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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후제천지륜전칠엽-마립간,칭기즈칸
"투후제천지륜전칠엽-마립간,칭기즈칸" 내용보기
이 책속엔 한민족의 원류와 제왕학이 있다. 화하족앞에 갑자기 나다난 흉노가 아니지요 하상주공정은 베이징올림픽때 한 이야기입니다. 사기에 은나라는 오랑캐의 나라 P28 분서갱유 - (한자의 역설) 통일 왕조를 건설하기 위해선 문자통일 정책이 있어야합니다. 흉노족이 대가야 야마토 오키나와 그리고 류큐왕조의 오키나와는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무술을 만들고 이것이 일본의 가라테
"투후제천지륜전칠엽-마립간,칭기즈칸" 내용보기

이 책속엔 한민족의 원류와 제왕학이 있다.

 

화하족앞에 갑자기 나다난 흉노가 아니지요 하상주공정은 베이징올림픽때 한 이야기입니다.

 

사기에 은나라는 오랑캐의 나라

 

P28 분서갱유 - (한자의 역설) 통일 왕조를 건설하기 위해선 문자통일 정책이 있어야합니다.

 

흉노족이 대가야 야마토 오키나와 그리고 류큐왕조의 오키나와는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무술을 만들고 이것이 일본의 가라테 다시 한국의 태권도 최홍희중장이 이승만대통령앞에서

 

기와장13개를 격파하자 태견을 보는 것 같다고 칭찬함 이를 두고 최홍희중장은 태견을 이두식

 

표현으로 발음해 태권도라 명칭함.

 

흉노가 사라진 가장 큰 이유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북방민족에 관한 책을 읽어보면 하나같이 중화사상에 입각한 서적뿐이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빼먹은 부분이 많다 이 책도 그렇다.

 

P85 조나라는 화하족의 나라 이연걸의 '영웅'에서 진나라와 조나라를 멸합니다 진은 흉노계통

 

조는 티벳계통이기 때문이지요

 

신라고분에서 나온 뼈의 DNA와 스키타이(이란)의 DNA는 동일합니다.

 

조사를 꼼꼼히 했고 다른 책에 없는 자료도 많이 보았다.

 

특히 P320~331 흉노가 훈족이 되기까지의 여정 이 책의 압권이다.

 

그 뒤에 훈족에 대해서는 방대하게 잘 조사했다. (로마제국의 정복자 아틸라는 한민족)

 

다른 작가들의 책을 포괄할 정도로 예리하게 잘 조사했다.

 

P143 여간촌이 로마군이 만든 고장이었다.

 

P162 개혁의 성공에 대한 조언 깊이 있는 말이다.

 

P171 남북흉노로 나뉘게 된 이유 북은 몽골 남은 거란 이거 대쥬신을 찾아서에서 설명못한 내용인데

 

잘 조사하셨다.

 

P183 이이제이가 처음 등장한 반초의 상소 - 흉노의 직계 후예인 한국인은 자신들을 치기 위한

 

이이제이를 마치 자신들을 위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대표적인 이이제이가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이다.

 

P324 위구르족은 돌궐이고 회홀족은 영화회족자치구지요 공부좀하세요

 

p434 아틸라가 준 선물 '베네치아공화국' (바다의 도시이야기)

 

p438 니벨룽겐의 노래 내용과 아틸라와의 연관성 예전 영화로도 봤었는데 대서사시였다.

 

p449 현재 헝가리어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지 않는다.

 

헝가리인을 마자르인이라 부름 (말갈)

 

p452 흉노- 헝가리어 유사성비교

 

훈과 흉노의 동족설의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왜 사람은 바람을 피우고 싶어할까

오키나와 현대사

빅맨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거란 잊혀진 유목제국이야기

얼굴,한국인의 낯

황하에서 천산까지

만주족의 청제국

따뜻한 지구

한국어는 신라어 일본어는 백제어

동북공정 고구려사

로마인 이야기

 

북방민족은 어느 순간 해일 같이 일어나 세상을 지배하며 표효하다

 

먼지 같이 사라졌지만 중국은 이민족의 땅을 야금야금 자기것으로 만들어갔다.

 

지금 흉노와 동호의 후예인 한국과 일본이 자신의 정체성을 잊은채

후지노키고분,경주와 고령의 고분군

 

중화사상만을(대장금) 신봉하는게 안타깝다.

 

흉노족은 태양을 상징하는 흰색을 숭배했으며 우리는 백의민족이다.

 

뼛속까지 한화된 흉노의 수장들 이것이 북방민족이 한족으로 녹아버린 결정적 이유였다.

 

제대로 로마사를 읽었다면 로마에 대한 이야기는 그렇게까지 허술하게 다루진 않았을텐데

 

네로는 제대로 된 황제였고 로마는 실수로 불이난게 원인이죠 나중에 기독교도들이 네로가

 

자신들을 탄압했기에 폭군으로 각색시킨건데 그걸 그대로 옮기다니 공부좀하십시오

 

카이사르 이야기도 소설같다.

 

로마사는 대충공부했다.

 

기독교는 콘스탄티누스황제죠

 

세부적으로 몇가지 특별한 사항도 알았지만

 

그렇게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저자께서 박학다식하시고 이야기 능력도 출중하셔서 한줄평에선 별다섯개 드렸다..

 

그리고 저자의 글을 자세히 읽어보니 중화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의 눈치를 살피며 글을

 

쓴 것 같다 (오로지 내생각) 예를들자면 조나라 민주주의 예수(예수의 마지막 오딧세이,성서의 뿌리)

 

이런 분들이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나면 아이히만이나 괴벨스의 전철을 꼭 밟는다.

 

 

제목 : 아사다마오와 안톤오노

 

 

한일어는 의태어 의성어가 발달했다.

 


 

슬슬 소로소로, 터벅터벅 토빠토빠, 깔깔 가라가라, 벌벌 부루부루, 줄줄 주로주로,

 

 

 

술술 스라스라 우리는 잘못 알고 있는 역사상식이 많다 일부만 보자 율곡의

 

 

 

10만양병설과 원효의 해골물 삼천궁녀 모두 후대에 지어낸 허구이며 여몽의

 

 

 

 왕실 통혼도 고려에서 먼저 요청했다.

 

 

 

 60년이상 이어온 썪은 무신독재의 척결과 외교적 현안들을 타파하기 위해서다 조선말

 

 

 

 세도정치 60년이 곪아 터진것과 같다고 보면 얼추 맞다. 군사정권에 목을건 삼별초도

 

 

 

 어찌보면 조선말 사대주의자들의 시각에서 해석된건 아닐까.

