 어린 시절의 지도에 이미 내 인생이 그려져 있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자주하는 실수와 내가 자주 겪는 슬픔과 내가 머뭇거리다 돌이키지 못한 정황들이, 인생은 이미 그때 내게 나침반을 표시해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세월은 한번 가면 그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막연히 믿었던, 그래서 돌이켜보면 나는 언제나 같은 삶을 같은 항아리 속에서 반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p.138
4. 봉순이 언니
1960년대 어떠한 법적 지위나 안전장치 없는 식모라는 역할. 하지만 역할이 아닌 그 사람의 정체성을 말했던 그때. 봉순이 언니는 슬프게도 식모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은 슬픈 현실들.
이 책은 짱아의 어린감성과 그의 시각을 통해 보여주고 있지만, 봉순이 언니의 내면은 짐작할 뿐이다. 비참하고, 서러울법한데, 봉순이 언니는 희망이 있다.
의붓아버지에게서 도망 나온 후, 외가집에서 지내다가, 없는 형편에 외숙모는 봉순이 언니를 창경궁으로 소풍가는 냥, 데리고 간다. 그곳에서 손을 놓친다. 그런 아이들이 많았단다. 부모 손을 놓친 아이들.
그래서일까 봉순이 언니는 짱아 부모님이 자신을 버릴까 두려워했었다. 봉순이 언니는 고아원에 맡겨졌고, 일을 잘해서 교회집사님네에 가서 일을 도왔지만, 그곳은 밥도 제대로 주지 않고 노동착취와 함께 학대를 했다. 그 집에 세들어 살던 짱아네가 이사갈때, 몰래 도망나와 따라온 봉순이 언니는 짱아네서 식모를 살게 된다.
눈치도 없이 밥에 대한 무한 집착을 보이지만, 순하고 착한 사람인지라 짱아 어머니는 봉순이를 불쌍히 여기고 거둬준다. 짱아네가 아랫마을로 이사 온 후 세탁소 직원과 연애를 하고, 나중엔 그를 따라 도망을 가지만, 임신 8개월째, 온 몸에 폭행의 흔적을 안고 다시 짱아네로 오게 된다.
짱아 어머니는 누가 알까 두려워 봉순이를 설득하여 8개월 태아를 낙태시킨다. 결혼도 하지 못할까봐. 어머니의 행동도 무섭지만, 미혼녀로 살아가기 힘든 1960년대의 사회가, 현실이 더 무서운 그때. 봉순이 언니는 큰 좌절을 겪는다.
하지만, 다시 선을 보고 결혼을 한다. 짱아 어머니에게 남자의 폐병을 알리지 않고 축복속에 결혼을 한다. 사랑해서. 그남자를 사랑해서. 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몇개월 후 임신을 하고 몇개월 후 과부가 된다. 봉순이 언니는 짱아네로 다시 오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봉순이 언니를 받아주기엔 마음이 버겁다. 언제까지 봉순이 언니를 뒷바라지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봉순이 언니는 그렇게 짱아네에 자주 찾아왔고, 또 새로운 남자와 눈이 맞아 떠났다가, 처량한 신세가 되어 돌아왔고, 반복된 삶을 살게 된다.
처량하고 불쌍한 그 얼굴에 희망이란 표정을 안고. 반복될때마다 아이 하나씩 늘어났다.
5. 저마다의 인생의 의미
흔한 인생은 아니지만, 특별히 드믄 인생을 산 것도 아닌 봉순이 언니. 그녀의 인생을 크게 보면 같은 사이클로 반복적으로 움직인다. 마치 습관처럼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하지만 손가락질 할 수 없다.
그녀는 매순간 행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고통 속에서도 희망이란 선물을 찾아 마음에 장착했으니. 봉순이 언니는 당신의 인생을 산 것이다.
<낮잠에서 깨어나 누구나 고아처럼 느껴지는 그 푸르스름한 순간에 그녀는 우는 아이를 안아 주었으리라. 아이의 눈에 세상이 다시 노르스름하고 따뜻하게 느껴질 때까지. 누군가 왕사탕을 내밀면 그것을 반으로 잘라 다시 입에 넣어주며 웃었으리라. 나누어 먹어야 맛있는 것야.>
자꾸만 마음에서 이는 안타까움과 조금만 더 지혜로웠으면 하는 아쉬움 섞인 간절함을 꾹꾹 눌러본다. 인생의 의미와 가치는 더 낫고, 부족함은 없으니까.
