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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치광이의 공상 속에 2천만 명의 사람들이 사는 나라..」
1977년 지진으로 타계한 작가 알렉산드루 이바시우크(Alexandru Ivasiuc)는 차우셰스쿠 집권 당시의 루마니아를 이렇게 표현했다.
흔히 시간이 지나 과거를 돌이킬 때..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싶은 일들도 당시에는 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일제강점기 이후 친일파들이 기득권을 고스란히 유지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나, 루마니아라는 동구의 크지 않은 나라에서 차우셰스쿠 같은 어설픈 독재자가 서구열강의 칭송 속에서 우매한 민중을 기만해가며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이 책은.. 얼핏 우리나라와는 지나치게 동떨어진 지구 반대편의 어떤 나라의 과거 독재자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남의 이야기 같이 그저 편한 느낌으로 읽히지 않는다. 그건 아마 루마니아라는 나라와 그 민족이 걸어온 발자취가 마치 '도플갱어'처럼 우리의 그것과 닮아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짧은 가방끈으로 인한 일천한 지식에, 창의성도 떨어지고, 말더듬이인데다, 기회주의적이고 때로는 비겁한 겁장이기도 하였던 차우셰스쿠가 루마니아의 절대 독재자가 되기 까지는 여러가지 '밑밥'들이 전제되었다. 이런 전제들이 우리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고, 또 그러한 전제가 파생시킨 이후 역사의 흐름이 또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역사가 단순한 우연의 반복으로 인한 결과물이 아님을, 그리고 초기조건의 미세한 차이가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카오스이론'이 쉽게 적용되는 대상이 아님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차우셰스크의 독재정권의 탄생의 배경을 몇 가지로 정리해보자.
첫째, 루마니아는 주변 강대국 들 틈바구니에서 늘 핍박과 침략에 시달렸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고대 로마제국을 시작으로 터키의 지배를 장기간 받았으며, 1차대전 즈음에는 오스트리아,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의 영향력 하에서 바람 앞에 무기력하게 흔들리는 촛불같은 시기를 보냈다. 결국 자치권을 인정받아 이웃국 왕족을 영입해 국왕으로 옹립하여 겨우 근대국가의 기틀을 잡으나, 곧 폭군의 출현으로 민중들의 고통은 매한가지로 지속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원색적 민족주의가 이후 루마니아 민중들의 정서에 자리잡는 역할을 한다.
둘째, 이를테면 근대화라고 할 수 있는 사회주의 이념과 다양한 정치활동이 루마니아 민족이 아닌 외부인들에 의해 주도된다. 유대인이나 헝거리, 러시아(소련)인들이 정치활동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를 과거의 외세침략의 역사와 연계하여 불안한 조짐으로 받아들인 민중들은 원색적 민족주의 정서에 편항성을 가속하게 된다.
셋째, 근대화의 물결 속에 현명하고 또 결단력있는 지도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주변 강대국들의 일방적 의사결정에 의해, 가까스로 목전에 이른 정치적 독립과 사회적 안정의 기회가 무참히 몰살된다. 결국 전쟁의 패전국(또는 패전국의 속국)으로서 그들은 이후 강대국의 이권에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주장할 권리를 철저히 묵살당한다.
넷째,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결합된 루마니아 순혈의 정치세력이 주도권을 잡게 될 즈음, 내부적으로 권력다툼의 이전투구가 발생한다. 결국 수 많은 지도자들의 추방과 숙청이 이루어지고 난 후, 겨우 국가권력의 주도권을 잡은 게오르기우 데즈는 바로 암으로 사망해버린다. 이로서 제대로 된 권력승계 한 번 없이 또 한번 정치판은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이러한 복잡하고 위태로운 여건을 딛고 권력의 실세가 된 차우셰스쿠는 곧 자신도 권력투쟁의 희생양이 될 것을 두려워하여 수단과 방법을 총 동원해 정적을 몰아내고, 언론을 철저히 통제하였으며.. 대규모의 투자사업을 진행시켜 정치문제에서 경제개발로 사회적 이슈를 환기시킨다. 민중들은 비록 독재체제이기는 하나 전에없이 찾아온 평화에 잠시나마 행복감을 느끼고.. 열심히 하면 행복하고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다는 근거없는 믿음에 기인해 차우셰스쿠를 위대하고 존경스러운 지도자로 떠 받든다.
권력은 물과 같아 한 곳으로 몰려 고이면... 곧 썩기 마련인 법. 차우셰스쿠 주변은 '예스 맨'들로 가득 차고, 차우셰스쿠의 소련에 대한 불만이나 비협조 역시 서방 세계의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그의 '천박스러운' 독재는 점입가경에 이른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지위 때문에 주변인들이 굽신거리는 것을 자신의 천재성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해외 여러나라의 지도자들 앞에서도 건방진 태도로 일관함으로써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된다.
