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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봄이면 입덧을 한다
포근한 봄이 다가온다. 그와 함께 우리는 옛 추억을 떠오르고, 주위의 만물의 탄생을 지켜본다. 꽃, 나무, 나비 등등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마법같은 계절, 봄이다. 남자는 가을을 타고, 여자는 봄을 탄다고 했던가. 왜 봄처녀라는 말도 있듯이, 저자 황시은 시인의 따뜻한 우리의 옛 이야기를 담은 아름다운 시집, 난 봄이면 입덧을 한다.
제목이 굉장히 특이해서, 일단 궁금했다. 어떤 의미인지, 하지만 이 시집을 읽고 제목은 전혀 중요한게 아니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제목이 무엇이면 어떻고, 특이해도 여전히, 황시은의 시는 우리의 고향과 추억을 자연속으로 끌어당긴다. 시라고 생각하면 그냥 옛 정겨운 우리말, 고운 말만 생각했었다. 소재도 나비, 나무, 꽃 등만 기억했다. 물론 거의 대부분이 그런 아름다운 시다.
하지만 곳곳에 특이한 것들이 눈에 띈다. <문명이 죽다> , <전자미행>같이 김치, CCTV같은 소재와 단어들, 그 속에 얽힌 이야기들도 꽤 재미있다. 시집은 그냥 잠잠하고 훈훈하기만 하단 생각은 조금 버려도 괜찮을듯 싶다. 흥미로운 소재와 이야깃거리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역시 이 시집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가장 크다. 우리의 이야기를, 이 사회를 사는 우리의 이야기를, 자연과 잊혀저버린 우리의 삶을, 그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시는 우리의 어머님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어머니에 관한 시를 읽으면서 최근에 신경숙작가의 엄마를 부탁해가 생각이 났다. 이 시인에서도 무한한 감동을 느낄 수 있어 참 좋은 것 같다.
황시은 시인의 시는 억지스럽지 않아서 좋다. 요즘 같이 부풀리고, 과장해서 본연의 미를 훼손하는 그런 것이 없어, 감정이입도 잘 되고, 자연스러운 느낌의 시들이 너무 좋다. 그리고 책의 표지가 너무 심심하단 생각이 들었었는데, 읽다보니 오히려 더 좋았다. 왠지 옛 느낌도 나고, 노란색이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보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황시인은 힘든 요즘, 도시에 찌든 현대인들을 위한 시를 쓴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시인들이 잊고 지냈던 자연, 그리고 추억과 잃어버린 자신의 진실을 찾도록 시를 써내려간다. 선과 악의 개념을 넘어, 도전하는 삶 같은 것들을 말이다.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들, 그리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속에서, 황시은시인의 시가 굉장히 힘이 되고,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옛 유년 기억, 자연의 이야기, 요즘 사회의 어두운 이야기까지 이 책에는 많은 읽을거리가 존재한다. 장편이 아니어서 틈틈히 읽어도 끊김이 없고, 소재도 풍부해서 너무 좋은 것 같았다. 이 기회에 시를 제대로 접하게 되어 무척 만족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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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은 어떤 하나의 사물을 보고 그 사물의 심상과 가장 유사하거나 근접한 사물을 투영하면서 새로운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일상생활에서 연상을 자주하면 창의성과 독창성, 유용성 등을 증진시킨다고 한다. 사실 많은 교육훈련기관에서 인간의 창의력을 신장시키기 위한 교육훈련의 방법으로 연상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목련이라면 연상되는 것은 무엇일가? 봄의 화신인 목련을 보고 백자를 연상하고, 꽃말에 따라 순결을, 하얀 목련을 보고 사모를 연상한다. 목련의 꽃말이 순결과 사모이라서 그런지 목련에 관한 시도 많고 목련을 닮은 여성도 연상한다. 또 다른 그 어떤 이미지를 연상하는 것이 시의 특징이라 한다. 점심을 먹고 공원을 산책하면서 백목련과 자목련이 봉긋하게 피는 모습을 보고 사무실에 들어오니 소포가 와 있었다. 조심스레 뜯어보니 『난 봄이면 입덧을 한다』라는 시집이다.
“지난 겨울 어미 잃은 철새알을 품었던 백목련 가지들이 수없이 많은 아가들을 세상에 내어 놓습니다. 환영해 주실런지요?”라는 쓰인 저자의 육필이 있다.
새봄을 알리는 봄의 화신인 목련을 보는 것만으로도 생명의 기운을 느끼는 자체가 즐거운 일인데, 저자의 육필이 든 시집을 받았으니 큰 행운이다.
