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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부턴가 '막스 플랑크'라는 이름이 갑자기 낯설지 않게 되었다. 노벨상에 짙은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가 기초과학연구원(IBS, Institute for Basic Science)를 세우면서다. 연구단장들에게 최고 연 200억 원의 연구비를 몰아주면서 오히려 기초과학의 발달에 저해가 된다는 원성을 받고 있는 ('선택과 집중'을 얘기하는데, 기초 과학에는 '선택과 집중'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 바로 그 기관이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를 모델로 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나라의 IBS가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역할을 하도록 조직되었고, 그렇게 운영되는지, 그만한 역할을 할 지에 대해서는, 어쨌든 두고봐야 하는 것이고, 또 다른 관심은, 그렇다면 '막스 플랑크'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기에 이 훌륭한 조직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갔을까 하는 것이다. 대충 알고 있는 것으로는 '양자역학의 아버지' 쯤 되고, 과학의 새로운 진리는 설득에 의해서 관철되는 게 아니라 구세대가 무덤 속으로 가면서 관철된다는, 과학에 있어 촌철살인과도 같은 말을 남긴 사람이라는 것 정도. 또 하나를 더 들자면, 그가 바로 아인슈타인을 발굴해낸 사람이라는 것이다(스위스 특허청 직원으로 1905년, '기적의 해'에 놀라운 논문들을 발표한 아인슈타인을 인정해서 베를린 대학교로 데리고 온 사람이 바로 막스 플랑크다). 『막스 플랑크 평전』은 그 막스 플랑크가 어떤 사람인지, 그가 태동시킨 양자역학이 어떤 것인지를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평전'이니 당연한 것일 수 있지만, 그렇게 좋은 평전이 흔한 것은 아니다). 막스 플랑크라는 인물에 대해서 찬사만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약점과 실수까지도 그대로 인정하면서 지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는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양자 역학의 의미에 대해서, (역시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은) 막스 플랑크의 철학적 견해에 대해서까지 저자는 소상하게 쓰고 있다. 말하자면, 막스 플랑크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막스 플랑크를 일컫기를 양자도약을 발견함으로써 양자역학 시대를 여는 단초를 마련하여 근대를 종식시켰다고 한다. 비록 그는 고전물리학의 세계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하이젠베르크 등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물론, 양자역학에 대해 받아들이기를 꺼려했지만(아인슈타인처럼), 그는 학문의 발달을 뒤로 돌릴 생각은 없었으며, 오히려 자신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학문마저도 후원했다. 막스 플랑크는 또한 뛰어난 과학행정가였다. 베를린 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 수많은 학회와 협회, 연구소에 관여를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카이저 빌헬름 협회가 막스 플랑크 협회로 이름을 바꿔 달게 된 이유가 바로 그의 뛰어난 과학적 업적 때문만이 아니라(과학적 업적으로만 따지자면 다른 과학자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헌신적으로 그 조직을 이끌고, 다시 살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살려낸 조직은 지구 반대편의 작은 나라에서도 그 조직을 본 뜬 조직을 만들게까지 한 것이다. 그의 이런 업적이 더 감동적인 것은 그의 개인사의 비극이 겹쳐지기 때문이다. 그의 첫번째 아내는 일찍 세상을 떴고, 그의 형, 그의 큰 아들은 전쟁에서 죽었고, 쌍둥이 딸들은 모두 출산 중에서 숨졌고, 둘째 아들은 1944년 히틀러 암살 모의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당했다. 그런 비극적 삶 속에서 이뤄낸 업적은, 비록 그가 엘리트 위주의 귀족주의의 사고에 사로잡혀 있었고(그는 바이마르 공화국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에 대해 별로 눈을 뜨지 못했다는 결점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이례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적극적으로 독일이 일으킨 세계전쟁에 반대하지 않았다. 