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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소의 집적이 디지털 카메라의 가치로 직결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2006년 SCH-B600의 천만화소를 끝으로 카메라의 화소수를 높이는 경쟁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1000만 화소 이상의 기술을 구태여 사람들이 이용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이 원하지 않는 기술은 설 자리가 없다. 결국 변화는 사람이 주이며, 기술은 부라는 소리다. 김재연의 저서 <소셜 웹이다>에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 즉 사회적인 요소로서의 IT에 대해 논하고 있다. 기술이 아무리 급진전해도 인간의 삶에서 관계와 일의 방식과 무관한 변화라면 그것은 무의미하다는 저자의 논지는 아이폰이 우리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는 지금 이 시기와 맞물려 설득력 있게 전달되고 있다. 또한 사용자로서 혹은 제한된 지식인으로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네이버에서 한계를 느끼던 무기력한 나 자신이 왜 위키피디아에서는 능동적인 주체로서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생동감을 느끼는지에 대해 분석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간만에 열심히 줄을 쳐 가며 책을 읽었다. 다만 웹 2.0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인 만큼, 그것 자체의 가치가 덜 가시화 되어 있다. 이는 즉 웹 2.0의 가치는 아직까지 이것이라고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는 웹 2.0의 가치를 ‘상호 인정’에 근간을 두고 있다. 이로써 권력도 이윤도 없이 성립되는 관계와 참여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저자의 태도는 저자가 웹을 “소셜” 웹으로 인식하게 된 동기와 맞물려 있다. MIT에서 제공한 공개 강의가 저자가 IT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핵심이다. MIT에 등록금을 내지 않고도 MIT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웹이 가지고 있는 소셜함(저자의 논지를 더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저자의 요구처럼 사회적이라는 단어보다 social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에 있었다. 또한 아무런 사심 없이 강의를 제공한 MIT에 정치적인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저자가 공개 강의 운동을 준비했던 것 역시 돈을 바란 것에서도 정치적인 힘을 바란 것에서도 설명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바로 ‘좋아서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Back to the basic, 다시 웹 2.0의 초창기로 돌아가서 그 당시 상황을 보도록 하자. 저자의 설명처럼 “프로그래머들이 그냥 재미삼아, 그리고 서로 누가 더 괜찮은 프로그래머인지 경쟁하면서 만들다가 운영체제가 발전했다”는 것이 바로 리눅스의 시작과 발전이다. 공개 강의 운동을 준비했던 원동력이 바로 ‘좋아서 한다’로 설명할 수 있는 그의 순수함, 열정과 맥락을 함께한다. 그런 그가 웹을 볼 때 political web도 아니요, economic web도 아닌, 그 근본에 있는 social web을 포커스에 맞추고 보았던 건 당연한 일이다. 세상은 계속 바뀌고 있고, 웹 2.0의 발전은 계속해서 진행 중에 있다. 그 와중에 웹 2.0의 가장 초창기의 모습이자 가장 기본적인 모습을 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어제를 알아야 오늘을 분석하고 내일을 예측할 수 있는 것처럼, 초창기의 모습을 아는 것은 웹 2.0을 아는 것에서 핵심이 된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가장 본질적인 모습에서 파생되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화되고 이는 웹 2.0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점에서, 우린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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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품으로 받았기에 망정이지, 이런책 절대 돈주고 사면안된다. 내용도 학자들서적 인용해서 서술하고있으며, 문장도 매끄럽지 못하다. 무슨말을 하고싶어하는지 모르겠다. 문장이 문장을 만든다. 주제도 이리튀었다 저리튀었다한다. 일관성이 없다. 인터넷에 떠도는 단어를 조합하고, 학술용어를 섞어서 조잡하다. 저자에 지식과 경륜이 전혀 묻어나지 않는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슈를 활자로 만듯것 밖에 안된다.
한마디로 깊은이해없이 문장만 조합해서 쓴 쓰레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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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2.0, 구글, 위키피디아, 리눅스... . . . 웹에 대해 문외한이던 나도 한번쯤은 들어보아 익숙했던 말들. 무슨 말인지 뜻은 제대로 모르고 어렴풋한 감각의 의미만 가지고 젠 체 떠들어대는 사람들. 정작 무슨 말인지 조심스레 물어보면, 그것도 모르냐는 눈빛으로 한번 흘겨보기만 할 뿐 정작 본인도 구체적으로 설명은 못하던 사람들.