 


 

조선이 금과옥조로 여긴 삼강오륜도 근본은 그들이 야만인이라 생각한 몽골의 노재지학이

 

 

 

 그 뿌리다.

 


 

  일본은 천황을 상징으로 남겨둔 채 중앙집권기인 에도시대 전까지 막부로 대표되는

 

 

 

지방군벌간의 천년 가까운 싸움으로 지방자치의 틀을 다지다 중앙지배로 하나 된 나라로

 

 

 

 역량을 집적해 우리의 세종시대라 할 수 있는 메이지시대에 일본인이란 인식을 갖게 되었다.

 


 

  때마침 등장한 가스라 고고로, 후쿠자와 유키치, 도고 헤이하찌로, 무쓰 무네미스와 같은

 

 

 

 근대사의 선각자들의 등장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져 막부로 다져진 지방자치와 에도시대의

 

 

 

 중앙지배가 조화된 가운데 메이지시대를 거치며 현대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나라가 된다

 

 

 

. 이 복받은 역사를 가진 나라는 근원이 어디일까  최근 250만에서 1000만으로 늘어난

 

 

 

만주족의 정체성의 근원도 같이 느껴보자.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일본인 구다라(백제),만주족(고구려),한국(신라)는 같은 언어

 

 

 

같은 핏줄을 가진 하나의 집단이란 증거를 제시하고자 구체적이고 긴 글을 올렸다.

 


 

만일 누군가 제 이론을 반박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저와 같이 구체적인 자료로 반박해주시길

 

 

 

 바라며 그냥 감정에 복받치는 소리치는 글로 반박하신다면 정신은 사라지고 단지

 

 

 

시정잡배들의 싸움으로 변질된 뿐입니다.

 


 

  2002년 우에다 마사아카(일본의 저명한 원로사학자)교수는 신찬성씨록 좌경황별조

 

 

 

 대원진인은 비다쓰천황의 손인 백제왕의 후손이란 대목에 대해 우리 기자에게 어떠한

 

 

 

대답도 못한 채 우물거리다 인터뷰를 끝맺는다.

 


 

  구다라나이는 가치가 없다란 뜻이다. 구다라는 백제의 국명이고 나이는 무엇이 없다 이니

 

 

 

원뜻은 백제것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란 말이된다.

 


 

  2001년 12월 23일 월드컵전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천황이 자신의 몸속에도 한국인의

 

 

 

 피가흐른다 는 즉 백제인의 후손이란 언급했고 일본언론은 아사히신문에서만 기사화했다.

 


 

  전두환대통령이 일본을 공식 방문했을 당시 히로히토 일왕은 ‘사실은 우리 조상도

 

 

 

한국인이라 발언’ 함.

 


 

이방자여사도 창덕궁 낙선재에서 일본천황가에선 숭늉을 마신다고 언급.

 


 

  동경대 인류학담당 하니와라 카즈로 교수는 동료교수들과 공동으로 일본 각지의

 

 

 

 고대 무덤의 두개골등을 통한 연구조사 결과 2300년전부터 건너온 한반도 도래인들이

 

 

 

 일본인의 조상이란 사실을 규명하고 7세기초 백제유민이 대량으로 건너가기전

 

 

 

고대선주민인 조몬계와 도래계인 야요이계의 비율이 1대8.6으로 나타났다 이건

 

 

 

현재 일본인구 1억4천만명중 도래인의 숫자가 1억1천2백만명이 넘는다는 수치이다.

 


 

  교과서에 실린 것만 보자 왕인, 한고안무, 수수보리, 아직기, 왕류귀, 오경박사, 호류지, 시

 

 

 

텐노지, 금당벽화 우리의 국보5호 일본국보 1호인 미륵보살반가사유상 일본미륵보살은

 

 

 

 한국에서만 나는 적송으로 만들어졌고 한국인이 귀히 여기는 약지를 세웠으며 왕건릉에서

 

 

 

나온 인물상과 같이 유희좌를 하고 있다.

 


 

  8.15광복후 우리정부가 일본에 요청했던 ‘한국문화재 반환1호’가 백제관음상인데

 

 

 

일본사찰에 내려오는 기록에 백제에 서 건너왔다고 자세히 나오나 일본인들은 유럽에

 

 

 

순회전시할 때나 자국에서 전시할 때도 일본 고유의 작품이며 조선에서 안나는 녹나무로

 

 

 

 만들었다고 떠들지만 녹나무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벚나무와 함께 건너간 수종이다.

 


 

 스다하치만신사인물화상경이란 고대 청동거울은 503년 백제 25대 무녕왕이 왜나라

 

 

 

 왕실의 친동생 게이타이천황에게 보내준 이 거울에 ‘사마’란 휘가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1971년 7월 8일 무령왕릉에서 나온 매지권에 사마가 무령왕의 휘란게 밝혀졌고 거기

 

 

 

 명문에 적힌 무령왕의 친동생인 왜왕의 쾌유를 빌며 이 청동거울을 내린다라는 게

 

 

 

사실로 밝혀졌다.

 


 

  무녕왕은 물에서 태어났다하여 무녕왕인가 일본의 가카라섬 즉 왕이난섬이다. 무령왕의

 

 

 

 껴묻거리중 여러 목재유물이 가카라섬에서만 자생하는 나무로 만들어졌다는게 발굴직후

 

 

 

 일본인학자에 의해 증명되기도 했다.

 


 

  다른 이야기가 많지만 칠지도가 발목을 잡아 우선 거론한다.

 


 

전통은 계승된다. 군수뇌부가 결정되면 대통령은 칼을 장군에게 하사한다. 장군이 나라의

 

 

 

수반에게 칼을 올리는 일은 없다. 칠지도를 누가누구에게 올렸느니 내렸느니는

 

 

 

 중요하지 않다.  칼을 만든 사람이 칼을 받는 사람에게 하사체로 쓴 것도 중요하지 않다.

 


 

 ‘이 칼을 가진 자는 어떠한 적병도 물리칠 수 있다’란 명문, 어느 미친분이 그런 칼을

 

 

 

아무에게나 주겠는가 믿을 수 있는 같은 핏줄 아니면 어림없는 소리다.

 


 

백강전투에 패한 직후 왜군들은 “백제의 이름이 오늘로 끊어졌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조상의 분묘가 있는 곳을 어찌 다시 갈 수 있겠는가”라며 왜군들이 귀소처의 상실로

 

 

 

눈물을 흘린 사실을 일본서기는 기록하고 있다.

