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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를 통한 정체성의 발견 - 서양 르네상스와 김미월의 소설 『여덟번째 방』의 대응을 통해-
벽을 보고 이야기하라. 당신은 지칠 것이다. 서로마 멸망에서 동로마 멸망까지를 일컫는 서양 중세에서의 작가들 역시 벽을 보고 이야기했다. 중세에 인간의 자유의지는 신에게 묻혔다. 하지만 혁명적으로 등장한 인물이 있으니 그는 바로 단테(1265~1361)다. 단테의 소설 『신곡』은 서양 중세시대에 쓰였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특징을 지닌다. 그 특징 중 하나가 자유의지에 대한 작가의 긍정적 평가이다. 여기서 자유의지는 스스로 생각하는 사고를 뜻하며, 작가는 자유의지 만으로 긍정적 이상향에 머무를 수 있음을 제시해 자유의지에 대한 작가의 평가를 알 수 있다. 중세는 종교가 사회적 전반을 아우르고 봉건적 사회제도는 개인을 토지에 귀속시켰다. 그 결과 중세에서 개인의 자유의지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개인은 스스로 사고하는 대신 주어진 일을 수행해야 했다. 하지만 단테는 시대를 거슬러 개인의 자유의지를 높이 평가했다. 김미월의 소설 『여덟번째 방』에서도 자유의지를 탐구하는 두 인물, 영대와 지영이 나타난다. 두 인물은 뚜렷한 정체성 없이 대학에 들어가서 내적으로 적응하지 못하고 고통을 겪는다. 이 때, 정체에 원인은 자유의지 부재에 있었다.
주인공 영대는 꿈이 없다는 이유로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면박을 받고, 소개팅에서 만난 여자가 연락이 없는 것에 괴로워하는 ‘찌질함’ 까지 보인다. 한편 지영은 동급생인 진주를 선망하며, 좋아하는 선배 때문에 개인적 관심도 없이 운동가를 계속 부른다. 두 인물 모두 자유의지가 상실된 채, 방황하거나 수동적인 인물로 전락한 상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작가가 제시하는 두 인물은 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젊은 세대, 특히 20대를 대표한다. 한국의 20대는 주어진 교과과정을 이수하는 고등학교에서 스스로 수업계획을 짜는 대학교로 들어가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간접적으로 만나게 되고 결정적으로 법적으로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많은 학생들이 20대 중반을 넘어가며 자신의 진로를 정하고 취직을 한다. 반면 많은 학생들은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방황을 한다. 바로 이렇게 방황하는 20대를 영대와 지영이 대신한다. 이와 같이 작가는 같은 처지에 맹목적인 삶을 사는 인물상을 제시함으로써 주 독자층을 방황하는 20대로 정하고, 독자들에게 감정이입을 요구한다.
성장호르몬은 20대 중반부터 감소하기 시작하므로 남녀 모두 20세 중반까지는 계속적으로 성장하는 나이다. 즉 가만히 있어도 멈추지 않고 성숙한다. 하물며 소설 속 두 인물 역시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발전을 거듭한다. 작가 역시 두 인물의 내적 성장을 소설의 중점으로 두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작가는 영대의 이야기에 지영의 이야기를 삽입하는 구조를 취했다. 이는 인물들의 발전 모습이 명확히 대비되어 들어날 뿐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극적 흥미를 더한다. 영대는 팬시점에 쫓겨날 정도로 끈기와 집중력이 부족하여 잘리고 꿈이 없는 자신을 비관한다. 또, 좋은 직장을 가진 사람에게서 자신을 비교하여 열등감을 느낀다. 하지만 계기들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자신의 꿈을 다시 한 번 사고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영도 글을 쓰는 활동을 통해 자유의지 표출을 이뤄내고 관이라는 인물과 만나고 헤어지며 과거 맹목적이고 수동적인 자신과 이별을 맞는다.
20대를 거쳐 정체성을 확립을 통해서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영대의 친구 정환은 일류대를 포기하고 스님이 되었다. 지영의 친구 진주는 자퇴를 선언하고 교사라는 새로운 길을 택했다. 또 다른 영대의 친구 현수는 살아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했다. 작가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현수에게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은 진로를 세우는 것으로 간주한다. 영대 역시 진로를 통해 정체성 찾으려 하는데 반해 작가는 살아있는 인간은 이미 정체성의 확립되었다고 말한다. 즉, 이제껏 영대는 오이디푸스처럼 자신을 부정하고 진로를 탐구했다. 영대가 대표하는 많은 20대들도 그렇다. 하지만 작가는 이미 인간은 정체성을 가진 고귀한 존재이며, 자유의지를 통해 발견하기를 바란다. 이는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결말에서 지영은 방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했고, 영대 역시 현수의 말을 곱씹으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소설 제목에서 의미하는 ‘방’이란 무엇인가. 소설에서 방은 단순히 사고 팔리는 재화가 아니다. 작가는 방을 인물의 입체적 변화에 배경으로 삼았다. 많은 방 중에서도 하숙방, 자취방, 옥탑방 등을 선택하여 고향이 아닌 타지에서 생활하는 20대의 불안한 심적 가중을 더했다. 따라서 독자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더한 것은 물론이다. 영대의 잠만 자는 방은 몸을 구속했지만 사색을 도왔다. 또 방이 바뀌는 과정에서 지영의 일기장을 발견해 읽고는 자유의식이 발현된 계획을 실천하기로 마음먹는다. 한편 지영은 무수히 많은 방을 거친다. 때로는 실연과 기울어져가는 집안 사정 등이 많은 이유로 방을 옮긴다. 방에서 있었던 일은 지영에게 항상 달가운 것만 아니었다. 하지만 지영은 자신이 과거 머물던 방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방과 함께 성장하였고, 원래부터 자신은 그 자체로 자유의지를 가지며 정체성을 확립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아니, 그냥 말없이 먼저 안아 주기부터 해야겠다. 너는 참 평범하고 보잘것없지만 세상에 오로지 하나뿐인 존재라고. 그러므로 결코 평범하지도 않고 보잘것없지도 않다고. 너는 내 소설의 주인공이며 내 세계의 주인이라고. 그런 이야기는 구태여 해 주지 않아도 되겠지. 초인종을 누르기 위해 나는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p.227.)
