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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니체의 사상은 크게 네 가지 사건을 통해 발전한다. 네 가지 사건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통한 쇼펜하우어와의 만남, 바그너와의 만남, 바그너와의 결별, 자유정신의 탄생과 모든 가치의 전환이다. [비극의 탄생]은 니체의 처녀작으로,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의 영향 아래 있었던 청년 니체의 사상을 대표하고 있다. 두꺼운 책은 아니지만, 스위스 바젤 대학에서의 두 번의 강연, 바그너와의 만남, 여러 편의 논문 등을 통해 다듬어진 책인 만큼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바그너는 이 책의 내용에 매우 만족했으나, 니체에게 교수자리를 안겨준 리츨은 당황해했으며 당시 고전문헌학계의 신진학자 뮐렌도르프는 혹평을 했다. 주의할 점은, 니체가 쇼펜하우어와 바그너로부터 정신적으로 결별한 이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시작으로 초기 사상으로부터의 과격한 변화를 시도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니체의 전체 사상의 맥락을 살피면서 읽어야 할 책이다.
2. [비극의 탄생] 내용: 소크라테스-플라톤과 니체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소크라테스주의가 인식에 최고우의성을 부여하고, 진리탐구를 목적으로 하고, 학문을 발전시킴으로써 그리스의 디오니소스적 성격을 붕괴시켰다고 비난한다. 또한 말년의 작품에서는 플라톤주의가 참된 세계와 가상 세계의 그릇된 이분법을 설정하고 대지와 육체의 참됨을 가상의 것으로 만들고 오히려 가상의 것을 참된 것으로 만들어서, 진위를 역전시키고 허망한 형이상학적 위로를 인간에게 선사한다고 비판한다. 서양철학의 근원적 힘으로 일컬어지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은 니체에 이르러 세계와 인간의 배반자로 변모한다.
니체는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진리(혹은 진실)에 대한 규정, 진리인지의 방법 그리고 진리인지의 방향성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대칭지점에 서있다. 1. 진리는 대지에 있는가, 대지 너머에 있는가, 2. 진리는 전인으로 체험하는 것인가 이성으로 인식하는 것인가, 3. 진리인지는 하나의 방향으로 높아지는가, 사방으로 펼쳐지는가. 이 중에서 흔히 논의되는 1, 2물음을 뒤로 하고, 진리인지의 방향성에 관한 3의 물음만을 살펴보면서, [비극의 탄생]의 내용을 요약해보자.
[폴리테이아]에서 소크라테스가 대언하는 플라톤의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은 니체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다. ‘동굴의 비유’에서 설명되는 인간세계는 매우 참혹하다. 인간은 사지가 사슬에 묶여 있으며, 태양을 보는 것은 고사하고 불의 그림자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또한 동굴의 벽에 반향되는 소리, 즉 메아리를 본래의 소리로 착각하기도 한다. 니체가 느꼈던 삶에 대한 경악, 놀라움, 공포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동굴의 비유를 설명하는 소크라테스의 목소리에서 어떠한 떨림이나 울림도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그는 현실을 초월하는 영역을 인식함으로써 현실극복의 방법을 체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인식은 깊어진다기보다는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점점 높아지는 것이어서, 인식이 거듭될수록 명확해지고 선명해진다.
이에 반해 니체는 늘 경계에 서 있다. 그림자와 메아리로 가득 찬 동굴에서 풀려나와 태양광선이 비추는 대지로 영원히 올라오는 플라톤의 비유는 니체에게 적절하지 않다. 인간은 예술과 반예술적 현실, 디오니소스적 도취와 일상의 구분을 완전히 뛰어넘을 수 없으며, 늘 두 영역의 경계를 힘겹게 넘나든다. 이 넘나듦의 와중에서 인간이 느끼는 경악과 공포와 놀라움은 구토를 동반한다. “일상적 현실세계가 다시 의식에 떠오르면, 그것은 구토를 동반한다. … 한 번 꿰뚫어 본 진리를 의식하면서, 이제 인간은 도처에서 존재의 두려움이나 부조리 밖에는 보지 않는다.”([비극의 탄생] 7장 후반부) 아마도 존재의 두려움과 부조리가 야기하는 니체의 구토는 전인적, 즉 정신적이면서 육체적일 것이다. 그리고 니체에게 영혼의 울렁거림과 육체의 울렁거림이 공명하는 그 구토는 인간의 조건이다. 이 구토는 인간삶을 둘러싸고 있는 경계의 모든 지점에서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삶의 심연을 경험하는 것은 전방위적이다.