1989년 12월 지방에서의 민중봉기를 시작으로 바로 이어진 쿠테타에 의해 차우셰스쿠는 결국 실권하고 사형을 당하지만, 그의 집권시기에 주변에서 권력을 휘둘러댔던 경찰, 사법부, 공무원과 비밀경찰들은 아무런 변화 없이 이후 정권의 개로서 그 역할을 지속한다. 누구도 그들의 잘못을 큰 소리로 꾸짖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후 집권한 정치인들도 비밀경찰들이 과거 수집해놓은 자신들에 대한 정보가 곧 자신의 '무덤'이 될 수 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비밀경찰들이 과거 수없이 저지른 악행들은 그 어느 것하나 도려내지지 못한 채 깨끗하게 봉합된다. 과거의 잘못은 과거의 책임일지라도, 현재의 루마니아는 여전히 불치병 같은 난치병을 앓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참.. 신기하게도.. 전체적인 문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몇 글자만 바꾸면 우리나라의 근현대 과거사와 그다지 다를 게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의 생각이 지나친 편견에서 오는 착각이 아니라면, 다른 나라의 역사를 제3자 입장에서 비교적 공정하게 한번 되짚어보는 작업이, 우리의 역사를 다시한번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 또한 틀리지 않으리라.
그래도.. 난치병을 아직도 앓고 살아야 하는 운명을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까지에 이르면, 그런 생각들이 역사를 몰라 공부가 한참 더 필요한 나만의 '짧은' 생각일 뿐이라면.. 하는 바램 역시 적지않게 든다. 그건,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나의 '비겁함'일까.. 아니면 여전히 어떤이의 '공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불가항력'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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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제>와 <히로히토 평전>으로 유명한 저자가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지배를 가능하게 한 여러 상황 전체를 서술하는 책이다. 현지 관련인 인터뷰가 많다. 차우셰스쿠의 일생 추적 위주만이 아니라 그가 정권을 잡게 되기까지, 그리고 근 25년간 독재하면서 나라를 망치게 되기까지 그를 도와준 역사와 시대를 고찰한다. 특히 비밀 경찰과 협력하는 중산층에 특권 부여 등 독재자에게 부역하게끔 만드는 사회 분위기를 파헤쳐 준다. 책의 부제인 '악마의 손에 키스를'이 딱 말해준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전체 24장 중 차우셰스쿠 집권 이전 루마니아 역사를 설명해주는 2,3,4장의 서술이 값져 보인다.
책은 한 독재자를 악마화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는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에 집중한다. 고대 로마제국,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 터키 지배자와 비잔티움 제국의 뒤를 이은 그리스 지배자 등 외세에 오래 시달린 역사 때문에 루마니아 민중들은 민족주의에 매달리게 되는데 이를 차우셰스쿠는 영리하게 이용한다. 그래서 반소 민족주의가 자유민주주의인 것은 아닌데도 루마니아 민중들은 물론 서구 언론들까지 스탈린에 맞서는(것처럼 보이는?) 차우셰스쿠를 지지하게 되는 과정이 디테일하게 설명되어 있다.
위 문단까지는 이 책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이고, 아래부터는 그냥 내가 보기에 재미있었던 부분이다. 사실 나는 차우세스쿠와 드라큘라 관련한 내용을 찾으려고 이 책을 읽었다. 큰 성과는 없었지만 차우셰스쿠가 역사를 왜곡하는 과정이 나와 있어 재미있었다. 그런데 그는 다른 독재자들처럼 국정 역사서 집필을 명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역사서를 썼단다, 큭.
실제로 차우셰스쿠가 쓴 역사서들은 그의 이름을 빛내기 위해 전문 역사가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주요 내용은 루마니아 민족주의를 정당화시키고 오래 전에 이미 루마니아 문화가 뿌리를 깊숙이 내렸다는 점을 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차우셰스쿠의 이름은 공동 집필자들의 이름을 대신해서 항상 책의 앞표지에 나와 있었다. - 59쪽에서 인용
또 웃긴 건, 차우셰스쿠는 소련에 저항하는 지도자인 자신을 부각시키기 위해 부레비스타, 데체발, 미하이, 드라큘라같은 민족 영웅들을 부각시켰는데 결과는 오히려 드라큘라의 악명만 계승했다는 점. 1970년대 도시 재개발 사업을 밀어붙일 때는 '불도저를 탄 드라큘라'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심지어 1989년 크리스마스에 처형된 후에는 아래 인용부분과 같은 루머가 떠돌았다고 하니.
1990년 차우셰스쿠의 양복 재단사는 차우셰스쿠 사후 흡혈귀 드라큘라의 전설을 연상시키기 위해 차우세스쿠가 생전에 주기적으로 건강한 어린이들의 피를 수혈받았다는 이야기도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고 확인해 주었다. - 270쪽에서 인용
위처럼, 저자의 꼼꼼한 인터뷰가 인상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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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공부하면서 제일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배우는 것은 그리스, 로마시대의 이야기일게다. 그리스,로마사를 빼놓고선 서양사를 논할수 없음이며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동유럽이나 아시아권의 역사에 관해선 전공을 하지 않은 다음에야 상세히 배울 기회가 없다. 게다가 세계대전 이후의 동유럽사에 관해선 거의 알고있는 바가 없다.
