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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은 쓸모 있는 근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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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는 우파, 좌파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정치적으로 보면 진보와 보수다. 그래서 인문학적으로 좌파라고 한다면 마르크스의『자본론』같은 불온서적(不穩書籍)을 읽는 것이다. 반면에 인문학적으로 우파라고 한다면 사서삼경(四書三經) 같은 책을 탐독하면서 온고지신(溫故知新)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입견에 대해 이택광은『인문좌파를 이론 가이드』에서 ‘인문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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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는 우파, 좌파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정치적으로 보면 진보와 보수다. 그래서 인문학적으로 좌파라고 한다면 마르크스의『자본론』같은 불온서적(不穩書籍)을 읽는 것이다. 반면에 인문학적으로 우파라고 한다면 사서삼경(四書三經) 같은 책을 탐독하면서 온고지신(溫故知新)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입견에 대해 이택광은『인문좌파를 이론 가이드』에서 ‘인문좌파’라는 독창적인 개념을 주장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인문좌파란 단순하게 정치적 좌파라고 규정할 수 없는 ‘다른 주체’였다. 즉 인문좌파는 우파와 좌파의 이념 모두를 회의하는 독특한 사유의 주체였다. 또한 합의된 공동체의 윤리를 의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던지는 것이다. 새로운 문제란 다름 아닌 이론을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에 드러나듯 ‘이론가이드’라는 것은 저자가 다년간 이론에 공을 들인 결과였다. 그는 ‘이론은 근육이다’라고 말하면서 왜곡되었거나 편향된 이론의 진면목을 정의하였다. 보기 좋은 근육이 아니라 힘을 쓰기에 좋은 근육이라고 했다. 이론이 쓸모 있는 근육이 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대로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 들뢰즈의 표현에 따르면 ‘개념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으로 받아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창조에 대해 유념해야 할 것이 몇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창조라는 것이 완전히 새로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낡은 것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이론은 없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우발적인 필연성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탈정초주의(post-foundationalism)다. 탈정초주의는 토대나 법칙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불변한 것을 우발적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 책의 본론으로 들어가면 ‘마르크스를 죽여? 살려?’로 시작된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의 영향 때문인데 데이비드 하비는 마르크스를 ‘자본주의의 근대화에 대한 포괄적 평가를 제공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저자는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유인즉 우리가『공산주의의 선언』에 대한 단순한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지젝이 말한 ‘이데올로기의 판타지’다. 가령, 근대화 이후의 한국성과 유교는 거의 관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한국은 유교적인 국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이론에 대한 반성이 대두되면서 ‘문화이론’의 반작용이 나타났다. ‘마르크스로 돌아가라’는 것은 페리 핸더슨이 제시하는 것처럼 ‘역사발전에 관한 이론(역사이론)’으로 볼 수 있다. 역사이론으로서 마르크스주의는 ‘이론의 이론’이 되는 메타이론이 되었다. 그리고 라캉주의 좌파에서는 ‘정치적 기획’을 제시한다. 라캉주의 좌파에서 정치는 주이상스(jouissance)의 위상학에서 현실성을 탐색하는 것이었다.


라캉의 주이상스에 관련하여 빼놓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발터 벤야민이다. 그는 만보자를 새로운 지식 생산자로 봤다. 그리고 ‘아름다움이란 진리내용과 물질내용 그 사이에 조성되는 긴장 자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진리는 의도성의 죽음’이라고 했다. 이것은 곧 융의 의식성을 문제시하는데 역사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변증법적 사유는 역사적 각성의 기관이었다. 따라서 벤야민에게 ‘앎은 곧 기존의 지식을 부수는 새로운 것’이었다. 저자는 이 문제가 모든 좌파이론의 핵심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밖에도 이 책은 정신분석학을 일종의 이론으로 여겼던 알튀세르를 조명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알튀세르는 정신분석학을 무의식이라는 과학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이데올로기 또한 무의식의 영역으로 해석했다. 그는 이데올로기를 이념이나 신념 체계 같은 것이 아니라 ‘재현들의 체계’ 곧 구조로 봤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이데올로기를 상상적 관계로 설정했다. 상상적 관계란 큰 주체에 작은 주체들이 귀속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을 그는 호명(interpellation)'이라고 했다. 반면에 지젝은 이데올로기를 구조가 아니라 ‘구조와 주체의 틈새에서 작동하는 판타지’라고 했다.


