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10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작게 삶으로 033 차림맛
"작게 삶으로 033 차림맛" 내용보기
작게 삶으로 033 차림맛     《요리의 길을 묻다, 로산진》 박영봉  진명출판사 2010.4.15.     밥하고 글쓰기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에서 살려낸 형용사를 다룬 책을 사서 읽어 보았지만 어쩐지 허술했다. 지난해 어느 글을 읽다가 궁금해서 《요리의 길을 묻다, 로산진》을 산 적이 있다. 지난해에 읽을 적에는, 요리책처럼 그림이 있어 슬쩍슬쩍 지나갔다.
"작게 삶으로 033 차림맛" 내용보기

작게 삶으로 033 차림맛

 

 

《요리의 길을 묻다, 로산진》

박영봉 

진명출판사

2010.4.15.

 

 

밥하고 글쓰기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에서 살려낸 형용사를 다룬 책을 사서 읽어 보았지만 어쩐지 허술했다. 지난해 어느 글을 읽다가 궁금해서 《요리의 길을 묻다, 로산진》을 산 적이 있다. 지난해에 읽을 적에는, 요리책처럼 그림이 있어 슬쩍슬쩍 지나갔다. 올해에는 좀 다르게 읽어 본다. 올해에는 그림은 건너뛰고 글만 곰곰이 새겨 본다.

 

어제는 짝꿍이 복숭아를 한 꾸러미 갖고 왔다. 겉은 말짱한데 깎으면 안이 검다. 가게에서 손님한테 팔 수는 없는 복숭아이다. 그렇지만, 먹어 보면 무르지 않고 복숭아맛이 부드럽고 달다. 다만, 겉으로 보기에 이미 썩어가는 빛깔 같아 입맛이 달아났다. 그냥 버리기에 아깝다고 여겨서 먹었다. 이튿날 배앓이를 했다.

 

복숭아 탓일까? 아니다. 복숭아 탓이 아니라, 탱주만 한 대추를 먹은 탓이라고 느낀다. 대추도 가게에서 시렁에 놓고 팔 수 없지만, 차마 버릴 수 없어 집으로 가져왔다.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속에는 벌레알이 서렸다. 이 대추를 꽤 먹었다. 그리고 묵은나물도 손질을 해서 먹었다. 나물도 가게에서 팔 수 없다고 느껴서 집으로 가져왔는데, 과일도 대추도 묵은나물도 조금 시들거나 썩어가는데 “아까워! 아까워!” 하면서 먹었다. 아무래도 이 말과 마음 탓에 배앓이를 했다고 느낀다.

 

배를 살살 달래고서 며칠 지난 이레 앞서를 생각해 본다. 벗님이랑 낮밥을 먹고 커피로 입가심을 하는데, 벗님이 도시락을 꺼내더라. 뭘 꺼내 궁금해서 들여다보았다. 잿빛 보자기를 풀자 유리그릇이 나온다. 뚜껑을 열자 바알갛게 물든 감잎으로 덮었다. 뭘까? 감잎을 자리에 하나씩 놓고서 포도를 꺼내 얹는다.

 

보기에도 예쁜 감잎이 포도를 담는 그릇이 된 셈이다. 포도를 많이 먹지 않고 몇 알만 먹었는데 어찌나 배가 부르고 상큼하던지. 포도빛과 감잎깔이 눈을 거쳐 온몸으로 스민 듯했다. 

 

《요리의 길을 묻다, 로산진》을 돌아본다. 이 책에 나오는 로산진은 ‘그릇은 요리의 반쪽’ 이라고 말했단다. 무엇을 먹든 제 숨결을 살려야 한다고 했단다. 맛있게 차린 밥이 아니라, 무엇이든 맛있게 먹어야 한다고 했단다. 이러면서 다달이 어느 밥이 싱그러운지 밝힌다. 1월에는 새우와 석이버섯, 2월에는 우렁이, 3월에는 송어와 유채, 4월에는 대싹(죽순), 5월에는 잉어, 6월에는 은어와 돔, 7월에는 장어, 8월에는 소면과 가지와 강낭콩, 9월에는 무화과, 10월에는 고등어와 토란, 11월에는 버섯과 시금치와 돔, 12월에는 게와 새우 요리를 들려준다. 저마다 다르게 자라나고 살아가는 숨결이라고 한다. 바다와 숲과 들에 다 다르게 깃든 숨결을 기쁘게 누릴 적에 몸에 이바지한단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가 궁금했다. 집밥(가정요리)에는 참다운 삶과 마음이 있다고 말했고, 밥차림에는 멋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로산진은 짝맺기(결혼)하고 헤어지기(이혼)를 다섯 판을 했단다. 느긋이 이어가는 보금자리가 아닌 나날이었다면, 이분한테 집밥이란 무엇이었을까?

 

가난해도 먹고, 가난하지 않아도 먹는다. 잔칫밥을 차려야 혀로 맛을 느끼지 않는다. 우리는 저마다 혀와 입과 몸을 품고서 태어났다. 나는 여태까지 어떤 밥을 먹었을까? 나는 이제까지 어떤 밥을 차려서 짝꿍하고 아이들하고 누렸을까? 나는 오늘까지 어떤 글을 읽고 썼을까? 더 좋은 밥을 넘보는 마음처럼, 더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굴레를 쓰지는 않았을까? 버리기 아깝다고 여겨 억지로 먹다가 배앓이를 하듯, 보기좋게 꾸미려다가 허울만 가득한 글을 쓰지는 않았을까?

