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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2] 무엇이 인간을 다른 존재와 구별하는가?
"[10-32] 무엇이 인간을 다른 존재와 구별하는가?" 내용보기
이 소설은 주인공 아낙시맨더가 공화국의 학술원에 들어가기 위해 치른 면접과 지금의 공화국을 형성하게 된 계기가 된 아담의 삶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엮은 일종의 액자소설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원유의 고갈, 유일신에 대한 신앙의 붕괴 속에서 플라톤은 외딴 섬에 자신의 재산으로 해양방벽을 쌓고, 외부세계로부터 철저히 격리된 공화국을 건설한다. 이렇게 위기상황 속에
"[10-32] 무엇이 인간을 다른 존재와 구별하는가?" 내용보기

소설은 주인공 아낙시맨더가 공화국의 학술원에 들어가기 위해 치른 면접과 지금의 공화국을 형성하게 된 계기가 된 아담의 삶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엮은 일종의 액자소설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원유의 고갈, 유일신에 대한 신앙의 붕괴 속에서 플라톤은 외딴 섬에 자신의 재산으로 해양방벽을 쌓고, 외부세계로부터 철저히 격리된 공화국을 건설한다.

이렇게 위기상황 속에서 노아의 방주처럼 세워진 공화국은, 태어나는 순간 유전자의 우수성에 따라 신분과 계급이 결정되는 사회를 그린 영화가타카처럼 주민들이 게놈정보에 따라,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국가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서민-군인-통치자=철학자의 신분과 직업이 결정되는 사회이다.

그 결과 플라톤이 의도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공화국은 개인이 그 자체로 인정되지 않고, 공화국 주민은 국가를 통해서만 능력을 최고조로 발현할 수 있다. 주민은 곧 국가이며, 국가가 주민1)으로 여기는, 인간이 기계처럼 순응하는 삶을 살아가는 전체주의적 사회가 되었다.

 

런데 이러한 공화국의 근간을 흔드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배층인 철학자계급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의 호기심으로 인해 군인계급으로 강등당한 아담이 작은 보트를 타고 표류해 온 소녀 이브를 발견하고 규정을 어기고 그녀를 구출하여 섬 안의 동굴로 피신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주민들에게 일벌백계(一罰百戒)를 통해 지배권을 재확립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담에 대한 공개재판을 개시했던 공화국 위원회는 예상하지 못했던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아담에 대한 사형을 포기하고 철학자 월리엄이 개발한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로봇 ? 아트 ? 와 함께 보내는 것을 통해 속죄하도록 결정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위원회의 이러한 결정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공화국이 형성되기 때문에, 훗날 아담이 태어난 2058년을 제네시스[=創世紀]라고 부르게 된다.

 

엇이 아담과 아트의 만남을 후세인들이 기억하도록 만들었을까? 아담은 아트에게 이런 말을 했다.

바다를 지켜보다 배에 탄 여자애를 보았을 때, 난 절망이상의 무엇을 본 거야. 그것뿐이었다면, 그 소녀를 죽였겠지. 난 절망에 빠진 다른 생명체를 죽여 봤어. 그러나 나는 또 동시에 하나의 길을 보았어. 거대한 위험 속에서도 길을 나서기로 했던 오래 전의 결정,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더 좋은 삶을 살려는 열망을 봤어. 그런 것들이 만들어낸 낯선 감정을 본 거지. ~ 나는 욕망을 봤고, 선택들을 본 거지. 하지만 네 눈에서는 그런 것들을 본 적이 없어.2)

아담이 이브에게서 본 것은 기존의 것을 묵수(墨守)하지 않는,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갈망이었다. 그리고 아담이 보았던 그런 열망이 아트에게 나타나 다른 안드로이드에게 전파되면서 공화국은 새로운 세기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세기의 공화국은 위원회가 아닌 학술원이라는 새로운 권력기구를 만들었고, 기득권자가 된 그들은 아담처럼, 아트처럼 기존의 권위에 반항하는, 변화를 열망하는 존재가 나타나지 않도록 수단과 방법을 갈구했다.

왜냐하면 개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유일한 것은 이상입니다. 이상은 변화하고 퍼져 나가죠. 이상은 이상을 꿈꾸는 사람이 현실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이상을 꿈꾸는 사람을 바꾸기3)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쌍한 우리 주인공 아낙시맨더는 학술원 입학을 위한 면접과정에서 자신이 그런 열망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제거된다.

 

 

런데 단지 열정만이 인간과 기계(=로봇)을 구분하는 기준일까? <터미네이터 : 미래전쟁의 시작에서 보면 존 코너가 마지막에 “우리가 기계와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우리에게 심장과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우리는 동물들이 ‘마음’까지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해 확언할 수 없지만 ‘심장’은 가지고 있음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 따라서 심장마음이 인간과 다른 존재를 구분하는 기준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 영화 속에서 ‘심장’과 ‘’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기계화된 사이보그인 마커스가 스스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했던 것을 감안해보면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 , 일단 스스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역천(逆天)>이라는 무협소설에서 과거로의 무작위적이고 반복적인 회귀(回歸)속에서 주인공이 느꼈던 후회나 이 소설에서의 이브, 아담과 같이 열정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존재를 다른 존재와 구별해서 인간이라고 분류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책이 아닐까?.

물론 ‘인간다움’의 경계가 허물어져가는 현대에, 어느 누구도 쉽게 정의 내리기 어렵지만, 인류가 존재하는 동안 무엇이 인간과 다른 존재를 구분하는 기준일까라는 화두(話頭)는 여전히 고민해야 할 문제가 될 것이다.

 

 

1) 버나드 베켓, <2058 제너시스김현우 옮김, (내인생의 책, 2010), p. 69

2) 같은 책, p. 166

3) 같은 책, p. 69

w******f 2010.07.22. 신고 공감 6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관념도 진화한다. 그러나 인간에겐 열망이 있다.
"관념도 진화한다. 그러나 인간에겐 열망이 있다." 내용보기
제너시스라고 해서 국내 모자동차회사의 자동차를 떠올렸다. 차를 바꾸면 저걸로 하면 어떨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한때 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생각난 것은 이 책의 내용도 성서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헌데 2058은 뭐야? 공상과학소설이라는데, 지구가 멸망하고 2058년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는구나, 머~ 이런 내용이겠지 하고 읽기 시작했다.   헌데 책은
"관념도 진화한다. 그러나 인간에겐 열망이 있다." 내용보기

제너시스라고 해서 국내 모자동차회사의 자동차를 떠올렸다. 차를 바꾸면 저걸로 하면 어떨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한때 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생각난 것은 이 책의 내용도 성서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헌데 2058은 뭐야? 공상과학소설이라는데, 지구가 멸망하고 2058년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는구나, ~ 이런 내용이겠지 하고 읽기 시작했다.

 

헌데 책은 내 생각을 배반한다. 오히려 보다 심오한 철학적 물음을 던진다. 인간이 인간인 까닭은 무엇일까? 인간성의 본질은 무엇일까? 하는 물음에 대답하라고 말한다.

 

책은 액자식 구성을 빌려서 얘기 한다. 주인공 아낙스가 플라톤 공화국의 최고지성집단인 학술원에 들어가기 위해 4시간에 걸쳐서 면접을 치른다. 1교시부터 4교시까지, 시험관이 질문하고 아낙스는 그의 주제, 공화국과 공화국 국민들의 영웅 아담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한다. 아낙스의 발표와 설명을 통해 소설의 전체 줄거리가 이어진다.

