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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다고 난리를 치고, y2k 문제가 지구를 어떻게 할지도 모른다고 야단법석을 떤 지가 엊그제 같았는데, 10년이라는 강산이 한번 변할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세기말 IMF구제금융을 받던 시기에서 얼마나 더 나아졌을까
일제침략 100년, 한국전쟁 60년, 4.19로 시작된 민주화 50년이 되는 해, 그리고 전태일 열사 40주기, 광주항쟁 30주년이 되는 2010년의 대한민국, 그 실상은 이렇다고 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OECD 회원국, G20 정상회담 개최국이지만 또한 자살률 세계 1위, 출산율 세계 최저로 사람이 살지 못할 볼모의 땅이 되어버렸고, 그나마 살아가는 사람들도 1년에 2300시간이라는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에 시달리는 나라,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850만 명이 비정규직인 나라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총3부로 되어있는 이책은 진보신당의 상상연구소가 진보프레임으로 보는 진짜세상은 어떤세상 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펴낸 책이라고 한다. 1부는 진보의 개념정리, 2부는 사회 각영역에서의 진보의 정책비전, 그리고 3부에서는 종합적인 대안모델로 재구성하였다고 한다. 이책은 진보에 대한 자기비판이며, 구체적인 수준의 상상이며, 희망만들기 작업이라고 노중기 상상연구소 소장은 서문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진보의 힘은 실현가능성에 있기보다, 진짜 진보를 꿈꾸는 상상력과 용기에 있다고 강조한다.
진보진영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진보적 정치, 사회운동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고, 그것이 한국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줄수 있는지를 대중들에게 납득시키는 것이라고 김상봉 전남대 교수는 말한다. 예전에는 민주주의 라는 깃발로 진보세력과 대중을 하나로 모을수 있었지만, 지금은 민주주의란 이름아래 자본으로 인한 억압이 가능함에 따라, 민주주의만으로 진보의 정체성을 나타낼수 없다고 한다. 또한 지금까지의 진보운동은 자기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이었고, 진보운동이 벽에 부딪힌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적으로 볼때 권리가 운동의 긍극적인 목표였기 때문이라고 김교수는 말한다. 나의 권리와 모든사람의 권리는 양립할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나, 즉 특정계급이나 집단의 권리가 아니라 모든사람의 권리 찾기가 행해질 때 진보의 대중성이 담보되며, 이것은 반드시 집단적 연대와 결속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고 그는 말한다.
지난 10년 민주정권에 대한 평가도 냉정해져야 한다고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말한다. 경제성장을 나타내는 지표와 삶의질을 보여주는 지표는 얼핏보면 서로 충돌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의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0년은 가진자와 기득권세력에게는 성공한 10년이었지만, 서민과 보통시민에게는 잃어버린 10년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진보도 낡은 진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진보시민은 존재하는데 진보정당은 존재하지 못한 10년이었다고 반성한다.
최근들어 나타나는 현상중 하나가 진보정당의 세계적인 몰락이다. 일본은 물론 유럽에서마저 진보정당이 무너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아직까지도 여러가지 제약조건이 있는 한국에서 진보정당이 있는 민주주의의 모델을 구축할수 있을까? 박상훈 정치학 박사는 우리사회 진보파가 겪는 어려움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정치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무능력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도덕적, 운동적 틀에서만 움직이고 진보언어가 없다고 말하는 그는 한국의 진보정당은 보수정당과는 달리 인치의 과잉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인치의 부족 즉, 리더의 부재로 더 많은 문제를 낳았다고 한다.
진보정당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그의 분석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제문제에 대해서도 진보정당만의 해결책이나 대중이 공감하는 대안이 아닌, 공허한 구호성, 그리고 자신들만의 정책을 제시하여 일반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이 책에서 각 분야에 대한 진보의 정책들을 만나볼수 있어 다행이다. 이런 정책들은 물론 아직도 손보아야 하고 다듬어야 하지만, 우리가 집권하면 이런 문제는 이렇게 풀겠다는 희망을 주는 것 이어서, 다시 한번 그들에게 희망을 갖게 만든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하고, 행복의 조건은 대개 건강이 우선순위 안에 든다. 경제성장이 건강과 선형적인 관계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소득불평등이 건강과 선형적인 관계를 보이는 세상에서, 보건의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져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절대 사적영역에 맡길수 없고 공공의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윤태호 부산대 교수는 의료민영화에 우려한다. 우리사회의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하는 그는, 보건의료는 국가 또는 사회중심이어야 하고, 건강중심, 예방중심, 질 중심 그리고 전문적인 영역에서 일상적인 영역으로 가져오는 인식의 전환을 통해서만, 모든 사회 구성원이 최선의 건강을 누리는, 우리가 꿈꾸는 보건의료의 목표를 이룰수 있다고 말한다.
