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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시절은 어떠했을까...
사실 기억나지도 않는 내 어린 시절의 어떤 약속들이
아주 무서운 현실이 되어 버린다면 어떨까...
아마도 이러한 사소한 의문에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주 오래전에 나온 만화이지만, 난 이제야 다 보게되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1권을 보고는 더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책을 다 봐버렸다...
조금 긴 분량에, 조금은 늘어지는 듯한 느낌은 있을 지언정 책을 펼쳐 놓고 있는 순간은 긴장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아주 재미있고, 말 그래도 흥미진진하게 본 만화다...
그런 의미로 나의 어린시절, 당신들의 어린 시절을 어떻게 해서든지 기억해 내보는 건 어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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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를 읽게 된 것은 오로지 '우라사와 나오키'의 이름을 보고 선택 한 것이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를 다 보지는 못했지만, 야와라 부터 해서 접하게 된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는 한번도 실망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20세기 소년 역시, 역시 우라사와다! 라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훌륭한 만화이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장난으로 공상한 미래 모습이 실제로 실현된다면? 이 만화는 이 내용을 중심으로 시작한다.
지금은 2010년, 이 만화의 현실도 그리 멀지는 않다. (2015년인가?로 기억된다.) 이 만화는 '친구'가 지배하게 되면서 자유가 용납되지 않는 세계로 변한다. 소름끼치는 건 이러한 모습이 우리의 현실에도 조금씩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만화를 보면서 더 두려운 마음이 컸던 거 같다.
가장 큰 임팩트로 다가왔던 장면은 개인적으로 '친구'가 세계에게 신임을 받게 되는 그 과정이다. '친구'는 스스로 교황의 목숨을 살리게 위해 뛰어들고 죽게 되지만 다시 부활되는 그 모습을 전세계에 보여주어 큰 신임을 받게 된다. 그러고 보면 예수의 부활이 떠오르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큰 점은 친구는 이 모든것을 계획에 의해 실행했다는 점이다. 교황의 목숨을 노린 것이 바로 이 '친구'이기 때문이다.
결말은 켄지가 어린시절로 돌아가 '친구'에게 사과를 하면서 좋게 끝나지만, 뒤로 갈 수록 신간이 나오는 텀이 길어지고 좀 내용이 복잡해서 사실 '친구'가 내가 생각하는 그 인물이 맞는지, 그리고 '친구'가 왜 이러한 일을 꾸민 것인지에 대한 의견에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다음에 시간이 나면 처음부터 꼼꼼하게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켄지야 놀자~' 놀자라고 말하는 이 대사가 이렇게 소름끼치게 다가올 수 있다니 ㅎㅎ 아마 이 만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이 대사가 왜 소름끼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 최근에 일본에서 만든 20세기 소년 영화를 드디어 보았다! 아직 다 보지는 못했지만, 생각보다 잘 만들어서 깜짝 놀랐다. 사실 전에 봉준호 감독이 20세기 소년을 영화화 하기 위해 공을 들였으나 우라사와가 거절했다는 말을 듣고 엄청엄청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에서 만들다니... 일본영화 중 소소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는 수작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큰 스케일의 영화는 아직 부족한 면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매우 불만이었다. 그러지 말고 봉테일에게 맡기라고!! 라는 생각을 했으니까. 그런데 실제로 보니 꽤 잘만든것 같다. 뭐 23권이나 되는 만화를 그것도 엄청난 양의 내용을 단 2편의 영화로 함축했다는 시도 자체가 대단하다는 평을 받을만하다는 생각이다 ㅎㅎ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20세기 소년'은 어떤 느낌일까...하는 아쉬움을 아직도 갖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