 

벗님은 두런두런 수다를 떠는 자리에 감잎을 몇 깔았을 뿐이고, 포도알도 조금 놓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 감잎 포도알은 눈도 마음도 몸도 틔워 주었다. 내 글은 감잎과 포도알을 닮아 갈 수 있을까? 내 글은 억지로 입에 욱여넣다가 배앓이를 하는 과일을 닮지는 않았을까?

 

흙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과일과 나물은 스스럼없이 흙으로 돌려보내자. 나는 내 밥을 차려서 즐겁게 먹자. 나는 내 글에 내 삶을 사랑으로 담아서 즐겁게 하루를 누리자.

 

 

2023.09.23. 숲하루

 

 

#숲하루, #차림맛, #요리의길을묻다로산진, #박영봉, #진명출판사, #작게삶으로, #다시읽기

j******8 2023.10.2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책]로산진
"[책]로산진" 내용보기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魯山人)의 생애와 그의 작품을 소개한 책. 우리가 동경하고 이제는 세계의 미식을 끌어가는 일본의 음식세계를 정립하는 데 무엇보다 큰 역할을 한 사람. 서예가, 전각예술가, 도예가, 요리사, 미식가였던 한 사람의 파란만장하고 때로는 오만한, 때로는 비참한 인생역정은 자체로 많은 감동을 준다.   음식은 기본적으로 '맛'이라 생각했었지만 실은 기억과 관
"[책]로산진" 내용보기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魯山人)의 생애와 그의 작품을 소개한 책.

우리가 동경하고 이제는 세계의 미식을 끌어가는 일본의 음식세계를 정립하는 데 무엇보다 큰 역할을 한 사람. 서예가, 전각예술가, 도예가, 요리사, 미식가였던 한 사람의 파란만장하고 때로는 오만한, 때로는 비참한 인생역정은 자체로 많은 감동을 준다.

 

음식은 기본적으로 '맛'이라 생각했었지만 실은 기억과 관념에 의해서 사람이 느끼는 맛이 많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그릇이나 서버의 태도 등에도 세심한 배려를 했던 이 사람의 생애와 기예에서 배우는 바가 많다. 미식은 또한 감각의 지평을, 그에 따라 마음의 폭과 깊이를 더하는 길이기도 하니까.

e****h 2015.06.2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지극히 일본적인 한 천재의 생애
"지극히 일본적인 한 천재의 생애" 내용보기
내가 로산진의 이름을 처음 본것은 유명한 만화 '맛의 달인'을 읽으면서였다. 미식을 밝히면서 민물고기회를 너무 즐기다가 끝내 디스토마로 감염으로 죽었다는 에피소드를 보면서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구나 이런 생각이 첫인상이었다. 그후 맛의 달인의 주인공중에 한명인 우미하라 유우잔 (이 이름은 사실 오역이라한다. 실제 이름은 가이바라 유잔이라나? 여튼 가공의 인물이므로 만
"지극히 일본적인 한 천재의 생애" 내용보기

  내가 로산진의 이름을 처음 본것은 유명한 만화 '맛의 달인'을 읽으면서였다. 미식을 밝히면서 민물고기회를 너무 즐기다가 끝내 디스토마로 감염으로 죽었다는 에피소드를 보면서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구나 이런 생각이 첫인상이었다. 그후 맛의 달인의 주인공중에 한명인 우미하라 유우잔 (이 이름은 사실 오역이라한다. 실제 이름은 가이바라 유잔이라나? 여튼 가공의 인물이므로 만화 번역본의 이름을 먼저 적는다.)의 실제 모델이 바로 기타오지 로산진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되어 궁금함이 커졌던 차에 이 책이 출간되었기에 읽어 보았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사회로부터도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한 천재 소년의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순전히 독학으로 시작한 서예로 부터 나름 일가를 이룬 전각가가 미식의 세계에 눈을 뜨고 미식클럽을 운영하면서 성공과 부침을 겪는 과정과 이후 도예의 영역까지 확대된 예술세계의 진행 과정이며 쓸쓸하기 짝이 없는 초라한 노년과 죽음에 이르기 까지 한 인물의 생애를 다룬 평전으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음식과 관련해서 로산진의 업적이라면 현대 일본요리의 기본틀을 만들고 그 기본틀에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과 다양하면서 파격적인 레시피를 정립한것, 그리고 도예와 결합한 음식미학의 체계를 완성한 것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역시 도예가인지라 평소에 고민을 많이 해서 그런지 요리사이면서 음식철학자이기도 한 로산진의 모습을 잘 그려낸 것 같다.

 

  일본인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무사도의 정신을 한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나는 단연코 '일기일회 (一期一會)'를 꼽는다. 그리고 최고의 맛을 추구하는 로산진의 집념이 바로 그 일기일회의 정신이 음식과 요리에 투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식욕은 인간의 본능중에 하나이고 미식에 대한 열망은 본능에 뿌리를 둔 욕망이니 만큼 끊을 수 없는 유혹중에 하나이다. 그런 미식에 대한 욕망을 하나의 철학으로 승화시킨다는 것은 의미 붙이기 좋아하는 일본인이라 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책은 보기 편하게 되어 있다. 로산진의 레시피를 재현한 컬러 화보며 질 좋은 양장 장정도 맘에 들고 글자 간격도 넓고 활자의 크기도 큰편인데다가 어렵지 않고 간결한 문체는 읽는 맛을 더해준다. 그렇지만 역시 가격은 이러한 장점을 마냥 즐기기에 조금 부담스럽다. 더구나 매니악한 주제에 매니악한 인물이다보니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가격 따위에 구애 받지 않고 최상의 재료와 최상의 그릇만을 고집했던 로산진이 지금의 나를 보면 쫀쫀하다고 혀를 끌끌 차며 상종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0*****m 2010.05.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