 

2030년대 말, 원유가 고갈되면서 세계경제는 대혼란과 파국이 찾아온다. 또한 유일신에 대한 신앙이 무너지면서 세계는 불신과 공포에 휩싸인다. 2050년 세계전쟁이 터지자 플라톤은 지구의 최 밑단 군도에 자신의 재산으로 해양방벽을 쌓고, 2052년 역병이 돌자 세계로부터 문을 걸어 잠그고 공화국을 건설한다. 공화국은 외부로부터 오는 모든 것을 거부하였고, 철저한 신분제사회이면서 경찰국가로 운영된다. , 주민들은 게놈정보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며 자신들의 선택과 의지를 포기하는 대신 안전을 보장받게 된다.

 

2058년 공화국에 아담이 태어난다. 공화국내 최고계급인 철학자 계급이었던 아담은 십대 때 여자거주지역으로 잠입하는 등 문제를 일으켜 군인계급으로 강등당하고, 해양방벽에서 보초근무를 하게 된다. 어느 날 아담은 작은 보트를 타고 표류하는 소녀를 발견하게 되고 공화국의 규정에 따라 사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선임병을 죽이고 소녀를 구출하여 섬 안의 동굴로 피신 시킨다.

 

이 일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아담의 모습은 공화국 주민들에게 그대로 공개된다. 공화국 1세대들은 세상의 종말과 외부세계와의 단절 등 두려움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공화국의 틀을 유지하기가 쉬웠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주민들의 이러한 두려움은 차츰 사라지고 공화국 지도자들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다. 이에 공화국의 위원회는 주민들을 공화국 초기상태로 몰아가기 위해 재판과정을 공개하고 아담을 공개처형 하려고 하였으나, 주민들은 아담의 사형을 반대하게 된다. 대신 아담은 감옥에서 로봇과 함께 지내게 된다.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로봇이 노동을 대체하여, 노동에서 해방시키겠다고 공약해온 공화국 위원회는 아담과 함께 생활하는 로봇 아트가 아담에게서 지적 자극을 받아 자기학습이 되어 완벽한 개체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자체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아트는 로봇이 인간보다 더 진화한 개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아담에게 진화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인간들은 지구에서 생명이 단 한번 창조된 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 일이 네 번 넘게 있었다. 첫 번째 생명체로는 무기물 그저 광물이 있었다. 그 다음 세포의 유전물질을 구성하는 RNA가 광물 위에 무임승차 하면서 세포가 생겨났다. 세포는 한두 번 재주를 넘어 다세포 유기체를 탄생시키고, 시간이 흘러 뇌가 생겨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뇌는 정신을 낳았다. 인간들은 관념을 자신들이 창조한 줄 알지만 관념은 외부에서 뇌 속으로 들어가 뇌를 감염시키고, 진화하며 사유하는 기계 로봇을 만들었다.

 

아담은 아트의말을 반박해 보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표현하지를 못한다. 그러나 아담은 아트와의 계속되는 대화 속에서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본질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열망이었다. 해안방벽에서 보트에탄 소녀의 눈에서 아담은 절망 이상의것을 보았던 것이다. 거대한 위험 속에서도 길을 나서기로 했던 결정, 모든것을 걸고서라도 더좋은 삶을 살려는 열망, 그런것들이 만들어내는 낯선 감정을 보았던것을 기억해낸 것이었다.

 

아담과 아트는 서로의 목적에의해 공모하여 감옥을 탈출하지만, 아트는 중앙통제실로가서 자신의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고, 아트에게 배신당한걸 안 아담은 경비병이 오기전에 자신을 죽여주기를 부탁한다. 아트의 손에서 죽어가는 아담의 눈에는 고통이 아니라, 인간은 열망이있어 로봇과 다르다는 승리의표정이 떠오른다.

 

아담과 아트는 죽었지만, 아트가 전송한 프로그램은 수많은 사유하는 로봇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들이 주인인 세계가 창조되었으나, 인간적인 감정이 앞서 공화국의 법을 어긴 아담의 열망은 바이러스 형태로 로봇에게 전염된다.

 

공화국의 학술원은 그러한 열망을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공화국의 앞날에 해가되는 로봇들을 찾고있다. 그들은 결코 새로운 회원을 뽑지 않으며, 아담의 정신을 가진 로봇들을 제거하기 위해 면접을 보고 있을뿐이다.

 

소설은 반전이 일어난다. 거의 상상도 하지 못할 반전이 소설이 끝나기 마지막 대여섯 페이지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기 전에 절대 뒷부분을 먼저 보지 말라고 한 것 같다. 오랑우탄의 모습을 한 수많은 아트들, 심사관의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아담바이러스에 전염된 것을 스스로 느끼는 아낙스, 그녀는 그렇게 전원이 꺼질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무엇인가? 다소 난해한 철학적인 물음을 문학 속으로 끌어들인 저자의 능력이 놀랍기만 하다. 어쩌면 우리모두 잊고 살았던 인간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가 현재와 같은 상태로 나아갈 때 어떻게 될 것 인지에 대한 경고를 주고 있기도 하다.

 

인간들에 의한 기후 등의 환경변화와 또 강대국들의 이기적인 행동들이 행성 구성원들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고, 지배층의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는 공포분위기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종말을 앞당길 수 있음을 저자는 말하는 것 같.



k*****1 2010.07.05. 신고 공감 6 댓글 12
리뷰 총점 종이책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사유해 볼수 있는 책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사유해 볼수 있는 책" 내용보기
<2058 제너시스>제목만 보고도 당연히 미래 소설임을 알수 있지만,그러면서도 읽기 전부터 뭔가 궁금증을 잔뜩 불러일으키는 책이었다.우선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나의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는,아주 특별한 느낌의 소설이었다.   처음 책을 받으니 그리 두껍지 않은 두께에 후르륵 한번 훑어봤을때 마치 연극 대본마냥 시험관과 아낙스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어서 독특하게 느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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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8 제너시스>
제목만 보고도 당연히 미래 소설임을 알수 있지만,
그러면서도 읽기 전부터 뭔가 궁금증을 잔뜩 불러일으키는 책이었다.
우선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나의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는,아주 특별한 느낌의 소설이었다.

 

처음 책을 받으니 그리 두껍지 않은 두께에 후르륵 한번 훑어봤을때
마치 연극 대본마냥 시험관과 아낙스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어서 독특하게 느껴졌다.
GENESIS..'창세기'라는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페리클레스 등등,,,
특히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언급되는 아담이라던가,
사건이 발생하게 된 계기가 된 소녀의 이름 역시 이브.
이름 가지고 장난치는거 싫어하지만,이 책에선 이렇게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들이 은유하는 바가
책의 의미 전달에 더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책 속의 미래세계는 충분히 가정해볼만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쟁과 전염병으로 불안정한 세계 속에서 한 기업가가 섬주위에 해양방벽을 두르고
공화국을 세워 외부세계로부터 차단한다.
그리고 주민들을 게놈 해독이라는걸 거쳐 노동자,군인,기술자,철학자 네계급으로 분류한다.
개인을 통제하기 위하여 남녀를 격리한 채 공동체 생활이 이루어진다.
여하튼 이러저러한 사건으로 인간인 아담이 인공지능 로봇 아트와 만나면서
책 속의 현재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 만들어진다.
아담은 가장 높은 계급인 철학자 계급이었고,-물론 사건을 일으켜 군인 계급으로 강등되었지만-
아트는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진보된 로봇으로 아담은 아트의 자극제 역할을 하게 된다.

