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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1954년에 만든 <7인의 사무라이 七人の侍 / Seven Samurai>다. 흑백 영화이지만 컬러로 만든 영화를 뛰어넘는 즐거움을 주는 영화다.
가슴을 졸이게 하는 칼싸움과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뿌듯한 마음, 젊은이들의 애틋한 사랑, 힘 없는 이들의 고단한 삶, 자잘한 웃음거리 따위를 풍성하게 담아놓은 영화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일들을 모두 영화에 담아놓은 듯하다. 그것도 솜씨 좋게. 그래서 3시간 27분이나 보아야 하는 긴 영화지만 나한테는 하나도 지겹지 않았다.
영화는 크게 네 대목으로 나뉜다. (1) 보리를 베어 거두면 다시 나타나겠다며 산적들이 돌아간 다음부터 마을 사람들이 머리를 짜내고, (2) 마을을 지켜줄 칼잡이를 구하러 나가서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며, (3) 칼잡이 일곱을 데려와 산적들에 맞서 싸우려고 미리 챙기고, (4) 드디어 나타난 산적들과 한 판 싸움이 벌어진다.
할리우드에서 이 영화를 바탕으로 삼아 존 스터지스 감독이 1960년에 만든 영화가 <황야의 7인 The Magnificent Seven>이다. 칼잡이가 총잡이로 바뀌었으며, 율 브리너, 스티브 매퀸, 찰스 브론슨, 제임스 코번, 일라이 왈라치를 비롯한 이름난 배우들이 왕창 나왔다. 이 영화도 맛이 다르고 볼만한 영화지만, 아무래도 본디 작품을 뛰어넘을 수가 없다.
2. 16세기초 일본에서 산골 마을이 마음 놓고 살기엔 시절이 좋지 않았다. 작은 나라들이 싸우는 틈바구니에서 힘 없는 이들의 먹을거리와 아내와 딸들을 빼앗아가는 산적(노부시)들. 이들에게 농사꾼들이 어떻게 맞설 것인지...
"신은 우리가 다 죽기를 바라나 봐요. 가진 식량을 모두 산적한테 주고 목을 매답시다" 하는 아낙네도 있고, "대나무로 창을 만들어 싸웁시다" 더는 참지 못하겠다며 나서는 리키치(쯔치야 요시오) 같은 이도 있지만, "그건 안 돼. 산적과 싸우면 살아남지 못해" 하며 힘이 없으니 무릎을 꿇자는 사내도 있다. 답이 없다. 그래서 찾아간 마을 어른한테서 칼잡이(사무라이)를 사서 산적과 싸워야 한다고 말을 듣는다.
이 대목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기댈 데 없는 농투성이들의 아픔이 찌릿하게 와닿았다. 잘 살려고 애쓴다 해도 누군가 힘센 사람이 빼앗아 간다면 세상을 살 마음이 생기기가 어렵다. 그렇게 땀 흘리지 않은 이가 함부로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게 나라가, 앞장 선 이가 해줄 일일 테고...
마을 사람들이 산적들에게 맞서려면 칼잡이를 데려와야 한다는데까지는 말을 맞추었지만, 그 다음은 쉽지 않다. 칼잡이는 그냥 마구 대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다. 껄끄럽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그 때의 일본에선 칼잡이들이 농사꾼들보다 높은 사람들이다. 그들을 부리려면 돈을 많이 줘야 한다. 그런데 마을에 돈이 없으니 그저 재워주고 쌀밥만 먹여주어도 오는 칼잡이를 찾아야 한다. 게다가 걱정되는 일이 있다. 다 키운 딸이 있는 만조 같은 이는 어떤 칼잡이가 올지 걱정이 된다. 그래서 저들의 아내나 딸들을 건드리지 않을 좋은 사람들을 데려와야 한다. 내놓을 건 그리 없지만, 바라는 건 많고 걱정이 많은 산골 사람들이다.
3. 마을에선 리키치와 사내 셋을 뽑아 보낸다. 주막집에 짐을 풀고 도와줄 칼잡이를 찾아 나선다. 쌀밥밖에 줄 수 없지만 좀 도와달라는 마을 사람들에게 "내가 거지인 줄 알아..." 하며 성을 내는 칼잡이들. 그러니 어디서 칼싸움을 잘 하고 마음씨가 좋으며 돈을 바라지 않는 칼잡이를 찾을 수 있을까?
