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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책, 무서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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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있는 몇편의 단편들중 이미 읽은것도 있지만 이장욱 작가의 문체를 좋아해서 서슴없이 읽었더랬다. 이번 책은 그야말로 부재하는 유령의 존재를 하나의 모티브로 여러가지 이야기를 만들어낸것같다.   앞전에 읽었던 임영태의 소설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을 다시금 생각나게한 책이었다. 임영태의 소설은 과거시점과 현재시점 그리고 살아서 생활이라는걸 하는 나와 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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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있는 몇편의 단편들중 이미 읽은것도 있지만

이장욱 작가의 문체를 좋아해서 서슴없이 읽었더랬다.

이번 책은 그야말로 부재하는 유령의 존재를 하나의 모티브로

여러가지 이야기를 만들어낸것같다.

 

앞전에 읽었던 임영태의 소설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

다시금 생각나게한 책이었다.

임영태의 소설은 과거시점과 현재시점 그리고 살아서 생활이라는걸 하는

나와 죽은 사람이 동시대에 교차하는 장편이라면

이장욱의 존재들은 확실히 부재하는것도 부재하지 않는것도 아닌

그속에 삶과 죽음이 동시에 교차하는 거라고 난 이해하고 싶다.

 

'고백의 제왕', '변희봉' 이라는 두 단편은 이미 문단에서 극찬했고

좋은 소설집으로도 펴낸건데 인쇄매수를 늘리기 위해 출판사에서

같이 끼워 넣은건지 ㅋㅋ

 

뭐 어쨌든 좋다.

앞으로도 재미있고 유쾌한 상상력의 그의 글을 기대한다.

 

YES마니아 : 골드 w*****7 2010.04.2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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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밴…히봉이라고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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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아련한 감동을 준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서는, 나에겐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워낙 눈물이 많고, 마음이 약해 빠진 녀석이라, 질질 잘 울고 쉽게 울컥하긴 하지만, 내 기억 상 문학작품으로 이처럼 애매모호한 감동을 느낀 적은 별로 없었던 듯하다. 난 역시 신파에 약하다.   이장욱이란 작가를 또 이제야 알았다. 무지하면 의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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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아련한 감동을 준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서는, 나에겐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워낙 눈물이 많고, 마음이 약해 빠진 녀석이라, 질질 잘 울고 쉽게 울컥하긴 하지만, 내 기억 상 문학작품으로 이처럼 애매모호한 감동을 느낀 적은 별로 없었던 듯하다. 난 역시 신파에 약하다.

 

이장욱이란 작가를 또 이제야 알았다. 무지하면 의외로 즐거운 점도 있으니, 이렇게 느닷없이 괜찮은 작가의 괜찮은 작품을 접할 수 있다.《칼로의 유쾌한 악마들》을 들어본 기억은 있지만, 정작 작가는 알지 못했다.

 

충동 구매한 책이다. 사전지식 없이 소설 읽기를 즐기는 편이다. 무지를 덮는 변명임에 틀림없지만, 또 매력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정글을 탐험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장욱의 소설은 나른하다. 또 무참하다. 판타지와 미스터리를 섞어놓은 듯한 스토리 전개는 환상과 현실을 구분키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 중얼거리듯 이어지는 독백과 대화는 삶의 절대고독과 해프닝 사이를 위험하게 오간다.

 

〈동경소년〉의 ‘유끼’. 그녀의 죽음 같지 않은 죽음을 애써 지켜주는 ‘그’. 그리고 그런 그를 마치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처럼 살펴보는 주인공과 일행들. 그 사이 고독은 점차 환상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너무나 평범하여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작가 와따나베 포우처럼 유끼와 그는 흔적도 없이 이 세상에 존재하다, 그렇게 사라진다. 남은 것은? 오직 살짝 느낄 수 있는 흔들거림 뿐이다.

 

〈변희봉〉역시 끊임없이 존재에 대해 의심을 품는다. 오직 ‘만기’와 만기의 부친만이 알고 있는 배우 변희봉. 그의 존재는 어디에서도 부정당하지만, 분명 존재하고 있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 그리고 삶의 척박함으로 이혼마저 당한 만기에게 변희봉은 자신과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어디에든 존재하지만, 오직 특별한. 때문에 동대문운동장에서 날아오는 야구공은 수많은 이 땅의 만기를 위한 역전 만루 홈런일 수밖에. 슬쩍 울컥하게 만든 작품이다.