베를린 대학교 총장으로 맞이한 1차 세계대전에서는 오히려 청년들에게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연설을 했고(비록 그의 위치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2차 세계대전 때는 히틀러와 나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동조를 하지 않았지만, 연구소를 지키기 위해 유대인과 비아리아인들을 쫓아내는데 침묵을 지켰다(여전히 그의 위치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만큼 정치적으로는 그의 삶에서 감동적인 요소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에서 볼 수 있듯이 악(惡)은 평범한 것에 존재했다. 그러므로 막스 플랑크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학문과 과학을 지키기 위한 작은 양심 팔기 정도였다고 인정할 수는 있어도, 그를 옹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평전이 솔직하다는 것이다. 그런 막스 플랑크를 모두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막스 플랑크는 훌륭했던, 모순적인 과학자였다. 하긴 모순적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저자는 막스 플랑크가 처해 있던 모순, 그래서 그가 결합하고자 했던 세계에 대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게 막스 플랑크가 처했던 세계와 그의 삶을 요약한다. "플랑크는 자신의 학문을 예술로 이해하고 보여주려고 했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그가 두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 했다는 것을 우리가 알도록 해주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플랑크의 삶은 카이저 빌헬름 시대적 사고 방식이 지배하던 보수적이고 귀족적인 시기를 바이마르 공화국의 전위적이고 민주적인 실험과 결합했다. 물리학적으로 보면, 플랑크의 이론은 고전역학의 객관적 확정성을 양자 세계의 창조적 불활정성과 연결했다. 수사학적으로는, 플랑크는 일상의 체험세계와 표상세계를 과학의 세계상 안에 있는 개념의 엄밀성과 결합했다. 그리고 철학적으로는 사실의 인과적 질서에 관한 계몽적 사상을 스스로 선택한 삶의 태도를 위해 자유롭게 결정하는 낭만주의적 관점과 결합했다. 그는 이 때 나타나는 피할 수 없는 모순을 의연하게 감내했다. 이것이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 할 수 있다." (401~402쪽) (2015.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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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물리학을 말할때 가장 기본이 되는 상수인 h를 발견한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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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플랑크 평전 / 에른스트 페터 피셔, 이미선 옮김 / 김영사
"정말 심각한 외적 부담이 있다고는 해도 우리 두 사람의 관계를 어둡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관계는 저 아래쪽에서 무엇이 일어나건 상관없이, 이 관계가 갖고 있는 오랜 아름다움과 순수함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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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의 과학교육은 실험과 관찰이 아닌 암기 위주였고 고등학교가 문과와 이과로 나뉘어 특히나 문과친구들은 과학에 대한 관심은 멀어졌다. 과학은 늘 어려운 과목이었고 재물포( 재땜에 물리 포기했어)는 물리선생님의 단골 별명이 되어버렸고 학창시절에 충분한 고통을 안겨줬다. 내가 과학에 대한 배타심을 너무 직설적으로 얘기했나? ^^
물리를 배워본 사람이라면 플랑크상수가 얼마인지는 몰라도 그 이름은 기억할 것이다. 1900년 막스플랑크가 고온물체로부터 방출되는 열복사의 세기분포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상수로 h로 표시하는데 그 후 양자역학의 확립과 함께, 불확정성원리에 의한 서로 상보적 양은 각 불확정성의 곱이 h보다 커지도록 하는 것 외에는 동시에 측정되지 않는다는 점에 그 기본적 의미가 있으며, 물질입자의 입자성과 파동성의 이중성을 보증하는 상수로서, 미시적인 세계의 본질에 관계하는 중요한 양으로 간주되었다. 헉~ 사전에서 발췌했는데 무슨이야기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묻게 된다. 그래서 막스 플랑크가 누구야? 라고..