칼잡이 일곱 사람이 어떻게 모이는지를 밝혀놓은 꼭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돈은 안 되지만 같이 가는 사람을 보고 큐조나 코로베이가 무리에 끼게 될 때는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사나이다운 맛을 잘 보여준 대목이었다. 이 꼭지만 따로 봐도 좋을 만큼 한 편의 짧은 영화 같았다.
싸움에 이골이 난 시마다 칸베이(시무라 다카시)를 리키치 무리가 만나는 꼭지도 손에 땀이 나게 하지만, 내 눈에는 큐조(미야구치 세이지)가 나올 때가 더 가슴속에 박힌다. 칼잡이는 이런 사람이란 것을 보여준다. 싸움하자던 다른 사내와 대나무 막대기를 들고 싸우다 어깨를 먼저 때렸는데, 그 사내는 비겼다고 한다. 큐조는 "네가 졌어. 내가 이겼어. 칼이었으면 넌 죽었어" 하지만, 그 사내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시 칼을 들고 싸울 수밖에. 오른쪽 다리 옆으로 칼을 늘어뜨리고 빈틈을 보여주지만 한 칼에 쓰러뜨린다. 수가 다른 칼잡이인데 그걸 못 느끼는 어리석은 사내가 안타까울 뿐...
또 하야시와 헤이하치(치아키 미노루)도 눈길을 끌어갔다. 그냥 아무 집에 들어가 "돈이 없소. 밥을 주시오. 장작을 패주겠소" 하며 너스레를 떤 이다. 도끼로 장작을 패는 모습은 배우가 하는 게 아니라 많이 패어본 사람 같았다. 내리치면 장작이 딱 갈라졌다. 칸베이와 같이 산골로 가기로 한 카타야마 코로베이가 그 모습을 보고 "산적 30명을 죽이는 건 어때요?" 하며 묻자, 놀라서 도끼를 엉뚱한 나무에다 찍어버린다. 이 영화에서 실실 잘 웃긴 덕분에 그 뒤 같은 감독이 만든 <숨겨진 요새의 세 악인>에서도 돈벌이를 하러 싸움터에 나선 농사꾼 타헤이로 나오게 되고 그 솜씨를 숨김없이 다 보여준 듯하다.
옛날 칸베이 밑에서 싸웠던 시치로지(가토 다이스케), 아직 어른이 되려면 더 있어야 되므로 빼고 싶었지만 워낙 스스로 하고 싶어해서 끼워준 가츠시로(키무라 이사오)까지 이제 여섯 칼잡이를 모았다.
4. 칸베이는 동서남북을 맡아 지킬 네 사람과 여벌로 두 사람을 두고 저까지 하면 모두 일곱 사람을 생각했다. 같이 가게 된 건 모두 여섯 사람이다. 한 사람이 모자란다. 그런데 따라 오는 이가 있었다. 긴 칼을 들고서. 얼마나 칼잡이가 되고 싶었는지 칸베이한테 가짜 족보까지 갖고 와서 칼잡이라고 우겨댔지만, 그대로라면 열세 살이 되고마는 키쿠치요(미후네 도시로)다.
마을 사람들이 숨겨둔 것을 칼잡이들에게 들키게 되었을 때, 키쿠치요는 외친다. "교활한 짐승들이야. 농부들은...우린 쌀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하지. 마루밑이나 헛간을 파보면 쌀이나 소금 따위가 많이 나올 걸...농사꾼들은 인색하고 교활하고 야비하고 어리석다고요. 그런데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나요? 바로 당신들이요. 칼잡이들이라구요... 마을을 불태워버리고 아낙네들을 훔쳐가고...그러니 농사꾼들이 어떻게 하겠소?"
