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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재밌게 그리고 감독적으로 본 책 중에 하나입니다. 원서로 읽을 때는 그랬습니다. 한글로 번역되어 나오기를 지대한 관심을 갖고 기다렸습니다만, 제목 번역부터 실망스럽습니다. 원제인 Angela's Ashes는 물론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만, 세세히 분석해보면 결국 ‘고통, 고난’이라는 의미가 가장 맞습니다. 내용 중 어머니 안젤라의 많지 않은 위안 중에 하나가 담배이고 그 담배에서 떨어지는 재를 말한다는 설도 있습니다만, 재를 뜻하는 ash는 uncountable noun이라서 굳이 ashes라고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ashes에는 고통, 고난이라는 뜻이 있어 안젤라가 겪는 지독한 가난과, 어린 자식의 죽음, 무책임한 알코할릭 남편 등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 같습니다. 번역의 어려움은 누구보다 잘 알지만 기대했던 책의 한글판이 나왔는데 제목 번역부터 실망스러우니 안타깝습니다....
원서는 더없이 훌륭합니다. 그런 지독한 어린 시절을 보낸 프랭크 맥코트가 부럽워 미칠지경이었다고 하면 조금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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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가 언제부터 영국을 신사의 나라로 부른 건지... 영국이 아일랜드를 얼마나 핍박했냐 하면, 아일랜드의 감자기근으로 너무 많은 사람이 죽자 비난을 받던 영국이 아일랜드에 밀가루를 보냅니다. 그런데 아일랜드 사람들은 이 밀가루를 그냥 버렸어요. 너무 오래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보지 못해서, 밀가루를 어디다 쓰는지 몰랐던 겁니다. 영국 치하에서 아일랜드가 얼마나 궁핍하고 처절한 시대를 보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제 신사의 나라 영국이라는 말 좀 쓰지 맙시다. 각설하고.
프랭크의 아버지는 왜 그렇게 술을 끊지 못했을까요? 당시 조선이나 아일랜드의 여성들이나 참 가장 밑바닥의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프랭크의 어머니도 그랬고요. 어머니들을 생각하면 정말 눈물이 납니다. 그들만큼이나 힘들었던 이웃의 동정과 도움에도 프랭크 가족은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갔지만, 가난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프랭크의 어린 아기 동생들이 굶주림과 병으로 차례로 죽어간 대목에서는 슬프다못해 어이가 없어집니다. 어린 올리는 지금 편안하겠지요.
힘든 시절을 지나고, 아일랜드도 한국도 먹고살만 해졌습니다. 그 시절 사람들의 삶을 버리지 않고 그래도 꿋꿋이 살아간 덕분이겠지요. 아무리 삶이 고달파도, 우리는 웃으며 헤쳐나가야 합니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지 못하니까요. 아 물론, 빵이 없으면 안되고말고요. 빵도 웃음도 있는 사회를 아이들에게 물려줘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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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0페이지. 꽤 두껍고 좀 무거운 책이었던 <안젤라의 재> 퓰리처상 받은 작품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어떨까 싶어서 읽게 된 책. 프랭크 매코트.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내용으로 가난하고 가난하고 또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아일랜드 북부 출생인 버지. 그리고 아일랜드 태생인 어머니. 그들은 뉴욕에서 만나 관계를 맺고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결혼하고 몇달만에 큰아들인 프랭크가 태어난다. 그리고 이어서 줄줄이 동생들이태어난다. 그럼에도 하나도 나아지지 않는 생활고에 시달린다. 둘째인 말라키 그리고 쌍둥이 유진과 올리버 네번째로 여동생인 마거릿이 태어난다. 아버지는 늘 술주정이고 어머니는 연달아 아이들을 낳기에 바쁘다. 그리고 찢어지게 가난한 그들의 생활 속에서 마거릿은 죽고 만다. 생활고에 못이긴 그들은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간다. 그러나 영국의 식민지에서 이제 막 독립한 아일랜드의 삶은 미국에서의 삶 보다 전혀 전혀 나을 것이 없다. 실업수당을 받는 아버지는 돈을 받자 마자 그 돈으로 술을 퍼마시고 그 덕에 아내와 아이들은 배를 곯는 날들이 이어진다. 그 와중에 올리버가 죽고, 유진도 죽고 그리고 다시 마이클이 태어나고 알폰서스가 태어난다.