이 위대한 과학자의 과학적인 업적을 담은 <막스 플랑크평전>을 읽었다. 천재물리학자였지만 삶이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세차례의 큰 전쟁을 겪었고 아내는 병으로, 딸들은 출산을 하며 잃고 형과 큰아들은 전쟁에서 죽고 작은 아들은 처형을 당해 네자녀를 모두 먼저 떠나보내는 슬픈 가족사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과학연구에 몰두하는 훌륭한 학자로서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나치치하에서도 유대과학자들을 옹호하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등 후배들에게 존경받을 수 밖에 없는 인품을 가졌음을 알수 있다. 또한 다 이해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과학계의 경이로운 발견으로 비약적 발전을 하는 물리학의 흐름을 훑어보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막스 카를 에른스트 루트비히 플랑크 (Max Karl Ernst Ludwig Planck)는 양자역학의 기초를 성립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1918년에 노벨상을 받은 독일의 과학자이다. E=mc²의 공식을 만들어낸 무명의 과학자 아이슈타인을 발굴하였고 근대와 현대를 잇는 가교역활을 함으로써 과학계의 눈부신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양자역학의 발전으로 우리가 영화나 소설의 소재로 많이 보는 타임머신에 대한 이론을 설명하고 또 이를 이용한 시간여행이나 평행우주의 상상을 가능케 하였다니 실로 놀라운 분이 아닐수 없다.
사실 이 책은 얼마 전 전제원의 <교양인의 행복한 책읽기-독서의 즐거움>에서 1년에 한 권정도는 과학책을 읽어야 한다는 글을 읽고 용기를 내어 선택한 책이다. 어릴적에는 위인전을 참 많이 읽었는데 나이를 들고 보니 남의 지극히 개인적인 삶을 들여다 보고 비평하는것에 관심이 가지 않았고 더구나 과학처럼 거부감 드는 어려운 학문을 한 학자들의 생은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막스 플랑크평전>을 읽다보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우리가 누리는 수많은 과학적인 혜택들, 당연히 쓰고 받아들이고 있는 기술과 원리들이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력과 희생 그리고 수 많은 실패와 좌절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기에 그들의 삶을 조명하고 배울점을 찾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과학계로서의 위기의 순간이었을지 모르는 혼란과 상실의 시대에 중심을 잡았던 과학자 막스플랑크는 단지 위대한 과학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후덕한 할아버지의 인상을 가진 그는 마음이 따뜻했고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으며 음악을 좋아했고 가족을 사랑했고 학문에 대한 열정과 자신에 일에 대한 옹고집적인 면이 있었다. 어쩌면 막스플랑크보다도 더 많이 알려진 과학자인 알베르트 아이슈타인조차도 그에 대해 경의와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가 기초를 닦고 발전시킨 과학에의 위해한 발견으로만 평가받기에는 지금껏 막스 플랑크협회라는 단체로 이름이 남아 있는 이유와 후학들이 가지고 있는 그에 대한 인간적인 존경심을 표현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도 이런 과학자가 언젠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이미 그 오래전에 천문대와 금속활자를 만들었고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그 외에도 많은 과학적 성과를 이루어내었던 우리 민족이기에 각 분야에서 한국과학발전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힘쓰는 과학자들 중에 곧 노벨 과학상을 받는 첫 순간이 올 수 있을것이라 생각하며 이 책을 덮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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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도약의 시대를 연 천재물리학자 막스플랑크, 이름은 알고있고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그래도 나 스스로 양자역학이나 물리학에 대해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오산이였구나 아~ 더 알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끝으로 덮어버리는게 아니라 조금더 공부해서 이 책을 더 즐겁게 읽어보고 싶다는 그런생각이 들게끔 흥미로웠다. 