이 책은 웹을 넘어 사회적 네트워크, 즉 소셜 웹과 소셜 네트워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웹이 어떻게 발달, 진행되어 왔는지, 그리고 지금의 모습은 어떠한지, 그래서 왜 구글이 돈을 벌고 리눅스와 파이어폭스가 마이크로소프트보다 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한다. 또한, 젊은 저자는, 그 젊은 패기를 가지고, 소셜 웹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를 전한다. 웹은 소셜웹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실제로 어떻게 접목하여 쓰일 수 있는지, 그 청사진을, 정말 힘차고 젊은 시각으로 그려냈다. (물론 그 실현 가능성을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산술적 계산으로 풀어내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게 젊은 로망 아닌가? 신선하고 좋았다.)
정말 다방면으로 웹을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본인 스스로 블로터닷넷 등 웹 활동을 활발히 하는 모습도 당차 보였다. 재미있는 것은 저자가 인문학도라는 것. 그래서 이렇게 로맨틱한(?) IT적 발상을 할 수 있었나 싶다. 주장하는 바가 굉장히 이데아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달까. 책을 읽다보면 웹으로 못할 것이 없어 보인다. 물론 실제로 저자는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막무가내는 아니다. 웹을 칼에 비유하며, 칼은 잘 쓰면 유용하지만 못 쓰면 흉기가 되는 것처럼, 웹 또한 잘 쓰면 매우 유용하고 전 지구적 문제를 풀 단초로 기능하지만, 잘못 쓰면 정보 통제, 제한, 정부 및 대기업이 국민과 소비자에 대한 구속 등을 위한 도구로 오용될 수 있음도 지적하고 있다.
어쨌든, 웹의 w도 모르던 사람도 읽어서, 무언가 희망을 가지게 된 책.
인터넷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소셜 웹이 대체 뭔지, 앞으로 이 웹이란 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웹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대강이라도 어떨지, 웹을 사용하는 소비자로서의 자세는 어떠한 것인지, 등등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면 후회하진 않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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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IT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IT강국임을 자부하던 한국은 어느 순간 IT 우등생에서 낙제생으로 국제적으로 낙인 찍히게 되었다. 최근 우리 기업들이 뒤늦게 스마트폰의 경쟁력을 찾기 위해 홍역을 치르는 것은 뒤늦게 공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만학도의 몸부림 처럼 처절하게 보인다. 한국은 IT 강국이었던 적이 없다는 자조의 비아냥에는 우리가 왜 이런 문제에 직면하였는가 라는 문제의식이 담겨있다.
저자는 IT의 미래가 인간이고 문화고 사회라고 이야기 한다. 기술과 기계 중심으로 IT를 이해하던 기존의 패러다임을 넘어서, IT를 사회와 인간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IT의 변화, IT를 통한 사회 변화의 방향을 정확하게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 한다. 이렇듯 사회와 인간의 가치를 중시하는 IT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창출해 내는 웹을 만나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 나가게 된다. 이것이 저자가 이야기 하는 IT의 미래인 '소셜 웹'이다.
사람에 초점을 맞춰라 웹2.0 이라는 귀납적인 트렌드에서 이야기 하듯 웹은 '개방, 공유, 창조'로 대표되는 속성으로 소유의 독점이 아닌 분산에 핵심을 두고 있다. 이런 웹은 사람들에게 연결성을 부여하여 위키피디아, 리눅스와 같은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발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런 연결성은 앞으로 더욱 강화되어 나갈 것이다.
IT가 전기나 수도 처럼 자연스럽게 보급된 이런 토양에서 그간 20세기를 지배해온 '생산성의 혁명'의 비젼을 대체할 새로운 비젼이 등장하지 않을까? 저자는 이런 새로운 비젼을 인간의 본성에 기인한 '창조성의 혁명' 에서 찾는다. 저자는 책에서 '서울버스 애플리케이션 등'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창조성의 혁명을 방해하는 요인을 통찰하고 있다. 이에 대한 제안으로 시대를 반영한 상식이 통하는 사회적 틀을 갖추자고 말한다. 또한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소유권과 정보접근권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대안으로 Creative Commons Lisence를 제안하고 있다.
변화의 힌트와 가능성 사람에 초점을 맞추라. 말은 쉽다. 하지만 사람의 어떤 속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소셜웹'이 부각될 미래를 위한 적절한 혁신이 될 것인가? 친절하게도 저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례들 속에서 혁신을 위한 힌트를 안내해 주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유니클로, 구글. 업종은 다양하지만 '사람'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 앞으로 '소셜 웹'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 힘주어 말하고 있다.