 


 

  712년에 지은 고사기의 저자 오노 야스마로 그의 부친은 황산벌에서 마지막으로

 

 

 

전사한 백제장수의 아들이다 그리고 일본계 미국인 안톤 오노 그냥 우연한 일이다.

 


 

 알타이의 아사달 아사달은 고조선의 수도로 아침해 뜨는 언덕이란 뜻이 담겼고

 

 

 

 고조선의 남하한 6부족유민이 세운 신라는 아사달과 김씨의 나라 김연아 그리고

 

 

 

 아사달이 일본으로 건너가 받침이 사라져 아사다 마오 아사히 신문 아스카문

 

 

 

그냥 우연이다 로또의 6자리 숫자처럼 가야 노부나가 이에야스, 백제 도쿠가와

 

 

 

이에야스처럼 아이신자오뤄 누루하치도 사실은 김씨다 노루하치의 성인 아이는

 

 

 

 아버지 신자는 신라 오뤄는 잊지말자 해석하면 아버지의 나라 신라를 잊지말자가 된다.

 


 

  고사기보다 후대인 772년에 쓰여진 상표문엔 아스카 인구중 80-90%가 백제인이라

 

 

 

적고 있다.  아스카땅에 호류지의 찰주를 세우던 날, 소가노 우마코(목만치의 5대손)대신과

 

 

 

100여명의 만조백관은 모두 백제옷을 입었고 보는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했다 기록하고 있다.

 


 

현대에도 미치다 미치루 노루가 노로 미역, 미나리, 미늘, 미숫가루, 미꾸라지 모두

 

 

 

 미즈(일본말 물)로 통한다 미는 즉 물이다.

 


 

  김춘추는 왜사신과 대화에서 통역을 쓰지 않았고 백제 여인은 왜인과 대화했다고

 

 

 

일본서기는 남기고 있다.

 


 

어느 신문사의 일본 속 한국이란 제목으로 일본문화답사를 하는 목적은 무엇인지

 


 

구르다+마(싣는 기구)=구르마란 답이 나온다.

 


 

하나의 언어가 둘로 갈라지는 것은 점진적으로 진행되지 않으며 불과 2세대안에 끝난다

 

 

 

 어중간한 상태의 단계는 아주 짧다.

 


 

8세기중엽 만엽집과 10세기초의 고금집은 그 실린 시구가 크게 다르다.

 


 

시모노세끼 근방 해안에 도이가하마라는 야요이시대 공동묘지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인골유적이 있다. 모두 마한땅으로 머리를 두고 있다 귀소본능이 이런 것일까.

 


 

일본인들은 백강전투의 분을 풀기위해 신공왕후를 통해 신라정벌이란 글로써 복수했고

 


 

조선은 임진왜란의 분을 풀기 위해 우리가 임난후 통신사로 보낸 사명당을 통해 글로써

 

 

 

 복수했다.

 


 

행인지 불행인지 두나라 사이에 대한해협이 끼어 있어서 조선동란(삼국전쟁등)이

 

 

 

 일어나고 있을 때 일본은 보다 일본적으로 바뀌어갔다.

 


 

신라는 백제의 문화를 망가뜨리고 장인과 유물을 많이 가져갔으며 남은 백제의 명맥을

 

 

 

섬에서 나오지 못하게해 결국엔 나라로 만들어버렸다.

 


 

일본은 조선의 문화재를 망가뜨리고 장인과 유물을 잡아갔으며 조선이 반도국에서

 

 

 

주저앉도록 반도사관을 심고 우리의 옛강토인 간도를 빼앗아버렸다.

 


 

  신라는 백제의 역사를 축소왜곡말살했으며 일본은 조선의 역사를 축소왜곡말살했다.

 

 

 

역사에서 일방적으로 주는건 없다 뿌린대로 거둘뿐이다.

 


 

고대 백제와 일본은 누가누구를 지배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안에 경기도지사

 

 

 

강원도지사가 있듯 그냥 하나의 나라였을 뿐이다.

 


 

  백제의 아비지는 황룡사탑을 조선의 심수관, 이삼평은 사쓰마 야끼를 선사했다.

 


 

삼국사기엔 없지만 일본서기에는 동성왕과 무녕왕이 각기 일본에서 귀국해 백제왕으로

 

 

 

등극했다는 기사가 있다 또 일제대에도 조선총독으로 재직하다 일본수상으로

 

 

 

옮긴 경우도 있다. 생소해서 안믿기는가 중국사료엔 구려의 추를 유인해 죽였다고 했고

 

 

 

 삼국사기엔 추(주몽)의 밑에 장수가 잡힌 것이라 다르게 적고 있다.

 


 

 삼국사기엔 백제 26대 성왕이 관산성전투에서 신라 말을 관리하던 하급군사에게 죽임을

 

 

 

당했다 적고 있지만 일본서기 왜로 건너와 긴메이천황이 되었다 적고있다.

 


 

누가 그랬다 재료를 살 때 바가지를 안쓰려면 재료상 세 군데 들러서 값을 알아보라고...

 


 

중국측 자료엔 고조선의 수도 아사달에 흐르던 강은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고 기록되었지만

 

 

 

중국에선 해석하길 선조들이 실수로 적은것이라 말하고 있다. 어떤것이 진짜일까

 


 

왜국도 잃어버린 강토와의 연을 끊고 새롭게 나가야 자기들의 살길임을 알았을까

 


 

천무천황은 고대 영토와의 모든 연결고리를 없앨것을 명하고 한일 양국은 동종이라는

 

 

 

책들이 불태워진다 간무왕은 나라땅 선주민 세력등으로부터 질시와 견제를 받아 왕도를

 

 

 

 두 번씩이나 옮길 정도로 애를 먹었고 간무시절 분서사건에 대해 14세기 일본의 거물

 

 

 

정치가 기타바타케 지카후사도 옛날 일본은 삼한과 동종이었느니라고 하는 책이 있어서

 

 

 

 그 책을 간무 연대에 불태워 버렸다고 신황정통기에서 기록하고 있다. 

 


 

교류가 없으면 언어도 이질화되고 결국엔 2개국어가 된다. 몽고어와 한국어는 유사점이

 

 

 

 매우 많지만 현재 지리상의 장애물도 많다 한국어 만주어 일본어는 오랜 기간 떨어져

 

 

 

있어도 생각해봐야할 언어다 북한어와 남한어는 분리가 시작되는 단계의 언어다.