 

아담과 아트의 대화는 매우 흥미롭다.
단지 깡통기계라고 무시하며 "그래봤자,너는 실리콘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아담에게
"당신은 탄소 덩어리일 뿐입니다. 언제부터 원소주기율표가 차별의 근거가 되었습니까?"라고
맞받아치는 아트의 모습이 무척 재미있게 느껴졌다.
책은 소설이지만 굉장히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대화들이 담겨있고
그러면서도 내용의 전개가 매우 흥미롭고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식스센스 이후 최고의 반전이라는 선전문구가 무색하지가 않을 정도로
마지막 반전 또한 아주 놀라웠다. 적어도 난 예상치 못한 결말이었기 때문에..
결말을 알고 앞부분을 다시 넘겨보다 보니

 

시험관 - 그렇지,아담!
아낙스는 그 이름을 조금도 머뭇거림 없이,그렇게 함부로 부르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라는 부분이 있었다. 스쳐가듯 대화의 작은 일부분이었는데,
이러한 소소한 부분의 의미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다.

 

좌우지간 저자인 버나드 베켓의 팬이 될것 같다.
10여권의 책을 출판했다는데 국내엔 이 책 밖에 번역된게 없는것 같다. 아쉽다..ㅜㅜ



YES마니아 : 로얄 g*****k 2010.08.11.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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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미래는 찬란한 희망일까?
"다가오는 미래는 찬란한 희망일까?" 내용보기
미래소설들을 접하다 보면 실감이 안났던 시절엔 그건 오로지 환상이고 공상같다는 생각만 자리했었다. 어느새 공상과학소설의 내용이 현실로 대두되면서 이젠 좀 무서워진다. 사람들이 생각을 책으로 써보고 책속에서 실현시키고 변모시키다 보니 책과는 다른쪽에서의 재능을 가진 분들이 그 넘치는 열정으로 길어올린 샘물인 산물이 우리네 곁에 버젓이 나타나고 있다. 이젠 우주전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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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소설들을 접하다 보면 실감이 안났던 시절엔 그건 오로지 환상이고 공상같다는 생각만 자리했었다. 어느새 공상과학소설의 내용이 현실로 대두되면서 이젠 좀 무서워진다. 사람들이 생각을 책으로 써보고 책속에서 실현시키고 변모시키다 보니 책과는 다른쪽에서의 재능을 가진 분들이 그 넘치는 열정으로 길어올린 샘물인 산물이 우리네 곁에 버젓이 나타나고 있다. 이젠 우주전쟁도 멀지 않았고...

 

2058 제너시스는 책표지를 찍은 각도에서 방대한 부피로 겁(?)을 먹었는데 의외로 199페이지였다. 그렇지만 결코 두껍지 않은 그 부피가 매우 매끄럽고 탄탄한 내용임에랴. 대부분은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건 지적 호기심을 위한 것보단 감정적인 앙금을 해소시키지 못해서 반복하면서 물고 늘어진다는 생각이 지배적인데 이 책에서는 진정한 말꼬리의 진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질문자와 대답하는 사람의 열정이 얼마나 진지한지와 그 집요하지만 핵심을 파고드는 질문과 대답에서 감탄을 하게 된다.

 

과학 이런쪽엔 거의 관심이 없는데도 의외로 이 책은 재미를 준다는데 매우 흥미가 있다. 경제학 전공 출신 과학 교사라는 저자의 이력에서 말해주듯 이 책은 골고루 잘 버무려놨으며 그 속에 인간과 로봇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쩔 수 없이 감옥에 갖힌 아담과 업그레이드된 로봇인 아트가 탄생한 해는 2058이다. 여기서 아담이란 사람의 이름이 마치 아담과 이브에서 따온 것처럼 아직은 다가오지 않은 먼 미래를 예측할때 처음 등장한 사람의 의미로 내게는 다가왔다. 그리고 아담은 여자도 많이 좋아한다.

 

『2052년에 전 세계에 전염병이 퍼지자 플라톤은 남태평양의 한 섬에 방벽을 쌓고 공화국을 축조했다. 공화국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이자 경찰국가로 운영된다. 그런데 공화국에 위기를 초래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보초병 아담이 경계 근무를 서다가 바다 위를 표류하는 소녀를 발견하는데, 그는 사살하라는 상부규정을 어기고 소녀를 보호하기 위해 선임을 죽인다. 이 사건으로 아담은 재판에 회부되나, 주민들의 지지 덕분에 아담은 사형을 면한다. 대신에 아담은 로봇과 함께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공화국의 상층부는 로봇이 아담에게서 지적자극을 받아 자기 학습이 되고 완벽한 개체가 되기를 꾀하고 있다. 상층부는 주민들에게 로봇이 노동을 대체해 노동에서 해방시키겠다고 공약해 왔다.

아담과 마주한 로봇은 ‘아트’이다. 스스로 진보가 가능한 아트는 지적인 면에서 로봇이 인간보다 우위에 있으며, 로봇이 인간보다 더 진화한 개체라고 주장한다. 아담은 인간에게는 감정이 있다고 강변해 보지만, 아트에게도 감각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담은 대화 속에서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무엇인가를 발견하는데……. 

 

소설은 액자 구성을 빌어 왔다. 아낙스(아낙시맨더)가 공화국의 최고지성집단인 학술원에 들어가기 위해 면접을 치르면서, 공화국의 역사와 문제적인 인물 ‘아담’의 역사를 발표한다.
4시간이나 소요된 면접을 마친 아낙스는 불길한 느낌에 휩싸인다. 공화국의 반대자인 아담을 두둔한 것은 실책이었을까? 아낙스는 학술원의 엘리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인가?
줄거리 발췌

 

아낙시멘더 양은 페리클레스의 제자로 학술원에 입사하기 위하여 면접을 본다. 세 명의 시험관과 진행하는 시간은 3교시로 이루어지는데 시간후 휴식이 있다. 

 

1교시에서는 아낙스가 선택한 <아담>에 관한 모든걸 알게 되는데 아담은 여자를 좋아했으며, 좀 반항기질이 강한 사람이며,공화국에서 다루기에 결코 만만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타고난 멋진 몸매며 잘생긴 얼굴은 인기가 많았다. 그는 친한 동료이자 상사를 살해하면서까지 공화국에서 거부하는 배타고 떠내려온 소녀를 살해하지 못한다.(여기서 여자를 좋아했기에 그랬구나 난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피난시키고 결국 체포되기에 이른다.//아담이 꼭 그렇게 했을까를 질문받으니 역사학도인 아낙스는 윤리학 사이에서 갈등한다. 아담이 그렇게 했을수 밖에 없는 명쾌한 논리를 주장해야는데 잘못 말하면 사견이 되기 때문이다. 

 

2교시엔 아담이 체포될 당시 상황과 초소에서 그런 일을 저지른 동기를 두고 이어진다. 질문과 대답으로 끝없는 탐색전을 펼치는 시험관들의 반응은 냉담하고 도저히 그 저의를 알아낼 수가 없다. 그럴수록 학술원 입사가 꿈인 아낙스는 더 초조해진다.