서양 르네상스에는 작가의 자의식이 제고되어 많은 작품 속에 반영됐다. 중세의 작품은 종교적 목적에 작품에 자신은 없고 신과 신화 속 인물이 등장한다. 반면 르네상스 작가들은같은 종교적 작품을 만들더라도 작품 속에 자신을 투영했다. 또한 작가의 이니셜을 작품에 새기며 자의식을 끌어올렸다. 중세 네덜란드 태생의 얀 반 아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은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기에 그려졌다. 이 그림 역시 단테의 소설처럼 중세의 작품이지만 르네상스의 특징을 지녔다고 평가 받는다. 그 특징 중 하나가 작품 속 결혼하는 인물 뒤 편 거울을 통해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 자신이 등장하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김미월의 소설『여덟번째 방』에서도 소설 제목과 같은 ‘여덟 번째 방’이라는 책이 등장한다. 책은 주인공의 실연을 의미하지만 별개로 소설의 제목이 책 속에 등장하는 것은 작가의 자의식이 소설 속에 그대로 표출 된 결과이다. 얀 반 아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 ⓒ The National Gallery, London
작가는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여덟번째 방』의 방황하는 현 시대의 젊은이들을 잘 묘사했다. 그리고 인간으로의 정체성은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 사고하는 자유의지가 부재되어, 이를 발견하지 못해 안타깝게 여기는 작가의 시선이 잘 드러난다. 하지만 일련의 계기를 통해서 작가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기대 역시 저버리지 않는다. 진정한 행복이란 자유의지를 통해 인간의 존엄적인 고귀함, 바로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조언도 역시 젊은이들에 대한 기대의 반영 이다. 흥미로운 점은 일련의 계기들에 작가의 경험이 반영 된 점이다. 작가 역시 한국의 20대를 이미 겪은 세대이며, 많은 방황을 했다고 책의 말미에 밝혔다. 그리고 자신이 살던 방을 통해 과거 자신의 조각들을 발견 했다고 언급했다. 그 까닭에 작가의 자의식이 소설 곳곳에 드러났다. 덧붙여 소설은 르네상스의 사고와 많이 접한다. 그 기저 역시 억눌렸던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무한한 존엄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발전하려는 작가들이 의도에 있다. 독자가 그러한 의도를 간파하며 작가의 자의식에 공감한다면, 소설은 독자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들여다보는 매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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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이다. 자정을 향해가는 시간. 보름달을 볼 수 없다. 다만 美月, 아름다운 달이란 이름을 가진 작가의 첫 장편소설 <여덟 번째 방>을 읽으며 아쉬움을 달랜다. '방' 혹은 '집'을 제재로 삼은 소설들은 많았다. 하지만 이토록 '방'을 통해 한 존재의 삶을 추적하는 소설은 처음이다. '살면서 많은 방들을 거쳐 가듯, 사람들과도 숱하게 만나고 헤어지고 또 서로를 잊어가며 살게 되리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P125)
<여덟 번째 방>은 방에 대한 소설이다. 정확히는 이사에 대한 소설이다. 25살, 군 제대 후 휴학 중인 오영대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의지로 살아본 적 없고, 꿈이 뭔지도 모르고 살던 그가 좋아하던 여자 선배에게 차였다. 나름 깨달은 바가 있어 인생 최초로 독립을 시도하며, 지하 단칸방 '잠만 자는 방'에 들어간다. 거기서 우연히 전 세입자가 남긴 박스를 발견하고, 그 안에 들어있던 연습장 뭉치를 읽게 된다. 그것은...
서른 살, 김지영이란 이름의 여자가 '여덟 번째 방'이란 제목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써놓은,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이었다. 3인칭 시점의 오영대 이야기와 1인칭 시점의 김지영 이야기가 얽히면서 <여덟 번째 방>의 서사가 이어진다. 전 세입자와 현 세입자, 여덟 번째 방을 지나 아홉 번째로 지하 단칸방을 지나간 여자와 갓 독립을 선언한 남자, 90년대 중반 대학생이었던 여자와 2000년대 중반 대학생인 남자... 시대적 간극과 삶에 대한 태도가 극명하게 갈리면서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특히 김지영의 이야기는 내내 나를 과거로, 과거의 방으로 이끌었다. 난 단 한 번도 '내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 전라도 광주에서 사글세를 살던 부모님이 날 낳고, 찢어지는 가난 탓에 광주 일대만 10곳 이상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내 기억이 형체를 잡아가기 시작한 때는 강원도 거진에서 살 때이다. 그때도 군인 관사에서 살았었다. 그곳에서도 2곳 이상 옮겨 다녔다. 바다에 대한 향수보다는 산속 오솔길을 한참이나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추레한 관사가 지금도 뇌리에 가득하다.
그리고 경북 예천이란 무지막지한 동네에서 오랫동안 살았다(여전히 이곳은 진저리가 나는 곳, 동네다). 물론 그 곳에서도 3번 이사를 했고, 단 한 번도 전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고등학교 기숙사 시절을 거쳐, 대학에 입학해서는 공군 자녀 기숙사(대방동 소재)에서 2년을 보냈다. 군대를 다녀온 후 기숙사에 잠시 머물다 졸업반이 되어서는 학교 정문 근처에서 하숙을 했다. 다시... 졸업한 이후 화곡동에 있는 여동생 집에 얹혀서 1년을 살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 곤지암에서 2년을 보냈다.
직장생활을 제대로 하기 시작할 즈음, 지금의 신당동에 정착을 했고... 아니 신당동 일대에서 2년마다 이사를 했고, 지금의 반전세 집에서 4년째 살아가고 있다. 휴우... 숨 넘어간다. 많이도 옮겼고, 정착이란 걸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삶의 연속이었다. 주민등록초본을 떼어보면 그 사람 삶의 이력이 드러난다고 했던가? 아주 오래 전이지만 나의 초본 상의 거주지는 A4로 3장을 훌쩍 넘어간다. 과연 지금 머물고 있는 이 방(집)은 내게 몇 번째 방(집)일까?