 


 

만주어, 고대한국어, 일본어는 모두 받침이 없는 개음절이지만 현대한국어만 받침이

 

 

 

있는것도 한번 생각해보자. 또 현대한국어도 조사가 붙으면 개음절이 된다.

 


 

조선 일본 몽고 거란 고려 부여 여진 신라 모두 국호가 해를 상징하며 유목민은 해를

 

 

 

숭상했다는 점이다. 유목민은 살찐 양과 큰 뿔 가진 순록을 귀하게 여겼는데 고려란

 

 

 

 글자를 풀이해보면 그게 나온다 신라의 금관이 사슴뿔과 자작나무를 상징하듯

 


 

생태학적으로도 시조는 같으나 오랜 기간 떨어져 있으면 별종처럼 보이는 종이 참 많다.

 


 

  고구려 사람들은 668년 이후 당으로 일부는 신라로 편입되고 일부는 돌궐방향으로 서진한다.

 

 

 

일제시대 우리는 만주로 연해주로 일본 구라파로 중앙아시아로 흩어졌고 결국 우린

 

 

 

한반도에 남아 있지만 고구려는 민족 전체가 그 땅에서 사라졌나보다.

 


 

  일본이 도시락 문화가 발달한 이유는 국물에 건더기가 없어서다 그네들은 수저가

 

 

 

 있을 필요가 없다 단 한 사람 천황만은 한국사람처럼 수저를 쓴다. 고구려벽화엔

 

 

 

 주름치마를 입은 여인이 많다. 우리도 왕비가 주름치마를 입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명왕이 큰 강을 만나 거북에 올라타 쭉 갔고 일본초대 천황인 진무도 동정하다

 

 

 

 바다를 만나 거북의 등에 올라타 쭉갔다. 거북을 신성시하는 것까지 공통이다

 

 

 

 거북 참 오래도산다.

 


 

 고대 우리 역사의 흔적은 고베를 비롯한 세토나이카이(내해)를 따라 지명,유적,유물이

 

 

 

 수없이 많이 남아있다.

 


 

고려의 지배층에 편입된 신라인들은 그들이 백제와 고구려를 완전히 없앴다고 해야

 

 

 

조상의 위신이 서지 않았을까 만일 고구려와 백제의 후예들이 다른 곳에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면 신라의 최대치적인 삼국통일을 했다는 역사가 더럽혀질게 뻔하다

 

 

 

 고려에 궂이 ‘구’자를 집어 넣어 고구려로 만든 건 어쩌면 거란,여진이 고구려를

 

 

 

대신하고 남부의 일본이 백제의 명맥을 이어가는데 자기들이 섬기는 나라 고려가

 

 

 

 그 위에 고려인들이 세운나라와 더불어 열도백제까지 같이 존재한다면 그들의 위신이

 

 

 

 무어가될까 그래서 우리의 역사서엔 통일신라를 강조했고 한반도 남북부의 역사는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일까 그래서 소송녕과 서희가 옛고구려를 들먹인 것일까.

 


 

  거북선이 철갑선으로 둔갑한 이유도 붓으로 싸운 조선군을 칼을 가지고도 못이겼으니

 

 

 

무언가 그럴듯한 패전에 대한 변명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1995년 8월 동몽골 다리강가에서 고구려식무덤과 성곽을 손보기교수가 발굴했다

 

 

 

7세기흉노는 10만가구를 남겨두고 서진해 질지(아프가니스탄)를 거쳐 훈족,

 

 

 

헝가리로 이주한다.

 


 

7세기말 동몽골에서 발원한 종족이 몽고인의 실질적인 조상이된다. 그리고 고구려가

 

 

 

역사에서 사라진건 668년이다.

 


 

   한국사학계에선 식민사학의 원흉으로 시라토리 구라키치를 지목한다.

 

 

 

헌대 그는 1933년 발해에 관한 논문에서 지배층은 고구려인 주민은 말갈인이라

 

 

 

 발표했고 현재 우리사학계는 그 논문을 신앙으로 여기고 있다. 말갈이란 말은 5세기

 


 

부터 사용된 고구려인의 별칭이란게 이미 정설이 된지 오래다.

 


 

  우리아기 사진첩에 우리아기보다 다른 아기사진이 더 많이 실려 있다면 좀 이상하지

 

 

 

 않을까 우리의 삼국사기 삼국유사처럼 일본엔 일본서기와 고사기엔 백제의 역사가

 

 

 

일본역사보다 더 많이 기록되어 있다.

 


 

  일제시대 그들은 우리의 정수리에 앉아 조선을 통치하고 물러났다. 오랫동안

 

 

 

우리나라를 다스린걸 기리기 위해 일본궁,일본강, 일본마을을 만들진 않았다.

 


 

  교토 천황궁엔 죠메이천황을 안치하기 위해 구다라궁 북쪽에 지은 빈궁의 이름

 

 

 

역시 구다라대빈(백제대빈)이었다. 백제교,백제문을 비롯해 소가노 우마코(목만치의 5대손)가

 

 

 

호류사에서 행사할때도 귀족들이 모두 백제옷을 입었다고 일본사서들은 기록하고 있다.

 


 

  일제시대 군부는 한국과 관련된 지명을 수도 없이 없앴는데도 백제강,백제역

 

 

 

백제신사 백제마을등 너무 많은 우리고대 지명들이 아직도 생존해 있다.

 


 

 규슈 기리시마공원에서 가장 거대한 산봉우리는 한국악이다.

 


 

일본땅을 만든 두신중 남신인 이자나기가 요미노쿠니(황천)를 탈출하여 온 곳도

 

 

 

 히무키노쿠니 현재의 규슈 아와키하라 해변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섬 규슈는 일본 고대사가 시작하는 땅이다.

 


 

우두산이 한국엔 거창, 소양강등 여러곳에 있다 일명 소머리산 일본엔 소시모리가

 

 

 

고대역사의 중요한 지명으로 쓰인다.

 


 

소에 남부억양이 참가되어 시 머리는 모리로 변한다.

 


 

단군이 천부인인 거울, 북, 칼을 가졌고 천황가의 3종신기인 구리거울 ,칼 ,곡옥을 가졌다.

