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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찡해온다. 어느덧 1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이책으로다시금 그분이 생각했던 세상을 같이 그려봤으면 좋겠다 세상이 노란풍선으로 가득찼던 그 시절과 지금의시절을 비교해 볼수도 있겠지만, 그분이 가졌던 정치적인 생깔보단 그분의 이상향, 서민을 생각하는 마음가짐을 집중적으로 보았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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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고, 나는 울었다.
나는 정치를 모르는 1인이고, 대통령을 몰랐던 1인이고, 노무현을 이해하지 못했던 1인이다.
나는 책장을 펼쳐보기전, 한동안 속으로 무언가를 향해 빌고 빌었다.
이 책이 중립적인 입장에서 벗어난 책이라면....
나는 이 책을 펼친 것이 후회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았던 1인이다.
젊고 패기 넘치는 대통령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주기를 바랬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고인 물은 썩어있었고, 그것을 바꾸기란 너무나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건 노무현 대통령도 알았을것이다.
봉하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와 검찰청 앞에 담담하게 서서 플래쉬세례를 받으며 고개를 숙이던 그분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분이 정말 너무나도 지쳐 있음을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정신없이 읽었고,
다 읽고 난 후에는 울 수밖에 없었다.
1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분을 기억하고,
그 분이 그립고, 그 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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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남는 사진 한 장
"운명이다"를 처음 펴는 순간 들어오는 사진이 있다. 자전거를 모는 사람이 전직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손녀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어느 평범한 할아버지의 사진 한 장이겠지만, 그 할아버지가 전직 대통령이기에 가슴 깊이 남아 있는 사진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사진을 보면 한편으로는 밝고 귀여운 손녀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소탈했던 전직 대통령을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뭉클해짐을 느낀다. 아마도 내게는 여러가지 감정을 던져주는 사진이 아닌가 싶다.
"자신을 포함한 다른 대통령들은 기념관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분은 감춰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전시할 수 없을 것이고, 저는 자료 같은 것도 변변치 않고, 또 간수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솔직함 그리고 담백함이 노 대통령의 매력이었다." - 김대중 자서전 2권 p556-
김대중 대통령의 자서전에서도 노 대통령의 "솔직함과 담백함"을 언급했고 나 자신도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함이 느껴지는 대통령에게 관심을 많이 가졌다. 우리 현대사에서 유일하게 고향에 내려가 농사일을 하던 대통령이었고 위와 같은 사진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대통령이었다. 그런 대통령처럼 "운명이다"의 문체도 간결하고 솔직 담백하다.
노무현 대통령처럼 우리나라 대통령 중 관련 서적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본인이 쓴 글을 비롯, 다른 사람들이 쓴 글들도 많고 나올때마다 많은 사람이 사서 보았다. 하지만 이 책의 주된 편집자인 유시민 씨가 쓴 것처럼 "운명이다"는 이 책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이 또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고 그 동안 나왔던 노 대통령 이야기의 종합이자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평범한 내 아이가 대통령을 꿈꿀 수 있는 세상
대통령 선거전이 한참이던 그 해, MBC100분 토론에서 각 후보자의 지지자들이 나와 그 후보들에 대한 지지 이유 등을 말하는 자리가 있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지지한다던 어느 여성분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 평범한 부모를 둔 내 아이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꿀 수 있도록 노무현 후보를 지지합니다" 정확하게 옮겼는지 모르겠지만 대체로 이런 내용이었고 그 한마디가 내 머리속에 강렬하게 남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부모님은 시골 봉하마을의 농부였다. 교육열이 강한 것은 우리나라 어느 부모와 다르지 않았다. 어릴 적 읽던 위인전 속에 나오는 - 이순신, 을지문덕, 강감찬, 세종대왕 등등 - 사람들은 왕이나 귀족의 자식이거나 혹은 그런 사람들의 부모가 다른 혈육 등 일단 혈통이 좋았고 어릴 적부터 학문이나 무예에 특출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대통령, 장군 등등을 꿈이라 말하던 그 시절 무렵의 아이들이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한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나마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이제는 대통령의 꿈을 접은 나이임에도 위안을 받았던 것은, 국민적으로 존경을 받던 위인이지만 어릴 적 하던 짓은 정말 예전 위인들과는 다르게 못난 짓을 많이 했다는 것, 그런 사람도 나중에 커서 존경받는 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꿈들이 사그라들고 현실에 적응해서 그럭저럭 살아갈 무렵에 후보 지지 발언에서 들었던 그 한마디는 나의 뇌리속에 깊이 남았고 그 후 노무현 후보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꿈
"사람 사는 세상"이란 말은 참 어감이 좋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그 말을 쓰게 된 계기가 민중가요에서 유래되었음을 밝히고 있지만 굳이 그 기원을 찾지 않더라도 말 자체로 정감이 간다. 먼저 다녀온 선배들에게 무용담처럼 힘든 일만 들어서 막연히 걱정만 하던 군대에 가서 훈련받고 지낼 때, 처음 교도관의 길에 들어서서 구치소에 들어가 수용자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대했을 때에도 느꼈던 것은 이곳도 '사람사는 세상'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느낌과 뜻이 그가 말한 "사람 사는 세상"하고는 차이가 있겠지만 어쨌든 말 자체만으로도 듣기 좋은 그 세상을 향해서, 노무현 대통령은 속세에 적당히 물들어 충분히 먹고 살만하던 변호사의 길을 버리고 나아가게 된다.