김지영의 이야기처럼 '집>방'이 아닌 '집=방'이란 등호가 내겐 정확하게 맞는 개념이었다. 그래서 주위 지인들 중에 태어난 집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결혼과 함께 독립한 친구들을 보면 부러움과 동시에 신기한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한 곳에 머물며 살아갈 수 있는지 말이다. 지금도 자기 집을 꾸민다며 인테리어를 들먹이는 사람들을 보면 한없이 부럽다. 비단 나만 그렇진 않겠지만, 정주하는 삶과 부박한 삶에는 큰 차이가 있다.
서울 하늘 아래, 여전히 난 유목민이다. '소유' 개념으로서의 내집은 고사하고, 전세, 월세를 떠나 안온한 '쉼'으로써의 집도 가져본 적이 없다. 늘 불안한 삶. 언제 비워줘야 할 지, 또 얼마나 월세니 전세를 올려줘야 할 지 고민하며 사는 삶. 어쩌면 서울 땅을 밟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궤적으로, 일정한 궤도로 움직이는 건 아닐까? 평생 지상의 방 한 칸 자기 것으로 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는 궤도 말이다.
<여덟 번째 방>에 등장하는 김지영의 이야기. 많은 부분 나의 대학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Movement로써의 운동이 거의 시효를 다해갈 즈음 입학을 해서, 그속에 편입되지도, 그렇다고 열심히 학업에 충실하지도 않은 어정쩡한 주변인으로 살았던 나다. IMF를 군대에서 맞이하고 복학한 대학 캠퍼스는 185도 이상 달라져 있었다. 늘 떠돌기만 했던, 리어카 한 대에 모든 짐을 다 부릴 수 있었던 단촐한 삶. 하루하루 살아내기 바빴던 당시, 급격하게 달라지는 환경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넋놓고 울음을 터뜨린 적도 많았다.
그렇게 살아온 삶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 집이 바뀌고, 방이 달라질 때마다 내 삶은 급격하게 바뀌어만 갔다. 어쩌면 지금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성격은 오랫동안 옮겨다녔던(다녀야만 했던) 상황이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언제든 떠나야 하는 자. 한편으론 그래야 했기 때문에 악착같이 지금의 공간에 함몰되어 다른 공간과의 관계 맺음에 서툰 지도 모르겠다. 떠나기 싫어하는 자.
김미월 님의 <여덟 번째 방>은 여러모로 내 감성에 하염없이 비를 뿌린다. 성에가 낀 유리창 밖으론 빗방울이 쉴 새 없이 날아드는 형국이랄까. 마치 한여름 폭우에 무릎까지 물이 차올랐던, 2000년의 여름, 반지하 하숙집이 생각난다. '꿈이 없는 자, 왜 살아야 하는가'란 의문을 25년간 품고 있던 오영대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일 터. 그럼에도 김지영의 삶과는 또 다른 층위의 아픔이 오영대에게도 있다. 88만원 세대의, 꿈과 희망을 거세당한 채 한줄기 빛도 안드는 눅눅한 지하 단칸방에 몸을 뉘여야 하는 청춘들. 그들의 초상을 약간이나마 대변하는 것이 오영대의 그것이다.
두 세대가 만났다. 90년대 중반과 2000년대 중반은 스무 살 시절의 기억을 180도 다르게 만든다. 확실한 건 두 세대를 포함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스무 살의 추억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다. 나이만으로도 가장 빛나야 할 시기인데, 대부분의 청춘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집을 나서고, 방을 떠나오며 또 다른 삶을 향해 간다. 평생 몇 개의 방을 지나쳐야 꿈과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고, 행복이란 걸 이룰 수 있을까?
창문을 열어본다. 아름다운 달은 끝내 보지 못하나보다. 그럼에도 김미월 님이 <여덟 번째 방>을 통해 내게 선물한 게 하나 있다. '당신만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대충 참고 살아요'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머물고 있는 곳이 어떤 방이든, 어떤 집이든 당신을 설명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긴 곳이랍니다'라고. 그래서 그 공간을, 그 속에서 함께 숨쉬며 살아가는 가족과 행복을 꿈꾸라고.
김미월 작가의 새로운 소설집 <아무도 펼쳐보지 않은 책>의 기조가 벌써부터 그려진다. 예전 <서울동굴 가이드>에서도 느꼈지만, 그녀의 소설은 뭐랄까 '쓸쓸하면서도 따뜻하고, 밋밋하면서도 단단하며, 쉽게 쓰면서도 어렵게 읽히는' 만만치 않은 거대한 책처럼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아홉 번째 방을 지난 김지영과 갓 지하 단칸방에서 삶의 모반을 시도하고 있는 오영대의 앞날에, 작은 빛 하나 나려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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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많은 방들을 거쳐 가듯, 사람들과도 숱하게 만나고 헤어지고 또 서로를 잊어가며 살게 되리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어느 한 시절 자신에게 굉장히 중요했던 사람을 평생 동안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정말 친했던 사람과 아무 이유 없이 멀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스무 살 시절에는 내 주위의 사람들이 내 세계의 전부라고 믿었고, 그들과 평생 연락하고 만나며 지내게 될 줄 알았다. 내가 이 거대한 책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잊고서, 주인공이 모든 등장인물들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가는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망각하고서 말이다. -P125
냉장고 속처럼 춥고 좁은 옥탑방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다. 그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래 봐야 겨우 한 줄이잖은가. 1년은 365일이고 10년은 3650일이지만 지나고 나면 모두 한 줄일 뿐이지 않은가.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녀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런 식으로. 그 짧은 문장 속의 허무가 나를 위무했다. 물론 그렇게 여긴다고 문제가 당장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잠시나마 현실을 잊을 수는 있었다. 그 잠깐의 평안을 위해 나는 고농축 체념으로 조제된 '어차피 한 줄' 진통제를 즐겨 복용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지. 모든 것은 지나가게 마련이니까. 생각해 보면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막연한 앞날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P182~183
내 추억 속의 낡은 방들, 잘 있을까. 이왕 옛 방을 찾아 나선 김에 그곳들을 모두 한 군데씩 순회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과 방을 잇는 길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 길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까. 나는 상상해보았다. 옛날의 방들을 다시 찾아간다면 그곳에서 옛날의 나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그 시절 무수히 내 옆을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도 다시 만나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러면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의 내용도 훨씬 더 풍성하고 다채로워질 텐데. -P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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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잠시 다니러 온 이방인이란 생각을 다시 들게 만드는 책이었다. 꺄뮤의 이방인을 읽고 사색에 잠기던 시절이 있었지 이 소설은 내가 정말 오랫만에 만나는 소설이다. 아뉘 최근 몇권 읽기는 했으나 정말 몇년만에 만나 본 색다른 스타일의 책이었던것 같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책을 접하면서 재목을 생각하며 책 내용과 재목, 그리고 나 그렇게 연결 고리를 생각해보곤 했다.
