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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에서 크메르 제국의 위대한 건축물 앙코르 와트와 앙코르 톰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끝나자마자 SBS에서 피렌체의 문화예술적 코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전파를 탄 어젯밤. 내 눈으로 보았던 크메르 제국의 유적을 되새기며 새삼 감탄하며 보았던 EBS의 다큐에 비해, SBS의 다큐는 너무 허세가득한 내래이션과 구성 때문에 도저히 봐줄 수가 없어서 동경해마지않는 피렌체를 영상으로 보는 기회도 마다하고 시청을 포기했다. 대신 훨씬 다양한 도시를 만날 수 있는 <세상의 도시>라는 책을 읽었다.
한 쪽이 가로 25cm 정도 되는 커다란 책인 데다가 도톰하고 반질반질한 재질에 풀컬러 지도가 지면의 반을 채우는, 시각적으로 고퀄리티를 자랑하는 책이어서 읽는 시점이 하염없이 미뤄지더라도 이런 건 소장해야해! 하며 예전에 구입해두었던 것이다. 동아시아의 도시는 베이징과 라사, 나가사키 뿐이고 서울은 없다. 대부분 유럽과 아메리카의 도시들이라는 게 아쉽지만 각 도시의 건립 배경과 과정, 이후 역사와 현재의 가치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고 있어 상당히 유익하다. 나의 관심을 끌었던 각 도시의 지도와 관련 그림들이 단연 가장 큰 매력이다. 지도는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자료들을 수록해놓은 것이어서 현재의 모습과 연결지어 생각하기는 조금 어렵다. 하지만 도시의 옛모습이나 설계 아이디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괜찮은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실사가 없어 그나마 여행욕구를 덜 일깨워주기도 했다.
끝까지 아쉬움이 남았던 건 우리나라의 서울을 다루어주지 않았다는 점이 아니라,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다. 한정된 어휘의 반복과 내용을 곧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번역투는 가뜩이나 딱딱하게 여기기 쉬운 역사적 자료를 더욱 각지게 만들어버렸다. 그렇다고 기재된 컨텐츠면에서 아쉬움이 더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의 무식함에서 기인한 것이기는 하지만, 다루고 있는 도시가 현재 어느 국적의 지구 어느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것인지 소개가 미흡하다. 세계지리를 공부하듯 읽고 싶었던 나로서는 답답함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사라져버린 고대 도시부터 인류가 아직 건설하지 못한 꿈의 도시까지 다양하게 수록한 이 유용한 책에 느끼는 아쉬움은 작은 투정일 뿐이다. 세계 지리에 관심이 있는 아이를 둔 가정에 구비해두어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좋을 듯!
도시는 문화와 사상을 하나로 아우르며, 인간의 권력을 특정한 형태로 바꾸고에너지를 문명으로 변화시킨 공간이다. 이것이야말로 도시가 맡은 역사적 역할이다. 마치 우리 뇌가 그러하듯이 도시는 문명화된 인간의 삶을 발전시키고 향후 삶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도시의 혁신 능력이 없었다면 인류는 쇠퇴한 채 끊임없는 발전과 변화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31쪽)
아테네의 묘역 이외의 곳은 모두 불결하고 보잘것없었다고 알려져 있다. 아무렇게나 이어진 거리는 좁은 데다 흙투성이였고 하수구도, 조명도 없었다. 여러 면에서 아테네는 짜임새 없게 발달한 촌란과 비슷했던 것 같다. 인구는 꾸준히 증가했지만 크기에 제약을 둔 아테네는 잉여인구를 계속해서 도시 밖으로 내보내 새로운 도시를 세우게 했다. (41쪽, 아테네)
피렌체 건축물의 형태를 잡은 것도 이들 예술가여기에 지금 피렌체를 찾아가면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을 찾을 수 있다. 이들 예술가들이 강한 자의식으로 미를 숭배했던 까닭에 피렌체의 건물들은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 되어야 했다. 건축의 목적 역시 더 많은 예술품을 저장하는 것이었다. 구릉지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예나 지금이나 놀라운 정도로 변함이 없다. 성당과 팔라초(르네상스 시대 귀족들이 살던 집.ㅡ역주)가 지금도 가장 높은 건물이다. 이런 사실로 인해 우리는 르네상스가 태어날 당시의 도시 거리를 지금도 걷고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된다. (89쪽, 피렌체)
라사의 문화와 문물은 체계적 근대화 과정에서 고유성이 대부분 파괴되었다. 1965~1975년의 문화혁명 기간 동안 자행된 무자비한 폭력은 사라졌지만, 소리 없이 시행되는 파괴는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서구 관광객의 증가로 더욱 심화되었다. 라사에서 사람들이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 그것을 보기 위해 찾아가는 수천 명의 사람들에 의해 파괴되는 것이다. 라사의 신시가지가 무분별하게 확장되면서 서양식 술집과 디스코 클럽이 들어서는 현실은, 원래 모습으로 내버려두어 주기를 간절히 원했던 한 도시의 슬픈 운명을 반증한다. (103쪽, 라사)
런던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을 꼽는다면 1665년에 창궐해 무려 10만 명의 런던 시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흑사병과 다음해에 일어난 대화재였다. 런던 대화재로 인해 도시의 85퍼센트가 파괴되었고 인근 지역까지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대화재의 영향은 미미했다. 크리스토퍼 렌을 위시한 여러 사람들이 대단한 규모의 기발한 도시계획을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재건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계획이 변경된 것은 없었다. 런던 대화재가 남긴 위대한 유물은 세인트 폴 대성당이다. 영국 바로크 양식의 위대한 업적이라 불릴 이 건물은 파괴되었던 중세 건물을 대신해 세워졌다. (113쪽, 런던)
1840년 이래 영국의 시드니행 죄수 수송은 중단되었고, 자유로운 식민지는 이제 그들만의 변화를 겪으며 성장했다. 황금과 구리가 발견되면서 시드니 역사에는 새 장이 열렸다(멜버른도 마찬가지였다). 인구가 늘어나고 투자와 건설이 활기를 띠었다. 19세기 시드니의 귀감은 런던이었다. 중앙공원은 하이드파크라고 이름지었고, 공간 건물은 런던의 관청가인 화이트홀 건물을 모델로 삼았다. 상점들도 런던의 가게를 흉내냈고, 빠져서는 안 되는 빅토리아 여왕 동상도 시드니 코브에 세웠다. 1850년에서 1890년 사이에 인구가 급증해 기존 5만 명이었던 도시민은 40만 명으로 늘어났다. (193쪽, 시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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