"1980년대의 수많은 민중가요중에서도 <어머니>라는 노래가 특히 좋았다.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래서 정치에 입문하면서부터 이 노래 첫 구절 ' 사람사는 세상'을 꿈으로 삼았으며 1988년 13대 총선 선거구호로 썼다. 2002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국민경선 때도 종종 이 노래를 불렀다." p92
고졸로 사법고시를 합격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그때까지 어떤 유별난 꿈을 갖고 산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고집이 셌고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던 소년이었던 그는, 무조건 옳은 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라면서 뭔가 출세하고 성공하고 싶었고 그 수단으로 고시를 선택한 것이었다. 세상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어떤 특별한 이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아마도 새로운 계기가 없었으면 그대로 소위 잘나가는 변호사로 살았을 것이고 아내와 자식들도 그럭저럭 잘먹고 살았을 것이다.
"사기 혐의로 남편이 구속된 아주머니에게 사건을 수임했다. 합의만 되면 변론도 필요없는 사건이었다.~ 다음날 합의를 본 의뢰인이 찾아와 수임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했다. 나는 변호사 수임 약정서를 보여 주면서 이미 접견을 했기 때문에 수임료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고 했다. 실랑이 끝에 발길을 돌리면서 그 아주머니가 말했다. "변호사는 본래 그렇게 해서 먹고 삽니까?" 화살이 도어 가슴에 꽂힌 이 한마디는 수십년 동안 내게 고통을 주었다." p69
변호사로서의 양심도 약간은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솔직하게 자신의 그때까지의 삶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양심에 거리낌이 있으면서도 수임료가 탐이 나서 수임 계약 해지를 받아주지 않았던 그 당시에는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열정과 이상을 지닌 인권 변호사는 아니었다. 그런 그가 어느날 새로운 계기를 만나게 된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부림사건"관련 변호를 맡으면서 일종의 충격을 격게 되는 것이다.
"손이 모자란다는 하소연을 듣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변호를 맡게 된 것이다. ~ 크게 고민하지 않고 일단구치소로 피고인 접견을 갔다. 그런데 여기에서 상상치도 못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머릿속이 마구 헝클어졌다. 사실과 법리를 따지기 전에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법정에서 냉정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변론을 하기가 어려웠다." p77~78
앞서 이야기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가 예전 우리가 위인전에서 봤던 특출난 인물이 아니라 - 물론 고졸에서 고시 패스했고 대통령까지 올라간 역량은 당연히 뛰어난 것이지만 - 봉하마을 어느 시골 부부 아래에서 자라서 대통령까지 올라간, 가장 서민에 근접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어떤 이론으로 무장하거나 의식을 갖고서 노동자를 대변하는 변호사, 인권 변호사로 들어선 것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보편적인 정서, "사실과 법리를 따지기 전에"가장 밑바탕에 있는 인간의 감정으로 분노하면서 생각을 바꾸어 그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대통령 이었다.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을 가졌던 사람
김구 선생을 존경한다면서 그가 죽기전까지 우리 민족의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들었던 그는, 우리나라의 망국병으로까지 불리는 지역감정을 없애기 위해 계속 해서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 출마한다. 국회의원 선거도 떨어지고 부산 시장도 떨어져서 이제는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무렵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그에게 큰 힘이 되는 흐름이 만들어 졌다.