하재근 학벌없는 사회 대변인은 교육에 대해 말하면서 교육을 단지 교육부문의 문제라고 인식하면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강조한다. 교육문제는 경제문제이고, 정치문제이고 최종적으로 사회문제의 근본이라는 인식이 필요하고, 해결방법은 대학 서열체제를 근본적으로 뒤집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예전의 중학교, 고등학교 평준화를 이제는 대학에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가하면 김성진 변호사는 복지확대를 위한 증세를 제안하고 있다. 조세는 모든 복지의 출발이자 끝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조세는 재정을 확보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세를 통한 복지는 유럽에서만 성공했는데, 그것은 노동조합과 좌파정당이 결합해 조세를 통한 복지를 주도했고, 중간층과 비조직 대중이 기본적 지지를 보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한국조세제도의 특징은 낮은 조세부담율 이라고 한다. 이는 OECD 국가평균의 절반밖에 안되는 낮은 개인소득세율과 사용자부담율이 낮은 사용보장기금등이 원인이라고 한다. 김변호사는 소득세 중심의 증세가 필요한 시점에 감세정책을 펴고 있는 한국은 OECD 기준으로 볼때에도 예외적인 국가라고 한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복지국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임금의 확충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우리들 가계임금은 근로의 대가로 받는 시장임금과 국민연금, 실업급여, 보육료지원, 건강보험등 국가의 각종 지원금으로 이루어진 사회임금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시장임금은 등가교환의 원리를 따르나, 사회임금은 부등가교환 된다고 한다. 언뜻 생각하면 불공평한것 같지만 이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완화하는 사회연대적 교환이라고 한다. 2000년대 중반, 한국의 사회임금은 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9%로 OECD 평균 31.9%의 1/4 수준으로 구조조정에 격렬하게 저항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그는 말한다. 복지국가는 이루어질수 있는 꿈이라고 말하는 오건호 실장은 진보진영에게 필요한 것은 당위적인 거시적 담론이 아니라, 진보적 모델사례를 만들어 대중이 이를 체험하게 하는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의료, 교육, 복지문제 이외에도, 책에는 주택문제, 한반도 평화문제, 환경문제 그리고 문화에 대해서 전문가들의 진단과 제안이 들어있다. 모두 우리에게 절실한 것들을 말하고 있지만, 우리가 어떠한 경우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지속적인 이윤축적의 위기에 몰린 자본의 새로운 전략이며, 압축하여 얘기하면 자본시장의 개방화와 노동시장의 유연화이다. 이미 비정규직이 50%를 넘는 우리의 상황에서 자본은 분열과 경쟁을 통하여 자기증식을 하지만, 노동은 소통과 연대를 통해 자기지양을 할수 있어야 된다고 강수돌 고려대 교수는 말한다.
현재는 자유주의적인 개혁 세력도, 진보세력도 총체적인 위기상황이라고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말한다. 그래서 진보의 자기성찰이 더욱 절실하다는 생각이다. MB가 우리에게 의도하지 않게 기기여한 것은 소통의 중요성을 깨우쳐준 것 이라고 한다. 그는 진보운동의 핵심은 다양한 운동이 차이에 기초해 연대하는 것이고, 또 대중과 결합하지 못하는 진보운동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소통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자기 헌신성을 갖출때에야 단순히 MB만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까지 넘어서는 진정한 진보가 될수 있다고 말한다.
