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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것도, 서로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음악처럼 서로 다른 언어를 쓰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것, 땅에 깃발을 꽂아 자신의 소유임을 입증할 필요가 없는, 이런 인디언의 작은 지혜들을 '나'인 작은나무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배우는 걸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작가의 자전적 내용과 작가가 들어온 인디언의 얘기들로 구성되었다고 하는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작은 나무'라는 이름의 '나'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인디언 혼혈 소년이 겪게 되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디언의 지혜인 꼭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을 시작으로 앞서 말했던 다른 말의 이해 등 주로 '나'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지내며 배워가는 많은 인디언의 지혜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 자연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조금은 어른스러운 듯한 작은 나무가 전해주는 이야기들은 스펀지처럼 우리의 마음을 천천히 오랫동안 따뜻하게 해준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이야기는 점점 사라져가는 인디언의 현재를 비유한 것 같아 더욱 아쉬운 부분이며 자연 속에 일부가 되어 공감해가던 예전의 우리가 사라져감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한 부분이었다.
점점 문명의 발달에 익숙해져가고 인간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땅과의 교감, 그리고 서로에 대한 사랑과 이해를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책을 읽고난 후 어릴적 친구들과 함께 다녔던 숲과 그 안에서 함께했던 나를 어렵게 그렸었다면 지금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인상깊은구절] 할머니는 어디서나 쉽게 죽은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하셨다. 여자를 봐도 더러운 것만 찾아내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쁜 것만 찾아내는 사람, 나무를 봐도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고 목재와 돈덩어리로만 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이었다.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꿀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 뿐이다. 게다가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 부리는 걸 그만두지 않으면 영혼의 마음으로 가는 문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비로소 이해라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더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영혼의 마음도 더 커진다. 할머니는 이해와 사랑은 당연히 같은 것이라고 하셨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사랑하는 체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
| 난 이책을 읽고 화장실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울면서 보고있었다 마지막에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난 눈물이 앞을 가려서 책을 재데로 보지도 못할 상황이었다 또 할아버지도 죽고 나서도 난 주저없이 눈물을 흘렸다 집에는 아무도 없어서 창피해 할필요도 없어서 마음이 놓였다 정말 난 이책을 읽으면서 작은나무는 참 행복했었구나.. 라는 걸 느꼇고 나도 행복했었다... 이런 감동적인 책을 또 언제 쯤 읽어볼 수 있을런지... 여기서 작은나무는 너무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 것 같다. 할아버지와 산에서 위스키를 만들고... 할아버지가 방울뱀에게 대신 손을 물어주었을땐 정말 블루보이보다 작은나무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다. 난 이책을 읽으면서 어린이도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 라는 걸 꺠달았다.. 이책을 다읽고 난 지금 포리스트 카터는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의문을 남겼다.. 아무래도 저자는 지금 이세상에 없지만... 정말 이책을 읽고 난 뒤에 내 마음에는 작은 불빛이 켜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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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던 것을 잃었을 때는 언제나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뿐이지만, 그렇게 되면 항상 텅 빈 것 같은 느낌 속에 살아야 하는데 그건 더 나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여행을 마치고 출근하던 날 아침, 고달픈 사바세상을 어떻게든 나야 했으므로 나는 습관처럼 빈약한 책꽂이를 훑다가 지난 달 까탈님이 선물해준 『100인의 책마을』에서 파란흙(책에서 저자명은 박은영 님)님의 책수다에서 고개 갸우뚱 어리둥절했던 책『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반신반의 하며 꺼내들었다.
내 짧은 기억력이 틀리지 않다면 몇 년 전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며 여기저기에 이름이 오르내렸던 제목만 그럴싸한 자기계발류의 그저 그런 씨크릿류로 치부했기에 2년 전부터 책꽂이를 차지하는게 귀찮아 이사올때 처분용 책무더기에 잠깐 올려두었다가 그래도 남편의 전 상관이 부서를 옮기는 직원들 환송선물로 주며 짧은 메모까지 되어있던 터라 구사일생 했던 책이었기에 선택이 맞춤했는지 자신이 없었다.
닷새만의 출근길 버스와 지하철은 힘들었다. 온통 회색투성이인 사람들은 왜 그리 많은지, 립글로즈 바른 입술위에 찰거머리처럼 들러붙는 머리카락조차도 어여쁘던 푸른 바람은 왜 한 점도 불어오지 않던지, 사람들 틈을 비집고 자리잡은 지하철에서 책을 꺼내들고 겉표지를 본다. THE Education of litte tree라는 원제, 포리스트 카터라는 낯선 저자, 흔해빠진 카툰속의 작은아이 거기다 첨 들어본 출판사.
아빠와 엄마를 잃은 아메리카 인디언 작은나무가 끈덕지게 붙들었던 할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생각하다가 빼고더할 것도 없이 첫장에서부터 깊숙이 빨려들었고 순식간에 차가운 뱃속에 뜨거운 배춧국이라도 들이킨 것처럼 나의 배는 따뜻하게 부풀어올랐다. 나의 짧은 기억과 쉽게 저지르는 판단미스를 질책하며 나는 산사람 인디언에게 내 맘속의 창이란 창을 죄다 열어두었다.
