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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한 민중의 표상과 이념적 지식인의 초상 - 안회남 해방기 소설
1947년 4월에 발표된 「폭풍의 역사」는 두 인물의 죽음을 전경화하고 있다. 지식인 서술자 현구의 시선으로 묘사되는 두 인물의 비극적 죽음은 민족의 비극을 표상하는 동시에, 민족의 미래를 예시한다는 점에서 중층적인 맥락을 지닌다. 1947년에 일어난 10월 민중 봉기에 참여한 돌쇠가 경찰이 쏜 총에 맞고 죽는 상황이 일어나는데, 뒤늦게 그가 28년 전 3․1 운동 때 일본 순사의 총에 맞아 죽은 ‘포달’의 아들임이 밝혀진다. 28년의 시간적 경계를 두고 벌어진 이 비극적 사건의 중심에는 공교롭게도 ‘해방’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배치되어 있다.
민족의 해방을 위해 만세를 부르다 죽은 포달의 아들 돌쇠가, 해방된 사회에서 또 다시 민족의 해방을 외치다가 죽는 모순구조가 해방기 사회에서 버젓이 발생한 것이다. 돌쇠의 비극과는 반대로 식민지 시대에 부면장을 하던 이석기는 면장으로 승진하고, 우익단체의 지부장이 되어 반탁운동에 나서는 상황이 그려지는바, ‘해방’이라는 사건에 내포된 이러한 역설은 당시 남한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① “암, 세상에 누가 잘못 없이 지내는 사람이 있나? 또 설령 잘못했더라두 잘못한 것을 알구 개과천선하면 고만이니까, 허허…… 자, 우리 해방이 되구 독립이 되구 하는데, 뭐 서루다 같은 동포끼리 잘 지내지, 허허허허…… 동포끼리…….” ② “나 보세요. 해방 전에두 환영받구 이건, 해방 후에도 환영받고 하면 어떡헙니까? 해방 전에 환영받은 사람은 일본눔이구, 해방 후에 환영받은 사람은 조선 사람이거든요…… 해방 전에 환영받았으면 해방 후에는 환영 못 받구, 해방 전에 환영 못 받은 사람이 해방 후에 환영받아야 합니다. 전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인용문 ①과 ②는 식민지 시대에 부면장을 지낸 이석기의 처벌과 관련하여 마을 사람들이 벌인 토론의 내용들이다. 인용문 ①이 동포라는 두리 뭉실한 용어(이승만의 ‘무조건 뭉치자’라는 언설과 어울린다)로 이석기의 과거를 흐리고 있다면, 인용문 ②는 해방 전에 환영받은 사람이 해방 후에는 환영받을 수 없다는 결연한 논리를 펼치고 있다. ①이 정에 이끌린 마을 노인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라면, ②는 마을의 젊은 패를 대표하는 돌쇠의 의견이다. 지식인 서술자 현구는 돌쇠의 입장에 동조하지만, 그렇다고 이석기를 처단하는 일에 선뜻 나서지도 못한다.
어린 시절부터 마을에서 같이 자란 친구라는 정리(情理)가 의식과 실천의 분열을 낳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소설의 정황상 돌쇠가 현구를 직접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입장에 처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나이도 나이려니와, 현구의 의사가 마을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는데 절대적인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돌쇠를 비롯한 젊은 패들과 현구는 일종의 사제관계로 연결되어 있는바, 이런 점에서 현구의 의식 변화에 초점을 맞춘 이 소설 은,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이 비극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내재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소설에 내재된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 작가는 지식인 서술자의 관념적 의지를 작품의 전면에 내세운다. 이를테면, 3․1 만세운동 때 “나는 조선 백성이다!”라고 외치며 죽은 포달과, 그런 아버지를 부르며 10월 민중 봉기 때 죽은 돌쇠의 삶을 통해 현구는 “오늘의 3월 1일은 28년 전 옛날의 3․1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 아니다. 절망은 그보다 더 크고 더 힘찬 새로운 3월 1일을 가져와야 할 것이다.”라고 다짐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일본놈은 갔으나 일본놈 아닌 일본놈이 아직도 우리 앞에 남아 있다”는 현구의 외침 속에 ‘새로운 3월 1일’의 역사적 맥락이 있을 것인데, 그럼에도 현구의 이러한 깨달음에는 여전히 지식인 서술자의 관념이 그늘처럼 드리워져 있다.