‘점심을 먹고 공원을 거닐면서 솟아오르는 하얀 백목련의 봉오리는 어미 잃은 철새알로 이제 막 부화한다는 것을 사무실에 들어와서야 알았다‘며 답을 했다.
옛날부터 시인들은 목련을 보고 새봄을 알리기 위해 제일 먼저 시를 쓰고 싶은 글감의 대상이다. 단골 시상이다. 시인은 목련을 보고 자연의 변화를 보고 상상하고 연상하며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기 위해 시인들은 봄이면 입덧을 하는가 보다. 『난 봄이면 입덧을 한다』은 2007년 '시선'으로 등단한 황시은(본명 황봉애)의 시집으로 시선사에서 출판했다. 모두 4부 60여 편의 작품이 담긴 [난 봄이면 입덧을 한다]에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이나 소중히 여기던 물건이나, 어머니와 누이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황시은 시인은 세상을 그냥 지나치면서 살아가지 않는다. 그는 보면 보는 대로 그의 가슴에 시상이 낙인이 되어 시상이 된다. 이 시집에는 읽을거리가 많다. 메마르고 황폐화된 도시의 삶에 지친 우리를 강과 산과 바다를 찾아 자연으로 감동의 여행을 떠나게 한다. 세상만물은 새 것을 만들어 낼 때에는 어김없이 입덧을 하는 가보다. 황시은 시인도 ‘창문을 여니 계절이 다가선다/이럴 땐 어김없이 난 입덧을 한다/투박스럽기 그지없는 막사발에/텁텁한 조껍데기 술맛이 그립다/감식초와 태양초에 버무린/시골 어머니가 보내 주신 참기름을 아침 이슬처럼/감고 나온 겉절이가 먹고 싶다/…/봄 햇살을 타고 놀던/아이들의 웃음소리에/여중생 유두점 같은/홍매화 망울이 눈을 비비며 웃고 나온다…’며 봄이면 입덧을 하는 이유를 알려 주고 있다. 이 시집을 읽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세상을 살면서 그 무엇이 그리 중요하여 홍매화 망울이 눈을 비비며 나오는지 백목련에서 어미 잃은 철새알을 품었다 내어놓는지 모르고 살았는지 황 시인이 부럽다. 자연과 금을 긋지 않고 자연과 자유롭게 소통하며 살아가면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그가 부러울 뿐이다. 『난 봄이면 입덧을 한다』의 시집에 있는 60여 편의 시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시인이라는 사람은 우리와는 다르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시인의 눈은 세상이 달리 보인다. 봄이면 입덧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아름다운 꽃을 보고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만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는 '감동'과 '깨달음' 같은 것을 지향한다. 황시인의 시를 읽다보니 무생물이 생물이 되어 다시 태어나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황 시인이 바라보는 시각은 절묘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 뭉클함을 주고 있다. 오늘 따라 겨우내 움츠리며 있다가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멍울을 터트리는 목련의 자태가 오히려 도도하다. 이 시집은 봄의 전령으로 우리 가슴에 희망과 소망을 전달하는 목련처럼 우리 인생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를 소망하고 있다. 『난 봄이면 입덧을 한다』를 읽으면 “오! 내 사랑 목련화야”라는 가곡이 듣고 싶을 정도로 감동이 있다. 오 내사랑 목련화야 오 내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사랑 목련화야 희고 순결한 그대 모습 봄에 온 가인과 같고 추운 겨울 헤치고 온 봄길잡이 목련화는 새시대의 선구자요 배달의 얼이로다 오 내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사랑 목련화야 오 내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사랑 목련화야 그대처럼 순결하게 그대처럼 강인하게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 아름답게 살아가리 오 내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사랑 목련화야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 아름답게 살아가리라 오 내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사랑 목련화야 내일을 바라보면서 하늘보고 웃음짓고 함께 피고 함께 지니 인생의 귀감이로다 그대 맑고 향긋한 향기 온누리 적시네 오 내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사랑 목련화야 오 내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사랑 목련화야 그대처럼 우아하게 그대처럼 향기롭게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 값있게 살아가리 오 내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사랑 목련화야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 값있게 살아가리라
입덧은 새 희망이다. 새 생명의 탄생을 의미한다. 목련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값있게 살아가기를 소망한다면 꼭 『난 봄이면 입덧을 한다』를 읽어 보길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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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은 처음 접한다. 예전에 "시"라는 것은 많이 읽어 보았지만, 무심코 교육과정에서만 만나 볼 수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시"란 것을 처음으로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어 보았다. 정말 시라는 것이 이런 매력이 있을 줄이야, 예전엔 너무도 아니 하나도 몰랐다. 한 구절 한 구절이 많은 생각을 하게만 한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내심 아무것도 모르던 유년시절로 돌아가 그곳에 내가 서있을 줄이야. 내 주위에 평소엔 잘 눈에 띄지도 않던 사물들이 하나 둘 나에겐 의미가 깊어진다. 시집 한권을 읽어가면서 짧은 문장이지만 어느 소설책 보다 더 많은 생각과 의미를 하게만 한다. 그래서 책 한권을 다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예전에 생각하고 읽었던 딱딱한 시란 의미보단, "난 봄이면 입덧을 한다"의 시집은 평소에 내 자신이 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다 생각하고 내 주위의 사소한 사물들이며, 다방면의 소재로 인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이 "시"란 것이구나 생각이 든다. 