다음으로 저자는 안토니오 네그리의 ‘예술을 여전히 반자본주의적’인 것에 주목한다. 즉 예술의 ‘창조적 상상력’을 반자본주의적 정치의 원동력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네그리는 예술가를 ‘해방을 향한 물질적 욕망에 내재한 구성적 힘의 화신’이라고 하면서 ‘다중’이라는 존재로 규정한다. 네그리에 따르면 ‘아름다운 것’과 ‘혁명적인 것’은 같다. 이로 인해 모더니즘을 병든 예술, 리얼리즘을 건강한 예술이라고 했던 루카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끝으로 철학의 복원 문제에 있어 알랭 바디우의 ‘탈봉합’을 제시하고 있다. 바디우에게 있어 철학은 진리 이후에 가능한 것이었다. 바디우은 기존의 철학은 진리적 철차들을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 어느 한 가지를 우월한 지위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정한 진리 생산이 다른 진리의 생산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봉합’이 발생한다고 하였다. 결국 봉합이라는 것은 ‘진리 생산의 절차를 배타적’으로 하는 것이다. 반면에 탈봉합은 ‘다양한 진리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이론이 쓸모 있는 근육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단순한 미학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보다는 정치적이어야 한다. 이론이라는 것이 객관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입장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을 정당화하는 이론의 역할이다. 그런 면에서 랑시에르가 파악했던 ‘정치적인 것은 언제나 미학적인 차원을 통해 출몰한다’는 것이 뚜렷해진다. 랑시에르에게 미학은 ‘감각적인 것의 나눔’을 결정하는 아프리오리(a priori: 경험 이전에 존재하는 앎)이었다.

 

<책 속 밑줄>

이론은 기본적으로 언어에 대한 회의를 내포하고 있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이론은 이데올로기 비판을 전제한다. p 6

논란이 많지만, 이데올로기는 세상에 대한 관점이고, 또한 사물에 대한 지식을 만들어내는 인식 방법이다. p 42

이론은 이렇게 위급할 때 위기를 모면하는 대피소가 아니라, 전장을 함께 누벼야 하는 무기다. p 87

라캉의 인식론에서 “중요한 것은 진리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진리는 어디에서 판명될 수 있는가”하는 문제다. p 181

지식은 기본적으로 범용성이 있어야 한다. 범용성이 없는 지식은 아집에 가깝다. p 265


 

 



p******0 2010.05.04. 신고 공감 5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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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적 개입이냐 빈곤한 이론의 위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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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은 근육이다. 누구나 자기 나름의 이론이 있다는 의미에서의 이론이 아니라 전문학술지에 나오는 이론의 의미에 있어서 이론은 근육이다. 그러나 이론이라 일컬어지는 것들 가운데는 근육보다는 그저 '구라'에 가까운 것들도 있다. 딱딱한 문체와 기나긴 술어로 이야기하는 좀 있어보이는 소설 말이다. 살다 보면 진지한 인문학적 담론과 개똥철학을 구분하기가 애매한 경우를 만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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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은 근육이다. 누구나 자기 나름의 이론이 있다는 의미에서의 이론이 아니라 전문학술지에 나오는 이론의 의미에 있어서 이론은 근육이다. 그러나 이론이라 일컬어지는 것들 가운데는 근육보다는 그저 '구라'에 가까운 것들도 있다. 딱딱한 문체와 기나긴 술어로 이야기하는 좀 있어보이는 소설 말이다. 살다 보면 진지한 인문학적 담론과 개똥철학을 구분하기가 애매한 경우를 만날 때도 있다. 잠꼬대처럼 들리는 일부 먹물들의 헛소리를 구체적으로 검증할 방법이 없는 경우를 만날 때는 더 많다. 특히 알랭 바디우 류의 잠꼬대 같은 소설은 심지어 영화비평 같은 현란한 수사학의 무대에서조차도 그럴듯한 쓰임새가 없는 편이다. 좋게 말해서 그저 현학적인 소설로만 그칠 뿐이다. 개인적으로 조언한다면 조르지오 아감벤이나 알랭 바디우를 붙잡고 청춘을 허비하지 말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론이 엄정한 이론으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통과해야 할 자격절차가 적어도 세 관문은 된다. 이론 자체의 구조적 유효성을 검증받아야 하고, 같은 동료과 집단들의 명시적인 동의가 있어야 하고, 현실에서 실질적인 기능을 수행하거나 효과를 보여야 한다. 참고로 나는 포퍼에 동의하는 사람이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이론의 무기력증에 익숙하다. "현재 상황은 이론의 쓰임새가 과잉이어서 문제인 게 아니라, 이론이 자본의 논리를 넘어 현실에 대해 제대로 개입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다."(97쪽)그리고 아이러니하게 이 책 또한 그런 무기력증을 보인다. 그래도 박사반에 진학할 사람들은 이 책 말미에 있는 <학문하는 자를 위한 처세술 5계>는 필독하기 바란다. 커다란 동감과 지지를 표한다.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인데 솔직히 말해서 인문좌파는 이런 가이드가 필요하지 않다. 포지셔닝을 잘못한 것이다. 일반인들을 위한 문화이론 입문서가 아닌가. "인문좌파'란 말도 사실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거나 경기에 참여하지 않는 후보 선수의 변명처럼 들린다. 사실 좌파라면 당연히 인문학적 상상력을 기본으로 깔고 있어야 하는 법이다. 책제목은 [20세기 문화이론 입문]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푸랑크푸르트 학파를 비롯한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유산과 더불어 푸코와 들뢰즈 이후의 사상가들과 지젝, 랑시에르, 바디우 같은 라캉 후계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바디우 철학이 지금 한국에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나는 결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요즘 프랑스의 신철학자들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기 보다는 새로운 문제를 던지는 것을 더 가치있고 더 멋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전통은 아쉽게도 푸코에서 시작되어 들뢰즈를 거쳐 알랭 바디우에 이르고 있다. 해답보다 문제제기를 중시하는 이런 변명적 태도는 현실의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앞에서는 말하나마나의 무용지물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나마 라캉주의 좌파는 예술비평계에서는 강세이고 유행인데 이게 그나마 '빈곤한 이론'의 위안거리가 될 수 있을까.

