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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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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비 명성황후, 중국의 태후 서태후, 일본의 황후 하루코의 일생을 들여다 보며 그 중 진정한 승리자는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명의 여자를 통해 보는 역사의 흐름! 그 당시 조선의 역경이 어떠했는지는 명성황후(민비)를 통해,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나라를 지배하고 권력을 차지하고자 했던 서태후를 통해 청나라의 흐름을, 일본의 황후 하루코를 통해서 당시의 일본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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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비 명성황후, 중국의 태후 서태후, 일본의 황후 하루코의 일생을 들여다 보며 그 중 진정한 승리자는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명의 여자를 통해 보는 역사의 흐름! 그 당시 조선의 역경이 어떠했는지는 명성황후(민비)를 통해,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나라를 지배하고 권력을 차지하고자 했던 서태후를 통해 청나라의 흐름을, 일본의 황후 하루코를 통해서 당시의 일본 역사 배경을 알수 있었다. 유일하게 자식이라고는 아들 하나를 낳았던 서태후, 일생을 통해 자식이 없던 하루코황후, 많은 자식을 낳았지만 그 중 아들(순종) 하나만 무사히 장성한 명성황후, 그들 중 가장 행복했으며 승리자라 불릴만한 여인이 누구인지 살펴보자.

우선 세 여자가 궁중에 들어 오게된 사연이 재미있다. 서태후는 함풍제의 후궁으로 입궁 유일하게 아들을 낳았기에 후궁의 몸으로 태후가 될수 있었던 인물이며 황후였던 동태후의 배려로 동태후와 함께 수렴청정을 한다. 다정다감한 동태후와 달리 권력의 화신이라 불릴만한 여인으로 아들 동치제의 미움을 받기도 한다. 조카를 양자로 세워 다시 권력에 도전 장기집권을 했던 철의 여인이다. 명성황후는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에 의해 간택된 여인으로 친정이 빈약하기에 선택된 여인인데 권력을 탐해 자신과 뜻이 다르다는 이유로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을 몰아내고 낭군인 고종황제의 등뒤에서 배후에서 막후조종을 해왔다. 여기에는 그녀가 얼마나 질투심이 많은 여인인지는 나오지 않고 그녀의 좋은 점만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의 하루코 황후, 다른 두 여인들이 권력을 탐하던 것에 비하면 조용한 여인이다. 한마디로 내조의 여왕(?) 잠자리 송사가 가능한 조선, 청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여자들이 그다지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시대이다. 세 나라 모두 서양에서 몰려와 시대를 달리하며 개방을 해야했고, 그 중 빨리 받아들여 강해진 나라가 약한 나라를 침략했던것, 조선이 사대의 예로 모시던 청, 홀대하던 일본, 조선의 사대부들은 외세들이 어떻게 변화를 시도하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데만 한 목소리를 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청책이나 명성황후의 개방정책이나 만약 둘이 화합하여 힘을 모았다면 조선의 미래는 어찌 변했을까? 야행성이던 고종과 명성황후, 집안에 여자가 잘 들어와야 가정이 화목해진다고 했다. 밤마다 고종의 대화 상대로 정치적인 힘을 실어주던 명성황후, 그녀의 도움으로 친부를 밀어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낸(?) 고종, 결국에는 섭정이 친부에서 아내로 바뀐것 아닐까?

서태후를 보면 참으로 강한 여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들 동치제가 19살 어린 나이로 사망한후, 그녀가 행한 행동을 보면 그것을 느끼게 된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광서제는 친여동생의 어린(4살) 아들이었다. 조카를 양자로 받아들인 그녀, 4살에 왕위에 올라 오랜 기간 서태후의 섭정을 받아야했던 광서제,  그는 평생을 서태후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허수아비 왕이다. 차라리 서태후가 전권에 나섰다면 청나라는 어찌 변했을까? 서태후를 보면서 측천무후를 떠올리게 된것은 둘의 이미지가 비슷하기 때문일까? 어찌했든 서태후는 자신의 원하던 권력의 정점에서 행복하게 살았던 여인이다. 약한 나라의 국모이기에 나라를 위해 발버둥 치다 일본 낭인들에 의해 시해를 당한 명성황후에 비교하자면 말이다. 아내이기 전에 동지로 생각했던 고종의 정치적 협력자 명성황후, 그녀는 어머니로서 행복했을까?

평생을 외척세력에 의해 박해를 받았기에 외척세력을 만들지 않기 위해 처가에서 며느리를 고른 흥선대원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조카이자 아들인 광서제의 아내를 자신의 친족에서 구한 서태후, 흥선대원군이 고른 며느리 민비는 시아버지를 배신(?)했으며 자신의 가까운 친척들에서 외척세력을 만들어 냈으며, 광서제는 모후 서태후가 구해준 아내를 외면한채 다른 후궁들을 사랑했다. 특히 자매후궁인 근비와 진비를 나름 권력을 가진채 자신을 허수아비로 만든 서태후에 대한 반항일것이다. 아들 하나만을 의지한채 살았던 서태후(권력도 결국에는 아들의 힘인 것을~~~) 일찍이 남편 함풍제를 여의고 홀로 살아가야했던 서태후는 여인으로서 어머니로서 행복했을까? 모친 서태후를 미워하고 무서워했던 동치제를 보며 서태후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식이 없던 하나코황후, 가장 모범적인 황후라는데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는데 그녀는 행복했을까? 모든 것이 궁금해진다. 그 속마음이야 그녀들 자신만이 알 일이다.