영화로 우리에게 친숙한 '마지막 황제'의 저자이며 뛰어난 언론인이기도한 에드워드 베르에의해 쓰여진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일대기에 많은 관심과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은 공산주의 국가의 폐쇠성 때문인지 루마니아를 비롯한 독재국가에 관한 정보가 그다지 많지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 증인들의인터뷰를 통해 보잘것없는 한 농부의 아들인 차우셰스쿠가 어떻게 젊은 나이에 쟁쟁한 실력자들을 제치고 공산당 조직을 장악할수 있었고 마르크스-레닌주의 정권을 설립하여 그토록 오랜기간 집권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어렵게구한 자료와 정보를 수집하고 그 당시 상황을 목격했던 당 관료, 군 동료및 조직원들을 인터뷰하였으며 차우셰스쿠와 오랫동안 함께 했던 요리사, 주치의, 경호원과 하인들을 일일이 만나 그의 사생활과 가정사까지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루마니아 전역에 기회주의자들을 양산시키고 전국을 방대한 조직의 비밀경찰들의 감시하에 두고, 인민들은 겁주고 침묵하게 만든 한 독재자의 일생을 통해 루마니아의 과거를 되돌아 보고 공산화되는 과정과 풍요롭고 자유롭던 한 나라의 역사속에 남은 과거의 흔적들을 돌이켜 보며 남의 나라 일이라 여길수 만은 없는 이유는 북한의 독재정권을 떠올릴수 밖에 없음이며 독재정권하의 루마니아인들의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에 마음이 저릿해 온다.
1989년 크리스마스가 있던 주일,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그의 부인 엘레나 차우셰스쿠의 재판이 남긴 한편의 영상이 텔레비전에 생생하게 보도되자 독재자의 최후를 지켜보며 비로소 사람들은 이들 부부가 어떻게 오랜 세월 절대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는지, 그 배경을 궁금하게 여기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루마니아가 왜 그렇게 오랜 세월 공산주의 우상에 떠말려 고통과 공포에 시달리면서 비극의 역사를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곳곳에 생소한 지명들이나 어려운 인명들 때문에 이 책을 읽는것이 녹록치 만은 않았지만 공산권국가를 조금이나마 알게된 것은 커다란 성과였고 소중한 경험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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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는 대단한 재산을 상속받은 어리석은 바보와 같다는 말이 있다. 루마니아 사람들 사이에 폭넓게 퍼져 있는 통속적인 비유이다. 또 루마니아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자문자답한다. ‘루마니아 사람들에게 푸른 숲, 맑은 하천, 풍부한 삼림 자원, 다양한 광물 자원, 기름 그리고 비옥한 농토를 준 신이 어느 날 너무 많은 축복을 준 사살을 깨우치고 균형을 잡기 위해 자기가 찾아낼 수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악한 사람을 데려왔다.’ 루마니아 사람들의 서글픈 농담임이 틀림없다.” -올리비아 매닝, [발칸 3부작], 제1권 [운명 같은 전쟁]
책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차우셰스쿠가 어떤 사람인가를 한순간 알아 차릴 수 있었다. 사실 루마니아 하면 아직도 나는 체조선수 나디아 코마네치를 떠 올린다. 어릴 적 올림픽에서 본 그의 연기는 나에게 거의 예술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런 선수를 보면서도 나는 당시 루마니아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 했다.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차우셰스쿠라는 역사적 인물도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1967년 국가평의회 의장(대통령)이 된 이후로 1985년 4선 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학력은 초등학교까지의 교육이 전무하며 사실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지식도 없었으며 단지 그는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외우며 실행 했을 뿐이다. 차우셰스쿠는 기본적인 지식뿐만이 아니라 대통령으로써 가져야 할 애국심과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 단지 그는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국가의 대통령이 되었고, 그의 수하인 비밀경찰은 그의 그런 사욕을 채워주기 위해 충실히 임무를 한 세력이다.
차우셰스쿠는 자신의 대외적 권력을 위해 당시 외국의 저명인사를 이용했고 자신의 절대권력을 위해 비밀경찰을 조직했으며 언론을 장악했다. 한명의 잘 못된 선택이 수천만명을 불행으로 이끈다. 오로지 한명의 독재자를 위해 수천만명의 국민은 꿈이 없어지고 삶의 희망이 없어지며 이들은 한순간에 바보가 되어지고 만다. 한명의 독재자를 위해 서로가 감시하며 서로를 협박하고 서로를 미워한다. 오로지 한명의 독재자를 위해 수천만명의 사람들이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나는 사회주의는 그저 유토피아를 꿈꾸는 자들의 잘 못된 공동체 의식이라고 배웠다. 멀지 않는 한 민족인 북한이 공산주의 였고 당시 김일성은 동물로 비유되었으며 김일성은 죽어 마땅한 사람으로 교육을 받았다. 이러한 지식은 사실 고등학교를 가면서 다시 기초를 배우며 알았고, 당시에도 나는 부끄러운 이야기 이지만 루마니아가 독재자가 있는 나라인지 알지 못 했다.