조금만 더 알고 읽는다면 이 책과 하는 시간이 훨신더 값진 시간 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쉽게 풀어놓은 부분도 많고 좀 더 공부해야만 알 수 있는 부분들도 많이있고 어쨌든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머릿속을 바쁘게 움직이게 만들고 있었음은 확실하다.) 아마 아예 관심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어느정도의 지식은 충분히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같은 책을 읽어도 저마다 해석이 달라진다. 저자가 알리고자 하는 바대로 가지않고 다른부분이 더 두각되어 각인이 되기도 하고. 그런게 아마도 책의 묘미가 아닐까 한다. 이 책을 읽고난후에 막스플랑크의 인생에 대해서 빼놓고 갈 수 없을 듯하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정말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바이마르공화국의 혁명적이며 민주적인 격동기를 지나 1,2차 세계대전을 겪고 가족들을 가슴아프게 보내야만 했던(계속 해서 찾아오는 가족들의 죽음) 한 인간 한 남자로서의 그의 인생을 생각해 보면...인생을 살면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아픔을 다 겪은 한남자의 인생. 그의 그 위대한 업적보다도 한 인간으로서의 그의 아픔이 내게는 더 크게 다가오고 있다. 그 고통들을 잊기위해 연구에 더 몰두한 것일까? 그의 고독한 시간과 외로움을 잊기위해? 그것은 알 수 없으나... 그의 어두운 삶만은 조금 짐작해본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그래도 삶은 지속된다... 너무나 와 닿고 그의 인생을 생각해 보며 이말을 되뇌일때 가슴이 저민다. 두번째 읽을 때는 조금더 지식을 쌓고 다 이해하면서 읽고 싶다. 곧 두번째 읽을 날을 기대하며. 이 책을 덮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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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준비하고 21세기를 여는 시대의 과학자 막스 플랑크
학창시절 과학교과서에서 자주 봐왔던 여러 과학자들 중 하나로 기억되는 막스 플랑크라는 이름. 보어의 원자모형의 모티브가 되는 플랑크의 양자가설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의 발견이 이다지도 중요한 것이었는지 새삼 느끼면서 책을 들었다. 뉴턴의 고전물리학을 허무는 20세기 현대물리학의 시작을 알린 그의 업적은 대단한 것이었지만 그의 인생은 너무도 힘들었던 것 같다. 천재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에게 느껴지는 화려함보다는, 마치 인생을 곱씹는 수도승의 느낌과 누구도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서도 과학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으로 점철된 인생이 죽음을 통해 편안한 안식을 얻게 된 듯한 숙연함이 느껴진다. 그의 평범한 인생은 1900년 양자역학을 발표함으로써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처음 시작은 미미했으나 점차 여러 학자들에 의해 발전된 양자이론은 이후의 아인슈타인에 의한 상대성이론과 함께 쌍두마차로 20세기 현대물리학의 태동을 알리게 된다. 하지만 그 당시 과학계는 양자역학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으며 실제로 플랑크의 업적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렸다. 그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이 늦어진 것 또한 양자이론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부족하여 미뤄졌으며 양자역학을 기초로 한 연구의 성과가 두드러지면서 노벨상을 받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옹호한 최초의 물리학자이기도 한 플랑크의 양자이론이 인정받는데 또한 아인슈타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플랑크는 불굴의 의지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가 덜 금욕적이고 철학적, 종교적인 확신을 덜 가졌더라면 그에게 닥쳤던 비극들을 극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첫 아내는 22년의 행복한 결혼생활 중에 죽었고, 플랑크에게 두 아들과 쌍둥이 딸을 남겼다. 큰 아들 카를은 1916년 전투 중 사망했다. 두 딸은 모두 출산 중에 사망한다. 제2차 세계대전은 그에게 더 큰 비극을 안겨주었다. 베를린에 있던 플랑크의 집은 1944년 폭탄투하로 완전히 파괴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둘째 아들 에르빈은 히틀러의 목숨을 노렸다는 혐의를 받아 게슈타포의 손에 무참히 살해된다. 이런 무자비한 행위가 그의 삶의 의지를 파괴해버렸다. 그는 1947년 9월 4일 89세로 괴팅겐에서 죽었다.
