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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생 임가흔과 56년생 장국영의 나이차이는 무려 스물여덟살이다. 거의 아버지와 딸 사이는 될 정도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연인관계가 불륜이나 급기야 원조교제로도 비춰지지 않을만큼 너무나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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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 무의식의 그녀가 의식의 그를 잡는다.
귀신을 믿지 않는 엘리트 정신과의사 짐은 얀을 만나면서 새로운 계기가 마련되고, 얀의 과거에 상처를 주었던 부모님과의 해원을 통해 그의 역할은 봉합되는 듯 하다. 상처는 봉합의 흔척이다. 몸은 나을지는 몰라도, 꿰맨 자국은 남는다. 우리는 그것을 무의식에 들어가는 키워드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결국 얀의 과거는 현재의 나무를 심을 수 없을만큼 균열된 토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위에서 나무를 흔들게 만드는 말을 듣게 되면, 균열된 과거의 토양위로 상처입은 귀신의 손이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공포는 그렇게 파생된다.
여기에 자기는 불완전한 환자들과는 다르게 완벽하게 봉합된 듯한 착각에 귀신을 믿지 않는 짐에게 서서히 자존심으로 버티어 온 나무를 흔드는 과거의 바람을 느끼게 된다.
"설마. 아니겠지." 라는 자기 정당화는 곧 과거의 상처를 끌어안고 분노하며 찾아다니는 어느 노부부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극대화된다.
무의식에 침전되지 못하는 짐은 의식의 알람시계가 없을 때는
과거의 침전물로 채워진 무의식을 떠돌아다닌다. 주체는 타자의 배제로 성립된다는 근대의 망상은 귀신을 인간이 겪는 공포나 불안과 같은 무의식의 근저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짐은
무의식위를 헤엄친다. 그리고 의식의 뭍에서 헤멘다. 그 사이에
의식으로 봉합해둔 과거의 그녀가 눈을 뜨고 있음도 모른채
어떻게 보면, 영화 디 아이(The eye) 를 떠올리게 만드는 음산한 아파트(혼자사는 여자가 왜 그렇게 큰 평수의 아파트를 택하는지 그러한 의도는 애초에 무시된다.)는 심장소리와 비슷한 욕조의 다 잠기지 않은 수도꼭지의 물 떨어지는 소리, 귀신이 나오는 빗소리와 전기나감을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하나 잘 되지
않는다. 얀이 과거의 상처를 건드릴수록 아프고 미치다가 결국엔 그러한 상처를 도려내려고 한다. 여기에 짐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짐을 쫓아다니는 과거의 그녀는 기억의 해원이
결국에 이루어지게 된다. 짐과 얀의 재회는 그렇게 해가 떠오르는 아침에야 가능하다.
현재의 뭍을 향해 밀물처럼 현재의 그를 괴롭히고 의식의 라이트가 비출때는 썰물로 들어가 잠복한다. 물은 황천길간다는 표현처럼 생명과 죽음을 의미한다. 그 과정이 없다는 것은 그것이 바로 현실이고 인생이고 삶이기 때문이다.
결국 물에서 용이 승천하듯 그녀는 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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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은 영화의 바다와 현재의 뭍을 오고가며
결국에는 그 사이의 죽음의 절벽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우리나라 나이로 마흔여덟살이라는 사실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을만큼 젊음의 신화였던 그가 부활할 수는 없을까
그 부활은 장국영에 대한 재조명과 이러한 유작에 대한 다양한 비평위에 그를 힘들게 했던 모든 과거의 부표를 정리하고 조금 더 껴안아줄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
장국영은 결코 일류 스타는 아니었다. 영화마다 성공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자살이 이제야 대중의 기억층에 들어갔다는 것은 참 억울하고 아쉽고 그립게 만든다.
그는 참 아름다운 청년이다.
지금 살아있다면, 지천명이 되는 50살을 바라볼 나이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주름살이나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없다는
외연적 발견보다 그의 내면에서 뿜어져나오는 열정과 아름다운
사랑은 그가 살아있는 전설이자 신화로 대중의 가슴에
거울이 되어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10년이나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도 없이
늘 그렇게 우리를 가슴 따뜻하게 지켜봐주던 장 국 영
그는 없지만, 여기 그의 영화들은 남아서 사람들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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