아내와 아이가 배를 곯는 것에는 상관없이 술독에 빠져 취한 채 인생을 허비하는 아버지. 내가 엄청 싫어하는 유형이다. 그리고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아이를 낳고 또 잃기를 반복하는 어머니. 이 역시 내가 무지 싫어하는 유형이다. 이보다 더 나빠질 것은 없을 것 같은 날들이 이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보다 더 나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면서 가난은 끝을 모르고 고난과 궁핍이 이어지는 더 가난하고 힘든 날들이 반복된다.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그만 읽어야 할까 중간까지 읽었는데 끝까지 읽어야 할까를 고민하면서 기어이 결국은 다 읽어버렸다. 가난하기에 웃을 수 밖에 없는 유머는 하나도 웃기지 않고 그저 안쓰럽고 안타까울 뿐이다. 자식의 장례비용조차 술퍼마시는데 쓰는 무능력한 아버지를 술만 먹으면 집에 들어와 아이들에게 아일랜드를 위해 죽으라는 아버지를 그럼에도 사랑해야 아이들이 불쌍하고 늘 투덜거리고 불만을 토로하면서 동생을 낳고 또 낳는 어머니가 조금 짜증스러웠달까 그랬다. 그렇게 프랭크 가족의 사랑도 최소한의 인간성과 미덕도 찾을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진다. 가난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랭크는 열 네살이 되고 전보 배달부 신문배달등을 하면서 돈을 모아 열 아홉 미국으로 건너 간다.
책을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 물론 마지막에 스스로 돈을 벌면서 좀 덜했지만 가난하고 가난하고 가난한 그들의 삶이 어디가 감동스러운지 알 수 없었다. 난 이런 이야기가 싫다. 술에 탕진한 아버지의 인생. 푸념에 탕진한 어머니의 인생도 그리고 그들의 아들로써 부끄럽고 어리석고 순진하고 나약하게 자라나는 프랭크의 인생도. 가난했던 옛 시절이 좋았다고 그래도 즐거웠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가난에서 벗어난 자들의 혼잣말일 따름이다. 그 누구도 그 시절 그 가난 속으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 아니라면 그들은 이미 너무 늙어버려서 새로운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지 못한 채 과거 속으로 뒷걸음 치는 사람들이 아닐까.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불쌍하고 가장 열악했던 가족의 이야기 <안젤라의 재>였다. - 다락방서 허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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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세월을 이렇게 유머러스하게 그릴 수 다시 반추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제대로 자라난 것이다. 눈물 나는 시니시즘(cynicism)이 없을 수 없겠지만, 주정뱅이 아버지와 무능력한 어머니도 자식을 (기왕에 죽어버린 자식은 어쩔 수 없고) 훌륭히 키울 수 있다. 도대체 그렇게 생존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프랭크 맥코트와 동년배인 우리 선조들이 읽으면 동변상련하겠지. 그 아이들의 뼈를 저린 아픔에 대하여 눈물이 나다가도, 한 페이지, 어쩌면 한 단락, 더한 경우에는 한 문장을 지나 읽으며 웃음이 터졌다. 프랭크 형제들이 살아남은 것은 나는 오로지 catholicism의 마리아, 요셉, 또 어쩌고 저쩌고 이어지는 그 무수한 성인(saint)들의 통공(通功)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하느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귀하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늘릴 수 있느냐?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lilies of the field; 아마도 anemones를 가리킨다고 한다. 중동 전역에 흔히 피는 꽃)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 입지 못하였다.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렇게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지 않겠느냐? .....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장) 위 성경 구절이 말하는 것이 오늘에 대한 경외, 오늘의 존재 또는 존재해 있음에 대한 믿음을 말하는 것이지 하루하루를 향락으로 살라는 것은 아니다. 소소히 아이들을 가르치며 산다. 영어 가르치며 산다. 이 책 영어로 읽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언제 이 책을 영어로 읽을 지는 기약할 수 없다. 그러니 안타깝다. 공교육, 사교육 운운하고 있으나, 그런 구분이 생긴 것이 고작 한 백년 밖에 안 된다. 요즘과 같은 중등대중교육이 이 땅에서 있게 된 것은 삼사십년 밖에 안 된다. 그런데 그동안 이 교육은 학생들을 이렇게 잡아왔다. school이 아니라 slaughter house이다. 옛날 식으로 하면 국민학교 겨우 나와서 혈혈단신으로 미국 온 프랭크로 저렇게 씩씩하게 자라 고등학교 선생도 하고 이렇게 눈물 나는 글도 썼다. 교육이 아이들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언젠가 경찰에 정본지 보안인지 새로운 부서를 만들어 형사들을 배치했더니 갑자기 해당 범죄자 수가 확 늘었다는 자료를 본 적이 있는데, 선생들, 교육행정공무원들, 학교시설관리자들이 제 몫 때문에 아이들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날이 흐리다가 맑아진다. 날은 날 같지 않아 백로(白露) 지나고도 여름이 물러나지 않는다. 이런 날에는 어느 구석 진 대폿집에 앉아 쌀 곡차 한잔 기울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아일랜드식 유머들을 생각하며 킥킥거려도 좋겠다. 그런데 도대체 'T is(IT is)라고 끝나버리는 이 책의 제목은 대체 무슨 뜻인고? 나는 어머니 안젤라의 유골을 들고 미국으로 다시 건너오는 걸로 끝날 줄 알았더니. 사실 아이들에 비하면, 안젤라씨는 별 고생한 것 없는 것 같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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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이야기는 ‘개인’의 것이다.