일단 독서는 양으로를 주창하며 부수적인 접속사와 접두/미사를 빼고 읽는 속독의 달인이던 나는 아껴아껴 천천히 곱씹으며 읽다가 오늘 퇴근길 지하철에서 훌쩍거리며 내렸다. 눈이 벌개졌던지 내릴때 나와 눈이 마주쳤던 남자아이는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나를 다시 한번 흘깃 거렸다. 집으로 걸어오는 동안 머리를 제껴 하늘을 올라다보았다. 백인 그리스도교 고아원 목사에게 등줄기에 피가 철철 나도록 얻어맞은 작은나무가 멀리 떨어진 할아버지 할머니 윌로 존을 떠올리며 올려다 보았던 늑대별을 찾느라고. 그러다가 혹시라도 그들의 촉감을 살갗으로라도 느끼게 될까 싶은 마음에서 말이다.
잔인하고 위선적인 백인과 백인청교도들의 야만성을 각인시켜주기 보다는 색색이 알록달록해지도록 포스트잇을 연방 붙이게 만들었던 산사람 인디언들의 세상에 대한, 사람에 대한, 자연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지혜를 두고두고 배우고 싶다.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재미로 살생하지 않는 것’이라든가 ‘사랑이란 이해는 것’이라든가 ‘경청하는 자세’라든가 따위의 가르침을 마음속에 선명하게 돋을새김으로 파두고 싶다.
이만큼 심장을 데워줄, 뇌를 청량하게 식혀줄, 폐부를 맑게 청소해줄 독서가 당분간 있을까 싶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소설가들이 책을 지어 책을 낼때 이 책을 누구에게 바친다 라는 헌사를 쓰듯이 만약 독서후 느낌에 대한 헌사가 내게도 감히 허락된다면 천대와 멸시와 알콜중독과 극빈에서 허덕이며 정체성을 잃어야 했던 아메리카 인디언, 알래스카 인디언, 중남미의 인디언이 조금씩 인디언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하는 요즈음의 기사들을 떠올려보며 수없이 되살아나 반짝이는 눈망울로 희망을 채우는 윌로 존들에게 바칩니다 라고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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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내 삶에 태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생겼다. 타인으로부터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해서 쌓아놓은 투명하지만 두터운 벽에 질식했는지 본심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파악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가장 듣기 거북하고 한편으로 두려운 말이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게 뭐야?' 라는 말이 되어버린건.. 진정으로 원하는 무엇이 기한의 이미지를 부술 수 있는 파격적(?)인 것이어서가 아니라 그게 뭔지 모르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책을 많이 읽어도 정작 삶에 교훈이 되는 것들을 뽑아내어 매일 실천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그냥 현학적 허세에 지나이 않아요. 같은 책을 매주 반복해서 읽더라도 무언가 얻어낸 것을 본인의 삶에 녹여내는게 중요하죠. 그렇게 많은 책을 읽고도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건 책을 읽는 태도에 문제가 있는거라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어는 날 내 눈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아내가 한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오랜만에 아내 앞에서 얼굴을 붉혔다. 무언가 남부끄러운 짓을 하다가 들켜버린 것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 건지... 한번도 정상적이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음에도, 내 삶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별로 진지하게 생각해본적 없이 터무니없게 나이를 먹어버린 내가 한심해고 창피했다.
이 책은 자연스러운 삶의 아름다움과 진지함을 보여준다. 이 책은 아이들이 읽어도 정서적으로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좋은 책이지만, 흔히들 사회생활이라 말하는 인위적이고 위태로운 관계가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해버린 지금을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더 맞는 책인거 같다. 사회생활 중 의식적인 인간관계의 확장은 삶의 곳곳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결핍의 구멍을 만드는데, 무감히 살다가는 그 구멍에 다리가 빠져 상처입고 고통받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로는 그 고통을 무게를 견디지 못해 정상적인 판단에서는 절대 할 수 없눈 바람직하지 못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무엇이든 자연스럽지 않으면 진정으로 아름다울수도 감동적일 수도 없다. 문제는 그러한 자연스러움이 무엇인가, 또 어디에 있는가를 찾지 못할 만큼 이미 복잡하게 치장된 삶을 사는..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자아를 잃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버린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를 포함해서..