"나는 변호사로서 국회의원으로서 늘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도우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노사모는 30대 회사원이 많았고 학력도 전반적으로 높은 편이었으며 사는 형편도 나쁘지 않았다. 자기네를 위해서 무엇을 해 주었거나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를 지지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원칙, 진실, 정의, 그런 보편적 가치를 지지한 것이다. ~ 신문 방송이 아니라 인터넷 뉴미디어를 활용했다.~ 노사모의 문화를 보면서 대한민국에 새로운 주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p165
아마도 기존 정치인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자신의 신념에 대한 고집, 지역감정을 거스를려고 하는 바보스러움, 뭔가 알 수 없는 신선함 등을 그에게서 발견했기에 사회의 새로운 흐름으로 인터넷 등 뉴미디어를 활용하며 문자메시지를 보내던 30대의 사람들이 그를 위해 모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노사모"는 대통령 당선때까지 그와 함께 했고, 당선 후 탄핵때에도 촛불을 들어 그의 옆에 있었으며, 검찰조사를 받으러 갈때도 노란 풍선을 들고 길가에 서 있었다.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이었던 노사모는 그의 가장 큰 비판자이면서 든든한 후원자였다. 그리고 이런 정치인 팬클럽을 등장케한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인생은 우리 정치 역사에 있어서 한 획을 그을 만한 일을 해낸 것이 분명하다.
서른 즈음에 맞이한 대통령 노무현
"나는 우리 국민의 역량을 믿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다 이루어 낸 우리의 현대사를 볼 때 국민들이 FTA에 내포된 위험과 불확실성을 감당해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믿음이 없었다면 한미 FTA를 추진하기로 결심하지 못했을 것이다." 255
솔직히 나 자신이 어떤 정치적인 지식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경제를 잘 알지도 못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한 것들에 대해서 그 잘잘못을 평가하여 뭐라 언급하는 것은 내 능력밖의 일이라 생각하고 가끔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몇 마디 하는 정도밖에는 할 수 없다. 그의 업적에 대해서 논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기본적인 바탕에는 우리 국민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자리하고 있었음을 확신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식을 할 당시, 나는 이제 막 태어난 아들을 품에 안고 달래며 텔레비전을 통해서 취임식을 보고 있었고, 말도 알아듣지 못할 아들에게 "저분이 이제 우리 대통령이야"하고 속삭여 주었다. 간부로 군입대를 한 이후 후보 시절 공약했던 군 복무 시절의 단축과 병 월급 인상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 물론 후보시절 공약중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고 정작 나 자신은 대상이 아니었지만 사회와 떨어져 있던 군 생활 속에서도 뭔가 변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남았던 삶
5월이 다 지나가고 있을 어느날 길을 가다 우연히 생각난 대학교 동기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통화한 그 친구가 전화 받자마자 뜻밖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노무현이 죽었데.", "농담 마" "정말이야, 뉴스봤어?" 내가 모르는 그 짧은 순간, 벌써 소식은 전국에 퍼져 있었고 뉴스에서는 계속 같은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실감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그때 당시 검찰 수사 등으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아직도 많은 지지세력이 있었고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온 그가 그런 일로 무너질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의 관심은 이미 그에게서 멀어져 있었는지도 몰랐다.
" 나는 백범 김구 선생을 존경했다. 김구 선생은 민족의 해방과 통합을 위해 목숨을 빼앗기는 순간까지 뜻을 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현실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했다. 이런 의문이 들었다. 우리 현대사의 존경받는 위인은 왜 패배자뿐인가? 우리 역사는 정의가 패배해 온 역사란 말인가?" p161
자서전이 이미 나왔지만 그의 업적을 평가해서 위인이라고 할지는 아직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가 언급했듯이 우리 현대사의 위인들에게서 보는 불행의 결말을 볼 때 그의 죽음은 안타깝고 서글픈 일이다. 인간적인 각성을 통해서 인권운동에 뛰어들었고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고자 정치를 시작했으며, 정치를 하는 동안 지역감정을 없애기 위해서 고군분투 했고 마지막에 고향에서 뜻깊은 일을 하고자 했던 그의 인생이 그렇게 끝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20년 정치인생을 돌아보았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원래 그대로 돌아가 있었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다른 데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대통령은 진보를 이루는 데 적절한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것일까?"p332
정말 세상은 누가, 어떻게, 무엇으로 바꾸는 것일까? 매달 월급날을 기다리며 소심하고 평범한 월급쟁이로 살아가고 있는 나로서는 생각만 해도 버거운 주제의 질문이다. 다만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 믿고 지지했던 그의 뜻하지 않은 죽음이 안타깝고 서글플 따름이다.