 

z***a 2010.09.07.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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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성에 실패한 대중 이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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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기존의 좌우 정치 지형에 속하지 않는 ‘다른 주체’로서 ‘인문좌파’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인문좌파는 좌우 이념을 모두 회의하는 독특한 사유의 주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체는 ‘합의에 도전’하고 ‘불일치와 불통을 조장’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유의 모험’으로서의 이론관에 부합하는 존재이다. 현실의 중력에 저항하기 위해 인문좌파는 이론이라는 근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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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기존의 좌우 정치 지형에 속하지 않는 다른 주체로서 인문좌파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인문좌파는 좌우 이념을 모두 회의하는 독특한 사유의 주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체는 합의에 도전하고 불일치와 불통을 조장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유의 모험으로서의 이론관에 부합하는 존재이다. 현실의 중력에 저항하기 위해 인문좌파는 이론이라는 근육을 키워야 한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고 잃을 것이 조금씩 더 많아짐에 따라 대개 보수화되기 마련이지만, 사유의 자유를 통해 끊임없이 회의하고 도전하는 인문좌파는 계속해서 좌파로 남을 수 있고 남아야 한다는 것이 아마 저자의 생각인 것 같다. 그렇다면 최신 사조에 늘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 인문좌파의 숙명일 터이다. 이택광은 그러한 인문좌파에게 지금 필요한 이론으로서 포스트 구조주의의 안티테제들을 소개한다. 논의의 시작은 마르크스이다. 근대 사회의 욕망은 자본주의적 상품 교환에 그 기본형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젝 덕에 대중화된 라캉을 거치면서 마르크스와 정신분석학의 결합은 더욱 공고해지며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은 정치철학의 위치를 되찾는다.

그런데 저자의 이론근육론(?)이 무색하게, (얇은) 책 한 권을 읽어서 10여 명의 이론가 혹은 경향들에 대한 이론근육을 제대로 형성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물론 책을 통해 해당 이론가에 대한 지적 호기심은 자극될 수 있다. 그러나 더 깊이 있는 것을 애써 찾아 읽어보려는 의사가 없는 독자에게는 변죽만 울린 셈이다. 핵심근육(을 위한 기초)은 이 책으로 어느 정도 형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잔근육은 결국 독자의 몫이다. 잔근육까지 형성된 후에라야 이론은 온전한 근육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런 류의 책이 가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이다. 어려운 글을 쉽게, 그것도 방대한 분량을 짧게 한 권의 책 속에 담으면서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한계 말이다. 객관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는 잡기 어렵다.

이 책은 성격상 뭔가 좀 애매한 책이다. 에세이보다는 무겁고 이론서보다는 가볍다. 저자는 대중성을 다분히 의식하고 쉽게 쓰려고 했고 군데군데 주관적인 주장도 하지만, 때로는 주석을 달아 객관적인 글쓰기의 외양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책이 무거워 보이지 않도록 주석을 최소화하고 미주로 돌려서 구성을 심플하게 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글의 출처가 불확실하다. 예컨대 어떤 챕터는 100% 저자의 주관적인 글이 아닌 게 분명한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주석도 없고 출처도 전혀 나와 있지 않은데, 내용을 Wikipedia에서 긁어온 것이 아니라면 주석을 달아주는 게 좋았을 것이다.

 가이드를 통해 인문좌파의 세를 넓히고자 했다면 좀더 쉽게 썼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이 책에서는 이론과 전문용어들이 별다른 설명 없이 쓰일 때가 많고 현학적인 학술 은어도 종종 여과 없이 쓰인다. 아마 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부생(1학년 제외)들이나 최신 유럽철학에 관심과 지식을 꽤 쌓은 소수의 인문학도들에게 가장 유용한 책일 것이다. 때문에 가이드로는 큰 점수를 줄 수 없다. 그렇기는 하지만 일정한 기획 의도 하에 마르크스로부터 시작해서 최신 이론들을 정리한 저자의 노고는 충분히 높이 살 만하다.