독재자의 가장 무서운 적은 문화라고 했다. 문화는 사람들을 깨우치고 하며 사람을 변화 시킨다. 하지만 독재자 한명이 아무리 강압적으로 문화를 막는다 해도 결국 이기는 건 국민이다. 국민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국민이 된다. 문화는 창조되며 창조되는 문화는 한명으 권력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민 한 사람이 꿈을 꾸며 창조하는 것이 모여 문화가 되어지진다.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를 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웠다. 무지한 한명의 독재자로 인해 2천만명이 넘는 국민들이 그의 손아귀에서 놀아난다. 이들은 서로가 감독관이며 창조를 하지 못하고 그저 죽어있는 삶을 산다. 하지만 결국 산을 옮기는 왕이 아니라 한 줌의 흙을 옮기는 백성이라고 했다. 아무리 절대권력 독재자가 영원할 것 같지만 언제나 모든 곳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결국 국민들은 단결했고, 이들은 꿈을 꾸웠으며 이들 스스로가 변화되기를 위해 혁명을 꿈꾸었다. 이들에게는 새로운 문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차우셰스쿠 부부는 재판 즉시 사형 선고를 받았고, 이 부부는 곧 총살을 당했으며 몇 칠 후 시신은 유기되어 어느 차안에서 발견 되었다. 이들의 사형 후 사망한 모습이 책속에 실려있는데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었으면서도 이처럼 개 같은 죽음 당하니 국민은 무서운 것이다. 비록 차우셰스쿠가 사망한 후에도 권력의 상부층으로 인해 완전한 혁명으로 되지 못 한 부분은 매우 아쉽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차우셰스쿠를 국민이 재판한 것만으로도 국민 스스로가 자주권을 행사한 첫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뛰어난 언변술, 지휘력, 설득력, 현명함 등 모든 것을 완벽히 갖추어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소화해도 자국을 사랑하는 애국심과 국민을 섬길 줄 아는 마음이 배제 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 국가는 한 사람의 소유가 아닌 한 국가의 모든 국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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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말 해외뉴스를 통해 TV로 흘러나오는, 부패한 권력자 차우셰스쿠를 규탄하는 수많은 루마니아 군중들을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성난 시위 군중들은 차우셰스쿠의 동상을 무너뜨리고, 거리로 행진하는, 한때 평화로웠던 거리가 한순간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모습을 보면서, 과연 차우셰스쿠 그가 자국의 국민들을 어떻게 대하였기에, 권력의 종말과 더불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에서 민의를 거스르고, 국민의 머리위에 군림하는 제왕적인, 부패한 권력자의 탄생에서부터 최후의 죽음까지의 과정을 읽으며, 지난날 우리가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독재정치에 항거하던 모습들이 불현듯 다시 눈앞에 재현되어 영상처럼 떠오름을 느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 최후의 전말은 이렇다. 1989년 12월 중순 루마니아 국민들은 점점 열악해져가는 궁핍한 생활과, 차우셰스쿠의 폭압정치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국경도시 티미쇼아라에 모여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인다. 시위가 점점 커지질것에 대비하여, 불안해진 차우셰스쿠는 군대를 동원하여 시위대에 발포 할 것을 명령하게 되고, 결국 수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하고 만다. 그로부터 며칠 후 차우셰스쿠는 반정부 시위대에 대항하기 위해,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친정부 관제시위를 주도하게 되지만, 극도로 불안해진 정국 속에서 관제시위에 동원된 시민들은, 삽시간에 반정부 시위대로 돌변 하게 되고, 결국 차우셰스쿠는 지방 군부대로 피신하다가 체포되어 총살형으로 그의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루마니아는 서유럽과 동유럽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으면서, 오랜 세월동안 독일, 헝가리. 터키 등 이민족의 수많은 침략을 받으면서도, 그들만의 특유한 민족성과 문화를 보호하고 유지해온 나라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 흡사한 면이 있어 보이기도 하다. 이 책은 차우셰스쿠가 권력을 잡기까지 그리고 마지막 일생을 마치는 그 순간까지를, 차우셰스쿠와 동시대에 함께 했던 사람들의 구체적인 여러 증언과, 자료를 통해 한편의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상세하게 다루어 놓아, 민주주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 읽어 볼만한 가치 있는, 좋은 책이 아닌가 싶다.
루마니아를 포함한 유럽대륙은, 제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극심한 경제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이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차우셰스쿠는, 자신의 고향을 떠나,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 정착을 하게 된다. 그는 14세 어린 나이에 공산당에 입당 하면서, 서서히 마르크스 이론에 심취하게 되고 급기야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거듭난다. 하지만 차우셰스쿠와 함께 했던 관련자들의 실제증언에 의하면, 청년시절의 차우셰스쿠는 초등학력 중퇴로 인해 거의 문맹에 가까웠고, 어눌한 말더듬이었다고 한다. 이유야 어떻든, 이 시기에 과격한 공산주의자로 변모한 차우셰스쿠는 교도소에 자주 투옥되는데. 이곳에서 그는 그 당시 공산당의 지도자격인 게오르기우 데즈와 인연을 맺게 되면서, 거의 기회주의로 보이는 그의 권력으로 향한 열정과 더불어, 차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한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왕정시대였던 루마니아에서 공산당은 불법단체였고, 공산당 세력 역시 국가를 움직일만한 정도는 아니었으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루마니아 공산당은 소련의 도움을 얻어, 그 당시 독일에 우호적이었던 루마니아내의 권력 실세였던 안토네스쿠 정권을, 왕정과 힘을 합하여 무너트리고, 이런 과정을 겪으며 차우셰스쿠는 공산당의 우두머리 게오르기우 데즈의 충실한 집사 역할을 자처 하여 서서히 자신의 입지를 키우게 된다.
