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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 도서관의 서가 사이를 걸어 다닐 때가 있다. 정말 아주 가끔이다. 내가 읽고 싶어서 메모해 갔던 책들이 아닌, 오래되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책들이나 언젠가 리스트에 담아두었지만 시간의 흐름으로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책들, 사람들의 손때를 타지 않아서 몇 년이 지나고서도 새것 같은 책들을 가끔 그렇게 만날 때가 있어서다. 하지만 이 책처럼 이도 저도 아닌 이유로 내 눈에 들어오는 책도 있다. 제목 또한 경쾌하다. 제목의 글자의 위에 스타카토처럼 찍어져 있는 점으로 이 책의 느낌을 상상했었다. 유쾌하고 발랄하고, 태풍으로 눅눅해진 날씨와 함께 눅눅해진 내 마음도 뽀송뽀송하게 말려줄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던 책인데, 꼭 제목처럼 표지처럼 그런 건 아.니.더.라.
태어나기 전, 엄마들의 뱃속에서부터 함께 했던 두 여자 소연과 미유의 끝나지 않은, 아직도 계속되는 성장이야기였다. 이십대 후반의 그녀들이 아직도 다 알 수 없는 인생과 가족이라는,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사랑했던 관계들과의 이야기. 태어나기 전부터 함께 했던 시간만큼 너무나도 닮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닮지 않았던 것으로 보였던 두 여자의 모습이 활자를 읽어가는 내내 답답함과 계속 함께 했다.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웠던 여자와 참는 법을 배웠던 여자, 결손가정에서 자랐지만 사랑을 받고 자랐던 여자와 겉으로 번드르르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사랑을 몰랐던 여자, 사랑을 믿었던 여자와 사랑을 믿지 않았던 여자, 소연과 미유는 그만큼이나 달랐다. 네 개의 손이 만나서 함께 연주했던 피아노 연탄곡의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져갔고, ‘우리’였던 이야기들은 ‘너’와 ‘나’의 표현으로 시작하는 또 다른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렀던 시간만큼, 키만큼, 우리는 자라나고 있었다. ‘너’와 ‘나’로. 그렇게 사랑의 본질과 무게감을 함께 느껴가면서 자라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사랑했지만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도피했던 소연의 엄마의 모습도,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해 발악을 해대고 있었던 미유의 엄마도, 자신이 그 자리에 꼭 있어야만 했다고 정당화시켰던 연희 이모의 사랑도. 그냥 그러고 싶게 타올랐던 지환의 사랑도 마냥 쿨했던 윤수의 사랑도. 감히 이들에게 그건 사랑이 아니었노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시했든 찌질 했든 구걸했든 후회했든, 사랑은 사랑이었을 테니. 그렇게 모든 관계에서 ‘우리’였던 이름은 각자의 이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또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을 것이다. 새로운 관계에서 새롭게 붙여지는 이름으로.
소연과 미유를 둘러싸고 있던 가족이란 굴레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족이란 그 따뜻한 이름이 차가운 얼음보다도 더 마음을 얼리고 꽁꽁 닫아두게 만들었다면 그 가족 역시나 ‘우리’를 ‘나’라는 조각으로 나누었던 것이다. 그 관계가 만들어낸 것이 마음을 온통 비우게 만드는 허기라면 더 끌고 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설령 그게 피를 나누었다는 이유로, 의무감으로 이어가는 관계임이 뻔히 보이는데도, 그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의미를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살아도 살아도…… 왜 이렇게 타인인 것만 같을까. 가족이라고 그 오랜 세월을 살았는데." (중략) “아니, 그런 말 말고. 그냥 살아보니 그래. 가족이니까 내가 모든 걸 다해도 아깝지 않다 생각했고, 그걸 절대 변할 수 없는 마음인 줄 알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나는 이모의 다음 말들이 두려웠다. “생각해보니까, 내가 무얼 했는지 잘 모르겠어. 돌아보니 여전히 남이네.” - 157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가족이란 이름이 무의미해지는 것 역시나 한 순간이다. 공식적으로 우리집에서는 일 년에 서너 번쯤 가족놀이를 한다. 설날, 추석, 엄마 생일, 아빠 생일. 같은 공간에서 화기애애하게 가족이란 흉내를 내고 있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여전히 그 공간에 함께 부유하고 있을 그 불편함의 공기를. 그래서 늘 최소한으로 예의라는 이름을 차릴 만한, 새로 입성한 가족구성원인 사위나 며느리에게 덜 창피해할 만큼만 손을 내민다, 서로에게. 그리고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면 나는 커다란 고개를 하나 넘은 듯이 소화제를 들이켠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약이 참, 쓰다.