원래 이책은 노무현대통령의 비극적 최후가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한다. 노무현 시대의 보수성이 사후에 논의되는 진보의 미래라는 담론을 통해 사라지지않고, 변명되지도 않는다는 이의제기라고 한다. 그러나 난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지않다.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이나라 진보에게 기댈것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국민들은 개혁세력이 무엇이고, 진보세력이 무엇인지를 알기때문이다. 서문에서 노중기 상상연구소 소장이 했던말이 다시 생각난다. 진보의 힘은 실현가능성에 있다기보다 진짜 진보를 꿈꾸는 상상력과 용기에 있다. 진보여!! 무한한 상상력으로 실천하는 용기를 갖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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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걸 까먹고, 오랜만에 학생들이 주로가는 시간말고 어른들이 가는 시간에 성당엘 갔다. 장사치들처럼 명함들고 성당 앞을 지켜서 있는 사람들의 집요함을 헤치고 지나가면서 내미는 명함을 한장도 받지 않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결국은 아는 사람에게 붙잡힌다. 불행히도 그 사람은 심성이 좋고 성실하기까지 하다. 문제는 그분의 가족이 도의원으로 출마한다는 것일뿐. 잘 부탁한다며 도와달라는 그분에게 머뭇거리다가 결국은 사람이 미워서가 아니라 그 정당정치를 싫어해서...라며 말을 흐리지만 좋은게 좋은거라고 명함 한 장 받아들고 헤헤거리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좀 웃긴 일이긴 하지만 학교다닐때도 내가 지지하는 선배의 반대쪽 후보와 개인적으로는 적대시할 이유가 없어서 헤헤거리며 웃고 얘기하다가 잘 모르는 친구들에게 그쪽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았던 기억이 났다. 아무튼 나의 정치적 신념이라는 것도 확실히 드러내지 못하고, 그렇다고 인간적 친분관계를 생각해 기분좋게 명함 한 장을 흔쾌히 받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은 영 찜찜할뿐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단지 한나라당 아닌 정치인이 단체장에 당선되고 국회의원이 되는 일이 아니다. 얼어붙은 대중의 열정을 다시 깨워 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새로운 시대가 움트고 있다는 메시지뿐이다. 온갖 고상한 수식어로 치장된 선거 정치의 게임의 논리는 그런 메시지가 될 수 없다. 의제에 바탕을 둔 경쟁과 협력만이 그런 메시지의 발원지가 될 수 있다.(369) 내가 나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해본적이 없는데 '리얼 진보'라는 책을 집어드는 순간 왠지 나의 정치적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봐야할 것만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치에 대해 욕이나 할 줄 알았지 진정한 관심은 없었고, 정당정치로 인한 사회의 변화에 대한 희망은 전혀 갖고 있지도 않았다. 요즘 어머니와 TV뉴스를 같이 보면서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건 그런거였다. 그놈의 정권과 정당이 아닌 건 알겠는데, 그렇다면 다른 정당의 정책과 내용은 무엇이냐, 라고 묻는 물음에 내가 대답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 일흔이 넘으신 어머니는 소일거리삼아(물론 소일거리는 아닐 것이다. 얼마나 팍팍한 삶의 모습들을 보고 느끼게 되었으면 4대강을 죽이는 사업과 복지예산을 줄이기만 하는 현정권에 대한 비판을 다 하시는지... 아무튼) 뉴스를 보고 계셨는지, 민노당이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빠져나간 사람들이 만든 그 당이 뭐냐는 질문도 하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치에 그닥 관심없는 사람들의 수준이라는 것이 다 그만그만한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내가 진보라고 할 수 있든 그렇지 않든 '리얼 진보'라는 이 책의 내용들은 한번은 꼭 살펴봐야 할 내용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가 없다. "19개의 진보 프레임으로 보는 진짜 세상"이 어떤 상상력을 담아내고 있으며 그 상상의 실현가능성은 어디쯤 가고 있는가를 보기 위해. '진보 세력이 운동으로서 정치 영역에 참여하는 가장 이상적인 내용은, 정치의 방법으로 힘을 조직하여 가난한 서민 대중의 삶의 현실을 더 적극적으로 개선하는 것"(103)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진보세력이라 일컫는 이들의 글에서 그동안의 구체적인 정책이 없었음을 비판하고 성찰하며 진짜 진보 세력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제시하려 하고 있다. '리얼진보'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에서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진보의 개념을 재정립한다. 사회 각 영역에서 진보의 정책비전을 제시하는 2부는 열두 개의 글로 구성되어 있으며, 3부에서는 이를 종합적인 대안 모델로 재구성하고 있다. 조급증이 더 커지고 정치에 대한 신뢰가 없어졌을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조차 희미해져가고 있는 상태라 그런지 학벌없는 사회라거나 사회경제, 복지국가, 더 많이 소유하기보다 더 많이 존재하는 세상을 향한 예술과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이상향은 한편으로는 더 힘을 내야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상상이 현실이 되기엔 앞이 안보이는 것만 같을뿐이다. 