확고했던 고전물리학의 기반을 흔드는 양자역학의 기초를 확립하고 본의 아니게 과학계의 혁명가로서, 예술가로서, 철학자로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고 가족을 잃는 고통스런 시대를 살다간 막스 플랑크. 그는 시대의 요구에 맞게, 시대가 필요로 했던 시대의 영웅이었다. 과학을 전공하거나 과학에 관심이 있는 많은 분들의 필독서라고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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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겐 누구나 나름대로의 취향이 있는 것 같다. 독서에도 사람마다 각기 취향이 있어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제목도 읽지 않는게 인지상정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나는 문학과 철학관련 책을 주로 보며 역사책은 신뢰하지 않고 과학쪽은 거의 문외한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진화론과DNA관련 책 그리고 양자역학관련 책들을 보는 이유는진화론의 경우 단순히 적자생존과 공통조상 즉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문제뿐만 아니라 창조론의 반대편에 서 있으면서 유신론적인 사고방식의 벽을 허물어 주었기 때문이고,양자역학관련 책들은 결정론적 사고관에 제대로 한방먹인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확실히 우리의 소유물이라고 요구해도 되는 유일한 것은 최고의 선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어떤 힘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으며, 다른 것들과 달리 영원히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376p 88세 막스 플랑크의 인생관-
이 책은 독일의 과학자 막스 카를 에른스트 루트비히 플랑크(1858-1947)의 평전이다. 평전은 비평있는 위인전으로 일반 전기문보다 다른책에서 인용한 글들이 많아 읽기에 따분하여 독자로 하여금 한 인물의 자세한 삶을 구지 다 알 필요가 있을까하는 의문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은 막스 프랑크의 파란만장한 삶과 혁명적 사고를 아낌없이 말해주고 있기때문에 좋은 책이다 읽을 만하다 감동적이다 라는 생각이 다 읽고 난 후 자연스럽게 스쳐갔다. 작년에 김창숙평전과 여운형평전을 읽은 적 있다. 성균관대 초대총장지낸 심산 김창숙(1879-1962)과 중립노선의 독립운동가였던 몽양 여운형(1886-1947)과 거의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막스 플랑크는 베를린 대학 총장, 카이저 빌헬름 협회의장,노벨물리학상 수상자보다 "양자역학의 아버지"로 더 유명하다.(일제시대를 암울하게 보낸 우리나라 지식인들과 대조를 이룬다. 역시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
지은이는 책머리에서 아널드 쇤베르크(1874-1951)와 관련된 일화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작곡자 쇤베르크는 자신의 음악이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아니오, 하지만 누군가는 그걸 작곡해야만 했습니다" 예술은 내적 필연성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것이 반드시 작곡되어야만 했다는 것이다.학문역시 그것이 위대하고 훌륭한 경우 내적 필연성에서 발생하는 것이다-17p -
막스 플랑크는 개인적으로 많은 재난을 겪었다. 1871년 열세살때 형을 잃었고 1909년 아내를 잃었으며,1916년 큰아들을 ,1917년과 1919년에는 두딸을,1945년에는 둘째아들이 나찌에 사형되는 일을 겪었다.그리고 그의 조국 독일이 세계 1차,2차대전에서 패망하는 모습까지 조국을 떠나지않고 다 지켜 보았다.그러한 막스 플랑크는 두가지 위대한 발견을 했다. "하나는 양자역학이고 하나는 아인슈타인이다" -1p- 플랑크는 결정론적 셰계관으로 대변되는 고전물리학의 복음속에 살면서 현대물리학의 기초가 된 에너지가 양자화되어있다는 양자가설(1900년)을 처음으로 주장하였고 아인슈타인을 베를린으로 불러 올렸다. E = h v (E는 에이치 뉴 : E =에너지, h=플랑크 상수, v(뉴):빛의 진동수) 이것은 플랑크가 복사이론에서 발견한 공식으로 에너지가 진동수x플랑크상수만큼의 덩어리가 된다는 것이다.즉 에너지가 연속적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수처럼 불연속적인 알갱이(양자)로 나누어져 있다는 말이다.(뉴턴이후 물리학자들은 자신들이 깨달음을 고상하게 수학적 언어로 위와 같은 공식으로 표현했다고 한다.그러나 이런 공식들이 무슨 의미를 던져주는지 일상이 바쁜 대중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아니 무의미하다. 그들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섹스를 생각하지만 무엇때문에 그런 생각을 가지는지 양성생식에는 관심이 없다)