그 사랑과 가족이란 관계에 지친 그녀들은 묻고 있다. 어떻게 하면 삶을 견딜 수 있죠. 나는 자클린의 말을 빌려 묻는다. 소리 내지 않았기에 아무도 나에게 대답해주지 않았다. - 241~242 그녀들이 처음 피아노 학원에 발을 들였던 그 시간의 기억은 너무 맑았던 순간의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건반을 두드리면서 새롭게 만났을 소리와, 엉망으로 끝났지만 그녀들의 첫 연주회였던 피아노 연탄곡의 선율은 그 시절의 그녀들이 공유했을 기억의 일부분으로만 저장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삼십여 년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겪었을 가족과 사랑, 그리고 인생에 관한 시험은 여전히 계속될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피아노의 어떤 건반을 누르고 어떤 소리가 날지 모를 일들이 수없이 많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에 말이다. 끝도 없이 되풀이될 게 뻔한 일들에, 그녀들은 어느 정도는 한발 물러서서 지켜보는 시선까지 습득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미치게 사랑해도 여전히 허한 속은 달래지지 않을지 모르고, 아직도 그 관계를 이름 붙이고 있는 가족 역시나 그대로 현재진행형으로 옆에 있을 것이고, 믿음과 배신이 공존하는 여러 가지 모양의 삶을 살아가야할 것을 알고 있기에 인생의 다음 장을 펼칠 순간을 담담하게 맞이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 상처와 아픔에도 면역이라는 장점은 남아 있을 터이니.
유년기의 그 시간에 시작했던 연탄곡을 지금 다시 연주하고 있고 듣고 있는 그녀들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다. 다시 건반을 누르면 되니까 말이다. 나는 처음 와보는 대학병원의 로비에서 나의 한 시절과 작별하는 중이다. 한 장의 인생이 악보처럼 지나갔으니, 이제 다른 인생이 또 시작될 것이다. 나도 엄마처럼, 연희 이모처럼 또 다른 어른들처럼 훌쩍 키가 자랄 것이다. 그러니 괜찮다. 이쯤은. - 288 그러니 괜찮다. 이쯤은. 괜찮을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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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서 초등학교 6년내내 다녔던 피아노 학원에 대한 추억이 꽤 많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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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릿한 성장통을 견뎌내며 어른이 되어가는 두 여자의 합주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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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도 나는 오빠와 함께 피아노 학원을 향했다. 가는 길에 뭘 하느라 늦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피아노 학원 선생님의 화난 얼굴이 우리를 맞이했고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손바닥을 맞았다. 집에 와서 엉엉 울면서 다시는 피아노 학원에 안 가겠노라고 선언했다. 바로 그 날 이후로 내게 있어서 피아노뿐 아니라 음악은 절교한 친구와 같았다. 정말 꼴도 보기 싫었다. 피아노가 싫었던 것은 아닌데 피아노와 친해지기에는 그 선생님의 히스테리가 너무 심했던 것 같다. 검정 뿔테에 뽀글뽀글 파마 머리를 했던 노처녀 선생님은 늘상 먼지털이를 들고 피아노 치는 내 손가락들을 탁탁 치곤 했다. 인생은 왜 기억하고 싶은 것들은 금세 잊혀지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이리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걸까? 바로 그 날, 먼지털이로 내 손바닥을 사정없이 때린 선생님의 얼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몹쓸 기억력 덕분에 씁쓸해진다. '티타티타'가 <젓가락 행진곡>의 애칭인 줄, 이 책을 보고서야 알게 됐다. 티타티타 귀여운 피아노 소리가 내게는 그저 쿵쾅쿵쾅 괴로움의 손짓처럼 먼지털이의 악몽 같다. 사실 뭔지도 모르는 책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하여 읽게 됐다.