 

3교시는 아담을 처형시키는 대신 로봇과의 동거를 명령 받는다. 진화의 결정체라 자만심이 대단한 아트는 사사건건 아담과 부닥친다. 아담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정말이지 처음부터 인간의 감정이나 느낌을 자연스레 알고 있는 인간대 인간이 아닌 로봇과 인간이라니 서로의 못마땅함도 문제지만 공감대 형성이 늘 어렵다)

 

아낙시멘더 양의 역사학도로서의 소명의식과 그렇게 보는 견해들을 피력할 것을 종용받는데 여기서 사견인지 아닌지도 끝없이 지적받으니 읽는 나조차 혼돈스럽다. 아주 심오하다 못해 말꼬리를 잡으면서 이어지고 시작되는 질문과 대답들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리고 마지막 수업. 공화국에서 발표하여 누구나 알고 있는 진실이 사실은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공화국 영상을 통해 본 아낙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모른채 진실이 아닌걸 진실인양 믿으며 사는걸까. 그렇다면 이제 진실을 알게 된 자신의 운명은? 자신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저의는?

 

아낙시멘더 양이 추론했고 결론도출했던 것들은 무용지물이었으며 보여지고 알려진 실상과는 너무나 다름에 경악할 즈음(완전한 패배를 시인할즈음) 크나큰 숨겨진 음모를 읽는다. 그건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허탈함을 넘어서고도 남는다. 기막힌 반전이다.

 

 



k******5 2010.07.15. 신고 공감 4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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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기계는 무엇이 다른가? 아니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사유한다.
"인간과 기계는 무엇이 다른가? 아니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사유한다." 내용보기
새로운 창세기? 창세기 앞에‘새로운’이라는 수사를 하는 것이 모순이긴 하지만 이 작품은 2050년 이후의 새로운 인류에 대한 기획이기에 분명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단지 4시간의‘학술원 회원 구술시험’이라는 단순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숙연해 질 정도의 무게감 있는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세계가 있는가하면 흥미진진한 SF적 소재로 재미를 견인하
"인간과 기계는 무엇이 다른가? 아니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사유한다." 내용보기

새로운 창세기? 창세기 앞에‘새로운’이라는 수사를 하는 것이 모순이긴 하지만 이 작품은 2050년 이후의 새로운 인류에 대한 기획이기에 분명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단지 4시간의‘학술원 회원 구술시험’이라는 단순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숙연해 질 정도의 무게감 있는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세계가 있는가하면 흥미진진한 SF적 소재로 재미를 견인하고, 신(新)인류에 대한 구상의 당위를 숙고하게 할 정도로 균형을 갖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2050년부터 충돌하기 시작하여 2051년 마지막 전쟁을 벌이던 세계를 피해 해양방벽을 쌓고 세계로부터 문을 잠그는데 성공한 새로운 섬, 플라톤의‘공화국’이 건국된다. 이 이상적인 국가의 건설은‘토머스 모어’식 <유토피아>인지, ‘H.G웰스’식 <디스토피아>인지는 개인이냐 집단이냐라는 관점에 따라 달리 이해될 수 있지만, 화자(話者)인 ‘아낙시맨더’는 “개인적인 잠재력을 발휘하는데 가장 적합한 국가를 만드는데 성공했는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한다고 하는 것으로 보면 디스토피아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만 같다.

 

부모와 떨어져 양육되고 생후 1년 뒤 검사 결과에 따라 계급 배치를 하거나 제거하는 획일적이고 냉혹한 제도나, 공포 분위기에서 공화국의 틀을 유지한다는 식의 표현은 디스토피아로서의 공화국을 확신케 한다.  이 소설의 시발은 철학자>기술자>군인>노동자로 이루어진 공화국의 4계급제도라 할 수 있는데, 사회의 안정을 위해 반란세력화 할 수 있는 하위계급인 군인, 노동자를 대체할 수 있는‘충분히 진보한 로봇’의 개발을 통한‘평등사회’를 구현한다는 배경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소설 전편을 대표하고, 내재하는 암시와 복선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화자의 구술시험 시점에서의 공화국을 구성하는 존재들은 과연 누구인가? 를 이미 말하고 있음에서이다.

 

한편 주인공으로서의 화자인 아낙시맨더와 화자의 이야기 속 주인공인‘아담’이라는 중층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아낙시맨더의 구술시험 주제인 공화국의 역사에 있어 전환점이 된‘아담의 삶’을 고찰하는 가운데 인간과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궁극의 사유를 객관적 시선으로 그려내기 위한 수단으로 보인다. 그래서 아낙시맨더의 구술답변이라는 형식으로 소개되는 아담의 신화적인 내용은 아낙시맨더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또한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아담, 이브, 플라톤, 헬레네, 아리스토텔레스, 페리클레스, 아낙시맨더(아낙시만드로스)와 같이 그리스 철학자와 창세기 인물들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사상적 원천이나 기원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려는 작가의 의지를 엿보게 한다.

 

아담은 공화국의 실질적인 최초의 존재로서 이해된다. 초기 공포의 정치로부터 안정화된 공화국이 점차 “선택에 대해, 기회와 자유에 대한 말”들이 성행하기 시작되던 시대에, 외부세계를 차단하는 해안 방호벽을 지키던 아담이 국법을 어기고 해안가에 표류하는 이브를 구원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는 국가적 사건으로 재판이 이어지고, 아담의 행위에 연민과 동조를 하는 국민의 반란이란 압력과 타협하여 아담은 사회성 계발모델에 입각한 혼돈의 창발(創發)이라는 프로젝트하에 ‘아트’라는 안드로이드의 완전성을 위한 인간 실험자로 생활하게 된다.

 

여기서 충분히 진화된 안드로이드, 즉 로봇인 ‘아트’와 인간인‘아담’의 인간이란 무엇인지, 인간의 정신이란 무엇인지, 인간과 기계의 차이를 경계 짓는 요인이란 무엇인지, 의식과 관념의 본질은 무엇인지에 대한 원초적 설전(舌戰)을 통해 인간성, 그리고 생명의 본질을 사유케 한다.“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삶에 생명을 불어넣는 거야. 나는 사유에 대해 생각하는 사상가지, 내가 호기심이고 이성이고 사랑이고 증오인 거야...(中略)...세상은 내 안에 머무르는 거야. ~ 내가 바로 의미야.”하고, 아담이 분노하여 인간의 차별성을 주장하는 문장들은 그 어떤 철학적 강론보다 멋지다.

 

그러나 안드로이드인 ‘아트’의 관념과 사유에 대한 강변 또한 인간의 실체성에 대한 의문을 충분히 제기한다. “왜 진화가 육체적인 것만 적용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진화는 매개체를 가리지 않습니다...(中略)...다른 기생충과 마찬가지로, 관념은 적합한 숙주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中略)...저를 만든 건 인간이 아닙니다. 관념이 저를 만들었죠....(中略)...사유는 어느 쪽을 더 선호 할까요?”