"운명이다" 리뷰를 쓰는 데는 많은 고민이 있었다. 나 자신이 뭐라 한마디 적어서 - 내가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그럴 일은 없겠지만 - 혹 누가 될까 걱정이 되었고 그 전에 나 자신이 자서전을 제대로 읽고 리뷰를 쓸지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나름 이 책에 대해서 한번 언급하는 것도 그의 삶을 제대로 짚어보고 조금이나마 내 삶에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이 되었다. 지하철에서 출퇴근 하면서, 도서관에서, 혹은 집에서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주변을 살피곤 했다. 중간중간 나와있는 사진들은 웬지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올라 계속 책을 읽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의 업적과 상관없이, 대통령까지 했지만 나와 같은 소시민처럼 소탈하고 꾸밈없던 그의 삶이 계속 되었으면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한편의 슬픈 영화같은 결말이 서글프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운명이다"책을 통해서 그의 삶이 보다 적절하게 세상에 알려지고 "사람 사는 세상"이 이루어지는데 보탬이 되었음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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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를 통해 유시민씨가 이 책의 작업을 끝내고 몇십권을 직접 자택으로 가져가는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꼭 사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온라인 서점에서 접했을때는 왠지 보아야만 할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고 결국 지난 금토 이틀동안 읽어내었다.
일단 제목부터가 참 뭐랄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것 같다. 솔직히 책에 쓰여진 내용에 대해서 전부다 전후사정을 아는 것도 아니고 어느부분은 다른쪽 이야기도 들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긴 했는데 그 마음 하나 만큼은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경직성에 대해서 만큼은 꼭 한번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그리고 이미 많은 글을 통해 관련 글을 접할 수 있을 것 같으니 그냥 책을 보다가 누군지 이름이라도 한번 알아보고 싶은 부분을 표시해본다.
p. 78 '부산에서 변호사 한두 명 죽었다고 그게 뭐 대단한 일이 될 줄 아시오?' 라고 말했다는 이 검사는 누구이며 지금 잘살고 있을까? 이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부장검사는 후일 국회의원도 되었다는데.
p.90 고 박종철군 추모대회에서 연행되었으나 판사에게 영장을 받지 못하자 세 번씩이나 계속 영장을 청구한 주선회 검사는 뭐하고 사실까?
p.123 4년전 그를 '반란군 총잡이'로 규정하고 '국회가 아니라 감옥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던 민자당 김영삼 총재는 지원유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허삼수 씨는 충직한 군인입니다. 뽑아 주시면 중히 쓰겠습니다. 저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시려면 허삼수 씨를 국회의원으로 뽑아주십시오'라고 말했다는데 이런 사람에게 패해 선거에서 졌다는 부분에서는 오직 한숨만.
p. 211 한나라당에서 자신을 경포대라고 부르며 비판하던 사람이 당을 옮겨 이쪽으로 건너왔다. 할말이 없었다.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 당을 옮기는 것은 그분의 자유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그 뒤에 줄을 선 정치인들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민자당으로 간 것을 가혹하게 비판했던 바로 그 정치인들이 그렇게 했다는데 모르는게 조금은 부끄럽더라도 물어봐야겠다. 누굴까? 그리고 줄은 섰다는 분들은 뉘신지 이름이라도 듣고 싶어졌다.
이밖에도 대북송금 특검수용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 이라크 파병에 대한 생각도 고개를 끄덕일만 했으며 대선거구제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을 보면서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숙연해졌는데 뒷부분 화보를 다시 보면서 눈시울이 살짝 붉어지는건 결국 어쩌지 못하였다. 정말 대통령을 하려고 한 것이 분수에 넘치는 욕심이었고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꾼 지도자가 되려고 한 것이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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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준비 안된 이별을 맞이했다. 그는 가버렸다. 모두가 그와의 이별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는 우리에게 '안녕'이라는 그 짧고도 쉬운 말 한 마디 남기지 않고 가버렸다. 우리와는 영원히 마주서지 못할 영원의 강을 건넜다. 그는 갑작스럽게 눈물만 남겨놓고 가버렸다. 그를 사랑하는 아무에게도 나는 간다고 말하지 않고 가버렸다. 그는 길지 않은 60 평생을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다가, 한 순간에 가버렸다. 모든 이에게 그리움만 남겨 놓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보내지 아니하였다.