"지금 두들겨야 할 건반이 어떠한 소리를 낼지 전혀 짐작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 마음이 간지러워지는 일이었다." 12p
소연과 미유. 여섯 살 꼬마 시절부터 동네 피아노 학원을 함께 다닌 친구. 어른이 되어서도 동거하며 취미 삼아 피아노를 함께 연주하는 둘도 없는 친구. 그런데 늘 함께 나누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은 아닐까? 그녀들의 남자친구 지환과 윤수.
어린 소녀들이 어떤 건반을 두들겨야 할지 몰라 당황했던 그 날처럼 인생은 변함없이 그들의 마음을 간지럽게 했다. 간지러움..... 참을 수 없는, 그러나 참을 수 밖에 없는 그 것. 특별히 놀랍거나 새로운 이야기는 없었다. 그런데도 자꾸만 다음 장을 넘기게 되는 이유는 뭘까? 티타티타 젓가락을 두들기듯이 반복해서 연주되는 젓가락 행진곡처럼 인생은 흘러간다.
언젠가 우리는 땅속 지하철에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밖에 뭐가 보여?" "온통 검은 세상." "정말?" "아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검은 세상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말끄러미 무언가를 찾고 있는 우리 모습만 도리어 비치는 것이 아니었던가. 아무것도 없는 땅속에서 땅 밖의 세상을 감지하지 못한 채로 한동안 가두어지는 것. 땅 밖의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동안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몸이 꾸물꾸물해지는 불안함. 너희들이 알고 있는 것쯤 우리도 다 알아, 라고 말할 수 없는 유일한 주눅. 285p
살면서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간지러움, 그들의 삶을 보면서 내 안의 케케묵은 기억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을 확인하면서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를 견주어 본다. 나 역시 몰랐다. 이런 '나'로 살아가게 될 줄은. 티타티타 우리는 오늘도 함께 연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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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 행진곡이라고 하면 피아노를 배우는 아니 시작하는 아이들은 누구나 쉽게 익히게 되는 그런 곡인것 같습니다. 어렸을때 누구나 한번정도 아주 친한 짝꿍이나 친구와 함께 커다란 피아노 앞에서 둘이 함께 앉아 서로를 위해주는것 같은 아니 의지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경쾌하고 신나게 통통 튕기듯이 건반을 내리치는 그 모습과 그 소리가 지금 내 귓가에도 들리는것 같습니다.긴 생머리를 늘어뜨린다면 뒤에서 볼때 마치 쌍둥이가 앉아있는 것 처럼 보일수도 있겠지요 이렇게 둘이 함께 있어야 제대로 조화가 되는 젓가락 행진곡을 떠올리면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마치 인생도 둘이 함께 열어가야만 할것처럼 그렇게 여기면서 읽었지요. 