s*******1 2012.08.27.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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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삼국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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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해가는 왕조의 역사를 들쳐보는 일은 정말 눈이 시리고 가슴이 아프다. 급변하는 19세기! 쓰러져가는 국력에 황제는 무력해지고 황후는 부여잡을 곳 없이 휘몰아치는 정세에 악역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조선의 명성황후, 청의 서태후의 모습에서 읽게되는 변화에 순응하지 못한 정권의 쓰라림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일본의 하루코 황후를 통해 막부를 정리하고 서구문물을 받아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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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해가는 왕조의 역사를 들쳐보는 일은 정말 눈이 시리고 가슴이 아프다. 급변하는 19세기! 쓰러져가는 국력에 황제는 무력해지고 황후는 부여잡을 곳 없이 휘몰아치는 정세에 악역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조선의 명성황후, 청의 서태후의 모습에서 읽게되는 변화에 순응하지 못한 정권의 쓰라림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일본의 하루코 황후를 통해 막부를 정리하고 서구문물을 받아들여 아시아의 강자로 발돋움하는 일본의 야욕을 확인하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명성황후!  흥선대원군이 외척을 배제하기 위해 처가에서 고른 며느리였으나, 흥선대원군의 섭정 아래에 있던 남편 고종을 치켜세워 왕권을 찾게 해 준 황후. 마음 여린 고종의 동반자이며 정치적 조력자로 격랑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어 황후로서 너무나 파란만장한 삶과 비참한 죽음을 맞은 조선의 국모. 임오군란과 갑신접변으로 여염집 여인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결국 일본제국주의의 칼에 목숨을 거둔 우리의 어머니. 제대로 나라를 지키지못하고 권력의 허영에서 사로잡혀 집안 싸움으로 나라를 잃은 남정네에게 던져야 할 돌을 온 몸으로 맞은 그녀! 생각할수록 변화와 개혁으로 나라를 살리고자 하였으나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 그녀에 대한 연민과 다툼으로 주변의 정세에 대처못한 그 시대의 지식인들에게 끓어오르는 분노가 교차한다. 

 

서태후! 함풍제의 후궁으로 유일하게 아들을 낳았기에 태후가 되었고, 어린 황제의 섭정으로서 밀려오는 변화를 거부하고 수렴청정으로 나라의 운명을 좌우했던 청나라의 마지막 자존심. 결국 서태후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린 청나라의 운명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후덕한 동태후와 상호협력하여 수렴청정 하면서 북양해군을 키워 열강의 압박에 견디기도 하였지만 결국 청일전쟁에서 잘 훈련되고 준비된 일본에 패함으로써 아시아의 패권을 일본에게 넘겨주고 만다. 이홍장은 히로부미와의 시모노세끼 조약에서 조선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과(청일전쟁의 정당성 확보), 요동반도, 대만, 팽호열도를 할양하고(청의 자존심 붕괴)  전쟁배상금으로 2억냥을 지불하기로 한다. 이후 요동반도를 돌려주고 1억냥을 더 요구함으로써 청나라는 영원히 가라앉게 된다. 그 돈으로 일본은 해군강화에 힘을 쏟고 세계적인 해양강국으로 발돋움을 하게된다. 이러한 결과는 결국 군부의 입김이 강화되어 2차세계대전까지 제국주의의 야욕으로 아시아를 유린한다.

 

하루코 황후! 메이지천황의 아내로서 잘나가는 일본의 황실을 지키며 개화와 전통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지만, 우리의 잣대로 보면 결국 군국주의의 조력자였으며 슬하에 자식이 없었던 황후. 조선과 청의 여걸들이 험난한 인생여정을 걸어왔다면 현모양처의 모습으로 살다간 그녀가 비교의 대상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얄미움과 함께 근대사의 향방을 가늠하게 한다. 그녀의 시대에 벌어진 일본의 역사가 흥미롭기는 하지만 우리 선조들의 고단한 역정(歷程)을 생각해보면 통탄스럽기만 하다.

 

역사는 그렇게 흘려갔다. 어쨌거나 각국이 처한 격변의 흐름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 그녀들의 삶을 반추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오늘날 우리의 국력이 강해졌다지만 여전히 한반도 주변을 포진한 그들의 야욕이 어째 과거의 역사와 오버랩되고 있지 않은가? 조금은 힘의 균형이 바뀌긴 했지만 대국화하는 중국과 기술의 일본 사이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우리를 노리는 100년전의 형국과 비슷하지않은가? 이 책에서 우리는 구한말 망국의 과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아니되는 악몽같은 슬픈 과거에서 오늘의 생존비결을 찾고 전략을 세워야만 할 것이다. 나라의 힘이 쪼개지는 정쟁과 시야를 좁히는 권력투쟁에서 제발 좀 벗어나 뭉치고 하나되어 외세에 이길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하는데, 우리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바람을 맞이하고 있는가? 오늘도 현실론과 이상론 사이에서 길을 헤매이고 있지는 않은가?
역동적인 한국인이 가야할 길을 다시 생각해보는 책읽기 였다.
 



e***i 2010.05.10.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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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대사 개론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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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대사 개론서를 만나다동아시아의 근대는 한마디로 격변의 시기였다. 내부적으로는 봉건적 절대왕권으로부터 변혁이 필요한 시대적 요구와 외부적으로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의해 문호를 개방해야 했고 그 진행과정은 새로운 정치제도의 출현과 맞물려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었다. 동북아아시 삼국 조선, 청, 일본은 각기 나라마다 속사정에 의해 변화가 요구되었지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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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대사 개론서를 만나다
동아시아의 근대는 한마디로 격변의 시기였다. 내부적으로는 봉건적 절대왕권으로부터 변혁이 필요한 시대적 요구와 외부적으로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의해 문호를 개방해야 했고 그 진행과정은 새로운 정치제도의 출현과 맞물려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었다. 동북아아시 삼국 조선, 청, 일본은 각기 나라마다 속사정에 의해 변화가 요구되었지만 이를 해결해 가는 과정은 모두 달랐다. 외부 제국주의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일본, 두 차례의 전쟁을 통해 강제적으로 문호를 개방하게 되는 청나라 그리고 일본과 청나라의 두 틈바구니에서 극심한 혼란을 겪었던 조선이 있다.