 


 

  신들의 이사를 간나즈키라 한다. 10월에 신들이 일본을 떠난다는 말이다. 우리의 영고,

 

 

 

동맹은 10월에 한다. 그냥 우연이라 생각한다. 평안도말에 간나새끼가 있듯이

 


 

  백강전투 후 한국과 일본이 정치적으로 완전히 분리된 후에 각각에서 독립적으로

 

 

 

생긴말이 가까운 것은 그만큼 한국과 일본의 기초어와 사유방식이 비슷했음을 의미한다.

 


 

고사기에 나오는 농업신 ‘히요우케 히매가미’가 죽자 그의 몸에서 곡식이 나오는데

 

 

 

 머리에선 소,말 눈에선 누에가 배에선 벼 귀에선 기장 코에선 콩 보지에선 보리라는

 

 

 

한국남부어가 등장한다.  또 우케를 훈민정음에선 찧지 않은 벼라고도 말했다.

 


 

고대 한국어에는 ㅆ이 없었고 받침도 없었지만 중국식 원음대로 한자를 읽어온 한국은

 

 

 

이두로 표기할 수 없을 정도로 음운범위를 확장했고 그것을 나타내기 위해 혁명적인

 

 

 

 한글이 창제되었으며 고대의 음운변화를 그대로 유지해온 일본어는 동음이의어가

 

 

 

 많아져 한자의 뜻으로 구별하게 되었다.

 


 

   만일 백제가 백강전투에서 승리했다면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언어는 영국과 미국이

 

 

 

영어를 쓰는 것처럼 백제어 중심으로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19세기말 영국수상 솔스베리가 남미에 대한 이권을 주장하면서 미국의 남북미대륙의

 

 

 

 이권 독점을 내세운 먼로주의의 파기를 요구하자 미국대통령은 의회에 영국에 대한

 

 

 

전쟁 선언을 요청하였다. 영국과 미국은 중남미에서의 이익이 엇갈리자 전쟁

 

 

 

 일보직전의 험악한 관계가 되고 미국민은 영국에 대한 독립전쟁을 되새기게 된 것이다.

 


 

  이때 영국 외상 밸포어의 ‘서로 같은 영어를 사용하는 국민이 전쟁을 할 수 없다’는 말

 

 

 

한마디로 전쟁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간 한일 사이에는 거듭되는 전쟁, 침략의 역사로 얽히고 있는데 언어를 공유하고

 

 

 

 있었다면 지난 역사와 같은 극단적인 관계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러시아 발틱함대를 일본장군 도고가 대한해협에서 격파하고 이순신장군을 칭송하는

 

 

 

한마디를 한다. 그는 억세게 운이 좋으면서도 무사가 갖추어야할 덕목을 두루 갖춘 명장이다.

 


 

  하지만 그의 말에서 우리가 나폴레옹, 링컨을 이야기하듯 민족적 동질감을 상실한듯한

 

 

 

느낌을 받아 하나의 민족으로 다시 합쳐지기 위해선 아직 우리가 갈 길이 많음을 느낀다.

 


 

우리가 하나되면 유물도 다 찾을 수 있다 통일이된 후 국립박물관이 평양에 있으면

 

 

 

어떻고 제주에 있으면 어떤가 초기엔 반발도 국가적으로 거세겠지만 대한민국의 경상도,

 

 

 

전라도의 현실이 나은가 신라와 백제로 나뉘어 싸우는게 나은가   밥을 들고 먹으면

 

 

 

우린 상놈이라 한다. 일본은 밥그릇을 내려놓고 먹으면 짐승이라 한다. 

 

 

 

우린 산꼭대기에 올라가 쉬고 일본은 꼭대기에 오르기 바로 직전에 쉰다.

 

 

 

그 차이가 무슨 상관인가 서로 차이가 있는게 무슨 야만족의 척도인가 이세상엔

 

 

 

 야만족이란 없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 못하는 외부인만 존재할 뿐이다. 우린 일제식민사관을 심각하게

 

 

 

여기지만 인조반정 공신들의 여진, 몽골에 대한 더러운 협잡을 우리 뇌리에 깊이

 

 

 

심음과 우리를 오랑캐로 생각하는 중국을 사모하는 소중화 사상의 폐해가 더 심각하다

 

 

 

생각한다.

 


 

충렬왕 같은 부마왕을 몽고가 만들었다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상할대로 상한

 

 

 

무신정권을 뒤엎고 노련한 외교를 위하여 우리가 먼저 몽고와 왕실혼을 제안한걸

 

 

 

우리는 반대로 알고있다.  고려는 역사서를 본기로 적고있지만 우리가 존경하는

 


 

집현전학사들은 우리역사를 중국의 지배하에 있다는 세기로 낮추어 적고있다는걸 우리는

 

 

 

지나치고 있다.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황제에게 이마에 피가 나도록 33배를 했다고 배웠지만 그런 일은

 

 

 

 우리사서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조조의 100만대군이 꾸며낸 이야기인 것처럼...

 


 

대장금에서 중국사신이 그녀를 인정해주니 기분 좋은가 일국의 왕위계승 문제도 별볼일

 

 

 

 없는 중국사신에게 허락을 받아야한다는 게 조선왕조는 좋았나보다 이성계가

 

 

 

이자춘의 아들이 아니라 이인임의 아들이라 그들의 사서에 적어놓았기에 우린 주청사를

 

 

 

보내고 건국후 180년 동안 굴종적인 자세를 유지했다는 걸 인조반정공신들은 애써

 

 

 

외면하고 오로지 사대사관만 후손들에게 심는 걸 최고의 덕으로 삼아 우리의

 

 

 

학창시절에도 소중화사상을 참 많이 주입받은 기억이 난다.

 


 

백제는 660년에 고구려는 668년에 국호가 없어지지만 왜국은 669년부터 왕 또는 대왕의

 

 

 

호칭을 천황이라 고치고 일본이란 국호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백제의 강돌문화를 넘어 마한을 정복한 후 백제가 일본열도를  백제땅으로 끌어들인 것은

 

 

 

 오진왕 때부터라는게 통설이다.

 


 

  일본문화와 조선문화가 같은 조상에 의해 이루어진 부분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일본인들은 솔직하게 받아들여서, 일본문화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또한 그들의 고분에서 삼국의 유물이 나왔다고 우쭐대며

 

 

 

 식민지시절의 분풀이를 하듯 우쭐대기 보단 80년대초 잃었던 피붙이를 만나 전국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던 이산가족상봉 같은 느낌을 가지라면 나의 욕심일까.

 


 

 여진족은 중국각지에 만성(만주족이 거주하는 지역)을 세워 260년간 350:1이란

 

 

 

민족비율로도 팔기제를 중심으로 지배체제를 확립해왔다.