소연과 미유의 우정어린 어린시절과 나아가서 사춘기 시절을 함께 하고 성인이 되면서 까지도 함께 생활하면서 지냈던 시간들이 너무 아름답게 그려지기도 하고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친구로 남아있는것이 쉽지만은 아닐것이다라고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것은 그리고 삶이라는 것은 때로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분명히 있는 법이라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 둘이 없으면 못살것 같던 막연한 사이였어도 이제는 따로 자기만의 삶을 개척해 나가려고 애쓰고 있고 또 그 생활방식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것이 정답이고 제대로 잘 사는 길인지는 아무도 모르는것 같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감정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것이 물질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것인지도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방황하던 사춘기 소녀들처럼 주인공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서 우리네 어머니 시절을 떠올려 보고 또 나 자신의 지나온 시간들도 떠올려 보게 됩니다. 어떻게 살아왔을까? 어떻게 지내고 있는 것인가 한번 정도 되짚어보는 시간이 되었던것 같습니다. 미유와 소연의 가정이야기를 들어보며 그들의 삶이 과연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길인지 묻고 싶어지기도 했는데요 사랑이라는 것은 언제나 이렇게 변할수도 있는 것이고 또 새롭게 다가올수 있기도 한가 봅니다. 그래도 제 생각에는 오랜동안 쌓아온 우정이 말해주듯이 둘 사이에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치 않는 그런 끈끈함이 있다고 봅니다 함께 해 온 세월을 따져보면 가족이나 진배없다고 보는데요 이런 우정을 사뭇 부러워 하면서 책을 읽었기에 둘 사이에 금이 그어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싫었습니다. 서툴게 치던 피아노 티타티타처럼 서툴게 살아온 이야기 그리고 사랑이야기 모두 다시 풋풋한 우정과 사랑을 꿈꾸게 하기도 합니다 진정한 우정과 참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질거라 기대하면서 좋은 작품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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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과 아이들의 인생은 엄연히 다르다. 그 인생의 중심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간섭의 방향도 달라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생각의 필름들은 그래서 두고 두고 희미하게 나타났다 사라지고 또 의미를 곱씹게 만들기도 한다.
쉽게 사랑에 빠져 자식을 버리고 도망가 버린 엄마를 원망하기도 하고, 엄마라기 보다는 노처녀 언니같은 남의 인생에 관심없는 오십 넘은 나이에도 사랑을 갈구하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연 엄마가 등장하고, 젊은 시절 내내 어린 소연과 소연 엄마의 곁에 맴돌았던 이모는 소연과 소연엄마를 위해 헌신했던 자신의 삶을 뒤늦게 후회하고, 우아하고 점잖은 아내를 가지는 일과 잘키운 딸들을 좋은 집안으로 시집보내는 일이 완벽한 사랑의 책무라 믿었던 미유의 아버지.. 아버지의 말한번 거스리지 않고 들었지만 단 한번도 아버지의 요구를 채워주지 못한 은유언니....
모두들 어찌보면 몸만 성장하고 마음은 성장하지 못한 지금 우리의 모습은 아닐런지.... 지금 내가 이렇게 한심해진것도 내가 아무것도 도전하지 못하는 것도 그렇게 만든 부모의 탓이고 환경의 탓이고 나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마음이 성숙하지 못한 우리의 탓일텐데 모두가 남의 탓으로 돌린다.