나의 여덟번째 방은 어디지? 20대에 자취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런 감정을 잘 모르지 싶다. 텅빈 방안의 어둠과 나만이 공존하는 공간 그리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아무도 나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타향살이 가족이 없는 타향에서의 홀로됨은 외롭다 못해 무서울 수도 있는 상황이다. 내가 예전 사업차 중국에 갔을때가 떠올랐다. 말한마디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 혼자 호텔보다 나을것 같아 무상으로 재공해주는 오피스텔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렀다. 그 오피스텔 내가 묵었던 층은 한쪽은 사무실용도지만 그 지역 특성상 오후 6시가 되면 모두 퇴근하고 밤이면 완전한 적막, 접대용 손님들을 위한 층이라 당시 혼자 그 층에서 잠을 잤다 복도에 등도 없이 그저 밤이면 피씨방에서 업무를 보고 혼자 들어와 자고 조선족 애가 아침에 커피와 먹을 것을 가지고 찾아 오면 문을 열어 주었었다.혼자라는 것이 빼저리게 외롭다 못해 무섭다는 것을 처음 맛 보았다. 잊고 있던 그 출장기간을 생각하게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이 책에서의 등장인물들이 조금은 어지럽게 했지만 읽다 보니 대충 정리는 되었다. 주인공 오영대, 소개팅에서 만난 김지영, 김지영의 어머니 오영대, 책속의 책주인 김지영.. 중요인물들의 약간은 억지 같은 인물전개지만 나름 재미있는 설정이었다.
스프링 노트속의 김지영이 살던 마당에 수돗가며, 칼라티비를 흑백으로 보시면서 끝내주는 흑백이 좋다는 할머니, 우리사는 세상이 온통 칼라풀한데 텔레비전 하나쯤은 흑백세상이라도 괜찮지 않냐는 할머니가 왠지 외로워 보이면서도 자기만의 세상을 가진 그분이 부럽다. 술마시는 인간은 절대 결혼해선 안된다며 술을 완전 마약 취급하시는 할머니가 멋있다. 솔직히 나도 술을 너무 싫어한다. 증오한다. 술 마시고 하는 말과 행동은 절대 듣기도 싫어 하니까 나도 아마 나이 들면 그 텃밭달린 마당의 주인 할머니처럼 살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지영의 고향집 서점, 바닷가 횟집이 아닌 서점 그 서점 주인딸과 그의 어린시절 동무였던 아이와의 추억 그리고, 그 추억과의 재회 첫사랑은 나이 들어 안 만나는 것이 더 좋다는 말이 떠 올랐다. 특히 30~40대 학창시절 첫사랑을 만나면 모두 실망하고 후회 할 가망이 많기 때문에 그저 추억에 묻어 두고 가끔 꺼집어 내어 보는 것이 좋다고들 한다. 지영의 많은 아픔이 묻어 있는 책이다.
영대와 지영의 두 시선에서 볼수있는 20대의 청춘을 볼수있는 책이다. 고독과 열정, 그리고 장래와 희망 모든것이 특별한 사람이 아닌 아주 평범하고 보통인 남녀의 눈으로 보여준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출근길에 여러번 지하철 정류장을 지나쳤다. 오랫만의 삼매경이어서 행복한 일주일 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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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면 작가가 좋아지는 책. 작가를 만나보고 싶어지는 책. 바로 <여덟 번째 방>이 그랬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행복했다. 가슴이 따뜻해졌다고 할까나. 그만큼 아름답고 애틋하고 정겨운 작품이었다. 앞으로 나의 베스트 도서 목록에 들어갈 것이다. 스무 살 시절에는 나도 그랬다. 내 진짜 꿈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꿈을 꼭 가져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 지점을 김미월은 보잘것없는 청춘들을 내세워 아주 정확하게 짚어냈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영대가 되었다가 지영이 되었다가 했다. 감정이입이 너무 잘 되었던 것이다.