이 책은 1990년대 중후반 대학가에서 널리 읽혔던 『철학과 굴뚝청소부』(이하 철굴’) 를 연상시키는데, 그 책과 닮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철굴은 근대와 탈근대의 철학에서부터 구조주의 및 포스트 구조주의 철학까지 살피는 반면, <인문좌파포스트구조주의라 불렸던 이론들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한 경향들을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다.” <철굴은 글의 어투(구어체)라든가 삽화의 조악함에서부터 이미 이 책은 가벼운 책입니다.”라고 웅변하고 있지만, <인문좌파는 가볍게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거워 보인다. <철굴은 과잉단수화를 의도적으로 활용하여 과감하게 객관성을 버리고(?) 저자의 시각으로 이론을 단순화시켜서 독자의 이해를 높이지만, <인문좌파는 객관성의 외양을 (어정쩡하게) 유지하려다보니 글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어디까지가 이론에 대한 객관적 설명이고 어디서부터가 저자의 주관적 생각인지 불분명하다. 굳이 좀더 비교를 더 해보자면, <철굴은 근대와 탈근대라는 일관된 주제 하에 이론들을 어느 정도 직렬적으로 배치했지만, <인문좌파는 이론들의 배치가 병렬적이다. 특히 7장 지젝 이후는 더욱 그렇다. ‘과잉단순화전략과는 거리가 먼 저자의 입장 때문이기도 하고 일관된 타이틀 아래 담기 어려운 현대 철학의 다양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현재적, 잠재적 인문좌파를 타깃으로 삼아 그들을 가이드해주기 위해서 쓰여진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인문좌파임을 자처하는 이들을 가이드하기에 이 책은 지나치게 쉽고, 잠재적 인문좌파로서 이 책을 통해 현재적 인문좌파가 되어야 할 이들을 가이드하기에는 다소 어렵다는 점에서 그 입지가 애매한 책이 되고 말았다. 마치 현대 우리 사회에서 인문좌파의 실체가 아직은 애매모호한 것처럼 말이다.



YES마니아 : 로얄 c*****g 2011.05.14. 신고 공감 5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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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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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 메말라 가고 있는 인문학의 원인은 무엇일까,그것은 한국 사회가 먹고사니즘과 반지성주의의 풍토하에 돈이 되지 않아 먹고 살기에 힘들다는 편견과 사회적인 분위기가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대의 유명한 철학자부터 현대의 일가견을 보여 주고 있는 인문 이론의 학자들을 위시하여 한국 사회도 튼튼한 근육같은 이론을 정립하여 좌파,우파가 아닌 인간의 삶을 보다 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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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 메말라 가고 있는 인문학의 원인은 무엇일까,그것은 한국 사회가 먹고사니즘과 반지성주의풍토하에 돈이 되지 않아 먹고 살기에 힘들다는 편견과 사회적인 분위기가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대의 유명한 철학자부터 현대의 일가견을 보여 주고 있는 인문 이론의 학자들을 위시하여 한국 사회도 튼튼한 근육같은 이론을 정립하여 좌파,우파가 아닌 인간의 삶을 보다 다각도의 관점에서 고찰하고 연구하는 풍토가 쌓여 가기를 희망하면서 이 도서를 읽어 갔다.

 저자는 아무리 이론을 많이 알고 있더라도,실천적인 실행력을 보여 않는다면 쓸모 없는 존재일 것이며,쓸모 있을 것이라는 ’합의’에 도전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고 한다.또한 이론은 익숙한 것들에서 낯선 것을 찾아내는 관점을 뜻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의 이론은 늘 근대라는 문명과 더불어 동서양의 앞선 이론을 모방하고 수입해 왔던게 사실이며 이에 한국 인문학계도 자성론과 주체 이론을 내세워 1990년대초 ’우리’이론에 대한 요구와 더불어 탈식민주의적 글쓰기와 우리말로 철학하기등을 일부 논의와 활동이 있었지만 결과는 미미하고 답보 상태로 빠져 버렸다.

 이론은 기본적으로 언어에 대한 회의를 내포하고 이데올로기 비판을 전제하는데.이것은 문제를 해설하고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새로운 문제를 던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즉 이미 하나의 학설과 정립 이론을 통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유(思惟)의 모험이라고 할 수 있다.

 최후의 철학자가 되어 버린 헤겔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모든 체계는 반체계의 경계가 칸트의 ’시차’를 해결하고자 했던 그의 시도는 철학의 변두리이며 이론의 시대를 예비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내비추고 있는데,슬라보예 지젝과 가라타니 고잔은 고전 철학을 통하여 이론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문제의식을 보여 주고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이론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은 복잡한 거같기도 하지만 이론을 이해하고 자신의 관점에서 재해석을 할 수도 있다. 주관적인 해석에 그치지 않고 객관적이며 깊은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한다.즉 튼튼한 이론이야말로 객관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으로 명명하면서 ’이론의 이론’이라고 칭한 알튀세르에게 철학은 마르크스주의와 동격이었는데,그는 마르크스주의의 변형을 요청했는데 모든 과학적 실천을 보장해주는 절대적 이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론은 모두에서도 말했듯이 각자의 입장에서 비판거리를 만들어낸다고 볼 수 있다.어쩌면 이러한 이론은 과학적 인식보다 정치적 실천에 더 초점을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고 보여진다.