한편 2차 대전 후 소련의 영향을 받게 된 루마니아의 왕가는 얼마가지 않아 무너지고, 공산당이 정권을 잡게 되지만, 점점 소련의 내정간섭이 심해지고, 공산당을 이끌었던 게오르기우 데즈 마져 돌연 암으로 죽게 되면서 어수선한 정국을 맞이하게 된다. 이에 당시 차세대 주자였던 47세의 차우셰스쿠는, 권력의 암투과정에서 게오르기우 데즈 뒤를 이어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만장일치로 정권을 잡게 되는데, 그는 미소 냉전시대에 소련의 위성국이 되길 거부하는 새로운 정치 노선을 걸으면서, 내부적으로는 다분히 포퓰리즘적 으로 보이는 정책을 양산하면서 국민들의 커다란 호응을 받으며,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명명된 루마니아 권력의 중심자로서 첫발을 내딛기 시작한다. 그 후 그의 국가 통치내역은 철저한 개인주의 우상화에 의한, 그가 일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지독한 폭압정치가 주를 이룬다.
나는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며, 한 국가의 권력자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구체적인 통치이념이나 통치철학 없이, 정치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새삼 느꼈다. 그 당시 루마니아의 세부적인 국내의 여러 가지 여건과 자세한 내부 상황이 맞물려, 차우셰스쿠가 말하는 그의 권력 행위가 어쩔 수 없는, 정당한 선택이었다라고 치부 한다 해도, 이를 용납할 이유가 충분치 않아 보이는 건 왜일까. 더군다나 차우셰스쿠는 그의 개인적인 부정축재와, 그의 친인척을 줄줄이 권력 앞에 등장시켜,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등의 비민주적인 행태는 둘째 치더라도, 수만 명의 국민들을 학살하고 숙청하며, 국민 머리위에 올라서 그의 무소불위적인 절대 권력의 채찍질이, 결국 나라의 분열을 초래하고, 국가 경제를 파탄 내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 왔다는 점에서, 차우셰스쿠는 주권국으로서 독자적이며 자유주의적인 외교정책에 조금은 위안을 받아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오늘날 루마니아의 정치역사에 결코 용서 받지 못한 인물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오늘날 공산주의든 민주주의든 그 기본적인 이념의 유·불리를 떠나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 행사 될 때는, 그 나라의 헌법에 따라, 적법한 절차를 거쳐, 민주적인 국민적 동의가 따라야 마땅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권력이 올바르게 사용되기까지, 국민들은 성숙한 민주적 시각이 키우는데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도 당연시 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위임한 권력이 우리의 인권에 족쇄를 채우지는 못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벗어나, 지나간 잘못된 권력의 역사를 가끔은 한 번씩 되돌아보며, 차후에라도 차우셰스쿠와 같이 부패한 절대 권력자의 모형을 따르는 제2의 인물이, 세계 어느 곳에서든 다시는 나타나지 않기를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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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에서 철권통치를 휘둘렀던 차우셰스쿠, 그리고 루마니아의 비극적인 역사이야기
수많은 사람과 유대인을 학살한 아돌프 히틀러, 구소련에서 독재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도 서슴지 않았던 스탈린, 칠레의 독재자로 악명높았던 피노체트, 우간다의 식인종으로 불린 이디 아민, 캄보디아의 인간 사냥꾼 폴 포트, 그리고 아버지 김일성의 뒤를 이어 공산주의의 끈을 단단히 옥죄고 있는 김정일 등은 세계적으로 악명높은 독재자들이다. 이 중에서도 피의 대제로 불리면서 그의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이천만 명 이상을 죽여 소련연방에 항상 피비람을 불게 만들었다는 스탈린과 항상 스탈린과 비교되면서 잔인한 독재라라 불리는 히틀러는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로 인해 죽인 숫자가 600만 명 이상이고, 폴 포트는 캄보디아의 전체 인구 700만 명 중 3분의 1인 200만 명 이상을 학살(킬링필드)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또, 우간다의 식인종이라 불린 이디 아민은 반대파의 숙청으로 30만 명 정도를 학살했는데 그 시체의 머리를 자기 집 냉장고에 넣어두면서 악어의 먹잇감으로 주기도 하고, 사람의 살가죽을 벗겨 죽이기도 하는 등 방법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잔인한 독재자였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일당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서슴지 않았던 독재자들도 자살이나 망명 후 초라한 죽음, 공개처형 등으로 생을 마감한 것을 보면 세상의 정의는 아직 죽지 않았음을 깨닫곤 한다.