가볍게 읽으려고 빌렸는데 그안에 많은 아픔도 그리고 슬픔도 그리고 기쁨도 있어서 즐겁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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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릿한 성장통을 견뎌내며 어른이 되어가는 두 여자의 합주곡 나는 처음에 책 제목을 접했을때 어떤 뜻일까? 무엇을 나타내는 말일까?라면서 궁금해했다. 아마도 이책 속에는 어떤 내용의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에 대해서가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의 처음부터 ’티타티타’가 <젓가락 행진곡>의 애칭이라는 것을 말해주면서 부터 궁금증을 조금 풀렸던 것 같다. ’티타티타’가 생각보다 어려운 뜻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누구든지 한번들 들어봤을 뻔한 <젓가락 행진곡>이라고 하니깐 더욱더 책 속의 주인공의 이야기가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이야기 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두소녀가 있다. 소연과 미연이다. 두소녀는 남쪽의 공업도시에서 태어났고 맞벌이는 하는 엄마들 속에서 둘은 여섯살이 되고 일곱 살이 되어 유치원에 들어가기전까지 맡아줄 곳이 없어서 피아노 교실을 선택했다. 피아노 선생님의 늙은 어머니는 동네에서 작은 구명가게를 열고 있었고 그 할머니에게 밥과 간식을 싼값에 챙겨주는 대신에 피아노 교실에 보내게 되었다. 두소녀는 그렇게 피아노를 접하게 되었고 그렇게 보통의 아이들처럼 유년시절을 보냈다. 여학교 교사인 소연과 아나운서 시험에서 늘 낙방만 하다거 어니늘 스튜어디스가 되었다가 쇼핑 호스트로 직업을 바꾼 미유 둘을 서른이 되도록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둘은 어떻게 보면 너무 자매 같기도 하지만 서로 다른 점들도 많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 둘의 함께 한 긴 시간동안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되는 것 같았다. 나는 가만히 선 채로 연주회가 열릴, 천장이 까마득히 높은 로비를 지켜보았다. 도로 키 작은 여섯 살이 된 것 같았다. 나는 처음 와보는 대학병원의 로비에서 나의 한 시절과 작별하는 중이다. 한 장의 인생이 악보처럼 지나갔으니, 이제 다른 인생이 또 시작될 것이다. 나도 엄마처럼, 연희 이모처럼 또 다른 어른들처럼 훌쩍 키가 자랄 것이다. 그러니 괜찮다. 이쯤은... 처음에 이 책의 첫장을 읽을 때에는 두 주인공의 변화무쌍한 인생을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혼자서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속의 두주인공은 보통의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일상을 살아가는 두소녀가 여자가 그녀들 주변의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인간관계 속에서 겪는 보통의 일상에서의 마음과 아픔과 상처들을 피아노소나타를 연주하듯 담담히 담아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책을 읽으면서 나의 어린시절을 생각하게 되었고 과거 속의 ’나’를 한번 들여다 보았고 지금 현재의 ’나’를 다시 한번 뒤돌아 볼수 있었던 것 같다. 두 주인공과 같이 과거를 함께 나눌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게 부러웠다. 그리고 두 친구가 언제까지나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되기를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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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나도 피아노를 배웠다. 초등 3학년때였다. 버스로 통학하던 나는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 2명을 알게되었다. 한 학년에 기껏해야 180명정도의 학생이 있던 학교는 2년씩 반변동 없이 상급학년에 올랐기때문에 한번 같은 반을 하면 모르는 얘가 없었다. 3명이서 그 동네의 피아노 교습소에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나말고 다른 아이들은 1년또는 2년 남짓하다가 그만두고 말았다. 피아노교습소에는 특이한 냄새가 있다. 소도시에서 음악선생을 하다가 도시로와 이혼하고 남자아이 하나가 딸린 피아노선생님, 발표회때마다 아이들에게 지정곡을 주고 연습을 시키고 발표회날은 미장원서 단체로 머리를 하고 드레스를 입고...
이 소설의 작가가 70년대 생이니 다소 세대차는 나지만 그래서 맞벌이 가정의 자녀들로 묘사되었지만 피아노학원과 하교후 기억들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가 충분히 공감이 간다. 젓가락행진곡이 티타티타라는 의성어로 표현된 게 사뭇 의외다. 타타타 타타타의 리듬이 더 맞지 않나. 건 그렇고, 이야기의 줄기는 어린 시절부터 거의 자매처럼 함께 성장해온 두 여자 아이가 성인이 되어 지방소도시를 떠나 서울에서 함께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예기치 않은 사랑의 엇갈림에 관한 것이다.