플라톤에게 진리인지는 ‘넘어감’이고, 니체에게는 ‘넘나듦’이다. 일단 넘어간 플라톤은 완전하지 못한 인식을 점차 높여가면서 진리를 더욱 확연하게 본다. 검은 말은 점점 길들여져서 마부는 하늘 너머에 있는 진리의 더 많은 부분을 더 선명하게 볼 것이다. 이에 반해 니체의 넘나듦은 높고 분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깊고 다층적이 된다. 경계를 넘나듦은 하나의 차원이 아니라 삶과 관계된 모든 차원에서 행해질 것이고, 모든 차원은 나름의 부조리와 구토를 선사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삶의 심연은 더욱 깊어질 것이고, 그것을 감내하고자 하는 미학적 의지 또한 더욱 심오해질 것이다.
3. [비극의 탄생] 읽기 가이드
현재 니체편집위원회에서 독일의 발테 데 그루이터 출판사의 니체비평전집(KGW) 총 23권의 번역본을 책세상을 통해 선보이고 있으며,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대부분의 대표작들이 번역되었지만, 아직 니체의 대표작 중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 [즐거운 학문] 등은 번역 중이다.
[비극의 탄생]의 경우, 곽복록의 범우사 역본과 김대경의 청하 역본 두 가지가 있다. 두 책 모두 니체가 후기(1886년)에 저술한 ‘자기 비판의 시도’가 실려 있으며, 특히 청하 역본에는 ‘편집자 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청하 역본이 원저를 밝히고 있지 않아 누구의 서문인지 알 수 없다(KGW, KSA 등 독일의 니체전집시리즈 중 하나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곽복록 역본의 경우, 역자가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한국어판 역자이기도 한 점, 학문적 경력이 화려하다는 점, 번역체가 (상대적으로) 매끄럽다는 점이 장점이다. 하지만 편집의 불성실함과 황당한 실수가 꽤 많이 눈에 띈다(특히 31쪽 8번째 줄의 ‘행동’은 ‘해몽’으로 고쳐져야 한다). 1984년 초판의 오류를 1995년의 재판에서도 거의 수정하지 않고 디자인만 바꾼 점은 범우사에게 대단히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김대경 역본은 청하의 전집시리즈 중 하나이다. 원저를 밝히지 않은 점은 정식출판계약에 대한 의심의 여지가 있다. 타자체이고 글자크기가 작으며 번역체가 딱딱하고 원저의 만연체문장을 그대로 옮겨서 여러 면에서 읽기가 녹녹치 않다. 하지만 ‘편집자 서문’은 읽을 만하고, 역자의 성실한 각주 또한 돋보인다 .곽복록은 기본적인 각주만 달았지만, 김대경은 니체가 인용하는 책제목과 그리스 비극에 대한 배경지식 그리고 니체가 염두에 두고 있는 사항에 대해 친절한 각주를 달았다. 본인이 꼼꼼히 읽으면서 스터디를 해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김대경 역본만 보아도 무방하고, 김대경 역본을 읽기가 힘들 경우는 곽복록 역본을 읽으면서 김대경 역본의 각주를 성실히 읽으면 될 것이다. (하지만 본인은 책세상의 KGW판 역본이 나오면 신뢰할 수 있는 번역본인 만큼 반드시 다시 읽어볼 것이다)
[비극의 탄생]은 25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7장은 서론, 8~15장은 본론, 16~25장은 보론으로 볼 수 있다. 청하 역본의 ‘편집자 서문’에는 서론격인 1~7장은 읽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적혀있으나, 1~7장도 매우 중요하므로 반드시 읽어야 한다. 16~25장은 니체 스스로가 말했고 많은 이들이 동의했듯이, 책의 전체적 힘과 집중을 저하시키고 있다. 그러나 읽는 김에 끝까지 읽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또한 책세상에서 나온 니체전집 중 3권 [유고] 중 특히 ‘그리스비극에 대한 두 개의 강연’, ‘디오니소스적 세계관’, ‘비극적 사유의 탄생’과 문예출판사에서 출판된 뤼디거 자프란스키의 [니체]의 1~5장(특히 4~5장)을 함께 읽으면 청년 니체의 사상을 훨씬 깊고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니체전집 3권 [유고]는 청년 니체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글들이며, 자프란스키의 책은 국내에 번역된 니체 전기 중 가장 훌륭하다. 