이처럼 현재의 시점에 맞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금 이 시점에서 읽어 나갈 수 있는 자연스러운 내용인것 같다. 지금 현대인들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시점에서 황시은님의 "난 봄이면 입덧을 한다"의 시집을 추천하고 싶다. 추운 겨울에 구제역이며 조류독감이며 신종풀루에 정신없는 어려운 나라의 시점에서 모든이들이 시 한편으로 인해 막막해진 가슴을 뻥 뚤려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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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봄이라고는 했지만 날씨가 추웠던 관계로 그다지 실감을 하고 있지 못했는데 어느순간 개나리가 피고 목련이 피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더라구요. 곳곳에서 벚꽃축제를 하고 그 꽃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꽃구경을 나와 즐거운 봄의 한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고 행복에 겨운 표정을 짓고 있네요. 봄은 그 추운 겨울을 소리없이 몰아내고 조용히 우리 곁에 다가와 그 고운 자태를 마음껏 뽐내고 있는 것 같네요. 마치 봄처녀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바람처럼 말이죠. 이처럼 봄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나 느낌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것 같아요. 작가는 아마 봄을 맞이하는 것을 입덧을 한다고 이야기하는게 참 재미있으면서도 나름의 의미가 숨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글쎄요? 난 봄을 맞이하는 내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누구는 봄이 되어도 아직 마음이 여전히 겨울인 사람들도 있겠죠? 봄이 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뭐가 있을까요? 개나리? 노란 개나리를 보면 노란 옷을 입은 아이들이 생각나네요. 마치 병아리들처럼 모여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너무 귀엽죠. 시에서 풍겨지는 느낌은 봄처럼 따뜻하고 나른한 듯하면서도 편안하다고 할까요? 그리고 마치 할머니의 무릎에 앉아서 듣던 오래된 이야기의 향수를 자아내는 듯한 느낌이랄까? 봄에 꽃들이 피어나는 것처럼 그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시들을 통해서 조금씩 마음이 순수해지고 아름다워진다고 하면 될까요? 황시은 시인의 첫 시집이기에 더욱 더 시인의 마음과 상상력들이 톡톡튀는 개성으로 나타난 것 같아요.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순수함과 같은 동시와 같은 느낌으로 봄을 맞이하는 전령사가 된 것 같아요. 난 봄이면 무엇을 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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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 같으면서도 어렸을 적에 가장 좋아했지만 닳는게 싫어 아껴쓰던 크레파스 같은 노란표지가 처음 마주 했을때는 조금 촌스럽다고 생각했지만, 마지막장을 덮고나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색이 되었다. 왜 봄이면 입덧을 하게 되는걸까. 만물이 소생하는 봄처럼 입덧을 하는걸까. 시인 황시은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풍경, 감정, 사물, 사람들에 대한 섬세한 시각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어렵지 않은 일상어들이 시로 승화된다. CCTV가 시가되고 갑상선 종양이 시가되고 김치가 시가된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토속적이며 정겨운 우리말이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어머니 등에서 느끼는 인생의 고단함과 재치있게 그려진 냉장고 속의 김치, 딸아이의 미백치약 이야기 등, 소소하지만 그것들을 놓치지 않고 표현해 내는 능력을 지녔다. 일상의 무료하고 지나치기 쉬운 일들도 시인의 손에서는 이야기가 된다. 우스개 농담도, 김밥도, 통닭구이와 자두에서도 발견된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시가 많은데, 지금과 달리 예전에는 그리 많이 배우지도 못하고 오직 남편과 자식만을 위해 살아온 어머니가 대다수이다. 그런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의 굴곡이 시인의 정감한 문체와 버무러져 콧등을 더욱 시큰하게 만들었다. 난해한 단어선택이 아니라 평소 접할 수 있는 문장사용으로 시에 대해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적절한 비유와 감성적이면서 토속적인 단어선택은 그동안 읽어왔던 현대시와는 다른 묘미를 불러 일으킨다. 현대와 지난 시절의 대비가 적절히 비교되어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어릴 때 보았던 하늘만큼 커보이던 구멍가게가 어른이 된 지금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연민마저 느끼게 하는 조그마한 '벌이'가게로 보인다. 머리가 커가는 만큼 시대의 속도에 눈높이가 올라간다. 그래도 옛 시절이 그리운 이유는 무엇일까. 따뜻한 친구가 있었고 향기로운 바람이 있었고 순수했던 내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바래져가는 흑백사진이 더 마음이 쓰이고 가슴 아프게 만드는 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그 추억과 사랑으로 삭막한 이 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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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어떤 이도 못 말리는 일방통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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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봄이면 입덧을 한다
황시은(시선사/2008.11.25)
시의 배경이 되어 주는 장소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경우가 참 많다.