"양자론을 생각하면서 혼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양자론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 - 닐스 보어 - "나는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 리처드 파인만 - 소설책 몇 권 읽었다고 소설가 될 수 없고 철학책 몇권읽었다고 철학자가 될수 없듯이 이런저런 양자역학관련 책을 읽었다고 양자역학을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책에서도 이쪽 저쪽에서 많은 애기를 하였지만 사실 알 듯 모를 듯한 말들이 많았고 설사 그것이 이해 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를 던져주는지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다만 모든 것을 확실하게 믿고 싶어하고 불투명한 미래를 알하고자하는 불안한 일상속에서 가장 이성적인 과학에서 조차도 불확실하고 확률적인 양자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그나마 조그마한 삶의 위안을 얻은 것 같아 이 책을 읽으며 마음 한쪽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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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물리학자로 유명한 막스 플랑크. 책을 읽기 전 그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이 얼마나 될까? 한참을 생각해본다. 물리학자와 막스 플랑크. 하지만 이내 떠오른 생각은 상대성 이론의 아인슈타인과 프린키피아의 아이작 뉴턴이 전부였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해봐도 막스 플랑크란 인물은 언제, 어디서 접했던 인물이었는지 좀처럼 쉽게 떠오르지가 않았다. 노벨상 수상자인것도 같고, 평행우주론을 배우며 잠시 잠깐 스쳐지났던 인물이었던것 같기도 하고, 현대 물리학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것도 같고... 사실 평전을 접하기 전에 너무나 생소한 인물이란 거리감이 잠시 나를 위축시키기도 했지만 오히려 막스 플랑크에 대해서 위대한 물리학자로서의 접근이 아닌, 불우한 삶을 살았던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소명에 충실했던 그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이 책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인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학생 시절 처음으로 고전물리학을 접하게 되는데 마치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그의 내면에서부터 물리학적 세계를 탐구하려는 본능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양자의 개념을 발견하게 되면서 막스 플랑크는 양자역학의 시초가 된다. 물리학의 가장 정확한 이론 중 하나인 양자역학은 후에 양자전기역학으로도 확장되기에 이른다. 예를 들면 거울에 비쳐 하나의 상이 만들어졌을 때 빛과 전자가 상호작용하면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이론인데 이후에 양자론은 고전물리학과는 대조적으로 사용되며 물리학 이외에도 화학과 공학, 생리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막스 플랑크와 양자물리학과의 만남은 필연적으로 이끌릴수 밖에 없었던 운명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신이 아니면 안 될것만 같은 어떤 필연을 느꼈기 때문에 그 역시 평생을 두고 자신의 학문에 계속해서 몰두하며 살았던 것이 아닐까?
그는 물리학자로서뿐만 아니라 교육자이자 철학자, 정치가로서도 세상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다. 하지만 막스 플랑크의 개인적인 인생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한 사람의 인생에 그토록 가혹한 시련이 끊임없이 생겨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막스 플랑크 평전을 읽으며 처절하게 느낄 수 있었는데 그만큼 그의 삶은 재난의 연속이자,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는 생전에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었고, 무엇보다 그에게 가장 커다란 시련은 전쟁을 겪으며 평생에 걸쳐 소중한 사람들을 잃을수밖에 없었던 고통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사랑하는 형과 아내, 그리고 네 명의 자식을 죽음으로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플랑크의 삶은 엄청난 정신적 고통이 늘 함께 했던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또한 그에게는 척추만곡증이란 병이 있었는데 조금만 움직여도 비명을 지를만큼 끔찍한 고통의 병으로 육체적인 고통 역시 언제나 그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막스 플랑크는 언제나 의연했고 삶에 대한 애착과 기본을 유지하며 꿋꿋한 삶을 살았다.