 

〈고백의 제왕〉은 시종일관 불편함과 외면으로 일관하다, 급작스런 고백으로 끝맺는다. 결국 인천의 장례식장까지의 거리만이 우리가 헤아릴 수 있는 거리일 뿐, 누구도 쉽사리 바다로 나아가지 못한다. 고백의 제왕 ‘곽’을 두려움과 호기심과 동경과 환멸의 기억으로 포장시킨 주인공과 동기들은 결국 곽이 그 누구보다 자신들과 흡사한 인간임을 깨닫게 된다. 삶은 그렇게 환멸적인 나와의 만남인 것.

 

〈아르마딜로의 공간〉은 누가 누구에게 어떤 영향으로 삶을 간섭하는지, 도무지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이 시대를 보여준다. 모든 것이 인과 관계에 얽혀 있다는 종교적, 때론 철학적 의미를 부여할 것 까진 없어 보인다. 다만 끊임없이 깨어있지만, 깨어있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잠들 수 없는 우리를 비쳐줄 뿐이다.

 

죽은 아내의 유령과 함께 떠난 유럽여행. 남자는 끊임없이 서성거리고 중얼거린다. 의미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행위. 잠들지 못하는 밤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순종. 목적이 목적일 수 없는 삶 속에서 필요한 것은 어쩌면, 상대에게 내 ‘말’을 온전히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 〈기차 방귀 카타콤〉은 조절되지 않는 괄약근의 서글픔이 전해지는 ‘오래 묵은’불면을 보여준다.

 

‘목란’은 낡고 오래된, 하지만 외진 곳에 위치한 모텔. 그 곳엔 죽음이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죽음은 축적되고, 다시 그 위에 한 겹을 쌓으려는 이들이 찾아온다. 하지만 어느 새 죽음과 삶은 섞이고, 그 황량한 풍경은 프라모델을 조립하는 아저씨들의 등 뒤로 먼지처럼 내려앉는다. ‘고철동’의 낡고 구식의 느낌을 없애기 위해 ‘목란동’으로 바뀌었듯. 역무원의 알 듯 모를 듯한 미소가 외로움 때문이듯, 죽음을 이끌고, 죽음을 위해 당도한 이들에게 정작 죽음은 쌀쌀맞게 바라만 본다. ‘데쓰’는 도망가고, ‘씨발놈아! 살아야지!’를 외치는 고희성은 낮은 목소리에 오히려 더 익숙하다. 공부하러 모텔을 찾아와 죽음을 쌓은 여고생들의 ‘명랑하지만, 책을 읽는 듯한 어조’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목란은 너무 쉽게 〈곡란〉으로 바뀔 수 있으니.

 

불면의 밤이 이어지면, 결국 위장된 잠과 철저한 외면 만이 남는다. 서로의 불면과 서로의 죽음을 파악하지 못한 채 사람들은 제각각의 불면을 긍정하고, 헛된 공간 속에 의미를 쌓아두려 애쓴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는 이 책에서 가장 작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작품이다. 기억을 지우기 위해 아내를 찾아오는 남편의 유령과 기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기억을 부정하는 딘과 애슐린은 행복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고독은 인공위성일까, 온전한 별일까. ‘잠든 척 눈을 감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고독이다.

 

〈안달루씨아의 개〉의 ‘옹’은 바지에 오줌을 지린다. 살아있다. 하지만 그 살아있음은 오직 죽음으로만 확인된다. 아내의 묘를 찾아가는 그의 여정엔 ‘인수 애비’처럼 황량한, 의미를 알 수 없는 삶들이 조여든다. 그의 길을 막은, 무섭도록 큰 개 역시 그의 삶이 지려버린 오줌을 통해 그를 망각한다. 그가 친구 ‘박’에게 맞았든, 혹은 때렸든 그 기억은 중요치 않다. 그를 추적하고 감시하는 ‘개미’들이 여전히 뻗어가는 그의 삶을 바라보고 있다면, ‘침엽수’와 같은 그의 살아있음이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단편 하나하나가 전해주는 애매모호함과 살짝의 울컥, 그리고 아련함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공간의 대책없음을 일깨워준다. 누구도 편하지 않은 그 편안함에 대한 긍정. 그것이 결국 불면의 밤을 정당화시켜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척 아껴가며, 그러나 참 빨리 읽어 내려간 소설이다. 당연히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적어도 내 생각엔, 참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된다. 모든 이들이 작가의 바람대로 편안하게 잠들었으면 좋겠다.