이 책은 그런 고민 중의 나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를 보여주었다. 이 책에서는 나름 전염성이 있는 따뜻한 영혼을 만날 수 있는데, 그 따뜻한 영혼들의 작은 목소리는 시끄럽고 지저분해져 가는 세상을 정화시킬 수도 있는 큰 힘을 가졌다. 나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한 지인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정말 매주 반복해서 같은 책을 읽을 결심이 생긴다면 그 대상으로 이 책을 한번 진지하게 고려해볼 생각이다^^
「나는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하고 마음이 아팠다. 할아버지는 네 기분이 어떤지 잘 안다, 나도 너하고 똑같은 기분을 맛보고 있다, 사랑했던 것들을 잃었을 때는 언제나 그런 기분을 맛보게 된다,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뿐이지만, 그렇게 되면 항상 텅 빈 것 같은 느낌 속에 살아야 하는데 그건 더 나쁘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또, 할아버지는 내가 나이를 들면 링거 생각이 날 것이고, 또, 나도 생각을 떠올리는 걸 좋아하게 될 것이다, 참 묘한 일이지만 늙어서 자기가 사랑했던 것들을 떠올리게 되면 좋은 점만 생각나지 나쁜 점은 절대 생각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나쁜 건 별거 아니었다는 걸 말해주는 것 아니겠느냐고 하셨다」
「내 영혼이 따듯했던 날들」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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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조경숙 아름드리미디어/2012.8.20. sanbaram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는 체로키들이 세대를 이어오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오던 많은 가르침들, 할아버지가 작은 나무에게 전해주고자 했던 가르침들이 녹아들어 있다.(p.343)”고 편집 후기에서 말한다. 자서전적 소설을 통해 인디언들의 소멸 과정에서 백인들의 편견과 차별이 어떠했는지, 그 죄악의 일부를 폭로한다. 또한, 기독교인의 비도덕적인 일면을 고아원의 목사를 통해 고발하고 있다. 아울러 5세에서 10세까지 주인공 ‘작은 나무’와 할아버지의 대화를 통해 인디언들의 생활방식이나 자연을 대하는 그들만의 독특한 의식 같은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작은 나무와 할아버지 대화를 통해 독자들은 인디언의 자연관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자연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리라 생각된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의 작가인 포리스트 카터는 체로키 인디언의 혈통을 일부 이어받은 그는 이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소설 <텍사스로 가다>, <조지 웨일즈의 복수의 길>, <제로니모> 와 자서전적 소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 있다. 주인공 ‘작은 나무’는 아빠가 세상을 뜨고 1년 후에 엄마가 죽었을 때 다섯 살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의 친척들은 어린이의 양육에는 관심이 없고 얼마 되지 않은 그의 유산을 차지하는데 혈안이 된다. 그 와중에 ‘작은 나무’는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는 할아버지에 매달리게 되고 결국 그를 따라 산속 오두막집으로 가게 된다. 오두막에선 인디언 할머니와 스코틀랜드계 혼혈인 할아버지와 함께 산다.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체로키족의 전통을 그들로부터 배우며, 힘이 되는대로 할아버지를 돕는 생활을 한다. “이제 산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천천히 하품을 하고 있었다. 하품으로 토해낸 미세한 수증기들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해가 나무에서 죽음의 갑옷인 얼음을 서서히 벗겨감에 따라, 산 전체에서 살랑거리고 소곤거리는 소리들이 되살아났다.( p.24)” 아침 바람이 나무 사이에서 낮은 휘파람 소리를 들으며, ‘산이 깨어나고 있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공감하면서 주인공은 자연을 조금씩 이해해 간다. 칠면조의 몸짓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른다. 할아버지는 필요한 만큼을 빼고는 절대로 동물들을 괴롭히지 않으셨기 때문에 동물들이 할아버지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할아버지는 칼로 베어낸 삼나무 껍질의 한쪽 끝을 비틀어 국자 모양으로 만들어 우리는 그걸로 차고 맑은 계곡물을 떠 마셨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개울 바닥의 자갈 하나하나가 또렷이 보였다.’는 표현 속에서 자연적인 삶의 전형을 볼 수 있다. 할머니 이름은 보니 비(예쁜 벌) 이다. “어느 늦은 밤, 할아버지가 ‘당신을 사랑해 보니 비’라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 나는 할아버지가 ‘당신을 사랑해’라는 뜻으로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p.69)” 이처럼 가족이 사랑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고 배우면서 가족애를 느끼게 되었고, “정부군이 들어온 이야기, 체르키족이 비옥한 골짜기에서 농사짓던 이야기, 생명들이 싹트는 봄이 되면 열리는 짝짓기 잔치 이야기와, 수사슴과 암사슴, 수탉과 암탉이 발정나서 새끼를 갖게 되는 이야기…(p.73)” 등을 통해 인디언들의 삶과 문화에 대해 배워가면서 한 사람의 체로키 인디언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새롭게 탄생하는 봄이 되면 흔들림과 소란이 일어난다. 영혼이 다시 한 번 물질적인 형태를 갖추려고 발버둥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에 부는 매서운 바람은, 아기가 피와 고통속에서 태어나는 것처럼 탄생을 위한 시련이다.(p.106)”라는 표현을 통해 자연을 읊은 한편의 시를 마주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어렵사리 모은 돈을 몽땅 사기맞고 실망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할아버지는 “작은 나무야.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제 입으로 자기가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떠벌리는 사람한테는 조심하겠다는 뜻이지?(p.146)”라며 위로와 인생의 교훈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한다. “우리는 봄과 여름 동안에는 덫을 놓지 않았다. 짝짓기와 싸움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동물들도 마찬가지라는 게 할아버지의 설명이었다.