 


 

 18세기초에 옹정제는 “앞으로 시위와 호군 및 황궁을 지키고 파수보는 모든 인원은

 

 

 

만주어만 사용해야 한다. 한어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된다. 훈련시 병사들이 소집되어

 

 

 

 연병장에 있을 때에도 만주어만 사용해야 한다.” 할 정도로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우리가 잘 아는 마지막 황제 푸이가 할 줄 아는 만주어는 “일리” 즉 일어서다란 만주어인

 

 

 

 일립비의 명령형인 일리뿐이었다고한다.

 


 

뇨후루씨의 뇨후루는 만주어로 늑대를 뜻하는 뇨허이고 한어로 늑대랑이라고 쓰다가 후에

 

 

 

 젊잖은 의미의 동음이의어인 사내랑으로 바꾸어 랑씨가 된다.

 


 

  만주족의 한화의 원인은 만주족의 후손들에게 중국이라는 또 다른 고향이 생겼기 때문이다.

 


 

  1750년쯤에 건륭제는 신강원정을 단행하고 시버와 솔룬은 탁월한 전공을 세운다.

 


 

전쟁이 끝나고 신강을 병합키 위해 수천명이 영구 주둔 임무를 띠고 가족과 함께 파견되어

 

 

 

현재까지도 4만명가량의 시버족이 남아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만주족이거나 자신들의

 

 

 

 말이 만주어라고 알지못한 채 현재 지구상에서 만주어를 말하는 마지막 사람들로 남아있다.

 


 

  누루하치가 칼카몽골에게 보낸 서신에서 “중국과 조선 두 나라는 오직 언어만 다르다.

 

 

 

그들은 입는 옷도 같고 생활방식도 같다. 몽골과 여진 두 나라는 오직 언어만 다르다

 

 

 

우리는 입는 옷과 우리의 생활양식도 같다.”  또 흑룡강일대 시보, 솔론, 다우르,

 

 

 

부트족은 지리, 언어, 생활양식 면에서 여진과 몽골의 중간단계이다.

 


 

  행인지 불행인지 대한해협이 있어 한일어는 중간지대가 없다.

 


 

그래서 두 개의 언어로 착각하게 된 건 아닌지

 


 

건륭제는 서몽골인 준가르제국을 정복할 때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도시를 점령하면 그곳의

 

 

 

주민을 모두 죽이는 작전을 구사해 서몽골의 준가르제국을 점령한 후 서몽골에 남아 있는

 

 

 

 몽고족은 전쟁전의 10분의 1로 줄어들어있었다.

 


 

현대에도 1960년대 문화혁명 당시 마오쩌뚱이 국토정화 명목으로 내몽골의 원주민

 

 

 

수십만명을 죽이거나 몽고로 쫓아 보냈으며 대만의 20%의 소수민족을 구성하는

 

 

 

 중국인 정권의 수장인 장개석도 2만명의 대만원주민을 학살했지만 이들의 행각은

 

 

 

건륭제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고 건륭제는 알타이유목민이 정체성을 상실했을 때 같은

 

 

 

 민족에게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잘못 알고 있는 역사상식이 많다 일부만 보자 율곡의 10만양병설과 원효의

 

 

 

해골물은 모두 후대에 지어낸 허구이며 여몽의 왕실 통혼도 고려에서 먼저 요청했다

 

 

 

 60년이상 이어온 군사독재의 척결과 외교적 현안들을 타파하기 위하여 조선말

 

 

 

 세도정치 60년이 곪아 터진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무신정권은 개성을 지키기 위해

 

 

 

모집된 정예군을 왜 자기집 대문앞에 배치하는가 군사정권에 목을건 삼별초도

 

 

 

어찌보면 조선말 사대주의자들의 시각에서 해석된 건 아닐까.

 


 

조선이 금과옥조로 여긴 삼강오륜도 근본은 그들이 야만인이라 생각한 몽골의 노재지학이 그

 

 

 

 뿌리다.

 


 

대륙을 넘어 정복활동을 한 몽고와 후금은 대양과 대해에서 무수한 수전을 경험한 막강한

 

 

 

 해군력을 자랑하지만 고려는 정책상 하위에 있었기에 강화도를 안건넌거 뿐이다.

 


 

금태조 아골타와 후금의 누루하치는 모두 아이신자오뤄란 성을 가지고 있다.

 


 

아이는 아버지 신자는 신라 오뤄는 잊지말자 즉 아버지의 나라 신라를 잊지 말자는 뜻으로

 

 

 

두 사람도 모두 경주 김씨를 쓰고 있다.

 


 

금나라는 고려를 아버지의 나라라 보듬어 안았고 후금은 조선의 계속된 호전적 태도에도

 

 

 

 국채를 유지시켜 준다.

 


 

 현재까지도 청대 만주족 팔기의 후손들은 과거의 만성이었던 여러 도시에 거주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어렵게 지켜나가고 있다.

 


 

이제 고구려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말조차 잊은채 250만으로 줄어들어 중국에 흩어져 있다.

 


 

중국이란 나라가 만들어진 후 그들의 국시는 한결같이 주변 민족을 거란처럼 흡수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인조반정 공신들과, 이성계가 신앙처럼 여기는 새끼중국인 사상인

 

 

 

 소중화사상을 언제까지 중국의 전통인 장자세습, 과부의 재가금지, 남존여비, 시집살이 ,

 

 

 

항렬(돌림자)를 가보로 간직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정체성을 점점 인식하고 있는

 

 

 

남아있는 주변의 형제들과 다시 한 집에 살 것인가.

 


 

  문화적 특징인 언어가 사람들을 결합시킨다면 구성원이 모국어를 포기할 때 그 집단은

 

 

 

해체된다.

 

 

제목 : 동해,일본해 & 성폭력범죄자의 특징

 

 

요즘엔 전자발찌를 차거나 화학적거세를 한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처벌수위는 비슷하다.

 

그런데 이들은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5분내지10분의 쾌락을 위하여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짖밟아버리는 범죄.

 

5~10분의 자신의 쾌락 떄문에 , 이게 성폭력을 즐기는 이유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가 페탱원수의 비시정부이다.(먼나라 이웃나라)

 

페탱원수는 1차대전의 영웅이었고 대통령까지 되었다가 2차대전떄 프랑스 온천도시 .

 

비시에 나치가 조종하는 비시정부의 수반이 되어 프랑스 국토의 1/3을 다스리다 전쟁이

 

 끝난후 처벌받는다.