루마니아에서도 앞에서 열거한 독재자들처럼 철권정치를 휘두른 독재자가 있었는데 그 장본인이 바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Nicolae Ceau'ses'cu, 1918~1989)이다. 보잘것없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학력으로(차우셰스쿠의 부인인 엘레나는 초등학교 3학년 중퇴-_-;;) 글의 맞춤법도 모르면서 그 어렵고 복잡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계승하여 루마니아에서 공산주의를 뿌리내렸었던 인물 차우셰스쿠. 그렇다면 이런 차우셰스쿠가 루마니아에서 4선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폴란드의 언론인이자 작가였던 리스자드 카푸친스키(Ryszard Kapu'sci'nski, 1932~2007)는 루마니아의 사회적 배경이 독재자 차우셰스쿠를 탄생시켰다고 말한다. 사적 소유권과 개인의 권리나 독립성을 주장할 수 있는 중산층이 루마니아엔 존재하지 않았고, 차우셰스쿠가 집권할 당시 루마니아의 문화 수준은 거의 바닥을 기고 있었으며, 끼리끼리 잘 먹고 잘 살자는 공산당 수뇌부들의 이기심이 차우셰스쿠의 장기집권을 뒷받침했다고 카푸친스키는 증언한다. 꼭 대한민국이 한국전쟁을 겪고 난 후의 사회적 상황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한 미치광이의 공상 속에 2천만 명의 사람들이 사는 나라.” (1977년 지진으로 타계한 반체제 작가 알렉산드루 이바시우크가 차우셰스쿠를 빗대어 한 말, 241쪽)
마르크스-레닌주의 강령을 씹어 먹으면서 스탈린주의에 심취했던 한 청년이 루마니아의 ‘공산주의자 청년동맹’의 책임자로 임명되면서 점차 그의 악마적 근성은 루마니아에 뿌리내리기 시작한다. 그의 부인 엘레나를 만나면서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의 중심에 서게 되고, 서방세계에 루마니아가 개화된 공산주의국가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숙청하고 단순 무식했던 그의 헛된 망상과 무자비하고 무력을 수반한 행동만이 변화를 가져온다는 신념에 대해서는 확고부동한 자세를 취한 그였지만, 의사결정을 내리고 정책 지원이나 루마니아의 민생문제에 대해서는 극히 우유부단했던 행동들이 점점 그의 목을 조여오기 시작했다.(젊었을 때 차우셰스쿠를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한 젊은이가 권력에 눈이 멀어 날뛰는 그 모습들이 한국전쟁 때 붉은 완장을 차고 죽창을 든 사람들이 인민군의 총만 믿고 날뛰던 모습과 오버랩이 된다.)
“단 한 번도 현안이 된 문제 이외에는 그와 이야기해 본적이 없어요. 예술이나 문학에 대해서 그가 언급한 것을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차우셰스쿠의 내면에는 이런 것들이 잠재해 있지 않았습니다.” (본문 274쪽, 차우셰스쿠의 보좌관 마우레르의 이갸기 中에서)
한 국가의 4선 대통령이나 한 사람이 한 치 앞의 미래도 내다보지 못하면서 눈앞에 펼쳐진 사리사욕에만 급급했으니 그의 말로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안봐도 훤하지 않겠는가? 차우셰스쿠의 독재에 성난 루마니아 국민들은 1989년 12월 21일에 거행된 차우셰스쿠 지지 궐기 대회에서 차우셰스쿠 타도!와 학살자를 처단하자!는 구호아래 혁명을 일으키게 되고, 그 혁명으로 인해 차우셰스쿠는 도망자의 신분이 되기에 이르고... 급기야 온 세계 국민이 축복하고 기뻐하는 성탄절(1989년 12월 25일)에 군인들이 보는 앞에서 총살로 공개처형된 차우셰스쿠와 엘레나 부부.(총살당한 차우셰스쿠 부부의 시신 사진이 당시 루마니아의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었다.)