(p.173)” 또 할아버지는 설령 짝짓기를 하고 난 다음이라 해도 사람들이 사냥을 계속하고 있으면, 그들은 새끼를 낳아 기를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결국 우리 인간도 굶어 죽고 말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작은 나무는 동물들의 번식기인 봄과 여름 동안에는 주로 물고기만 잡았다. 인디언은 절대 취미 삼아 낚시를 하거나 짐승을 사냥하지 않는다. 오직 먹기 위해서만 동물을 잡는다. 즐기기 위해서 살생하는 것보다 세상에 더 어리석은 것은 없다고 할아버지는 분개하곤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 모든 것들이 정치가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다고 하신다, 전쟁이 끝나면 사람을 죽이러 갈 수 없으니까 그동안 살인하는 방법을 잊지 않기 위해 동물을 상대로 그 짓을 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월로 존은 이미 여든 살이 넘었다. 월로 존은 아주 오래전에 인디언 연방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는 자동차도 기차도 타지 않고 맨발로 산들을 지나 그곳을 찾아갔다.(p.236)” 그는 간 지 3년 만에 되돌아왔지만 그곳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단지 “인디언 연방 따위는 없었다”고만 말했다. 등짐장수인 “와인 씨는 개척촌에 살고 있었지만, 보따리를 등에 짊어지고 산으로 다니며 장사를 했다. 우리는 그가 오는 날이 언제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개들이 짓기 시작하면 골짜기 길을 달려내려가 그를 마중하곤 했다. 우리는 그를 도와서 그의 짐을 우리 집으로 옮겼다.(p.256)” 이처럼 교류하는 이웃이 몇 없지만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한다. 와인 씨의 짐보따리 속에는 온갖 종류의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온갖 색깔의 리본들과 예쁜 천과 양말, 골무, 그 외 반짝이는 여러 바느질 도구들, 작은 나무는 와인 씨가 짐보따리를 마루에 펼칠 때마다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열심히 구경하곤 했다. 작은 나무는 이렇게 생활을 통해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그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내가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다고 법에 고소했으며,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를 양육할 자격이 없다. 두 분 다 늙은 데다가 교육도 받지 못했으며, 할머니는 인디언이고 할아버지도 반은 인디언이다. 더구나 할아버지는 평판이 좋지 않다…(p.273)” 이 통보를 받고 기독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으로 강제로 가게 되었지만, 그곳에서는 왕따를 당하고 인디언 사생아라는 이유로 차별과 학대를 받게 된다. “목사는 내 침대로 돌아가라고 하면서 앞으로 일주일 간 저녁 식사는 없다고 했다.(p.304)” 어차피 작은 나무는 저녁을 먹고 있지 않았다. 또 그는 앞으로 일주일 동안 수업을 받을 수 없으며, 방 밖으로 나와서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날 이후 땅거미가 내리고 늑대별이 반짝이기 시작하면 작은 나무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원로 존에게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그후(원로 존이 죽은 후) 할아버지와 할머니, 내가 함께 산 기간은 2년 정도였다. 아마 우리 모두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남겨진 시간이 얼마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을 것이다.(p.333)” 이제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작은 나무가 가는 곳이면 어디라도 따라오셨다. 우리는 그 남은 시간 동안 충실히 살았다. 우리는 가을이면 가장 새빨간 단풍잎을 찾아냈고, 또 봄이면 가장 푸른 제비꽃을 가리키며 서로에게 알려주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 아름다운 느낌을 함께 맛보고 서로 나누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
| 오늘 아침에 이책을 놓으면서 울뻔했습니다. 아침에 조용한가운데 이책을 읽으려니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내야 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부모님이 죽고서 의지가 되었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윌로존의 죽음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그리고 그가 파라다이스를 찾듯 없는 인디언 연방을 찾아 나설때 마지막 의지가 되었을 개두마리.. 정말 ..슬펐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어린 나무..의 영단어 외우기.. 정말 기발하고 웃겼구엽.. 윌로존과 어린나무의 선물..윌로존의 코트에 개구리를 넣어 윌로존의 마음의 벽이 허물어진것. 몇일동안 윌로존이 고아원에가서 그 목사를 따라다니면서 작은나무는 산속집에 가야 한다는 말만해서 어린나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일... 제가 읽으면서 제일 즐거워하지 않았을까 했습니다. 그리고 방울뱀을 사이에 두고 목숨을 걸어 손자를 지키려는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를 생각나게 하고, 지은이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동물 식물, 아니 모든 자연물과 교감을 나누면서 자라서 진정 행복을 알고, 자랐을꺼라고 생각을 합니다. 내가 아이를 키울땐 사람이 필요한, 살아가는데 행복할 그런 지식을 알려주고 교육을 해줄껍니다. 진정 행복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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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책 선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라는 이 책은 상당히 오래된 책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스테디 셀러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 개인으로서는 가장 많이 산 책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간단한 책 선물을 하고자 할 때 가장 저렴한 값에 - 책이 나온 지 오래된 탓에 책 값도 거의 반값이다- 살 수 있으면서도 가장 감동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지금도 누군가에게 선물 줄 수 있도록 한 권 더 갖고 있다. 따뜻한 파스텔 톤의 인디언 소년 그림이 있는 이 책을 집어든 이래로 항상 책 선물할 때마다 떠오르는 책이다. 따뜻하면서 값도 저렴한 가난한 독서가에게 참 잘 어울리는 책...
