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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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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에 두 명의 젊은 여자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이들은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히치하이크를 하기로 한다. 두 명의 젊은 여자를 태운 차는 떠나가고 그날밤 그 중의 한 여자가 죽은 채 발견된다. 경찰에서는 여자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같이 있었던 여자를 찾는데 그 여자는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추리소설로서의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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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에 두 명의 젊은 여자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이들은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히치하이크를 하기로 한다. 두 명의 젊은 여자를 태운 차는 떠나가고 그날밤 그 중의 한 여자가 죽은 채 발견된다. 경찰에서는 여자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같이 있었던 여자를 찾는데 그 여자는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추리소설로서의 재미는 평이한 수준이다. 지루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긴장감 넘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무난하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경찰이다. 주인공은 여느 천재 탐정들과는 달리 억측을 하기도 하고, 고집을 부리기도 하고, 이런저런 가설들을 세우며 사건을 해결한다. 그런 평범한(?) 탐정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이 책의 재미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가지 흠은 전개가 너무 산만하다는 것고 결말을 너무 성급하게 내린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무난하게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이다.
d******w 2003.08.0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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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ooden, hoarse narr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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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서는 리뷰를 쓰지 않으려 했다. 나는 4년 전에 이 책을 읽었고, 그 행위는 실패였다. 실패라는 건 뭘 말하느냐면, 1) 읽고 난 후 작가와의 속 깊은 대화에서 획득한 그 무언가에 의한 내면의 뿌듯함, 2) 객관적, 평균적 독자가 이 책에서 얻는 소득과 나의 그것과의 키재기, 벤치마킹, - 이 두 가지 면에서의 사후 피드백 과정을 거친 후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게 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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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서는 리뷰를 쓰지 않으려 했다. 나는 4년 전에 이 책을 읽었고, 그 행위는 실패였다.


실패라는 건 뭘 말하느냐면, 1) 읽고 난 후 작가와의 속 깊은 대화에서 획득한 그 무언가에 의한 내면의 뿌듯함, 2) 객관적, 평균적 독자가 이 책에서 얻는 소득과 나의 그것과의 키재기, 벤치마킹, - 이 두 가지 면에서의 사후 피드백 과정을 거친 후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게 나온 사실을 뜻한다. 1)은 간단히, 책 읽고 나서 얼마나 그 감동의 물결이 마음 속에서 파도를 치느냐이고, 순전히 자신만의 내밀하고 정직한 기쁨이라 그 측정은 과정이나 결과 모두 분명하고 쉬운 일이지만, 2)는 사정이 좀 다르다. 2)는 예전 같으면 주변에 좋은 친구나 스승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요즘엔 인터넷이란 마법의 지니가 (별 감사의 인사도 받지 않은채)주변에 편재, 상주하고 있는 실정이라서, 나보다 나은 사람(혹 있다면), 혹은 앞선 시대의 선학들이 어떤 반응을 이 책을 읽고 보이느냐를, 그리 큰 힘 들이지 않고 접할 수 있는 세상1)이다.

1)이 부실하거나 석연찮으면, 2)의 프로세스를 한번 신경써서 행할 필요가 있다. 내가 잘못 읽은 건 아닌가, 내가 혹 놓치고 지나간 부분은 없는가, 다른 사람들은 이런이런 부분을 지적하고 감동받거나 비판하는데 나에게 그 점이 와 닿지 않았다면 이유는 무엇이고, '인위적으로라도' 알았다면 내면의 인테리어에 한 피처로 끼워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 이런 과정에서 단지 한 권의 책이 문제가 아니라 내 인성에의 통찰과 깨달음까지 이어질 수 있는, 그런 독서가 진정 의의 있는 것이고, 따라서 그건 이미 일개 책 읽는 행위(경우에 따라 된장질이 될 수 있는)를 넘어 삶의 도야, 수양이 된다 할 수 있다.

