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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해 알고 싶다면 『만인보』를 읽어라.
"인간에 대해 알고 싶다면 『만인보』를 읽어라." 내용보기
조선을 망친 인물 중 하나는 율곡 선생이다. 이 명제를 율곡 같은 훌륭한 분에게 쓴다는 것은 욕먹을 일임에 틀림없지만 나는 아쉽게도 그렇게 생각한다. 송강은 죽을 때까지 깊게 사귄 벗이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율곡과는 가히 친하다 할 만 했다. 송강 정철은 조선의 당쟁을 격화시킨 대표적인 인물이었으며 그 배경에는 율곡이 격화되고 있는 당쟁을 뒤로 하고 은거하면서 정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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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망친 인물 중 하나는 율곡 선생이다. 이 명제를 율곡 같은 훌륭한 분에게 쓴다는 것은 욕먹을 일임에 틀림없지만 나는 아쉽게도 그렇게 생각한다. 송강은 죽을 때까지 깊게 사귄 벗이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율곡과는 가히 친하다 할 만 했다. 송강 정철은 조선의 당쟁을 격화시킨 대표적인 인물이었으며 그 배경에는 율곡이 격화되고 있는 당쟁을 뒤로 하고 은거하면서 정철에게 모든 권력을 위임한데 있었다. 게다가 율곡의 학통은 김장생과 김집으로 이어져 조선을 망친 대표적인 학문인 예학과 보학을 집대성하게 된다. 그 전통에서 우암이 등장했고 우암은 노론의 다른 이름이자 조선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나는 예학과 보학을 극도로 싫어하는데 이런 쓸데없는 예절이나 정확하지도 않은 족보 따위에 목매는 순간 변화를 거부하게 만들고 새로운 사회로 한 걸음도 못나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의 남편의 가문이 김장생, 김집 가문인데 나의 남편은 정확하지도 않은 족보인데다 쓸데없는 이야기들로 가득한 족보 따위는 개나 줘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강준만이 말한 대로 족보는 아직까지 우리 사회를 어느 정도까지는 지배하고 있는 데다 어떤 비판도 없이 무조건적인 추종이 이루어지는 두 집단이 바로 종친회와 근본주의 종교집단이기 때문에 족보라는 이름에 대해 항상 부정적인 이미지가 나에게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만약 한 성씨나 가문의 족보가 아닌 한 마을, 한 나라의 사람들에 대한 족보를 쓴다면 어떨까? 자기 가문을 드높이기 위해 윤색하고 남자들로만 이루어진 족보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여주고 인간의 내면을 통찰하며 남자든 여자든 아이든 병신이든 훌륭한 사람이든 개잡놈이든 이야기가 있고 삶이 있는 모든 이들의 족보를 쓴다면 어떨까? 이런 상상을 해보는 것은 쉽지만 실제로 시도해보면 10명의 이야기만 써도 얼마나 힘든 것인지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윤색하는 것도 아니고 겉핥기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 사람들의 삶의 본질을 시로 표현하는 것은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고은이란 시인이 있다.

 

군산이란 땅은 묘한 곳이다. 일제가 수탈을 쉽게 하기 위해 발전시킨 도시다. 일제 강점기 때 군산이나 목포는 아주 번화한 도시였다. 식민지의 본질은 그 번화한 항구도시에서 감추어지기도 하고 눈 밝은 사람에게는 잠시나마 훔쳐볼 수 있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고은은 자신의 고향에서 전라도 말과 충청도 말을 배우고 감옥에서 국어사전을 외우다시피 읽으면서 익힌 우리나라 말을 통해 우리나라와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적나라함은 우리의 폐부를 후벼 파 도저히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이 시들을 읽을 수 없게 만든다. 4001편의 시를 쓰면서도 천편일률이 아니게 쓰는 능력이 과연 인간에게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 반대로 이런 시인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만으로 가슴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동네 사람들에서부터 역사적 인물까지 세상에 드러나야 할 거의 모든 사람을 언급하지만 그 사람들을 말하고 이야기하고 노래할 때 어떤 거리낌도 없어 과연 고은이란 가짜 땡중이 불교의 정수를 알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세상의 헛된 예절이나 핏줄에 구애받지 않고 각각의 인간의 본질에 충실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가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것이다.

