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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몇 장 읽어내리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은 것이 있다. 내가 하루키의 소설을 처음 읽는 다는 것. '하루키'라는 이름이 너무나 익숙해서 이 전에 몇 편의 작품을 읽어 놓은 느낌이 들었다. '상실의 시대'며 '태엽 감는 새'며 그 작품만도 얼마나 유명하며 또 친숙한가. 일본 소설 특유의 구체적 상황 제시라던지 소소한 배경과소품, 대사등이 '하루키' 소설이라는 인식보다는 한 때 쌓아두고 읽었던 수 많은 소설 중 하나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 위대하다는,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작가의 대단한 작품이 나에게는 그렇게 아주 평범하게 다가온 것이다. (이제사 생각해보면, 이것이 번역이라는 다리를 거쳐야 하는 외국문학의 한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다 읽은 시점에서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스토리는 상당히 흥미롭다. 분명 이쪽 세계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노인의 특별한 능력과 세계를 보는 눈은 마치 동화를 읽는 듯 했고, 운동과 독서로 일상을 채워나가는 소년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도서관을 피난처로 삼고 있다는 점이 (피난이라는 것이 일상으로부든 무엇이 되었든) 무엇보다도 공감이 되었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청춘의 끝을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는 불안한 소년 또한 매순간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 소설은 조니워커 상과 그의 죽음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추리극 같기도 하고, 오이디푸스 저주에 빠진 소년의 출생의 비밀을 풀어가는 드라마 같기도 하고, 또 그 과정에서 '탈소년'을 꿈꾸는 주인공의 성장소설 같기도 했으며, 나와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분리시켜 궁극의 나를 찾아가는 철학서 같기도 했다. 결론은, 한 번 읽어서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사고력과 상상력의 폭이 좁은 부족한 독자로서의 한계를 또 한번 느낀다.) 하루키를 읽는 맣은 이들이 말하듯, 나에게도 그의 작품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되어 재탄생 될 것 같다. 고작 한 번 읽어서 아무것도 파악할 수가 없다, 안타깝게도. 하루키의 고차원적 메세지를 단 번에 받아들이기가 여간 쉬운것이 아니다. 위로가 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재밌는 이야기라는 것. 그래서 여러차례 망설임 없이 책장을 열 수 있을 것이라는 점. 이제야 하루키를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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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조금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가 이해되기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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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운전사와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외부세계에 대한 꿈과 환상을 실제로 보게 된다. 같이 다니면서 외부세계에 대한 궁금증과 진실을 깨닫는 고통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자신의 정체성의 혼란이 오면서 독립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세월이 지나면서 혼자가 되는 고독한 삶에 대한 투쟁과 질곡을 역사로 기록하는 대장정의 여행이었다. 트럭운전사는 생업에 몰두해서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사람을 할아버지는 세월이 지나고 주변인들이 흩어지고 이승과 이별하면서 혼자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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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고 나서 그의 작품에 흥미가 생겼다. 다소 난해하지만 그래도 이끌리는 그런 마력이 있는 그의 세계이다. 그래서 그 중에 유명한 작품인 해변의 카프카를 마음먹고 읽어보았다. 이 책은 특이하게 두 사람의 관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홀수 장에는 다무라 카프카라는 15세의 아이의 관점, 짝수 장에서는 나카타라는 지적장애의 노인의 관점에서 진행되었다. 읽으면서 처음에는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장면에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15살을 주인공으로 하여 더욱더 감성적인 관점에서 이 소설을 보지 않았나 싶다. 독특한 세계관을 느낄 수 있었고 소년의 불완전했던 세계관이 확립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성장하지 않았나한다. 아직도 책을 읽고 나서 긴가민가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글에서도 몇 번이고 읽어보라고 하는데(읽을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기에 읽으라고 하는 뜻) 아마 몇 번이고 읽어봐야지 나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쉽게 읽었으면서 쉽지 않은 난해한 책이라고 밖에 표현 못하겠다. 나의 독서의 깊이가 얕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집중된 다독으로 나의 독서의 깊이가 깊어지길 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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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저/김춘미 역 | 문학사상사 | 2008년 05월 16일 | 정가 : 각권 12,800원 나는 하루키를 잘 모른다. 대학교 1학년 때 교양수업이었던가? '상실의 시대'를 읽고 독후감을 쓰는 숙제가 있어서 그때 하루키를 접한 것이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이 이 작가에 대해서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 후로 몇년 후에 다시한번 시도해 보았으나 그다지 재미를 느끼거나 감동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 '상실의 시대'가 그나마 하루키의 소설 중 멀쩡(?!)한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하루키 팬의 말을 듣고 하루키와 더 멀어졌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내가 이 소설을 읽게 된 것은 이 소설을 원작으로 무대에 올린 [해변의 카프카]를 보았기 때문이다. 모호한 이야기들의 연속, 눈으로 볼 수 있는 사실과 환상-눈으로 볼 수 없는 또 다른 현실-의 경계 모호한 연극을 보며, 꽤나 즐거웠다. 그래서 원작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연극의 축약으로 그저 가볍게 변해 버린 것이 아닌가 싶게 표현된 '오시마'의 소설 상의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소설은 연극보다 더 상세하고 더 복잡하고 더 치밀한데, 더 친절했다. 같은 연극을 두번 보와서 그런지 몇가지 선명하게 기억나는 대사들이 연극에 그대로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소년이 되고 싶은 열다섯살 '다무라 카프카'가 가출을 한다. 똑똑하고 건강하나 미래에 대한 기대도, 삶에 대한 애착도, 누군가에 대한 애정도 갖지 못한 카프카는 친절에 익숙하지 못할만큼 마음이 메마른 아이다. 그 아이가 집에서 아주 먼 '다카마스'라는 곳으로 향하고 그곳에 미리 알아봐 두고 간 '고무라 도서관'에서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누구도 쉽게 경험하지 못할 삶의 경계까지 가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그 경험은 다른 사람들의 관계와 연결되어 있어 소년 카프카의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무엇이 사실인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까지 발을 내딛게 되는데, 이런 이야기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부르기에는 무언가 설명이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든다. 어떤 사건으로 아홉살에 텅 비어 버린 나카타 노인은 느닷없이 삶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스스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텅 비어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받아들이기 쉬운 나카타 노인의 투영과 발산은 기적과도 같다. 사건과 알수 없는 계시 속에 호시노와 짝을 이루는 나카타 노인의 이야기도 어떤 면에서는 성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구를 통해 누군가를 만나고 만나게 하고 스스로를 열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나카타 노인. 생각보다 끔찍할 수 있는 이야기 속에서도 빛을 바라는 나카타 노인의 케릭터가 몹시 마음에 든다. 그리고, 카프카에게 균형감각을 만들어 주는 균형을 잡을 수 없는 오시마라는 케릭터는 여성운동가의 방문으로 정체를 밝히게 되는데 그 내용이 참으로 아프다.
책 상태는, 평범하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각 장의 제목만으로도 이 책의 의도와 내용을 어느 정도 추적해 보고 알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인 듯 하다.
오시마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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