남자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그 기류에 흐르는 것들은, 실로 놀라운 민중사였다. 참으로 가난했고,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이지만, 그럼에도 끈질기게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 심장을 지나갔다. 나는 지금도 그 흔적을 보고 있다. 그것은 꽤 멋진 추억이었다.
웃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면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가지 감정을 느꼈다.
훌륭한 책이다. 서글픈 가슴으로 그것을 큰 소리로 말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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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만나 결혼했지만, 고된 이민자의 생활을 견디지 못해 아이들을 데리고 아일랜드의 ‘리머릭’으로 돌아온 부모님. 아버지 ‘말라키’는 생활능력 제로에 입만 살아있는 주정뱅이. 이런 아버지를 보면서 난로 옆에 앉아 신음할 뿐인 신앙심 깊은 엄마 ‘안젤라’. 이들이 아일랜드로 건너 온 것은 ‘프랭크’가 4살 때이던 무렵으로 프랭크의 남동생인 ‘말라키’는 3살, 쌍둥이 남동생 ‘올리버’와 ‘유진’은 1살, 여동생 ‘마거릿’은 이미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뒤 입니다. 1997년 퓰리쳐상 전기 부문 수상작. <프랭크 매코트>의 처녀작이자, 저자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 작품입니다. _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저 놀랍기만 하다. 물론 내 어린 시절은 비참했다. 행복한 어린시절 따윈 어차피 별 재미도 없잖은가. 보통의 불행한 어린 시절보다 훨씬 더 고약한게 아일랜드인의 어린시절이라면, 그보다 더 고약한게 가톨릭계 아일랜드인의 어린시절이다.” 궁핍하고 배고픈 생활. 그런데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돈이 손에 들어오면 자석에라도 이끌린 듯 술집으로 향하고, 아이들은 고픈 배를 부여잡고 이불속으로 들어가는 날들의 연속. ‘마거릿’이나 ‘올리버’ , ‘유진’이 죽은 것도 가난 때문. ‘프랭크’의 장티푸스가 심해진 것도, 의사가 놀랄 정도의 심각한 결막염에 걸렸던 것도 모두 가난 때문. 간혹 일거리가 생겨도 얼마 못가고 그만 두어 버리면서, 그나마 생긴 실업수당도 몽땅 술을 마시는데 탕진해 버리는 아버지 때문에 엄마는 이웃들에게서 음식을 빌리는 처지가 되고, 부부는 매일같이 싸움을 하고, 아이들은 웁니다. 확실히 아일랜드의 가톨릭교도 아이들의 비참함이란 상상 이상일지도 모르겠네요. 저자는 이런 힘들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한발짝 물러서서 시종 담담한 시선으로 서술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없이 신파조로 흘러갈 것 같은 상황인데도 읽는 동안 그렇게 괴로운 기분에 빠져 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간간히 유머러스함마저 느껴집니다. 상당히 비참한 처지입니다만, 프랭크들은 결코 불행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들려주는 아일랜드 신화속 영웅 ‘쿠훌린’의 이야기를 프랭크가 자신의 것으로 간직하고 있다거나, 이른 아침의 아버지를 독점하는 기쁨을 은밀하게 느끼는 장면등은 아련하게 가슴이 따뜻해져 오는 대목입니다. 성장해 가면서 이성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고, 성에 관한 지식도 늘어갑니다. 그에 따라서 프랭크가 사제에게 털어놓는 고해성사의 내용이 변해 가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어릴적에는, 사제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아야 할 것 같던 고해의 내용이, 서서히 솔직하게 털어놓기에는 망설여지는 내용으로 바뀌어가면서 프랭크는 교회에 가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들어가지 못하고 갈등하게 됩니다. 종기처럼 점점 크게 부풀어오르는 이 죄의식이 자신을 헤치지 못하게 해달라고 빕니다. 