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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간들은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있는 거야
그는 당신을 속속들이 알고 있습니다. <사랑 이후의 사랑> 중에서, 데렉 월컷 Derek Walcott
그들이 숨 쉬며 살아가고 직장에 나가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데이트를 하거나 사랑을 나누거나 등등의 많은 것들이 견뎌내야 하는 일이다. 그 둘이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긴 시간을 함께 할 것 같으면서도 온전히 그 둘에게 주어진 시간이 없다. 뚜껑을 열어 볼 수 없는 시한폭탄을 가슴에 품고 불안함에 익숙해진 인생을 살아낸다.
헨리가 사라져 버리고 난 후의 시간을 견딜 자신이 없는 클레어. 클레어에게서 사라져 있어야 하는 시간을 견디기 힘든 헨리. 그러나 아쉬운 것은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여자의 몫이여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때로는 떠도는 남성도 늘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여성들은 알고 있는가?
사람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떠나서 불완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라는 말이 대신한다. 육체적 에너지를 달리기로 소모시켜야 정상적인 생활이 되는 헨리는 섹스를 몹시 즐기는 남자다. 그러나 서로를 품에 안고 잠들어도 한 순간에 사라진다는 것을 아는 둘은 진정으로 잠들지 못한다. 문든 한 쪽이 깨어서 상대를 바라보는 순간이면 얼마나 서로를 그리워했을까?
이 세상에 남은 시간이 아직 많은 척하면 돼.”
망각이 인간이 신에게 받은 가장 큰 축복이라는 말이 있다. 잊을 수 있다는 것이 어려울 때 착각이라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시기가 있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면 편리하려나?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 누군가 좋하하는 것을 물어보면 ‘기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싫어하는 것은 물론 ‘잊혀지는’ 것이라고 했다. 헨리가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함께’ 있다는 것이고 클레어 잊고자 하는 것은 ‘시간’이 적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시간도 육체도 점점 사라진다. 비단 시간여행자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때로는 머리 맡에 시간의 태옆을 감는 새를 놓아두었다가 늦잠을 깨우는 알람시계처럼 누르고 싶다. 삶의 부끄럽거나 안타까운 순간으로 태옆을 되돌려 줄 수 있다면 이번엔 반드시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시간여행을 이야기로 끌어들인 많은 작가들은 공통된 이야기를 한다. 이루어질 일은(바꾸려 한다고 해도)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고. 이것은 슬픈 이야기다. 우리가 언젠가 시간을 여행할 수 있다고 해도 결국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시간여행을 할 수 없다고 해서 아쉬워하지 말지어다. 무엇인가 부족해 보이는 이 순간도 결국은 인과관계의 연속성에 놓여있으니 말이다.
그건 아니다. 내가 가진 시간이 적다고 불평한다고 아예 없길 바라겠는가? 내가 받는 사랑이 적다고 불평하는 사람아, 사랑이 아예 없길 바라겠는가? 헨리와 클레어에게는 딸이 있다. 여섯 번의 유산을 통해 거의 포기하고 있던 둘은 또다른 시간에서 찾아 온 헨리에 의해 앨바를 갖게 된다.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가 결국은 자신처럼 시간여행자가 되는 것이 두려운 헨리는 아이를 만드는 일에 많은 갈등을 한다. 그러나 스스로 끊임없이 묻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가 아예 없는 게 좋겠어?
내 삶의 시간이 시작된 뒤로 줄곧 말이야. 그리고 내가 여기서 멀어지면, 이 순간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달려가던 방향에서 지나쳐 간 방향으로 이만큼쯤 와 있는 셈이 될 거야. 그러니까 내 사랑, 지금 우리는 여기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고, 다른 시간들은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있는 거야.”
왕가위 감독이 영화 <중경삼림>에서 유행시킨 촬영기법이 있다. 주인공이 무엇인가에 몰입되어 있는 장면에서 주인공의 움직임은 매우 천천히 움직인다. 역설적으로 그 주변의 사람들은 매우 빠르게 움직인다. 헨리와 클레어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다른 시간들은 이 둘과 다르게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사실은 결국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은 누구나 동일하다는 것이고 이 점이 이 사랑에 좀 더 애틋함을 갖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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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 혼자 뒤에 남아 있는 건 힘들다. 나는 지금 헨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그가 무사한지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다. 항상 남아 있는 사람이 더 힘든 법이다. 헨리 : 그녀가 없는 시간과 장소에 존재해야 한다는 게 나는 견딜 수가 없다. 그런데도 나는 그녀가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항상 떠나가고 있다.
자신이 제어하지 못하는 시간여행을 해야 하는 헨리. 어릴 때 만난 시간여행자 헨리를 사랑하는 여인 클레어. 순행하는 시간에서는 헨리는 28세, 클레어가 20세인 1991년 뉴베리 도서관에서 첫만남을 가지게 되지만, 클레어는 1977년 6살 꼬마아이때 36세의 헨리와의 만남 이후로 사랑을 키워왔다. 어릴 때의 슬픈 가족사와 함께 이미 정해져 버린 미래의 모습에 절망하지 않고 서로를 알아가며, 이해하고, 사랑을 나누는 과정을 과거와 현재, 아주 조금은 미래를 넘나들며, 클레어와 헨리의 각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이 놀랍다. (위에 옮겨놓은) 프롤로그에 담은 클레어와 헨리 각자의 이야기가 책을 다 읽은 뒤에 깊은 공감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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