-추리소설 한 권으로 도를 논하다? 떼끼!  -흠, 그럴까? 그렇기만 할까? 길에 지나가는 세 사람의 정의역에서도 스승이라는 함숫값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게 공부자의 가르침인데, 정평 있는 고전의 경우라면 마음이 열려 있건대 차라리 득도인들 어려울까? 그게 안 되는 것은 다 나의 탓이고, 내가 무지하고 미망에 사로잡힌 까닭일 뿐이다. 아담 스미스의 따분한 <도덕감정론>을 읽으니 차라리, 인간 욕망과 사랑, 머리굴림과 재치대결, 치부와 고아함이 고스란히 만화경, 압축판으로 드러나는 추리소설을 파는 편이, 점수를 생략한 돈오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대박에의 엉뚱한 첩경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에는 역자 문영호씨처럼 현명하시고 박식한 프로페셔널도 포함되어 있는데, 내가 읽고 난 감회가 영 아니올시다라면, 그건 내가 부실하게 읽은 탓에 뭘 놓쳐도 단단히 놓친 이유 아닌가 이 말이다. 그래서 휴일 오후 샤워하다 미끄러져 나가지 못하고 자리에 누운 기회에 다시 읽은 이 책과의 조우는, 지금껏 수없이 나를 비껴갔던 만만찮은 defiant runner 중 하나와의 설욕전, 리턴 매치라고 할 수 있었다. 얻어맞아도 좋으니, 내 눈을 틔워달라는 갈구가, 날  갈구려고 재차 날을 세우는 그 대상을 향한 열띤 시선에 서려 있었다.

나는 완독 후 노 게임을, 심판을 대신해서 선언해 버렸다. 정상적인 상황이면 퇴장에 10게임 출전 정지를 먹었을 만도 하다. 그러나 이건 일종의 Notwehr, 긴급피난이라고나 해야 한다, 이유는,..

첫째, 역자 문선생의 지적처럼 반복되는 가설 구축과 도괴, 재구축과 '감사(監査)', 그리고 이루어지는 최종 완성도면과 그에 이어지는 건축(이런 멋진 표현은 역자가 쓰고 있는 게 아니고 내가 재각색한 것임. 문선생의 문장은 부정확하고 답답함. 공대 출신의 숙명적 한계임)은, 과연 현실의 경찰수사와 형사기소에 근사하다는 점에서 리얼리즘의 추구일 수 있고, 사이먼 교수의 말처럼 제한된 합리성의 제약 하에 얻어지는 만족모형 모델의 소설적 반영일 수도 있다(미치겠군, 예스 리뷰 따위에 학위논문을 쓰고 있는 건가, 나?). 허나 우리가 크라임 노블을 읽으면서 원하는 건 압축된 진실이지, 다큐멘터리의 번거로운 사실 나열도 아니고, 제임스 조이스 식의 '의식의 흐름'도 아니다. 최소한 추리소설의 독자는 <수사반장>의 시청자와는 그 니드가 다른 법이다. 과연, 과연 인스펙터 모스는 브라운관으로 옮겨져 지난 시절 영국의 많은 안방의 관객을 사로잡았는지 모르지만, 더 콤팩트하고 더 완성된 논리와 템포에 익숙한 독자에게만은, 그저 거북하고 데퉁맞으며 굼뜬 줄반장에 불과한 것 아닌가 이 말이다. 왜 경감은 지켜보는 독자가 한 눈에 파악한 숏컷을 눈에 빤히 두고 구태여 험한 산길을 택해 썩어가는 시신일랑 안중에 없다는 듯 꽃구경(꼴에 여자는 죽어라 밝힘)과 잘하지도 못하는 시조에 장타령(말은 또 드럽게 많음)에만 정신이 팔리는가? 그런 가당치 않은 여유는 홈즈나 뤼팽이라고 해도 팬이 다 떨어져나갈 삽질이다.
들째, 번역이 나쁘다. 드디어 범인이 밝혀지는 그 대목, 유난히 대명사 she가 자주 반복되는 건 어차피 이 소설 자체가 '그녀'를 찾는 이야기이므로 어쩔 수 없다고는 하나(또, 원문에서야 그게 하나의 기교이다) 이걸 한국어로 옮긴 부분이란 끔찍하기 그지없다. 오, 오!

제 3독은 없다. 아, 우드스톡은 우드스톡 페스티발하고 아무 상관 없고, 영국의 지방명이다.

