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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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흄의 논고이다. '고전의 세계'라는 책세상이 미는 시리즈 중의 한권인데 학교서점에서 20% 세일하길래 충동구매한 책이다.   그는 기적을 경험으로서 체득한 일련의 자연 법칙에 위반되는 것이며 정의상으로 기적에 반하는 현실의 증거가 더 많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는 것다고 주장한다. 기적을 중심축으로 형성된 '종교'에 대한 비판으로서 이 글을 썼으며 당대 수많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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흄의 논고이다.

'고전의 세계'라는 책세상이 미는 시리즈 중의 한권인데

학교서점에서 20% 세일하길래 충동구매한 책이다.

 

그는 기적을 경험으로서 체득한 일련의 자연 법칙에 위반되는 것이며

정의상으로 기적에 반하는 현실의 증거가 더 많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는 것다고 주장한다.

기적을 중심축으로 형성된 '종교'에 대한 비판으로서 이 글을 썼으며

당대 수많은 이들의 비판에 직면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이글을 논박하는 이들의 글도 두 편 올라와있다.

 

나는 흄을 지지한다.

이 글들을 보며 느낀 점은 누차 말해왔듯이 신념에 근거한 입장의 차이는 좁힐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종교적 문제는 손댈 수 없다.

흄 또한 종교를 형성하는 것의 기본 축이 바로 믿음, 신앙이라고 지적한다.

일단 그렇게 믿겠다는데 어떠한 대화도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

 

이 책의 해제를 보며 느낀 점이 있다.

해제자는 많은 이들이 흄을 오해하고 있단다.

흄 뿐만 아니라 막스, 세이, 파농 등등 수많은 이들이 우리의 오해 속에서 쌓여있다.

허허~

결국 그들이 죽은 마당에 그들의 실체는 누가 보장해주는가?

객관적이라 할 수 수많은 '출판물'을 읽고서

그 저자를 오해하는 메커니즘도 또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k*****k 2008.12.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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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 종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기적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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흄은 영국 경험론의 대표적인 철학자이다. 그는 기적을 자연 법칙의 위반으로 정의하고, 기적이 종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기적을 만든다며 미신과 광신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앙이 기적을 만든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써 엄청난 파장을 가지고 오는 것으로 보인다. 실로 종교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며, 그 수단을 강화시키기 위해 기적을 일으킨다는 것이라는 설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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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흄은 영국 경험론의 대표적인 철학자이다. 그는 기적을 자연 법칙의 위반으로 정의하고, 기적이 종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기적을 만든다며 미신과 광신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앙이 기적을 만든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써 엄청난 파장을 가지고 오는 것으로 보인다. 실로 종교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며, 그 수단을 강화시키기 위해 기적을 일으킨다는 것이라는 설명이기 때문이다. 이 기적을 통해 종교를 믿게 되며, 종교가 강요한 실천을 허물없이 비판하는 것이다.

 

 흄은 미신과 광신이 절대자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기적을 만들어 내었다고 주장한다. 이미 언급했듯이 종교가 기적을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절대자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절대자가 행한 기적으로써 종교는 입지를 강화하며, 절대자를 향한 믿음이 바른 것임을 주장한다. 기적을 산출하는 신의 권능을 강조하는 것으로써 신의 능력을 증명하며, 이것은 신의 권능이기 때문에 인간의 어떠한 증언에 의해서도 입증할 수 없다는 전제를 이미 배후에 둔다. 신성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신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기적에 의해 부가되는 모순을 모순이라고 말할 수 없도록 만든다.

 

 흄은 가톨릭의 기적 가운데 많은 것이 신뢰할 만한 기적이 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자연의 가시적인 힘에 의해 발생할 수 없는 사건을 신이 발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납득시키기 위해 갖은 이유를 찾아 다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더불어 이 기적을 신성시하는 것이 왜 해악인지에 대해 설명하는데, 그것은 실로 설득당할 수밖에 없는 근거를 갖고 있다. 신의 권능이 일으키는 기적에 의지하며 살아가게 되면, 그러한 인간들이 이 사회의 짐일 수밖에 없으며 무익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종교가 기적을 만드는 것을 비판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쨌든 기적에는 증거가 없다. 그것은 신의 권능에 의해 발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진기한 사실이 일어 나게 되면, 그 증거에 대해 성급한 판단을 내리거나 증거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기적에 관한 흄의 정의는 가설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종교론자들은 이보다 더한 방식으로 흄의 정의에 대해 비판한다. 신의 권능에 의한 기적은 신의 권능을 추앙하기 위한 것이지, 기적을 기대하는 인간의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탓이다. 하지만 종교는 이 기적을 통해 인간이 구원받을 것이며, 따라서 특정 종교에 투신할 것을 주장한다. 그 주장의 바탕에는 신의 기적이 있다.