 세계 대전을 거쳐 독일의 선험성이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에는 내재성으로 바뀌고 탈정초주의를 규정했는데 그것은 사회와 정치를 규정하는 근본적인 개념을 부정하는 것이며 고정불변한 것을 우발적인 것으로 대체하는 이론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문좌파는 기존의 정치 지형도에서 합의한 우파와 좌파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주체이며 좌.우파의 이념 모두를 회의하는 독특한 사유의 주체이고 합의된 공동체의 윤리를 의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던지는 역할이 인문좌파의 몫이다.

 들뢰즈의 주장처럼,이런 과정에서 개념은 창조하는 것으로 인식이 되며 필연성에 붙잡혀 있는 우발성을 풀어놓는다는 말이다.사유가 실천이라는
명제가 인문좌파에서는 정당성을 얻게 된다고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에서는 마르크스주의가 대세로 공고화되고 이를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는데,그와 유사했던 한국의 1980년대를 망각하는 것은 성실한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고 저자는 꼬집는다.레지스탕스와 마르크스주의의 득세라는 측면을 볼 때 그것은 실천과 행동을 곧 진리 인식의 기분으로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정치적 견해를 떠나 이러한 공식들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중요한 인식체계를 구성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포스트철학의 인식체계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이는 2008년 광우병 파동으로 전국이 들썩거렸던 촛불 시위에서 보여 주었으며 한국 사회도
새로운 이론에 대한 깊은 사유를 시험받고 있는 것이다.

 이 도서는 1960년 이후 출현한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포스트구조주의라 불렸던 이론들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등장한 경향들을 다루고 있으며 주권과 민주주의,욕망과 주체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으로 보여 진다.

 ’회의하는 주체’를 발견한 데카르트는 기존의 지식체계에서 이루어진 합의를 신뢰할 수 없었고 "야만인도 이성을 사용해서 사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발견에서 사유의 평등을 확인할 수 있다.새로운 이론은 없으며 단지 ’다른’이론이 있을 뿐이며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이론이 나오는 것이다.

 인문좌파라는 용어부터 생경했고 내리 읽어 가면서 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11장으로 이루어진 이론 가이드 속에 각장의 끝머리에 저자의 인문 철학에 대한 단상과 정리,생각을 쉽게 서술해 놓아서 이글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거같다.한국 사회에선 인문학이 찬밥 신세를 받고 있고 인문학을 하려면 확고하고도 용기있는 자세가 필요할 거같다는 생각을 했으며,기존의 이론을 맹목적으로 수용하고 답습하는 자세보다는 하나의 이론에 대한 생각이나 견해를 어떠한 위치,각도,입장에서 바라보는냐에 따라 다른 이론으로도 보여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j******6 2010.09.23.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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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을 경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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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는 <차이>에서 차이와 힘의 연결을 강조하고 있다. 니체를 참조하면서 데리다는 차이를 "제각기 노는 활동적인 불협화음의 힘에게 부여해야 하는 이름"이라고 정의한다. 이 힘은 바로 곳곳에서 "문화, 철학, 과학을 지배하는 형이상학적 문법의 체계"에 대항하는 범주다. -229p           이것이야 말로 인문학이 아닐까? 차이의 연결, 그 연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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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리다는 <차이>에서 차이와 힘의 연결을 강조하고 있다. 니체를 참조하면서 데리다는 차이를 "제각기 노는 활동적인 불협화음의 힘에게 부여해야 하는 이름"이라고 정의한다. 이 힘은 바로 곳곳에서 "문화, 철학, 과학을 지배하는 형이상학적 문법의 체계"에 대항하는 범주다. -229p  
   

 

 

이것이야 말로 인문학이 아닐까? 차이의 연결, 그 연결의 힘을 가진 것. 그게 바로 인문학일 것이다. 폭넓은 사고와 사유를 하며, 머릿속에 다른 세계를 그릴 수 있는 것.  가진 것들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으며,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힘. 어렵지만, 가치있는 그게 인문학이 아닐까? 

 

<인문 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를 보면, 철학자들에게 성큼 성큼 다가갈 수 있다. 마르크스, 프로이트, 하이데거, 사르트르, 벤야민, 라캉, 루카치, 데리다, 랑시에르, 지젝, 바디우.  사실, 겉핥기 식으로 알아온 이들이 대부분이고, 이름만 들었지 그들의 철학에 대해서 모르는 게 다반사였다. 한 줄 한 줄, 되새김질하며 읽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어떤 세계를 아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그 세계를 연결해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에 집중했다. 이론과 실재는 다르다. 하지만, 이론을 알면 또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그것이 이 책이 의미있는 이유다. 모든 철학자들은 혼자, 우뚝 선 것이 아니다. 누군가와 연결 되어 있고, 영향을 받았다. 그게 당연한 것이고, 작가는 그것을 차근 차근 풀어낸다.  


