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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했다. 우울하고 잔인하며, 범죄로 부터 치유가. 아니 정화라고 해야하나? 예전부터 추리소설이나 스릴러물의 숨막히는 추격전과 심장을 조여오는 긴장감에 의해 얻어지는 쾌감을.. 나는 좋아했다. 과유불급인가? 짧은 수면시간, 깊은잠을 자도 부족한데 일주일에 2~3일은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너무 지나쳤던것 같다. 그래서 치유가 필요함을 느꼈다.
아래 사진이 기억나시는지요? ![]()
한때 새침떼기 마리아호와키나의 열성 팬이었던 나는 책의 제목과 짧은 소개글을 보곤 '천사들의 합창'을 떠올렸다. 유년시절 내게 행복한 기억을 남겨준 성장드라마였는데, 이 책은 천사들의 합창에서처럼 순둥이 시릴로 새침떼기 마리아 호와키나, 장난꾸러기 파블로와 쿠키모토, 조숙한 카르멘, 뚱뚱이 라우라등등과 비슷한 개성강한 꼬꼬마학생들과의 재미있는 사건들과 일들로 한가득하다. 꾸밈없는 학생들의 가지각색 사건들에 나는 읽는 내내 웃음을 지을수 있었고,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낄수 있었다.
게다가 이 책은 '더불어 사는 사회'를 가르친다. 주인공인 데쓰조의 닫혀버린마음이 조금씩 열려가는 과정과 정신지체아를 반학생들이 서로 보살피며 돌봐주는 과정에서 어리지만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임을 보여주고있다. 동년 초등학교정도의 자녀를 가진 부모들역시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하는 바램이다.
성장소설이기에 유치함이 묻어나진 않을까 우려했지만, 읽는동안 나는 등장하는 초등학생들과 하나가 되버렸다. 초등학교1학년생으로, 책을 읽는 마지막까지 아무 걱정없이 유치해질수있었다. 저자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않아도 되는 편한 소설을 나는 좋아하니까..ㅎ
책을 읽는 동안 엄마미소를 띄고싶은가? 한없이 유치해 지고 싶은가? 아니면 잔잔한 감동을 느끼고싶은가? 주저없이 추천한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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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하이타니 겐지로가 1974년에 펴낸 <난 선생님이 좋아요>를 최근 읽어 보았다.
하이타니는 아이들에게서 배운다고 하던 겸소한 선생님이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17년이나 글쓰기를 가르쳤다고 한다. 이오덕 선생 같은 분이 아닐 수 없다. 2006년 72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아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썼다. 왜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없을까? 미래의 희망이라고 하는 어린이와 학생들이 자신들의 꿈을 키우고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난 선생님이 좋아요>는 히메마쓰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쓰레기 처리장 연립주택에서 사는 아이들, 그리고 이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다. 자폐증에 가까운 데쓰조는 오직 파리를 연구하고 탐구하며 파리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아이다. 정신지체 증상을 보이는 미나코는 특수학교로 가기 전에 잠시 히메마쓰 초등학교에 다니기로 한다. 하이타니는 "자 여러분들이 이 아이들의 담임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하고 진지하게 의문을 던진다. 이들의 담임은 바로 스물 두 살의 초년생 고다니 선생님. 울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배우고 깨우친 것들을 묵묵히 실천해 나간다. 그녀를 지지하는 아다치, 오리하시, 오다 선생님이 있다. 이들이 펼쳐가는 이야기는 마치 별천지 세상같다. 우리도 전인 교육, 전인 교육 말만 참 요란하지 않았으면 한다. 근데 왜 이게 잘 안되는 것일까? 산업화? 약육강식? 재밌는 것은 <난 선생님이 좋아요>에 나오는 데쓰조의 바쿠 할아버지는 일제 시절 조선인 김용생과 친분이 있었더랬다. 김용생은 조선사를 공부했다는 이유로 잡혀가 모진 고문을 껶었고, 그 후유증으로 사망한다. 일제의 의도를 간파하고 우리 고대사를 실증적으로 연구했던 단재 선생도 1936년 여순 감옥에서 옥사한다. <조선상고사>는 완성하지도 못한 채(나당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키는 시점까지 서술되었다)로. <난 선생님이 좋아요>에는 놀라운 파리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하이타니는 이렇듯 특정 분야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에게는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로 접근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고다니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때 어떻게 흥미를 유발하는 지도 좋은 공부거리다. 요즘 아들녀석하고 '의리'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한다. 어려운 친구를 도와주고 자신이 한 약속은 철석같이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부자(父子)가 맹세하고 있노라니 아내가 슬몃 웃는다. 자 글을 맺기 전에 파리에 관한 퀴즈 하나 내려 한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파리 구더기는 왜 푸세식 변소에는 없는 것일까? 답은 책 속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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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서 스스로 '나는 잘 가르치는 사람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오래 전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은 한 두 해만 교사를 하다가 다른 일을 해야지 하다가 30년이 넘게 교직에 남게 됐다는 말도 하셨고(가르치는 일이 본인과 맞지 않다고 하셨다), 최근에는 10년 넘게 이렇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맞는지 고민 중이라는 교사분의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나 역시 교사는 아니지만 아이들을 만나며 '가르친다는 것'에 관해서 고민해 보게 됐다. 그 고민의 과정에서 하이타니 겐지로라는 작가이자 선생을 알게 됐다. 소설 속에는 외면 받을 수밖에 없는 소외된 아이들이 등장하고 그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며 교사와 학생이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지금 시대의 교실과 학생들의 분위기는 조금 달라진 게 사실이다. 특히 대한민국의 교육에서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줘야 한다는 데 있어서는 상황이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게 없을 지도 모른다. 누구나 알고 있다. 아이들의 타고난 성향과 특성을 받아주고 이끌어줘야 고유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을. 그 필요성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유쾌하고 따듯하고 희망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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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루소'의 '에밀'의 현대적 표현을 연상케 한다. 좋은 교사를 꿈꾸는 나이기에 주저없이 책 제목만 보고서 택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 자신에 대한 두 가지 질문이 생겼다. 하나는 '나는 고다니 선생님과 같이 아이들을 진심으로 품어줄 인격이 되는가?'이고, 또 하나는 '교사로서의 진정한 자세는 무엇인가?'이다. '아이들에게서 배운다.'는 작가의 교육철학이 그대로 담겨있는 이 책에는 각박하고 소외된 현실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희망의 메시지가 숨 쉬고 있다. "중요한 것은 가르치고 이끄는 것이 아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다." 지식의 전달자로서의 교사가 아닌, 아이들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하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