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열 네 살 소녀 소피는 어느 날 갑자기 한 장의 의문의 편지를 받게 된다. 그로부터 알프레도 크녹스라는 철학자를 만나기 시작하고, 소피는 천천히 철학자들과 철학의 역사, 이론에 관해 배워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처음에 생생한 현실로 그려지던 소피의 세계는 소설이 진행될수록 의문 투성이로 변해간다. 당일 소인이 찍힌 엽서가 날아오고 크녹스 선생이 다른 이름을 부르고 심지어 개가 말을 하기까지 한다. 그 모든 '이상한 일들'은 하나같이 '힐데'라는 여자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고 소피와 크녹스 선생은 결국 자신들이 힐데의 아버지 크낙 소령이 힐데의 생일선물로 주기 위해 쓰고 있는 '소피의 세계'란 소설 속 등장인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소피와 크녹스 선생은 탈출을 결심하여 '소피의 세계'에서 사라지지만 크낙 소령은 그저 '이야기가 끝났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소피는 힐데의 세계-현실로 들어오지만 현실에는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한 채 현실 속 이야기의 세계에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힐데는 소피가 자신의 곁에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야기의 독자/시청자들은 이야기 속세계를 현실과 같은 자명하고 분명한 세계로 인식한다. 그러한 전제가 없다면 이야기는 그저 글자가 쓰인 종이뭉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피의 세계는 2권에서 갑자기 크녹스 선생으로 하여금 자신들이 이야기 속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장에서부터 힐데의 이야기를 진행하기 시작하여 그때부터 양가 진행이 이어진다. 자신들의 세계-크낙 소령이 쓴 '소피의 세계'라는 소설의 세계-로부터의 탈출/반역을 공모하는 크녹스 선생과 소피의 이야기,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들을 읽어 나가며 스스로 사고하는 힐데의 이야기가 동시에 이어진다. 특히 소피가 서점에서 '소피의 세계'라는 소설을 발견하고 그 첫 머리에 자신의 이야기-요슈타인 가아더의 '소피의 세계'의 첫머리-를 읽게 되는 장면은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와도 닮아 있다. '끝없는 이야기'에서 주인공 바스티안은 '끝없는 이야기'라는 책을 읽게 되고 어린 왕녀가 지배하는 그 세계의 위기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다. 그러다가 어린 왕녀가 현자에게 이르러 현자가 쓰고 있는 그 세계의 책을 보는 장면이 되자 바스티안 자신의 이야기-즉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의 첫부분-이 시작되는 것을 보게 되고 그리하여 다시 자신이 책을 읽고 책 속에서 어린 왕녀의 세계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다시 현자에게 닿아 현자의 책을 보고 그 안에 쓰인 자신의 이야기를 읽게 되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구조 속에 빠진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이 '끝없는 이야기'의 세계의 일부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 즉, 이야기 속에 독자가 등장한다는 것은 그 독자 또한 이야기 속 인물이라는 의미가 된다. '소피의 세계'에서 힐데가 언급되고 힐데의 존재가 인식되는 순간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피의 세계'에는 힐데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것은 책을 읽는 '나'에게 소설의 일부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얽힌 구조는 이야기 속세계를 현실과 같이 자명하지만 동시에 내게 어떠한 위험도 끼치지 못하는 분리된 세계로 인식하는 독자들에게 소격 효과를 일으킨다. 독자는 비로소 '혹시 나도 이야기 속 인물인 것은 아닐까'하는 환기를 얻는 것이다. 이야기 속의 인물은 자유 의지를 가지지 못하고, 그러므로 크녹스 선생은 빨간 고깔(빨간 모자)가 나타난 후 소피에게 말한다.
"그 아이에게 경고하는 건 소용없는 일이다. 빨간 고깔은 동화 속에 있는 대로 할머니 집에 가고, 거기서 늑대한테 잡아먹힌다. 그 아인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그렇게 모든 일이 영원히 되풀이될 뿐이다."(3권 25p) / "우린 날조된 현실 속, 긴 이야기의 뒤편에서 인생을 살고 있다. 그 말들의 철자 하나하나를 모두 소령이 싸구려 휴대용 타자기로 치는 거다. 그래서 써 놓은 내용 중에 소령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3권 107p)
그러나 그 깨달음을 크녹스 선생이 아무리 설파해도, 소피가 살고 있는 세계의 인물들에게는 이해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그곳이 현실인 것이다. 오히려 사람들은 크녹스의 말에 모욕을 느끼고 반발한다. 크녹스 선생과 소피는 '문제는 우리가 존재하느냐 않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이며 누구냐는 거'라고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혹은 우리가 '소령의 분열된 의식 속의 자극, 그의 의식 속의 관념일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해도, 그것이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어쩌지는 못'하게 하는 근본적인 진리이다. 그리하여 소피와 크녹스 선생은 소령/작가/이야기꾼이 만든 이야기의 행간 사이에서 틈을 찾아 '사라진다'. 힐데와 크낙 소령이 살고 있는 '현실'-소피와 크녹스 선생의 세계의 바깥-으로 나온 그들에게는 오히려 그 '현실'이 공기와 같은 허구가 된다. 그리고 현실을 떠난 것은 그들이 아니라 오히려 소령/이야기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떠난 자는 소령이다. 소령이 그의 책 마지막 결론을 쓴 것이란다. 소령은 이제 다시는 우리를 찾아 내지 못할 것이다."(3권 272p)
그리고 힐데는 종이와 잉크를 넘어 다른 어떤 존재인 소피를 느낀다. 글에 '행간'이 있고 이야기꾼이 그 자신의 의지만으로 이야기 전체를 구속하지 못하듯 '이 정원에도 행간에 숨어 있는 무엇인가가 있을 거예요'라고 힐데는 말한다. 이 세계는 어느 이야기꾼의 이야기에 불과하고 그리하여 우리 역시 소피나 힐데 같은 이야기 속 인물일 지도 모른다. 우리의 의지는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삶이 모두 꿈과 다를 바 없다는 깨달음에 닿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우리는 '행간' 사이에서 의지를 가지고 바깥의 현실로 탈출과 반역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그 '철학자'의 개념은 이야기꾼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다. 이야기꾼은 이야기를 통해 속삭인다. 우리가 상실한 놀라움에 관해, 이 세계와 인생에 가득한 수수께끼와 의문들에 관해 속삭이고 그리하여 익숙하고 당연한 것인 줄 알았던 이 세상이, 혹은 우리 자신마저 마술사의 모자에서 끄집어 낸 토끼-혹은 토끼의 털에 우글대는 벌레-와 같은 것일 수도 있다고. 그러므로 이야기꾼은 이 토끼 가죽의 털을 붙들고 위로 위로 기어올라, 행간의 사이를 찾아내라고, 반역하고 거역하여 혁명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슬픈 사실은 우리가 자라면서 중력의 법칙에만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지. 동시에 이 세계 자체에 길들고 있는 거다. 어쩌면 우리는 유년 시절을 보내는 동안 세상에 대해 놀라워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로 인해 무엇인지 근본적인 것을 상실하고 말았지. 즉 철학자들이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으려는 그 무엇을 말이다. 그 무엇은 우리 마음 속 어딘가에 있으면서 우리에게 인생은 하나의 거대한 수수께끼라고 늘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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