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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뉴욕발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 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고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역시 정부로부터 100억달러라는 막대한 금액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골드만삭스는 지난 한 해 110억달러의 수익을 내며 월가의 새로운 지배자로 부상했고 정부 지원을 받은 지 불과 9개월 만에 정부지원금 전액을 상환해 금융위기를 초고속으로 탈출했다. 그러나 골드만삭스의 이러한 성공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우리나라의 ‘진로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보여준 행태를 비롯해 최근 그리스 국가 부채 문제에 대한 불법 개입 등으로 도덕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돈 냄새가 나는 모든 것에 무자비하게 달려드는 흡혈 문어’라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골드만삭스에서 외환 트레이더 수석부장으로 근무했던 리사 엔드리치가 저술한 ‘골드만삭스:금융제국의 탄생과 몰락, 그리고 부활’은 140여년 전 한 작은 가족회사로 출발하여 오늘날 전 세계에 3만1000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1조달러의 자금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으로 성장한 골드만삭스의 독특한 기업문화를 중심으로 골드만삭스의 진면목을 소개하고 있다. 독일계 유대인으로 미국으로 이민온 마커스 골드만이 1869년 한 건물 지하의 비좁은 공간을 얻어 채권 매매 중개 사업을 시작한 이후 골드만삭스는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1999년 5월 기업을 공개하기 전까지 유한합자회사를 유지해왔다. 골드만삭스가 오랜 세월 동안 합자회사를 고집해온 이유는 회사의 주인인 파트너들이 토론을 통해 의사 결정을 하는 합자회사야말로 이익 추구의 가장 적합한 형태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골드만삭스가 지속적인 성장을 이룩해온 저변에는 바로 이러한 합자회사의 특성에 기인한 독특한 기업문화와 파트너들의 열정과 헌신이 있었다. 골드만과 삭스, 그리고 와인버그 가문이 주축이 된 파트너들은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회사 문화와 함께 고객을 이롭게 한다는 서비스 정신 그리고 우직하게 장기적 관점을 견지한다는 핵심 가치들을 정립해왔다. 장기적 관점에서 파트너들이 말하는 성공은 몇 해 혹은 분기별 실적이 아니라 자신들이 물려받은 것보다 더욱 튼튼한 사업체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파트너들은 이익의 대부분을 재투자하고 회사의 미래를 위해 헌신했다. 직원들 또한 자신들도 언젠가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골드만삭스에는 절제와 겸손이 있었다. 이러한 문화로부터의 이탈은 곧 위기로 이어졌다. 1918년 골드만삭스에 합류한 워딜 캐칭스는 자신의 폭넓은 인맥을 활용해 막대한 성과를 올렸다. 1920년대 주식시장은 폭발적인 상승세를 이어갔고 마침내 파트너 대표가 된 캐칭스는 안하무인이 돼 모든 것을 독단적으로 결정했다. 1928년 12월 캐칭스는 골드만삭스트레이딩컴퍼니(GSTC)라는 투자신탁회사를 설립하여 막대한 투자자금을 확보했다. GSTC의 주가는 급등했고 캐칭스는 자산규모를 엄청나게 키워나갔다. 그러나 1929년 10월 주가 대폭락과 함께 GSTC의 주가는 처참하게 무너졌고 골드만삭스의 명성은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잡역부 보조로 입사해 1930년 대표파트너에 오른 시드니 와인버그는 GSTC가 초래한 폐허 위에서 골드만삭스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1999년 5월 골드만삭스는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가진 파트너 문화에 종지부를 찍고 기업을 공개했다. 고객을 이롭게 하고 후손들에게 보다 튼튼한 회사를 물려주겠다는 장기적 비전이 사라진 곳에는 탐욕이 판을 쳤고 골드만삭스는 이제 흡혈문어가 되어 돈을 향해 무자비하게 달려들고 있다. -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ceo@bookcosmo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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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업계에서는 너무나 유명한 골드만삭스. 그들의 기업문화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을까 해서 집어들었다. 그런데 웬걸? 온통 골드만삭스를 찬양하는 글로만 채워져 있어서 읽기가 조금은 거북하다. 줄거리는 특별한 내용이 없다. 골드만하고 삭스 가문이 합쳐서 사업을 시작했고 이후 승승장구 했다가, 자만으로 인해 휘청대다가 다시 화려하게 부활을 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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