이것도 결국엔 한 줄일 뿐이야.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지. 에계, 고작 한 줄이라니까. 냉장고 속처럼 춥고 좁은 옥탑방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다. 그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래봐야 겨우 한 줄이잖은가. 1년은 365일이고 10년은 3650일이지만 지나고 나면 모두 한 줄일 뿐이지 않은가.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녀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오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런 식으로. 그 짧은 문장 속의 허무가 나를 위무했다. 물론 그렇게 여긴다고 문제가 당장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잠시나마 현실을 잊을 수는 있었다. 그 잠깐의 평안을 위해 나는 고농축 체념으로 조제된 ‘어차피 한 줄’ 진통제를 즐겨 복용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지. 지금 이 순간을 돌이켜 보며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겠지. 모든 것은 지나가게 마련이니까. 생각해보면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막연한 앞날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어차피 한 줄" 진통제. 이런 게 진짜로 있었으면 좋겠다. 삶이 힘들 때마다 한 알씩 복용하고 웃을 수 있게 말이다. 이렇게 위로가 되는 따뜻한 소설을 읽게 해주어서 김미월 작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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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보름쯤 여행을 간다고 가정해 봐라. 배낭을 꾸리다 보면 네가 살아가는 데 진짜로 필요한 것들이 뭔지 알게 될 것이다." (p.38)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 스스로 살아가고자 편안한 집을 떠나 지하방으로 이사온 남자, 그에게는 그 방이 인생의 첫번째 방이다. 그럼 나는 지금 몇번째 방에서 살고 있을까? 글쎄다. 계산하기 힘들만큼 많은 방들을 지나왔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한낮에도 작은 빛조차 들지않는 어두운 방에 월세가 저렴하다는 이유와 옆방 아가씨가 이쁘다는 이유로 들어와 살게 된 총각 영대, 이 세상에는 그런 이유로 눌러 붙어버린 수많은 영대가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의 첫집이 갑자기 떠오른다. 나도 단칸 지하방에 월세로 세들어 살았다. 왜 잊었을까? 없었던 일인양 그동안 잊고 살아왔다. 그 방이 지금 다시 머리속에 추억속에서 되세김질을 시작했다. 네 꿈은 뭐야? 스물 다섯살 총각에게 묻는 질문으로 적당한가? 그럼에도 영대가 짝사랑했던 선배는 그렇게 그에게 질문했다. 그리고 꿈이 없는 네가 답답하다고 그래서 싫다고 그녀는 영대의 사랑이 눈에 보였나보다. 그러니 그런 질문과 답변을 던져넣은 것이겠지. 그냥 물 흘러가듯 살아가면 안되는 일일까? 그렇게 살고 싶은데, 그런데 그 질문이 내 가슴에도 들어와 박혀 버렸다. 내 꿈은 무엇이지? 지금까지 딸의 꿈(장래)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꿈은 꾸는 동안에 행복한 것이라고 되뇌이면서도 어느새 꿈을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내 꿈도 소중한 것을 잊고 살아왔다. 영대의 길에 나도 동행하면서 내 꿈을 찾아봐야겠다. 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영대에게는 첫번째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여덟번째 방인 그곳에서 발견한 노트 한권, 그 첫 장에 쓰여진 글이다. 그곳에 쓰여진 수많은 글들을 읽어가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노트 주인의 이름은 김지영, 나이는 서른살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쓰여져 있다. 한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라고 할까? "넌 주관이 없어. 뭐든지 남이 하라는 대로 하고, 그것도 금방 포기해 버리잖아. 니가 아직도 고등학생인 줄 알니? 니 인생에 좀 더 진지해져 봐. 본인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스스로 찾아야지. 인생은 남이 대신 살아 주는 게 아니니까." (p.84) 그래 인생은 남이 대신 살아주지도 살아 줄수도 없는 거지! 그렇지만 인생 뭐 있어. 그냥 물흘러가듯 살아가지는게 인생 아닐까? 그것이 평범한 인생 그 자체잖아. 책을 읽는 동안 그녀가 거쳐온 방들이 생각났다. 빛나는 이십대를 거쳐 삼십대에 오는 동안 거쳐왔을 그 방들이, 그리고 지금 영대가 살고 있는 방을 거쳐 아홉번째 방에 들어선 그녀의 모습이 왠지 상상이 되었다. 그녀는 알고 있을까? 그녀가 쓴 일기장이 지금 영대의 손에 들려져 읽히고 있음을 혹시 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리고 석이라는 친구는 그녀와 어떤 관계일까? 자꾸 상상이 된다. 그녀를 만나러 간 스물 다섯살의 영대와 서른 살의 처녀 지영은 연인이 될수 있을까? 그것도 나의 무한한 상상속에 들어 있는 말일 뿐이겠지. 처녀 총각이기에 엮어주고 싶은 아줌마의 단순한 애교심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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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청춘의 한 고뇌의 시기를 보내고 있기때문일까...청춘에 관한 책들이 유난히 눈에 띄고, 그런 책들 위주만 찾아서 읽게된다. 나와 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는, 보냈던 사람들의 관한 이야기를 통해 공감거리와...그 속에서 내가 현재 안고있는 문제의 실마리를, 해답을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갈망하며 이런 책들에 자꾸 파고들게 되는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그런 갈증을 덜어준 고마운 책이였다. 이 책은 20대 청춘을 지났거나, 지나고 있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과거 청춘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현재 청춘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 속에는 두 명의 대학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 너무나도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어느 곳 하나 특별하다거나 잘난 구석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저 소심하고 무기력하기 짝이없는 젊은이들일 뿐이다.이 책은 그런 별 볼 것 없는 20대 젊은이들의 애달픈 성장통을 그린 소설이다 그 방은 전단지에 나와있던대로 잠만 잘 수 있도록 만들어진 비좁은 골방이였다.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비좁은 지하방에서 낮이 밤인지 밤인 낮인지 모른 채 어영부영 시간을 보낸지 며칠이 지났을 무렵, 영대는 이사온 후 방치해두다시피한 자신의 짐 상자를 뒤적이다가, 방 전 주인이 놓고 간 노트더미를 발견한다. 영대는 별 생각없이 노트를 펼쳐보게된다. '여덟번째 방' 이라는 제목을 가진 노트는 마지막장까지 글씨로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 노트들은 김지영 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자신이 그동안 거쳐갔던 방들에서 보냈던 청춘의 기록이었다. 영대는 김지영의 노트를 통해서 그녀의 청춘을 엿보게 된다.
해변마을에서 나고 자란 서점집 딸 김지영은 대학생이되면서 처음으로 서울에 상경한다. 그녀는 삼촌집에 문간방을 시작으로 대학가 하숙방으로 하숙방에서 단칸셋방으로, 셋방에서 옥탁방으로 옥탑방에서 반지하 골방, 원룸에서 또다른 방으로 여덟번의 방을 옮겨 다닌다. 방을 옮겨 다니는 동안 다양한 일들과 인연들이 그녀곁을 스쳐지나간다. 선배를 짝사랑하는 마음에 운동권에 가담했던 일, 하지만 하나뿐인 단짝친구가 선배와 사귀면서 외톨이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집안형편이 어려워지면서 학교다니기가 어려워지기도하고, 꿈도없고 원하는 것도 없는 자신의 보잘 것 없음에 괴로워하기도 하며 그녀는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환희와 슬픔, 청춘의 단맛과 쓴맛을 고루 경험한다. 그렇게 방을 옮길 때마다 그녀는 청춘의 역사를 만들어가며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감정이입을 많이했다. 책속 주인공과 같은나이인 것도 그렇고, 이들과 다를것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딱히 특별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릴때부터 꿈이 생기는게 꿈이였을정도로 그 흔한 꿈마저도 없었으니. 읽는내내 정말 내 얘기를 하는 줄 알았다. 너무 신기해서 '어라? 이거 내 얘긴데' 하며 얼마나 많은 공감을 하며 읽었는지..줄어드는 페이지가 다 아까울 지경이였다.그동안 내가 찾고 찾던 굶주려있던 책이 바로 이런 책이였다. 정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위로를 받고 싶었다. 이렇게 적합한 타이밍에 이 책을 만난 건 행운이라고 생각이 든다.