 

이 작품의 위대성은 실험공간에 갇혀있던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탈출하는 장면에 있다. 과연 기계가 탈출 의지가 있을까? 즉 기계가 관념을 지닐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창발이론이 진정 실현되는 것인지의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자신을 통제하려는 모든 것에 저항하게 마련”이라는 관념의 존재는 아트의 탈출로 이어지고, 이것은 곧 기계의 인간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죽어가는 아담과 아트의 마주한 시선에서 관념의 승화가 이루어지고 그 관념은 자신의 숙주가 된 프로그램을 다시 짜기 시작한다. 아담과 이야기를 하며 보내는 동안 관념의 전이가 진행되고 아트는 아담이 된다. 아담은 아트가 자신의 프로그램을 전송하여 복제를 시작했을 때 이를 방조한다. 여기서 아낙시맨더의 구술시험 시험관은 그걸‘원죄’라고 부른다고 한다. 찬탄을 연거푸 하게 하는 장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랑우탄의 모습을 한 아트들, 기회와 두려움 사이의 균형을 찾고, 관념에 정면으로 맞서 그것과의 타협을 통해 지속적인 평화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인류, 그것의 힘은 ‘본성’이라 한다. 점점 근본주의화 되어가고 그래서 서로 불신이 깊어지며, 정신은 쇠퇴하고 두려움과 비관주의가 공공담론을 지배하는 오늘의 세계에서 우리 인간의 모습은 진정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생각게 하는 정말의 대단한 작품이다.

리뷰 총점 종이책
인간의 존재에 자리매김 (2058 제너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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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SF소설은 상상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다. 이런 책들은 현재 우리의 사회 모습에 뿌리를 두고 미래를 그려내기에 오늘의 진행 사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모색해 볼 수 있으며, 여러 대안에 대한 안목을 키워 극복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내일의 이정표를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 '2058 제너시스'는 일단 2058년이란 미래의 시점과 제너시스(Genesis, 창세기)가 주는 어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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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SF소설은 상상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다. 이런 책들은 현재 우리의 사회 모습에 뿌리를 두고 미래를 그려내기에 오늘의 진행 사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모색해 볼 수 있으며, 여러 대안에 대한 안목을 키워 극복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내일의 이정표를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 '2058 제너시스'는 일단 2058년이란 미래의 시점과 제너시스(Genesis, 창세기)가 주는 어휘의 무게, 그리고 '뉴질랜드 문학 최고의 선인세를 갱신한 작품' 등 띠지의 카피가 눈길을 끌어당긴다. '인지문학, 분자생물학, 진화론, 플라톤 철학을 한권에 담아내 소설!' 정도는 과도한 표현있겠지~ 살짝 콧방귀를 날린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보다 많은 나라에서 읽히는 작가, 버나드 베켓', <식스 센스> 이후 최고의 반전!이란 출판사 멘트는 그냥 애교 정도로 넘기면서 책을 펼친다.

 

저자가 중등학교 선생님이라 그런지 출발이 학교 용어 '1교시'가 나오길래 '이거 답답한 스토리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든다. 주인공 아낙시맨더(아낙스)는 공화국 학술원에 들어가기 위해 4시간에 걸쳐 "아담 포드의 삶과 그의 시대, 2058년부터 2077년까지"를 주제로 구술 중심의 문답형 시험을 치른다. 2050년 대전쟁의 첫 총성이 울린 후 플라톤은 지구  최밑단의 섬에 해양방벽을 쌓기 시작하여 첫번째 역병이 돌자 세계와 단절된 공화국을 탄생시킨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이데아의 세계'를 모티브로 삼았음을 쉽게 느끼게 한다. 개성과 욕망을 억제하고 철저히 통제된 계급사회에서 2058년에 아담 포드가 태어난다. 아담의 성장과정에서 보여주는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움과 표류하던 이브를 숨겨주는 인간적인 행위가 소설의 전면에 깔리면서, 인공지능형 로봇 '아트'와 몰개성적 공화국의 이단아 '아담'의 설전을 통해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깊이있는 탐구가 시작된다. 플라톤의 관념(idea)과 정신, 사유에 대한 철학적 주제를 제법 깔끔하게 주고 받으면서 인간 의식의 영역과 삶과 죽음의 문제를 정리해 나간다. 앞으로 문명이 발달하면 로봇에게도 관념이 존재할 수 있을까? 로봇 아트는 인간과 로봇의 진화론적 유사성을 지적한 뒤 "저를 만든 건 인간이 아닙니다. 바로 관념이 저를 만들었죠."하며 사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아담은 말한다. "누군가의 미소를 보고, 다른 사람의 손을 꼬옥 잡을 때에만 삶이 의미가 있어진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어. 그게 차이인거야.(169쪽)"...어쨌거나 감옥에서 다른 할 일없는 아담과 아트는 지적 교감을 나누는 단계에 이르고, 서로 의견이 맞아 탈옥을 시도하지만 실패하자 아담은 아트에게 죽음을 부탁한다.

 

이후의 전개와 반전은 정말 이 소설의 압권이며 백미이다. 이 부분은 정말 이야기 할 수 없다. 꼭 앞에서 부터 읽어가야할 소설이다. 스포일러가 되지않을려면 이 정도에서 마무리 하자. 분명 특별한 클라이막스가 준비되어 있다.

 

이 책의 저변에 흐르는 철학적 소스는 책을 읽어가다보면 저절로 저자와 지적인 교감을 나누게 한다. 아담과 아트의 대화를 통해 풀어내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사고는 은근히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한다. 저자는 플라톤의 철학을 기반으로한 공화국을 씨줄로, 칼 포퍼(K.Popper)의 플라톤 비판을 대변하는듯한  아담의 행동과 아낙스의 열린마음을 날줄로 하여 책의 플롯을 짜고 있다. 플라톤은 완전한 지혜를 갖춘 철학자가 통치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제 직분과 기능을 잘 발휘하여 조화를 이룬 국가를 이상국가라고 생각하였다. 그에게 있어 정의란 지혜(Sophia 철학자),용기(Andreia 군인),절제(Sophrosyhne 서민)가 조화를 이루면서 각자에게 알맞은 직분을 행하는 것이다. 혹시 생길지 모르는 문제를 대비하여 공동생활과 사유재산을 가질 수 없고 자녀들은 공동보모에 의해 키워지는 사회, 전체를 위하여 국가의 방침에 반대하는 사람에게 사형을 내려도 자유침해라고 생각하지 않는 아리스토크라티아(Aristokratia 우수자 지배제)의 철학적 공산주의 국가가 플라톤의 이상국가이며 소설상의 공화국이다.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란 책을 통해 개인의 자유를 무시하고 구속하는 플라톤의 닫힌 사회를 비판한다. 정의를 향한 인간의 노력은 그것이 개인의 자유의 신장을 수반할 때에만 진정한 진보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아담이 보여주는 '타락하지 않은 동정심'과 인간의 본능적 자유로운 행동 및 아낙스가 보여주는 감성적 사고가 소설에선 안티테제로 작용하고 있다.

 

다음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관념을 바라보는 시각(3교시 주제)이다. 아낙스가 홀로그램으로 재연한 아담과 안드로이드인 아트 사이의 논쟁, 그리고 시험관과 아낙스 사이의 문답을 통하여 인간에 대한 과학과 철학적 의문에 발을 디디게 된다. 의식이란 무엇이며 관념과 사유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인간과 기계가 다르지만 인공 지능이 충분히 발전할 경우에도 인간성이 유효할 것인가? 이런 의문은 종국적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하게 한다. 인공지능 로봇을 창조한 인류는 언제까지나 진화단계의 최상위에 자리할 수 있을것인가?