또, '소셜웹'이 빈곤과 교육 문제의 해결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사회의 유통과 행정 등 거대한 시스템의 혁신 뿐만이 아니라 그 동안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사람들에게도 접근할 수 있는 인프라가 보여주는 가능성도 또한 재미난 시사점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참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IT전문가, 업계 종사자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인터넷 TV 등등의 출현을 보면서 어렴풋이 IT 때문에 세상이 뭔가 편해지는구나 하시는 분들께도 일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은 그런 분들께 IT, 즉, 소셜웹을 중심으로 한 변화 방향에 대한 명확한 관점을 제시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 관점이 옳고 그름은 더 두고 보아야 할 일이겠지만, 저자의 혜안은 격변하는 IT바다에서 표류하는 뗏목에 탄 난민 신세를 면하게 할 GPS가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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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a S/N: 16-FY13-March-3 너무 늙게 읽었나보다...
아무래도 TREND한 책이라 그런지 사례가 너무 오래되어 읽는데... 하아.. 괜히 읽었다는 생각이.... 인터넷이 또 웹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데..그래도 맥락은 변하지 않는다... [본문 중]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IT의 미래는 기술이 아니다.
IT의 미래는 인간이고, 문화고, 사회다.' '집단 지성은 온라인 이용자들의 네트워크를 통한 자동 지성이 아니다. 그것은 섬세하고 복잡한 지성이다. 여전히 인간의 조직에 대한 이해와 그 조직을 제대로 움직이기 위한 노력은 중요하다. 디지털이 그러한 이해와 노력까지 기계가 대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조직의 관리가 문제라면, 이러한 핵심 인력을 심는 것이 문제라면, 회사와 경영의 미래는 어떠할 것인가? 그들은 일반인들보다 이러한 경영 조직을 만들고 핵심 인력을 구축하는데 훨신 더 유리한 입장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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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셜 웹이란 용어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무엇인가 변화를 대표하는 새로운 개념이 나타난 것이 아닐까 귀를 반짝 하면서도, 또 하나의 실체 없는 마케팅버즈가 아닐까 의심도 한다. 언론이나 기업이 잠깐의 유행을 영속적인 패러다임처럼 이야기했던 것을 많이 보아 았으니 더욱 그렇다. 뻔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말이 지금 시대에 더욱 의미를 가지는 것은, 소셜 웹의 개방적 시스템으로 인해 다양한 참여의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 일방향적인 시스템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개 소비자에 불가했고, 시공간적 제한으로 인해 물질의 소유 도 독점구조에 기반하고 있었다. 하지만 쌍방향적인 소통으로 인해 다양성과 독립성이 가능해진 지금, 사람들은 소비자가 아닌 창조자가 되며 분산에 기반을 두고 있는 온라인 시스템은 더 많은 지식의 공유가 이루어지는 것을 가능하게 해 준다. 개방된 콘텐츠, 개방된 네트워크는 더 많은 참여를 이끌어 내며,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과 생각이 모여 한정된 소수 엘리트의 지식을 뛰어넘는 집단 지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런 창조성의 발현은 기존의 사회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소수의 소유물이었던 혁신이 이제는 네트워크를 통해 쉽게 만들어지고 전파되는 혁신의 대중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렇기에 소셜 웹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새로운 미디어가 생겼다는 차원 이상의 의미이다.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수평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평등하게 관계하며, 자신들의 창조성을 사회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창조와 협력도 아무데서나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그룹들과 아이디어가 있지만 실제로 성공하는 것은 여전히 소수이며, 모든 집단지성이 사회적 가치로 연결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 명확한 목표가 있는 비전과 진정성이 있는 리더십이다. 성공한 케이스로 불리는 리눅스나 구글, 위키피다아 등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재미든 발전이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러 일으킬 수 있는 주제가 공유되고, CEO의 이름이 아닌 목표의 달성에 중점을 둔 리더쉽이 있을 때 사람들은 그 곳에서 관계를 맺고 반응한다. 바로 이 때, 다양한 집단지성은 사회에서 실제적인 의미를 지니며 현재까지 확고한 기준이었던 경제적 부 이상의 명성과 신뢰라는 가치로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용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필요와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것이기에, 플랫폼이나 아키텍쳐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변화 속에서, 그 만족을 가져다 주는 것이 소셜 웹일 가능성은 분명히 높다 어찌 보면 지금은 패러다임의 변혁기이기에, 기존 패러다임에서 권력과 자본을 가진 조직들은 지금의 흐름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고, 그 가운데 불필요하고 시대에 거스르는 규제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한창 논란이 되었던 아이패드 도입 문제나 인터넷 본인실명제, 앱스 제한 등에서도 사례를 볼 수 있듯이 말이다. 