 

「중뜸 재수네 아기

 

시집온 지 6년이 넘도록 소식 없으니

시어머니 구박깨나 받은 나머지

얼씨구 아이 서서

시어머니 대접깨나 받은 나머지

응애 하고 태어난 아기

뒷산에 탯줄 묻고

귀하게시리 귀하게시리 태어난 재수네 아기

 

그러나 그 갓난아기

병하고 함께 태어났는지

숨이 고르지 못하더니

목구멍이 막혀

젖도 제대로 못 먹더니

 

군산 서래 영국사람 구암병원

개정면 개정병원

또 진내과

또 어디 어디

 

제발 우리 아기 목숨만 남겨달라고

미친년으로

미친년으로

다시 가본 구암병원에서

이제는 집으로 데려가라고 해서

 

다 죽어가는 어린것 부둥켜안고

울며불며 돌아가는 중

굳을 뼈도 없이 굳어버렸다

저승이라도 함께 가겠다고

어린 송장하고 땅바닥 주질러앉아

넋놓고 울다가

울음도 동이 난 마누라더러

남편 재수도 넋 나간 말 한마디

그래

함께 갈 수 있다면 가봐

나도 생각중이여

 

그러나 아직 산 사람에게는

죽은 아기 더한층 선연하여라

그 눈 커다란 것이!

그 이마빡 넓기도 넓은 것이!

그 배내웃음 깨물어먹고 싶던 것이!

아이고!」

 

이 시를 읽고 나는 좋이 눈물 한 종지는 흘렸다. 에릭 클랩튼의 ‘Tears in Heaven’이 과연 이 시에 비길 수 있을까?

 

「이광수

 

춘원 이광수가 큰 작가라고?

아이고 천만의 말씀

잡살뱅이야

일제 앞잡이였대서

깎이고 깎여 그런 게 아냐

그 이전부터 잡살뱅이야

 

춘원 이광수를 그럴듯하게 말하는 자

그런 자는

저 자신을 꾸미는 자야

이광수를 의탁해

별 건덕지로 다

저 자신을 꾸미는 자야

 

춘원 이광수

그건 운명적으로 삼류 작가야

식민지시대 행복으로

수다깨나 떤 작가야

 

조선을 버릴거나 말거나

이광수

그대가 버린다고

어찌 조선이 버림받고 말겠는가

불쌍한 사람아

그대 재조에는 오늘도 없을 뿐 아니라

불가불 내일도 없다

 

조선말에 태어나

식민지시대

해방 이후 가장 떳떳치 못한 시대의 고아여

 

학부대신이 꿈이었지

총리대신이 꿈이었지

그런 것 대신 소설가 되어

정에 주려

정이 들고

정이 떨어지고

그것을

백팔번뇌라 일컬은 자

 

똘스또이를 꿈꾸었으나

이광수였다

그래도 이 땅에 그대의 비석 서 있노라 망언다사라」

 

나는 항상 춘원의 글솜씨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했다. 오히려 서정주의 재주는 높고 높아서 그의 시를 읽고 일제 말기 때 구국의 꿈을 안고 태평양 전쟁에 총알받이로 참여했던 젊은이들이 많았을까 걱정했지만 도대체 춘원의 글에서는 전혀 새로운 것도 가슴 울리는 것도 하나 느낄 수 없었다. 역시 고은은 남다르다. 그 자신이 글재주가 좋으니 저렇게 시원하게 춘원을 깔(?)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만인보』를 읽고 나면 이 시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군산에 살고 있을 것 같고 군산이 꼭 내 고향 같은 느낌이 든다. 언제 군산 한 번 가봐야 할 것 같다.







m*****a 2011.03.23. 신고 공감 17 댓글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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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물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창조할 수 있는 이야기
"어떤 인물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창조할 수 있는 이야기" 내용보기
우연찮게도 지금 TV에 노시인의 모습이 나온다. 시에 환장하는 날을 꿈꾸는데 '과연 그럴까?'싶은 의문이 들고, 젊은 시인이 1년 시인의 연봉을 묻는 질문에 우문현답을 한다. "이런 얘기 하지 맙시다. 판이 그런 걸 그렇다면 떠나야죠." 젊은이들이 듣기에 꺼려지는 이야기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하면 시인이 경제와 정치의 이중고를 지닌 시절을 거치며 마음을 다스리는 동안 머리
"어떤 인물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창조할 수 있는 이야기" 내용보기

      우연찮게도 지금 TV에 노시인의 모습이 나온다. 시에 환장하는 날을 꿈꾸는데 '과연 그럴까?'싶은 의문이 들고, 젊은 시인이 1년 시인의 연봉을 묻는 질문에 우문현답을 한다. "이런 얘기 하지 맙시다. 판이 그런 걸 그렇다면 떠나야죠." 젊은이들이 듣기에 꺼려지는 이야기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하면 시인이 경제와 정치의 이중고를 지닌 시절을 거치며 마음을 다스리는 동안 머리와 정신에 쌓인 축적물들은 경제의 문제 하나만으로도 휘청거리는 젊은 시대의 사고깊이가 따를 수 없다. 가혹한 현실을 눈앞에 두고 그것을 몸부림치며 겪으면서 다른 이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고 귀로 듣고 버텨야 했던 시간들과 이해되지 않은 요즘 세대들의 간극을 느끼면서도 꿈을 꾼다는 것, 시인이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야기가 길다. 우리나라의 멀고 먼 옛날의 역사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 사람의 선택과 배치,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는 목소리는 전적으로 시인의 것이다. 그런데, 이 책 중에서 어떤 인물들을 선택하거나 특정 인물들을 묶어서 뼈대를 만든다면 우리의 잊고 싶은 과거의 우물 곁에서 서성이는 매력이 있을 것 같다.