이 책은 재미있다
이 책은 재미있다. 체로키 인디언의 시각으로 본 기독교인들로 백인들, 특히 돈 많고 말 많은 정치가들의 삶의 모습은 상당히 노골적인 풍자를 담고 있다. 과거 체로키 인디언들은 "눈물의 여로"라고 하는 고난을 겪었다. 아마도 "작은 나무"는 그 고난으로 인해 부모님과 헤어져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커야 하는 운명을 지니게 되었을 것이다. 덕분에 "작은 나무"는 어린 나이에 일찍 "죽음의 노래"를 들어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런 체로키 인디언들이 백인들의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고 거기에 적응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자연과 벗하면서 살던 그들의 모습은 "꿀벌 티비"가 더 많은 꿀을 저장하는 욕심을 "뒤룩뒤룩 살찐 사람들"에게 빗대어 설명하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 자기가 꼭 필요한 것만 자연에서 얻어가고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삶. 이런 체로키 인디언의 시각에서 본 백인들의 사회는 자못 재미있다. "작은 나무"의 할아버지는 "법"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할아버지에게 있어서 '법'이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또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으면서 무조건 권력만 휘두르는 괴물을 뜻했다" - 할아버지와 조지 워싱턴, 33p- 할아버지는 도서관 책을 읽어주는 할머니를 통해서 "조지 워싱턴"이 좋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좋은 인물이 가난한 사람들이 하는 밀주 - 위스키를 만드는 것-를 단속하는 법을 만들었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할아버지는 조지 워싱턴의 "머리에 총알이 스쳐지나가" 그가 좀 이상하게 되었다고 믿게 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좋은 위인이 나쁜 법을 만든 점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교회에 나가서 간음한 여성이 고백하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도 재미있다. 어느 부인이 교회에서 다른 남자와 간음했음을 신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고백한다. 그러자 "예배가 끝나고 교회 밖으로 나갈 때, 남자들은 그 여자와 거리를 두고 멀찌감치 떨어져 걸었고, 그 여자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이에 대해서 "남자들이 그 여자와 얘기하는 게 다른 사람들 눈에 띌까봐 겁을 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반면에 여자들 쪽은 "그녀 주위에 몰려들어 등을 두드리거나 쓰다듬으면서 그녀가 정말 장한 일을 했노라고 떠들어댔다." 할아버지는 여자들이 "자기 남편의 꼬리를 잡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며, 고백하면 얼마나 마음이 편해지고 사람들의 칭송을 받게 되는 지 보여주어서 간음한 또 다른 여자들을 알아낼 속셈"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또다시 결정타를 날린다. 할아버지는 "진짜로 여자들이 그렇게 너도나도 고백하고 나선다면 아마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 하셨단다. - 교회 다니기, 245- 약간 뒤로 물러서서 솔직담백하면서도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한 설명이 자못 풍자적이고 재미있다. 특히나 정치인이나 기독교인에 대한 풍자가 많이 나오는데 오늘날 정치가들에 대한 풍자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적용될 듯 싶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이 욕 먹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이 책은 슬프다
체로키 인디언의 과거를 설명하는 "눈물의 여로"에 대한 묘사도 슬프지만 이 "눈물의 여로"의 영향을 받은 건지 체로키 인디언의 후손인 "작은 나무"의 주변 사람들은 나이든 사람들- 혹은 동물들- 이 많아 어린 "작은 나무"보다 세상을 먼저 떠나간다. 제일 먼저 곁을 떠난 것은 "링거"였다. 링거는 나이든 사냥개여서 냄새도 잘 맡지 못하지만 할아버지는 옥수수 밭을 모드와 같이 맡긴다. "링거가 그다지 충실한 개가 아니어서 우리가 별로 자랑스럽게 여지지 않았다면" 링거를 보내는 우리의 마음이 더 안좋았을 것이라고 할아버지는 말해준다. "사랑했던 것을 잃었을 때는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하고 마음이 아픈 기분을 느끼게 되지만" 그것을 피하려고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항상 텅 빈 것 같은 느낌 속에 살아야 하는데 그것은 더 나쁘지 않겠느냐"고 할아버지는 "작은 나무"에게 말해준다. - 기독교인과 거래하다. 127-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슬픔을 겪는 것이 나을지 몰라도 와인 영감이나, 윌로 존, 할아버지, 할머니가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충실한 "리틀레드"와 "블루보이"가 "작은 나무"곁을 차례로 떠나는 것은 슬픈 모습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작은 나무"의 운명일 것이고 "작은 나무"가 큰 나무로 커가는 과정이겠지만 그 과정은 정말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슬프다. '작은 나무야, 나는 가야 한단다, 네가 나무들을 느끼듯이, 귀 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널 기다리고 있으마.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거야." - 죽음의 노래, 330- "작은 나무"의 할머니는 그 죽음 조차도 자연스러웠다. 평상시 모습과 다를 바 없이 마치 갈 곳을 가는 사람처럼 그렇게 떠나갔다. 이 책은 슬프다. 체로키 인디언의 후손인 "작은 나무"가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살 수 밖에 없었던 그 배경이 슬프고 "작은 나무" 곁에 있던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게 되어서 슬프다.
"작은 나무"는 새로운 "사랑"을 만났을까
자연과 벗하는 체로키 인디언들은 그만큼 순수했다. 그리고 그 순수함으로 거친 백인 사회에서 견뎌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어린이를 보호한다며 "작은 나무"를 강제로 데려간 곳에서 만난 목사는 작은 나무를 매질하고 위선적인 모습을 보여주기에 바빴고 아마도 다른 백인 사회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다시 할아버지에게 돌아오기는 했지만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을 차례대로 자연으로 돌려보낸 "작은 나무"는 인디언 연방을 향해간다. 그곳에서 "작은 나무"는 새로운 사랑을 만났을까? 그런 순수한 마음이면 설령 상대방이 나쁜 사람일지라도 동화되고 그의 새로운 "사랑"이 되었을 것이다. 설령 "작은 나무"가 새로운 사랑을 만나지 못했을 지라도 이 책이 포리스트 카터 사후에 그 빛을 발했던 것처럼 누군가는 그의 마음을 늦게라도 이해해주고 기억해주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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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를 읽고 예상을 했지만 예상보다 큰 감동을 준 책이다. 제목만 보고 그냥 에세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눈물, 따뜻함, 웃음, 체로키 인디언의 삶의 철학, 작은 나무의 천진함 등이 나에게 다가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이 책은 눈보다 마음으로 읽어야 할 것 같다.
