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난히 책을 편식하는 조카인지라 어지간한 책이 아니고서는 책 사간 보람도 없이 핀잔만 잔뜩 듯기 일쑤입니다. 이녀석이 좋아하는 책은 다름 아닌 만화.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학습만화 역시 일반 만화책들과 다름 없이 기꺼이 즐거워하며 읽어준다는 점입니다. (결코 만화를 깍아내리는 말이 아닙니다. 단지 만화만 읽는 조카 녀석의 편식이 걱정되어 하는 말입니다.) 가끔 이 천방지축 조카의 손을 잡고 시내 대형 서점엘 나갑니다. 착한 삼촌이라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애보기를 떠맡게 되고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로 서점행을 선택한 것 뿐입니다. 녀석은 예상에서 한치의 벗어남 없이 학습만화가 진열된 매장으로 달려갑니다. 여러번 행차했던 터라 주저함 없이 달려간 녀석은 휘둥그런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만화삼매경에 빠져듭니다. 조르고 조르는 조카의 떼쓰기에 두손두발을 들고 몇 권의 만화들을 골라 사들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내내 제 마음은 불편하기 짝이없습니다. 어른인 저에게는 유치하고 조잡해 보이며 가벼운 말장난으로 치장된 만화들이 조카에게는 대단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놀이의 대상으로 보여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어른의 눈이 너무 높은 것인지, 아이들의 눈이 너무 감각적인 즐거움에 길들여진 것인지. 그래도 가장 최근에 구입한 이 학습만화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달랐습니다. 표지만 보고 또 그저 그런 만화들 중 하나려니 생각했는데 막상 집에 돌아와 몇 장을 들춰보니 사뭇 그 느낌이 달랐습니다. 한창 인기몰이 중에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와는 또 다른 느낌의 그림과 색감이 어른인 제게도 만족스러웠고 조카에게도 만족스러웠던 모양입니다. 제 눈에 차는 책을 조카가 저렇게 열심히 읽는 일도 드물어,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 책을 좀 더 꼼꼼하게 들여다봤습니다. 대사 하나하나가 날림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정사와 야사를 적절히 참조하고 감수하면서 쓰여진 듯 차분하면서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을만큼 진지했습니다. 자칫 빠져들기 쉬운 말장난도 가능하면 자제하고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에서만 가끔 애교로 봐줄 만큼만 말장난과 유머를 삽입했더군요. ^^ 그리고 이 책이 고구려에서 시작해 조선으로 이어지는 우리 역사의 큰 줄기를 전체 기획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 또한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역사적 사건들과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물론 이 학습만화 몇 권으로 역사의 모든 것을 이해시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조카녀석 이 책을 읽고 난 이후 이것저것 물어보는 아주 이례적인 행동을 보여서 다음번에는 쪼금 더 수준 있는 역사책(만화가 아니라 책)을 골라줘볼 요량입니다. 물론 고구려사 이후에 나온다는 신라와 백제, 그리고 조선의 역사까지 두루 읽힌 다음에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