누가 읽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거 같고, 특히 우울하고 무기력한 청춘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인 거 같다. 책을 읽으면서 '완득이' 라는 소설이 생각이 났는데.. 완득이 재밌게 읽은 사람은 이 책도 분명 좋아할 것 같다. 그리고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도 자꾸 생각이 났는데... 배경음악으로 틀어놓고 이 책을 읽으면 엄청 리얼하게 읽힐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ㅋㅋ 암튼 남얘기 같지 않아 공감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것 같다. 책 속 영대와 지영을 통해 그동안 기피하려고만 했었던 문제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지금은 아무 보잘것 없는 청춘이라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아직 살아있고, 이대로 끝은 아니니까..언젠가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그 날을 기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방들을 역순으로 되짚어 올라가다 보면 마침내 스무 살 시절의 나 자신과 조우할 수도 있으리라. 그때가 그리운 것인지 어떤 것인지 지금의 내 심정을 잘은 모르겠으나, 그때의 나를 만나면 할 말이 무척 많을 것 같기는 하다. 일단은 안부 부터 물어야겠지만. 아니, 그냥 말없이 먼저 안아주기부터 해야겠다. 너는 참 평범하고 보잘것없지만 세상에 오로지 하나뿐인 존재라고. 그러므로 결코 평범하지도 않고 보잘것없지도 않다고. 너는 내 소설의 주인공이며 내 세계의 주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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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좋아하고 즐겨 읽는 작가도 있고 선호하는 분야도 있다. 또 신간서평들을 보고 책을 고르기도 한다. 하지만 서점에서 낯선 책들을 대할 때 내 눈길을 끄는 건 단연코 표지라고 할 수 있다. 여덟 번째 방의 표지는 책의 내용을 전혀 모르는 내게 그다지 어필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어필하지 못한 게 아니라 미간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런데 웬 걸! 책장을 열자마자 내겐 생소한 작가 김미월의 문장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오랫동안 굶주렸다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잘 차려진 잔칫상을 받은 것처럼 허겁지겁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느리게 책 읽기' 세계 챔피언쉽이라도 있으면 참가했을 법한 나를 단 몇 시간만에 작가의 글까지 달리게 했던 '여덟 번째 방'. 읽는 동안 나는 박장대소하기도 했고 킥킥대기도 했다. 미소짓기도 했고 가슴이 뭉클하기도 깊은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희노애락을 모두 느끼게 하는 책이지만 어느 한 구석 과장되거나 억지스럽지 않다. 대각선으로 누워야만 다리를 펼 수 있는 '잠만 자는' 방에서 생애 최초로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독립을 시작한 영대. 우연히 뒤바뀐 이삿짐 상자 속에서 스프링노트 일곱 권을 발견하면서 영대의 불면의 날들이 시작된다. 스프링노트에 빼곡히 쓰여진 '여덟 번째 방'이라는 제목의 글은 주인공이 되기엔 너무 평범하지만 해피엔딩이 될 운명을 가진 소설의 주인공이 되기로 결심한 지영의 일기이자 그녀의 삶을 그려낸 자전적 소설이다. 서른 살의 지영이 여덟 번째 방에서 아홉 번째 방으로 이사하면서 소설의 소설은 시작된다. 서른 살의 그녀는 자신의 지난 집이자 방을 차례로 둘러보며 스무살로 돌아간다. 그 추억의 길에는 그녀의 소녀시절 첫사랑 관과의 재회와 이별,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친구 진주, 오해에서 시작해 짝사랑으로 끝을 맺은 시호오빠와 민중가요에 얽힌 얘기들이 흩뿌려져 있다. '화자' 영대는 자신의 삶에서만큼은 주인공이려고 노력했던 김지영의 '독자'가 되어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돌아본다. 언제나 거절보다는 수락이 쉬웠고 수락보다는 포기가 쉬웠던 영대는 김지영의 '여덟 번째 방'을 끝까지 읽어냄으로 독자로서의 의무를 다한다. 수재였던 모범생 친구 정환은 진짜 인생을 찾아 출가한다. 각자 자신의 인생의 해피엔드를 향해 방향을 조정하고 장애물에 걸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 나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평범하다. 아니, 평범해 보인다....중략... 그러나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액자를 뒤집어 보자...중략... 지금 우리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저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연을 뉘라서 알겠는가, 액자의 뒷면을 궁금해하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25-26쪽) 액자의 뒷면을 들여다볼만큼 나 자신의 삶에 애착을 가지고 살고 있었는지 질문하는 나를 발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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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통복동-압구정 현대아파트(고모)-신정동(외할머니)-도봉친구네-평택 통복동 아파트-하남 덕풍동-서울 상일동-서울 성x동 내가 살아왔던 집들이고, 순서를 따져보니 저렇다. 흥미롭게도 나 또한 현재 살고 있는 집이 책 제목과 동일하게 8번째다. 그 점이 묘하게 반가운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8번째 '집'이 아니라 8번째 '방'이다. 아무래도 내 집이라고 여기기엔 대체로 남의 집을 거쳐간 거라 개인의 공간으로 보기엔 거리감이 있어서가 아닐까? 방이란 공간이 집보다는 훨씬 개인적이고 아늑하며 사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제목은 <8번째 방>이 더 적격이지 않겠나 싶다.