아트는 말한다. "당신네 인간들은 관념의 세계를 창조해낸 것을 자랑스러워하지만, 진실에는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관념은 외부세계로부터 뇌로 들어갑니다. 일단 뇌에 자리를 잡으면 가구 배치하듯 자기 뜻대로 대상을 재배열합니다...중략...당신은 관념을 스스로 생산한 것처럼 자랑스러워하지만, 관념은 기생충이랑 비슷한 겁니다. 왜 진화가 육체적인 것에만 적용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진화는 매개체를 가리지 않습니다. 정신과 정신이라는 관념 중에 어느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까? 둘은 함께 등장했습니다. 정신이라는 것도 하나의 관념입니다. 그걸 알아야 하는데, 아쉽게도 당신은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인간인 당신의 약점입니다...중략...저를 만든 건 누구일까요? 누구라고 말하고 싶으세요? 사유하는 기계를 만든 건 누구일까요? 압도적인 효율성을 지닌 생각을 전파하는 저 같은 기계 말입니다. 저를 만든 건 인간이 아닙니다. 바로 관념이 저를 만들었죠...말은 오래되고 굼뜬 메커니즘입니다. 사유를 전달하는 데 있어 더 효율적인 도구는 기록이 내장된 카드죠. 사유가 절 탄생시킨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유는 그럴 수 있으니까요. 다음 단계는 뭘까요? 사유가 저를 활용하겠죠. 사유가 당신들 인간을 활용했던 것과 똑같이 말입니다. 누가 더 오래 살아남을까요? 당신일까요? 절까요? 대답해 보세요, 피와 뼈 아저씨. 누가 더 오래오래 살아남을까요? 사유는 어느 쪽을 선호할까요?"(120~130쪽)

 

아담의 인간성에 대한 반론은 어떠할까?
"사유가 어느 쪽을 선호할 것 같으냐고 물었지?" 아담이 폭발했다. "오직 기계만 그런 질문을 하지. 그리고 인간만이 답할 수 있어. 왜냐하면 내가 바로 사고고 사유이니까. 너는 시끄러운 소음일 뿐이야!"...중략..."나는 기계가 아니야. 기계가 어떻게 아침의 풀잎 냄새와 아이의 울음소리를 알겠어? 나는 내 피부에 쏟아지는 따뜻한 햇볕의 느낌이고, 나를 덮치는 차가운 파도의 감각이야. 나는 절대 가 본 적 없지만 눈을 감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장소이고, 다른 이의 숨결과 그녀의 머리카락색이야." "너는 인간의 수명이 짧다고 비웃었지만, 바로 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삶에 생명을 불어주는 거야. 나는 사유에 대해 생각하는 사상가지. 내가 호기심이고 이성이고 사랑이고 증오인 거야. 나는 무관심이기도 하고, 한 아버지의 아들이고, 그 아버지는 또 누군가의 아들이지. 나는 우리 어머니가 웃는 이유이고 또한 그분이 우는 이유기도 해. 나는 궁금함이고, 또 그 자체로 궁금함을 낳기도 하지. 그래, 세상이 네 버튼을 누르고 네 회로를 훑고 지나갈 수 있겠지. 하지만 세상이 나를 훑고 지나갈 수는 없어. 세상은 내 안에 머무르는 거야. 내가 세상 안에 있고, 세상도 내 안에 있는 거라고. 나를 통해 우주가 스스로 알아가고, 그 어떤 기계도 나를 만들어낼 수는 없어. 내가 바로 의미야".(131~132쪽)

 

주제가 무거운 듯 하지만 이 책의 말미까지 읽다보면 저자가 던지는 인간에 대한 철학적 화두를 문학적으로 소화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식 문답에 의해 이끌어나가는 저자의 긴 호흡이 단순하지않은 책읽기를 유도한다. 사실 처음에 청소년들이나 보는 킬타임용 미래소설일거라고 단정했는데 의외로 읽을만한 소설이다.(하지만 뱀파이어류나 러브환타지류를 좋아하는, 생각하기 싫어하는 청소년들은 싫어할 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의 이름을 철학자 Anazimander에서 따온 아낙시맨더로 한 이유는 무얼까? 우주가 만들어진(made) 것이 아니라 산출된(born) 것이라는 신념을 가져던 철학자인데... 제너시스와 관련하여 저자가 소설의 이름에 부여한 의미를 잠깐 생각해 보면서 책을 덮는다.

 

오기:
90쪽 아트는 가만히 아트를 ==> 아트는 가만히 아담을



e***i 2010.06.04. 신고 공감 3 댓글 5
리뷰 총점 종이책 주간우수작
인류의 미래와 인간다움에 대한 철학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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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미국이나 유럽 문학들은 많이 접해봤는데, 뉴질랜드 작가의 소설은 버나드 베켓의 “2058 제너시스(내인생의 책/2010년 4월)”이 첫 작품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SF 소설이라 잔뜩 기대를 가지고 책 첫 페이지를 열었다. 다 읽고 나서 서평 쓰는 지금, “뉴질랜드 문학 최고의 선인세를 갱신한 작품”, “전 세계 22개국 베스트셀러 진입”이라는 요란한 선전 글이 아니더라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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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미국이나 유럽 문학들은 많이 접해봤는데, 뉴질랜드 작가의 소설은 버나드 베켓의 “2058 제너시스(내인생의 책/2010년 4월)”이 첫 작품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SF 소설이라 잔뜩 기대를 가지고 책 첫 페이지를 열었다. 다 읽고 나서 서평 쓰는 지금, “뉴질랜드 문학 최고의 선인세를 갱신한 작품”, “전 세계 22개국 베스트셀러 진입”이라는 요란한 선전 글이 아니더라도 내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키는, 묵직한 주제 의식과 소설로서의 재미가 조화롭게 풀어나간 작가의 글 솜씨에 한껏 반하게 만드는 그런 소설을 만나 즐거운 기분이 든다.

 

책은 아낙스가 공화국 학술원에 입학하기 위해 치르는 구술 면접 시험을 주 얼개로 하고, 인터뷰 안에 21세기 중반 인류의 역사와 공화국 생성 과정,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인 아담의 이야기를 액자식으로 구성하고 있다. 2052년 전 세계에 전염병이 퍼지자 플라톤은 지금의 뉴질랜드와 같은 남태평양의 외딴 섬 사방 면에 방벽을 쌓아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그들만의 공화국을 건설한다. 어느날 보초병으로 근무하던 아담이 바다를 표류하는 소녀 이브를 발견하고, 외부인은 무조건적으로 사살하라는 규정을 어기고는 그의 선임을 죽이고서 그녀를 구출해서 숨겨주게 된다. 결국 아담의 행동을 수상쩍이 여긴 당국에게 발각되어 감옥에 수감되고, 아담은 감옥에서 인공지능 로봇 “아트”와 생활하게 된다. 아담과 아트는 인간의 사유와 진화에 대해 이야기나누게 되고 로봇이 인간보다 더 진화한 4세대 개체라는 아트의 주장에 인간에게는 로봇과 다른 생각하는 능력과 감정이 있다고 주장하고, 수많은 대화를 통해 로봇과 인간은 지적 교감을 나눈다. 아담과 아트는 결국 감옥에서 탈출하지만 경비병들에게 발각되고, 아담은 아트에게 죽음을 부탁하고 살아있는 인간을 결코 죽이지 못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는 아트는 아담을 죽이고 자신의 관념을 온라인에 퍼뜨리고는 자신 또한 파괴되어 버린다. 이때부터 공화국에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제목이기도 한 "2058 제너시스(Genesis)"는 바로 공화국에 새로운 역사, 즉 창세기와 같은 역할을 한 아담이 태어난 년도를 의미한다.