1) 넓은 세상을 접하지 않고 애써 거부하며, 인터넷에서 아바타 꾸미기에 제 영혼과 시간을 올인하는 찌질이들의 경우, 2)의 사항을 자신의 역량 연마에 결부하는 게 아니라, 1)의 부실함을 외부에 가장하고 과장하여 요란하게 떠벌이는 데에 수단으로 활용한다. 넷상의 아바타가 실상에 반비례하여 역겨운 분칠을 더해갈수록, 그에 비례하여 영혼은 그 치유블능으로 괴저한다. 하긴 꼭 이 유형이 아니더라도, 책을 읽었답시고 적은 독후감에 해당 책과는 별 관계도 없는 구질구질한 신세타령을 늘어놓거나, 어디서 엉터리로 주워 읽은 지식이 제 돌대가리에 오타와 오독, 곡해와 노망, 알콜 중독의 후유증일 견강부회의 낭설 등이 구제불능으로 결합한 헛소리를 지껄인다거나, 영화 리뷰를 적는다면서 스토리 스포일링에 되지도 않은 제 추임새까지 삽입하여 데이케어센터나 정신요양원에나 가야 접할 수 있는 희대의 코미디를 퍼포먼스한다거나, 이 3종 세트를 예스에선 두루 구경할 수 있다는 게 희한하다.

s****o 2011.04.19. 신고 공감 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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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와 위스키를 좋아했던 옥스퍼드의 형사
"담배와 위스키를 좋아했던 옥스퍼드의 형사" 내용보기
콜린 덱스터 <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   “왜 모스 경감을 죽였습니까?”   “내가 죽인게 아닙니다. 모스는 자연사한 것입니다. 평생동안 담배와 위스키를 입에 달고 살다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나쁜 생활습관 때문에 장기적으로 건강이 나빠졌고, 그가 그렇게 찾아가기 싫어하던 병원의 의사들 만큼이나 자신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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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덱스터 <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

 

“왜 모스 경감을 죽였습니까?”

 

“내가 죽인게 아닙니다. 모스는 자연사한 것입니다. 평생동안 담배와 위스키를 입에 달고 살다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나쁜 생활습관 때문에 장기적으로 건강이 나빠졌고, 그가 그렇게 찾아가기 싫어하던 병원의 의사들 만큼이나 자신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모스 경감을 창조했던 영국 작가 콜린 덱스터(1930 ~ )는 오토 펜즐러가 엮은 책 <라인업> (2011년 랜덤하우스 발간)에서 위와 같이 밝히고 있다.

 

동일한 인물이 계속 등장하는 시리즈 물을 읽다보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궁금증이 생긴다. ‘이 시리즈가 과연 어떻게 끝날까’하는 호기심이 드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것은 작가 자신에게도 의문거리일 것이다.

 

시리즈를 어떻게 끝낼까 하는 것은 그 주인공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할지의 문제다. 현역에서 은퇴시킬 수도 있고, 스스로 직장을 걷어차고 나오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이도저도 아니면 더 이상의 집필없이 흐지부지 끝낼 수도 있겠다.

 

콜린 덱스터는 주인공인 모스 경감을 사망시키면서 이 문제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이전에 애거서 크리스티도 <커튼>에서 자신의 탐정 에르큘 포와로를 사망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옥스퍼드에서 활동하는 주임 경감 모스

 

모스 경감은 1975년에 발표된 <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에 처음으로 등장한 후에, 1999년 13번째 작품인 <The Remorseful Day>(국내 미출간)에서 당뇨 합병증으로 병원에서 사망한다. 콜린 덱스터도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자신이 창조하고 키워낸 캐릭터가 죽는 모습을 봐야 했으니.

 

콜린 덱스터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도중에 모스 경감이 등장하는 범죄소설을 구상했다. 차분하고 지적이면서 주먹보다는 머리를 쓰는 형사가 나오는 소설을 원하고 있었다. 1973년 8월의 어느날, 그는 노트 한 권과 볼펜 한 자루를 들고 부엌에 틀어박혀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구체적으로 뭘 써야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나도 남들처럼 잘 쓸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은 목표가 아니었다. 이미 대학교에서 넉넉한 월급을 받고 있었으니까. 일종의 허영심 때문인지 그냥 범죄소설의 표지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독자들이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즐거워하길 바랐다.