이들 삼국은 격동기를 맞이하여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황후가 있었다. 조선의 명성황후 민씨, 청나라의 서태후, 일본의 하루코 황후가 그들이다. 비슷한 시대 황후의 자리에 올라 권력의 정점에 있었지만 그들이 살아간 삶은 다분히 차이가 나고 있다.

[황후 삼국지 : 세 황후는 어떻게 근대 동아시아를 호령했는가]는 바로 이들 삼국의 황후를 중심으로 다룬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근대사회가 해체되는 과정, 힘을 앞세운 제국주의 외세의 강압에서 사회의 변화를 이뤄나가는 권력의 핵심에 있었다는 공통점을 중심으로 그들 세 황후의 운명적인 삶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절대왕권에서 황후는 권력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서만 허용되는 상황이다. 어린 왕을 대신해서 수렴청정이 바로 그 예가 될 것이다. 하지만 왕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막후에 황후의 존재가 드러나게 된다. 근대 격동기를 맞이한 동북아 삼국이 바로 그러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그렇다고 세 명의 황후들의 개인적인 일생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국 내에서 일어나는 변혁에 대한 요구에 부응하는 각국의 구체적 상황의 변화와 힘으로 밀어붙이며 개항을 요구하는 제국주의에 대한 대응모습 그리고 이를 해결해 나가는 내적 요인과 힘의 균형관계를 비롯하여 조선, 청나라, 일본 삼국의 역학관계를 상세하게 살피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세 명의 황후를 중심으로 살피고 있는 것이다.

청나라의 서태후는 노쇠한 왕조의 최후를 떠맡아야 했던 다분히 권력 지향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고독한 어머니이자 무서운 어머니인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권력에 대한 욕망을 실현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조선의 명성황후는 무너져 가는 왕권을 실리려는 몸부림 속에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으나 사후에 빛을 본 사람이다. 일본의 하루코 황후는 권력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절대군주 천황의 충실한 아내 역할을 한 행복한 삶을 살았다.

저자 신명호 교수는 이 책을 통해 근대 동아시아의 역사를 조명하고 있다. 어느 한 가지 시각에 치우치지 않고 삼국의 근대사를 개괄하고 있어 동아시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라고 본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황후를 모티브로 잡아 삼국의 근대 역사를 살피고 있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평가할 때 그 근거로 삼는 것은 무엇일까? 소위 사회적 성공으로 일컬어지는 그 사람의 지위나 부, 권력 등에 의해 사람의 살아온 일생을 평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 사람이 살아가는 동아 지켜가고자 했던 가치관이 삶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 뿐 아니라 높은 사회적 지위에서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나 동일한 평가 기준이어야 할 것이다.



m*****8 2010.04.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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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를 이끌어간 황후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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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이전에도 동북아시아의 역사에 격동기는 많았지만, 그 많은 격동기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격동기는 19세기였다고 저자는 밝힌다. 19세기를 기점으로 그 이전의 격동기에 대한 주체는 내부 즉 동북아시아의 각각의 나라들에 대한것이었으나,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동북아시아에서의 격동기의 주체는 서구열강이었지싶다. 그 도전들을 어떻게 극복을 했느냐? 그리고 그 극복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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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이전에도 동북아시아의 역사에 격동기는 많았지만, 그 많은 격동기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격동기는 19세기였다고 저자는 밝힌다. 19세기를 기점으로 그 이전의 격동기에 대한 주체는 내부 즉 동북아시아의 각각의 나라들에 대한것이었으나,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동북아시아에서의 격동기의 주체는 서구열강이었지싶다. 그 도전들을 어떻게 극복을 했느냐? 그리고 그 극복의 과정들에서 각각의 세 황후들 청나라의 서태후 그리고 조선의 왕비 민씨 그리고 하루코 황후들의 삶을 통하여서 궁극적으로 19세기의 도전에 얼마나 잘 응했느냐의 여부로 19세기의 도전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가와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가를 판가름할 수 있을것이다.

 

함풍 황제의  후궁으로 들어가서 10년동안의 결혼생활을 끝으로 비록 후궁에서 벗어나 황후의 신분이 되기는 했으나 청나라를 이끌어가기 위한 권력의 화신이 되어야만 했던 일련의 사건들에서 왜 그토록 권력이란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그 모든 짐을 혼자 지려고 했을까 안타까움도 있었다. 자신의 친 자식마저 믿지 못하고, 권력을 움켜지고 모질게 대했던 그 모습들이 몸서리쳐진다. 결국은 아들과 며느리를 젊은 나이에 보내고 또 다시 동태후와 함께 한 서태후였지만, 여자라는 울타리에 안주하지 않고 청나라를 위해 정치를 하며 서구열강들과 어떠한 모습으로 대치하고 준비했었는가를 보면서 그녀가 노력한 용기와 결단 그리고 권력과 함께한 강한 정치력이 있었기에 그나마 청나라가 유지될 수 있었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조카자식을 양자로 앉히면서까지 자신이 수렴청정 하고자 했던 야망과 함께 청나라를 위한 애국의 모습들이 절절히 헛되게 보이게 만들었던 그 마지막 선택에 대해서만은 책임을 면할 수 없으리라.