YES마니아 : 로얄 w*******7 2012.02.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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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혹은 거짓, 그 불쾌하고도 짜릿한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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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 내 마음은 편해진다. 내 방문을 걸어 잠그고 컴퓨터를 켬과 동시에 난 자유를 얻는다. 딱히 숨기고자 하는 바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느 누구와도 공유치 못할 비밀이 내겐 많다. 아마도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우린 은밀한 유혹을 받는다. 아니, 발설의 기쁨이 적지 않기에 우린 때때로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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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 내 마음은 편해진다. 내 방문을 걸어 잠그고 컴퓨터를 켬과 동시에 난 자유를 얻는다. 딱히 숨기고자 하는 바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느 누구와도 공유치 못할 비밀이 내겐 많다. 아마도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우린 은밀한 유혹을 받는다. 아니, 발설의 기쁨이 적지 않기에 우린 때때로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드러내고픈 욕망에 휩싸인다. 그러나 분위기가 무르익고 모두가 내 이야기를 듣고자 귀를 쫑긋 세운 순간 우리는 고민에 빠져든다. 나의 발언이 곧 나 자신을 힘겹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독히도 계산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침묵을 한다거나 시덥잖은 이야기로 어색한 마무리를 지어본 경험, 누구나 한 번 즈음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 진실인지 저자는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허황된 이야기들을 따르다 보면 그 중 하나는 진실일 거란 생각이 든다. 그 생각은 바람에 가깝다. 내 시간을 들여 주목한 이야기가 모조리 거짓은 아니길 바라는하지만 진실은 끝끝내 수면위로 제 고개를 디밀지 않는다. 저자의 치밀함이 이런 것일까? 진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과 숨기고자 하는 욕망이 극중 인물들 내면에서 부딪힌다. 한편 독자들은 고백을 믿어 버리고픈 마음과 미심쩍은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이야기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도 이와 같은 긴장감이 유지된다.

가장 강렬한 이야기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고백의 제왕을 꼽고 싶다.

 

모두들 숨을 죽였다. 더듬더듬 말을 시작했지만, 말이 이어질수록 뜻밖에 달변이었다. 모두들 이야기에 몰입했다. –p86

 

고백의 제왕으로 군림(?)한 곽의 화법은 사실 누군가의 주목을 받을 만큼 뛰어난 게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그의 고백에는 무언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문제는 그 힘이 인간적인 매력이 아닌 다른 것이란 사실이다. 자극적이기 짝이 없는 식당 아주머니와의 첫경험, 동기 J, 선배 Y에게 안겨준 쓰디씀, 심지어 제 누이를 자살로 몰고 갔다는 이야기까지, 글 아닌 그의 목소리를 통해 만일 이 모든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난 아마 온몸 가득 절로 돋는 소름을 주체하지 못했을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혹시나 싶은 마음이었던지 여기에 더욱 강렬한 무기를 드리운다. 로베스피에르와 히틀러의 죽음에 관한 그의 열광(?)이 바로 그것이다.

 

곽의 마지막 말에 우리는 일제히 얼굴을 찌푸렸다. 뭔가 불쾌한 느낌이 우리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그게 기요띤의 무시무시한 칼날이 떠올랐기 때문인지, 광장의 따사로운 햇살과 몸에서 떨어져나간 목의 대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걸 묘사하는 곽의 표정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지엽적이지 않은가? 하고 누군가 정당한 문제를 제기했지만, 우리는 아직 그 광장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제 목을 공연히 쓰다듬기까지 했다. 곽이 그런 우리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기요띤은 원래, 고통 없이 죽음을 맞게 하려고 발명된 도구였다더군…… -p96

 

곽의 고백은 아무런 카타르시스도 가져다 주질 못한다. 청자들의 마음 속에서 피어난 불쾌함이 고백에 혹 조금이라도 담겨 있을지 모르는 진실마저 압도해 버린다. 그때부턴 무엇이 진실이요, 무엇이 거짓인지 따위를 따지는 일은 불필요해진다. 그저 이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 지고픈 마음이 커질 뿐이다.