쉽지는 않다. 차근 차근 풀어준다 하여도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 등장하니 그것들을 정리해 나가며 읽기도 바쁘다. 하지만, 그건 분명 의미있는 일이고, 커 나가는 일이다. 

 

 

   
 

 데카르트가 '회의하는 주체'를 발견했던 까닭도 기존의 지식체계에서 이루어진 합의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에게 이런 회의를 안겨준 것이 바로 "야만인도 이성을 사용해서 사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발견이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사유의 평등에 대한 확인에서 근대적 주체는 태어났던 것이다. 새로운 이론은 없다. 다만 '다른' 이론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 - 14p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틀린'이 아닌 '다른' 생각들. 그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물고 뜯고 싸우고, 내 이론이 아니라면 배척하는 사회. 인문학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제대로 볼 힘을 가진다면 넓게 봐야 하지 않을까? 인문학은 변화와 변혁의 힘을 갖고 있다. 충분한 에너지를 가졌지만, 이론으로 끝나는 일도 많다. 하지만, 그 이론을 토대로 변화의 힘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도 인문학 아니겠는가?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여러 가지로 '해석'해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혁' 시키는 일"이라는 마르크스의 말처럼, 우리가 인문학을 놓지 못하는 이유, 당위, 그리고 변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빠질 수 없는 마르크스, 그리고 마르크스 주의. 벤야민과 프로이트. 유물론과 지젝 등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다. 새로운 시각으로 철학자들을 결합해, 새롭게 기획해 풀어낸 이야기들은 기존의 책들과는 다른 방식이기에 흥미를 끈다. 작가의 바람처럼 그렇게 다른 것들이 결합해 새로운 해석과 시각이 보여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벤야민의 이론을 설명했던 <벤야민, 프로이트와 손잡다>라는 챕터가 인상적이었는데,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은 글이 벤야민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벤야민에게 '집단적인 꿈'은 노동계급이든 부르주아지든 모두에게 해당되는 바이지만, 여기에서 깨어나는 것은 오직 프롤레타리아의 몫이었다. 부르주아지는 결코 꿈에서 깨어날 수 없다. 이런 까닭에 '군중'은 호도당하고 가상적인 인식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것으로서, 이런 '집단적인 것'은 단지 외양일 뿐이다. 벤야민은 자유시장경제가 어떤 계급에도 속하지 않는 군중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했고, 전체주의 국가가 이런 군중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벤야민에게 프롤레타리아는 자유시장경제와 전체주의 국가가 진작시키고 이용하는 군중을 종식시킬 수 있는 메시아이다. - 127p

 
   

 

 

노동계급만이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마르크스의 생각과는 달리 벤야민은 혁명적이라는 프롤레타리아의 속성이 아니라 이 속성이 깨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회 구조를 바꾸는 것보다 의식의 구조, 다시 말해서 '주체'를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벤야민의 이론에 동감했다. 그는, 이러한 자기만의 이론을 정신 분석이론에 영향을 받아 구축해 나갔다. 프로이트와 벤야민의 연결이다.

  

이론이 뻗어나가는 방향, 서로의 이론이 영향을 주는 모습을 차근 차근 설명해준다. 가끔은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많은 것을 주고 있으며, 명료하고 집약적으로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에 대한 이론을 정리하고 있다. 이론에 대한 깊은 사유와, 현실 반영을 바라는 작가의 관점도 흥미롭고 즐겁다.  

 

현실을 어떻게 맞서야 할 지, 어떤 사유와 사고, 성찰이 필요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 책이 책으로 남는 것이 아닌, 다른 문을 두드리게 하는 힘을 주었다. 이 책을 통해, 다른 이론의 문을 두드리고, 더 깊은 이야기의 문을 두드리고 싶은 자극을 받았다. 이론이 주는 힘, 작가가 바란 힘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j******e 2010.09.2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인문좌파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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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솔깃해서 집어 들었다가 결국 완독을 포기하고 간단한 리뷰를 쓴다. 다 읽지도 못하고 왠 리뷰냐? 할수도 있겠지만 혹시라도 나처럼 오해를 하고 이책을 집어들 사람이 있을까봐 조심하라는 차원에서 말이지.   첫째, 이 책은 가벼운 책이 아니다. 왠지 가이드.. 하니까 쉽게 다가오지만 내용은 근 현대의 정치, 철학, 사상등을 왠만큼 섭렵하고 있는 고급한 인문학 독자를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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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솔깃해서 집어 들었다가 결국 완독을 포기하고 간단한 리뷰를 쓴다. 다 읽지도 못하고 왠 리뷰냐? 할수도 있겠지만 혹시라도 나처럼 오해를 하고 이책을 집어들 사람이 있을까봐 조심하라는 차원에서 말이지.