저자는 이런 갈등을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비판하며, 기존 조직들도 이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문한다. 단지 새로운 툴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 문화를 이해하면서 말이다. 이 때 기존 조직과 네트워크 역시 새로운 변화와 보다 창의적이고 유기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이미 프로슈머나 체험단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업이든 정부든 시민들의 참여에 중요성을 조금씩 인식하고 있는 듯 하지만, 그것을 단지 이벤트성으로 보지 않고 컨텐츠의 알파라이징(최근 SK의 광고카피인)으로 접근할 때 더 많은 창조성의 혁신을 볼 수 있다. 기업 역시 더 이상 정보비대칭의 시대가 아니기에, 이제는 단순한 제품력 못지 않게 명성과 신뢰가 중요성을 두어야 한다. 소셜 웹 시대에는 기업도 인격체가 되어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며, 그것이 기업의 진정한 브랜드 가치로 인식되게 된다.. 책은 특별히 세상이 오랜 시간 맞다닥뜨렸지만 해결하지 못한 세상 여러 문제의 해결책으로서의 소셜 웹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저자의 경험담도 적지 않게 이야기하며, 올바른 금융 상품의 활용이나 빈곤 문제의 해결이나 교육 환경의 개선 등에 집단지성의 힘이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제3국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용한 기부금은 부패한 정부를 걸치다 보니 실제 목적에 맞게 쓰여지지 못한 경우도 많았고, 기부자들도 실제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핸드폰 등 소셜 웹의 툴을 통하면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조직들을 만날 수 있고, 사용처도 투명하게 확인할 수가 있기에 신뢰가 가능해진다. 또한 도움이 필요하거나 변화가 만들어진 직접적인 사연을 쉽게 접할 수 있기에, 애착 관계의 형성을 토한 더 많은 참여도 이끌어 온다. 하지만 그 소셜 웹의 가능성이 실제적으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소유자와 시헤자의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책의 문장 그대로를 인용하면, ‘변화의 주체를 그들을 제외한 채 우리로만 한정시킨다면 빈곤 문제의 해결을 요원하다’. 그들을 단순히 구제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창조자요 기업 입장에서는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시장의 수요자로 패러다임을 가질 때 분명한 목적 속에 참여가 이루어 질 수 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읽으며 가장 크게 느꼈던 점이었기에, 동일한 입장을 가진 저자를 신뢰할 수 있는 구절이었으며, 소셜 웹의 방향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처럼 소셜 웹의 오픈 컬쳐 문화를 통해 저자가 바라는 비전은 ‘평범한 사람도 탁월하게 공헌할 수 있는 세상’이다. 학제간 연구나 복잡계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통섭이 창발성에 주목하는 것에서 그 분야에 속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초반에 IT가 사회요 문화라는 것에서 강조했듯이, 본질적인 사람과 관계에 대한 명확한 이해 없이는 소셜 웹이 이런 역할을 하기가 힘들다. 기존의 상업화된 자본주의의 폐해들이 웹상에서 여전히 기승을 보일 때, 사람들은 창조성과 변화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그 소중한 공간을 넘겨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안타까움이 현실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책은 방어와 공격을 이야기한다. 방어는 힘과 돈의 집중이라는 현실 세계의 시스템이, 분산을 통해 지식과 정보의 저장/처리/전달을 효과적으로 해내는 인터넷의 속성을 깨뜨리지 않는 것이라면, 공격은 창조성의 혁명을 통해 대규모 협업의 역동적이고 유기적인 성장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나가는 것이다. 바로 이 때, 우리는 소셜 웹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고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지속적으로 트렌드와 본질의 균형을 이야기한다. 기술의 발달이 트렌드라면, 그것을 실제적으로 활용하고 만들어 나가는 인간의 사회와 문화는 본질이다. 물론 트렌드가 본질의 변화를 촉발할 수도 있겠지만, 본질이 트렌드의 창조적 수용을 막아 공허한 외침으로 만들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잘못된 원인을 보지 못하는 눈가리개의 역할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렇기에 웹을 사회문화적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두 말 할 것 없이 동감한다. 하지만 읽다 보면 주장과는 달리 새로운 트렌드를 우선시하는 느낌을 지우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지금 한국사회 이해 조정자들이 가진 고루한 인식에는 나도 동의하지만, 어찌되었든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 그들인 것도 사실이다. 물론 부작용이 문제가 되어 가능성 자체를 막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그들 역시 추세가 이것이다 무턱대고 열여 주었다가 생기는 부작용을 조심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긴 하다. 