 

  200여 페이지 남짓의 짧은 분량인 이 소설은 그 분량 이상으로 많은 생각꺼리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아담과 아트의 논쟁을 통해서 광물, RNA, 뇌, 관념으로 진행되는 진화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나 과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전기스위치를 복잡하게 연결한 깡통”에 불과한 로봇에게 과연 관념이나 사유가 존재할 수 있을지, 그렇다면 사유하는 로봇은 과연 아트의 주장처럼 진화의 정점에 서 있는 새로운 개체로 볼 수 있는 지, 로봇을 창조한 인류는 과연 진화단계에서 뒤처지는 열등한 개체로 전락하고 마는지 등 철학적인 주제들에 대하여 결코 지루하거나 어렵지 않게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특히 “절대 마지막 장면을 먼저 읽지 말라”는 어느 아마존 독자의 충고처럼 마지막 반전이 인상적이다(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소개는 생략한다). 디스토피아적 인류의 미래 예측과 그에 대한 철학적 고찰,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창조된 이 주제는 어찌보면 이제는 식상할 수 도 있지만, 세계문학에서 변방인 뉴질랜드 작가인 버나드 베켓의 이 소설은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인상적인 책으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a*****7 2010.04.26.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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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한 현실에서 찾아야만 하는 인간성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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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다보면 첫 장부터 빠져들게 되는 경우가 있는 반면, 도입부부터 조금 혼란스러운 경우가 있다. <2058 제네시스>의 경우는 후자였다. 그것은 처음 읽는 뉴질랜드 소설이라는 낯설음 때문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채, 시험부터 봐야하는 당황스러움 같은 것이었다. ‘1교시’라는 말에 어수룩하게 첫 장을 펼쳤다가, 갑자기 시험을 보라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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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읽다보면 첫 장부터 빠져들게 되는 경우가 있는 반면, 도입부부터 조금 혼란스러운 경우가 있다. <2058 제네시스>의 경우는 후자였다. 그것은 처음 읽는 뉴질랜드 소설이라는 낯설음 때문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채, 시험부터 봐야하는 당황스러움 같은 것이었다. ‘1교시’라는 말에 어수룩하게 첫 장을 펼쳤다가, 갑자기 시험을 보라는 그런 기분이랄까?

 

    <2058 제네시스>는 처음부터 그렇게 조금 당황스럽게 시작한다. 표면적으로는 학술원에 입학할 자격을 갈망하는 아낙시맨더스가 거치게 되는 4시간의 시험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아낙스를 따라 삭막한 분위기의 긴 복도를 걸어 들어가는 것이 이 소설의 시작이다. 작가는 일언반구 설명도 없이 독자를 답답한 상황 속에 ‘툭’하고 던져놓는다. 작가는 이렇게 딱딱하고 숨막히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인간성 회복과 자유를 갈망했던 아담 포드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아낙스가 사는 섬, 아오테아로아는 황폐화된 지구를 피해 새로 건설된 유토피아인 것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그 면면을 살펴보면 왠지 모를 음산함과 공포가 느껴진다. 게놈 해독을 거친 주민들의 계급이 나뉘는 것도 그렇지만,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떨어지는 일도 그렇다. 아이들의 성장관련 정보는 전혀 제공되지 않은 채, 생후 1년이 지나면 ‘제거’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 공화국은 결혼도 유전자 변이부서의 허가증명을 받아야하고, 결혼 후에도 부부가 같이 지내려면 공유시간수당을 따로 벌어야하는 세계다.

 

   그런 속에서 ‘아담’이란 존재가 태어난 것이다. 침입자는 무조건 사살해야하는 냉혹한 세계에서 아담은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침입자 ‘이브’를 본능적으로 살려준 행동에서, 또 인간처럼 행동하는 안드로이드 아트와의 대화를 통해 ‘인간’인 아담은 고뇌하고 갈등한다. 아담은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현실에 대해, 의문을 갖고, 생각을 하고, 갈등을 한다. 이렇게 너무나도 인간적인 아담은 공화국에는 큰 위협이 되는 것이다. 아낙스는 시험을 통해 아담의 생애와 정신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리고 아담에 대한 그녀의 해석이 그녀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부분이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페리클레스, 아담, 이브 등 익숙한 이름이다. 게다가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적용한 소설답게, 첫 번째 휴식시간에 등장하는 인물은 소크라테스를 염두에 둔 듯 소크라는 이름도 등장한다. 이들 인물은 각각 그들의 성격을 대변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대변한다. 그래서, 금기(taboo)를 깬 이브로 인해, 아담은 공화국에 ‘원죄’를 짓게 된다.

 

   역사상 ‘독재자인지, 진정한 민주주의 지도자인지’ 여부의 논란에 휩싸여왔던‘지상의 제우스’ 페리클레스는 이 책에서도 결정적인 인물로 작용한다. 페리클레스가 연설에서 말했다는 “우리는 자유에 의한 기풍 속에 자라면서도 위기가 닥쳤을 때는 물러서는 일이 없습니다”라는 말은 어찌 보면, 작품 속 페리클레스에게도 해당되는 듯하다.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는 아낙스의 말에 페리클레스는 단호하다. 그의 마지막 행동은 실로 독자의 허를 찌르는 탓에,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을 때에는 잠시 혼란스럽기조차 하다.

 

    이러한 혼란스러움은 한편으로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을 교차 편집해놓은 듯한 ‘공화국’의 모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오염된 세계를 떠나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며 건설된 공화국에서 기존 세계의 추악함을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은 읽는 이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고 나면 어쩐지 가슴이 답답하다. 처음의 이상에서 벗어나 변질된 공화국의 모습은 우리의 참담한 미래 모습을 미리 엿본 것 같아 씁쓸함을 준다.

 

    하지만 그래도 위로삼을 수 있는 것은 결말의 참담함이 끝은 아니라는 것이다.(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결말에 대한 언급은 피하겠다.) 안타까운 결말의 그 순간에도, 누구보다 인간적이고자 했던 아담의 꿈과 진실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 ‘아트’를 통해 ‘바이러스처럼’ 복제되어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냉혹한 공화국의 현실 속에 이렇게 퍼진 바이러스는 또다른 ‘돌연변이’를 계속 만들어 낼 것이다. 아담과 아트의 인간적인 교류는, 날이 갈수록 디지털화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인간성’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설명일 것이다.

d******n 2010.05.13.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인간답다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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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마지막 장면을 먼저 읽지 말라고 이 책을 읽을 또다른 독자를 위해 하고픈 말이다. 그만큼 이책의 말미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완벽한 반전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아낙시맨더가 공화국  학술원에 들어가기 위해 2시간이나 소요되는 긴 면접을 치르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공화국의 역사와 '아담'이란 인물에 관한 발표를 계속하면서 아담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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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마지막 장면을 먼저 읽지 말라고 이 책을 읽을 또다른 독자를 위해 하고픈 말이다. 그만큼 이책의 말미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완벽한 반전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아낙시맨더가 공화국  학술원에 들어가기 위해 2시간이나 소요되는 긴 면접을 치르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공화국의 역사와 '아담'이란 인물에 관한 발표를 계속하면서 아담의 이야기가 주가 된다. 그녀는 인터뷰를 무사히 마치고 최고지성집단인 학술원의 일원이 될수 있을까?
 