 

첫째, 이 책은 가벼운 책이 아니다. 왠지 가이드.. 하니까 쉽게 다가오지만 내용은 근 현대의 정치, 철학, 사상등을 왠만큼 섭렵하고 있는 고급한 인문학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루카치나 기타 등등에 대해 한시간 정도는 토론할 수 있는 내공이 필요하다.

 

둘째, 생략과 내용의 비약이 꽤나 심하다. 독자들이 이미 어느정도 고급한 인문적 교양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시작하는 책이니 만큼 '이정도는 다 아는 얘기니까 생략하고 그래서 어떻게 되는가 하면..' 이라는 식의 서술이 많다. 결국..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 뭔가 얘기를 하는데 뭔소린지 감은 대충 오지만 정확하게는 모르겠구나.. 하며 철학과 정치 경제학을 다시 공부해야 겠다는 의욕을 불태우게 한다.

 

셋째, 인문좌파라는 모호한 카테고리는 누구일까?? 나는 그게 바로 나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사실 인문학에는 소양도 없고 정치적으로는 겉멋든 좌파행세를 한다만 사실은 중도 보수에 가까운 우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결국.. 책을 읽어갈수록 난해한 지식의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문장이 매우 뛰어나고 글쓴이의 인문학적 내공이나 사상을 버무려 서술하는 능력이 매우 훌륭해 보인다.(완독을 못해서 이렇게 말을 할수밖에 없다.-_-;;) 올 여름을 근현대 정치사상과 시원하게 격투해 보리라 생각하신 분에게는 기꺼이 추천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PS : 책의 함량에 미달하는 저질 독자라.. 이런 리뷰밖에 못쓰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d***n 2010.08.0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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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좌파? 그 말이 주는 참뜻이 궁금했다. 책을 통해서 인문좌파는 합의된 사회 속 윤리를 의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던지는 역할을 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문좌파들에게는 이론이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론을 알아야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고 다르게 사유하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읽었지만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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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좌파? 그 말이 주는 참뜻이 궁금했다. 책을 통해서 인문좌파는 합의된 사회 속 윤리를 의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던지는 역할을 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문좌파들에게는 이론이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론을 알아야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고 다르게 사유하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읽었지만 마르크스를 제외하고 이곳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철학자들의 사상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헤겔, 사르트르, 프로이트처럼 이름만 아는 부류도 있지만 루카치, 벤야민, 라캉, 들뢰즈, 아감벤, 지젝, 데리다, 네그리, 랑시에르, 바디우처럼 이름조차 듣지 못했던 부류가 대부분이었기에 솔직히 멀게만 느겨졌다.

 

보통 우리는 인문학을 딱딱하고 이론만 가득 담겨 있으며 실전과는 전혀 무관한 시험을 위한 학문이라고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허나 저자는 따끔하게 이야기한다. 이론은 근육이라고. 이론은 그저 머리에 쌓아만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힘에 대항하고 실천하고 사용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저자의 이 말을 통해 이 책을 어떻게 접근하고 이해해야 할지 준비운동을 마칠 수 있었다.

 

그래도 이 책은 꽤 친절한 편이다. 각 장의 서문에서 해당 철학자에 대해 간단히 개괄적인 설명을 해주고 접근해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어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봐야 하는지 제시해준다. 물론 각 철학자들이 주장한 관념이 대부분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만약 그들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접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사상을 쉽사리 이해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어렵지만 힘써 운동해야만 근육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내 머리 속에 어렴풋이 이들의 전개도가 그려진 것은 이 책 덕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독에 책을 완전히 이해한 것이 아니라서 아쉽지만 누가 말했듯이 이 책은 두고 두고 곱씹어 읽으면 더욱 진국인 책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 한권을 읽으면 왠만한 철학자들의 사상에 대해 파악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이론을 수용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 이론은 수용 자체에서 문제 의식을 새롭게 생산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94p)

 

- 종교는 상징 형식으로 남아서 자본주의 경제에서 충족할 수 없는 결여들을 보완하고 있는 셈이다. 종교가 담당했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로 과학이다. 근대는 한마디로 자본의 세상이자 과학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167p)

 

- 한국의 인문학이 강단 인문주의자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서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할 때가 왔다고 말하는 건 그래서 너무 때늦은 요청에 지나지 않는다.(219p)

 

- 인문학은 사회학과 달리 사회를 경험적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토대로 사회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지 않는다. 인문학의 목적은 사유 그 자체이다.(246p)

 