 

독일이 프랑스를 지배한건 3~4년이고 프랑스가 독일에게 문화적 혜택을 받은건 없어도

 

빼앗기거나 당한건 많다.

 

이성계를 보자 한족 부흥운동인 백련교도의 난으로 홍건적이 쳐들어왔을때 무찌르고

 

60년간의 일본남북조시대에 남조의 패잔병들이 남원쪽으로 진군했을때 황산에서

 

대파시켜 전쟁영웅이 된다.

 

여러대째 다루가치집안이었던 그는 (몽골은 왜 고려를 멸망시키지 않았나) 명나라 토벌을

 

 명받고 위화도까지 갔다 쿠데타를 일으켜 자주국인 고려를 멸망시키고 만주와 요동이

 

 우리땅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식인들을 모두 죽이거나 귀향보내고(오백년 도읍지를~)


 명나라 황제에게  사신을 보내 나라이름을 지어달라고 애원한다.

 

조선은 500년내내 임금의 권한을 수행하려면 중국황제의 허락을 받아야했고 세자를

 

 지명하려해도 그 지명이 유효하려면 중국사신의 허락이 있어야 그 지명이 유효한

 

중국의 유일한 식민지였다.(대장금)

 

500년동안 중국만 바라보며 사대주의 쇄국을 하던 조선은 근대 서양문물을 1543년부터

 

 받아들인 일본에 의해 강화도조약이 체결되고 조선의 이권을 먹으려면 먼저

 

식민지관계를 청산해야되는걸 알기에 강화도조약 1조에 '조선은 독립국'이란걸 명시해

 

조선을 중국으로부터 분리독립시킨다.

 

우리는 36년이라 배웠고 지금은 35년이라 가르치지만 사실 50년이 맞고 이건

 

이토 히로부미의 계략이었다.

 

3국간섭을 보자 중국땅을 점령했지만 서양세력이 간섭해 할양받을 땅을 포기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비스마르크를 보자 나폴레옹3세와 전쟁후 파리를 함락시키고 배상금을 요구하자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을 대신 가지라고 했을때 그는 다른 나라들이 간섭할 걸

 

 우려해 돈으로 달라고 한다. (비스마르크평전)

 

만일 2차대전후 미국이 전쟁배상금을 일본정부에 요구했다고치자 그리고 대신

 

조선을 가지라고 했다면 우린 기분이 어떨까 그런데도 우리는 프랑스를 찬양하면서

 

 우리와 같은 역사를 안고 있는 월남은 무시한다.(호치민평전)

 

일본이 조선과 전쟁을 안한 두번째 이유는 군사력도 얼마안되고 아직도 활이

 

주력인 나라 학교도 지어주고 철길과 도로도 놔주어 조선사람들은 좋아하나 나중엔

 

 조선을 삼키기 위한 포석인걸 안중근의사등 몇몇분만 빼놓곤 모른다. (시일야방석대곡)

 

그래서 1909년에 하얼삔에서 그 일이 있었던 것이다.

 

이토의 자제 요청으로 조선을 삼키지 못한 일본은 바로 다음해 조선을 병합한다.

 

500년동안의 식민지배체제,쇄국정책을 이성계가 만들었고 그를 주도한 인물이 그의 군사(참모)

 

정도전인데 지금 이들은 자신들의 계략에 세뇌된 국민들에 의해 영웅이 되어 있고

 

너도나도 전주이씨라 자랑한다.

 

세계의 노예제도가 없어진건 1860~1870년 사이이고 일본도 1872년에 노예제도를 없앴지만

 

워낙 강고한 중국은 1903년에야 없애고 우리는 일본의 강압에 의해 제일 늦은 1909년에야

 

없앨 수가 있었다. (노컷조선왕조실록,청사)

 

누가 그런다 프랑스는 반민족 처벌했는데 우린 못했다고 그들은 3~4년 동안 우리는

 

50년 가까이  지배를 받았는데 상황이 같은가 앞이 안보이는 상황인데 같은가 해방후

 

빨치산들이(권오석) 남한을 전복하려고 총파업,도로,철도 운행중단시키는데 이걸 막으려면

 

남로당같은 공산당을 색출할 능력이 있는 집단은 친일경찰뿐인데(한국보수세력연구) 상황이


같은가 우리의 근대문물은 거의 100% 일본이라는 필터를 거쳐 들어왔다.(돈가스의 탄생)


교육,문화,법률,의료,과학 혈액형별성격테스트도 한국과 일본뿐이다.(헌혈,사랑을 만나다)

 

김구선생님꼐서 해방후 말씀하신다.

 

마지막까지 내곁을 지킨 사람은 넷뿐이었다고.....

 

지금은 보는 사람마다 자기가 거기에 속한단다.

 

이완용은 독립협회 회장이었고 갖은 수난을 당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지만

 

노후생활의 안락함을 위해 변절한다.(한국분,한국인,한국놈)

 

유신반대 독재반대를 하다 사형선고를 받은 이철은 노후생활의 안락함을 위해 KTX승무원을

 

등친후 먹튀한다.(그대들을 희망의 이름으로 기억하리라:KTX여승무원문집)

 

그리고 우린 어떤 범죄자에겐 감투를 어떤 범죄자에게 전자발찌를 채운다.

 

다시 말해 조선은 중국이라는 다국적기업의 현지인 사장체제였고 36년식민지는

 

 일본이라는 다국적기업의 본사파견제 사장체제였다는 이야기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보자 개막식때 천장철도가 잠시 나온다. 이건 티벳에 대한 식민지배

 

 말뚝박기인데 우린 그런가보다한다.(중국의 거대한 기차)

 

폐막식때 보자 동해를 일본해라 표기하고 있다.

 

중국이 일본에 감정이 더 많을까  한국에 감정이 더 많을까

 

이건 이이제이,원외근공의 오랑캐토벌 수법이다.

 

 

한족은 강대국 요나라를 물리치기 위해 멀리 있는 오랑캐인 금나라를 이용해

 

거란의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여진이 세운 금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후일 원나라를 세운

 

몽골을 이용해 금나라를 멸망시킨다.

 

멀리 있는 오랑캐를 시켜 가까이 있는 오랑캐를 멸망시키는 원외근공전략 폐막식때

 

일본해가 바로 그래서 나온 것이다.

 

지금 양국에게 가장 급한건 서로때리기 서로방어하기가 아니라 전권을 위임받은 양국의

 

대표학자 몇몇이 모여 양국국민이 인정할 수 있는 동해,일본해의 새로운 대안명칭을 찾는 것이다.