그런데 상당히 비관적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 마음속 어딘가에는 세상에 대한 희망과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었나보다. 오늘 뉴스에서는 미국의 건강보험개혁안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이 나왔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 묻는 어머니에게 공보험과 민간보험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해드렸다. 사실 "가입자들은 아프기 전에는 보험료로, 아픈 후에는 본인 부담금으로 두 차례 의료비를 지출한다. 그런데 전자의 비용은 소득에 따라 납부하고, 후자의 비용은 아픈 만큼 내야 한다. 어차피 가입자들이 지불해야 할 재정이라면 소득에 따라 부과되는 보험료를 확대하고, 경제 능력을 무시하고 부과되는 본인 부담금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무상 의료’이다. 무상 의료는 공짜 의료가 아니라 진료 후 지불하는 본인 부담금의 제로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232)"라는 설명도 하고 싶었지만 앞으로 또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오겠지라는 생각에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제주도에서 밀어부치고 있는 영리병원의 부당함에 대해서만 씩씩대며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깨달은 것이 있었다. 진짜 진보를 꿈꾸는 상상력과 용기를 보여주는 작은 첫걸음은 이런것일지도 모른다는 것, 분명 이번 선거에서 어머니는 예전과는 다른 선택을 하시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에서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에서 나는 희망을 보고 있음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급증이 아니라 긴 호흡이다. 일이년의 단기전망이 아니라 적어도 10년을 내다보는 긴 시야다. 그리고 세계사의 대 전환에 걸맞는 근본적인 성찰과 고민에서 지금 당장의 실천 과제들을 찾아낼 줄 아는 안목이다. 말하자면, 시대는 우리에게 장기전의 지배를 요청한다"(36) 진보를 꿈꾸는 상상력,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고 더디더라도 뚜벅뚜벅 한걸음씩 나아가야함을 잊지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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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의 아이러니.. 자기성찰적인 면에서 보자면 이명박정부의 탄생은 인민이 극우보수독재세력을 넘어 소위 진보적 성향을 지녔다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탄생시켰지만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려 하지 않은 채 먹고사는 문제와 경쟁의 욕망에 사로잡혀 스스로 세운 마몬의 제단이다. 그리고 사회적 측면에서 보자면 권력이 독재의 주먹에서 자본의 힘으로 넘어갔고 그 중간에서 이행과정을 충실하게 수행한 세력은 김대중, 노무현 세력이었다. 더욱 극단적인 모습의 자본화를 진행시킨 결과가 이명박 정부임은 노무현 정권이후의 당연한 수순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당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진보세력은 성찰과 반성, 그리고 나아갈 방법을 제시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은 일정한 시간적 흐름 속에서 미세한 변화만 느껴질 뿐, 대체적으로는 지금껏 들어왔고 그렇다 생각해왔던 이야기들이다. 진보세력의 주장이 지금껏 큰 의미차원에서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우경화된 사회에서 그들의 주장이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오랫동안 이야기했는데도 알아듣고 이해해주는 사람 역시 늘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읽는 내내 옳고 또 옳은 이야기라 생각했지만, 내용에 있어 새로움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런 좋은 이야기들이 왜 일반 서민과 인민들에게 쉽게 접근하고 스며들지 못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무상급식, 무상의료, 복지확대에 대해 긍정하면서도 비현실적이라 쉽게 포기해버리는 인민들, 4대강 사업은 분명 대재앙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임이 분명한데 이를 적극 찬성하는 이들은 공사지역인근의 평범한 지역서민들이라는 아이러니한 현실.. 대체 우리의 인민들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기제가 더이상의 사고를 가로막고 있으며, 진보는 왜 이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는가.. 이책 안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여전히 의문으로 시작하여 의문으로 마무리되는 것을 보며, 누군가가 이야기한 진보의 정의가 생각났다. "진보는 비현실적인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일이다." 애초부터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내재화시켰기 때문일까?