친한 친구였는데,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른바 배신으로 마감되는 사랑이야기는 상당히 상투적인 요소이긴 하다. 여자든 남자든 오는 사랑 막지 못하고 언제나 마음을 풀어헤치고 사는 듯한 유형들이 있어서 그들은 평생을 사랑의 늪에서 허우적 거리거나 새 사랑과 실연과 외로움에 몸을 내맡긴다. 물론 방황하다가 제대로 정착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유형들은 픽션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마치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으로 여기는 현실속의 나르시스트들로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개방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허락된 삶을 사는 시대인지라 더욱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싶을지도 모른다.
소설속의 두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같이 있었던 환경이 아니었다면 성격상 어울리기 힘들 수 있는 성격들이다. 이야기의 구성이 어린 시절의 공유부분외에 각각 자신들의 애인과 아버지에대한 부분을 한장씩 할애해 두 주인공이 화자로 나선 형식으로 되어 있다. 소연이 같은 학교의 음악선생 지환을 소개하는 반면 미유는 비행기안에서 만난 자신의 여섯번째 애인을 이야기한다. 두 사람의 연애방식은 자신들의 가정환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사고로 불구가 된 아버지와 결혼을 하지 않은 어머니의 선택, 그리고 한번씩 삼촌이란 이름으로 나타났던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를 가진 소연은 여자들만 있는 집에서 남자의 구두가 현관에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자랐다. 어머니는 자신의 사랑을 현실적으로 즐기지만 소연은 결핍의 공간을 채울 수 있는 남성에 대한 동경만큼 연애술을 익히지 못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출장으로 늘 집에 없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의심이 증폭된 어머니의 불평을 듣고 자란 미유는 엄격하고 공부를 격려하는 아버지의 이면에 또다른 형태의 부재를 본다. 아버지의 이중적 모습에서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이 남성적 편력으로 나타났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소설에는 그런 유기적 관계를 설명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등장인물들은 다같이 나약하고 결핍된 존재들로 그려진다. 불균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담담하게 살아가는 인물들은 바로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두 여주인공의 이야기속에는 두 어머니와 이모와 언니로 나오는 네 명의 여성 이야기가 더해진다. 그들의 삶이 튀지 않고 이야기속에 잘 녹아들어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잘 만들어진 소설 한권을 읽었다는 느낌이 드는 건 작가의 짜임새있는 글쓰기 능력때문인 것같다. 사는 건 비슷비슷하고 평범한 내 이야기가 바로 특별한 무언가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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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 소리내어 봤을때 예쁜 말들이 있다. 이 책의 제목도 그런 말로 되어 있다. '티타티타' 처음에는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신조어는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컸지만 책의 앞 부분에 너무나 친절하게 '티타티타'는 피아노 앞에 앉아 보았던 사람들 대부분이 칠 수 있다던 젓가락 행진곡의 애칭이었다. 재밌는 말이다.
이 책은 제목의 의미 부터 시작해서 마지막까지 '음악'과 함께 한다. 정확히 말하면 피아노 소리와 함께 한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 미유와 소연의 어린 시절 처음 배웠던 '티타티타'를 시작으로 어른이 된 소연이의 피아노 공연까지 모두 피아노 소리와 함께 가고 있다. 두 여자가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숙하는 과정을 담은 이 책은 잔잔하고 담담하게 그녀들의 삶과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자라오다 '나'가 되는 과정 속에서 얼마나 자신들의 아픔으로 부터 자유로워 지고 이해 하게 되는 가를 자극적이지 않은 언어로 이야기 해준다. 그리고 그녀들의 유년과 나의 유년 속에 많은 기억들이 동일화 되면서 나도 모르게 몰입되어 읽어 나갔던 것 같다. 내가 소연이, 미유가 되면서 말이다.