 

결론적으로 콜린 덱스터는 이 모든 것을 이루었다. 돈도 벌고 유명해지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즐거워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완성된 소설이 모스 경감이 등장하는 첫 번째 장편 <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다. 어둠이 깔리는 옥스퍼드에서 두 여학생이 우드스톡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오지않는 버스. 여학생들은 히치하이킹을 결심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결국 다음날 한 여학생이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다른 여학생의 행방은 묘연하다. 모스 경감은 동료와 함께 이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에서 모스 경감은 그의 파트너이자 부하인 루이스를 만나게 된다. 이때부터 이들은 수많은 사건들을 함께 해결한다. 파트너이지만 마치 아버지와 아들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그런 관계를 보인다. 이 작품에서 모스 경감은 50세가 넘은 나이의 독신으로 등장한다.

 

인터뷰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스 경감은 술을 좋아한다. 아침이건 저녁이건 가리지 않고 술을 마신다. ‘액체로 된 음식을 먹는 것이 두뇌활동에 좋다네’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루에 필요한 열량의 대부분을 술로 섭취할 정도다.

 

시리즈의 9번째 편인 <옥스퍼드 운하 살인>에서는 술 때문에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한다. 그래도 루이스를 시켜서 술을 반입해와서 병실에서 밤마다 그 술을 홀짝 홀짝 마신다. 모스 경감의 상사는 ‘자네가 술집에서 낭비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있나’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옥스퍼드 경찰청에서 해고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만큼 사건 수사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20년이 넘게 활동하고 사망한 형사

 

콜린 덱스터가 옥스퍼드 대학에서 근무했기 때문일지 몰라도, 이 시리즈의 대부분은 런던에서 1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옥스퍼드를 배경으로 한다. 콜린 덱스터도 인터뷰에서 옥스퍼드를 영국의 살인 수도로 만들었을까봐 걱정했다고 한다.

 

그런 걱정과는 달리 작품에서는 옥스퍼드의 풍경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오래전에 앤 여왕이 지은 블레넘 궁전에는 여름에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대로에 늘어선 잿빛 집들은 각자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개조되어서 선물과 골동품, 기념품을 파는 가게로 바뀌었다. 술집에서는 축구경기를 보면서 흥겹게 술을 마시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콜린 덱스터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옥스퍼드를 간접적으로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다.

 

콜린 덱스터는 모스 경감 시리즈로 많은 상을 받았다. 영국범죄소설작가협회에서 수여하는 골드 대거 상을 받았고, 다이아몬드 대거 상도 수상했다. 동시에 모스 경감 시리즈는 TV 드라마로 제작되어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도 콜린 덱스터는 모스 경감을 무대에서 퇴장시켰다. 콜린 덱스터는 이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자신의 건강도 나빠지고 있고, 나이가 들어서도 좋은 작품을 계속 발표할 자신이 없었다고. 그리고 모스에 관해서도 하고싶은 이야기는 다 했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탐정이 사라진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t****o 2016.01.14.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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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는 모스 경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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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운하 사건을 읽고 너무나 즐거워져, 아끼고 아끼다가 드디어 '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를 읽었다. 시리즈의 여덟번째라는 '옥스퍼드 운하사건'을 읽을때는 그저 중년의 성깔나쁜 경감과 충직하고 순진한 부하직원(물론 루이스를 말하는거다) 로만 봤었는데, 역시 첫작품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우선 루이스가 부하직원인건 맞는데, 모스경감보다 나이가 몇살 더 많다!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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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운하 사건을 읽고 너무나 즐거워져, 아끼고 아끼다가 드디어 '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를 읽었다. 시리즈의 여덟번째라는 '옥스퍼드 운하사건'을 읽을때는 그저 중년의 성깔나쁜 경감과 충직하고 순진한 부하직원(물론 루이스를 말하는거다) 로만 봤었는데, 역시 첫작품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우선 루이스가 부하직원인건 맞는데, 모스경감보다 나이가 몇살 더 많다! 그리고 모스경감은 그저 예쁜 여자를 보면 좋아하는 휴머니스트(?)라고 생각했는데,이건... 밝히는 것에 가깝다고 감히 말하겠다. 그렇다고 그것이 모스 경감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지만서도.