노무현에 대한 애증역시 곳곳에서 묻어난다. 노무현이 망가뜨린 진보의 길이기에 더욱 비판하고 뛰어넘어야 할 일이지 않을까 싶지만 이 책은 노무현의 유작 <진보의 미래> 서평까지 실으면서 그에 대한 애증을 표현한다. 물론 현대사에 있어 노무현의 가치는 무게가 만만치 않고 그를 비판하여 뛰어넘어야 하지만, 애초에 그를 뛰어넘어 멀찌감치 갔어야 할 진보의 현위치에서 아직도 그를 의식한다는 것은 진보의 취약한 대중성을 반증하는 일이기도 하며, 그가 대통령시절 벌인 정책들과 행동들 그리고 진보가 제시하는 이상향적인 정책과 대안들 사이에서 현실성과 비현실성을 비교, 고민하는 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재적 분위기에 의한 것이든 자본의 광대한 위력에 의한 것이든 한국이라는 여전한 우경화 사회속에서 진보의 현실적 한계가 분명하게 느껴지는 모습이다.
여전히 답답하다. 나 역시 진보를 지지하고 나의 삶 속에서 조금씩이나마 실천하며 살아가려 하고 있지만, 여전한 한계적 상황과 진보세력의 한계적 모습 속에서 과연 해결책은 만들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은 사실이다. 지금 한반도는 정체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남과 북의 정권들이 전쟁의 위협까지 유발시켜 체제유지에 골몰하고 있는데, 인민들은 여전히 그 분위기에 불안감만 느끼며 그들의 의도대로 생각하고 움직이니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생각이 한없이 가벼워진 이들은 내가 살고 있는 삶에 대한 차분한 고민보다는 곳곳에서 펼쳐지는 말초적 흥분에 쉽게 동화되어 두뇌의 작동을 스스로 정지시켜버렸다. 그나마 피었던 진보의 싹이 성장에 필요한 물과 양분을 공급받지 못해 시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여전히 질문으로만 존재하는 우리의 고민. 제목에 적힌 진짜세상은 아직 꿈 속의 세상마냥 현실성이 없어보이는 요원한 세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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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김상봉은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에도 여전히 진보의 제일차적 과제는 자본주의 사회의 극복에 있다고 단언한다. .. 다음으로 박노자는 혼란스러운 진보의 개념을 구체적인 역사 사례속에서 재구성하고 있다. ..이대근의 물음은 단호하다. 지난 10여년간 집권세력이었던 이른바 민주화정부,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진보'였는가?' 그는 그 두 정권이 서민들에게서 희망을 빼앗아 간 신자유주의 '보수 정부'였음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과 이들의 차이는 질이 아니라 양적인 것에 불과하므로 이들이 주장하는 '민주대연합'론은 허구라고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장석준은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하는 역사의 큰 흐름을 논하고 있다. 2부 강수돌은 가장 중요한 사회적 쟁점인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면서, 비정규 노동자를 없애자고만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적일 수 없다고 본다. 줄이되 정규/비정규 노동의 양과 질을 전면적으로 재편하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박상훈은 여전히 이념과 운동의 언어에 매몰되어 있는 진보정치 세력을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리더십과 정당 제도 측면에서 새로운 모델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마지막으로 한재각은 이명박식의 '사이비 녹색'처럼 진보 세력에게도 환경문제가 하나의 장식품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3부 손호철은 '민주'대연합은 '민주당'연합일 뿐이며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진보대연합'이라고 주장한다. 그는..'단순히 MB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김대중·노무현의 양극화 시대'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진보 앞에 있음을 논증하고 있다. 