‘창신대학 교문 입구’ (풍경2)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가는 길(풍경3) ‘안민고갯길’(봄의 안부) ‘비음산 등산로 입구’(입춘일화) ‘용지동 민원센터 옆 공터’(오동나무 종소리를 들으며)
이것은 시인의 인생관, 가치관을 대변한다. 시인이 추구하는 세계는 구체적이어야 하고 사실적이어야 한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 밖에서 찾는 것보다는 바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는 사고를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다른 곳에서 더욱 확연해진다.
‘시어머님 하늘 길 가시던 날’‘친정집 우물가에 서 있는 향나무 한 그루’(향나무를 삶으며) ‘투박스럽기 그지없는 막사발에 텁텁한 조껍데기 술맛’ ‘감식초와 태양초에 버무린 시골 어머니가 보내 주신 참기름’(난 봄이면 입덧을 한다) ‘할머니 한 분이 아파트상가 근처 길가엣 무공해라며 팔던 상추’(달팽이는 달리고 있다)
시인의 형이상학적 세계를 천착하기보다는 일상의 실제를 그대로 보이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곳엔 생활이 그대로 보인다. 아파트에서의 일상이 고스란히 시 속으로 형상화되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는 놓치지 않고 있다. 시인이 의도했든 안 했든 그 점은 그대로 체화되어 나타나는데, 바로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다. 입덧을 하면서 자식을 낳고 세월을 견뎌온 아줌마로서의 생활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고 편안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생활의 가치만 추구하는 건 아니다. 시인의 시선은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생명에의 외경심 같은 초월적 시선은 ‘김밥꽃2’에 보인다.
‘예리하고 날카로운 칼에 베어져 나와야만 한 송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 ‘늘보 오후를 구르다’ 에서처럼, 언뜻 늘어지는 오후의 한 때를 캡처 화면처럼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결코 게으른 한 마리의 늘보의 생활을 말하려고 하기보다는 찻잔에 섞여 들어간 ‘우울’과 대 숲으로부터 나의 존재감에게 어떠한 깨달음의 바람도 불어오지 않음에 대한 깊은 사색을 섞기도 한다. 이런 존재론적 인식은 결코 가벼운 터치가 아니다. 새들만이 그 어려운 한낮의 지루함을 깨워준다고 하고 있는데, 이것도 결코 새를 향한 깨달음의 시선만은 아니다. 새가 던져준 화두는 질그릇으로, 산타엘레나로 그 무한한 공간의 영역이 확장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간단히 공식화할 수 없는 시간 개념이며, 순간적으로 조망된 시적 영감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의 시선은 때로는 과거로, 어머니로, 그러다가 ‘먹거리’로 다양하게 풀어헤쳐진다. 어떻게 보면 흔하디흔한 인생살이를 보는 것과도 같이 보인다. 그러나 시인의 특별함이 있다면 그 평범한 글감들을 정말 다양하게 변주하고, 때론 그대로 까발리고, 때론 아프게 묶어나간다는 점일 것이다.
시어가 주는 투박함이 더 정겹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의 화자는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서 뱃살 걱정을 했지만 결코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우 스꽝스럽게 인물을 희화화하면서 그 재미 뒤에 숨겨진 비밀 노트를 찾아보라고 애교 넘치는 숨바꼭질을 해 대고 있는 것이다.(뱃살이 거실에 떨어지다)
시인의 속살 같은 시어들은 참 거침이 없다. 마치 폐쇄회로 화면을 우리에게 다 보여주는 것같은 시들이다. 하지만 그 애교와 가벼운 귀여움 속에 우리는 놓칠 수 없는 인생살이의 아픔과 깨달음과 희망을 읽어내야 할 것이다
시는 독자에게 늘 상대적이다. 행복한 미소를 주다가도 거침없이 흘릴 눈물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시선 속에서 우리는 어찌 입덧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응? 시인의 진솔함 속에서 더욱 고아한 생활의 자태가 더 자세히 보일 날이 다시 오기를 학수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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