 

이 책은 의외로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 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다.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모스경감의 직관에 의한 추리- 무너짐 - 다시 또 추리 - 또 무너짐을 쫓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옮긴이의 말처럼 두번, 세번 읽어야, 그 치밀한 논리의 그물에 감탄할 수 있는 것일까? 아무튼 읽을 책이 산처럼 바다처럼 많은 나로서는 언제야 그 감탄의 기회가 찾아올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머리나쁜 독자 나름대로 재미있게 독파했으니, 지금은 그걸로 만족하련다.

 

여자가 피살되어 술집 주차장에서 발견되었다. 발견당시 그녀의 웃옷은 찢겨져 있었으며 강간의 흔적이 있었다. 그녀는 다른 한 여자와 함께 살해되던날 히치하이크를 했었다. 다른 한 여자는 사라지고, 그녀를 죽인 살인범을 찾는것도 쉽지 않다. 너무 많은 단서들이 치밀하게 결합되서 독자에게 주어지고, 머리가 무지 좋은 모스경감의 직관을 쫓아가기에는 심히 버거우나, 책에서도 역시나 모스경감을 버거워하는 루이스에 감정이입하면서 점점 사건에 몰입하게 된다.

 

아직까지 이해안가는건, 책 제목이 왜 '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인걸까? 하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남겨놓고 있는 걸 보면 내가 이 책을 과연 제대로 읽었는지 의문이 가긴 한다.


r*****n 2007.11.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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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가 아무리 반복되어도 좌절은 없다, 사건의 재재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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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와 맥주를 좋아하고, 크로스워드 퍼즐을 좋아하는 (크로스워드퍼즐을 좋아하는 덱스터가 퍼즐 챔피언인 Sir Jeremy Morse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고 한다) 모스 경감. 옥스포드 졸업생이지만 그다지 지적이지도 않고, 카리스마가 있어 용의자를 압도하지도 못하고 여자에게도 약한데다 어린애같이 심통을 부리기도 하지만 ("미스 위도슨 있으면 부탁합니다." "예, 있어요. 누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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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와 맥주를 좋아하고, 크로스워드 퍼즐을 좋아하는 (크로스워드퍼즐을 좋아하는 덱스터가 퍼즐 챔피언인 Sir Jeremy Morse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고 한다) 모스 경감. 옥스포드 졸업생이지만 그다지 지적이지도 않고, 카리스마가 있어 용의자를 압도하지도 못하고 여자에게도 약한데다 어린애같이 심통을 부리기도 하지만 ("미스 위도슨 있으면 부탁합니다." "예, 있어요. 누구시죠?" "학교때 친구입니다" 모스답지 않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모스 경감님." "수! 수우! 학교때 친구한테 전화!" p.165 수화기를 들었지만 누구하고도 말할 기분이 아니었다 "나 없어. 벌써 집에 갔어" p.215), 한번 불붙으면 열정적으로 일하면서 실수에 좌절하지 않고 부단히 사건의 재구성와 실패를 반복하면서 마침내 범인을 잡는 모습은 은근한 매력과 책읽기의 즐거움을 준다 (p116-119에 걸친, 사건 가설에 대한 독백은 귀엽기까지 하다). 게다가 진득하니 경감을 따라 수사를 하는 차분한 루이스 부장형사도 너무 귀엽다 ("자네도 상당히 머리가 좋은 편이야, 루이스" 루이스는 가슴을 펴고 심호흡을 흐며, 자신의 지적 능력이 평가절하되지 않도록 애썼다. p.122 "굉장해!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결과야. 루이스, 자네는 천재야!" 루이스는 찬사에 감사하며, 자신의 어디가 천재냐고 물었다. p.123 "그래서, 그는 에-, 그는 에-" 그린박사 흉내를 내는 루이스, p236) 콜린 텍스터의 첫번째 작품인 이 소설은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는 타이피스트가 히치하이크를 한 뒤 술집 주차장에서 시체로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같이 차를 얻어탔던 사람이나 운전자는 행방이 묘연한데, 의심이 가는 실비아 양은 모스 경감의 엄포에 뻣뻣하고 그녀의 룸메이트 수에게는 애정이 향한다. 대학강사 버나드의 혼외정사 등 사람들의 어지러운 관계 속에 진실과 거짓이 섞여 수사에 혼선을 준다. 모스 경감은 수에 대한 애정과 질투, 계속되는 가설의 실패 속에 꿋꿋하게 수사를 해나가는데....
YES마니아 : 플래티넘 k*****k 2005.01.2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