그는 갑작스럽게 타의에 강요되어서 가게 되어서, 책에는 그의 손떼를 묻히지 못했다. 그의 자서전(?)은 그의 치열했던 인생에 비하면 두텁지 않고 매우 단출했다. 그의 삶을 얇디얇은 단 한 권의 책으로 말하기에는 매우 빈약한 분량이었다. 그것도 당신으로부터 직접 얘기를 듣고 저술된 것이 아니라 제3자가 그의 사후에 그의 저작물을 보고서 간접적으로 집필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치열했던 그의 인생상에 대한 세심한 맛이나 다이내믹한 맛이 전혀 나지 않는다. 그의 인생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사건들이 매우 많았지만, 거기에는 그만의 생각이 묻어나 있지 못하다. 가령 '부림사건'에서는 그의 할 말이 참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의 필요한 코멘트가 전혀 없다. 이 책을 읽고 있느라면, 또 다른 본서가 있으나 독자들을 위한 편의상 만들어진 추록, 요약본을 읽는 기분이다.
2. 보수의 나라에서 태어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1946년 9월 1일 광주 노씨 아버지 노판석 씨와 어머니 이순례 씨의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대한민국운 보수의 나라라고 지칭했다. 대한민국의 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는 축구 경기와 비슷하다. 보수 세력은 위족에서, 진보 세력은 아래쪽에서 뛴다. 보수 세력의 조직은 매우 크고 강하다. 그들은 공동의 이익에 근거를 둔 네트워크를 감성적으로 재조직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이런 정치 환경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공정한 경쟁을 하기가 어렵다.
보수주의는 본질적으로 윤리적 가치를 중요시하고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시장경제를 추구하고 기회의 균등을 애기한다. 그런데 한국의 기득권 세력은 윤리적 가치보다는 경제적 이익을 더 선호한다. 경제적 자유는 일부 대기업만을 위한 관치주의에 더 익숙하다. 이 땅의 보수는 오로지 부를 축적하는데 매진한다. 이들의 辭典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 Oblige)라는 것은 없다. 그들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온갖 중상모략과 조작을 한다. 심지어는 봉하의 집은 그의 진이 '아방궁'이라고 했다. 진시황제는 그런 곳에서 중국대륙을 호령했나보다. 대한민국이 보수라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단견에 지나지 않았다.
3.아마추어는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아마추어였다. 그는 너무나 순진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정치인으로써는 지나치게 솔직하고 순박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자기같은 줄만 알았다. 그는 자기의 속마음을 여과없이 토해냈다. 그는 잘못된 세상에 대한 크고 강한 분노를 어떻게 다스리고 표현해야 할지를 터득하지 못했다. 현실 정치에 아악스럽게 적응하지 못했다. 5공 청문회에서 명패를 투척한 사건,1988년 12월 울산 현대 중공업 파업현장에서의 연설, 1989년 3월에 의원직 사퇴와 번복, 1999년 2월에 종로구에서 당선된 지 반 년만에 지역구 이전 선언,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 후에 상도동 YS 자택 방문 등은 너무나 서투른 행동이었다.
그의 진심어린 아마추어적인 행동은 하이에나 같은 정적과 보수 언론의 먹잇감에 지나지 않았다. 아마추어는 프로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보수언론은 수십 년 동안 이 땅에서 기회주의자였다. 더구나 잃어버린 기득권을 되찾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서 온갖 유언비어를 만들어서 퍼뜨리는 이들에게 그는 연약하고 아무런 방어책이 없는 존재였다. 조선일보와의 싸움에서는 이런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그는 행정가로써는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였다. 'e-지원'이라는 청와대 업무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정보 축적과 재활용 시스템을 만드는 프로그램 기획안도 직접 섰다. 자율권과 분권, 투명과 공정, 부단한 학습과 지식의 공유를 국정운영의 기본원칙으로 삼았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시작한 '전자정부'를 한층 더 강화하였다. 그는 지식 정보화 시대에 필요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 진정한 미래형 행정가 였다.