이 책의 영문 제목('The Education of Little Tree')처럼, 이 책은 작은 나무라는 이름의 남자 아이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키우며 겪는 이야기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산에서 사시고 체로키 인디언이시고 작은 나무도 인디언이다. 이 책은 작은 나무의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작은 나무의 양육을 할아버지 할머니가 맡으면서 시작된다. 이 책에는 북아메리카에 백인들이 정착하면서 체로키 인디언들이 겪는 고통이 은은히 나타나 있다. 이 책은 작은 나무의 시선으로 쓰여져 있다. 그래서 더 가슴 아프다. 백인들이 체로키 인디언들을 모아서 집단이주시키는 '눈물의 여로' 부분에서는 눈물이 날 수 밖에 없었다. 1300킬로미터의 거리를 걷는 동안 체로키 인디언의 1/3이(약 4천여명) 죽었다는데, 죽은 동생은 형이 안고 가고 죽은 부인은 남편이 안고 갔다고 한다. 잘 때 옆에서 같이 자고 아침에 일어나 다시 안고 길을 갔다고 한다. 체로키 인디언은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몸의 마음과 영혼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산으로 도망친 소수의 체로키 인디언들의 후손이었다.
작은 나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알려준 것들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아침에 해가 뜨고 산이 깨어나는 것, 느릅나무와 이야기하는 법, 시냇물과 새들과 노는 법, 왜 매가 가장 약한 메추라기를 잡아가는 것이 그 메추라기들을 위하는 것인지, 봄이 올 때 왜 그리 바람이 많이 부는지 등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지혜를 배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체로키 인디언의 삶의 방식을 몸에 익히게 된다. 산에서 소란스럽지 않게 걸어다니는 법, 두 개의 마음이 있다는 것, 누구에게 강요하지 않는 법, 선물 주는 법 등이다.
작은나무와 할아버지는 여섯 마리의 메추라기를 잡았다. 할아버지는 작은 나무에게 약한 놈 세 마리를 선택하라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풀어준다. 이것은 단지 인디언이 필요한 만큼만 사냥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강한 개체들을 살려보내서 메추라기들이 더 강해지게 하는 자연의 이치를 따르기 때문이다. 매가 가장 약한 메추라기를 잡는 것도 이 자연의 이치를 따르기 때문이다. 봄이 되기 전에 추운 바람이 세게 부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할아버지는 말한다. 자연의 이치를 따르면 숲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숲과 함께 행복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체로키 인디언의 삶의 방식이다. 또 할아버지는 말한다. 백인들은 절대 이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할아버지의 아버지, 즉 작은 나무의 증조할아버지때에 남북전쟁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 전쟁에서 인디언들은 남부쪽에 가담했는데 북부쪽이 승리했다. 인디언들이 북부쪽에 가담했다면 그 후에 인디언의 지위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참고로 할아버지는 1867년에 아홉 살이셨다. 하여튼, 할아버지는 정치인을 매우 증오한다. 이런 할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작은 나무 역시 정치인은 나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 이 할아버지의 선입견때문에 작은 나무가 정치인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갖는 것은 위험하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작은 나무가 기독교인에게 노새(거의 죽어가는)를 50센트에 사는 것을 그냥 지켜보고 계셨던 할아버지를 본 후에 나의 걱정은 사라졌다. 할아버지는 그 노새가 곧 죽을 것을 알았지만, 작은 나무를 말리지 않았다. 그 날로 노새는 죽었다. 그 후에 할아버지는 말하셨다. '노새를 살 때 말렸다면 너는 나를 두고두고 원망했을 것이고, 노새를 사라고 했으면 노새가 죽은 것을 내 탓이라고 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바람직한 부모의 역할을 알 게 된다. 작은 나무는 한 번 이런 경험을 한 후에 앞으로는 거래에 대하여 신중할 것이다. 이런 경험이 부모의 잔소리보다 100배 낫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교육법은 바람직하다. 작은 나무를 나무라지 않고 잔소리 하지 않는다. 하지만 차분히 지켜본다. 그리고 왜 그랬는지 알려준다. 판단은 작은 나무가 한다. 이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할아버지는 어려운 사람에게 물건을 만들어 주는데, 주면서 그 물건을 만드는 방법을 상세히 알려준다고 한다. 어려운 사람을 그냥 도와주는 것은 동정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사람들이 더 나아지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진정한 기부라는 것이다. 자녀교육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자녀를 무작정 도와주는 것보다 자녀에게 왜 그래야 하는지를 스스로 알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
이 책에는 많은 삶의 교훈들이 담겨있다. 독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은 할아버지가 작은 나무에게 전달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어린 아이인 작은 나무의 눈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 나에게 감명깊었던 것은 '두 개의 마음' 그리고 '이해와 사랑은 같은 것'이다. 작은 나무만의 비밀장소를 발견했을 때, 할머니는 체로키라면 비밀 장소가 있다라고 말하신다. 작은 나무는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그리고 할머니는 말하신다. 사람에게는 두 개의 마음이 있다. 몸을 꾸려가는 마음과 영혼의 마음이다. 몸을 꾸려가는 마음은 먹고 자고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마음이다.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을 부릴수록 영혼의 마음은 점점 작아진다고 한다. 욕심을 부려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너무 커지면 영혼의 마음이 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걸어다니지만 죽은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섬뜩하다!). 영혼의 마음을 키우는 비결은 상대를 이해하는데 마음을 쓰는 것 뿐이란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비로소 이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있어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할머니의 말씀이다. 곰곰히 생각해볼수록 맞는 말이다.