노회찬은 단순한 반MB연대를 넘어 반MB'대안'연대만이 이명박 정부를 극복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리얼진보>/강수돌 외/레디앙/2010.2 서문에서 서문을 한 차례 읽고 이대근(<경향신문>논설위원)의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진보'였는가'를 펼쳤다. 민주화의 대표격이랄만한 두 이름이 '신자유주의 보수정부'였다는 공공연한 비밀을 재빨리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민주 개혁 세력에 대한 냉담한 반응을 주시하며 시작된다.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이 발간한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평가는 국가 부도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 문턱까지 진입한, 성공한 10년이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으례 그랬던것처럼 한국은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자고, 가난한 사람은 많고 자살률은 높은 우울하고 행복하지 않은 사회라는 정반대의 통계를 제시한다. 논지는 분명하다. '민주화세력'이 가난한 서민과 보통 시민을 전혀 우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김대중 정권은 집권 후반기 개혁 후퇴로 일관하면서 재벌의 독점과 집중을 도왔고, 한국을 외국 자본의 투기장으로 변모시켰으며, 생산적 복지개념 역시 최소한의 복지에만 머물렀다. 김대중의 개혁포기가 시장주의 이념을 급속도로 퍼트렸고 노무현은 아예 시장에 권력을 내주었다고 말한다. 그의 좌파든 신자유주의든 국익에 도움만 된다면 상관없다는 정체성으로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는 정권"이라는 이미지만 만들어 냈다고 했다. 이명박 정권의 친기업 정책, 무한교육 경쟁, 공기업 민영화 확대, 각종 규제 완화 등 신자유주의에 가속도를 붙인 일이 지난 10년의 정권과 대단한 차이를 둘 만하지 않다는 점은 '민주 대 반민주'구도로 민주세력의 선을 강조할 수 없다는 생존전략의 실패요인으로 나아간다. 아마도 민주당의 비지니스는 반MB가 아닌 지난10년의 정권에 대한 반성(왜 서민들의 삶을 개선하지 못했는지)으로 시작되야 한다는 충고인듯 싶다. 진보적 시민, 다수의 서민들을 묶을 수 있는 진보정치야말로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고 극복하는 정확한 해답이라고 말이다. 의무감처럼 받아보던 한겨레신문도 끊고, tv가 없으니 하물며 김연아의 메달 소식에도 뚱하고, 매일 책 속의 미로같은 글씨나 헤매고 다니는 이 아줌마에게 정치적 견해란, '그놈이 그놈이지'란 허무와 방관에 가깝다. 내게 진보란 아이에게 몸에 좋은 야채를 먹일만한 새로운 아이디어만큼도 의미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나를 조금 슬프게 했다. 다시 되물었다. '왜 그 놈이 그놈이지?' '정권이 바뀌어도 왜 그대로지?' 이 논설에 의하면 민주주자들이 켜놓은 좌측 깜빡이도 별다른 의미를 생산해내지 못한 결과 때문인가? 내가 그 어떤 정권에서도 우대받지 못했던 보통 시민과 서민이기 때문인가? 나는 내 일상 어디에서 정치의 진보를, 혹은 후퇴를 발견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그래서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자조하고 만다. 갑론을박 정치인들을 욕할 만큼의 의지도 내겐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은 분명했고, 이 논설은 사실 '의식없는 나'를 더 기운빠지게 만들었다. 나는 김대중이, 노무현이 최고의 공직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을 놓았던 바보이기도 했다. 노무현의 탈권위주의, 권력기관의 탈정치화, 지역 균형발전의 추구, 남북 화해 노력 등의 업적에 오히려 중심을 잃은 사람이다. 그가 추구했던 신자유주의 노선이 그의 정신에 위배되지 않기만을 빌면서 방관했던 국민이다. 지난 10년의 민주정권에 잘못이 있다면 그건 누구보다도 민주당이 절감하고 떠안아야 될 일이지만, 기득권만 선점하려는 거짓 얼굴로는 어느 누구도 설득하지 못하며 '민주'와 '평등'을 갈망하는 진보적 시민을 공허하게 할 게 분명하다. 그래서 결국 이런 목소리는 애정어리지만 다분히 이상적이다. 내가 아는 정치라면, 그게 누구든 반성을 모르는 무뢰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치적 허무주의로 흐르리란 것을 잘 알면서도 난 이 글을 시작했고 '진보'에 대한 갈망에 목소리를 보태고 싶어졌다. 비록 무국적 거리에 내던져진 아이를 안고 있는 아줌마이지만 누군가 우리가 앉아 쉴만한 들마루에 걸레질이라도 해주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