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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노릇 사람노릇-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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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노릇 사람 노릇』의 책머리에의 첫 문장은 이렇다. '어려운 시기에 책을 내게 되었다.' 2019년 2월에 읽는 박완서의 산문집이다. 어려운 시기라니 어떤 때를 말하는 걸까. 내내 어려운 날들인데. 읽다 보니 작가가 말하는 어려운 시기는 1997년에서 1998년이었다. 온 국민이 부도와 실직으로 힘들어하던 IMF 시기를 전후로 쓴 글이었다. 하루아침에 일하던 직장에서 실직하고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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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노릇 사람 노릇』의 책머리에의 첫 문장은 이렇다. '어려운 시기에 책을 내게 되었다.' 2019년 2월에 읽는 박완서의 산문집이다. 어려운 시기라니 어떤 때를 말하는 걸까. 내내 어려운 날들인데. 읽다 보니 작가가 말하는 어려운 시기는 1997년에서 1998년이었다. 온 국민이 부도와 실직으로 힘들어하던 IMF 시기를 전후로 쓴 글이었다. 하루아침에 일하던 직장에서 실직하고 사는 집은 경매로 넘어가던 때였다. 만화책을 사서 모으던 때였는데 종이값이 올라 더 이상 책을 살 수 없었다. 어른들은 시름에 젖었고 뉴스에서는 연일 주가가 폭락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부자들의 사정은 모르겠지만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져 가던 날에 쓰인 글이었다.


선생은 『어른 노릇 사람 노릇』에서 제목대로 어른의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간다. 노인이 된 삶에서 마주하는 시간의 풍경들이 진솔한 언어로 적혀 있다. 박완서의 글은 어렵지 않은 게 장점이다. 대중을 향한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글쓰기를 한다. 중언부언하지 않고 추상적인 낱말로 독자를 힘들게 하지도 않는다. 연륜이 많은 이의 조언이 필요할 때 선생의 산문집을 꺼내 읽으면 사람 노릇 한 가지는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긴다. IMF라고 하는 듣도 보도 못한 날들에 바쳐진 어른의 글.


선생은 우리가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소설가는 무엇을 할 수 있나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전쟁을 겪고 자유를 몰살 당했던 시기를 살아온 어른의 지혜를 들려준다. 지혜라고 거창하게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이 경험했던 시간의 무늬를 하나씩 꺼내 보여준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섣불리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굳은 고집이 생기면 그대로를 반성한다. 『어른 노릇 사람 노릇』에는 소설가 박완서의 문학적 시원을 만날 수 있다. 어머니의 높은 교육열 때문에 개성에서 서울로 왔고 전쟁이 나고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시간이었다. 화가 박수근을 만나 그가 죽고 그림값이 뛰어 애달파 한, 소설가의 길로 들어서기까지의 과거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힘들었다, 그때는.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과거라는 것이. 그것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심정이다. 교복을 사지 못해 그때 나는 누군가가 입던 것을 물려 입었다. 선생은 모든 것을 최신식으로 바꾸고 늘 새것만 추구하는 작태를 꼬집는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휘둘려 살아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다. 『어른 노릇 사람 노릇』을 읽으며 내가 지나온 과거는 구질구질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내게 인정을 베풀고 자상함을 가르친 어른은 없었다. 과거를 아무리 떠올려 봐도 그렇다. 모두 힘들었으니까라고 여겨보지만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소녀의 옷차림은 초라하지도 사치하지도 더럽지도 않은 그 나이에 맞는 정상적인 거였고, 머리 모양도 약간의 멋은 낸 티가 귀여운, 그 나이의 평균치의 머리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건물로서의 집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따뜻한 대화가 있고, 자유와 구속이 적당히 조화된 가정으로서의 집이었다.

(박완서, 『어른 노릇 사람 노릇』中에서)


손자의 선물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간 소설가는 그곳에서 집이 없는 아이들과 마주친다. 물리적인 집이 아닌 마음의 집이 없는 아이들의 모습에 슬퍼한다. 크리스마스를 즐기기 위해 쇼핑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인파 속에서 선생은 진정한 의미의 집이 없는 아이들을 발견해 내는 것이다. 내가 즐거울 때 누군가는 슬퍼할 수도 있다. 우리는 늘 마음의 그늘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내내 햇빛을 받을 수 없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다. 어른이란 양지 옆에 놓인 음지의 존재를 일러주는 사람이다. 선생은 없지만 그가 쓴 글이 남아 우리를 어른과 사람 노릇하며 살아가게 한다.



s*****m 2019.02.11. 신고 공감 4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