4.실패한 대통령인가? 그는 새 시대의 첫차가 되고 싶었다. 서로 다른 정치적 지향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고 대화하고 타협하는 성숙한 민주주의 시대를 열고 싶었다.(206p.) 하지만 자신은 구시대의 막차가 되어버렸다고 평가한다. 그는 국가정보원이나 검찰, 국세청을 정치에 이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먼저 국가정보원장과의 독대를 하지 않았다. 또한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고 검찰권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려고 했다.(p272.) 그런데 그것은 그에게 독(毒)이 되었다. 그는 "평검사들과의 대화"라는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검찰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임기 내내 그를 물고 늘어졌다. 퇴임한 후에 그는 그와 동지들이 검찰에서 당한 모욕과 박해를 당했다. 그런 검찰은 정권이 바뀌자 스스로 정치적 독립이라는 민주적 가치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는 솔직하고 진정으로 대하면, 그들은 인간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은 그의 오판이었다. 그것이 그의 최대의 실수였다. 착한 주인에게는 거품물며 덤벼드는 그들의 습성을 간과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은 실패한 대통령이었다고 한다. 그의 반대 세력들도 그렇게 떠들고 다녔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동네방네 외쳤다. 한국에 경제적 투자를 하려는 외국인들에게까지 겁을 주었다. 경제적 이익에 함몰되어 역사의식이 없는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정치적 소망을 하나도 성취하지 못했다는 것에서 그렇게 말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참여정부 5년에 경제적 성과와 국민의 기본권 신장, 민주주의 측면에서 큰 성과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단 한가지의 이유가 있을 뿐이다. 그가 지나치게 민주주의 가치에 함몰되어 이상적으로만 정치를 몰고 가려고 했다. 고삐풀린 이들은 길길이 날뛰면서 다녔다. 역사의식이 없는 그들이 그를 실패하였다고 말할 지 모른다. 그들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밥만이 필요했다. 그들은 똥과 된장을 구분할 줄 몰랐다. 그는 민주주의 정신에는 '관용'이라는 정신만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한 것으로 생각된다.
반민주 세력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안았다. 그들은 그가 철저한 민주주의자라는 것을 악용하였다. 민주적 소양을 지니지 않은 자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를 궁지에 몰아 넣었다. 그래도 그는 정치인의 권리, 시민의 권리만으로 싸웠다. 한미 자유협정 개시, 대북 송금특검법 수용, 이라크 파병, 한나라당에 대연정 제안은 일부 지지자들이 그에게서 등을 돌리게 하였다. 결국에는 附和雷同한 국민들만이 실패한 것이다. '양심 없는 행동가'와 '깨어 있지 않은 시민들'이 실패한 것이다.
5.운명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바보 노무현'이라는 꼬리표를 달았을 때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호감을 표시하지는 않았다.DJ가 당선된 후에 post DJ로 인정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1998년 초 대학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하다가 어느 날 1975년 고시계에서 그의 사법시험 합격기를 보았다. 그는 가난하여 번번한 대학도 나오지 못했지만 소수 엘리트만 뽑았던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줄줄이 그에게 낙선의 패배만을 안겨주던 부산을 고집하고, 계파가 전혀 없던 그가 대통령에게 당선되는 것을 보았다. 그에게 운명의 개척자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싶었다.
퇴임 후에, 당신을 배척하였던 고향에서 촌부로써 조용히 살고자하였다. 친환경 오리농법으로 농사를 지었다. 봉화산, 화포천을 가꾸기 시작했다. 그런데 부재지주가 많아서 지지부진했다. 권력은 그의 아주 작은 꿈마저 처참하게 짓밟았다. 기득권을 자신들의 실정을 덮기 위한 반사적 효과를 노려서 모든 권력을 동원하였고 숙종 때 장희빈처럼 온갖 조작을 했다. 그가 조그만한 실수를 해도 針小棒大하여 기득권 언론을 이용하였다. 그를 후원했던 기업체들은 국세청의 특별세무조사를 받고 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그는 MB정부처럼 '법대로'라는 칼을 들이대지 않고 민주주의 교과서대로 권력을 운용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올바른 이상을 추구한 행위를 어리석은 짓으로 모욕하는 世態를 더 아파하고 슬퍼했다.