니체를 전체적으로 공부하려는 사람은 니체 사상의 흐름에 따라 이 책을 함께 읽어나간다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비극의 탄생]을 읽어본 사람은 청년 니체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비극, 독일문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이스킬로스, 아리스토파네스의 그리스 비극,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뒤세이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천병희의 희랍어 직역본이 가장 좋으며, 괴테의 [파우스트]는 문예출판사의 역본이 좋다. 니체와 바그너와의 사상의 교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니벨룽겐의 노래]와 [트리스탄과 이졸데]도 읽어야 할 필요가 있는데., [니벨룽겐의 노래]는 서울대학교 출판부 역본이,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궁리의 역본이 좋다(궁리의 역본은 책제목을 프랑스식인 [트리스탄과 이즈]로 번역하였다). 천병희의 [그리스 비극에 대한 이해]와 랜덤하우스중앙에서 나온 [디오니소스] 그리고 김상봉의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도 참고하면 여러모로 재미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일상적 현실세계가 다시 의식에 떠오르면, 그것은 구토를 동반한다. … 한 번 꿰뚫어 본 진리를 의식하면서, 이제 인간은 도처에서 존재의 두려움이나 부조리 밖에는 보지 않는다.” |
| 니체는 이 책에서 예술이란 조형예술의 원리인 아폴론적 요소와 음악예술의 원리인 디오니소스적 원리가 조화를 이루어 발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는 예술 속에 표현되기 전에 꿈과 취함 속에서 인간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두 본능을 의인화한 것이다. 즉 아폴론적 본능은 마치 그리스인들이 올림포스 신들이 산다는 '꿈과 아름다움의 세계'를 만들어 내었듯이, 현실 속에서 완전한 것, 불변의 것들을 표상 해내는 능력을 뜻하고 디오니소스적 본능은 올림포스 신들의 불멸적 삶의 영광 뒤편에 가려져 있는 우리 인간의 근본적 유한성을 느끼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두 본능적 힘의 결합을 훌륭하게 표상 해주는 그리스 비극은 본래 자연의 순환질서를 의인화시킨 대지모 데메테르 여신과 포도주와 곡식의 신 디오니소스르 기리는 신비주의적 비밀 종교 의식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그러한 의식에서 사람들은 술취한 상태에서 신을 상징하는 염소의 탈을 쓰고 자신이 신과 동일하게 되는 상태를 경험함으로써 타자와 구별되는 개체로서의 나를 해체시키고 다른 모든 존재자와 하나가 되는 기쁨을 느끼는 동시에 어쩔 수 없이 다시 '개체로서의 나'에로 되돌아옴이 가져오는 근원적 슬픔을 맛보게 된다. 반면에 비극 작가들이 극중 주인공인 영웅들의 위대한 행위를 통해 나타내고자 한 인간의 보편적 탁월성 또는 덕은 합리주의적 사유의 극치를 표현한다. 사실 소크라테스 이래로 인간 사회 특히 서구사회를 지배해 온 '대상과 나를 구별하는 합리주의적 문화'에 대해 오늘날의 우리들은 그러한 문화자체의 근원에 대해 회의를 하고 그 합리주의 문화가 야기시킨 불모성의 고통을 맛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지니고 있는 디오니소스적 본능은 그러한 불모성을 극복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내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데 니체는 그러한 새로운 문화창조의 힘을 독일음악 속에서 찾는다. 이 책은 피상적으로는 예술의 기원만을 다루고 있는 것 같으나 그 심연에서는 그리스인들의 사고 방식을 통해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길에 대한 형이상학을 제시하고 있다. 즉 보편적 원형으로서의 이상형을 표상하고 그것과 합일하려는 취함 속에서 개별자는 보편적 인간을 닮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근원적 일자와 다른 유한성을 느끼는 가운데 슬픔을 맛보지만 그러한 슬픔 뒤에 또다른 이상형을 꿈꾸는 것을 통해 인류사회는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게 되고 각 개인들은 새로운 존재의 길을 열어갈 수 있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