 

그 외의 수록된 작품들 역시 일관되게 진실의 무의미성을 말하고 있다. 사라져버린 사랑 유끼(<동경소년>)나 끝끝내 정체를 알 수 없으나 주인공의 마음 속에서만은 열렬히 살아 있는 인물변희봉>, 제각각 살지만아르마딜로 공간이라는 배경을 공유하는 사람들 그리고 불면증에 시달리는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등장인물들. 어느 정도의 진실을 품고는 있으나 깊이 들어갈수록 거짓에 맞닿아 있는 그들의 진실이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저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팠던 걸까? 진실을 끈질기게 강요하면서도 스스로를 거짓이라는 베일로 감싸고 있는 현대인을 풍자하려 들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의 나는 진실된 실체일까, 아니면 거짓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 속에 파묻히다 보니 나도 내가 누군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날 둘러싼 거짓을 진실이라 믿으며 살았던 건 아닌가 싶은 마음이 자꾸만 든다. 곽의 고백이 불러 일으킨 불쾌함이 나를 향하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이 자꾸만 날 괴롭힌다.

q*****2 2010.06.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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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의 제왕 - 변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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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존재한다고 믿었던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았던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작가 ‘이장욱’에 주목해보시라. 그는 환영, 실체 없는 비존재, 유령적 사건 등의 모티프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했던, 혹은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익숙했던 물체나 사건의 실체를 완전히 뒤바꿔놓음으로서 그것을 존재하지 않게 만들어버린다.   그 중 대표 격인 작품이 「변희봉」이다. 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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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존재한다고 믿었던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았던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작가 ‘이장욱’에 주목해보시라. 그는 환영, 실체 없는 비존재, 유령적 사건 등의 모티프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했던, 혹은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익숙했던 물체나 사건의 실체를 완전히 뒤바꿔놓음으로서 그것을 존재하지 않게 만들어버린다.

 

그 중 대표 격인 작품이 「변희봉」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인 변희봉을 소설 속으로 끌어들여 낯선 인물로 만들어버린다. 작품 속에서 “아무도 볼 수 없는, 보여서는 안 되는, 그런 역할(54쪽)”을 맡은 변희봉은 오직 주인공 ‘만기’만 알고 있는 인물이다.

이 작품은 ‘나’가 만기의 경험담(변희봉을 본)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만기는 술에 취한 채로 변희봉을 본다. 만기는 시장 좌판에서 생선을 파는, 결혼식장 주례를 서는 변희봉도 본다. 그러나 방송작가인 전처도, 결혼식장 사회자도, 심지어는 청자인 ‘나’ 조차도 변희봉을 모른다. 만기는 사람들이 변희봉을 모르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검색엔진을 이용하지만 변희봉에 대한 검색결과는 없다. 만기는 자신이 이름을 착각했던 거라고 의심해보지만 이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변희봉을 안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자, 만기는 변희봉이라는 사람이 정말 없는 건 아닐지 의심을 한다. 이런 그의 의심이 후반부에서 깨진다. 죽기 직전의 아버지가 인공호흡기를 통해 던지는 대사가 의심을 깨는 역할을 한다. “만기야…… 니 밴…… 히봉이라고…… 아나?”

 

작품 속 배경인 포장마차 안 TV에서 벌어지는 야구 게임이 만기의 이야기와 함께 진행된다. 올 시즌 꼴찌인 롯데와, SK의 경기. 연장 11회 말 2사 주자 만루에 스코어는 SK의 리드로 3대 1. 김광현이 투구를, 이대호가 타구를 한다. 친 공이 까마득하게 날아가다가 사라져버린다. 불빛들이 화면 중앙으로 몰려들어 부딪히면서 보이지 않았던 건데, 카메라 역시 공을 놓친다. 심판은 파울 선언을 하고 롯데는 진다. 과연 공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질문은 마지막 장면에서 해결된다. 만기와 ‘나’가 포장마차를 나오는데 동대문 운동장 쪽의 하늘에서 무언가가 날아온다. 야구공이다. 날아왔을 만한 곳이 없는데 분명 발 앞에서 튄다. 게임에서 사라진 바로 그 야구공이다.

 

작품 속에서 변희봉과 야구공은 공통점을 갖는다.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단 거. 그것도 전혀 엉뚱한 곳에서. 실체가 없던 물체가 다른 어떤 곳에서 실체를 찾는다. 이는 희망의 복귀를 뜻한다. 우리는 어떤 것이 존재하리라 믿고, 만일 그 믿음이 깨졌을 땐 혼란에 빠지고 희망을 잃는다. 그것의 존재가 다시 눈앞에 나타났을 때 -설령 엉뚱한 곳에서일지라도- 우리는 희망을 되찾는다. 희망은 귀가한다.

 

a*******0 2011.01.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