불꽃처럼 벌처럼 살다갔다. 그는 반민주주의 세력과 불꽃처럼 싸웠다. 특히 보수언언론을 비롯한 기득권과는 처절하게 싸웠다. 그는 권력을 부릴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칼이 되었다. 이 당의 운명들은 그가 '자연인' 노무현으로 살도록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는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의 국민을 위해서 매우 많은 일을 했다. 지난 10년 간 국민들은 많은 혜택을 보았다. 하지만 무식한 국민들은 그것을 모른다. 오직 그의 가방 끈만을 보고, 그가 한 일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국민들이 고생을 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민주주의, 정의, 양심이라는 것은 사치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그들은 개고생을 엄청나게 할 것이다. 오히려 역사가들은 그를 시대를 앞서간 정치인이라고 부를 것이다.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역사는 我와 非我의 투쟁'이라고 했다. 그는 독재, 반민주의 기득권 세력과 민주주의라는 대원칙을 고수하면서 싸웠다. DJ가 초석을 놓은 민주주의를 좀더 확고히 정착시켜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국가와 민족을 배신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하여 50여 년이 지난 지금에 非我는 강력한 세력이 되었다.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지니고 상대하기도 버거운 세력이 되었다. 그의 순수했던 투쟁방법은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데에는 힘이 부족하였다. 그래도 그는 불꽃처럼 치열하게 살다가 갔다. 이별은 슬픈 것이다. 특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이별은 더욱 슾프다. 그는 모든 게 모든 게 운명이라고 하고 떠났지만, 운명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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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30일까지-
내가 노무현대통령에 관련된 책을 읽게 될 줄은 몰랐다- 이번에도 정말 말그대로 책이 그곳에 있었을뿐-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그냥 읽었다.
자서전이지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에, 유시민 작가 혹은 의원이 책을 다시 꾸려져서 나온 책. 책의 앞부분을 보면 비록 고인이 직접 쓰지는 못했지만 그간의 고인이 직접 남겼던 기록들과 옆에서 지켜 본 사람으로써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과 많이 고민을해서 최대한 자신이 정말 노무현이라고 생각하면서 썼다고 했다.
형식은 자서전이기에 출생때부터 변호사가 되기까지가 하나의 큰 파트 그리고 변호사에서 인권변호사가 되면서 정치를 하고 대통령이 되고나서가 한 파트 대통령 퇴임이후가 또 한 파트였다.
일단 읽으면서 느낀점은 이 책 참 힘들다- 특히나 책의 첫파트는 상당히 과격하고 공격적이어서 읽기가 힘들었다. 좀 부담스럽고 불쾌한 느낌. 그러나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것은 내가 알지 못했던 많은점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언젠가 옛날에 집에서 정주영회장의 자서전을 읽고 무척 감동받았던 적이 있는데, 자서전들은 특히나 같은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비교적 비슷한 시기를 공유한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은 언제나 설렌다. 예를 들어서 내가 태어나기 전의 정치상황- 나는 모르는 직접 그들이 되어야만 알 수 있는 이야기.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정치력이라는게 파급력이 크고 여러과정에 거쳐서 만들어지다보니 적시적소에 투입되지 못할때가 있어서 실패도 있고 사람들이 오해를 하기도 한다는 내용.
작년쯤인가 재작년쯤에 한참 논란이 되었떤 한미 FTA시 4대 선결조건이라고 붙여지며 이야기되어왔던 30개월 미만 소고기 수입에 대한 이야기. 대다수 이명박정권이 한미 FTA를 추진해왔으며 친미적인 성향에 의해서 매우 큰 불이익을 감수하고도 이 소고기를 수입한다고 생각했으나 알고보니 이건 이전의 김대중대통령 정권때부터 노무현정권까지 끈임없이 이미 물밑작업이 되어서 거의 이미 내부적 합의가 되어있는 상황이었는데 이명박정권에서 이 부분이 불거지면서 결국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이 된 것.