제각각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니, 그만하면 가치가 있는 것이다. |
|
어찌보면 티비나 소설 속 비련의 주인공이 될 듯 말 듯 한 그 시절엔 그러 했으니까 사회는 선진국을 따라 하려하고 잘 사는 사람들은 자랑스레 토스트와 우유로 아침을 먹고 아직 배고픈 사람들은 오늘이 마지막인냥 먹을 수 있을때 되세김 이라도 할 수 있 듯 최선을 다해 밥을 먹던 시절 봉순이 언니는 그저 맘 따신 한 여인 사랑을 언제나 갈구하며 희망을 벼리지 않는 여인이다 누구나 소설을 읽는 시점은 자기 중심적이다 동시대의 사람들은 아 그 시절은 그러했지 아며 회상 할 터이고 이도 저도 아닌 난 봉숭이 언니의 따신 맘이 쏠린다 짱아를 향한 아주 따뜻한 마음 첫사랑의 남자와 헤어져 스 남자의 아이를 잃었을 때도 장아가 내민 무지개 사탕을 톡 반으로 나누어 짱아의 입에 넣어 주는 그 따뜻한 마음 희망을 절대 버리지 못 함에 더욱 불행해 졌을지도 모른는 한 여인 바보다 그녀는 난 짱아가 되어 아주 조금 잠시 그녀의 사랑을 받고 싶다 그녀의 등에 아주 커 버려도 업히고 싶고 아주 슬픈 날 그녀가 톡 하며 깨어 준 그 사탕 반쪽을 오독 오독 거리며 먹고프다 |
|
삼성을 세운 이병철 회장은 소설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소설을 읽으며 인간의 심리를 파악했다고 하는데... 이병철 회장이 이 책을 읽었다면 아마 여러 입장의 여성심리에 대해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심리를 안다'는 건, '이해한다'와 다른 말이라는걸 이 책을 통해 알게됐다. 봉순이 언니가 다이아 반지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세탁소에서 일하던 남자와 야반도주한 심리는 알겠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행동한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고집은 세지만 착하고, '짱아'를 잘돌봐주는 순진둥이 봉순이가 왜 자기 팔자를 그렇게 꼬아가며 살아가는지... 읽는 내내 한숨이 나왔다. '열심히 살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동화같은 해피엔딩이 아니라 열심히 살아도 시궁창으로 떨어지는 삶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답답했다. 봉순이 언니가 옆에 있었다면 등짝 한 번 세게 갈겨주고 싶었다.
사실 봉순이 언니는 로맨티스트였을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세탁소 남자와 도주해 살면서 임신한 채로 버림받았다. 지금도 큰 흉이지만, 그 당시 처녀가 애를 밴다는 건 금기시 되어야할 항목이였다. 게다가 새로 만난 남자가 죽을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기가 더 열심히 살면서 그 병도 고쳐주고, 그 남자의 아이까지 잘 키우겠다는 바보같을 정도로 착한 심성으로 과부가 되었다. 그 당시 봉순이는 아들 하나를 낳고 또 임신 중이였다. 낙태에, 과부에, 홀어미가 된 봉순이... 그녀는 로맨티스트였을지 몰라도 남들 눈에 팔자 센 불쌍한 여자, 어리석은 여자였을 뿐이다.
난 봉순이를 끝내 받아줄 수 없었던 짱아의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 역시 모진 사람은 아니였다. 봉순이가 어렸을 적엔 정말 큰 딸처럼 식구처럼 키웠으리라... 그러나 봉순이가 가출했을 때, 임신하고 돌아왔을 때, 결혼할 사람이 죽을 병에 걸렸다는 걸 알고있음에도 한마디 상의없이 덜컥 결혼해버렸다는 걸 알았을 때, 결국 애딸린 과부가 되어 돌아왔을 때... 짱아의 엄마는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친자식들이 보고 배울까봐 무서워서라도 더 같이 사는 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리고 봉순이가 평생 짐이 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에 얼마나 두려웠을까?? 봉순이 언니를 내칠 수 밖에 없었던 짱아 엄마를 비난할 수 없었다. 오히려 짱아 엄마가 측은했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라는 옛 말이 떠올랐다. 봉순이가 결혼해서 잘 살았다면... 친정 오가는 것처럼 좋은 사이를 유지했을 수도 있는데... 봉순이가 꼬아버린 그들의 관계다.
소설 중간 중간 작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는데, 작가의 말에서 봉순이 언니가 실존 인물이고, 공지영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됐 다. 공지영 작가는 봉순이 언니를 보면서 저렇게 안풀리는 운명도 있구나 싶었다는데... 난 그 것도 봉순이가 선택한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봉순이 언니를 측 은하게 보기보다는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인생을 왜 그렇게밖에 못살아냈냐고 따지고 싶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을 미워하다면 그 사람 안에 있는 당신의 한부분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결코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고."는 공지영 작가의 말에 섬찟했다. 내가 봉순이 언니와 닮은 건 무엇일까? 내가 그녀를 미워하는 이유는??
아... 근데 책을 덮고 난 이후로 계속 생각해본다...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