      TV로 시대물을 이야기하기에 사람들의 관심폭이 넓어지면서 깊이는 얕아졌다. 그래서, 시청률 경쟁에 이 이야기를 끄집어 낸다는 것은 어지간한 담력없이는 불가능할 것 같다. 그럼, 시나리오라면, 우리나라의 갈등지수가 OECD 회원국중 상위권이고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많다는 점에서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들에 대한 지불의도가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평이한 혹은 낮은 스코어를 기록했던 톰 후퍼 감독의 <레미제라블>이 한국에서 광풍이었던 까닭은 기꺼이 자신의 지갑을 열어 보고 싶은 것들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몰랐던 과거, 실재와 알려진 이야기가 다른 과거, 인간이 인간으로의 대우를 받지 못한 과거가 있다. 어이없이 죽은 사람들 속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름을 지니고 생명의 빛을 발하는 그들이 있다. 그리고, 시류에 따라 행동했거나 그것에 역행해서 당대와 후대의 평가가 다른 사람들도 있다. 이 사람들을 불러내어 진부하지 않고 진실 그대로 스크린에 담아낼 수 있다면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얼굴을 진한 화장기 빼고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역사 속 인물이 시간을 이동하는 이야기는 소설이나 드라마로 있었다. 이것보다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이 여러 인물을 어떻게 교차하느냐가 흥미로울 듯. <인셉션>이 꿈의 단계로 이동하는 길을 따라 자신의 닫힌 기억 속 추억의 울타리를 넘는 이야기였다면, 과거의 한 때 혹은 여러 시점을 문으로 연결해서 창조하는 이야기는 흥미로울 것도 같다. 분명 어느 부분에서 이름도 기억나지 않을 젊은이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동네 사람이 책장을 넘기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아프고 먹먹할 수 있다. 그게 여럿이서 함께 느끼는 고통이라면, 그리고 그 아픔이 진짜라면 촘촘한 이야기 구성은 가능하다. 현대라면 신문사의 과거 기록과 관련 자료들만으로도 배경과 인물형성이 가능하므로.


      사람마다 관심대상은 달라도 감정이 폭발할 수 있는 임계치의 범위는 비슷할 것 같다. 그 느낌을 잔인함이나 복수보다 우리의 현재가 과거를 들여다보는 거울 혹은 우물로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



YES마니아 : 골드 n********y 2013.12.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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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주변부의 켜에 대한 흰소리
"어느 주변부의 켜에 대한 흰소리" 내용보기
별로 이런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에게 <만인보>는 그렇다. 누가 말한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해야 할 책이다. 처음 버킷리스트 이야기를 듣고 한 편의 책과 한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한 편의 책이 바로 <만인보>이다.    처음 <만인보>를 읽던 때를 떠올린다. 동네 정보 도서관에 신착자료로 들어와 기뻤다. 정보도서관의 특성상 고가의 도서라 신청이 불가
"어느 주변부의 켜에 대한 흰소리" 내용보기

 별로 이런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에게 <만인보>는 그렇다. 누가 말한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해야 할 책이다. 처음 버킷리스트 이야기를 듣고 한 편의 책과 한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한 편의 책이 바로 <만인보>이다.

 

 처음 <만인보>를 읽던 때를 떠올린다. 동네 정보 도서관에 신착자료로 들어와 기뻤다. 정보도서관의 특성상 고가의 도서라 신청이 불가능했던 이유이다. 억척스럽게 한 편 한 편 읽으며 제대로 보고 있는지 '봤다는 것'을 위해 책장을 넘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구에게나 그러한 순간이나 그러한 책, 영화 혹은 어떤 이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미안하게도 <만인보>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과연 <만인보>에 대해 말하는 것은 가능한가? 읽는 순간 내게서 머물길 거부하는 책. 한 편 한 편의 시 속에 녹아있는 삶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할 수 밖에 없었다.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마하브하라타>, <길가메시 서사시>, <레 미제라블>, <파우스트>, <신곡>, <트리스트럼 섄디 그의 삶과 의견> 등에 대해 말하는 것은 가능한가? <토리노의 말>, <뉘른베르크 재판>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가? 지금의 나는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흰소리는 적확하게 말하자면 <만인보>와 관련된 하나의 '켜'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가 차가운 세상의 결에 대해 남길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켜뿐이지 않을까? 아닌가? 아니길 빈다.

h*******e 2012.10.05. 신고 공감 0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