돌아보면 막스 플랑크란 이름말고도 그의 삶을 대신할 수 있는 훌륭한 수식어들이 너무나 많지만 평전을 읽으며 한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었던 그는 소설속의 그 어떤 주인공보다도 더욱 고통스럽고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다. 학문은 지극히 대중적일 수 있는 것이라 말했던 철학자, 또한 과학을 가장 인간적인 것으로 표현했던 천재 물리학자.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일평생을 두고 관찰과 연구를 통해 한계를 극복해냈던 막스 플랑크. 이제 우리는 그로 인해 과학을 더욱 일반적인 문화로 영위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과학과 현실의 교제는 자유로울 수 없다고만 생각했지만 막스 플랑크 평전을 통해 복잡하게만 생각되었던 물리학에 대한 가까워짐을, 그리고 발전을 통해 인간을 더욱 이해하고자 했던 가슴 따뜻한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
막스 플랑크. 양자역학의 아버지인 그를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아니, 솔직히 '알고 있다'라는 표현은 그를 향해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알고 있다라고 말하기에 내가 진짜로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물리2에서 배웠던 열역학법칙의 창시자이자, 물리학자, 그리고 양자역학의 창시자라는 것들 뿐이 전부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 <막스 플랑크 평전>을 읽으면서, 나는 양심있게, 막스 플랑크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것 같다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듯 싶다. 책을 읽으면서 물리학자였던 막스플랑크의 과학적인 흔적들 뿐 아니라, 그의 개인적인 삶 또한 엿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막스 플랑크' 라는 그의 이름은 많이 들어봤어도, 그의 얼굴은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표지를 보면서, '아하… 이렇게 생기셨구나' 싶었더랬다. 사실, 요즘 우리는 전공으로 물리학을 선택해서 공부하지 않는 이상,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가 어떻게 생성되고, 어떻게 소비되는지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 않는다. 심지어, 관심조차 없다. 하지만 누가, 과학에 대해서 무관심한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던가. 그것이 발전할대로 발전해 버린 현대 문명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진짜 모습인 것을. 그래서 나는, 더욱 더 <막스 플랑크 평전>같은 책이 세상에 많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나는 적어도, 우리가 사용하고 있고, 누리고 있는 과학의 업적에 어느정도 관심을 기울어야, 지난 세월의 과학자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 책에서 읽었던, 막스 플랑크라는 과학자는 형식적이고 따분한, 그런 예우를 반가워할 과학자는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세상은 막스 플랑크를 향해, '양자역학의 창시자를 연, 천재 물리학자'라는 수식어를 붙이던데, Jin하다는 책을 읽으면서 사실 고개를 갸웃거렸다. Jin하다의 시선으로 바라본 막스 플랑크는, 하늘에서 뚝 떨어저니 천재라기 보다는, 물리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학문적인 욕망으로, 앞만 보고 달려갈줄만 아는 융통성 없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실로, 그는 아들들과 딸, 그리고 사랑하는 부인까지 잃는 아픔을 겪었으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학문을 놓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얼마나 그 일을 사랑했는지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었다. 사실, 처음 이 책을 접하는 독자들은 당혹스러워 할지도 모르겠다. 제법 구체적으로 물리학에 대한 이론들을 서술해 놨기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며 멀리할지도 모르지만, 책의 그런 부분들을 '학문적인'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가볍게 본다면 더욱 재미있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으리라 본다. 