한 사람 몫의 어른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이런 ‘프랭크’가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지독하리만치 힘들었던 시절을 그린 이야기이지만, 유머가 있고, 희망이 있고, 가족의 사랑이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이제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는... 속편이 있다고 하네요. 꼭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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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약하고 늙고 머리가 희끗희끗해도 어릴 때처럼 어머니를 사랑하라 흙속에 묻히실 때까지 어머니의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아일랜드 민요 '어머니의 사랑은 축복'의 일부라고 합니다. 참, 좋지 않은가요? 가족에 대해, 성장하는 소년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싶으신 분, '안젤라의 재'를 추천해드립니다. 퓰리처상을 수상했다든가 전미 도서 비평가상이라든가 올해의 책이라든가 뉴욕타임스 도서상이라든가...뭐 기타등등의 상을 탔기때문이 아니라, 부질없이 흘러가버린 것 같은 유년시절의 회고는 고통과 부끄러움과 슬픔이 가득할지라도 아름다울수밖에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어느 곳을 헤맨다 해도/ 어머니의 사랑이 당신을 축복할 거예요/ 어머니 살아 계실 때 잘 돌봐드려요/ 가시고 나면 그리워질 테니"라는 노랫말처럼 우리를 축복해주는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가족을 그리워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배고픔과 추위, 가난의 고달픔이 생생히 드러나고 있지만, 프랭크의 어린 시절은 왠지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번번이 급료를 술값으로 탕진해버리고 빵한조각 구할 수 없는 가족을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구걸까지 해야했던 엄마의 이야기도, 가난때문에 무시당하고 결국은 동생들과 도둑질까지 해야만 했던 이야기도, 가난해서 전례복을 준비하지 못하리라는 이유로 성당 복사전례도 못하고 문전박대를 당하고 교장선생님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상급학교로 진학을 못하게 되어 결국 초등교육을 끝내고 우편배달, 신문배달뿐만 아니라 협박편지 대필이라는 것을 했던 이력까지 한없이 암울한 이야기들이 마구 담겨있는 프랭크의 유년시절 이야기가 아름답다니,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안젤라의 재는 '아주'라거나 '정말'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이야기하지 못하겠습니다. 그저 담담히 이야기를 한토막 한토막 풀어놓고 있는데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짓고 있다거나 콧등이 찡하게 아려오는 슬픔과 연민에 눈물이 날 뿐입니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결코 아름답게 느껴질 수 없는 유년의 이야기가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비참하기만 한 삶의 풍경이 사랑넘치고 유머러스하게 묘사될 수 있는지 놀라울뿐입니다. 프랭크의 자전적 유년시절의 회고록인 안젤라의 재는 수많은 에피소드에서 더 깊이있는 삶의 단면을 성찰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 모든 느낌들을 풀어놓기에는 나의 언어구사력이 너무 짧습니다. 그러니,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 가족에 대해, 성장하는 소년의 진솔한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싶으신 당신께 이 책을 추천할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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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난 지금 마음이 너무 아프다.