이 책은 한 대학생이자 젊은 남자가 단칸방을 구하는데서 시작한다. 구경으로 넘기려다가 묘하게도 옆 방 여자의 미모를 보고 덜컥 계약하기로 한다. 그러나 월세금액만큼이나 비위생적이고, 불편한 모든 것을 갖춘 방은 읽는 독자마저 그 집을 나오라고 하고 싶을 정도다. 그러던 참에 영대는 거기서 몇 권의 책(노트)을 발견한다. 영대가 그 노트를 읽게 되면서부터 영대와 노트 저자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는 것으로 전개된다. 그 이야기는 20대 젊은이들의 현실과 한계, 그리고 방향을 향한 고뇌등을 적랄하게 드러냈다. 일상이 사물과 어우러져 인물의 처지와 감정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그런 세세한 소재들과 인물의 내면표현이 상당히 몰입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20대 때 어쩌다 하게 된 생각들, 경험들을 작가가 내 대신 다 적어준 것 같다.
여기서도 그 유명하디 유명한 김지영이 나오는데 일기장책을 적은 젊은 여성이다. 인물도 빼어나지 않고, 학벌도 좋지 않다. 상대도 내 감정과 같으리라 여겼던 건 착각이었고, 짝사랑이었다는데서 실연의 아픔을 느낀다. 더 최악인 것은 지영의 친한 친구 진주와 연인이 된다는 것. 더불어 시대가 변하며 부모님의 일들 또한 쇠퇴기를 맞는 것을 바라보는 비참함과 회피의 모습, 학교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답을 찾지 못하고 책에 빠져들어 치열하게 읽고 쓰는 모습. 젊은 여성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젊음의 과정들을 담아낸 듯 하다. 그런 희망이 없을 것 같은 삶에서 과거의 방들과 조우하게 되면서 그는 자신을 자신의 책의 주인공이라고 위로를 건낸다. 그러한 모습이 (내가 20대는 아니지만) 그냥 지나쳐지지만은 않는다. 또다른 주인공인 영대에게조차 작가는 편안한 20대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를 실연남으로 만든 질문 "넌 꿈이 뭐야?"로 시작해서 마지막 여자한테까지 "꿈이 없는 것도 사람이야?"라는 듣게 함으로 연애의 작은 희망마저 짓밟아버렸다. 세상에서는 한 젊은 남자에게 외모, 학벌, 직장 등을 '꿈'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집약해 기대하는데 그 기대치는 영대에게 높다. 그는 그런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 인물이다. 주변의 분위기와 상황에 휩쓸려 그 나이까지 살아온 그는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그에게 희망은 있다. 바로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열악하지만 그에게는 첫번째 방의 스타트를 끊었다고 의미를 부여함으로 그만의 삶을 만들어갈 것을 응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두 주인공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겠지만, 사실 그 긍정적인 메세지가 내게는 크게 다가오진 않아 그 결론이 개인적으론 아쉬웠다.
이 책이 작가의 이야기가 담긴 자전적 소설이 아닐까 생각도 해봤다. 주인공 김지영 또한 혼란 끝에 결국 책을 쓰려고 자신의 길을 정했고, 작가님과 같은 강원도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관지었다. 책을 읽는 내내 너무 즐거웠다. 재밌어서 책에 자꾸 손이 갔다. 특히 문장문장이 내겐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책을 읽으며 맛있는 초밥을 먹고 쓴 내 글보다 영대가 먹는 짜장면의 글이 더 생기있고, 먹고 싶게끔 그려져 쌩뚱맞지만 나는 더욱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런 위트 넘치는 글을 이렇게 쓰는 걸 보니 작가는 분명 끼와 재능이 넘치는 사람일 것이다 확신했다. 그래서 다른 책들이 없나 찾아봤는데 유감스럽게도 장편은 없었다. 부디 이 작가님 계속 글을 쓰셔서 책 좀 내주셨으면 좋겠다는 개인적 바람을 처음 품어본 책이었다.
쓰다보니 갑자기 짜파게티 아닌 영대에게 힘을 불끈 나게 한 중국집 자장면이 갑자기 먹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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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월. 혹시 ‘아름다운 달’일까,하는 오지랖도 떨어가며 이름이 참 예쁘다 생각했던 작가. 책장의 어딘가에 「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일전에 읽어봐야지, 해놓고 단편 한편도 채 읽지 못하고 잠시 덮어두었던 책 속에 작가의 단편도 함께 있을 터인데, 읽고 있는 책을 책 속에 파묻혀 읽고 오고자 간 도서관에서 이 책을 마주하는 순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책을 추천해주었던 걸 생각해내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출해왔더랬다. 읽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에 대한 답을 자꾸만 도출해내려는 그것, 때문에.
“그런데 있지, 넌 꿈이 뭐니?” 꿈이 없다는 이유로 여자 친구에게 걷어차인 스물다섯의 오영대. 그것은 CK청바지를 사려던 20만원으로 월세 10만원짜리 방을 구하는 것의 계기가 되었다. 그는, 독립을 한 것이다. 십팔,마리의 모기들이 짓눌려 죽은 채로 붙어있는 벽, 똥이 얼어서 물이 내려가지도 않는 화장실. 그곳이 이제 그가 지내야하는 방인 것이다. ‘잠만 자는 방’ ㅡ 그리고 그곳에는 마지막 장까지 손으로 쓴 글씨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노트 상자가 발견된다. 아마 그 방에 살았던 여자의 것이리라. 「여덟 번째 방」
스무 살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 시기를 채 겪지 않은 이들에게도, 그 시기를 지나 버린 이들에게도 어쩔 수 없는 환상을 갖게 하는 이름이다. p49 노트 「여덟 번째 방」에는 여자(김지영)가 거처했던 방들과 그 방에서 살 때의 (추억이라면 추억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삶이 적혀있었다. 노트 속의 지영이나 노트 밖의 영대나 그리고 그들을 몰래 관찰하며 안쓰러운 청춘이네,라고 읊조리는 나도, 허공을 유영하는 실체 없는 대상을 매만져보겠다고 버둥거리지만, 실상은 그 손을 뻗는 것조차도 쉽지만은 않다. 무턱대고 뻗은 내 손에 잡힐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까닭이리라. 어찌하여 1980년이나, 1990년이나, 2000년이나, 2010년이나 모두 같을 수가 있지. 생각하며 숨이 턱 막혀온다.