나도 피아노를 배웠다. 이 책속 그녀들의 나이서부터 초등학교 때까지 나 역시 하농을 지겨워 하면서, 우스꽝스러운 빨간 루즈를 바르고 핑크색 드레스를 입고 대회도 출전했었다. 그 시절 피아노가 네대 밖에 없던 그 작은 피아노 학원이 그립다는 생각을 했다. 바이엘에서 체르니로 넘어가던 순간, 작은 앉은뱅이 책상에서 열심히 음표를 그리던 순간 순간들이 이 책을 통해 아련하게 생각이 났다. 그때에 나에서 지금의 나는 그리고 얼마나 자랐을까...이 책은 나에게 정말로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어린시절을 회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시절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준 소중한 책이었다.
아, 그리고 책을 모두 다 읽고 발견한 사실 '티타티타'라는 제목 글자 위에 찍혀있는 점 스타카토를 표현한 듯 보여서 다시한번 미소 지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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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티타 - 함께 성장하던 그녀들은 아직도 성장 중이다 -
나에게 있어 피아노란 숨은 그림찾기 같은 것이었다. 어떤 곡을 들을 때면, 혹은 연주를 할 때면 해묵은 그림 한 장 슬며시 날아 올랐다. -119쪽-
늘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녀들 미유와 소연. 자매처럼 둘은 붙어다녔고 모든 것을 함께 했다. 바쁜 엄마들로 인해 가게방 할머니에게 맡겨져 정성없는 음식들을 먹었던 것도 함께 였고, 처음 피아노를 배우고 '티타티타'(젓가락행진곡)를 연주한 것도 함께 였다. 아빠가 없었던 소연은 미연의 완벽한 것 같은 가족구성이 부러웠고, 부모나 형제가 있었지만 늘 잡음이 있던 가정의 미연은 소연의 가족을 부러워하면서, 서로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한 살씩 성장해가면서 계속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일 것만 같았던 둘은 조금씩 어긋남을 겪게 된다. 언제나 아름답게 함께 '티타티타' 할 것만 같았던 두 친구는 이제 더 이상 어린아이들이 아니다.
늘 함께일 것만 같았고, 누구보다 함께일 때 완벽했던 그녀들은 이제 그런 사이였던 관계가 오히려 부담스러운 사이가 된다. 소연은 소연대로, 미유는 미유대로 서툴게 자신들의 삶을 한 장씩 그려 나간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면서 아름답던 어린 시절의 화음은 이제 불협화음으로 거친 소리를 낸다. 살다보면, 한 살씩 나이 들어 간다는 것은 처음 마음으로 아직 어린 시절의 순수로 살아지지는 않는 것이 삶인 것이다. 그저 함께 해서 좋았던 순수는 하나씩 자아를 발견해가고, 삶에 대해 알아가는 성장과정에서 어긋나고 일그러진다. 그렇지만 그것 또한 삶의 한 방식이고, 성장의 한 과정인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새 것은 많지 않다. 새 것이 아닐 일들만 남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심드렁했다. -182쪽-
소연과 미유의 성장과정을 만나면서 나의 어린 시절과 성장의 시간들이 함께 겹쳐졌다. 처음 동생들과 집에는 없던 피아노를 누군가의 집에서 보게 되고 함께 젓가락 행진곡을 치던 생각이, 학교에서 오래된 오르간을 만나 친구와 함께 하던 젓가락 행진곡의 리듬들이 가슴으로 들려왔다. 나도 그때는 어린 시절 순수 그대로였고, 점점 자라면서 이런 저런 성장 통을 겪게 된다. 늘 내 마음대로만 자랄 수 없었고, 수시로 내가 하는 내 행동들이 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늘 그런 나를 인정하지 않고 끝없이 부딪치기를 반복했다. 지나고 보면 그런 부딪침을 시간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어느날, 성인이 되어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다 그렇게 거쳐가는 것이 아닐까.
한 장의 인생이 악보처럼 지나갔으니, 이제 다른 인생이 또 시작될 것이다. 나도 엄마처럼, 연희 이모처럼 또 다른 어른들처럼 훌쩍 키가 자랄 것이다. 그러니 괜찮다. 이쯤은. -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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