차우셰스쿠는 떠났지만 지금도 루마니아에는 그가 심어놓은 공산당 수뇌부와 비밀경찰들이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비단 이것은 루마니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도 친일파와 독재, 그리고 군부독재의 잔해물들을 아직까지 처리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독재를 경험한 나라는 독재가 얼마나 무서운 악마인지 느꼈으리라 생각된다. 루마니아 뿐만 아니라 독재를 경험한 국가들이 다시는 이런 전철을 되밟지 않길 바라면서, 철권 통치차였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를 권자에서 몰아낸 루마니아 혁명이 올해로 21주년을 맞는 루마니아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민주주의가 꽃피워지길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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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향한 인간의 몸부림을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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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루마니아 출신 작가 헤르타 뮐러의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조국 루마니아를 서슬 퍼런 전체주의국가로 만든 희대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이름이 떠올랐다. 한 때는 소련의 위성국 중에서 독자적인 노선을 걸으며 인간적 공산주의의 모델로 서방에 알려졌던 루마니아에 대한 진실이 그 베일을 벗는다. 프랑스 출신의 저널리스트 에드워드 베르는 루마니아 혁명으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권좌에서 축출되고 나서, 직접 루마니아를 찾아 이 독재자의 비참한 몰락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추적한 <차우셰스쿠> 평전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책에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대신 오로지 권력의 화신으로 부패한 독재국가를 이끌었던 어느 독재자의 초상과 더불어, 우리에게는 체조의 요정 코마네치의 조국 정도로만 알려진 루마니아 근대사가 담겨 있다. 책의 구성은 자못 흥미롭다. 우선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루마니아 혁명이 발발한 1989년 12월의 루마니아로 독자를 인도한다. 사반세기 동안 루마니아를 통치하면서, 계속된 실정과 비밀경찰 통치로 루마니아 국민의 불만과 분노는 위험수위에 도달해 있었다. 그 무렵, 루마니아 서부의 도시 티미쇼아라에서 시작된 시위가 전국으로 번지자, 막바지에 다다른 차우셰스쿠 정권은 비밀경찰과 보안군에게 시위대에게 무차별 발포를 허용하며 최후의 발악을 시도하고 있었다. 결국, 차우셰스쿠와 그의 부인 엘레나는 그의 독재에 반대하는 일단의 인사들이 조직한 구국전선의 장성들에게 체포되어 약식재판을 거쳐 무려 백여 발에 달하는 총탄을 맞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렇게 독재자의 말로를 구체적으로 추적한 에드워드 베르는 플래시백으로 루마니아의 원형을 쫓는 역사 탐험에 나선다. 고대 로마제국 시대 발칸반도에 있는 다치아(Dacia)족의 근거지였던 왈라키아와 몰다비아 부근을 아우르면서 루마니아 국가의 탄생을 예고했다. 발칸 반도의 여러 나라처럼, 루마니아 역시 오랜 오토만 제국의 식민 통치를 받았다. 터키인들의 지배 아래에서는 그리스인들의 가혹한 수탈을 경험하기도 했다. 1878년 인근의 부코비나와 베사라비아를 포함한 루마니아 왕국이 드디어 역사에 등장한다.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 왕가 출신의 카롤 1세가 다스리던 1878년과 1914년 사이에는 비교적 평화를 유지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루마니아는 전쟁 초반에는 중립을 유지하다가, 나중에 연합군 측에 섰다가 독일군에게 혹독한 시련을 당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증에는 극우파 독재자 이온 안토네스쿠는 추축국에 적극적으로 가담해서 소련을 상대로 한 동부전선에서 히틀러의 독일군과 함께 참전하기도 했다. 특히 루마니아의 플로이에슈티는 독일이 전쟁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석유자원 확보를 위해서 꼭 필요한 유전이었다. 1944년 8월, 루마니아의 젊은 국왕 미하이 1세가 이끄는 친위 쿠데타가 발생해서 독재자 안토네스쿠를 타도하지만, 소련의 지원을 얻은 일단 공산주의자 그룹에 의해 루마니아의 공산화가 진행된다. 사실 종전을 앞둔 포츠담 회의에서 이미 영국의 처칠과 소련의 스탈린은 각각 그리스와 루마니아에서 90%를 지배하기로 협의하면서 루마니아는 소련이 드리운 철의 장막에 편입될 운명에 처해져 있었다. 이 시기에 비로소, 권력욕의 화신인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등장한다. 농민 출신으로 문맹에 가까웠던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의 공산주의 지도자 게오르기우 데즈를 추종하면서 서서히 루마니아 정치 무대에 나섰다. 스탈린주의를 맹신하는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 국민의 복지나 국가의 이익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자신의 동지들을 밟고 권력의 정점에 오르는 데에만 자신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켰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1944년 8월 23일, 안토네스쿠를 실각시킨 반 독일 쿠데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등의 사실왜곡부터 시작해서 훗날 조직적으로 이뤄지게 될 우상화 작업을 시작한다. 스탈린 사후, 1956년에 벌어진 헝가리 혁명을 소련이 어떻게 무자비하게 진압하는지 목격한 루마니아 공산주의 지도부는 소련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인간의 얼굴을 한’ 공산주의 모델을 들고 서방세계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1965년 게오르기우 데즈의 사후, 공산당 사무총장으로 모든 권력을 승계한 차우셰스쿠는 정치 무대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이 얼치기 독재자는 서방세계에는 개화된 공산주의자라는 이미지를 팔면서 한편으로는 세쿠리타테라는 친위 비밀경찰 조직을 동원해서 루마니아를 공산주의 동유럽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체주의 국가로 만들어 버렸다. 비밀경찰을 동원해서 도청과 밀고를 일상화하고, 오직 차우셰스쿠에게만 충성하는 특권조직과 자신의 부인 엘레나를 정점으로 하는 족벌 정치의 폐해는 차우셰스쿠의 독재가 끝난 지 20년이 넘는 지금도 루마니아 사회에 서로 불신하는 풍조를 남겼다. 스스로 500년 만에 한 명 나올 법한 지도자라는 망상에 빠져, 자신과 엘레나의 생일을 국경일로 삼는 등 가히 변태적 개인숭배와 우상화도 서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차우셰스쿠> 평전의 작가 에드워드 베르는 중세 봉건영주, 군주제 그리고 공산주의로 넘어가는 역사적 단계에서 빈번하게 드러난 루마니아 민중과 지식인의 협조와 타협을 냉정하게 꼬집는다. 