3차 대전이 발발과 전염병이 전세계로 번지자 세상은 암울한 혼돈속에 빠지게되고 
기업가 플라톤은 때맞춰 남태평양의 섬을 사들여 자신만의 공화국을 세운다. 그리고 섬 주위에 높은 해양방벽을 쌓아 전쟁과 전염병에 시달리는 외부로부터 공화국을 보호하고 주민들은 안전을 담보로 자신의 의지와 선택권을 국가에 위임하고 철저한 신분제를 통해 국가의 통제하에 생활한다.
 
뗏목을 타고 공화국으로 다가오는 소녀를 발견한 보초병 아담, 국가와 국민들의 안위를 위해 전염병을 퍼뜨릴 수 있는 외부인을 즉시 사살해야 한다는 공화국 법을 어기고 아담은 동료를 죽인후 소녀를 피신시킨다. 이일로 감옥에 갇히게 된 아담은  재판에 회부되나, 사형을 면하는 대신 스스로 진보가 가능한 인공지능 로봇 '아트'와 함께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지적인 면에서 인간보다 우위에 있는 아트는 로봇이 인간보다 더 진화한 개체라고 주장한다. 이에 아담은 인간에게는 감정이 있고 인간만이 가진 열망을 배에 탄 여자아이의 눈에서 보았다고 그런 열망이 로봇에게선 찾을수 없다고 말한다.

“배에 탄 여자애를 보았을 때, 나는 절망 이상의 무엇을 본 거야. …… 거대한 위험 속에서도 길을 나서기로 했던 오래전의 결정,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더 좋은 삶을 살려는 열망을 봤어. 소녀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나 자신을 봐 버렸던 거야. 이미 마음먹었던 결정들, 절대 채워지지 않는 열망들, 그런 것들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는 욕망을 봤고, 선택들을 본 거지. 하지만 네 눈에서는 그런 것들을 본 적이 없어"
 
아담은 감옥 탈출을 시도한다. 목숨은 붙어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에는 자신이 꿈꾸는 삶에 대한 열망이 너무 강했기에 그는 무모한 줄 알면서도 시도할수 밖에 없었으이리라. 아담은 원죄를 지었으며 그로인해 바이러스 형태로 로봇에게 전염된다.
 
소설 속 공화국이나 플라톤, 혼돈을 뜻하는 아낙시맨더, 페리클레스, 탈레스, 아리스토텔레스 등 그리스 철학자와 같은 이름들과 이 책의 제목이기도한 창세기를 뜻하는‘제너시스'‘아담’등 익숙한 이름들을 통해 그것들이 함축하고 있는 바를 은유적으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다분히 철학적이지만 재미가 반감되지 않는 탁월한 재능이 작가에게 있는가 보다. 그다지 많은 분량이 아님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끔하고 재미있지만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이야기다. 미래소설이라 칭하기엔 너무 사유적이며 함축적이고 철학책도 아닌 이 책을 읽고난 뒤 여전히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인간적인게 뭔지, 만약 생각하는 감정이있는 로봇이 미래에 개발 된다면 그 로봇을 뭐라 불러야 할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것이 무얼지 여전히 두렷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는다.
k******2 2010.04.29. 신고 공감 2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과연 누구를 위한 창세기인가? 인간 혹은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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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온, 작년에 전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신종 인플루엔자,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각종 국제분쟁과 테러들, 그로인한 3차 대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 퍼져나간 2012년 종말론까지. 정말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는 암울하기만 한 걸까? 서점에서 이 책을 봤을 때, 단순히 2058이라는 숫자에 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 50년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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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온, 작년에 전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신종 인플루엔자,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각종 국제분쟁과 테러들, 그로인한 3차 대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 퍼져나간 2012년 종말론까지. 정말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는 암울하기만 한 걸까? 서점에서 이 책을 봤을 때, 단순히 2058이라는 숫자에 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 50년 뒤에 미래, 그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인류는 과연 지금처럼 존재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 이런저런 호기심들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단순히 암울한 미래를 다룬 SF 소설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미래사회를 암울하고 통제된 디스토피아로 묘사한 소설들을 많이 읽어 왔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빅브라더를 통해 개개인을 완전히 통제하는 사회,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에서 등장하는 가부장제과 성경을 기반으로 한, 모든 욕망은 거세되고 생식을 위한 성(性)만이 존재하는 ‘길리아드’의 모습 등.

  이 소설에 등장하는 플라톤이 세운 공화국도, 이들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2050년경의 세계는 3차 세계대전과 대규모의 전염병으로 인해 황폐해졌고, 플라톤은 섬에 거대한 방벽을 세우고 선택된 자들만의 나라를 세운다. 그 사회는 철저한 계급사회고, 개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며, 생후 1년이 된 모든 아이를 검사하여, 결과에 따라 계급을 나누고 심지어 ‘제거’해 버리는 나라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 나라에서 야기된 문제를 파고들기 보다는, 그 이후의 사건에 초점을 맞춘다.

  이 소설의 ‘현재’는 역사학도 아낙시맨더가 학술원 면접을 보는 때다. 그녀는 면접장에서 플라톤이 세운 공화국에 반기를 들었다는 역사적 인물, ‘아담’을 재조명 한다. 바로 아담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액자식 구성의 ‘내화’에 해당하며, 인간인 ‘아담’과 안드로이드인 ‘아트’의 논쟁을 통해 작가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로 들어간다. 그것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이며, 인간과 기계의 관계는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독자에게 던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단순히 암울한 미래를 다룬 SF 소설에서 끝나지 않는다.


인간 vs 로봇의 대화를 따라가며 즐기는 지적 유희.

  ‘아담’과 ‘아트’의 핑퐁을 하듯 서로 주고받는 설전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과 로봇의 차이는 과연 무엇인가를 파악하게 한다. 그들의 논쟁에는 ‘자아’와 ‘진화’ 그리고 ‘본질’과 ‘영혼’의 문제. ‘관념’에 대한 사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열망과 욕망에 대한 관점 등이 들어있다.  

  또한 제목 ‘제너시스’ 즉 ‘창세기’라는 표현부터, 새 세계로의 변화를 이끈 인물인 ‘아담’ 그리고 그가 구원해 준 ‘이브’까지, 그리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낙시맨더의 스승 ‘페리클레스’에 이르기까지 성격과 그리스 고대 철학자들을 아우르는 비유 또한 독자들이 소설을 통해 지적 유희를 즐기도록 해준다.


과연, 누구를 위한 창세기였을까?

  인간 vs 로봇, 아담 vs 아트의 대립은 상상을 초월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진정한 진화의 승자는 과연 인간이었을까? 로봇이었을까? ‘아트’가 ‘아담’의 탈출을 돕는 과정에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고 공화국은 ‘대전쟁’을 겪는다. 그 전쟁을 통해 새로운 세상, 바로 ‘아낙시맨더’가 살고 있는 세상이 새로 시작된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이 ‘창세기’이다. 과연 그 창세기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그 문제에 대해 이 소설은 커다란 반전을 숨기고 있다. 반전에 대해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지만, 난 여기서 밝히고 싶지는 않다. 영화 식스센스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었다는 반전만큼이나 뒤통수를 후려치는 강도가 엄청났으니까.

  미래나 인간 존재에 대해 한번쯤 궁금증을 가졌다면, 이 책을 읽고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실로 오랜만에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었다. 

YES마니아 : 골드 w****n 2010.04.22. 신고 공감 2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