 

흥선대원군의 며느리로 고종의 비로 그리고 또 다시 흥선대원군의 딸로 조선의 왕실에 들어서면서부터 왕비민씨는 투쟁을 시작해야만 했다. 남편 고종의 권리를 위해 또 자신의 권리를 위해... 우유부단한 고종과 함께 고종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서는 왕비 민씨가 더 강해져야 했고, 더 많은 투쟁을 했어야 했다. 왕비 민씨는 그 위치에서 그 위치에 맞는 내조를 했었을거라 생각한다. 단순한 권력의 욕심만으로 친정식구들을 왕실로 불러들인것이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해서 조선의 왕실로 들어온 외척세력으로 인해 조선의 백성들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고 결국에는 외세의 침략에 허무하게 수치스러움을 보여줘야했던 것들에서 그러한 수치스러운 역사가 생기지 않을 방도는 없었을까 생각해보지만 그 시대에서 왕비 민씨가 결정하나 내리지도 못하는 고종을 지키고 고종의 권위를 세워주는 일에서 자꾸만 앞으로 나서게 되고 결국은 왕비 민씨만이 나쁜역활로 들어서게 되었고, 그런 고정관념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왕비 민씨를 보면서 어느것이 진정한 내조이며, 어떠한 방법으로 국모의 자리를 지켰어야지 나라를 온전하게 지킬 수가 있었을까에 대한 물음표를 던지고 그에 대한 해답은 찾을 수가 없음에 공허함을 느낄뿐이었다.

 

46년간 하루코 황후는 시어머니에게는 순종적인 며느리, 남편 메이지 천황에게는 헌신적인 부인의 역활로 만족하며 '부녀감'이라는 책자를 책상에 올려놓고 화려한 서양정장을 입고 화장을 하고 멋스럽게 찍었던 사진을 보자면 하루코왕후가 어느만큼 현모양처의 모습과 함께 근대화의 문물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나라의 문화로 받아들이고자 몸소 실천을 했는지 그 노력을  알 수 있다. 청일전쟁이 있었을 때로 하루코왕후는 자신이 개발한 붕대를 장병들에게 보내기까지 하며 감사편지를 보내기도 했으며, 하루코 왕후 자신도 메이지 천황과 떨어져 지내면서 전쟁으로 나가있는 장병들의 아내들의 마음을 이해해보려는 그 마음씀씀이가 돋보였기에 그녀는 자식이 없어서 후계자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메이지천황에게 사랑을 받고 국민들에게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진정한 국모가 되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에도 동북아시아는 격동의 시간이었지만 현 시대도 그 시대 못지않은 격동의 시기라 할 수 있을것이다. 다만 격동의 그 주체자가 바뀌었을뿐 우리는 그 격동의 한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으며 19세기의 세 나라의 황후들이 펼쳤던 내조의 모습과 함께한 정치참여와 함께 한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는 현재의 동북아시아문제를 직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어본다.

 

명성황후, 서태후, 하루코 황후 그들이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성공과 실패를 떠나 또 긍정과 부정을 떠나 험난한 격동의 시대를 최선을 다해 살았다는 그 사실만으로 그들의 삶은 역사적 평가를 받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h****i 2010.04.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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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의 삶, 여성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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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바뀌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자연스럽게 바뀌는 경우가 자주 있다. 우리나라의 근대사에서 그런 예를 들자면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명성황후일것이다. 내가 학교에서 국사를 배우던 시기만 하더라도 그녀의 이름은 '민비'였다. 하지만 뮤지컬 '명성황후'가 만들어지던 그 시기부터 우리의 역사에서 그녀는 민비라는 이름대신 명성황후로 자리매김 되었다. 그녀가 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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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바뀌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자연스럽게 바뀌는 경우가 자주 있다.

우리나라의 근대사에서 그런 예를 들자면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명성황후일것이다.

내가 학교에서 국사를 배우던 시기만 하더라도 그녀의 이름은 '민비'였다.

하지만 뮤지컬 '명성황후'가 만들어지던 그 시기부터 우리의 역사에서 그녀는 민비라는 이름대신 명성황후로 자리매김 되었다.

그녀가 살았던 격동의 시기인 19세기.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에도 국가 권력의 핵심에 여인들이 있었다.

바로 서태후와 하루코황후가 그녀들이다.

이 세여인이 살았던 그 시기의 역사를 아우르며 저자는 우리에게 여인의 역사이자 삼국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세 황후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바로 국가 최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물론 하루코 황후는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으니 예외가 될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그녀는 황제의 아내였다.

그중 최고는 물론 서태후라고 하겠다.

불과 18살의 나이에 후궁이 되어 10년간 후궁으로 지낸후 나머지 길고 긴 47년의 시간을 청나라의 핵심에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그녀의 삶은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불쌍하기 그지없다.

남편의 사랑과 신뢰를 받지도 못했으며, 단 하나뿐인 자식의 사랑과 존경도 받지 못했고, 자신이 통치했던 나라의 백성들의 사랑과 신망도 받지 못했으니 그녀는 참 불쌍한 여자임에 틀림없다.

명성황후는 어떠한가.

남편인 고종의 전폭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 외세의 힘 겨루기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으니, 그녀는 남편과 조국의 사랑을 받는다는 면에서는 행복한 황후이다.

사실 가장 행복한 황후는 일본의 하루코 황후이다.