예컨데, 에너지가 무엇인지 설명한 페이지를 보며 '아하,에너지에 대해 설명하나보군'이라고 넘긴다면, 문제될건 없다고 본다. 내가 막스 플랑크의 삶에서 가장 흥미롭게 느꼈던 부분은, 그가 살아오던 시대적 배경이었다. 히틀러와, 산업혁명이라는 시대를 지나쳐오며 위대한 물리학의 꽃을 피운 그의 노력이야 말로, 나는 진정한 과학자의 면모라 본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업적을 끝으로 과학사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며, 아이슈타인이라는 또 다른 과학자를 탄생시킴으로써, 본인의 존재를 더욱 각인시켰다. 1929년 6월 28일, 막스 플랑크가 알베르트 아이슈타인에게 막스 플랑크 메달을 수여하고 있는 저 사진이야 말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이야 말로, 나를 두근두근 거리게 한다. 저 둘의 만남이야 말로, 역사상 최고의 과학자들의 만남이 아니던가. 플랑크는 그 생일에 전보, 편지, 우편엽서 등 1천여 통의 축하 서신을 받았다. 그리고 이에 대해 모두 자필로 답장을 보냈다. 석 달 동안 매일 적어도 한두 시간씩 답장을 써야 했다. 아이슈타인이 말했듯, "우리의 플랑크는 바로 이런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사랑한다." 이 책의 작가인, 에른스트 페터 피셔가 말해주듯, 막스 플랑크에 대해서, '우리 시대가 왜 그를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주는 책이었다. 과학은 위대하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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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과학자라고는 해도 보통 사람들은 ‘막스 플랑크’라는 이름을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은 ‘막스 플랑크’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더불어서 20세기 물리학 최대의 성과로 일컬어지는 ‘양자 역학’의 창시자다. 아인슈타인이 거의 혼자서 만들어낸 ‘상대성 이론’과 달리, ‘양자 역학’은 수많은 학자들의 공동작업에 의한 성과물이다. 그렇지만 그 결정적 단초를 제공한 것은 바로 ‘막스 플랑크’였다. 그런 막스 플랑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양자역학에 대한 과학사 같은 내용을 기대하면 조금 다르다. 오히려, 20 세기 초의 격동의 시대 속에서 고명한 과학자로 살아가지 않을 수 없었던 한사람의 인간적인 고뇌를 그리는 책으로 완성되어 있다. 가치관이 한참 형성되던 청년시절, 프랑크가 태어나고 자란 독일은 제정 시대이며, 좋든 나쁘든 계급 주의적인 질서가 유지되던 시대였다. 민주주의같은 건 생각지도 못한 프랑크는, 타락한 바이마르 공화국이나 집단 학살까지 서슴치 않는 나치의 제국에서 저명한 독일인 과학자로서 묵묵히 살아 나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마침내 프랑크가 “하일, 히틀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대목에서는 가슴 헌켠이 아릿해져 온다. 플랑크는 1858년에 태어나 1947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 사이에 모두 세 차례나 전쟁을 겪었다. 그 세 번의 전쟁을 겪으면서 그는 사랑하던 사람들을 모두 먼저 떠나보내고 만다. 형을 먼저 보블 전쟁에서 잃고, 제 1차 세계대전 중에는 큰 아들을 잃고 만다. 그런가하면 제 2차 세계대전중에는 히틀러를 암살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둘째아들마저 처형당하고 만다. 쌍둥이 두 딸은 모두 아이를 낳은 직후 사망하고, 아내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 버린다. 이런 고난 속에서도 플랑크는 학자로서의 소명을 잃지 않았다. 과학자이지만, 순수하게 과학자로서만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던 세상에서, 거스를 수 없는 전쟁과 독재라는 거대한 힘앞에 굴하지 않고 그는 결국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남았다. 자유롭다 못해 방종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과학자로서의 양심을 관철하기 위해서 엄청난 고뇌를 수반해야 했던 시대를 살다 간 ‘막스 플랑크’의 이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그야말로 소중한 타산지석이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