과거와 현재가 비극적으로 연결됨으로써 세상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메시지가 뚜렷하게 전달되지만, 실제 현실에서 그것은 다만 개인의 신념을 다시금 확인하는 차원에서 그치고 있을 뿐이다. 「불」을 쓴 안회남이 「폭풍의 역사」에서 과거의 비극을 불러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의 예상과는 반대로 흘러가는 해방기의 사회적 상황에 대응할만한 실제적 힘을 현실 속에서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돌쇠와 포달의 부자관계에 새겨진 작위성은 실상 현실의 곤란을 이념적으로 해소할 수밖에 없는 지식인 작가의 실존적 상황에서 나온 결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이러한 점은 48년 4월에 발표된 「농민의 비애」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이 작품은 가난한 농민인 서대응 노인의 삶과, 해방기의 역사적 상황을 해석하는 지식인 서술자의 관념이 구조적으로 어울리지 못한 채, 작가의 생경한 관념만이 작품의 전면에 노출되는 형국을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조선에서 양국 군대가 즉시 철퇴하자는, 소련의 제안은 옳은 일이었다. 자기네들이 일을 이루지 못했을진대 철병해서 조선 문제는 조선 사람 자신에 맡기자 하는 것은 타당하고 또 체면 차리기를 할 줄 아는 말이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는 철병 말이 나오기 전에, 이미 조선 문제를 유엔에 상정하기로 결정했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이것까지를 반대하는 조선 사람이 있었다. 외국 군대가 나가는데 조선 사람이 뭐가 무서우냐 말이다. 철병은 괜한 ‘제스쳐’라고 선전하는 조선 사람 정치가가 있었다. 이것은 정치가 아니라 악한이다. 외국 군대의 힘을 빌려 사는 이런 자는 조선 백성을 죽여달라고 청국에다 군대를 청하던, 옛날 병조판서 바로 그놈이다. 서대응 노인의 아들은 6년 전에 징용을 떠났는데 해방이 되어서도 소식이 없다. 며느리는 땅 영이를 남겨두고 다른 사내에게 재가를 했다. 서대응 노인의 비참한 삶은 해방기 민중들의 전형적인 삶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안회남이 여전히 민중의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인용문에 나타나는바, 서대응 노인의 의식세계와는 상관없이 전지적 서술자가 나서서 당대의 상황을 서술하고, 그에 대한 시비(是非) 판단까지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지식인 서술자는 미국의 철병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악한으로 규정하며, 이들을 “청국에다 군대를 청하던, 옛날 병조판서 바로 그놈”과 연결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는 여기서도 현재의 상황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거니와, 이것은 그만큼 작가의 관념이 서사를 지배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폭풍의 역사」가 3․1 운동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갔다면, 「농민의 비애」는 동학농민전쟁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해방기의 역사적 의의를 좌익의 관점으로 밝히려 하고 있다. 서 노인의 아버지는 서 노인이 어릴 때 동학당으로 몰려 죽었는데, 서 노인은 그것을 ‘일본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동학당-3․1 운동-해방기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은 ‘일본놈’의 반대편에 ‘민중’을 배치함으로써 민중의 투쟁에 반대하는 세력은 ‘일본놈’이라는 이분법적 틀로 구조화되고 있다.
서 노인의 삶이 비참해질수록 지식인 서술자의 관념이 인물들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소설의 말미에서 작가는 서술자를 빌어 “미소 공위가 결렬된 오늘날 미소 양군은 당연히 철퇴해야 할 것이며, 유엔의 사업에 남조선에만 국한하게 된 마당에 있어서는 더욱 빨리 철회하고 말아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하는데, 이렇게 본다면 「농민의 비애」에 등장하는 서 노인의 비극적 삶은 작가의 이러한 이념을 드러내는 수단으로서만 그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해방기 안회남의 소설은 문학과 정치의 관계라는 민감한 사안을 건드렸지만, 결국 시대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작가의 관념이 작품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양상으로 나아가는 내재적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전재동포라는 표상을 통해 시대의 핵심을 인식한 작가의 관념 과잉이 소설의 구조를 침해하는 현상은, 이념 우위의 해방기를 상정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대적 상황을 빌미로 작품에 나타나는 관념의 과잉을 인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전재동포라는 시대적 표상을 통해 해방기의 이념적 주체로 자신을 세우려 했던 안회남의 시도는 이렇게 실제의 현실과는 거리를 둔 지식인 작가의 이념 과잉으로 끝을 맺는다. 안회남은 문학과 정치가 만나는 지점을 ‘전재동포’의 표상에서 찾아냈고, 그를 통해 자신의 이념을 소설의 형식으로 표현하려 했지만, 그러한 그의 이념은 해방기 현실과는 조화될 수 없는 내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을 이념의 과잉으로 극복하려는 것은 작가 안회남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문학적인 맥락에서 볼 때 그것은 문학에 대한 정치의 우위라는 잘못된 결과를 불러내는 단초로 작용했다는 데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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