 

 이것을 부정하는 광신론자들에 의해 흄은 극단적 회의론자로 지적받는다. 따라서 대개의 철학자들이 흄의 철학을 회의론이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그것은 종교에 대한 회의이지, 이 사회에 대한 회의라고 까지 확장하는 것은 약간의 무리가 있지 않을까. 더군다나 나같은 불가지론자에게 그것은 이미 회의가 아니지 않은가. 

m*******y 2007.11.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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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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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세상의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노라고 말하는 시대에 우린 살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현상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소위 ‘기적’이라 불리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기적은 쉽게 목격되지 않으며 반증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미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는 자연 법칙에 위배된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렇기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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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세상의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노라고 말하는 시대에 우린 살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현상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소위 ‘기적’이라 불리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기적은 쉽게 목격되지 않으며 반증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미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는 자연 법칙에 위배된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렇기에 이러한 기적을 기반으로 수많은 종교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데이비드 흄’이라는 이름은 일상적인 삶의 기반을 부정하는 회의론자로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 때문일까? 칸트에게 많은 영향을 준 학자로서 그의 이름은 익숙하지만 정작 그가 전 생애에 걸쳐 정열을 쏟았던 종교와 관련된 논의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있어서 낯선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적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이 책에 표기되어 있는 저자 이름을 보았을 때의 기분은 참 묘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나의 섣부른 오해로 인한 것이었다. 그랬다. 난 그에 대해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남들이 이야기하는대로 받아들이는데 급급했을 뿐. ‘기적에 관하여’라는 글은 짧으면서도 명쾌한 논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에게 있어서 기성 종교는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수많은 현상들을 근거로 들며 인간으로 하여금 수많은 타락을 자행토록 만드는 것에 불과했다. 또한 그에게 있어서 개혁적인 자연 종교들은 기본적인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인간의 이성에만 집착한 나머지, 종교로서의 요소들이 결핍된 것으로 여겨졌다. 그는 이 두 요소 간의 화해(?)를 통해 진정한 종교를 발견하고자 했다. 그것은 종교로서의 신화적 요소, 즉 기적을 충분히 갖추었으면서도 동시에 나약한 존재로서 인간이 갖는 근원적 두려움을 붙잡아 줄 수 있는 중도적 의미의 무엇이었다. 동시에 그는 기적에 대해 이야기함에 있어서 합리적인 요소를 첨가(!)한다. 그에게 있어서 기적은 한 시대의 틀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과학 기술의 진보로 인해 기적으로부터 일상의 영역으로 옮겨갈 수도 있는 것이었다.-진정한 의미의 위반기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될까? 그에게 있어서 모든 기적은 조화기적의 영역에 포괄될 수 있는 것이었던 듯 싶다.-동시에 그는 인간의 제도가 가지고 있는 취약성에 대해서도 눈을 뜬 것 같다. 즉, 그에게 있어서 어떠한 사회제도도 완벽하지 않았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비록 기적이 절대적으로 신성시 될 수 있는 무언가는 아니지만, 인간사회의 결핍된 요소를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여길 수 있었다. 그는 무신론자도 회의론자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기적의 가치를 신앙으로부터 도출한다. 기적이 있기 때문에 종교와 신앙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후자로부터 전자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다소 아리송한 논리 싸움과도 같이 느껴졌다. 이러한 논리는 어떻게 보면 기적의 객관적 존재를 부인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모든 기적은 인간의 신앙심으로 인해 인위적으로 기적화된다고 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다(多) 종교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고도 할 수 있다. 모든 종교를 가능케 하는 기적은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도출된다는 논지 하에서 중요한 것은 한 종교가 다른 종교보다 객관적으로 우월한지 여부가 아닌, 종교를 믿는 이의 진실된 신앙심일 테니 말이다.
q*****2 2004.06.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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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을 경계하라고 말한 흄 - 기적에 관하여 : 데이비드 흄
"광신을 경계하라고 말한 흄 - 기적에 관하여 : 데이비드 흄" 내용보기
꼭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의 중도란 것을 지키며 살기 위해 애를 쓰기는 한다.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너무 가까워져서 업신여기는 마음이 들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너무 멀게 느껴져 애초에 친해지지도 못하면 안된다는 생각 사이에서 적절한 거리를 찾기 위해 애를 쓴다. 먹는것, 자는것, 운동하는 것 역시 모두 '적절'하지 못하면 일상생활의 균형
"광신을 경계하라고 말한 흄 - 기적에 관하여 : 데이비드 흄" 내용보기

꼭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의 중도란 것을 지키며 살기 위해 애를 쓰기는 한다.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너무 가까워져서 업신여기는 마음이 들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너무 멀게 느껴져 애초에 친해지지도 못하면 안된다는 생각 사이에서 적절한 거리를 찾기 위해 애를 쓴다. 먹는것, 자는것, 운동하는 것 역시 모두 '적절'하지 못하면 일상생활의 균형을 잡을 수도 없다. 책도 너무 많이 혹은 적게 읽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또 지나치게 한 쪽으로만 치우친 독서를 하는 것을 경계한다. 아직 철학 서적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동양 철학과 서양 철학을 적절히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또, 서양 철학 중에서는 대륙철학이라 불리는 프랑스*독일 철학과 영미철학을 적절히 병행하며 읽어야겠다고 느꼈다.