자신의 소생인 자녀가 단 하나도 없는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일이겠으나 그녀는 남편의 그늘에서 일생을 편안히 보내었고 국민들에게도 인자한 국모상으로 칭송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그녀들의 개인적인 삶은 사실 국가의 대소사와 연결되어 있었으니 참으로 치열한 삶을 살아온 것은 틀림없다.

그 치열함 속에 감추어진 것이 서태후처럼 개인적인 권력욕일수도 있으며 혹은 시아버지에 대한 미움이나 열강에 대한 거센 압력에서 단 하나뿐인 자식과 나라를 지켜내기위한 생존본능일수도 있다.

백여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난 그녀들의 삶이 참으로 고단했을것이라 확신한다.

자신의 운명을 알길없는 그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선택했을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이 우리들에게는 역사가 되었다.

나는 이 책 한권으로 지난 역사속에서 잠시 그녀들과 함께 마음을 나눈것같다.

s*****n 2010.04.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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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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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읽을 때는 재미있지만 읽고 나면 두 번 읽을 생각이 들지 않는 책이 있고 어떤 책은 아..정말 대단한 책이다. 소장하면서 더 읽어봐야 겠구나 하는 책이 있습니다. 황후 삼국지는 후자에 속하는 책이네요. 신명호 님의 <조선 공주 실록>을 예전에 도서관에서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주들에서부터 옹주들과 잘 알려지지 않은 공주, 옹주이야기들도 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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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읽을 때는 재미있지만 읽고 나면 두 번 읽을 생각이 들지 않는 책이 있고 어떤 책은 아..정말 대단한 책이다. 소장하면서 더 읽어봐야 겠구나 하는 책이 있습니다. 황후 삼국지는 후자에 속하는 책이네요. 신명호 님의 <조선 공주 실록>을 예전에 도서관에서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주들에서부터 옹주들과 잘 알려지지 않은 공주, 옹주이야기들도 있음에도 흡인력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 흔히들 알고 있는 팩션도 아니라서 흥미가 떨어질수도 있는데 오히려 사실이 주는 매력이, 약간의 허구도 가미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재미가 있었습니다.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데 영조의 따님이었던 공주님은 사도세자가 죽고 왕실의 폭풍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아버지의 환심을 쓰려고 애썼던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었습니다. 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같은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의 기록들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정말 많은 어린 공주나 옹주들이 일찌기 병으로 죽는 것도 목격하게 됩니다. 거의 다섯중 셋은 어려서 죽는 다던지 하는데 왕실에서도 이런데 하물며 백성들 사이에서는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어려서 죽었을지 지금과 비교해 보면 놀랍고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암튼 그런 책의 저자인 신명호님이 <황후 삼국지> 를 지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믿음이 가는 책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책날개를 읽어보면 이 책을 위해서 정말 수많은 사료를 들추고 그것도 모자라 개인의 기록들까지 다 뒤지고 출판사에는 기다려 달라 하면서 몇년이나 걸려서 완성을 했다는 글이 써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책이기에 두껍지만 전혀 두껍지만은 않은 책이었습니다.
 
 
삼국(청나라, 일본, 대한민국)의 왕조의 말기에 근현대기의 삼국의 관계와 황후들과 어린 왕들의 왕정의 관계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역시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쉽게 풀이를 하는 것처럼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쓸데없이 어렵지 않고 황후들과 우리 조선의 마지막왕들인 고종, 순종과 같은 왕의 육성을 세세하게 들어볼 수 있습니다.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구요.
 
 
청나라의 유명한 서태후, 일본의 하루코 황후, 우리의 명성황후의 관한 사료들을 토대로 한 이 역사서를 보면 역사가들이 얼마나 정확하게 많은 자료를 살피고 기술해야 하는가를 알게 됩니다. 신명호씨는, 그래도 오류가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그만큼 많은 자료들을 살피고 또 살폈다는 방증입니다.
 
 
동치제는 서태후의 아들로서 청나라를 서태후의 섭정아래 다스리고 있었는데 그때에 우리나라에도 고종이 있었습니다. 22세인 고종 역시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품에서 벗어나 스스로 나라를 다스리고 싶어한 심정을 볼 수 있는 대화가 실려있습니다.
 
 
고종: 동치 황제가 총명하고 호학하며, 장차 정치문제를 직접 총람함으로써 백성들의 여망에 부응하려고 한다던데, 과연 그런가?
고종: 서양 오랑캐가 작년에 유구국에 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왔다던데 과연 그런가?
청나라의 인심이 어떠하던가? 동치 황제를 여러 번 보았는가? 동치 황제의 체격이 크던가?
<일성록> 고종 9년(1872년 4월 30일)- 청나라를 다녀 온 박봉빈의 보고에서.
22세임에도 오늘날의 젊은이들과 비교해도 훨씬 어른스럽고 총명한 말씀에 역시 한나라의 왕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키가 작았던 고종이 동치 황제의 체격을 묻는 것도 인간적입니다.
 