세계 지도자들과의 빈번한 교류를 루마니아 국민에게 선전하기 위해 서방 세계를 방문했지만, 서방 지도자들은 루마니아 지도자 부부의 천박성에 그만 혀를 내둘렀다. 오죽했으면 프랑스 대통령이 영국 여왕에게 루마니아 국빈의 약탈에 대해 조심하라는 경고까지 했겠는가 말이다. 영부인 엘레나 역시 국가 간의 외교보다는 오로지 자신이 요구하는 사치품 쇼핑에만 관심을 기울였고, 무학의 콤플렉스 때문인지 세계 유수의 대학이나 연구기관으로부터 명예학위를 섭렵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책을 읽을수록, 이 얼치기 독재자의 천박함에 그만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시기의 문제였을 뿐이지, 이미 차우셰스쿠의 몰락은 예견되었다. 다만, 차악이 구악을 대신했다는 말처럼 차우셰스쿠의 독재를 끝장낸 루마니아 혁명은 미완의 혁명으로 기록됐다. 루마니아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대신 차우셰스쿠의 하수인들이 다시 정권을 장악하고 개혁세력이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차우셰스쿠 치세가 남긴 잔재의 청산을 위해서는 몇 세대가 걸릴지 모른다는 작가의 지적이 날카롭기만 하다. 다시 한 번 절대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역사의 진리를 되새겨 보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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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이다. 조그마한 땅덩어리 한가운데 철조망을 놓고 남과 북으로 나뉘어 한민족이 가까우면서도 절대 만날 수 없는 먼 거리에서 살고 있는 슬픈 현실이 바로 우리 나라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같은 역사를 갖고 같은 언어를 가진 우리 한민족이 이렇게 오랜 시간 분단 되어 있다보니 정치적 사상적 이념이 많은 차이를 낳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것과 달리, 북은 공산주의 체제를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다. 소련의 붕괴를 시작으로 세계의 얼마 되지 않는 공산주의 국가들이 점점 무너지면서 공산주의 국가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북한은 세계에서 점점 고립되고 있다. 하지만 한민족인 우리는 북한의 실정을 전혀 외면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차우셰스쿠' 사실 이 이름이 나에게 그렇게 낯익은 인물은 아니다. 그가 살아온 시대, 배경 등이 나의 주의와 관심을 끌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기 때문일까? 아무리 우리의 한민족인 북한이 공산주의 국가이고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에서 북의 소식이 들려오지만 우리는 북이라는 공산주의 나라가 그렇게 현실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이 책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으면서 나는 북한에 대해 공산주의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루마니아의 공산주의 체제를 이끌었던 지도자 차우셰스쿠에 대한 일생의 기록이면서 루마니아와 공산주의 체제의 역사, 한 나라의 번성과 붕괴에 대한 적날한 기록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 나라의 지도자가 무지하면 그 나라의 미래가 얼마나 암담한지 또공산주의에 대한 잘 못된 이해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또 그 지도자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해 지는지에 대한 생각을 했다. 차우셰스쿠는 열정적이고 도전적이었으면 기회주이자이고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무지했고 그 무지함이 한 국가를 구렁텅이로 몰고감과 동시에 자신 또한 파멸로 이끌었다는 것을 차우셰스쿠와 그의 부인 엘레나는 알지 못했다. 아마 수많은 군중들의 야유속에서 총살당할 때까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자그맣고 무지했던 한 남자가 한 나라의 최고의 지도자가 되었지만 그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과거를 부정하고 왜곡함으로써 자신을 우상화했다. 또 경제적으로도 적절한 인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을 때 독학했던 스탈린의 경제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신을 제외한 국민들을 빈곤으로 몰고가는 우를 범했다. 그는 자신의 무지를 깨닫지 못해 한 나라의 국민을 모두 파멸로 이끌었고 결국 자신 또한 역으로 그 국민들에게 총살당함으로서 자신의 여인 엘레나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공산주의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하다. 글쎄,... 다른 나라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국민은 적어도 한민족인 북한을 생각해서라도 최소한의 공산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라는 노래를 많이 불렀다. 우리는 북한의 이념이나 사상 따위를 생각하지 않고 단지 한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통일이 되길 바라면서 그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생각하면서 그 노래가 슬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렇게 감정적으로, 감성적으로만 통일이 될 수 없다는 슬픈 현실 때문일 것이다. 경제적인 문제부터 시작해 정치적 이념적으로 모든 것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절대 쉽게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반세기를 분리되어 살아온 반쪽짜리 민족을 포기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점점 더 북한을 이해하고 서로 교류하며 언젠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할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는 북한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와 이념, 공산주의의 대한 이해를 하려고 항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우리나라의 실정에 꼭 필요한 필독서가 아닌가 싶다. '차우셰스쿠'는 세계 공산주의에 대한 역사를 루마니아 역사를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면서 북한에 대한 깊은 생각도 함께 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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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손에 키스를 이라는 짧은 문구에 나를 자극 시켰던 차우셰스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