 

약간 대륙철학에 호감이 가던 이 때, 영미철학을 접해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고른 책이 데이비드 흄의 '기적에 관하여'이다. '기적에 관하여'를 고르게 된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다. 첫째, 저자가 영국인이므로 일단 대륙철학은 아닐 거라는 점. 둘째, 두께가 얇다는 점. 그랬기 때문에 책의 구조나 개괄적인 내용을 읽어보지 않고 무조건 손에 집어 들었다. 제목만 봐서는 기적을 옹호하는 입장인지 거부하는 입장인지 알 수 없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당연히 기적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쓰여진 책일거라고 생각했다.(이런 생각은 데이비드 흄이 옛날 사람이고, 종교가 한창 중시되던 중세시대의 사람이기 때문에 기적옹호자중 하나일 것이라고 믿은, 전적인 내 편견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책을 조금만 읽다보면 이 생각이 편견이었음을 곧장 알 수 있다. 데이비드 흄은 이 책에서 기적을 자연법칙에 위반되는 '위반 기적'으로 한정지어 철저하게 비판하고 있다.

 

흄이 경험을 중시하고 당시 종교적 신앙을 튼튼하게 지지해주던 기적을 비판하였다고 하여 회의론자라는 평가를 받았다면 이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당연히 재평가 받아야 할 것이다. 종교가 절대적으로 중요시되던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정신적 삶을 이루는 신앙을 '경험'이라는 무기로 공격해오는 흄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흄에게 회의론자라는 오명을 씌웠는데 200년이 지난 요즘에 와서도 흄을 회의론자로 기억하고 있다면 분명 잘못된 것이다.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흄의 기적에 대한 비판이 그다지 심각하다고 생각할 정도도 아니다. 분명 지나치게 경험을 중시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배타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전적으로 배격하는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관습적인 것, 자연적인 것에 대해서는 그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종교를 배척한다고는 볼 수 없다. 종교의 신앙을 이루는 기적에 대해서는 분명 비판적이지만, 종교가 오랜 세월에 걸쳐 관습적이고 자연적인, 사람 삶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종교 존재 자체에는 긍정적이다. 그가 비판하고자 한 것은 맹목적이고 자칫하면 광신적인 믿음으로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깨어있는 생각을 주어, 좀 더 계몽적인 삶을 살고 건전한 종교적 신념을 가질 수 있게 되길 바랐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에 와서는 그를 창조적 회의론자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여전히 그가 회의론자라는 딱지를 버리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살짝 삐딱해지지만 그래도 창조적이라는 간판을 하나 얻은 것에 대해서 만큼은 만족한다.

 

흄이 2세기나 뒤늦게 얻은 이런 간판 때문에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고 해서 흄을 옹호하는 입장은 결코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지나치게 경험적인 것만 중시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터부시 하는 그의 입장에 약간 반감도 들었으며, 흄의 입장에 선 사람이라도 그다지 환영받지 못할 극단적 문체를 구사했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도 많았다. (그가 이 책에서 사용한 예나 말투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은 전적인 내 개인적 느낌일 뿐이다.)

 

기적에 관하여라는 논문 자체는 매우 짧으나, 이 책에는 흄의 입장을 비난하는 토마스 러더퍼드의 글과, 흄을 옹호하는 새뮤얼 빈스의 글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특히 흄의 글을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따져가며 철저하게 비난한 러더퍼드의 글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그의 글 역시 크게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는 절대적 신앙자로서의 논리를 나름대로 펼치고 있는데, 그가 내세운 논리의 전제 자체가 그리 납득할만하다고 할 수 없었다. 러더퍼드의 결론은 결국, 신이라는 더 큰 존재 안에서 발생하는 일을 경험이라는 훨씬 작은 존재로 납득하려 하느냐였다. 비유하자면,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우물에서 일어나는 일만 봐서 어떻게 알겠느냐는 식이다. 그는 자신의 반박을 통해 흄이 떨어뜨린 기적의 위치를 원래 자리에 돌려놓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흄이 영국의 철학자라고 해서 영미철학의 근본을 이룬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구석이 있다. 그 자신이 일단 프랑스로 철학 유학을 떠났던 사람이고, 그의 영향을 받아 독일 철학자인 칸트의 이론이 더 빛났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미철학이라 하면 크게 근대에 들어와서는 구조주의, 실증주의로 대표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긴, 경험을 중시한 흄이나, 과학적인 접근을 중시하는 실증주의도 어찌보면 같은 맥락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h******0 2009.06.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