 
이 방대한 책에서 결코 어렵지 않게 가독성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야망을 가진 삼국의 황후들의 이야기에서만 그치지 않고 삼국의 흐름과 또 다른 외세인 서양의 간섭과 어린왕에서 당당한 왕으로 크려다 미처 꿈을 다 이루지 못하고 마지막 황제가 되어 간 순종이나 중국의 부이.. 너무나 슬픈 근현대사의 왕실을 보면서 그들에게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왕정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렇게 끝나서는 안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뚝심있는 책들을 키워내고 또 써내려가는 작가와 출판사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h*****o 2010.05.04.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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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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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청의 서태후, 조선의 명성황후, 일본의 하루코 황후 등 19세기 동북아시아 를 대표하는 황후를 통해 역사를 들여다 보고있다. 저자인 신명호 부경대 사회학과 교수는 19세기 동아시아에서 자신만의 생존전략을 펼친 세 여자의 철학과 인생을 또 격변기를 맞은 역사를 서로 비교하고 있다. 명성황후는 종주권을 강탈해간 일본의 낭인들에게 시해됐다. 그들의 암살을 정당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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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청의 서태후, 조선의 명성황후, 일본의 하루코 황후 등 19세기 동북아시아 를 대표하는 황후를 통해 역사를 들여다 보고있다.

저자인 신명호 부경대 사회학과 교수는 19세기 동아시아에서 자신만의 생존전략을 펼친 세 여자의 철학과 인생을 또 격변기를 맞은 역사를 서로 비교하고 있다. 명성황후는 종주권을 강탈해간 일본의 낭인들에게 시해됐다. 그들의 암살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도 그러했다. 왕비의 비참한 최후는 외세에 대한 보복심을 불러일으켰고 대한제국이 세워졌다. 또한 사후 명성황후가 되었으니 ‘왕비 민씨는 죽어서 살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고종의 신뢰를 얻었고, 아들 넷과 딸 한 명을 두었으니 부인과 엄마로서도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따른다.  

아울러 고종황제를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인물로 인식시킴으로써 그의 업적이나 정치적 노력 혹은 정치적 입장을 무시하고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갈등사이에서 우왕좌왕한 인물로 그려냈다. 덕분에 당시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정치적인 역할은 실제보다 왜곡되어 부풀려졌고 우리나라 자체의 근대화 노력은 무시된 채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음이 정당화 된 것이다. 명성황후의 정치적 역할의 과장은 이후 연구에서도 계속되어 그녀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다.

19세기 말 조선에 명성황후가 있었다면 청나라에는 서태후가 있었다. 1908년 74살의 나이로 세상을 뜬 서태후는 18살에 후궁으로 입궁했다. 초기 10년을 후궁으로 살고, 이후 47년의 세월을 태후로 살았다. 세 사람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나라의 운명을 좌우했던 사람은 서태후였다.

한편, 일본의 하루코 황후는 개화와 전통의 중심에서 균형을 잡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는 일본의 여성들에게 전통 옷 대신 양장을 입으라고 권장하면서, 정신은 현모양처의 전통적 여성의 미덕을 따르기를 강조했다. 전쟁 때는 위문품을 보내거나 직접 문병을 가는 등 장병들을 고무시키는 역할도 했다. 청나라 전쟁을 두고 그녀가 해낸 조력자 역할은 안주인의 자애로움을 한껏 보여준다. 부상자를 위로하기 위해 병원에 문병을 가거나 손수 만든 붕대를 참정 장병에게 보내는 방식으로 그녀는 남편을 도왔다. 또한 참전 장병의 가족은 떨어져 있는 고통을 느낀다며, 자신도 메이지 천황과 떨어져 도쿄 어소에 머문 일화는 유명하다. 하루코 황후는 일본 군국주의화의 조력자라는 불명예를 얻는다. 황제를 조력한 것은 좋았으나 일본의 군국주의화에도 내조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역사의 뒷면에 숨어있는 세황후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들이 한나라의 국모라는 최고의 자리에서 겪었을 고뇌들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y*****t 2010.05.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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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대사 속의 황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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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도이다. 이제까지 단편적으로 보았던 것들을 3D로 바라본다. 역사 속의 한 사건을 한 편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후에 조합했던 것을 한 번에 볼 수 있게 해준다. 급변하던 시기의 한, 중, 일의 역사를 바라본다. 사건을 살펴보지만 중심에는 각 나라의 여왕을 두고 그녀들이 어떤 자세로 시대를 바라보고 대응했는지 살펴 본다. 과연 그녀들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행동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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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도이다. 이제까지 단편적으로 보았던 것들을 3D로 바라본다. 역사 속의 한 사건을 한 편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후에 조합했던 것을 한 번에 볼 수 있게 해준다. 급변하던 시기의 한, 중, 일의 역사를 바라본다. 사건을 살펴보지만 중심에는 각 나라의 여왕을 두고 그녀들이 어떤 자세로 시대를 바라보고 대응했는지 살펴 본다. 과연 그녀들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행동했는가? 과연 그녀들이 꿈꾸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개인적으로는 나라의 안정과 권력의 유지라는 단순한 목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주위의 변화하는 환경, 서로 다른 방향으로 대립하는 세력들과의 복잡한 양상을 여러 면으로 찾아 들어가면서 저자는 황후삼국지를 그려 낸다.

 

조선의 명성황후, 청의 서태후, 일본의 하루코 황후의 이야기이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근대화의 시기에 그 중심에 있던 이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을 같은 시선으로 보고 평가할 수는 없다. 삼국의 위상과 그녀들이 처한 시대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격한 개화의 물결 속에서 대처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이 각 황후들의 개인적인 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운명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의 멸망과 청의 쇠락과 일본의 부상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책은 황후를 맞이한 삼국, 왕권을 강화하는 삼국, 외세와 부딪히는 삼국, 운명이 엇갈린 삼국의 4부로 나뉘어 있다. 약간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있더라도 제목만으로도 어떠한 내용이 어떤 형태로 기술될 것인지는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하루코 황후에 대한 내용은 그리 쉽게 만날 수 있던 내용은 아니다. 각 장은 명성황후, 서태후, 하루코 황후에 대한 내용을 교대로 포함한다. 이는 같은 사건에 대해 각각 상황을 바라보고 대처하는 모습을 비교할 수 있게 한다. 각 황후가 사건과 연관된 정도가 다르기는 하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들이 각 황후들의 행동 반경이나 행동 양식에 영향을 주고 있음은 틀림없다.