보리가 익어 마을 사람들이 거둘 때 아낙네의 엉덩이를 때리며 손에서 낫을 빼앗아 저도 보리를 벨 때나, 농사일에 쓰려고 요헤이가 키우던 늙은 말을 잡아타고 가다가 나중에 말을 쫓아갈 때나, 혼자 까불거리면서 산적들을 놀리다가 총소리에 놀라 달아날 때는 실실 웃게 한다. 코를 씰룩거리며 콧김을 낼 때나 입을 삐죽거리며 여러 가지 얼굴을 보여주는데 그가 아니면 보기 어려운 모습들이다. 그가 나타내는 모습을 보면서 타고났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온 이들이 모두 잘 어울리고 짜임새가 촘촘해서 어느 한 사람이나 한 대목만으로 기울지 않는 영화다. 그렇지만 키쿠치요로 나온 미후네 도시로가 없다면 보는 즐거움은 아마 반쯤 줄었을 것이다. 칼잡이들은 동그라미로 나타냈지만 칼잡이도 아니고 농사꾼도 아니어서 나중에 깃발에 세모로 나타낸다.
5. 감독은 어려운 때라 그런지 사내와 계집의 사랑을 좋게 끝내지 않았다. 칼잡이인 카츠시로는 사내지만 어려서 그런지 제게 다가온 사랑을 선뜻 잡지 못하고 두려워하지만, 농사꾼의 딸인 시노는 제 사랑에 과감히 몸을 던지는 이였는데, 감독은 끝내 엮어주지 않았다. 같은 신분이 아니라서 맺을 수 없는 사랑이었을까? 이럴 때 미조구치 겐지 감독은 영화 속에서 엮어주려 애썼는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아닌가 보다. 그래서 나로서는 못내 아쉽다. 요즈음 할리우드 영화였다면 끝을 잘 엮어냈을 텐데...
산적 때문에 이루지 못하는, 마을 젊은이 리키치의 사랑은 더욱 안타까웠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지 못하는 이는 애간장이 탈 듯한데 감독은 말 한 마디 없이 아낙네의 눈길에 모든 것을 담아 보여주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짝이었다.
감독이 보여주는 칼싸움은 나무랄 데가 없이 좋았다. 칸베이가 머리로 짜낸 작전에 따라 마을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은 다른 싸움들과 견줄 바가 못 되었다. 산적을 맞아 동서남북에서 싸움을 벌일 때 어느 곳이든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끝무렵의 비오는 날 싸움은 그 가운데 으뜸이었다. 비속에서 진흙과 물이 튀는 가운데 말을 타고 달려드는 산적들과 그들에게 덤벼드는 칼잡이와 마을 사람들. 그 동안 산적에 눌려 살았던 사람들이 죽기살기로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소름이 돋았다. 이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영화관에서 본 옛사람들은 모두가 손뼉을 치고 좋아했을 듯싶다.
영화를 떠나 현실에서도 그렇게 사람들이 똘똘 뭉쳐 싸우면 못 이룰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제 배를 먼저 채우려거나, 앞쪽에 나섰다가 겪게 될 어려움을 피하려고 뒷쪽으로 물러서거나 빠지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뭉치기가 어려울 따름이다.
무지렁이들도 뭉치면 이길 수 없었던 산적들도 물리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힘든 일이나 억울한 일, 못마땅한 일을 겪을 때 영화에서처럼 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풀어가라고 영화 속의 일들을 빗대서 감독이 말하는 것일까?
6. 감독의 손은 약손인가? 손길만 가면 깔끔해진다. 어느 대목이든 나오는 배우들의 연기는 나무랄 데가 없다. 칼잡이들이 산적 무리 가운데 한 사내를 사로잡았을 때 어떤 할머니가 괭이를 들고 나와 죽이려 할 때는 칼잡이들이나 보는 나로서도 그 할머니의 손길을 막을 수가 없게 꾸며놓았다. 산적과 싸우는데 처음으로 산적 하나한테 창을 찔러 죽인 농사꾼 요헤이의 놀란 얼굴도 잊혀지지 않는다.
칼잡이들이 오기에 앞서 제 딸을 사내처럼 보이게 하려고 딸이 머리를 감고 있을 때 뒤에 아버지인 만조가 나타나는 꼭지에선 그런 모습까지 짜놓은 감독의 머리에 그저 놀랄 따름이었다. 칼잡이들이 제가 지킬 곳을 맡을 농사꾼 무리들에게 싸움하는 법을 하나씩 가르치는 대목이나, 주막집에 진을 치고 놀던 다른 사내들이 농사꾼들을 비웃으며 하는 말들...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었다.