<정리하면> 영혼의 마음을 키우는 비결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 뿐이다. 상대를 이해하려면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한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있어야 사랑할 수 있다.
결국,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고 욕심부리지 않아야 한다.
나는 이렇게 결론내렸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기 때문에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고 욕심부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뭔가 좋은 것을 알아낸 것 같아 뿌듯하다.
할아버지는 산에 옥수수를 키워서 그 옥수수로 위스키를 만드신다. 실제로 할아버지는 혼혈이다. 반쪽은 스코틀랜드에서 온 것이다. 그래서 증조할아버지로부터 위스키 만드는 법을 배웠고 증류기도 있다. 하지만 이 당시 술을 만들어 파는 것은 불법이었다. 주류세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작은 나무는 질좋은 위스키를 만들어서 정착촌에 있는 가게에 가서 판다. 그 돈으로 필요한 것들을 사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오래동안 숙성시켜서 오크통냄새가 벤 위스키를 최고로 생각하는 위스키 제조업자를 비난한다. 나는 오래 숙성시킨 위스키가 더 좋은 것인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는 아니란다. 할아버지의 위스키가 소문이 나서 잘 팔리는 것을 보면 할아버지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얼마 전에 발렌타인 21년산을 면세점에서 10만원을 넘게 주고 샀다. 17년산은 21년산의 절반에 살 수 있었다. 다음부터는 17년산을 사야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할아버지 말에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솔직히 17년산과 21년산의 맛의 차이를 못 느낀다.^^
법이 작은 나무를 할아버지 할머니 곁에서 데려와 고아원으로 가는 부분이 있었다. 떠나기 전날 밤 작은 나무가 침대에서 담요를 입안에 쑤셔넣고 우는 부분부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작은 나무가 고아원 목사에게 피터지게 등에 매를 맞고 있다. 그래도 작은 나무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체로키 인디언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는 법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나는 눈물을 닦지 않고 계속 책을 읽어갔다. 법이나 제도가 얼마나 약자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을까? 누군가는 정의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피해를 입히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약자의 가슴에 피멍을 들 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삶도 나쁘지는 않았어. 작은 나무야. 다음번에는 더 좋아질 거야. 또 만나자."
할아버지의 영혼이 빠져나가면서 작은 나무에게 하신 말씀이다. 체로키는 죽음의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린다. 체로키는 몸은 죽어도 영혼의 마음은 다음 생에 계속 이어진다고 믿는다(윤회). 이 책에는 미국백인들이 인디언들에게 한 폭력을 작은 나무의 눈으로 그려내고 있다. 반면에 체로키 인디언들의 삶의 철학도 담겨 있다. 체로키 인디언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 영혼으로 슬퍼한다. 체로키 인디언들은 백인들을 미워하지 않는 것 같다. 백인들은 체로키의 삶을 파괴했는데도. 바로 영혼의 마음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영혼의 마음을 키우는 비결은 오직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뿐이기 때문에, 체로키는 백인들을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백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백인들은 체로키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백인들의 삶을 강요한다. 체로키들은 슬퍼하겠지만 그들의 영혼은 살아 있다. 하지만 백인들 중에는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너무 강해 영혼의 마음이 사라진 '죽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과연 어떤 삶이 더 행복할까?
할아버지는 신이 그런 하찮은 일로 언쟁하는 멍청이들처럼 속이 좁다면 천당이라도 그다지 살기 좋은 곳은 아닐 거라고 말씀하셨다. (245쪽)
돈을 낭비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은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그 다음엔 생각을 허술히 낭비하게 되며, 결국 나중에 가서는 모든 걸 낭비하게 된다. 정치가들은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허술해지면 권력을 쥘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정치가는 느슨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다가 얼마 안 가 독재자로 변한다. 와인 씨는 절약하는 사람들은 절대 자기 머리 위에 독재자를 갖는 법이 없다고 하셨다. 옳은 말씀이다. (260쪽)
그는 교육이란 것은 두 개의 줄기를 가진 한 그루의 나무와 같다고 하셨다. 한 줄기는 기술적인 것으로, 자기직업에서 앞으로 발전해가는 법을 가르친다. 그런 목적이라면 교육이 최신의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자신도 찬성이라고 와인 씨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또 다른 한 줄기는 굳건히 붙들고 바꾸지 않을수록 좋다. 와인 씨는 그것을 가치라고 불렀다. 와인 씨는, 정직하고, 절약하고, 항상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야말로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만일 이런 가치들을 배우지 않으면 기술면에서 아무리 최신의 것드을 익혔다 하더라도 결국 아무 쓸모도 없다, 사실 이런 가치드을 무시한 채 현ㅈ대적이 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그 현대적인 것들을 잘못된 일, 부수고 파괴하는 일에 더 많이 쓴다고 하셨다. 맞는 말씀이었다. (261~262쪽)
이전에 늙다리 링거에 대해서 할아버지가 "자신이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떠올랐다. (334쪽)
"I kin ye, Bonnie Bee"
1) 침례교에서 '침례'의 뜻: 시냇물 속에 온몸을 완전히 담그는 것. 2) 추어주다: '추어올리다'와 같은 말. 위로 끌어올리다. 실제보다 높여 칭찬하다. (eunbi님 덕분에)
<궁금한 것> 1) 단풍나무의 노란색과~ (86쪽): 단풍나무 잎은 빨간색이 아닐까? 2) 다시 몸을 앞으로 세워 의자에 네 다리가 모두 바닥에 닿게 한 파인 빌리는~(94쪽): '의자에 네 다리'가 아니라 '의자의 네 다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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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이라는 순수한 사람들의 생활을 그저 어린 아이가 바라본 그대로 묘사한책.