어린 프랭키와 말라키, 그리고 마이클과 알피. 또 유진과 올리버, 마거릿. 이 아이들의 고통스런 시절을 그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늘 주린 배와 차갑고 냄새가 나는 방, 낡은 코트를 둘러쓰고도 춥기만한 침대와 발가락이 나오는 양말과 타이어로 땜질한 신발을 하고 프랭키는 하루하루를 버틴다. 나아질 희망이 없는 아일랜드 리머릭의 뒷골목 거리에서 프랭키와 동생들은 추위와 굶주림과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어쩌다 빵이 넉넉한 날은 행복하다. 지난 일주일간 나는 이 아이들과 함께 배를 곯고 추위에 떨었으며, 프랭키가 분이 오른 감자라도 한 알 먹은 날이면 나 또한 기쁘고 행복했다. 아일랜드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던 아빠는 그 일로 북아일랜드를 떠나 미국으로 갔고, 거기에서 엄마 안젤라를 만났다. 프랭키를 품은 안젤라는 결혼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역시 결혼을 원하지 않았던 말라키와 결혼한다. 그리고 연이어 프랭키의 동생들이 태어났으나 말라키는 알콜 중독으로 3주 이상 집에 돈을 가져오지 못했다. 말라키는 아이들을 끔찍이 사랑했으나 그 사랑과 술은 별개의 문제였던 모양이다. 끝없는 가난과 시달리면서 귀여운 딸아이 마거릿은 태어난 지 몇 주만에 죽고 만다. 실의에 빠진 채 넋을 놓은 안젤라와 그 가족은 아일랜드로 돌아오지만, 미국보다 더 가난한 그들은 이들을 반기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아일랜드 자유주인 안젤라의 고향 리머릭으로 찾아가지만 그 곳에서도 미국에서의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쌍둥이 올리버와 유진조차도 목숨을 잃는다. 지독한 가난으로 구걸과 도둑질까지도 불사하면서 아들들을 지켜내려는 안젤라의 노력은 프랭키에게 직업을 얻을 수 있는 나이까지 자라게 한다. 유달리 똑똑해서 상급학교 진학을 권유받았던 프랭키. 안젤라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 아이를 훌륭하게 가르치고 싶었지만, 교회와 학교는 가난한 그들을 거부한다. 읽으면서 더욱 가슴 아팠던 것은 이 책이 논픽션이라는 점이었다. 이 책을 쓴 프랭크 매코트가 어린 시절 직접 겪은 일이라기에는 너무도 처참하니 말이다. 그 와중에도 이웃에게 작은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 가난한 여자 거지와 아이를 집으로 데려와 난로라도 쬐게 하던 안젤라와 길 잃고 병든 노인과 동물을 사랑하던 그 가족의 모습이 따뜻하다.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죽은 할머니의 옷을 입은 프랭크에게 처음으로 옷을 사준 애기 이모와 첫 맥주를 사 주던 이모부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더 이상 세상의 어느 누구도 굶지 않는 그런 날이 오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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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프랭크 매코트가 어린 시절의 경험을 쓴 논픽션 에세이다. 아일랜드계 이민자를 아버지로 둔 그는 매우 궁핍한 시절을 살았다. 우리 민족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나무 껍질까지 남아나지 않았을 정도로 힘든 시절을 보냈다고 하는데, 책 속의 사연도 그에 비견될 정도로 비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가난으로 인한 아기들의 죽음을 겪고도 임신과 출산은 이어졌고, 아버지는 집에 배를 곯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몇 푼의 돈마저 술을 먹는 데 써버린다. 책을 읽는 초반에는 이 부모의 대책없음에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나마 아일랜드를 생각하는 애국심 하나만은 바로 서 있어 아이들에게 아일랜드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불어넣어 주려 애쓰기도 했으나, 이런 행동마저 술기운에서 나오는 아집과 미련의 변질된 모습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았다.
그들이 살아온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공동 화장실 옆에 위치한 집은 다른 세대가 오물을 담아와 버리는 통에 내내 냄새에 시달려야 했고, 여름이면 1층이 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한겨울에 땔감이 없어 방을 이루는 벽재를 조금씩 뜯어 쓰다가 집이 무너진 대목에 가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게다가 이게 실화라니!
그래도 프랭키는 총명하고 밝게 자란 편이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일종의 일탈이라고 할 만한 행동을 하기도 했지만, 아버지 대신 식구를 돌보는 가장의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학교 선생님으로부터는 글쓰기 재능을 인정받았고, 미국에 가서 새출발을 하겠다는 꿈을 위해 알뜰하게 모은 돈으로 뜻을 이루고야 말았다.
화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매우 우울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던 내용이 솔직하고 익살맞은 프랭키의 사고방식을 거치면서 가난하나 유쾌했고, 궁핍했지만 정이 있었던 어린시절에 관한 이야기로 완성되었다. 이 회고록은 미국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 유명한 알란 파커가 감독이라니 영화가 더욱 궁금해진다.
자신의 회고록으로 많은 명예를 누리고 간 프랭크 매코트. 고단했던 어린 시절이 훗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 소재가 되면서 어느 정도의 보상이 이루어진 셈이니, 훗날의 영광이 있기 위해 꼭 넘어야 할 어려운 시험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울고 웃는 것을 보며, 그도 기뻐했을까?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는 그의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저점에 속해있었던 시기가 오직 어린 시절뿐이었기를 바란다. 세상은 공평해야 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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