 

지금 양국은 명칭문제로 막대한 국력을 외교전으로 소모하고 있고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중국은 어부지리한다.

 

몽고,거란,여진,한국,일본,오끼나와까지 모두 알타이어족인 흉노유목민의 후손들이다.

 

(대쥬신을 찾아서1,2, 한국어는 신라어 일본어는 백제어,성서의 뿌리 p63,254)

 

오랑캐끼리 싸움붙이는 중국의 이이제이전법에 이젠 그만 놀아나자 가장 좋은예가


임진왜란이다.(풍수화/김용운)

 

중국은 지금 칭기즈칸과 을지문덕을 중국인이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동북공정 고구려사)

 

만주와 요동이 한국땅이란걸 한국인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우리는 중국을 어버이로

 

 섬겨야한다는 소중화주의를 자신들의 6년간의 치부를 위해 자손들에게 심어주고

 

 우리는 오랑캐가 아니라 중국인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몇몇 동이족 반역자들의 논리에

 

 이제는 그만 놀아나자

 

성폭력범이 5~10분의 쾌락을 위해 한 사람의 일생을 망친것과 이성계와 정도전 일파가

 

 6년간의 왕노릇을 해보는 쾌락을 만끽하기 위해 나라를 500년간 중국의 식민지배체제로

 

만든 역사의 과오에서 이제는 벗어나야한다.

 

시간나시면 단양 도담삼봉에 한 번 가보세요  Re-born 888

 

YES마니아 : 플래티넘 s*****6 2020.01.1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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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제국 이야기 유라시아 대륙 양단에 강력한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 흉노를 찾아서
"흉노제국 이야기 유라시아 대륙 양단에 강력한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 흉노를 찾아서" 내용보기
책소개흉노의 흥망성쇄세계 제 8대 불가사의라고 평가되는 만리장성은 진시황이 흉노의 침입을 두리워하며 축조한 성벽이었다. 중원제국을 호령하던 진시황을 두려움에 떨게 한 흉노족. 하지만 그들의 자취를 현재에 찾기란 쉽지 않다. AD 460년, 흉노의 마지막 정권인 북량정권이 유연족에 의해 멸망당하면서 흉노족은 중국 역사 상에서 사라졌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그로부
"흉노제국 이야기 유라시아 대륙 양단에 강력한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 흉노를 찾아서" 내용보기

책소개

흉노의 흥망성쇄

세계 제 8대 불가사의라고 평가되는 만리장성은 진시황이 흉노의 침입을 두리워하며 축조한 성벽이었다. 중원제국을 호령하던 진시황을 두려움에 떨게 한 흉노족. 하지만 그들의 자취를 현재에 찾기란 쉽지 않다. AD 460년, 흉노의 마지막 정권인 북량정권이 유연족에 의해 멸망당하면서 흉노족은 중국 역사 상에서 사라졌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그로부터 1500년 후, 일부 헝가리인들이 정부를 향해 자신들을 훈족이라는 사실을 인정해달라고 했다. 이들의 요구는 기각되었지만, 세계적으로 흉노·훈족에 대한 관심이 드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에도 마찬가지인데, 흉노와 신라라는 주제를 놓고 역사학계에서 논란이 펼쳐졌다. 바로 신라왕족을 이룬 김씨가 북방계, 흉노의 일족이었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과연 흉노족에 관한 소문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까. 이 책은 흉노족의 흥망성쇄를 흥미롭게 추적하고 있다.


목차

01. 고대민족의 후예를 찾아서
01-1. 고원에 이는 충돌의 물결
중앙아시아 고원/ 속도와 개방/ 영웅을 기대하다
01-2. 몽골고원의 첫 번째 주인
초원의 문화/ 다업형태의 경제/ 신비로운 정신세계

02. 몽골고원을 떠난 북흉노
02-1. 장성 양단의 전투
호복기사와 사이/ 기고만장한 흉노/ 전쟁으로 보낸 40년
02-2. 혼란이 끊이지 않은 왕위쟁탈전
흉노의 전략목표, 서역/ 기이한 권력투쟁의 결말
02-3. 서역, 한?흉의 첫 번째 친밀한 접촉
머리 숙인 늑대의 후예들/ 신비한 여간현의 용병
02-4. 양한의 짧은 소생
소군 출새/ 왕망의 복고개혁/ 북흉노, 낮게 멀리 날다
02-5. 중원의 마지막 흉노
요약/ 유씨의 탈을 쓴 전조 정권/ 혁련발발과 대하 정권/ 틈새 속에서 성장한 북량 정권

03. 안팎으로 궁지에 몰린 로마제국
03-1. 도시국가에서 탄생된 기이한 정치 구도
아펜니노 반도에서 시작된 도시국가/ 군주제와 공화제가 낳은 기형아/ 군심을 잡기 위해 민심을 버리다
03-2. 로마를 향한 게르만의 공격
요약/ 만신창이가 된 갈리아/ 아우구스투스의 유일한 도전/ 로마를 통치한 게르만 황제/ 고트족의 독립, 로마제국의 악몽
03-3. 기독교와 로마제국
기독교의 탄생/ 기독교의 은밀한 성장/ 로마제국의 근심

04. 훈, 유럽을 자극하다
04-1. 중앙아시아로 진입한 흉노
요약
04-2. 동유럽 평원에 자취를 드러낸 기마민족
요약/ 수치심에 자살한 동고트족 왕/ 서고트족, 훈족의 훌륭한 대리인
04-3. 울딘이 통치한 훈제국
훈족을 묘사한 로마의 역사가들/ 울딘/ 서고트족의 명쾌한 답안/ 적의 약점을 노린 반달족
04-4. 아틸라의 초기 사적
루아, 울딘의 뛰어난 계승자/ 블레다와 아틸라
04-5. 세계를 지배하려는 아틸라
마르스 검의 첫 번째 희생양/ 동로마 서절단 여행기
04-6. 갈리아를 휩쓸다
동맹 세력에서 적이 되기까지/ 상파뉴에 묻힐 뻔하다
04-7. 로마로 밀려드는 거센 물길
훈 대군을 퇴각시킨 주교/ 영웅의 몰락

05. 에필로그: 아틸라의 후예들-그 후의 이야기

부록1. 훈족은 흉노의 후예인가?/ 부록2. 흉노·훈 동족설/ 부록3. 흉노?훈 관련 연표/ 부록4. 묵돌 선우가 한나라 문제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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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 2019.07.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