패러다임 시프트의 과정에 있다면, 분명할 것은 분명하되 조금 더 너그러운 입장을 가질 필요도 있지 않을까? 약간의 딴지를 걸기도 했지만, 추천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저자가 단순히 지적 탐구를 넘어 실천적인 참여와 도전을 하고 있기에 신뢰하며 책의 내용에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1판 1쇄를 읽어서 그런지 정리되지 않은 다수의 비문과 종종 앞뒤가 많지 않은 글들이 내용 이해를 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조금 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전달해 주어, 소셜 웹의 가능성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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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인터넷이 도입되었을 무렵이 떠오른다. 파란 VT 화면에 길들여진 나는 컴퓨터 통신이란 것을 하면서도 동시에 전화 통화에 지장을 받지 않는 시스템이 있다는 것 자체에 일차적으로 놀랐고, 어마어마한 전화비를 감당하지 않아도 그 전보다 더욱 긴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었다. 이 낯선 시스템으로 대학에 입학해 첫 수강신청을 했고 전공 과목 리포트를 작성하며 수없이 많은 자료들을 찾았으니, 만일 인터넷이 없었더라면 내 삶이 과연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또 다른 현상이 최근 들어 발생했다. 카페를 만들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블로그를 통해 제 자신을 드러냈던 이들이, 이제까지와 조금은 다른 속성을 지닌 매체들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으로 대표되는 소셜 웹이 바로 그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글을 올려도 무방하다는 점만 놓고 보자면 과거와 무엇이 달라졌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멘션에 공감한 이들이 혹은 함께 나누어야겠다 마음 먹은 이들이 존재하는가 여부에 따라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내가 뱉은 말을 공유하게 된다는 점은 놀랍기 짝이 없다. 소셜 웹이 가진 힘은 잠재력 차원이 아니다. 어려운 사정에 놓인 이들이 네티즌들의 합동 속에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에 눈을 떴다. 과거 같았으면 비슷한 어려움을 겪은 이들을 모으다 지쳐 떨어졌겠지만 이제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도 부조리한 기업의 행패에 맞서기 위한 힘을 결집하기도 한다. 소통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변화한 것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다름 아닌 기술 분야이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그러했지만 지금도 ‘웹 2.0’이라는 용어와 더불어 그에 관한 어마어마한 관심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물론 기술이 달라졌다는 점도 중요는 하다. 이와 같은 기술에서 선순위에 설 수 있다면 경쟁에서 얼마나 유리하겠는가? 그렇지만 대부분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고 저자는 말했다. 바로 기술에 담긴 콘텐츠가 바로 그것이다. 너도나도 시도하고 있는 웹2.0이 모든 이를 성공으로 이끌진 않는다. 언론이, 정부가 웹2.0 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놓치고 있는 것은 성공요인이 웹2.0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사람’이라는 점이다. 어떠한 정보를 어떻게 생산하고 유통시키느냐를 결정하는 건 다름 아닌 사람이다. 물론 과거에도 이는 그랬다. 하지만 정보의 유통에 전형적인 방향이 있었고, 주체 역시 고정된 형태를 띠었던 과거에 비해 현재는 이 모든 것이 유동적으로 변화했다. 나 자신도 정보를 창조할 수 있다. 내가 정보를 생산하는 주체임과 동시에 소비하는 객체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정보를 소비함으로써 또 다른 정보의 생산마저 이끌어낼 수 있다. 모든 게 이리 변화하고 있는데, 과거 한때 만들었으며 이제껏 의존해왔던 법칙만을 따르는 건 아니된다. 안쓰럽게도 우리의 정부가, 많은 고전적인 주체들이 이러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사람들이 지닌 창조성을 억누른 채 소수에게만 창작열을 허락하는, 조금은 다른 형태의 폭력은 세계 수위를 다툰다는 기만적인 수치에 의해 이제껏 잘 가려져 왔다. 그렇지만 번지르르한 겉모습이 내실 있는 속까지 보장해주진 않는다. 자화자찬을 이젠 거두고 무엇이 문제인지,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지에 귀를 기울여야 할 시점이라 하겠다. . 리눅스는 전설이었고, 위키피디아는 신화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유형의 소통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소셜웹은 전설이나 신화 아닌 생존을 위한 방편이 될 것이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수시로 블로그, 미니홈피 뿐만 아니라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따위를 접속하는 나는 어찌 보면 이러한 변화에 잘 적응한 인간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워낙에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이다 보니 소셜 웹이 가져다 줄 획기적인 미래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사실 난 자신이 없다. 여러분은 이 화끈한 변화에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생각하는지, 문득 묻고파진다. 조난 당하지 아니하려면 지금부터 바삐 움직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