어렸을때부터 항상 들어온 우리의 교육을 망친 이해찬의원이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올곧게 노무현을 지지했으며 특히 끈질기게 원하는것을 협상하기 위해 노력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대통령이라는 위치가 신분이 생각해던것보다 더 많이 제한이 따르고 여러가지 복잡하다는 것. 이런게 흥미로웠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책이라는 점에서 분량의 제한이 있어서인지 노무현 대통령의 특징이었는지 자신은 이미 알고 있기때문에 여러가지 사업이나 추진사항들에 대해서 그 당시에 있었던 일들을 간단히 이야기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모르는 부분이 참 많아서 그런것에 대한 주석이 달려있었거나 간단한 설명을 했다면 훨씬 많은것을 알 수 있었던 책이었을텐데 하고 아쉽다.
왜냐하면 책에 노무현이 자서전을 쓰려고 했던 이유는 자신은 실패한 대통령이기때문에 자신의 실패한 이야기를 써야하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그렇다면 실패한 이유를 쓰는 이유는 자신은 이렇게 해서 실패했기 때문에 이러이러한 사항을 보고 다음 사람들은 실패하지 말고 성공하세요 이런 뜻이 있지 않았을까?
한마디로 말해서 몰랐던 노무현을 알 수 있었던 책이고 왜 노무현이 정말 많은것을 바꾼 대단한 대통령인지 알 수 있었던 책이었다. 다만 퇴임후에도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뭔가를 이룰 수 있는 분이셨는데 그렇게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가게 되셔서 참 좋은분이 가셨구나 하고 슬퍼졌다
-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잘못된 방법으로 해서는 안된다 - 확신이 있을땐 신중히 생각해보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 끊임없이 공부하라 - 타인과 끊임없이 교류하라 - 부드러운 말투, 매너 소홀해서는 안된다
더 있었는데 까먹었다- 읽으면서 너무나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드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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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다를 처음 접한것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저서를 읽다가 눈에 띄여서였다. 평상사에 고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했던 나로서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고 발매만을 기다린것 같았다.. 왠지 이책에는 대통령님꼐서 남기고 싶은 말이 있을거라는 막연한 추측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대통령이 사가에 내려가 소박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준 노대통령님... 그분의 생애를 알고자 이 책을 읽다가 보니 문득 나의 삶이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번쯤은 이런책을 읽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것은 어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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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읽기 힘든 책이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세세한 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되어서 눈물이 흐른다...
내인생에서 손에 꼽는 책이 될것같다..
읽기 어렵다는 것은 다른 뜻이 아니다
책을 읽다보면은 자연스래 그분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책을 통해 그를 만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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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다
주문한 책을 받았다
하얀색 반, 노란색 반,
양장본 표지가 세로로 나뉘어져 있다,
그분 하면 생각나는 노란풍선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고자 한없이 고민하던 그분의 모습이 하얀색 표지에 아른거린다.
책을 펼쳤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루룩 넘겨본다.
중간중간에 빛바랜 흑백사진부터 고향에서 한없이 밝은 표정의 그분모습이 보인다.
코끝이 찡하다.
자서전은
자신이 쓰는 자신의 기록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럴수 없는 현실로
그분이 평소에 남기신 자필기록과 육성기록을 바탕으로
그분이름 딴 재단과 유시민이 정리하여 만들었다.
어린 시절의 모습에서 시작하여, 여사님을 만나고
고시에 합격하여 판사를 하고, 보통의 세속적인 변호사를 하다가
부림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인 정치의 세계에 발을 딛고
국회의원이 되고, 못된언론과 싸우고,
떨어질 줄 알면서 계속 도전하여 결국 바보소리를 듣고
장관이되고 권력의 정상에 서고
탄핵을 겪고,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짓고, 환경운동을 하면서
못다한 꿈을 이루고자 하였으나
결국 그 무엇으로 인해 홀로 부엉이바위에 오르기까지
마치 그분 옆에서 그분의 인생을 함께 사는 것 처럼
그분의 감정을 오롯이 느끼는 시간이었다.
책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낀다.
책을 읽기만 해도 이럴진대
책을 정리하고 엮은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했을 지 짐작이 간다.
문재인과 유시민의 마음을 난 안다.
그분같은 분이 또 나올까...
만약 그런 사람이 또 나타난다면
그분과 같은 마지막을 겪지 않도록 해주고 싶다.
그분이 많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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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 지났습니다.
아니, 1년이 흘러갔습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기억나지 않습니다.
마음 아픈 기억만 있습니다.
이제 정리를 조금씩 해야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지 여러가지 생각할 만한 좋은 책들이 나옵니다.
"운명이다"
시원한 바람이 불면 우리 님이 오신줄로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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