감독이야 돈보다는 좋은 일이나 옳은 일에 목숨을 건 칼잡이들을 그려내고 싶겠지만, 영화와 달리 칼잡이들이 제 목숨을 쌀밥과 바꿀 수 있을까 하는 물음도 생긴다. 영화 속에서 칸베이가 씁쓸하게 "이긴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농사꾼들이야..." 했듯이, 칼로 먹고 살지 않고 땅을 일구며 사는 이들이 이 땅의 임자라고 내세우는 말도 뒤집어 생각하면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잘 만든 영화에 엉뚱한 딴지를 걸어본다.
이런 영화에 별 다섯을 주지 않는다면, 어떤 영화도 주기 어려울 것이다. 말로 다 나타내지 못할 만큼 감독은 깊이 있고 쉽게 가슴에 와닿도록 영화를 만들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덕분에 이렇게 놀라운 영화를 구경할 수 있어 그저 고맙기만 하다.
나온 지 예순 해나 되어가는 오래 된 영화라서 디뷔디가 나오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두 장짜리 이 디뷔디는 좋다. 깔끔하게 다시 만들었다고 하는데, 흑백 화면이나 소리는 괜찮다. "알아듣기 쉬워야 좋은 영화"라 하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말도 들어 있으며, 석 달을 생각하고 찍었는데 한 해가 걸려서 여름을 나타내는 장면인데 2월에 찍어 무척 추웠다는 따위의 뒷얘기도 풍성하게 담았다.
또 여러 사람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를 써놓은, 56쪽짜리 작은 책자도 보기에 좋다. 그렇지만 마이클 젝이라는 이가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있는데 우리말로 나오지 않는다. 이런 것을 넣기로 했다면 제대로 보여줘야지...조금 아쉽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가운데 묶음으로 나온 것을 갖고 있는데 그 속에도 이 영화가 들어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좋은 영화를 따로 잘 만든 디뷔디로 갖고 싶어서 그 뒤에 이 디뷔디를 8,800원에 샀다. 이제 나오는 것은 4,900원이다. 값도 딱 좋다. 먼저 사는 게 장땡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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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는 명감독이다. 이 말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영화들을 만들어냈다. 특히나 그의 영화들 중에서 사극으로 분류할 수 있는 영화들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시간을 잊을 정도로 그 영화들은 지금도 몰입해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들이다. 분명히 일본 영화 특유의 연극적인 과장된 연기가 조금은 우리에게 낯설 수 있지만, 그러한 부분들까지도 사극이라는 부분을 통해서 잊게 만들어주는 영화들을 만들어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장점은 바로 그러한 부분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예술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작은 영화부터 스펙타클한 큰 영화까지를 구로사와 아키라는 만드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7인의 사무라이는 라쇼몽 이후에 제대로 마음을 먹고 스펙타클한 영화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리고 바로 이 영화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거미의 성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할 것이다. 흑백 영화에 지금 보기에는 살짝 어설프게 보이는 액션이 부족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 7인의 사무라이는 이후에 많은 영화들에 영향을 준 장면과 영화적인 진행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구성원들을 모으고 준비를 하고 치열한 대결 이후에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후의 영화들의 기본을 이 영화 7인의 사무라이는 잘 보여주고 있다. 일종의 교과서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 영화는 일본의 전국시대 이후의 늘어난 사무라이들과 그 사무라이들이 사실상 해체되는 과정에 보여주는 모습들이 바로 일본의 그 당시의 모습과 담아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7인의 사무라이는 2차대전 이후의 일본의 현실이 그대로 투영이 되어 있다. 정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모습이 이 영화에서 그대로 보여지는 것이다. 이 영화의 농민들이 스스로 자구책을 찾는 모습이 어쩌면 일본의 현대사와 닮아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로 마무리해 낸다. 바로 그것은 결국은 그 어떤 정부들의 존재와 상관이 없이 마지막에 살아남고 살아남으며 승리를 해야 하는 이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국민이며 시민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이야기를 한다. 사무라이들은 결국 대부분이 죽고, 살아남은 이들은 쓸쓸하게 그 마을을 떠난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여전히 삶을 이어가는 농민들의 모습이 존재한다. 모내기 노래를 하는 그들이 바로 이 영화의 진짜 승리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짓밟히고 무시를 당해도 결국 살아남아 마지막 승리를 하는 이들은 그 짓밟히던 민중이라는 것일 영화에서 구로사와 아키라는 잘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