 

이를 다시 인물 위주로 풀어 읽는다. 명성황후의 삶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고종의 왕권 강화를 위한 노력, 대원군과의 끊임없는 견제와 대립, 청이나 일본의 간섭에 대한 대응 등 쇄국과 개화의 소용돌이 중심에서 매우 혼란함을 겪는다. 스스로가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간에 명성황후의 생각과 행동은 당시 상황에 대한 처세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날로 쇠약해지는 왕권을 다시 확고히 세우기 위하여 청, 러시아, 일본 등 주변의 환경을 서로 이용하는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스스로 어떠한 힘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희생양이 되고 마는 모습은 언제까지나 가슴 한 켠에 큰 응어리를 간직하게 한다.

 

서태후는 자신의 권력 유지에 모든 힘을 쏟는다. 전면에 황제를 앞세우고 섭정을 통해 전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근시안적인 태도로 대외적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함으로써 나라를 어려운 지경에 몰아 넣는다. 모든 힘을 한 곳에 쏟을 수 없는 이면에는 권력 유지에 대한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왕권 유지만을 위해 끝없이 욕심을 부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보여준다. 내부적으로 서양 여러 나라들의 개화 요구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청일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의 패권도 잃는다. 그것이 청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하루코 황후는 명성황후나 서태후와는 많이 다른 삶을 살았다. 명성황후나 서태후가 권력 다툼의 중심에 있던 반면에 일본의 황후는 전혀 그러지 못했다. 일본의 환경과 관습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그녀 스스로도 순종적인 삶으로 제한된 역할만을 수행했다. 그것이 일본 왕실의 유래였다. 일본 왕실의 상황은 다른 곳보다 안정적이었다. 번주를 폐하고 현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난 반발을 물리치고 일찌감치 개화를 이룬 일본은 짧은 기간 내에 막강한 힘을 비축하며 동아시아를 휘어잡는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가운데서 황후는 왕실 내에서 조용히 지원하며 외부적으로는 사기를 북돋우는 역할을 수행한다.  

 

긴 시간의 역사는 아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급격한 변화가 있던 시기의 일들이다. 조선을 둘러싼 청, 일, 러, 그리고 서양의 세력 다툼장이 되었던 조선 땅, 그 땅에는 서태후, 하루코 황후의 힘도 미치고 있었다. 그녀들이 서로 다른 정소에서, 다른 시각에서 행동하고 바라보았다 하더라도 한 나라가 외세에 휘둘리는 것이 큰 불행을 초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각 황후들의 성격이나 행동들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주위의 환경과 당시의 위치가 결과를 다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명성황후의 삶이 제일 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단순히 우리나라의 역사이기 때문일까? 명성황후의 욕심과 야망이 한 축을 이루는 것으로 느껴졌다. 이는 고종의 왕권을 보다 강하게 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될 정도로 큰 표상으로 인식되었던 그녀의 삶이 새롭게 보인다. 서태후의 경우를 보면서 끝없는 욕심이 가져오는 쇠락을 보았다. 하루코 황후의 경우에서는 여왕의 역할의 한 면을 볼 수 있었다.

 

자료의 차이 또는 새로운 해석의 여지가 있기 때문일지 몰라도 각 황후들에 대해 기술한 분량이나 그 상세함의 차이는 보인다. 일본 왕실의 예법 등이 굳이 한 장을 차지하지 않아도 될 듯하지만 이 또한 하루코 황후의 행동을 이해하는 방편으로 본다. 남성 위주의 체제 속에서 그녀만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것은 분명하나 책에 기술된 것 이상의 고민과 참여가 있었을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이 있던 시기의 각 사건들을 단편적으로 보는 것보다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각 황후들의 행동과 생각을 통해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었다.

k*****6 2010.05.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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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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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삼국지 신명호 지음 역사의 격변기에 살았던 세 여인을 흥미롭게 비교해 놓았다.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궁중 문화를 오랫동안 연구한 저자의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당시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다. 19세기 참혹했던 조선의 아픔을 통해 오늘 날 대한민국의 찬란한 성취를 이루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청나라는 결국 비참하게 역사에서 사라졌다. 반면 일본은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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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삼국지

신명호 지음

역사의 격변기에 살았던 세 여인을 흥미롭게 비교해 놓았다.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궁중 문화를 오랫동안 연구한 저자의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당시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다. 19세기 참혹했던 조선의 아픔을 통해 오늘 날 대한민국의 찬란한 성취를 이루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청나라는 결국 비참하게 역사에서 사라졌다. 반면 일본은 변두리 국가에서 패권국가로 변했다. 그 중심에 명성황후와 청의 서태후 그리고 일본에는 하루코 황후가 있었다. 19세기 동북아 삼국의 역사를 입체적이고 통합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흥선 대원군의 권력에 대한 지나친 집착 또는 애국 충정의 마음 때문에 빚어지는 고종과의 갈등, 이를 해결해 가는 민비의 모습 그리고 그 당시의 정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동시대 청나라의 서태후와 동태후 그리고 함풍황제와 동치황제의 권력 쟁탈전도 흥미진진하다. 특히 서태후의 권력욕이 어머니의 이름으로 강하게 나타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하루꼬 황후를 통해 드러난 일본 왕실의 모습은 우리보다 개방적이었다. 특히 정실과 후궁의 차이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은 새롭다. 일본의 왕실 문화를 세세히 기록해 놓았다. 막부에서 왕정으로 권력이 이동했지만 그녀는 권력의 맛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근대적 양장과 부녀감을 통해 서양의 근대 문물과 일본의 전통정신을 결합하여 강한 일본을 건설하고자 화론양재를 실천해 메이지 천왕의 현명한 아내로 황태자와 일본 국민의 가장 현명한 어머니로서의 이미지를 굳혔다. 반면 권력의 중심에 섰던 서태후는 청나라의 멸망의 제공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민비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각기 권력의 중심 위치에 있었지만 다른 길을 간 세사람의 모습이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 흥미롭다.