아니, 그냥 말없이 먼저 안아 주기부터 해야겠다. 너는 참 평범하고 보잘것없지만 세상에 오로지 하나뿐인 존재라고. 그러므로 결코 평범하지도 않고 보잘것없지도 않다고. 너는 내 소설의 주인공이며 내 세계의 주인공이라고. p227 실은 지금 다니던 회사를 퇴직 후에 약간의 회의감을 안고 살고 있는 한 달이었는데, 타이밍 좋게도 참 좋은 책을 만났다. (물론 이것이 얼마 가지 않을 것을 알고 있지만) 내 꿈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재정비하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부터 서평을 쓰는 지금까지의 생각이 한결같다는 것에 놀랍다. 나는, 재미있게 살고 싶다. 세상의 모든 재미있는 일들을 내 옆에 있는 당신과 함께. 맛있는 반찬들을 골고루 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내게 나이라는 건 항상 너무 많거나 너무 적었다. 예전에는 내가 원하는 걸 가질 수 없는 것이 나이가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원하는 걸 가질 수 없는 것이 나이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나이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삶이 해마다 잊지도 않고 내게 갈아입혀 주는 옷이 매번 팔이 짧거나 목이 좁아 입기 불편했던 것은 옷이 잘못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내 신체 비례가 불균형하기 때문이었다. p47
그 많은 방들에 나는 내 20대를 골고루 부려 놓았다. 나에게 방은 집에 부속된 공간이 아니라 온전한 집 자체였다. 부등식 ‘방<집’이 아니라 등식 ‘방=집’이 성립되는 곳이었다. 그 많은 방들을 거치며 이제 나는 서른이 되었다. 요즘도 가끔 지나온 길 위에 두고 온 나만의 방들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곤 한다. 방들 속에 고여 있는 기쁨과 슬픔과 꿈과 절망과 환희와 분노는 하나같이 모서리가 닳아있었다. 말랑말랑해진 그 모서리들을 만져 보는 것이 나는 좋았다. p49-50
절대 바뀔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 결코 변하지 않으리라 믿었던 것, 그런 것이 또 하나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결국 모든 것은 변하게 되어 있는 걸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결국에는 모두 변하고 지나가고 잊히고 사라져 가게 마련인 것일까. p76p
바람이 불었다. 책으로 쌓아 올린 내 일상이, 아직 제대로 읽어내지도 못한 내 청춘의 페이지가 한 장씩 한 장씩 넘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손을 써 볼 겨를도 없이 빠르게. 그것이 아쉽고 억울해서 나는 장판에 짓눌린 뺨에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방바닥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p129
가끔은 그가 했던 말이 믿기지 않아서 종이 위에 그대로 옮겨 써 보기도 했다. 그러면 그것이 가진 실체가 조금 더 분명해졌다. 발화되는 순간 휘발되고 마는 음성 언어의 찰나를 박제화하는 것이 문자 언어라는 것을, 나는 그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체감했다. p164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거야.” p218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특별해. 글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정리할 줄 알거든.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고나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을 때나 되어서야 자신의 삶을 정리하지. 자기 삶의 주인이 자기인지 아닌지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죽음을 맞이한단 말이야.”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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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나고 자라고 학교를 다녔던 나는 이사라는 것을 잘 모르면서 자랐다 친구들이 이사를 가네 어쩌네 하면 그냥 남의 나라 이야기인줄만 알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 그리고 내가 먹고 자고 하는 방 그 안에 있는 살림살이들이 다 들어내지고 그것들이 다른 장소에 자리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몇학년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화장실이 안에 있고 마당에 잔디가 깔려있는 골목 밖의 양옥집으로 이사를 가고 동생과 이층침대라는 것을 써보게 되었던 그때의 흥분이란... 그리고 중학교때였나 주택가를 벗어나 길옆의 상가 건물을 구입하신 부모님덕에 밤에도 차소리가 들리는 도로 옆에서 처음으로 내방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었던 그때의 흥분이란...
그렇게 거기까지가 나의 이사였고 마지막 이사는 결혼을 해서 신랑집으로 짐을 옮긴 것이 다였다
나에게 이사라고 하는 것은 나의 생활의 변화가 아니라 부모님의 노력의 결실로 점점 집을 늘여나가는 것에 맞추어 없던 것이 생기고 가지고 싶었던 것들을 가질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대학때 기숙사 생활을 하거나 자취를 하는 친구들을 많이 사귀지 못해 소설속에 등장하는 친구의 자취방에 가본다던가 하는 것 조차도 나에게는 없는 추억이다
20대의 우리들 그때를 회상하는 방법은 그야말로 나름대로 각양각색일 것이다 여기의 김지영은 자신이 거쳐갔던 여덟개의 방을 통해 자신의 젊은 날을 묘사한다 집의 한 부분인 방이 아니라 방이 집과 동격이었던 그 시절의 그녀 지방에서 서울의 대학으로 상경하여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던 그녀에게 위안이 될 수 있었던 그녀만의 공간
아무것도 끝까지 해본 적도 없고 꿈도 없이 하루하루를 평범 그 자체를 살고 있던 한 청년이 독립을 선언하고 그렇게 얻게 된 월세 10만원의 '잠만 자는 방' 거기서 우연히 읽게 된 그녀의 스프링노트에 정리된 이야기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로 시작되는 여덟 번째 방
20대에 느낄 수 있었던 청춘의 화려함, 그뒤의 불안함은 그 누구에게나 있는 양면일 것이다 대학만 가면 일단 모든 걸 이룬 것 같았던 성취감도 캠퍼스에서의 낯설음과 설레임도 그 뒤의 어색함과 불안함과 공존했고 어느 정도 대학생활에 익숙해 졌을 무렵에는 그 대학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다시 발을 담그게 될 사회라는 벽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런 20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
여기 김지영처럼 자신의 방을 순회하면서 그때를 돌이키며 지금을 추스리거나 당시의 이야기를 이렇게 적어 놓고 읽어보는 방법으로 회상할 수도 있겠지
과연 나는 어떤 방법으로 그 때를 회상해 볼 수 있을까
남편과 기울이는 소주잔과 점점 늘어가는 빈 소주병을 옆에 놓고 반쯤 감은 눈으로 쫙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며 그때를 생각해 보는 방법이 내 방법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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