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는 인디언의 마음에 아직 젖어 들지 못해서 약간은 지루하고 또 약간은 유치하다는 생각을 할즈음... 책을 넘기는 나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열중하며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아무것도 아닌 듯이 인디언의 생활을 묘사하지만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활의 지혜, 참된 교육과 인간 관계가 무엇인지 가르치지 않고 마음으로 느낄수 있도록 해주는 이야기들이다.
읽는 내내 기뻐서 웃도록, 기뻐서 울도록, 행복해서 웃도록, 또 행복해서 울도록... 나의 감정을 마음대로 쥐고 흔들어 버린... 전혀 억지 스럽지도 않도록 그저 그냥 책에 젖어 작은 나무와 하나가 되도록... 그들과 함께 숨쉴 수 있도록 만들어 참된 삶에 대해 너무나 깊이 가르쳐준... 아름다운 책이다...
훗날 우리 아이가 책이라는 것을 읽을 수 있을때 한번... 그리고 어른이 되어 갈 때쯤 또 한번... 꼭 읽도록 하고 싶은 아름다운... 정말 아름답고 고마운 책이다... |
| 아주 작은 인디언 꼬마 '작은 나무'의 서술체로 시작되는 이야기책은, 어쩌면 어른들을 위한 동화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기에 읽어야할 책이라고 구분되어 있었던 시기에 샀지만, 이미 청소년기를 훌쩍 뛰어넘은 나와 엄마가 같이 봤음에도, 어린 아이들만의 예리함과 그들만의 흡수력. 그만큼의 상처... 등등에 대해 웃음과 눈물을 뛰어넘나들며 보던 책이었다. 지금은 표지 디쟈인이 바뀌어 나오는 것을 보고 있는데, 처음 사서 읽고 나서부터 자그만치 네권이나 새로 사서 선물을 했을 정도로, 내게 채워준 영혼을 나눠주고 싶게끔 하는 책이다. 한편으로는 미국인들이 어떤 형식으로 미주대륙을 정복했는지를 이야기하면서 그 와중에도 현명하게, 나름대로 대체했던 인디언들의 이야기. 과거의 세대에서 현재라는 현실을 살던 인디언 혈통의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생활에서 작은 아이가 습득해가는 삶에 대한 지혜는,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하고 있는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경고'인지도 모른다. 우직하면서 무뚝뚝한 할아버지가 작은 나무에게 흙과 나무, 새와 공기, 해와 아침, 사냥(을 하면서 지켜야 할 점등등)과 위스키, 그리고... 그들의 산! 그 모든 것을 작은 나무가 전부 몸으로 깨닫게 하기까지 몸으로 지키시고, 가르치셨고 긴머리에 소리없이 늘 필요한 떄에 나타나시던 할머니. 두분 모두 정이 많으신 분이셨기에 어쩌면 작은 나무, 작가가 있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사냥하는 것을 가르쳐 주시면서... 누구나 다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가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며, 그렇게 다음의 것을 남겨두어야 한다고 하셨고, 인디언들의 선물하는 방법은, 그냥 가만히 상대방의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 두는 것으로, 상대방이 그것을 가져가면 그것으로 되는 것이라고, 세상의 욕심에 대해 가르쳐주시며, 또 한 유대인 봇짐장사가 죽음과 친했던 할아버지 인디언의 죽음 앞에서 보여주신 두분의 모습에서 작은 나무는 저절로 삶이란 것을 터득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들에게서 무엇인가를 얻어내고자, (혹은 뺏고자...) 백인들이 그들에게 다가갈 때마다, 그들이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대처하는 모습에서, 우리가 다른 어떤 누군가에게 상처와 아픔으로 저렇게 다가가고 있지는 않는지, 또 내가 저럴 땐 얼마나 우매했었는지를 저절로 되돌아보게 해주던 아이 '작은 나무' 당시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던 시대에 살아야했던 작은 꼬마인디언 아이의 눈에 비추어졌던 세상이야기. 그리고 아픔... 삶의 시작과 끝, 탄생과 죽음까지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따뜻한 한권의 책이다... 기르던 사냥개의 죽음과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까지도 미리 준비시켜주신 두분의 지혜에 어쩌면 작은 나무는 그렇게 길을 떠다는 청년이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나는 가끔, 마음이 헐벗은 듯 할 때, 숨이 막힐 때면... 의례 손이 가는 책 중에 하나로 갖고 있다. 여행 중에 문득, 가지고 오지 않은 책이 보고싶어져서 찾아보다가 쓰는 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