 

역사는 개인에게나 국가에게 있어 많은 것을 제공해 준다. 그리고 현재의 역사는 우리의 몫이다. 개인적으로 볼 때 명성황후는 짧은 45년의 생애를 살다가 비참하게 죽었지만 조선의 국모로서 몸부림치다가 죽어서 대한 제국을 탄생시켰다. 서태후는 마지막까지 청나라를 다시 일으키고자 3살짜리 젖먹이 부의황제를 세워 결국 청나라의 멸망을 앞당겼다. 하루코 황후는 조용히 현모양처로 살았지만 군국주의 일본에 일조했다. 이들의 삶이 개인적인 안락함이나 평안을 추구하지 않고 나라와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점은 높이 살 수 있을 것 같다.

 

명성황후나 서태후의 역동적인 삶에 하루코을 끼운 듯한 인상을 주지만 19세기 당시의 격변의 현장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역사의 현장을 찾아 생동감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오늘도 이 역사는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b*********g 2010.04.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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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황후들에게서 역사와 교훈을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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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기울어져 가는 중국의 청나라, 그 청나라의 마지막 조공국 한국의 조선, 800년의 막부정치종식으로 종교적 권위와 세속적 권력을 쥐게 된 천황의 일본, 이 삼국의 황후들, 조선의 왕비 민씨(1851~1895), 청의 서태후(1835~1908), 일본의 하루코 황후(1849~1914)의 생애를 통하여 19세기 후반기의 각종 사건들과 함께 서구열강의 동점의 결과로 생긴 동아시아의 힘의 이동상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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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기울어져 가는 중국의 청나라, 그 청나라의 마지막 조공국 한국의 조선, 800년의 막부정치종식으로 종교적 권위와 세속적 권력을 쥐게 된 천황의 일본, 이 삼국의 황후들, 조선의 왕비 민씨(1851~1895), 청의 서태후(1835~1908), 일본의 하루코 황후(1849~1914)의 생애를 통하여 19세기 후반기의 각종 사건들과 함께 서구열강의 동점의 결과로 생긴 동아시아의 힘의 이동상황과 그렇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45세에 일본낭인에게 궁궐안에서 살해되고 불에까지 태어진 왕비 민씨, 47년의 막후정치로 권력을 휘둘렀지만 74살로 마감한 그녀의 사후 3년만에 망한 청나라의 서태후, 역사상 최고의 황후이자 자애로운 국모라는 이미지를 얻어면서 66년을 살은 하루코 황후, 이 짤막한 글귀들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당시의 삼국의 상황은 뻔하게 보여진다.

 

동시대를 살아간 한 나라의 국모들의 삶이 "참혹"에서 "최고"까지 차이가 나는 일의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국력의 차이가 바로 그 이유이다. 국력의 차이의 원인을 근대문명과 함게 한 서구열강의 동진이라는 환경변화에 어떻게 대응했느냐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은 1842년 아편전쟁후 다섯개항을 제일 먼저 개항했고, 일본은 1854년 천왕이 아니라 실권자 막부가 개항했으며, 조선은 1876년 서구가 아닌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을 했다. 개항당시 서구열강의 침략에 대한 반발이 삼국 모두에서 격심했지만 일본만은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천황이 아니라 실권자들인 막부가 개항을 했기때문에 그 반발이 1854년의 존왕양이를 시작으로 1867년 대정봉환, 1869년의 폐번치현으로 권력에서 제외되었던 천황이 종교, 정치, 경제의 권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일사분란하게 부국강병을 추진할 수 있었던 반면에 조선과 청나라는 권력투쟁으로 국력을 소비만 하고 근대문명을 활용하여 발전할 기회를 잃어버린다.

 

조선과 청나라에서 사리사욕의 권력욕망으로 국력을 생산이 아니라 소비로 만든 장본인들이 각각 있다. 조선은 대원군, 청나라는 서태후를 들 수 있다. 이들 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수렴청정이나 섭정을 하기 위하여 인물이 아니라 나이 위주로 왕이나 황제를 추대했다는 점과 그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그들이 추대한 사람들이 장성한 후에도 갖은 이유를 들어 친정의 시기를 늦추고 물러난 이후에도 간섭을 하여 사이가 좋지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만약 이둘이 권력욕망을 조금만 자제했더라면 좋은 인물이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좋지않은 인물이더라도 힘의 분산없이 통치했더라면 19세기 동북아의 힘의 지도는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치욕의 일제 36년이나 아직까지 우리가 겪고 있는 동족상잔의 남북분단의 비극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미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 책을 읽어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 먼저 머릿속에서 가물거리던 근대사의 각 사건들과 그것들과 연관된 사건들을 다시 알 수 있었다는 것을 들 수 있고 다음으로는 환경변화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을 느꼈다. 지금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경은 알게도 모르게도 항상 변화하고 있음을 가슴속에 새기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준비된 자가 되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