- 철학의 개입은 이 정치적 주체의 실체를 조사해서 그 해방적 측면을 발견하는 작업이다.( 326p)

h****5 2011.02.0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인문학적인 소양이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게 해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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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 내내 노트에 책에 나오는 글귀들을 적어가면서 이 책 “인문 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이택광 지음/글항아리/2010년 4월)”을 씨름했건만 결과는 처절한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론은 없지만 언제나 이론은 낡은 것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며,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이정표라는 서문 “이론은 근육이다”를 읽으면서는 모처럼 제대로 공부해볼
"인문학적인 소양이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게 해준 책" 내용보기
 지난 한 주 내내 노트에 책에 나오는 글귀들을 적어가면서 이 책 “인문 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이택광 지음/글항아리/2010년 4월)”을 씨름했건만 결과는 처절한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론은 없지만 언제나 이론은 낡은 것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며,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이정표라는 서문 “이론은 근육이다”를 읽으면서는 모처럼 제대로 공부해볼만한 그런 책을 만났구나 하는 지적 호기심까지 들었었다. 특히 기존의 정치 지형도에서 합의한 우파와 좌파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주체이자 우파와 좌파 이념 모두를 회의하는 독특한 사유의 주체가 “인문좌파”라는 작가의 소개에는 우파와 좌파의 이론을 아우르면서 그 것에서 새로운 사유를 끌어내는 새로운 인문학적 조류에 대한 해설을 담은 책으로 부족했던 인문학적 지식을 채울 수 있는 기회겠구나 하는 묘한 흥분까지도 느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의 유효성과 현대적 해석의 변천과정을 이야기하는 서론 격인 제1장을 제외하고는 이름조차 생소한 학자들의 이론에 대해서 다루는 중반부 이후부터는 읽는 내내 작가가 말하는 “인문좌파”적 소양이 턱없이 부족함을 절실히 느꼈다.

 

여기서는 그나마 이해했던 제 1장 “마르크스를 죽여? 살여?”에 대해서 이야기해본다.

작가는 1990년 소련 공산주의 체제 붕괴의 이제는 죽어버린 이론으로 멸시되는 마르크스 주의는 “현실을 이해하고 이를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한 열망이 존재하는 한 여전히 유효”하며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마르크스도 유령처럼 이를 따라 다닐 것”이며 새로운 문제를 인지하기 위한 질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모든 이데올로기는 원칙으로 동등하며 마르크스 주의와 자유주의는 서로 보완적 이데올로기로서 공존할 수 있다고 보며 반공이나 전체주의처럼 다른 이데올로기 자체를 억압함으로써 자기 논리를 확보하는 이데올로기들은 내재적 한계에 부딪혀 스스로 붕괴했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마르크의 가르침은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그 ‘삶의 과정’을 존중하라는 것에 있으며 그러면 우리의 다채로운 이데올로기의 프리즘을 통해 진실에 다가갈 통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를 카메라 옵스큐라(그림 등을 그리기 위해 만든 광학 장치로, 사진술의 전신)처럼 거꾸로 인식되는 현상으로 보고 인간은 인식, 관념 따위의 생산자인데, 오히려 이데올로기는 의식이 우선이고 인간존재가 그 다음일 것 같은 착시현상, 오류의식 이며 물질토대를 만들어 내는 그 존재(인간)만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관념을 통제하고 세게의 변화를 주도하는 존재로 물질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야말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보았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인식이 현대에 이르러 변화하면서 루카치, 칼 코르쉬의 서구 마르크스 주의(신좌파), 경제 토대를 강조한 정통 마르크스주의와 이념의 역할을 강조한 자유주의 철학을 결합시켜 해석한 “그람시”, 이데올로기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 외부에서 그것을 주입시키는 거푸집으로 본 루이 알튀세르, 구조의 개념을 연결되어 잇지만 분절되어 있는 “절합”, 즉 코드화와 탈코드화로 해석한 스튜어트 홀 등으로 발전해간다. 일종의 서론이자 개론인 1장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작가가 설명하고자 하는 “소위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포스트구조주의라 불렸던 이론들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등장한 경향”들의 학자들인 “알튀세르”, “벤야민”, “라캉”, “지젝”, “데리다”, “랑시에르”들의 다양한 이론을 소개하고 비평하고 있는데 인터넷으로 이름들을 검색하고 노트에 정리해가면서 읽어도 결국 이론들의 맥락과 흐름을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이 책에 대한 평점은 박할 수 밖에 없는데  책의 가치가 낮은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좌절한, 작가의 지적 수준에 못미친다는 내 자신의 열등감과 질투심에 의해서일 것이다.

 

 이 책은 인문학적 지식, 특히 1960년 이후 마르크스 주의의 신경향에 대한 이론적 소양이 기본적으로 갖춘 사람들에게는 길라잡이로서의 충분한 역할을 하는 책이겠지만 소양이 부족한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입문 자체부터 어려운 좌절의 책 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좌파 이론에 대한 관심과 새로운 지적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을 유발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일 수 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여러 학자들에 대해서 차근차근 공부하고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묘한 전투의욕(?)을 자극하는 이 책은 앞으로도 여러번 꺼내서 읽어보고 다시 좌절하고 다시 의욕을 불태우면서 하나하나 지적 외연을 넓히는 그런 책이 될 것 같다. 

a*****7 2010.05.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